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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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이 창시한 한국의 현대 불교 종교이다. '원'은 세계와 사람들의 통합을 상징하며, 영성과 과학, 도덕, 사회 정의, 평등, 일상생활의 조화를 추구한다. 일원상을 숭배하며, 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유교, 도교, 동학 등 다양한 종교의 가르침을 통합하여, 물질 문명의 발전과 정신 문명의 조화를 강조한다. 주요 경전으로는 《교전》, 《불조요경》, 《예전》 등이 있으며, 삼동윤리, 사대원리, 신앙과 수행의 문을 통해 교리를 실천한다. 교단 조직은 종법사를 중심으로 교화 조직과 행정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광대학교 등 교육 기관과 다양한 자선 기관, 언론 기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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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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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 |
![]() | |
한국어 명칭 | |
한글 | 원불교 |
한자 | 圓佛敎 |
로마자 표기 | Wonbulgyo |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 Wŏnbulgyo |
기본 정보 | |
창시자 | 박중빈 |
창립일 | 1916년 |
창립지 | 전라북도 |
종교적 분류 | 불교 |
특징 | |
특징 | 현대화된 불교 축의 시대를 다시 돌아보는 이유 보살통으로 강력범죄 예방 교육 |
주요 행사 | 원불교 100주년 기념 성업 |
관련 링크 | |
공식 웹사이트 | 원불교 공식 홈페이지 |
2. 역사
소태산(박중빈)은 1916년 4월 28일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며, 원불교 신도들은 매년 이 날을 대각개교절로 기념한다.[13] 소태산은 깨달음을 얻은 후 여러 종교를 검토하였는데, 그의 사상에는 유교와 도교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금강경을 읽은 후 불교에 마음이 기울었다.[14]
그는 소수의 추종자들을 모으고 9명의 제자를 선택했다. 초기 지침은 근면, 검소, 형식적인 의례와 미신 제거, 음주와 흡연 금지였다.[15] 1919년 8월, 9명의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새로운 운동을 따를 것을 서약했는데, 오늘날 "혈서의 기적"으로 기념되는 사건에서 서약을 기록한 종이에 찍힌 엄지손가락 지문이 붉게 변했다고 한다.[18]
1924년 소태산은 그의 공동체 이름을 '불법연구회'로 명명했다. 이 단체는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전라북도 익산시에 기반을 둔 작은 농촌 공동체로 남아 있었다. 1945년 광복 이후 2대 종법사 정산 송규는 교단의 이름을 원불교로 개칭하고 교리를 정비하였다.[19] 1948년 종교단체로 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고[62] 전국으로 교세를 확장하였다.[63]
1945년 일본 점령 종식 이후 원불교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 2005년 인구 조사에서 약 13만 명이 자신을 원불교 신도라고 밝혔지만, 실제 신도 수는 이보다 많을 수 있다. 원불교 교정은 전 세계 신도 수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추산한다.[20] 현재 한국에는 약 500개의 원불교 교당이 있고 23개국에 70개 이상의 교당과 센터가 있다. 2011년 10월 2일에는 미국 총부 법인의 원다르마 센터가 신설되었다.
