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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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일족은 나일어족 언어를 사용하며, 수단과 동아프리카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 집단을 지칭한다. 언어학적으로 동나일어, 남나일어, 서나일어의 세 하위 그룹으로 나뉘며, 딩카족, 누에르족, 마사이족, 칼렌진족 등이 포함된다. 나일족은 목축업을 기반으로 하며, 전통 신앙, 기독교, 이슬람교를 믿는다. 유전학적으로는 Y 염색체 A, B, E1b1b 하플로그룹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아프리카아시아어족 및 니제르콩고어족과 유전적 관련성을 보인다. 신체적으로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검은 피부색과 좁은 코를 가진 특징을 보이며, 장거리 달리기 등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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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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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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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약 5천만 명 |
주요 거주 지역 | 남수단 감벨라 주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 콩고 민주 공화국 북동부 |
언어 | 나일어족 |
종교 | 기독교 전통 신앙 칼렌진족 민속 딩카족 종교 |
민족 그룹 | |
주요 민족 | 딩카족 누에르족 실루크족 마사이족 루오족 칼렌진족 테소족 카라모종족 |
문화 | |
언어적 연관성 | 나일・사하라 어족 |
거주 지역 | 나일 계곡,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 에티오피아 남서부 |
2. 명칭
"나일족(Nilotic)"과 "나일인(Nilote)"이라는 용어는 이전에는 많은 나일어 사용자의 독특한 신체 형태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을 바탕으로 인종 하위 분류로 사용되었다. 20세기 사회 과학자들은 언어 연구를 통해 사람들을 구별하는 것을 선호하여, 신체적 특성에 따라 사람들을 분류하려는 노력을 대체로 폐기했다. 그들은 공통된 언어를 기반으로 민족과 문화를 형성했다.[1]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후 사회 과학자와 자연 과학자들은 집단 유전학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2]
나일족과 나일인은 현재 주로 동일한 나일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어원적으로, 나일족과 나일인(단수: 나일인)이라는 용어는 나일강 계곡에서 유래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수단의 나일사하라어 사용자가 대부분 거주하는 수단 상나일강과 그 지류에서 유래되었다.[3]
3. 언어
나일족의 언어는 크게 동나일어족, 남나일어족, 서나일어족 세 가지 하위 그룹으로 나뉜다.3. 1. 동나일어족
동나일어족은 에티오피아 남서부, 남수단 동부, 우간다 북동부, 케냐 서부, 탄자니아 북부의 나일족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투르카나어와 마사이 어와 같은 언어를 포함하며, 크게 바리어족과 테소-투르카나어족으로 나뉜다.
3. 1. 1. 바리어족
나일사하라어족의 나일어군을 사용하는 언어.
3. 1. 2. 테소-투르카나어
원시 나일족의 통일성은 초기에 분화되지 않은 동수단어족 통일성과 구분되어 기원전 3천년경에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일족의 형성은 가축의 가축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동수단어족의 통일성은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이며, 아마도 기원전 5천년경일 것이다. 제안된 나일사하라어족의 통일성은 약 1만 5천 년 전의 후기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나일어 화자들의 원래 거주지는 현재 남수단에 있는 나일강 동쪽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3천년의 원시 나일족은 목축업자였고, 그들의 이웃인 원시 중앙 수단어족 사람들은 대부분 농부였다.[3]
나일족은 소 목축, 어업 및 종자 재배를 혼합한 경제를 실행했다.[4] 이와 유사한 문화를 묘사하는 가장 초기의 고고학적 발견 중 일부는 수단의 하르툼에서 북쪽으로 48m 떨어진 카데로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데로에는 가축 목축 문화의 유적과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표현형을 특징으로 하는 골격 유해가 있는 묘지가 있다. 또한 다른 동물 가축화, 예술성, 장거리 무역, 종자 재배 및 어류 소비에 대한 증거도 포함되어 있다.[5][6][7][8]
유전 및 언어 연구에 따르면 북부 수단과 남부 이집트의 누비아인은 나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집단으로 시작된 혼합 집단이다.[9][10] 이 집단은 이후 중동인 및 기타 동아프리카 인구로부터 상당한 유전자 흐름을 받았다.[9] 누비아인들은 나일 계곡의 초기 거주민의 후손으로 여겨지며, 이들은 나중에 쿠시 왕국을 형성했으며, 여기에는 케르마와 메로에와 마쿠리아, 노바티아, 알로디아의 중세 기독교 왕국이 포함되었다.[11]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나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구는 고대 나일 계곡에 남부 이집트까지 오랫동안 거주했다. 나일사하라어족의 나일어군을 사용하는 언어.
