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보레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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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누에보레온주는 멕시코 북동부에 위치한 주로, 16세기 스페인 탐험가 루이스 카르바할 이 데 라 쿠에바가 레온 왕국을 기려 명명한 데서 유래한다. 수도는 몬테레이이며, 멕시코에서 세 번째로 높은 GDP를 기록하는 경제 중심지이다. 주요 산업은 제조업이며,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제조업 허브로 성장했다. 누에보레온은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몬테레이 광역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야구, 축구 등 스포츠가 인기가 많으며, 주요 도시로는 몬테레이, 과달루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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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보레온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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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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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자유롭고 주권적인 누에보레온 주 |
로마자 표기 | Estado Libre y Soberano de Nuevo León |
별칭 | (없음) |
표어 | Semper Ascendens |
표어 (번역) | 항상 상승하다 |
국가 | 멕시코 |
주도 | 몬테레이 |
최대 도시 | 몬테레이 |
최대 광역권 | 몬테레이 광역권 |
설립 | 1824년 5월 7일 |
멕시코 연방 가입 순서 | 15번째 |
면적 | 64,156 km² |
면적 순위 | 13위 |
최고 지점 | 세로 포토시 |
최고 지점 높이 | 3,710 m |
최고 지점 높이 (ft) | 12,208 ft |
인구 (2020년) | 5,784,442 명 |
인구 순위 | 7위 |
인구 밀도 순위 | 14위 |
인구 통계 | 네오레오네스 |
GDP (2022년) | MXN 2.349조 (USD 1169억) |
1인당 GDP (2022년) | USD 19,452 |
시간대 | 중부 시간대 (CST) |
UTC 오프셋 | -6 |
우편 번호 | 64–67 |
지역 번호 | 1 2 3 |
ISO 코드 | MX-NLE |
인간 개발 지수 (HDI) | 0.809 (매우 높음) |
HDI 순위 | 3위 |
공식 웹사이트 | 누에보레온 주 공식 웹사이트 |
정치 | |
주지사 | [[File:Logo Partido Movimiento Ciudadano (México).svg|시민운동 (멕시코)|23px]] 사무엘 가르시아 세풀베다 |
상원 의원 | [[File:PVE_logo_(Mexico).svg|멕시코 녹색당|23px]] 왈도 페르난데스 곤살레스 [[File:Morena_logo_(Mexico).svg|국민재생운동|23px]] 블랑카 후디스 디아스 델가도 [[File:MC_Party_(Mexico).svg|시민운동 (멕시코)|23px]]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리오하스 |
연방 하원 의원 | [[File:PAN Party (Mexico).svg|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오메로 리카르도 니뇨 데 리베라 벨라 (제1구) [[File:PRI logo (Mexico).svg|제도혁명당|23px]] 안드레스 칸투 라미레스 (제2구) [[File:Morena_logo_(Mexico).svg|국민재생운동|23px]] 클라라 루스 플로레스 카랄레스 (제3구) [[File:PAN Party (Mexico).svg|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암파로 릴리아 올리바레스 카스타네다 (제4구) [[File:PT_Party_(Mexico).svg|노동당 (멕시코)|23px]] 산티아고 곤살레스 소토 (제5구) [[File:PAN Party (Mexico).svg|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안니아 사라히 고메스 카르데나스 (제6구) [[File:PVE_logo_(Mexico).svg|멕시코 녹색당|23px]] 카를로스 알베르토 게바라 가르사 (제7구) [[File:Morena_logo_(Mexico).svg|국민재생운동|23px]] 아드리아나 벨린다 키로스 갈레고스 (제8구) [[File:PRI logo (Mexico).svg|제도혁명당|23px]] 후안 프란시스코 에스피노사 에구이아 (제9구) [[File:PRI logo (Mexico).svg|제도혁명당|23px]] 아나 이사벨 곤살레스 곤살레스 (제10구) [[File:PAN Party (Mexico).svg|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페드로 가르사 트레비뇨 (제11구) [[File:PVE_logo_(Mexico).svg|멕시코 녹색당|23px]] 엑토르 알폰소 데 라 가르사 비야레알 (제12구) [[File:PVE_logo_(Mexico).svg|멕시코 녹색당|23px]] 루이스 올란도 키로가 트레비뇨 (제13구) [[File:PT_Party_(Mexico).svg|노동당 (멕시코)|23px]] 호세 글로리아 로페스 (제14구) |
2. 역사
}}
== 어원 ==
누에보레온(Nuevo León)이라는 이름은 16세기 후반, 스페인 탐험가 루이스 카르바할 이 데 라 쿠에바(Luis Carvajal y de la Cueva)가 레온 왕국(Kingdom of León)을 기려 이 지역을 누에보 레온 왕국(New Kingdom of León)이라고 명명한 데서 유래한다.[11][12] 카르바할은 두 지역의 산악 지형 등 여러 유사점을 언급했다.[11][12] 멕시코 독립 이후, 누에보레온(Nuevo León)으로 이름이 줄었다.
== 식민지 이전 시대 ==
유럽 식민지화 이전에는 확립된 국가가 없었다. 역사학자들은 이 지역에 약 250개의 독립적인 원주민 유목민 집단이 거주했으며, 스페인인들은 이들을 집합적으로 치치메카라고 불렀다고 추정한다.[13] 동굴 벽화와 조각된 돌과 같은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역사가들은 이 지역에 거주했던 네 개의 주요 원주민 집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쪽에는 코아우일테칸족, 북쪽에는 알라자파스족, 동쪽에는 보라도스족, 남쪽에는 과치칠족이 있었다.[14]
아리도아메리카 전역의 수많은 집단과 마찬가지로, 누에보레온의 원주민들은 식량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다. 주로 사냥과 채집에 의존했던 많은 사람들이 소규모 집단으로 이동하며, 일반적으로 1~2가구가 거주하는 랜체리아라고 알려진 임시 거주지를 세웠다. 이러한 거주지는 엮은 가지와 짚으로 지붕을 덮은 반구형 오두막으로 구성되었다.[15] 살리나스 강과 같이 강 근처에 있거나, 동쪽 시에라 마드레 산맥 근처 또는 그 안의 온화한 기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어업과 제한적인 농업에 접근할 수 있었다.[14]
유목 생활 방식 때문에, 공동체는 땅에 대한 영구적인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고, 메소아메리카 사회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정치적 계층 구조를 발전시키지 않았다.[16] 결과적으로 이러한 부족 내에는 통치가 없었고, 분권화된 사회 구조를 반영했다.[15]
== 식민지 시대 ==
1535년, 알바로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가 누에보레온 지역으로 최초의 탐험대 중 하나를 이끌었다.[13] 1577년, 현재 몬테레이에 위치한 산타 루시아를 세운 알베르토 델 칸토에 의해 식민지화 시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식민 개척자들에 의해 야만인 인디오로 분류된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인해 실패했다.[13] 1579년, 델 칸토의 탐험대원이었던 루이스 카르바할 이 데 라 쿠에바는 스페인으로 돌아가 필립 2세 국왕과 협상하여 북부 누에바 에스파냐에 새로운 영토를 설립했다. 그는 1580년에 그 지역으로 돌아와 1582년에 누에보레온 신왕국을 건설했고, 수도인 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랑시아를 산타 루시아가 있던 자리에 세웠는데, 이는 몬테레이의 두 번째 건설을 의미한다. 그러나 1588년 카르바할이 종교재판에 신기독교인의 후손이라는 혐의로 고발되면서 식민지화 노력은 다시 실패했다.[15] 그 이후로 이 지역은 대부분 스페인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다.
