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만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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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상만은 동아일보의 설립자 김성수의 장남으로, 동아일보의 실질적인 사주로서 사세 확장에 기여한 언론인이다.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했으며, 와세다 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9년 동아일보 이사로 언론계에 투신하여 부사장, 사장,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동아방송, 소년동아일보, 신동아, 여성동아 등을 창간했다. 신동아 필화사건, 자유언론실천운동,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 등 언론 탄압을 겪었지만, 국제신문발행인협회 자유의 금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시아신문재단 회장, 국제신문협회 본부이사, 한영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1994년 사망하여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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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이름김상만
출생일1910년 1월 19일
출생지대한제국 전라북도 부안군
사망일1994년 1월 26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안암병원
사망 원인병사(노환)
국적대한민국
거주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별명호: 석촌(惜村)·일민(一民)
학력일본 도쿄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 법학석사
직업언론인, 기업인
매장지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 화도면 금남리 선영
활동 기간1940년~1994년
종교개신교
배우자고현남
자녀2남 3녀
(장남 김병관)
부모김성수(부)
고광석(모)
이아주(계모)
형제김상기(이복 동생)
친척할아버지 김기중, 종조부 김경중, 5촌 숙부 김연수, 6촌 동생 김상협, 외사촌 형 고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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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2.1. 출생과 성장

김상만
김상만

일민 김상만은 1910년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 455번지에서 동아일보의 설립자 김성수와 고광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2. 학력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 후인 1930년 2월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33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예과(학사)를 수료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학교 정경대학(School of Economics & Political Science)에서 수학했다. 1936년 런던대학교 정치학 석사 수료 이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40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법학석사)를 졸업했으며, 1985년 일본 와세다대학으로부터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3. 동아일보 경영

1949년 동아일보 이사로 언론계에 투신한 후, 45년간 동아일보사의 실질적인 사주(社主)로서 동아일보의 사세 확장에 기여했다. 아버지 김성수 사후, 사촌형 고재욱과 회사를 경영하며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55년 동아일보 상무, 1961년 전무이사 겸 발행인을 거쳐 부사장을 역임했다. 1963년 동아방송(DBS)을 개국하고, 1964년에는 일간 소년동아일보와 월간 신동아를 창간했으며, 1967년에는 여성동아를 재발간하는 등 동아일보의 외형을 키웠다.

1966년 동아일보 부사장 겸 발행인 재임 중 신동아 필화사건으로 발행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1971년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1974년 동아일보 기자와 동아방송 프로듀서들의 자유언론실천운동 과정에서 회사 측과 갈등이 심화되었다. 같은 해 말부터 박정희 정권의 동아일보와 모든 자매지에 대한 광고 탄압으로 시련을 겪었으나, 기자와 방송 프로듀서들에 대한 집단 해고 사태 속에서도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의 1975년 '자유의 금펜상(Golden Pen of Freedom)'을 수상했다.

1977년 동아일보 회장, 1981년 동아일보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1981년 11월 6일에는 대영 제국 훈장 명예 2등급(honorary KBE)을 받았다. 그러나 정권의 탄압으로 해고된 직원들의 처우를 외면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정부 비판 기사를 자제하고 친정부 성향으로 변화했다. 1989년 동아일보 해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한겨레 신문이 창간되면서 동아일보는 보수 성향으로 변신했고, 김상만은 이를 묵인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영삼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2.4. 기타 활동

김상만은 1971년 아시아신문재단(PFA) 이사로 선임되었고 1976년 4월에는 회장에 선출되었다. 1979년에는 국제신문협회(IPI) 본부이사로 선임되었다가 1986년 5월 명예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다. 1964년부터 1978년까지 한영협회 회장을 맡았다. 1982년에는 고려대학교 재단인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을 맡았다. 재단법인 동아꿈나무재단을 설립하여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 밖에 의양언론재단 이사, 한국정신박약아보호협회 이사, 한양로타리클럽 회장, 한국박물관회 회장, 한영수교 100주년 기념사업위원장을 맡는 등 폭넓은 사회활동을 했다. 1994년 6월 동아일보에서는 광화문 사옥 1, 2층에 김상만의 호를 따서 ‘일민문화관’을 개관하였으며, 같은 해 7월에는 유족 친지들의 재산출연으로 ‘일민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문화·학술연구지원 및 국제교류사업을 펼치기로 하였다. 그는 군사정권과 대립했지만 1987년 노태우 정부에 호의적이었고, 1992년에는 김영삼을 적극 지원하여 당선에 기여하였다.

2.5. 사후

김상만은 1994년에 사망하였고,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추서되었다. 빈소는 고려대학교 내 인촌기념관에 마련되었고,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면 금남리 선영에 안장되었다.

3. 상훈

김상만은 1974년 명예 대영 제국 훈장 3등급(honorary CBE, 외국인대상 정원외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1975년에는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FJ) 자유의 금펜(Golden Pen of Freedum) 상을 수상했다. 1981년에는 명예 대영 제국 훈장 2등급(honorary KBE, 외국인대상 정원외 명예훈장)을 받았다.

1982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과 중화민국 문화 훈장을 수여받았다. 1985년에는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교에서 '1985년도 언론 공로상'을 수상했다. 1989년 프랑스 정부 공로 훈장, 1993년 독일 정부 공로 훈장을 받았고, 1994년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수여받았다.

4. 가족 관계

* 생부: 김성수
* 생모: 고광석
* 계모: 이아주
* 이복동생: 김남
* 이복동생: 김상석
* 이복동생: 김상흠
* 이복동생: 김상기
* 부인: 고현남(高賢男, 2남 3녀)
* 장남: 김병관
* 자부: 안경희
* 손자: 김재호
* 손자: 김재열 (기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