2. 1. 배경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이 되면서 조선에는 여러 새로운 사상과 종교가 활발하게 활동했다. 불교계 내에서도 혁신과 근대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고, 개신교 선교, 동학이나 증산교 같은 신흥 종교 전파 등 새로운 사상과 종교가 많이 생겨났다. 원불교의 개조인 박중빈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러 종교를 접하고 새로운 종교를 열게 되었다.[47]원불교는 한국에서 생겨난 현대 불교이다. 1916년 깨달음을 얻은 소태산이 창시하였으며, 물질적인 추구가 인간 정신을 쇠퇴시킨다는 깨달음에 대한 반응으로 만들어졌다. 소태산은 영적 충만과 공동체 생활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그의 비전은 전통적인 불교 원리를 개혁하여 현대의 필요와 조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6]
2. 2. 창시
원불교는 1916년 교조(敎祖)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이 큰 깨달음(大覺)을 얻으면서 시작되었다.[48] 그는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말로 개교(開敎)의 동기를 표현했는데, 이는 정신 문명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물질문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정신 문명과 물질 문명이 조화롭게 발전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함을 의미한다.[48] 박중빈은 1891년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우주의 자연 현상과 인간사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44] 20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심한 가난 속에서도 고행과 수도를 계속하다가 1916년에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44] 그의 깨달음은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라는 것이었다.[49] 그는 여러 종교의 경전을 살펴본 뒤 《금강경》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이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일치함을 확인하고 석가모니를 연원으로 삼게 되었다.[50]
소태산(소태산한국어), 박중빈(朴重彬, 박중빈|hanja=朴重彬한국어)은 1891년에 태어나 1943년에 사망했으며, 한국 남서부의 가난한 마을 출신이다. 그는 유교 전통의 지역 초등학교에서 2년간 정규 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10] 원불교 전통에 따르면, 그는 7세 때부터 우주 현상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여 삶과 죽음, 존재에 대한 문제로 탐구를 넓혔다고 한다.[11] 4년 동안 산신에게 기도하며 탐구를 시작했고, 이후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되는 스승들에게 질문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혹독한 환경 속에서 깊은 관찰과 사색에 몰두했다. 25세가 되었을 때,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길 잃은 영혼으로 여겨졌다.[12] 1916년 4월 28일, 그는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들었다고 주장했다. 원불교 신도들은 매년 이 날을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로 기념한다.[13]
소태산은 불교를 받아들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깨달음을 얻은 후 여러 종교를 검토했는데, 그의 사상에는 유교와 도교의 요소가 있었지만, 금강경을 읽은 후 불교에 마음이 기울었다.[14]
그 후 그는 소수의 추종자들을 모아 9명의 제자를 선택했다. 초기 지침은 근면, 검소, 형식적인 의례와 미신 제거, 음주와 흡연 금지였다.[15] 오늘날에도 중심이 되는 주요 요소는 재가 신도와 승려 사이에 큰 구분이 없다는 점, 남녀평등, 현대적인 수행과 교리, 그리고 물질적 발전의 급속한 증가에 대한 우려 등이다.[16] 초기 소태산은 저축 기관을 설립하고, 1년 동안 힘든 제방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바다에서 25acre의 땅을 되찾아 벼농사를 짓는 등 추종자들의 일상생활을 개선하려 노력했다.[17]
1919년 8월, 9명의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새로운 운동을 따를 것을 서약했다. 오늘날 "혈서의 기적"으로 기념되는 사건에서, 서약을 기록한 종이에 찍힌 엄지손가락 지문이 붉게 변했다고 한다.[18]
1924년 소태산은 그의 공동체 이름을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로 지었다. 이 단체는 1945년 일본의 점령이 끝날 때까지 전라북도 익산시에 기반을 둔 작은 농촌 공동체로 남아 있었다. 소태산의 계승자인 정산(송규)은 1947년 이 단체의 이름을 원불교(圓佛敎)로 바꾸었다.[19]
2. 3. 초기 공동체
1916년 박중빈은 고향인 영광을 중심으로 초기 공동체를 모았다. 1916년 영광군 길룡리에서 8~9인을 규합하여 불법연구회를 조직하고 저축조합을 함께 운영한 것이 최초의 공동체였다. 이들은 방언조합이라는 명칭도 사용하였다.[51] 1920년에는 영광군 묘랑면 신흥마을에 수신(修身)조합을 세워 공동체를 확장하였다.[52] 신흥의 수신조합 역시 상조조합을 겸하여 경제적으로도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야학 등의 교육사업으로 마을 주민들과 인연을 맺었다.[53]
원불교 초기 공동체는 영광 지역에서 간척사업을 하며 확대하고 있었으나 조선총독부의 신흥종교 감시 대상이 되었다. 박중빈은 체포되어 1주일간 구금된 뒤 석방되었고, 영광을 벗어나 전국적인 종교로 확장하기로 마음 먹었다.[54] 이후 전주를 비롯한 여러 곳을 총부의 후보지로 물색하다가 익산에 총부를 세우게 되었다.