3. 2. 남나일어족
남나일어족는 케냐 서부, 탄자니아 북부, 우간다 동부의 나일족이 사용하는 언어로, 칼렌진어와 다토가어를 포함한다. 남나일어족의 하위 분류는 다음과 같다.
언어학적 증거에 따르면 기원전 2천 년부터 나일어의 발상지에서 남쪽으로 남수단까지 초기 확장이 이루어졌으며, 이 확장에 참여한 남부 나일어 공동체는 기원전 1000년에서 500년 사이에 케냐 서부에 도달했다.[4] 이들의 도착은 동아프리카에 철기가 도입되기 직전에 일어났다.[5]
3. 2. 1. 칼렌진어
나일사하라어족의 나일어군에 속하는 언어이다.
3. 2. 2. 오모틱-다토가어
언어학적 연구에 따르면 나일족의 조상들은 현재 위치보다 더 북쪽에 거주했다. 하부 와디 하와르 유적에서 나온 고고학적 증거는 현대 나일어 화자와 전체 동수단어파 화자의 조상일 가능성이 있는 집단의 존재를 보여준다.[4][5] 학자들은 이 조상들이 하부 와디 하와르 지역에 거주했다고 주장한다.[5]
하부 와디 하와르의 고고학적 발견은 고대 누비아 문화와의 문화적 연속성과 상호 작용에 대한 상당한 증거를 보여주는데, 특히 청어뼈 문양 문화와의 연관성을 통해 나타난다.[4][5] 기원전 4천년 동안 건조함이 증가하면서 이 지역의 경제 및 사회 생활에서 소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로 인해 청어뼈 문양이 특징인 도자기 양식을 채택하는 등 독특한 문화적 관행이 나타났다. 이러한 문양은 누비아 나일 계곡을 따라 A-그룹 및 케르마 이전 문화와의 강력한 접촉을 나타낸다.[6] 이러한 상호 작용은 하부 와디 하와르의 공동체가 무역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가축과 자원을 이러한 기존 문화와 교환하고, 결과적으로 고대 누비아의 더 넓은 경제 및 문화적 환경에 통합되었음을 시사한다. 소 매장 증거와 도자기 디자인의 존재는 지역 전통과 인접 문화의 영향을 결합하여 이 변혁과 무역의 시대에 존재했던 역동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3. 3. 서나일어족
나일사하라어족의 나일어군에 속하는 서나일어족은 남수단, 수단, 콩고 민주 공화국 북동부, 우간다 북부, 케냐 남서부, 탄자니아 북부, 에티오피아 남서부의 나일족이 사용한다. 서나일어족에는 딩카어-누에르어, 루오어군, 부룬어가 포함되며 다음과 같이 세분화된다.
16세기까지, 나일어 사용 민족 중 가장 강력한 집단은 아랍인과 유럽인에게 실루크족(Cøllønlo)으로 불린 집단이었다. 이들은 전설적인 지도자 니캉의 지휘 아래 백나일강 동쪽으로 퍼져나갔으며, 1490년경부터 1517년경까지 Läg Cøllønlo를 통치했다고 전해진다.[1] 실루크족은 수단의 코스티 북쪽까지 강 서쪽 제방을 장악하고, 강을 따라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들을 기반으로 소 사육, 곡물 농업, 어업에 기반한 경제를 구축했다.[2] 이들은 집약적인 농업 시스템을 개발하여, 17세기 실루크족의 토지는 이집트 나일강 지역과 비슷한 인구 밀도를 보였다.[3]
딩카족은 수드 지역에 남아 이주 목축 경제를 유지했다.[4] 딩카족이 이웃으로부터 보호받고 고립된 반면, 실루크족은 국제 문제에 더 많이 관여했다. 실루크족은 백나일강 서쪽 제방을 통제했지만, 반대편은 푼지 술탄국이 통제했으며, 두 세력 간에는 정기적인 충돌이 있었다. 실루크족은 전쟁 카누를 사용하여 외부 지역을 신속하게 습격할 수 있었고, 나일강의 수로를 통제했다. 푼지족은 갑옷 기병으로 구성된 상비군을 보유하여 사헬 평원을 지배할 수 있었다.