1596년, 디에고 데 몬테마요르는 12가구와 함께 누에보레온 신왕국을 재개척하려 했다. 9월 20일, 그는 몬테레이의 수도,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몬테레이를 세웠는데, 이는 몬테레이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건설을 의미한다. 이 기간 동안 인구 대부분이 몬테레이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 도시는 살티요와 사카테카스와 같은 다른 중요한 도시들과는 고립되어 있었다. 초기 주민들의 삶은 빈곤으로 얼룩졌고, 농업과 축산업이 주된 직업이었으며, 순전히 자급자족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영토 북부에 스페인 정착촌이 건설되는 것은 주로 스페인의 원주민 노예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코아우일테칸의 공격으로 방해를 받았다.[13]
복음 전파는 스페인 식민지화와 문화 동화의 주요 수단으로, 17세기와 18세기에 수많은 수도사들이 누에보레온 신왕국에 와서 원주민들을 개종시켰다. 1602년, 몬테레이에 최초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인 산 안드레스 수도원이 세워졌다.[17] 식민지 시대 내내 총 20개의 선교지가 설립되었는데, 그 중 10개는 현재 누에보레온의 지방 자치 단체이며, 살리나스 빅토리아 (과달루페 데 라스 살리나스 선교), 아구알레구아스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아구알레구아스 선교), 과달루페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과달루페 계곡 선교) 등이 포함된다.[18] 원주민들의 저항이나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퍼진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해 일부 선교지는 실패했지만, 다른 선교지는 틀락스칼란의 지원으로 번창했다.[19]
누에보레온 신왕국은 현재 코아우일라, 누에보레온, 타마울리파스, 텍사스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17세기와 18세기 내내 이 지방은 영토 손실을 경험했다. 1643년, 누에바 비스카야 총독이 과달라하라 왕립 청문회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누에보레온 신왕국의 코아우일라와 텍사스에 대한 관할권이 박탈되었는데, 이 사건은 1580년대 카르바할의 누에바 비스카야에 속한 영토를 불법적으로 침략하려는 시도를 근거로 하고 있다.[20] 두 번째 손실은 루이지애나에서의 프랑스 침입의 압력과 원주민들을 평정하고 개종시키기 위해 누에보레온 신왕국이 멕시코 북동부 해안을 식민지화하려는 요청으로 인해 발생했고,[21] 이로 인해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이 누에보레온 신왕국을 재편성하여 누에보 산탄데르를 설립했고, 현재 타마울리파스를 잃게 되었다.
내륙 지방이 설립되는 동안, 누에보레온 신왕국은 코아우일라, 누에보 산탄데르, 텍사스 지방과 함께 동부 내륙 지방의 일부가 되었다.[22]
== 멕시코 독립 전쟁 ==
1810년 9월 16일, 돌로레스의 함성으로 멕시코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누에보레온주는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9월 29일에야 이 소식이 전해졌다.[23] 1811년 1월, 아구아누에바 전투에서 왕당파가 패배하고 호세 마리아노 히메네스가 몬테레이에 도착하여 반란을 확산시키려 하자, 신레온 왕국의 총독 마누엘 데 산타 마리아는 반란에 가담했다. 그러나 코아우일라의 바한의 우물에서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는 등 반란 진압 운동이 일어났다.[23]
이후 독립 운동은 주민들의 저항에 직면했는데, 이는 이 지역의 스페인과의 강한 유대감과 백인 또는 크리올로 혈통의 높은 비율(179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63%) 때문으로 분석된다.[23] 신레온 왕국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였던 몬테레이 시의회는 동부 내륙 지방 사령관 호아킨 데 아레돈도[24]가 1821년 7월 3일 이과라 계획을 지지할 때까지 스페인에 충성했다.[25][26]
멕시코 독립 후, 프레이 세르반도 테레사 데 미에르는 국민 헌법 의회에서 신레온 왕국을 대표했다. 1824년 멕시코 헌법에서 이 지역의 이름은 현재 이름인 누에보 레온으로 단축되었고, 제1 멕시코 공화국의 주가 되었다. 미에르는 1825년 3월 5일 주 최초의 헌법을 초안 작성 및 제정한 지방 의회의 설립을 조직했다.
== 독립 이후 19세기 후반 ==
1835년 칠법이 제정되면서 연방 구조가 해체되고 누에보레온 주는 부서로 대체되었다.[27] 이에 반발하여 1840년 코아우일라, 누에보레온, 타마울리파스, 텍사스 남부를 포함하는 리오그란데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살티요 전투에서 패배하며 반란은 종식되었다.[27] 1846년 8월, 1824년 멕시코 헌법이 복원되면서 누에보레온은 다시 주의 지위를 되찾았다.[27]
미국-멕시코 전쟁 중이던 1846년 9월 21일, 몬테레이 전투가 발발했다. 페드로 데 암푸디아가 이끄는 멕시코군은 재커리 테일러가 이끄는 미군에 맞섰으나, 큰 피해를 입고 9월 24일 휴전이 체결되었다.[28][29] 이로써 멕시코군은 철수하고 누에보레온 주는 1848년 6월 18일까지 미국의 점령하에 놓였다.[29]
1855년, 산티아고 비다우리는 아유틀라 계획을 지원하며 누에보레온 주 정부를 장악하고, 개혁 전쟁에서 자유당에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33][30] 1856년, 비다우리는 코아우일라 주를 병합하여 누에보레온-코아우일라 주를 형성했고, 이는 1857년 멕시코 헌법에 반영되었다.[31][32] 비다우리는 늘어난 세입을 바탕으로 주 개발 사업에 투자하고 리판 아파치족 토벌 작전을 펼쳤으며,[34] 미국 남북 전쟁 동안에는 남부 연합과의 면화 거래를 통해 더 많은 수입을 확보했다.[33][40]
1864년 프랑스 멕시코 개입 당시, 베니토 후아레스는 비다우리에게 세입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35] 비다우리는 제2차 멕시코 제국 합류를 제안했고, 후아레스는 그를 반역자로 규정, 누에보레온-코아우일라를 분리했다.[35][36] 후아레스는 1864년 8월까지 누에보레온에서 공화국 잔여 세력을 이끌었으며, 1865년 제국은 누에보레온을 부서로 재편성했다.[37] 누에보레온은 1867년 공화정 복원과 함께 주의 지위를 회복했다.[37]
== 산업화와 멕시코 혁명 ==
포르피리오 디아스 시대, 베르나르도 레이예스는 누에보레온주로 파견되어 주지사를 역임했다.[38] 레이예스는 여러 인프라 프로젝트를 시작했고,[38] 1892년에는 코아우일라주와의 토지 교환 협상을 통해 누에보레온 주가 텍사스주와의 국제 국경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39]
레이예스의 정책은 주의 빠른 산업화를 이끌었으며, 쿠아우테목 몬테주마 양조장, 푼디도라 공원(당시 몬테레이 주조 공장), 세멕스(당시 세멘토스 이달고), 비트로(당시 몬테레이 유리 및 크리스탈)와 같은 주요 기업들이 설립되었다.[40][41]
1909년, 1909년 몬테레이 허리케인이 몬테레이를 강타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멕시코 혁명 기간 동안 몬테레이는 여러 세력 간의 격전지였다. 1913년 10월, 카란시스타 세력은 주요 위치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연방군의 저항에 후퇴했다. 1914년 4월, 카란시스타들은 안토니오 이리네오 비야레알을 주지사로 임명했다. 빌리 스타 세력은 1915년 초 몬테레이를 잠시 점령했고, 판초 빌라는 자금 조달을 위해 몬테레이를 방문했다.[42] 1915년 5월, 카란시스타들은 다시 몬테레이를 장악하고 이델폰소 바스케스를 임시 주지사로 임명했다.