소태산은 초기 지침 원리로 근면, 검소, 형식적인 의례와 미신의 제거, 그리고 음주와 흡연의 금지를 제시하였다.[15] 또한 재가 신도와 승려 사이의 넓은 구분이 없다는 점, 남녀평등, 현대적인 수행과 교리, 그리고 물질적 발전의 급속한 증가에 대한 우려 등을 주요 요소로 삼았다.[16] 초기 소태산은 저축 기관을 설립하고 1년 동안 힘든 제방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바다에서 25acre의 땅을 되찾아 벼농사를 짓는 등 추종자들의 일상생활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17]
1919년 8월, 9명의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새로운 운동을 따를 것을 서약했다. 오늘날 "혈서의 기적"으로 기념되는 사건에서, 서약을 기록한 종이에 찍힌 엄지손가락 지문이 붉게 변했다고 한다.[18]
1924년 소태산은 그의 공동체의 이름을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로 명명했다. 이 단체는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전라북도 익산에 기반을 둔 작은 농촌 공동체로 남아 있었다.[19]
2. 4. 익산 성지
원불교 익산 성지는 1924년 원불교 총부(당시 명칭은 불법연구회)가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필요한 건물을 세워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다.[56] 1924년 불법연구회의 간판이 걸린 본원실을 비롯하여 1929년 세워져 훗날 원광대학교의 모태가 되는 공회당을 비롯한 일제강점기의 목조 건물들이 밀집하여 있어 2005년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었다.[57]
2. 5. 조선총독부의 억압
조선총독부는 개화기 이후 조선에 있던 여러 종교를 공인 종교와 유사 종교로 나누어 관리하였다. 총독부의 공인 종교는 일본 고유의 신토에서 파생한 13개의 교파 신토와 불교, 기독교였고, 그 외 여러 신흥 종교는 모두 유사 종교로 취급되었다.[59] 공인 종교는 문부행정이 관할하였고 유사 종교는 경찰행정의 대상이었다. 1930년대 총독부는 유사종교 해산령을 포고하였고 불법연구회 역시 유사 종교의 하나로 지목되어 억압을 받았다.[59] 30년대까지도 불법연구회는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월보》 등을 간행하였으나 40년대에 이르러 휴간하게 되었다.[60] 일제 말기에 들어 조선총독부의 원불교 탄압은 더욱 극심하였다.[44]2. 6. 개칭과 교세 확장
1945년 광복 이후 2대 종법사 정산 송규는 교단의 이름을 원불교로 개칭하고 교리를 정비하였다.[19] 1948년 종교단체로 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고[62] 전국으로 교세를 확장하여 2004년 기준 13개 교구에 503개의 교당이 있다.[63]1945년 일본 점령 종식 이후 원불교는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전 세계 원불교 신도의 정확한 수는 불분명하다. 한국의 2005년 인구 조사에서 약 13만 명이 자신을 원불교 신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구 조사에서 자신을 "불교 신자"라고 밝힌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이 수치는 실제보다 적을 수 있다. 원불교 교정은 전 세계 신도 수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추산한다.[20] 현재 한국에는 약 500개의 원불교 교당이 있고 23개국에 70개 이상의 교당과 센터가 있다.
2011년 10월 2일에는 미국 총부 법인의 원다르마 센터 Won Dharma center영어가 신설되었다.