실루크족 전통에 따르면, 1630년경에 통치한 라드 오닥 오콜로는 백나일강 무역로 통제를 놓고 센나르와 30년간 전쟁을 벌였다. 실루크족은 다르푸르 술탄국 및 타칼리 왕국과 동맹하여 푼지족에 대항했지만, 타칼리의 항복으로 전쟁은 푼지족에게 유리하게 끝났다. 17세기 후반, 실루크족과 푼지족은 푼지족과 실루크족의 국경 지역에서 세력을 얻은 딩카족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다.[5]
실루크족의 정치 구조는 왕 또는 "레" 아래 점차 중앙 집권화되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1690년경부터 1710년까지 통치하며 파쇼다에 실루크족 수도를 건설한 라드 투고(라드 드쾨드쾨의 아들)이다. 같은 시기에 푼지 술탄국이 점차 붕괴되면서 실루크족은 백나일강과 그 무역로를 완전히 통제하게 되었으며, 이들의 군사력은 강의 통제에 기반을 두었다.[5]
3. 3. 1. 딩카-누에르-아트와트어
나일사하라어족의 나일어군을 사용하는 언어.
3. 3. 2. 루오어군
나일사하라어족의 나일어군에 속하는 언어이다.
3. 3. 3. 부룬어
Cøllønlo어는 나일사하라어족의 나일어군에 속하는 언어이다.
4. 민족 집단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인류학자들과 케냐의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동아프리카로의 인간 이주 기원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연구에서 나온 주목할 만한 광범위한 이론 중 하나는 반투족의 팽창을 포함한다. 주요 연구 도구는 언어학, 고고학, 구전 전통이었다.
4. 1. 평원 나일족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인류학자들과 케냐의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동아프리카로의 인간 이주 기원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연구에서 나온 주목할 만한 광범위한 이론 중 하나는 반투족의 팽창을 포함한다. 주요 연구 도구는 언어학, 고고학, 구전 전통이었다.
4. 2. 강호 나일족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인류학자들과 훗날 케냐의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동아프리카로 사람들이 이주한 기원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연구에서 나온 주목할 만한 광범위한 이론 중 하나는 반투족의 팽창을 포함한다. 주요 연구 도구는 언어학, 고고학, 구전 전통이었다.
4. 3. 고지대 나일족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인류학자들과 후일 케냐의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동아프리카로의 인간 이주 기원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연구에서 나온 더 주목할 만한 광범위한 이론 중 하나는 반투족의 팽창을 포함한다. 주요 연구 도구는 언어학, 고고학, 구전 전통이었다.[1]
5. 역사
나일족은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여러 부족들의 이동과 정착을 통해 그 역사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남수단에서 우간다와 케냐 서부 지역으로 이동하며 각자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4]
칼렌진족은 엘곤산을 공통적인 기원지로 여기며, 여기서부터 각지로 퍼져 나갔다.[1] 이 과정에서 전쟁, 기근, 질병 등 다양한 요인들이 이주에 영향을 미쳤다.