== 1930년대 이후 현재 ==
20세기 후반, 누에보레온주는 지속적인 산업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쿠아우테목 양조장, 몬테레이 주조회사, 세멘토스 이달고와 같은 주요 가문들은 이익을 다양한 부문에 재투자하여 산업 및 금융 부문의 확장에 기여했다. 1980년대까지 고용 인구의 91%가 2차 및 3차 산업에 종사했다.[43]
1930년대부터 산업이 급증하면서 인구도 크게 증가하여, 1990년에는 3,098,736명에 달했다. 몬테레이의 도시 확장은 1970년대에 주변 지자체로 확장되었다. 1960년대에는 주 최초의 고층 건물인 콘도미니오스 아세로가 건설되었고, 1983년에는 갈레리아스 몬테레이가 설립되면서 플라자 피에스타 산 아구스틴과 같은 쇼핑 단지 개발이 이어졌다. 1991년에는 도시 교통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메트로레이가 개통되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은 누에보레온주를 제조업 허브로 만들었다.[44] 텍사스와의 국경을 이용하여 콜롬비아, 누에보레온이 입국항으로 설립되었다. 20세기 말, 제도혁명당의 정치적 지배력이 약해지면서 1997년 국민행동당의 페르난도 카날레스 클라리온드가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21세기 초, 인구는 2020년 5,784,442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몬테레이 대도시권에는 토레 아발란즈, 토레 KOI, 토레스 오비스파도 등 마천루 건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에는 니어쇼어링 호황을 경험하며,[45] 기아와 테슬라 등의 투자가 이루어졌다.[46]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대기 오염과 물 부족 문제를 야기했다.
멕시코 마약 전쟁으로 인해 주 내 치안이 악화되어 2011년 몬테레이 카지노 공격과 카데레이타 히메네스 학살 등 여러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2. 1. 어원
누에보레온(Nuevo León)이라는 이름은 16세기 후반, 스페인 탐험가 루이스 카르바할 이 데 라 쿠에바(Luis Carvajal y de la Cueva)가 레온 왕국(Kingdom of León)을 기려 이 지역을 누에보 레온 왕국(New Kingdom of León)이라고 명명한 데서 유래한다.[11][12] 카르바할은 두 지역의 산악 지형 등 여러 유사점을 언급했다.[11][12] 멕시코 독립 이후, 누에보레온(Nuevo León)으로 이름이 줄었다.2. 2. 식민지 이전 시대
유럽 식민지화 이전에는 확립된 국가가 없었다. 역사학자들은 이 지역에 약 250개의 독립적인 원주민 유목민 집단이 거주했으며, 스페인인들은 이들을 집합적으로 치치메카라고 불렀다고 추정한다.[13] 동굴 벽화와 조각된 돌과 같은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역사가들은 이 지역에 거주했던 네 개의 주요 원주민 집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쪽에는 코아우일테칸족, 북쪽에는 알라자파스족, 동쪽에는 보라도스족, 남쪽에는 과치칠족이 있었다.[14]아리도아메리카 전역의 수많은 집단과 마찬가지로, 누에보레온의 원주민들은 식량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다. 주로 사냥과 채집에 의존했던 많은 사람들이 소규모 집단으로 이동하며, 일반적으로 1~2가구가 거주하는 랜체리아라고 알려진 임시 거주지를 세웠다. 이러한 거주지는 엮은 가지와 짚으로 지붕을 덮은 반구형 오두막으로 구성되었다.[15] 살리나스 강과 같이 강 근처에 있거나, 동쪽 시에라 마드레 산맥 근처 또는 그 안의 온화한 기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어업과 제한적인 농업에 접근할 수 있었다.[14]
유목 생활 방식 때문에, 공동체는 땅에 대한 영구적인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고, 메소아메리카 사회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정치적 계층 구조를 발전시키지 않았다.[16] 결과적으로 이러한 부족 내에는 통치가 없었고, 분권화된 사회 구조를 반영했다.[15]
2. 3. 식민지 시대
1535년, 알바로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가 누에보레온 지역으로 최초의 탐험대 중 하나를 이끌었다.[13] 1577년, 현재 몬테레이에 위치한 산타 루시아를 세운 알베르토 델 칸토에 의해 식민지화 시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식민 개척자들에 의해 야만인 인디오로 분류된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인해 실패했다.[13] 1579년, 델 칸토의 탐험대원이었던 루이스 카르바할 이 데 라 쿠에바는 스페인으로 돌아가 필립 2세 국왕과 협상하여 북부 누에바 에스파냐에 새로운 영토를 설립했다. 그는 1580년에 그 지역으로 돌아와 1582년에 누에보레온 신왕국을 건설했고, 수도인 산 루이스 레이 데 프랑시아를 산타 루시아가 있던 자리에 세웠는데, 이는 몬테레이의 두 번째 건설을 의미한다. 그러나 1588년 카르바할이 종교재판에 신기독교인의 후손이라는 혐의로 고발되면서 식민지화 노력은 다시 실패했다.[15] 그 이후로 이 지역은 대부분 스페인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다.1596년, 디에고 데 몬테마요르는 12가구와 함께 누에보레온 신왕국을 재개척하려 했다. 9월 20일, 그는 몬테레이의 수도,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몬테레이를 세웠는데, 이는 몬테레이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건설을 의미한다. 이 기간 동안 인구 대부분이 몬테레이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그 도시는 살티요와 사카테카스와 같은 다른 중요한 도시들과는 고립되어 있었다. 초기 주민들의 삶은 빈곤으로 얼룩졌고, 농업과 축산업이 주된 직업이었으며, 순전히 자급자족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영토 북부에 스페인 정착촌이 건설되는 것은 주로 스페인의 원주민 노예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코아우일테칸의 공격으로 방해를 받았다.[13]
복음 전파는 스페인 식민지화와 문화 동화의 주요 수단으로, 17세기와 18세기에 수많은 수도사들이 누에보레온 신왕국에 와서 원주민들을 개종시켰다. 1602년, 몬테레이에 최초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인 산 안드레스 수도원이 세워졌다.[17] 식민지 시대 내내 총 20개의 선교지가 설립되었는데, 그 중 10개는 현재 누에보레온의 지방 자치 단체이며, 살리나스 빅토리아 (과달루페 데 라스 살리나스 선교), 아구알레구아스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아구알레구아스 선교), 과달루페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과달루페 계곡 선교) 등이 포함된다.[18] 원주민들의 저항이나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퍼진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해 일부 선교지는 실패했지만, 다른 선교지는 틀락스칼란의 지원으로 번창했다.[19]
누에보레온 신왕국은 현재 코아우일라, 누에보레온, 타마울리파스, 텍사스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17세기와 18세기 내내 이 지방은 영토 손실을 경험했다. 1643년, 누에바 비스카야 총독이 과달라하라 왕립 청문회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누에보레온 신왕국의 코아우일라와 텍사스에 대한 관할권이 박탈되었는데, 이 사건은 1580년대 카르바할의 누에바 비스카야에 속한 영토를 불법적으로 침략하려는 시도를 근거로 하고 있다.[20] 두 번째 손실은 루이지애나에서의 프랑스 침입의 압력과 원주민들을 평정하고 개종시키기 위해 누에보레온 신왕국이 멕시코 북동부 해안을 식민지화하려는 요청으로 인해 발생했고,[21] 이로 인해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이 누에보레온 신왕국을 재편성하여 누에보 산탄데르를 설립했고, 현재 타마울리파스를 잃게 되었다.
