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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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사형은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으며, 위화도 회군 이후 요직을 두루 거쳤다. 1392년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건국에 기여하고,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우시중, 우정승 등을 역임하며 대마도 정벌을 지휘했으며, 1402년에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편찬에 참여했다. 1407년에 사망했으며, 사후 익원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김사형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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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형
본관안동 김씨(安東 金氏)
율정(栗亭)
시호양평(襄平)
생애
출생1335년
사망1407년
묘소경기도 광주시 실촌면 곤지암 선영
관력
주요 관직문하찬성사
가족 관계
아버지김오(金祦)
어머니정경부인 해주 최씨(海州崔氏)
배우자정부인 안동 권씨(安東權氏)
아들김자지(金字止), 김을신(金乙辛), 김득룡(金得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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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사형은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김방경의 현손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가 여러 관직을 거쳐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준 등과 함께 대간을 지냈고, 1377년 집의와 개성부 부윤이 되어 보리공신의 호를 받았다. 위화도 회군 뒤에는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가 되었고, 1390년 밀직지사로 대사헌을 겸하다가 문하부지사로 특진, 이후 삼사우사가 되었다. 같은 해 윤이 이초의 옥사 이후 정몽주와 대립하여 서로 탄핵하였다.

1392년 7월 여러 신하들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 개국 후 문하시랑찬성사로 판상서사사와 병조전서를 겸임하였으며, 곧 응양위 상장군이 되었다. 이어 1등 개국공신에 책록되고, 문하우시중에 상락백으로 봉해졌으며, 태조로부터 식읍 1천 호, 식실봉 3백 호를 하사받았다. 1396년 문하 우정승 겸 오도병마도처치사로 대마도 원정군을 지휘하였다.

1397년 우정승 겸 가례도감 제조가 되었다. 1399년 등극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00년 문하부판사가 되었다. 1401년 태종 즉위 후 의정부 좌정승에 임명되었고, 그해 7월 병으로 사직하였다. 1402년 이무, 이회 등과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편찬, 상락부원군에 봉해진 뒤 관직에서 물러났다. 1407년 사망 후 시호 익원(翼元)이 추증되었다.

태조가 극진히 아낀 신하들 중 한 사람이며, 신중하고 분수를 지키는 처세로 벼슬을 지냈으며, 벼슬을 하면서 한 번도 탄핵받은 일이 없었다.

2.1. 가계 및 초기 활동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김방경의 현손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출사하여 앵계관직(鶯溪館直)이 된 후 감찰규정(監察糾正)을 거쳤다. 공민왕 때 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고, 이후 조준 등과 함께 대간을 지냈다. 1377년 집의(執義)와 개성부 부윤이 되어 보리공신(輔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뒤에는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가 되었다. 1390년 밀직지사(密直知使)로 대사헌을 겸하다가 문하부지사(門下府知事)로 특진하였고, 뒤에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다. 1390년 윤이(尹츺)와 이초(李初)의 무고로 발생한 윤이 이초의 옥사 이후 정당을 둘러싸고 당시 찬성사였던 정몽주와 대립하여 서로 탄핵하였다.

2.2. 고려 말기의 활동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김방경의 현손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출사하여 앵계관직(鶯溪館直)이 된 후 감찰규정(監察糾正)을 거쳤다. 공민왕 때 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고, 조준 등과 함께 대간을 지냈다. 1377년 집의(執義)와 개성부 부윤이 되어 보리공신(輔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뒤에는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가 되었고, 1390년 밀직지사(密直知使)로 대사헌을 겸하다가 문하부지사(門下府知事)로 특진, 이후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다. 1390년 윤이(尹츺)와 이초(李初)의 무고로 발생한 윤이 이초의 옥사 이후 정당을 둘러싸고 당시 찬성사였던 정몽주와 대립하여 서로 탄핵하였다.

2.3. 조선 개국과 이후 활동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김방경의 현손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출사하여 앵계관직(鶯溪館直)이 된 후 감찰규정(監察糾正)을 거쳤으며, 공민왕 때 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이후 조준 등과 함께 대간을 지냈고 1377년 집의(執義)와 개성부 부윤이 되어 보리공신(輔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뒤에는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가 되었고, 1390년 밀직지사(密直知使)로 대사헌을 겸하다가 문하부지사(門下府知事)로 특진하였고, 뒤에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다. 1390년 윤이(尹츺)와 이초(李初)의 무고로 발생한 윤이 이초의 옥사 이후 정당을 둘러싸고 당시 찬성사였던 정몽주와 대립하여 서로 탄핵하였다.

1392년 7월 여러 신하들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왕조를 성립하였다. 조선 개국 후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로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와 병조전서(兵曹典書)를 겸임하였으며, 곧 응양위 상장군이 되었다. 이어 개국공신을 녹훈할 때 1등 개국공신에 책록되고, 문하우시중(門下右侍中)에 상락백(上洛伯)으로 봉해졌으며, 태조로부터 식읍 1천 호, 식실봉 3백 호를 하사받았다. 1396년 문하 우정승이 되고 겸 오도병마도처치사에 임명되어 대마도 원정군을 지휘하였다.

1397년(태조 6년) 우정승 겸 가례도감(嘉禮都監) 제조가 되었다. 1399년 등극사(登極使)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귀국 직후 1400년 11월 문하부판사(門下府判事)가 되었다. 1401년 태종 즉위 후에도 의정부 좌정승에 임명되었고, 그해 7월 병으로 사직하였다. 1402년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로서 이무(李茂), 이회(李薈) 등과 함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편찬하였고,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진 뒤 관직에서 물러났다. 1407년 사망 후 익원(翼元)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개국공신 중 태조가 극진히 아낀 신하들 중 한 사람이며, 신중하고 분수를 지키는 처세로 벼슬을 지냈으며, 벼슬을 하면서 한 번도 탄핵받은 일이 없었다.

2.4. 평가

신라 경순왕의 후예이자, 김방경의 현손이다. 조선 태조가 개국공신 중에서 극진히 아낀 신하들 중 한 명으로, 신중하고 분수를 지키는 처세로 벼슬을 지냈으며 벼슬을 하는 동안 한 번도 탄핵받은 일이 없었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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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
증조부김영후(金永煦)
부친김천(金蕆)
김사렴(金士廉)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
장남김육(金陸)
차남김승(金陞) (밀직부사(密直司使)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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