루오족은 최소 1000년경부터 20세기 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이주했다. 케냐와 탄자니아 등지에 정착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4]
지리적 장벽은 남부 나일족들이 외부의 영향을 덜 받고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3] 예를 들어, 딩카족은 수드 습지 덕분에 외부 간섭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3]
5. 1. 동아프리카로의 남부 나일족 정착
나일족의 동아프리카 정착은 복잡하고 다양한 과정을 거쳤다. 칼렌진족과 루오족 등 여러 나일계 부족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남수단에서 우간다와 서부 케냐로 이주해 왔다.칼렌진족의 경우, 여러 하위 부족들이 엘곤산을 공통적인 기원지로 여기며, 여기서부터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이 과정에서 전쟁, 기근, 질병 등 다양한 요인들이 이주에 영향을 미쳤다.[1]
루오족의 경우, 최소 1000년경부터 20세기 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이주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케냐와 탄자니아 등지에 정착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4]
이러한 나일족의 이동과 정착 과정은 동아프리카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지리적 장벽은 남부 민족들이 외부의 영향을 덜 받고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3]
5. 1. 1. 구전 전통
칼렌진 집단의 형성을 파악하기 위해 개별 씨족 역사를 추적하는 것의 중요성은 B.E. 키프코리르(1978)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는 투겐족이 전쟁, 기근, 질병을 피해 작은 씨족 집단으로 처음 정착했으며 서부, 동부, 북부 지역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투겐족 중 일부는 케냐산에서 왔다고 주장한다.[1]난디족의 난디족의 정착에 대한 설명은 난디족 영토의 점령 방식과 유사하다. 난디 지역으로 이동하여 점령하여 난디 부족이 된 칼렌진 씨족은 다양한 칼렌진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왔다.[2]
분명히, 사람들이 수 세기에 걸쳐 이동하고 집중했던 공간 핵심 지역이 존재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원래 거주민을 동화시켜 오늘날 알려진 개별 칼렌진 공동체로 발전했다.[3]

다양한 이유로, 최소 1000년경부터 20세기 초까지 남수단에서 우간다와 서부 케냐로 나일계 루오족의 느리고 여러 세대에 걸친 이주가 발생했다.[4] 구전 역사와 계보 증거는 케냐와 탄자니아 내 루오족의 확장의 연대기를 추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케냐의 이전 난자주로의 4차례 주요 이주 물결은 약 1490-1517년에 시작된 조크(''Joka Jok'')족에서 시작하여 구별할 수 있다.[5]
''Joka Jok''은 북부 난자로 이주한 최초이자 가장 큰 물결이었다. 이 이주민들은 라모기 언덕에 정착한 후 북부 난자 주변으로 확장했다. 오위니족(''Jok'Owiny'')과 오몰로족(''Jok'Omolo'')이 곧 뒤를 이었다(1598-1625).[6]
수바족, 사크와족, 아셈보족, 우요마족, 카노족으로 구성된 잡다한 집단이 그 뒤를 따랐다. 수바족은 원래 반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루오 문화에 동화되었다. 그들은 18세기 중반 24대 부간다 왕국 카바카의 살해 이후 내전 이후 우간다의 부간다 왕국에서 도망쳐 특히 루싱가 섬과 므파가노 섬에 정착했다.[7] 루오어 사용자는 17세기 초부터 북부 난자에서 빅토리아 호의 와남 만을 건너 남부 난자로 갔다.[8]
5. 1. 2. 식민지 이후 전통
다양한 칼렌진족 하위 부족들의 여러 역사적 기록은 엘곤산(칼렌진족이 툴워프 코니(Tulwop Kony)라고 부름)을 케냐에서의 그들의 원래 정착지로 지목하고 있다.[1] 이 기원지는 식민지 시대 이후 기록된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중심 주제로 나타난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칼렌진족은 "따뜻한 나라"를 의미하는 에메트 아브 부르게이(Emet ab Burgei)라는 북쪽 지방에서 기원했다. 이들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엘곤산(칼렌진족어로 툴웨트 아브 코니(Tulwet ab Kony))을 통과했다고 한다. 사바오트족은 산 경사면에 정착했고, 다른 이들은 더 나은 땅을 찾아 이동했다. 케이요족과 마라쿠엣족은 케리오 계곡과 체라가니 언덕에 정착했다. 포코트족은 엘곤산 북쪽에 정착했고, 나중에 바링고 호수 북쪽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바링고 호수에서 투겐족은 난디족과 킵시지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이는 박쥐 기근을 의미하는 케메우타브 레레식(Kemeutab Reresik)으로 알려진 기근 동안이었다. 이 기근 동안 박쥐가 푸른 풀잎을 가져왔는데, 이는 더 푸른 목초지로 이동하면 기근을 피할 수 있다는 좋은 징조로 여겨졌다. 투겐족은 이동하여 투겐 언덕 주변에 정착했고, 킵시지족과 렘부스 난디족은 롱가이 지역으로 이동했다. 킵시지족과 난디족은 오랫동안 단결된 집단으로 살았지만, 결국 가뭄과 마사이족의 우아신 기슈로부터의 침략과 같은 적대적인 환경 요인으로 인해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2]