내륙 지방이 설립되는 동안, 누에보레온 신왕국은 코아우일라, 누에보 산탄데르, 텍사스 지방과 함께 동부 내륙 지방의 일부가 되었다.[22]
2. 4. 멕시코 독립 전쟁
1810년 9월 16일, 돌로레스의 함성으로 멕시코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누에보레온주는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9월 29일에야 이 소식이 전해졌다.[23] 1811년 1월, 아구아누에바 전투에서 왕당파가 패배하고 호세 마리아노 히메네스가 몬테레이에 도착하여 반란을 확산시키려 하자, 신레온 왕국의 총독 마누엘 데 산타 마리아는 반란에 가담했다. 그러나 코아우일라의 바한의 우물에서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는 등 반란 진압 운동이 일어났다.[23]이후 독립 운동은 주민들의 저항에 직면했는데, 이는 이 지역의 스페인과의 강한 유대감과 백인 또는 크리올로 혈통의 높은 비율(179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63%) 때문으로 분석된다.[23] 신레온 왕국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였던 몬테레이 시의회는 동부 내륙 지방 사령관 호아킨 데 아레돈도[24]가 1821년 7월 3일 이과라 계획을 지지할 때까지 스페인에 충성했다.[25][26]
멕시코 독립 후, 프레이 세르반도 테레사 데 미에르는 국민 헌법 의회에서 신레온 왕국을 대표했다. 1824년 멕시코 헌법에서 이 지역의 이름은 현재 이름인 누에보 레온으로 단축되었고, 제1 멕시코 공화국의 주가 되었다. 미에르는 1825년 3월 5일 주 최초의 헌법을 초안 작성 및 제정한 지방 의회의 설립을 조직했다.
2. 5. 독립 이후 19세기 후반
1835년 칠법이 제정되면서 연방 구조가 해체되고 누에보레온 주는 부서로 대체되었다.[27] 이에 반발하여 1840년 코아우일라, 누에보레온, 타마울리파스, 텍사스 남부를 포함하는 리오그란데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살티요 전투에서 패배하며 반란은 종식되었다.[27] 1846년 8월, 1824년 멕시코 헌법이 복원되면서 누에보레온은 다시 주의 지위를 되찾았다.[27]미국-멕시코 전쟁 중이던 1846년 9월 21일, 몬테레이 전투가 발발했다. 페드로 데 암푸디아가 이끄는 멕시코군은 재커리 테일러가 이끄는 미군에 맞섰으나, 큰 피해를 입고 9월 24일 휴전이 체결되었다.[28][29] 이로써 멕시코군은 철수하고 누에보레온 주는 1848년 6월 18일까지 미국의 점령하에 놓였다.[29]
1855년, 산티아고 비다우리는 아유틀라 계획을 지원하며 누에보레온 주 정부를 장악하고, 개혁 전쟁에서 자유당에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33][30] 1856년, 비다우리는 코아우일라 주를 병합하여 누에보레온-코아우일라 주를 형성했고, 이는 1857년 멕시코 헌법에 반영되었다.[31][32] 비다우리는 늘어난 세입을 바탕으로 주 개발 사업에 투자하고 리판 아파치족 토벌 작전을 펼쳤으며,[34] 미국 남북 전쟁 동안에는 남부 연합과의 면화 거래를 통해 더 많은 수입을 확보했다.[33][40]
1864년 프랑스 멕시코 개입 당시, 베니토 후아레스는 비다우리에게 세입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35] 비다우리는 제2차 멕시코 제국 합류를 제안했고, 후아레스는 그를 반역자로 규정, 누에보레온-코아우일라를 분리했다.[35][36] 후아레스는 1864년 8월까지 누에보레온에서 공화국 잔여 세력을 이끌었으며, 1865년 제국은 누에보레온을 부서로 재편성했다.[37] 누에보레온은 1867년 공화정 복원과 함께 주의 지위를 회복했다.[37]
2. 6. 산업화와 멕시코 혁명
포르피리오 디아스 시대, 베르나르도 레이예스는 누에보레온주로 파견되어 주지사를 역임했다.[38] 레이예스는 여러 인프라 프로젝트를 시작했고,[38] 1892년에는 코아우일라주와의 토지 교환 협상을 통해 누에보레온 주가 텍사스주와의 국제 국경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39]레이예스의 정책은 주의 빠른 산업화를 이끌었으며, 쿠아우테목 몬테주마 양조장, 푼디도라 공원(당시 몬테레이 주조 공장), 세멕스(당시 세멘토스 이달고), 비트로(당시 몬테레이 유리 및 크리스탈)와 같은 주요 기업들이 설립되었다.[40][41]
1909년, 1909년 몬테레이 허리케인이 몬테레이를 강타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멕시코 혁명 기간 동안 몬테레이는 여러 세력 간의 격전지였다. 1913년 10월, 카란시스타 세력은 주요 위치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연방군의 저항에 후퇴했다. 1914년 4월, 카란시스타들은 안토니오 이리네오 비야레알을 주지사로 임명했다. 빌리 스타 세력은 1915년 초 몬테레이를 잠시 점령했고, 판초 빌라는 자금 조달을 위해 몬테레이를 방문했다.[42] 1915년 5월, 카란시스타들은 다시 몬테레이를 장악하고 이델폰소 바스케스를 임시 주지사로 임명했다.