3. 교리와 경전
원불교의 초기 경전은 소태산(Sotaesan)이 저술하여 1935년에 출판된 『조선불교개혁론』(朝鮮佛敎改革論)이며, 이후 그의 서거 직전인 1943년에 『불교정전』(佛敎正典)으로 확장되었다.[21] 그의 계승자인 정산(鼎山) 송규(宋奎)는 1962년에 새로운 경전인 『원불교 교전』(Wonbulgyo Gyojeon)을 출판했다.[22] 모든 경전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국어로 쓰였다.[23] 현재 경전에는 제2대 종법사인 정산(鼎山) 송규(宋奎)의 『법어』와 《금강경》, 한국 승려이자 학자인 지눌(Jinul, 1158–1210)의 『수심결』 등 여덟 편의 전통적인 대승불교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24]
원불교는 1977년 원불교전서 초판을 발행한 뒤, 44년 만인 2021년 개정·증보판을 발행하여 전국 교당과 기관에 배포하였다. 그러나 원불교미래포럼은 전서 배포 뒤 "(4월 13일 열린) 임시수위단회는 (전서 중) 목우십도송 글과 그림 4장이 바뀐 상태였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승인했고, 수많은 오·탈자 등 편집 오류가 발생했는데, (이후) 최종 수위단회의에서 방기하는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이후 교단 교화훈련부는 전서 회수를 공지했으며, 오도철 교정원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개정·증보판 발간 책임자 여러 명이 사의를 표했다.[68]
3. 1. 교리
원불교 교리의 근간은 대종사 박중빈이 깨달았다는 일원상(一圓相, 모든 진리는 하나의 원과 같이 두루 통한다)이다.[48] 이 때문에 상징 역시 원을 사용하고 있다.[64] 부처의 가르침을 연원으로 한다고 표방하고 있으나 박중빈은 당시 조선에 있던 여러 종교를 두루 살펴보았고 유학, 도교, 동학, 증산교, 기독교 등의 영향을 받았다. 박중빈은 이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결국은 하나로 통한다고 보았다.[65]원불교의 교리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28][29]
'''사대원리'''
- 은혜 알고 갚기
- 정각(正覺)과 정행(正行)
- 이타행(利他行)
- 불법 실천
'''신앙의 문'''
사은(四恩) | 원불교는 한 사람이 안심하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타력(他力 외부적 요인에 의한 영향력)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보며 이를 다음과 같이 4가지 은혜로 파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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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四要) | 정신 개벽은 사회를 개조하는 것이므로 그 방안으로 다음을 제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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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갚는 것이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 사사일불(事事一佛) - 우주의 모든 만물은 법신불의 정신이 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 사사일불공(事事一佛供) - 따라서 모든 행위는 부처님께 공양하는 법(法)이다.
'''수행의 문'''
삼학(三學) | 자신의 본성, 일원상과의 일치를 기르는 수단으로 다음을 가르친다. |
---|---|
- 팔조(八條): 삼학(三學)에는 신앙, 정진, 의문, 헌신이 필요하며, 불신, 탐욕, 게으름, 어리석음을 제거해야 한다.
- 행위와 휴식 속의 끊임없는 선(禪): 시공을 초월한 선(禪) - "육근이 활동하지 않고, 산만한 생각을 없애고 한 마음을 기른다."[30] 이 능력은 명상을 통해 얻어지며, 모든 것 속에서 부처를 보는 방식으로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31]
원불교에서 일원상은 부처의 마음의 본질, 즉 법신불(Dharmakaya Buddha)[26]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다음을 나타낸다.
박중빈의 전법가(傳法歌)는 다음과 같다.
'''
있음이 없음으로 되고, 없음이 있음으로 되어,
돌고 돌아 마침내는,
있음과 없음이 다 공(空)이나니,
그 공(空)이 곧 차 있느니라.
'''
3. 2. 경전
원불교의 경전은 《교전》(敎典), 《불조요경》(佛祖要經), 《예전》(禮典)으로 나뉜다.[67] 《교전》은 대종사 박중빈이 직접 자신의 깨달음과 수행 방법을 밝힌 《정전(正典)》과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해석한 《대종경(大宗經)》을 말한다.[67] 《불조요경》은 원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불경으로,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密多心經),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현자오복덕경》(賢者五福德經),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 《수심결》(修心訣), 《목우십도송》(牧牛十圖頌), 《휴휴암좌선문》(休休庵坐禪文)을 수록하고 있다.[67] 《예전》은 প্রচলিত 예의 규범에 허례허식이 많다고 보고 생활에 필요한 예의범절을 규정한 책이다.[67] 이 외에 2대 종법사인 송규의 어록, 원불교의 역사, 헌장, 성가집 등도 경전에 포함된다.[67]박중빈은 여러 종교의 경전을 살핀 뒤 《금강경》에서 자신의 깨달음이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행적에 부합하므로 그것을 연원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50] 초기 논문은 소태산(Sotaesan)이 저술하여 1935년에 출판된 『조선불교개혁론』(朝鮮佛敎改革論, Joseon Bulgyo Hyeoksillon)이며, 이후 그의 서거 직전인 1943년에 『불교정전』(Bulgyo Jeongjeon)으로 확장되었다.[21] 그의 계승자인 청산(Cheongsan)은 1962년에 새로운 경전인 『원불교 교전』(Wonbulgyo Gyojeon)을 출판했다.[22] 모든 경전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국어로 쓰였다.[23] 현재 경전에는 제2대 교정 청산(Cheongsan)의 『법어』와 『금강경』, 한국 승려이자 학자인 진울(Jinul, 1158–1210)의 『수심결』 등 여덟 편의 전통적인 대승불교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24]
원불교는 원불교전서를 1977년 초판 발행 후 44년 만인 2021년 개정·증보판을 내 전국 교당과 기관에 배포했다. 그러나 원불교미래포럼은 전서 배포 뒤 "(4월 13일 열린) 임시수위단회는 (전서 중) 목우십도송 글과 그림 4장이 바뀐 상태였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승인했고, 수많은 오·탈자 등 편집 오류가 발생했는데, (이후) 최종 수위단회의에서 방기하는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이후 교단 교화훈련부는 전서 회수를 공지했으며, 오도철 교정원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개정·증보판 발간 책임자 여러 명이 사의를 표했다.[68]
원불교의 가르침은 『원불교 교전』 앞부분에 인쇄된 교리표에 요약되어 있으며, 교리를 구성하는 '''사대원리'''는 다음과 같다.
