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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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소영(1914년)은 일제강점기 무성 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본명은 김혜득이다. 개신교 목사의 딸로 강원도 영월에서 성장하여 1927년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연극 배우로도 활동하며, 《심청》(1937), 《국경》(1939), 《반도의 봄》(1941) 등 흥행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인기를 얻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친일 영화에 출연하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해방 후에는 좌익 계열 영화인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라디오 드라마에도 출연했으나 조택원과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1989년 미국에서 사망했다.

김소영 (1914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소영
본명김혜득
출생일1914년
사망일1989년 4월 8일
사망지미국 로스엔젤로스
배우자추민
조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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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소영은 무성 영화 시대부터 활동한 배우로, 연극과 영화 양쪽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1933년경 좌파 이론가 추민과 결혼하여 딸 추나미를 낳았고, 추나미는 남한에서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다.

《방아타령》(1931) 이후 《심청》(1937), 《국경》(1939), 《반도의 봄》(1941) 등 여러 흥행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심청》에서의 연기는 여성적 매력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대 경험으로 발성이 좋았고, 조선적인 미인으로 여겨져 향토색 짙은 영화에도 잘 어울렸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친일 영화에 출연하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에는 조선영화동맹에서 활동하고 한국방송 라디오극회 소속으로 라디오 드라마에도 출연했으나, 1948년 안종화의 《수우》 이후 영화 활동을 중단했다. 조택원과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나 이혼했고, 이후 LA에서 생을 마감했다.

2.1. 어린 시절과 배우 데뷔

본명은 김혜득(金惠得)이며, 동료 배우였던 복혜숙에 따르면, 개신교 목사의 딸이다. 어린 시절에는 강원도 영월군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1921년에 아버지를 따라 개성으로 이주하여 호수돈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1925년에 다시 아버지를 따라 경성부로 이주하여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1929년경 중퇴했다. 이 무렵 가세가 기울면서 배우가 되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1927년 《뿔빠진 황소》로 영화계에 데뷔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본인의 회고록에는 《방아타령》(1931)이 데뷔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무성 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활동하면서, 토월회와 낭만좌, 동양극장 등 당대 연극계를 이끌었던 극단에서 연극 배우 활동도 병행했다.

2.2. 무성 영화 시대의 스타

1927년 《뿔빠진 황소》로 영화계에 데뷔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본인의 회고록에는 《방아타령》(1931)이 데뷔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무성 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활동하면서, 토월회와 낭만좌, 동양극장 등 당대 연극계를 이끌었던 극단에서 연극 배우 활동도 병행했다. 1933년 경 좌파 이론가로 유명한 추민과 만나 결혼하여 딸 추나미를 낳았고, 딸 나미는 남한에서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다.

《방아타령》 이후 1930년대 후반 안석영 연출의 《심청》(1937), 최인규 연출의 《국경》(1939), 이병일 연출의 《반도의 봄》(1941) 등 흥행 영화에 연속 주연으로 출연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다. 박기채의 회고에 따르면, 주연급으로 확실히 자리잡는 계기가 된 《심청》에서 보여준 김소영의 연기는 여성적 매력이 넘치며 다른 배우들이 따르기 힘든 신기한 연기였다.

명랑한 성격의 김소영은 무대 경험을 통해 발성이 잘 훈련되어 있어 높은 평가를 받았고, 특히 조선적인 미인으로 여겨져 당시 유행하던 향토색 구현에도 유리했다. 1939년 일본에서 발간된 잡지 《모던일본 조선판》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표지 모델 사진을 찍은 것이 발굴되기도 했다.

2.3. 친일 행적 논란

일제강점기 말기에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은 어용 영화 《감격의 일기(感激の日記일본어)》(1945)를 비롯해 여러 편의 군국주의 옹호 영화에 출연한 일이 있다. 이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이 명단의 영화 부문에 포함된 여자 배우는 문예봉김신재, 복혜숙, 그리고 김소영까지 네 명이다.

2.4. 해방 후 활동과 도미

광복 후 좌익 계열 영화인 단체인 조선영화동맹 집행위원을 맡았고, 1947년부터 한국방송 라디오극회 소속으로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활동했다. 그러나 '남자 최승희'로 불릴 만큼 유명한 무용가였던 조택원과 만나 그의 연인이 되면서 영화계에서의 활동은 1948년에 개봉된 안종화의 《수우》 이후 끊겼다.

조택원의 두 번째 부인이 되어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나 이민 생활 중 불화가 있었다. 이후 두 사람은 이혼하였고, 조택원은 귀국하였으며, 김소영은 말년에 한때 귀국하여 유일한 혈육인 딸 추나미와 함께 살다가 다시 도미하여 LA에 거주하다 와병하여 1989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LA 근교 로즈힐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