2. 7. 1930년대 이후 현재
20세기 후반, 누에보레온주는 지속적인 산업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쿠아우테목 양조장, 몬테레이 주조회사, 세멘토스 이달고와 같은 주요 가문들은 이익을 다양한 부문에 재투자하여 산업 및 금융 부문의 확장에 기여했다. 1980년대까지 고용 인구의 91%가 2차 및 3차 산업에 종사했다.[43]1930년대부터 산업이 급증하면서 인구도 크게 증가하여, 1990년에는 3,098,736명에 달했다. 몬테레이의 도시 확장은 1970년대에 주변 지자체로 확장되었다. 1960년대에는 주 최초의 고층 건물인 콘도미니오스 아세로가 건설되었고, 1983년에는 갈레리아스 몬테레이가 설립되면서 플라자 피에스타 산 아구스틴과 같은 쇼핑 단지 개발이 이어졌다. 1991년에는 도시 교통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메트로레이가 개통되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은 누에보레온주를 제조업 허브로 만들었다.[44] 텍사스와의 국경을 이용하여 콜롬비아, 누에보레온이 입국항으로 설립되었다. 20세기 말, 제도혁명당의 정치적 지배력이 약해지면서 1997년 국민행동당의 페르난도 카날레스 클라리온드가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21세기 초, 인구는 2020년 5,784,442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몬테레이 대도시권에는 토레 아발란즈, 토레 KOI, 토레스 오비스파도 등 마천루 건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에는 니어쇼어링 호황을 경험하며,[45] 기아와 테슬라 등의 투자가 이루어졌다.[46]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대기 오염과 물 부족 문제를 야기했다.
멕시코 마약 전쟁으로 인해 주 내 치안이 악화되어 2011년 몬테레이 카지노 공격과 카데레이타 히메네스 학살 등 여러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3. 지리
64,156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누에보레온주는 멕시코에서 면적 기준으로 13번째로 큰 연방 단위이다. 이 주는 멕시코 북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타마울리파스주, 서쪽으로는 코아우일라주, 남쪽으로는 사카테카스주와 산 루이스 포토시 주, 북쪽으로는 미국 텍사스주와 접해 있다. 이 주는 북동부 지역의 세 가지 주요 지리적 지역을 포함하는 다양한 지형을 자랑한다.[47]
이 주의 남부와 서부는 주 영토의 50.9%를 차지하는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이 지배하고 있다. 산맥에 의해 형성된 주목할 만한 특징으로는 갈레아나와 닥터 아로요 고원, 이구아나, 피카초스, 파파가요스, 산타 클라라 산맥, 그리고 삐용, 아센시온, 리오 블랑코 계곡이 있다.[47] 해발 3,710미터로 주에서 가장 높은 고도를 자랑하는 세로 포토시도 이 산맥의 일부이다.
그레이트플레인스는 누에보레온 주의 최북단 지역에서 시작하여 주 토지의 34.6%를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지역은 리오그란데를 따라 완만한 구릉이 특징이다. 동쪽에는 북부 멕시코만 연안 평원이 주의 14.5%를 차지하며, 충적 지형으로 인해 "경사진 평원"으로 분류되는 저지대가 특징이다.[48]
산 후안 강은 리오그란데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이며, 엘 쿠칠료 저수지를 공급하여 몬테레이 광역시에 물을 공급하기 때문에 주에서 가장 중요한 강 중 하나이다. 페스케리아 강과 산타 카타리나 강/Río Santa Catarinaes와 같은 많은 지류로부터 물을 공급받는데, 후자는 광역시를 통과한다.
이 주는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한 추가 저수지를 보유하고 있다. 중요한 저수지로는 세로 프리에토, 라 보카, 아구알레구아스, 솜브레레티요, 엘 포르베니르, 로마 라르가 저수지가 있다.[49]
3. 1. 기후
누에보레온주는 다양한 기후대의 교차 지점에 위치하며, 열대 사막 기후, 열대 반건조 기후, 냉대 반건조 기후 및 습윤 아열대 기후를 포함한다.[50] 몬테레이 광역시를 포함한 주의 대부분은 열대 반건조 기후를 가지며, 북부는 치와와 사막과의 근접성으로 인해 열대 사막 기후를 갖는다. 남부 일부 지역은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으로 인해 습윤 아열대 기후를 갖는다.[50]이 지역은 건조하고 더운 여름을 경험하며, 가장 더운 지역의 최고 기온은 47°C에 이른다. 8월과 9월에는 우기로 기후가 변화하며 강수량이 증가하고 기온이 떨어진다. 겨울은 온화하며, 평균 최고 기온은 약 21°C, 최저 기온은 약 8°C이다. 산맥 근처는 겨울철에 평균 기온이 낮아 가끔 가벼운 강설이 발생할 수 있다.[50]
강설은 드문 현상이지만, 겨울 폭풍과 한랭 전선 동안 기록된 바 있다. 1967년 1월 9일에는 8시간 만에 50cm의 눈이 내렸으며,[51] 대동결 기간 중 1895년 2월 겨울 폭풍, 2004년 크리스마스 이브 겨울 폭풍, 2021년 2월 북미 겨울 폭풍 때 강설이 발생했다.[52][53]
허리케인과 열대성 폭풍은 누에보레온주에 많은 비를 내리게 하여 강, 특히 산타 카타리나 강의 범람으로 이어져 사망자와 도시 기반 시설에 피해를 초래한다. 1909년 몬테레이 허리케인으로 몬테레이에서 약 3,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988년 허리케인 길버트는 약 150명의 사망자를 냈다. 2010년 허리케인 알렉스는 15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열대성 폭풍 페르난드(2019년)와 허리케인 하나(2020년)도 이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54]
3. 2. 동식물
누에보레온주의 동식물은 다양하다.[55]
4. 행정 구역
누에보레온주는 51개의 자치구로 나뉜다. 이 자치구들은 몬테레이 광역시, 주변 지역, 시트리콜라 지역, 북부 지역, 남부 지역의 다섯 개 지역으로 분류된다.