- 은혜를 알고 갚기
- 정각(正覺)과 정행(正行)
- 이타행(利他行)
- 불법 실천
표의 중앙에는 일원상과 소태산(Sotaesan)의 전법가(傳法歌)에 대한 설명이 있다.
좌우에는 예배와 수행의 길을 나타내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인과응보에 기반한 신앙의 문과 진공묘유(眞空妙有)에 기반한 수행의 문이 있다.
'''신앙의 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은(四恩)'''은 원불교도들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을 정의하는 것으로, 원불교 교리에서 유교적 가치관을 반영한다.[28]
- 천지 은혜
- 부모 은혜
- 동포 은혜
- 법률 은혜
'''사요(四要)'''는 다음과 같다.
- 자력(自力) 개발: 개인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자기 능력 개발
- 현인(賢人) 존숭: 도덕적 행실, 인사(人事)의 통치, 지식과 학문, 상식이 자신보다 뛰어난 스승을 찾는 것
- 교육 보급: 세계 문명 발전을 위해 성별, 계급, 부귀에 관계없이 타인의 자녀를 교육하는 것
- 공덕자(功德者) 존경: 타인 봉사라는 주요 목표를 유지하며 공공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은혜를 갚는 것이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 사사일불(事事一佛): 우주의 모든 만물은 법신불의 정신이 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 사사일불공(事事一佛供): 따라서 모든 행위는 부처님께 공양하는 법(法)이다.
'''수행의 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학(三學)'''은 자신의 본성, 일원상과의 일치를 기르는 수단으로 가르친다.
- 수심(修心): 올바른 마음챙김과 명상
- 인사(人事)와 천리(天理) 연구: 일상생활에서의 명료함과 즉각적인 판단을 위한 준비를 포함한 올바른 견해와 사고
- 행위의 선택: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동, 올바른 생계, 올바른 노력
'''팔조(八條)'''
- 삼학(三學)에는 신앙, 정진, 의문, 헌신이 필요하며, 불신, 탐욕, 게으름, 어리석음을 제거해야 한다.