지리적 장벽은 남부 민족을 이슬람의 진출로부터 보호하여 그들이 사회적, 문화적 유산과 정치적, 종교적 제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딩카족은 특히 외부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 대규모 무력 없이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는 수드 습지에서 안전했다. 쉴루크족, 아잔데족, 바리족은 주변 국가들과 더 빈번한 갈등을 겪었다.[3]
6. 문화 및 종교
대부분의 나일족은 목축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가축 떼와 함께 계절에 따라 이동한다. 일부 부족은 가축 습격 전통으로도 알려져 있다.[1]
동아프리카의 나일족은 인접 민족과의 오랜 상호 작용을 통해 남 쿠시어족 언어 집단에서 많은 관습과 관행을 채택했다. 후자는 사회 조직의 연령 집단 시스템, 할례, 그리고 어휘 용어를 포함한다.[1]
종교적 신념 측면에서 나일족은 주로 전통 신앙, 기독교 및 이슬람교를 따른다. 딩카교는 신들의 판테온(종교)을 가지고 있다. 최고 창조신은 하늘과 비의 신이자 모든 영의 지배자인 니알릭이다. 그는 모든 창조물에 존재하며 지구상의 모든 인간, 식물 및 동물의 운명을 통제한다고 믿어진다. 니알릭은 누에르족과 실루크족과 같은 다른 나일족 집단에서는 자크, 주옹 또는 디오킨으로도 알려져 있다. 뎅디트 또는 뎅은 니알릭의 힘을 받은 비와 풍요의 하늘 신이다.[1]
뎅의 어머니는 뱀으로 표현되는 정원 가꾸기와 모든 여성의 수호 여신인 아북이다. 또 다른 신인 가랑은 딩카족 중 일부가 뎅에 의해 억압된 신이라고 믿거나 추정한다. 그의 영혼은 대부분의 딩카 여성과 일부 남성으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할 수 있다. "족"이라는 용어는 조상령 집단을 지칭한다.[1]
로투코 신화에서 최고 신은 아족이라고 불린다. 그는 일반적으로 친절하고 자비로운 존재로 여겨지지만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는 한때 아들의 부활을 위한 한 여성의 기도에 응답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화가 나서 아이를 죽였다. 로투코교에 따르면 아족은 그 남자의 행동에 화가 나서 다시는 로투코를 부활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 결과 죽음은 영원해졌다고 한다.[1]
7. 유전학
아프리카 유전사 참고
나일족의 유전학적 특징은 부계, 모계, 상염색체 DNA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하위 섹션에 이미 자세히 다루어진 Y-DNA, mtDNA에 관한 내용은 간략하게 요약)
- Y-DNA: 하플로그룹 A, 하플로그룹 B, E1b1b 하플로그룹 등이 나타난다.
- mtDNA: 매크로-하플로그룹 L 하위 분류에 속하며, 아프리카아시아어족 및 기타 외부 영향은 적다.
상염색체 DNA나일족은 일반적으로 자체적인 아프리카 유전자 클러스터를 형성하며, 다른 나일-사하라어족 집단과 가장 가깝게 관련되어 있다. 그 다음으로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사용자 및 니제르콩고어족 사용자와 더 멀리 관련되어 있다. 동부 대호수 지역의 특정 나일족 집단(예: 마사이족)은 지난 5천 년 동안 쿠시어족 사용자를 반복적으로 동화시킨 결과, 일부 추가적인 아프리카아시아어족 관련성을 보인다.
전반적으로 나일족과 다른 나일-사하라어족은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아프리카아시아어족과 약 16,000년 전에,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니제르콩고어족과는 약 28,000년 전에 사헬 지역에서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나일족은 서/동아프리카 조상이 우세하거나 배타적이지만, 일부 집단은 서유라시아 혼합을 보이는데, 이는 주로 아프리카의 뿔 지역 목축업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입되었다.
혼혈 분석121개의 아프리카 인구 집단, 4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인구 집단, 그리고 60개의 비아프리카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이주 사건을 반영하는 높은 수준의 혼합된 조상이 나타났다. 동아프리카의 모든 인구 집단은 다양한 정도로 나일족, 쿠시 및 반투 조상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케냐의 루오족은 예외적으로 나일사하라어족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니제르-코르도판어족 사용 인구 집단과 클러스터를 이루는데, 이는 남쪽 이주 동안 높은 수준의 혼혈이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칼렌진족과 마사이족은 반투족 조상이 적었지만, 상당한 쿠시족 조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일족은 키가 매우 크고 호리호리하며 피부색은 짙고 코 폭은 넓지만 턱은 곧은 특징을 보인다.