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밀도가 높은 지역인 몬테레이 광역시는 몬테레이, 아포다카, 과달루페, 헤네랄 에스코베도, 후아레스, 산 니콜라스 데 로스 가르사, 가르시아, 산타 카타리나, 산 페드로 가르사 가르시아, 카데레이타 히메네스, 살리나스 빅토리아, 산티아고의 12개 자치구로 구성된다. 주의 10대 도시는 모두 광역시에 위치해 있다.[57]
4. 1. 주요 도시
몬테레이, 과달루페, 산니콜라스데로스가르사, 산페드로가르사가르시아, 산티아고, 산타카타리나 등이 누에보레온주의 주요 도시이다.5. 인구
1895년 누에보레온주의 인구는 311,665명이었다.[97] 1900년에는 327,937명, 1910년에는 365,150명, 1921년에는 336,412명, 1930년에는 417,491명, 1940년에는 541,147명, 1950년에는 740,191명, 1960년에는 1,078,848명, 1970년에는 1,694,689명, 1980년에는 2,513,044명, 1990년에는 3,098,736명, 1995년에는 3,550,114명, 2000년에는 3,834,141명, 2005년에는 4,199,292명, 2010년에는 4,653,458명, 2015년에는 5,119,504명이었다. 2020년에는 5,784,442명으로 멕시코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가 되었다.[98] 1930년대 이후 꾸준한 성장을 보였으며, 특히 1960년 이후 연평균 78,000명씩 증가했다. 2010년부터 2020년 사이에는 약 1,100,000명이 증가하여 가장 큰 성장을 기록했다.[59]
전체 인구의 96%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며, 이는 전국 평균 79%를 크게 상회한다. 농촌 지역 거주 인구는 4%에 불과하다.[60] 2024년 현재 누에보레온주의 평균 수명은 77.7세로 전국 평균 75.5세를 넘어 전국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 주요 사망 원인은 심장병, 악성 종양, 당뇨병이었다.[61][62]
2020년 기준 누에보레온주의 인구 밀도는 1km²당 90명으로, 멕시코에서 14번째로 인구 밀도가 높은 주이다. 이는 전국 평균 1km²당 64명을 상회하는 수치이다.[63] 주의 인구 밀도는 대부분 몬테레이 광역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인구의 약 92%가 거주하고 있고, 인구 밀도는 1km²당 약 700명이다.[64]
주에는 1,655,256세대의 주택이 있으며, 전국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주택의 약 48%는 침실이 두 개이고, 95% 이상의 주택은 상수도, 하수도 및 전력 시설을 갖추고 있다.[65]
2020년 누에보레온주에는 49,500명의 외국인 거주자가 있었으며, 그중 46.8%가 미국 출신, 12%가 베네수엘라 출신, 8.9%가 온두라스 출신이었다. 2015년부터 2020년 사이에 멕시코 다른 주에서 누에보레온주로 이주한 사람은 277,369명이며, 그중 24%가 베라크루스주 출신, 15%가 타마울리파스주 출신, 11%가 산루이스포토시주 출신, 6%가 코아우일라주 출신, 5%가 멕시코주 출신이었다. 같은 기간 동안 91,433명이 누에보레온주에서 다른 주로 이주했으며, 그중 14%가 산루이스포토시주로, 12%가 코아우일라주로, 11%가 타마울리파스주로, 8%가 베라크루스주로, 6%가 멕시코주로 이주했다. 또한 22,271명이 다른 국가로 이주했으며, 그중 75%가 미국을 선택했다. 주에서 가장 흔한 이주 동기는 가족 상봉, 고용 기회, 결혼이었다.[66]
## 언어
스페인 정복 이전 시대, 누에보레온의 유목민 원주민들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했다. 과치칠어를 사용했던 라야도스족, 코아우일테코어를 사용했던 핀토스족과 알라자파스족, 키니구아어를 사용했던 보라도스족이 주목할 만하다. 다른 원주민 언어로는 마물리케어, 사남브레어, 타마울리페코어, 파메어가 있다.[67] 스페인어는 스페인 식민지화 기간 동안 처음으로 유입되었고, 나우아틀어는 틀락스칼라 정복자들에 의해 유입되었다.
현재 스페인어는 주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 누에보레온은 영어 구사 능력이 높은 국가 상위 5개 지역 중 하나이다.[68] 한국 이민자 유입으로 인해 한국어는 비즈니스 언어로서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69]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주 인구의 1.4%가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며, 이 수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70]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 중 12%는 스페인어를 모른다.[67]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원주민 언어는 나우아틀어, 와스테코어, 사포텍어, 오토미어가 있다.
언어 | 인구 |
---|---|
나우아틀어 | 0.77% |
와스테코어 | 0.28% |
사포텍어 | 0.03% |
오토미어 | 0.03% |
원주민 언어의 발전을 위해 누에보레온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5개의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을 위한 원주민 교육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목표는 학생들이 스페인어와 영어를 배우면서 전(前)스페인 시대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는 원주민 공동체 구성원을 위한 이중언어-원주민 교육 프로그램의 시행으로 이어진다.[71]
## 종교
누에보레온 주의 압도적인 대다수의 인구가 상위 존재를 믿고 자신을 종교적 또는 영적으로 여긴다. 기독교는 가장 널리 전파되는 종교이며, 인구의 77.7%가 가톨릭 신자이고 11.9%가 프로테스탄트 또는 복음주의 신자이다.[67] 인구의 0.1%는 유대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를 따른다.[67]
가톨릭교회는 멕시코의 스페인 정복 이후 이 주에 설립되었으며, 2020년 기준으로 가장 가톨릭 신자가 많은 주 중 17위를 차지할 정도로 꾸준히 우세한 종교였다. 누에보레온주에는 몬테레이 대교구 하나가 있는데, 이는 누에보레온주, 코아우일라주, 타마울리파스주를 포함한다. 이 대교구는 8개의 교구로 나뉘어 있으며, 그중 3개는 누에보레온주에 있다.[72] 2024년 현재 누에보레온주에는 268개의 본당이 있다.[73]
전국적인 추세를 따르면, 이 주의 가톨릭 신자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1910년에는 약 96%가 가톨릭 신자였다.[74] 1970년대에는 프로테스탄트와 복음주의와 같은 다른 종교의 등장이 두드러졌다. 2000년에는 가톨릭 인구가 87.9%였지만, 2020년에는 77.7%로 더 감소했다. 또한, 이 주의 종교적 소속도 감소하여 2000년에는 2.8%가 무종교라고 밝혔지만, 2020년에는 9%로 증가했다.[67]
5. 1. 언어
스페인 정복 이전 시대, 누에보레온의 유목민 원주민들은 다양한 언어를 사용했다. 과치칠어를 사용했던 라야도스족, 코아우일테코어를 사용했던 핀토스족과 알라자파스족, 키니구아어를 사용했던 보라도스족이 주목할 만하다. 다른 원주민 언어로는 마물리케어, 사남브레어, 타마울리페코어, 파메어가 있다.[67] 스페인어는 스페인 식민지화 기간 동안 처음으로 유입되었고, 나우아틀어는 틀락스칼라 정복자들에 의해 유입되었다.현재 스페인어는 주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 누에보레온은 영어 구사 능력이 높은 국가 상위 5개 지역 중 하나이다.[68] 한국 이민자 유입으로 인해 한국어는 비즈니스 언어로서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69]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주 인구의 1.4%가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며, 이 수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70]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 중 12%는 스페인어를 모른다.[67]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원주민 언어는 나우아틀어, 와스테코어, 사포텍어, 오토미어가 있다.