'''행위와 휴식 속의 끊임없는 선(禪)'''(선, 禪)
4. 의례
원불교의 의례는 불교 의례를 현대적으로 간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원불교는 4개의 축일과 2개의 재일을 기념한다.[71]
명칭 | 날짜 | 설명 |
---|---|---|
신정절 | 1월 1일 | 새해 첫날 |
대각개교절 | 4월 28일 | 원불교 개교 기념일 |
석존성탄일 | 음력 4월 8일 | 부처님 오신 날 |
육일대재 | 6월 1일 | 대종사 열반일 |
법인절 | 8월 21일 | 초기 공동체의 9인 제자가 법계 승인을 이루었다는 축일 |
명절대재 | 12월 1일 |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갖는 재일 |
가정의례로는 명명식, 출생 7주 기념식, 성년식, 혼인, 회갑, 장례, 천도재 등이 있으며, 허례를 폐지하고 근검절약을 강조한 《예전》을 바탕으로 한다.[72]
4. 1. 법회
원불교는 교당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69]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깨닫고, 삼세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상징인 일원상을 모신다. 법회를 여는 집회 장소를 교당이라 부른다. 교당은 대개 일요일에 법회를 열고 그 외의 때에 각종 모임을 갖는다.[70]4. 2. 사축이재
원불교의 기념일은 4개의 축일과 2개의 재일로 이루어져 있다.[71]명칭 | 날짜 | 설명 |
---|---|---|
신정절 | 1월 1일 | 새해 첫날 |
대각개교절 | 4월 28일 | 원불교 개교 기념일 |
석존성탄일 | 음력 4월 8일 | 부처님 오신 날 |
육일대재 | 6월 1일 | 대종사 열반일 |
법인절 | 8월 21일 | 초기 공동체의 9인 제자가 법계 승인을 이루었다는 축일 |
명절대재 | 12월 1일 |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갖는 재일 |
4. 3. 가정의례
원불교는 허례를 폐지하고 근검 절약을 강조한 《예전》을 바탕으로 가정의례를 행한다. 원불교의 가정의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72]5. 조직
원불교는 전라북도 익산에 중앙총부를 두고 교단을 운영하며, 지방에는 교구와 교당을 두고 있다. 종법사를 중심으로 수위단회, 중앙교의회, 교정위원회, 교정원, 감찰원 등이 운영을 맡고 있다. 국내 20개 교구에 520여 개 교당과, 미국, 일본, 캐나다, 중국, 유럽 등 해외 5개 교구에 60여 개 해외 교당 및 기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신도 수는 100만 명이 넘는다.[48]
5. 1. 교단 조직
원불교의 조직은 크게 교화 조직과 행정 조직으로 나뉜다.[48] 교단을 대표하는 이는 종법사라 불리고[73] 성직자는 전무출신이라 불린다.[74] 교화 업무에 종사하는 교화직 교무, 행정 및 전문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직 교무, 근로와 기능 업무에 종사하는 기능직 교무로 세분된다.[44]원불교의 가장 작은 조직은 열 명을 기준으로 하는 십인일단(十人一團)의 교화단이다. 원불교는 1명의 지도자가 9명의 단원을 지도하는 체계로 가장 아래에서 차츰 단계를 높여 최상위까지 이르는 구조로 조직되어 있다.[75] 최고 의사 결정기구는 수위단회(首位團會)로 교화 조직과 행정 조직을 총괄하며 여기서 임기 6년의 종법사를 선출한다.[48] 십인일단의 조직 원리에 따른 최고 단위의 교화단이자 입법부로 불린다.[76]
교화 조직은 일정한 지역을 교구로 나누고 이를 다시 지부와 지소로 구분하여 교당을 세운다. 교당에서 선출한 위원과 수위단회의 특선 위원, 그리고 교정원 전원으로 중앙교의회를 구성하여 일종의 총회 성격을 지닌다.[48]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중앙총부가 교단을 운영하며, 지방에는 교구와 교당을 두고, 종법사를 중심으로 수위단회·중앙교의회·교정위원회·교정원·감찰원 등이 운영을 맡고 있다. 교당에는 교무와 교도가 있으며, 교도는 10명을 1단으로 하는 10인 1단 교화단에 특징이 있다.
여러 연구소 외에 교육기관으로 원광대학교, 중·고등학교 6곳, 선원 3곳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당별로 설치한 유치원·유아원과 양로원·어린이집·수양원 등의 자선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2011년 10월 2일에는 미국 총부 법인의 원다르마 센터가 신설되었다.
교단 직영 산업체로 제약회사를 비롯한 4개의 농장과 정미소·원예원 등이 있으며, 복지기관으로는 양한방 종합병원과 보물당 한의원 등이 전국 주요 도시에 있다. 문화 사업으로는 경전 출판, 원음방송(라디오 방송국) 운영과 『원광』, 『원불교신문』 등의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고 있다. 20개의 국내 교구에 520여 개의 교당과, 미국·일본·캐나다·중국·유럽 등 5개의 해외 교구에 60여 개의 해외 교당과 기관이 있으며, 신도 수는 100만 명이 넘는다.