7. 1. Y-DNA

Wood 등(2005)의 Y 염색체 연구는 아프리카의 다양한 집단에서 부계 계통을 조사했는데, 여기에는 케냐의 마사이족 26명, 루오족 9명, 콩고 민주 공화국의 알루르족 9명이 포함되었다. 대표적인 나일족 부계 표지인 하플로그룹 A3b2는 마사이족의 27%, 알루르족의 22%, 루오족의 11%에서 관찰되었다.[1]
하플로그룹 B는 또 다른 특징적인 나일족 부계 표지이다.[2] 루오족 샘플의 22%, 마사이족의 8%, 누에르족의 50%에서 발견되었다.[1] E1b1b 하플로그룹은 그레이트 레이크스 지역의 나일-사하라어 사용 집단에서 전체 빈도 약 11%로 관찰되었으며,[3] 이러한 영향은 마사이족(50%)에게 집중되었다.[1] 이는 쿠시어 사용 남성으로부터 이러한 나일-사하라어 사용 집단으로의 상당한 역사적 유전자 흐름을 나타낸다.[3] 알루르족 샘플의 67%가 E2 하플로그룹을 보유했다.[1]
수단 지역 집단의 Y-DNA 연구에서는 비교를 위해 다양한 현지 나일족 집단을 포함했다. 서부 수단 거주자들을 제외하고, 나일-사하라어 사용 집단 사이에서 대표적인 나일족 A 및 B 분지군이 가장 흔한 부계 계통이었으며, 다르푸르에서는 북아프리카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4]
하플로그룹 A는 딩카족의 62%, 실루크족의 53.3%, 누바족의 46.4%, 누에르족의 33.3%, 푸르족의 31.3%, 마살리트족의 18.8%에서 관찰되었다. 하플로그룹 B는 누에르족의 50%, 실루크족의 26.7%, 딩카족의 23%, 누바족의 14.3%, 푸르족의 3.1%, 마살리트족의 3.1%에서 발견되었다. E1b1b 분지군은 또한 마살리트족의 71.9%, 푸르족의 59.4%, 누바족의 39.3%, 실루크족의 20%, 누에르족의 16.7%, 딩카족의 15%에서 관찰되었다.[4]
마살리트족에서 이 하플로그룹의 이례적으로 높은 빈도는, 지역 사회의 원래 하플로그룹 다양성을 변경했을 가능성이 있는 최근의 병목 현상 또는 E1b1b가 북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곳과의 지리적 근접성 때문으로 여겨졌다. 이 분지군은 "약 6,000~8,000년 전 사하라 사막의 점진적인 사막화 이후 수단으로 유입되었을 수 있다".[4] 마찬가지로, 아프로-아시아어의 영향은 탄자니아 북부의 나일족 다토그족에게서 나타났으며, 그 중 43%가 E1b1b의 M293 하위 분지를 보유했다.[5]
Y염색체 하플로그룹 A가 50.6%의 높은 빈도로 관찰된다.[15] 또한 Y염색체 하플로그룹 B가 24.7%, E1b1b 계통도 24.7% 관찰된다.
7. 2. mtDNA

나일족의 부계 DNA와 달리, 일반적으로 나일족의 모계 계통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 및 기타 외부 영향이 거의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적다. 한 mtDNA 연구에서 케냐의 다양한 나일족 인구의 모계 조상을 조사했는데, 투르카나족, 삼부루족, 마사이족, 루오족 개인을 표본으로 채취했다. 검사된 거의 모든 나일족의 mtDNA는 L0, L2, L3, L4, L5를 포함한 다양한 사하라 이남 매크로-하플로그룹 L 하위 분류에 속했다. 북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의 뿔에서 유래한 낮은 수준의 모계 유전자 흐름이 일부 그룹에서 관찰되었는데, 이는 주로 마사이족의 약 12.5%와 삼부루족 표본의 7%에서 mtDNA 하플로그룹 M 및 하플로그룹 I 계통의 존재로 나타났다.[15]
7. 3. 상염색체 DNA
나일족의 상염색체 DNA는 아프리카의 다양한 집단의 유전자 클러스터에 대한 연구에서 조사되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나일족은 일반적으로 자체적인 아프리카 유전자 클러스터를 형성하며, 다른 나일-사하라어족 집단과 가장 가깝게 관련되어 있고, 그 다음으로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사용자 및 니제르콩고어족 사용자와 더 멀리 관련되어 있다.[15] 저자들은 또한 동부 대호수 지역의 특정 나일족 집단, 예를 들어 마사이족이 지난 5천 년 동안 쿠시어족 사용자를 반복적으로 동화시킨 결과로 일부 추가적인 아프리카아시아어족 관련성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전반적으로 나일족과 다른 나일-사하라어족은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아프리카아시아어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두 집단은 약 16,000년 전에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일족과 다른 나일-사하라어족은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니제르콩고어족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두 집단은 약 28,000년 전에 어쩌면 사헬 어딘가에서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나일족은 서/동아프리카 조상이 우세하거나 배타적이지만, 일부 집단은 서유라시아 혼합의 정도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주로 뿔 모양의 아프리카의 목축업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매개된다.