언어 | 인구 |
---|---|
나우아틀어 | 0.77% |
와스테코어 | 0.28% |
사포텍어 | 0.03% |
오토미어 | 0.03% |
원주민 언어의 발전을 위해 누에보레온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5개의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을 위한 원주민 교육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목표는 학생들이 스페인어와 영어를 배우면서 전(前)스페인 시대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는 원주민 공동체 구성원을 위한 이중언어-원주민 교육 프로그램의 시행으로 이어진다.[71]
5. 2. 종교
누에보레온 주의 압도적인 대다수의 인구가 상위 존재를 믿고 자신을 종교적 또는 영적으로 여긴다. 기독교는 가장 널리 전파되는 종교이며, 인구의 77.7%가 가톨릭 신자이고 11.9%가 프로테스탄트 또는 복음주의 신자이다.[67] 인구의 0.1%는 유대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를 따른다.[67]가톨릭교회는 멕시코의 스페인 정복 이후 이 주에 설립되었으며, 2020년 기준으로 가장 가톨릭 신자가 많은 주 중 17위를 차지할 정도로 꾸준히 우세한 종교였다. 누에보레온주에는 몬테레이 대교구 하나가 있는데, 이는 누에보레온주, 코아우일라주, 타마울리파스주를 포함한다. 이 대교구는 8개의 교구로 나뉘어 있으며, 그중 3개는 누에보레온주에 있다.[72] 2024년 현재 누에보레온주에는 268개의 본당이 있다.[73]
전국적인 추세를 따르면, 이 주의 가톨릭 신자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1910년에는 약 96%가 가톨릭 신자였다.[74] 1970년대에는 프로테스탄트와 복음주의와 같은 다른 종교의 등장이 두드러졌다. 2000년에는 가톨릭 인구가 87.9%였지만, 2020년에는 77.7%로 더 감소했다. 또한, 이 주의 종교적 소속도 감소하여 2000년에는 2.8%가 무종교라고 밝혔지만, 2020년에는 9%로 증가했다.[67]
6. 교육
누에보레온주는 교육 지표를 통해 높은 삶의 질을 보여준다. 인구의 2%만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고, 26%는 전문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멕시코시티 다음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은 1.5%의 문맹률을 유지하고 있다.[75]
(UANL)는 멕시코에서 세 번째로 큰 공립 대학교이다. 주 전역에 7개의 캠퍼스가 있으며, 91개의 학부 과정과 160개의 대학원 과정을 제공한다. QS 세계 대학 순위에 따르면, 2023년 라틴 아메리카 상위 50위 대학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멕시코에서는 8위를 차지했다.[76] 이 대학교는 또한 주 내에 29개의 고등학교(기술 고등학교 4개 포함)를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교 졸업생 중에는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많다. 특히 2024년 기준으로 6명의 졸업생이 누에보레온 주지사를 역임했으며, 라울 곤잘레스와 마리아나 아비티아와 같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뛰어난 운동선수들도 배출했다.
누에보레온주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사립 대학교 중 하나인 (ITESM)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57개의 학부 과정과 44개의 대학원 과정을 제공하며, 2023년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멕시코 최고 대학으로 선정되었다.[76] 이 대학은 또한 (Prepa Tec)로 알려진 5개의 고등학교 그룹을 후원하고 있으며, 각 캠퍼스는 (IB World School)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누에보레온주에는 (UDEM), (U-ERRE), 인수코 대학교(INSUCO), 노르테 대학교(UN), 북부 인터아메리카 대학교(UIN), 멕시코 계곡 대학교(UVM), 아메리카 인본주의 대학교(UHA), 대학 연구 센터(CEU), (UMM), (UM) 및 누에보레온 기술 연구소(ITNL)와 같은 다른 교육 기관들이 있다.
7. 경제
2022년 기준 누에보레온주의 국내총생산(GDP)은 2조 3490억 멕시코 페소(MXN), 또는 1169억 미국 달러(USD)로, 멕시코시티와 멕시코주에 이어 멕시코에서 세 번째로 높았으며, 멕시코 전체 GDP의 8.25%를 차지했다.[77] 만약 누에보레온주가 독립국이었다면, 슬로바키아보다 앞서고 에티오피아보다 뒤쳐지는 세계 62위 규모의 경제였을 것이다. 1인당 GDP는 약 19,452달러(USD)로, 멕시코 주들 중 세 번째로 높으며, 멕시코의 평균 10,950달러(USD)를 훨씬 웃돈다. 이러한 1인당 GDP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와 같은 일부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비슷하다.
몬테레이 광역시에는 많은 중요한 기업의 본사가 위치해 있는데, 그 중에는 ''솔'', ''테카테'', ''XX'', ''보헤미아'', ''인디오'', ''노체부에나'' 맥주를 생산하는 쿠아우테목 몬테수마 양조장(Cuauhtémoc Moctezuma Brewery), 세계 5위 시멘트 회사인 세멕스(Cemex),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병입 음료 회사인 펨사(FEMSA), 멕시코에서 가장 강력한 국내 은행 중 하나인 바노르테(Banorte), 석유화학 제품, 알루미늄 자동차 부품, 냉장 식품을 생산하는 알파(ALFA)(ALFA (Mexico)) 등이 있다.
=== 제조업 ===
누에보레온주의 경제는 수출 지향적 제조업, 즉 마키라도라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2021년 기준 제조업이 주 GDP의 41.7%를 차지했다.[78] 2018년 이후 누에보레온주는 멕시코 내 제조업 분야의 선두주자로 여겨지고 있으며, 2022년에는 국가 산업 GDP의 10.6%를 기여했다.[79] 주요 제조업 분야로는 자동차, 기초 금속, 식음료, 금속 가공이 있다.[79]
=== 농업 ===
2022년 누에보레온주는 농업용으로 사용 가능한 토지가 1,035,492헥타르였다.[80] 주의 농업 산업 대부분은 몬테레이 대도시권 외곽, 시트리콜라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이 지역은 아옌데, 헤네랄테란, 우아라우이세스, 리나레스, 몬테모렐로스, 라요네스 시를 포함한다.[81] 이 지역은 감귤류 재배를 전문으로 하며, 멕시코 감귤류 생산량의 7%에 해당하는 오렌지와 1.6%에 해당하는 자몽 생산에 기여한다.[81] 옥수수, 콩, 밀, 알팔파, 보리, 감자, 수수, 아보카도, 사과, 레몬도 생산한다.
주 남부 지역으로 농업 산업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이 지역은 더 건조하기 때문에 농업과 축산업에 큰 어려움을 준다.
=== 기술 ===
최근 몇 년 동안 주 정부는 항공 우주 산업, 생명 공학, 메카트로닉스, 정보통신기술 분야에 대한 상당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82][83] 과학 기술 개발, 혁신 및 연구를 목표로 하는 기술 단지인 몬테레이 연구 및 기술 혁신 단지(PIIT)를 조성했다.[82][83] 이 프로젝트는 지식의 도시 몬테레이 프로그램의 핵심 전략 중 하나이다.[82][83] 이 단지는 그란 몬테레이의 일부인 아포다카 시에 위치하며, 몬테레이 국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10km 지점에 있다.[82][83] 총 70헥타르의 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절반은 이미 연구개발 센터에 할당되었다.[82][83] 나머지 35헥타르는 연구 개발 센터와 단지의 목표에 부합하는 기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82][83]
7. 1. 제조업
누에보레온주의 경제는 수출 지향적 제조업, 즉 마키라도라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2021년 기준 제조업이 주 GDP의 41.7%를 차지했다.[78] 2018년 이후 누에보레온주는 멕시코 내 제조업 분야의 선두주자로 여겨지고 있으며, 2022년에는 국가 산업 GDP의 10.6%를 기여했다.[79] 주요 제조업 분야로는 자동차, 기초 금속, 식음료, 금속 가공이 있다.[79]7. 2. 농업
2022년 누에보레온주는 농업용으로 사용 가능한 토지가 1,035,492헥타르였다.[80] 주의 농업 산업 대부분은 몬테레이 대도시권 외곽, 시트리콜라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이 지역은 아옌데, 헤네랄테란, 우아라우이세스, 리나레스, 몬테모렐로스, 라요네스 시를 포함한다.[81] 이 지역은 감귤류 재배를 전문으로 하며, 멕시코 감귤류 생산량의 7%에 해당하는 오렌지와 1.6%에 해당하는 자몽 생산에 기여한다.[81] 옥수수, 콩, 밀, 알팔파, 보리, 감자, 수수, 아보카도, 사과, 레몬도 생산한다.주 남부 지역으로 농업 산업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이 지역은 더 건조하기 때문에 농업과 축산업에 큰 어려움을 준다.