5. 2. 종법사
원불교의 종법사는 교단을 대표하는 직위이다.[73] 역대 종법사는 다음과 같다.- 초대: 박중빈 (1916년~1943년)
- 제2~4대: 송규 (1943년~1962년)
- 제5~10대: 김대거 (1962년~1995년, 3회 연임)
- 제11~12대: 이광정 (1995년~2006년, 2회 연임)
- 제13~14대: 장응철 (2006년~2018년)
- 제15대: 김주원 (2019년~)
5. 3. 교무
원불교의 성직자는 전무출신이라 불리며[74] 교화 업무에 종사하는 교화직 교무, 행정 및 전문 업무에 종사하는 전문직 교무, 근로와 기능 업무에 종사하는 기능직 교무로 세분된다.[44] 교무는 원불교의 대표적인 성직자로 남녀 구분이 없다. 초기에는 결혼에도 남녀 구분이 없었으나, 당시 한국 사회 문화의 영향으로 여성이 결혼을 하면 자유로운 활동이 힘들어 여성 교무들은 협의를 통해 수녀나 비구니와 같이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 생활을 하도록 했었다. 최근 여성 교무의 결혼 허용을 두고 교헌 개정 논의가 있었다.[77] 원불교가 개교 104년 만에 여성 교역자(교무)의 결혼을 허용했는데,[78] 교무는 불교 스님(여자는 비구니)과 달리[79] 고기를 먹기도 한다.원불교의 남녀 승려는 ‘교무님’(가르침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불린다. 전통적인 불교 승려와 달리 머리를 깎지 않는다.
성평등은 핵심 교리이자 조직 원리이다. 여성 교무는 남성 교무와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과거에는 여성 교무는 독신 생활을 하고 전통 의복을 입는 문화가 발달했지만, 남성 교무의 경우 독신 생활은 선택 사항이었고 현대복을 입을 수도 있었다.[37]
원불교 전통에서 여성 ‘교무님’ 또는 ‘교무 부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역사적으로 이 여성들은 전통 한국 의복을 입었는데, 현대 의복을 입은 남성 교무들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러한 관행은 당시의 남성 중심적이고 계층적인 사회 구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원불교 창시자는 여성에 대한 이러한 차별을 인식하고 이를 없애고자 했다. 원불교의 성평등이라는 기본 원칙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전통 의복 착용 관습은 지속되어 남녀 간의 어느 정도 차이를 유지했다.
복장의 차이는 공동체 내에서 논쟁의 여지가 되었다. 최근 여성 교무들은 전통 의복과 현대 의복을 모두 입기 시작하여 더 큰 평등을 향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2019년, 원불교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최고 종무회에서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교무에게 동등한 결혼 접근 권리를 보장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5. 4. 산하 기관
원불교는 여러 교육 기관과 자선 기관, 언론 기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종류 | 기관명 |
---|---|
교육 기관 | |
자선 기관 | |
언론 기관 | |
기타 기관 |
6. 불교와의 관계
원불교의 개조인 박중빈은 스스로 자신의 깨달음이 석가모니 부처와 부합한다고 하며 연원으로 하였고, 불법을 주체로 삼아 미래 시대에 맞는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된 불법으로 교화한다고 천명하였다. 교단 초기 박중빈 당대부터 불교와 다양한 교류를 해왔지만, 조직 운영 면에서는 기존의 불교와 직접 관련은 없다. 1967년 5월 현재의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의 전신인 대한불교총연합회가 출범할 당시 창립회원으로 가입하였으나 1970년 불교재산관리법에 대한 의견 차이로 탈퇴하였다.[81] 2004년 대한불교종단협의회 재가입 논의가 있었으나 2020년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82]
원불교가 새로운 종교인지, 기존 불교 전통의 개혁인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는 의견이 분분하다.[32] 원불교 신자들조차도 자신들의 전통을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한다.[33]
대승불교 전통과 공유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업(業)과 윤회에 대한 믿음
- 세상의 문제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의해 발생하고 해결될 수 있다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한 구원에 대한 믿음
- 선(禪) 수행의 핵심 가르침을 포함한 명상 수행 (하지만 많은 전통적인 불교 수행만큼 중심적이지는 않음)
-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원하려는 목표[34]
원불교를 구별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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