7. 4. 혼혈 분석
121개의 아프리카 인구 집단, 4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인구 집단, 그리고 60개의 비아프리카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이주 사건을 반영하는 높은 수준의 혼합된 조상을 보여주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조사된 모든 인구 집단이 다양한 정도로 나일족, 쿠시 및 반투 조상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유전자 클러스터는 케냐의 루오족을 포함한 주목할 만한 예외를 제외하고 언어 분류와 일치했다. 나일사하라어족을 사용하는 루오족은 그들을 둘러싼 니제르-코르도판어족을 사용하는 인구 집단과 클러스터를 이룬다. 이는 루오족의 남쪽 이주 동안 높은 수준의 혼혈이 발생했음을 나타낸다. 칼렌진족과 마사이족은 반투족 조상이 적었지만, 상당한 쿠시족 조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15]Y염색체 하플로그룹 A가 50.6%의 높은 빈도로 관찰된다.[15] 또한 Y염색체 하플로그룹 B가 24.7%, E1b1b 계통도 24.7% 관찰된다.
키가 매우 크고 호리호리하며 피부색은 짙고 코 폭은 넓지만 턱은 곧다.
8. 생리적 특징
나일족은 매우 검은 피부색과 가늘고 때로는 키가 큰 체형으로 유명하다. 특히 팔뚝, 하퇴와 같이 몸의 끝부분으로 갈수록 유난히 긴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징은 신체가 열을 더 효율적으로 발산할 수 있도록 하는 기후 적응으로 생각된다.[9][10][11][12]
수단의 나일족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민족 중 하나로 여겨진다. 수단 쉴루크족 표본에서 평균 키 182.6cm 및 체중 58.8kg이 관찰되었다. 수단 딩카족의 또 다른 표본은 키/체중 비율이 181.9cm 및 58kg였으며, 1.6–3.5–6.2의 극도로 외배엽성 체형을 보였다.
나일족 인구에서 가장 흔한 코의 생김새는 넓고 특징적으로 86.9에서 92.0 사이의 높은 지수 값을 갖는다. 더 남쪽의 대호수 지역에 거주하는 마사이족과 같은 나일족에게서 낮은 코 지수가 종종 발견되는데, 이는 유전적 차이로 기인한다.
현재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에 거주하는 나일족은 수단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키가 작은 경우가 있다. 케냐 북부의 농업 투르카나족 표본에서 172cm 및 53.6kg이 측정되었으며, 목축 투르카나족에서는 174.9cm 및 53kg이 측정되었다. 케냐 남부의 마사이족의 키는 172.7cm였으며, 극단적인 몸통/다리 길이 비율은 47.7이었다.
많은 나일족은 장거리 및 중거리 달리기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다. 이러한 스포츠적 기량은 날씬한 신체 형태와 매우 길고 가느다란 다리(특히 하퇴, 즉 종아리 근육과 발목)의 기능인 탁월한 달리기 효율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404명의 엘리트 케냐 장거리 육상 선수 중 국제적인 수준의 응답자의 76%가 칼렌진 민족 집단에 속했으며 79%가 나일어를 사용했다.
Y염색체 하플로그룹 A가 50.6%의 높은 빈도로 관찰된다.[15] 또한 Y염색체 하플로그룹 B가 24.7%, E1b1b 계통도 24.7% 관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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