7. 3. 기술
최근 몇 년 동안 주 정부는 항공 우주 산업, 생명 공학, 메카트로닉스, 정보통신기술 분야에 대한 상당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82][83] 과학 기술 개발, 혁신 및 연구를 목표로 하는 기술 단지인 PIIT(몬테레이 연구 및 기술 혁신 단지)를 조성했다.[82][83] 이 프로젝트는 지식의 도시 몬테레이 프로그램의 핵심 전략 중 하나이다.[82][83] 이 단지는 그란 몬테레이의 일부인 아포다카 시에 위치하며, 몬테레이 국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10km 지점에 있다.[82][83] 총 70헥타르의 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절반은 이미 연구개발 센터에 할당되었다.[82][83] 나머지 35헥타르는 연구 개발 센터와 단지의 목표에 부합하는 기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82][83]8. 정치
누에보레온 주 헌법 제62조는 3권 분립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주지사, 중앙 공공 행정 및 준정부 공공 행정으로 구성된 행정부; 누에보레온 주 의회로 구성된 입법부; 그리고 누에보레온 주 고등법원, 1심 법원 및 하급 법원으로 구성된 사법부이다.[84]
'''행정부'''
누에보레온 주의 행정부는 6년 임기(비연임)의 주지사와 여러 행정 기구로 구성된다. 행정 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17개의 부처(사무국, secretariats)를 포함하는 중앙 집중식 공공 행정으로, 각 부처는 주지사가 임명한 장관이 감독한다. 둘째는 주정부가 통제하는 기업과 공공 신탁과 같은 분산된 공공 기관으로 구성된 준정부(parastatal) 공공 행정이다.
'''입법부'''
입법부는 42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단원제 누에보레온 주 의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26명은 소선거구제를 통해, 16명은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사법부'''
누에보레온주의 사법부는 민사, 가족, 형사 및 노동 사건을 감독하고 헌법 및 연방법 준수를 보장하는 두 가지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85] 누에보레온주 고등법원(Superior Court of Justice of Nuevo León), 1심 법원 및 하급 법원으로 구성된다.[85] 2023년 현재, 누에보레온 주는 총 140명의 판사가 있는 15개의 사법구로 나뉜다.[85]
누에보레온주 고등법원(Superior Court of Justice of Nuevo León)은 누에보레온 주 의회가 임명하는 16명의 판사로 구성되며, 선출에는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86] 고등법원은 판사들이 선출하는 원장이 2년 임기로 재선 가능하게 이끌어간다.[86]
법원 시스템의 행정은 사법평의회가 관장하며, 사법평의회는 고등법원 원장, 고등법원이 선출한 두 명의 판사, 주지사가 선출한 대표 한 명, 그리고 누에보레온 주 의회가 선출한 대표 한 명으로 구성된다.[87]
8. 1. 행정부
누에보레온 주의 행정부는 6년 임기(비연임)의 주지사와 여러 행정 기구로 구성된다. 행정 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17개의 부처(사무국, secretariats)를 포함하는 중앙 집중식 공공 행정으로, 각 부처는 주지사가 임명한 장관이 감독한다. 둘째는 주정부가 통제하는 기업과 공공 신탁과 같은 분산된 공공 기관으로 구성된 준정부(parastatal) 공공 행정이다.8. 2. 입법부
입법부는 42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단원제 누에보레온 주 의회로 이루어져 있으며, 26명은 소선거구제를 통해, 16명은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8. 3. 사법부
누에보레온주의 사법부는 민사, 가족, 형사 및 노동 사건을 감독하고 헌법 및 연방법 준수를 보장하는 두 가지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85] 누에보레온주 고등법원(Superior Court of Justice of Nuevo León), 1심 법원 및 하급 법원으로 구성된다.[85] 2023년 현재, 누에보레온 주는 총 140명의 판사가 있는 15개의 사법구로 나뉜다.[85]누에보레온주 고등법원(Superior Court of Justice of Nuevo León)은 누에보레온 주 의회가 임명하는 16명의 판사로 구성되며, 선출에는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86] 고등법원은 판사들이 선출하는 원장이 2년 임기로 재선 가능하게 이끌어간다.[86]
법원 시스템의 행정은 사법평의회가 관장하며, 사법평의회는 고등법원 원장, 고등법원이 선출한 두 명의 판사, 주지사가 선출한 대표 한 명, 그리고 누에보레온 주 의회가 선출한 대표 한 명으로 구성된다.[87]
9. 스포츠
누에보레온주에서는 다양한 스포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야구는 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멕시코 리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 야구팀인 술타네스 데 몬테레이의 연고지이며, 1939년 창단 이후 10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에스타디오 모빌 슈퍼는 멕시코에서 가장 큰 야구장이다. 또한,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1957년, 1958년, 1997년에 유소년팀이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1980년대 이후로 축구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팀은 몬테레이 축구단(일반적으로 "라야도스"로 알려짐)이며, 리가 MX에서 5회, CONCACAF 챔피언스리그에서 5회(그중 3회는 연속 우승), 코파 MX에서 3회 우승하여 총 13개의 우승을 차지했다. 누에보레온 주에서 처음으로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UANL 티그레스는 리그 우승 8회, 컵 우승 3회, CONCACAF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를 포함하여 총 16개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클라시코 레히오몬타노는 시즌 최고의 기대를 모으는 경기 중 하나로, 티그레스와 몬테레이 간의 오랜 라이벌 의식과 화려한 선수진 때문이다. 두 클럽은 2017년과 2019년에 있었던 두 차례의 결승전과 같이 중요한 경기에서 여러 차례 맞붙었다. 매년 팬들이 양 팀 경기 티켓을 얻기 위해 양 구장 밖에서 수일 동안 줄을 서는 것은 유명하며, 티켓 가격은 종종 원래 가격의 두 배 또는 세 배에 달한다.
농구 프로팀 푸에르사 레히아 데 몬테레이는 멕시코 프로농구 리그에 참가하는 대표적인 팀이다. 이들은 히미나시오 누에보 레온에서 경기를 치른다. 2004년에는 미국 외부에서 처음으로 디트로이트 쇼크와 샌안토니오 실버 스타즈 간의 WNBA 경기가 개최되었다.
아이스하키는 다른 인기 스포츠보다는 인기가 덜하지만, 주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누에보레온 주에는 최근 설립된 멕시코 아이스하키 연맹과 관련된 프로팀인 토로스 몬테레이가 있으며, 연고지는 누에보레온 산타 카타리나에 있는 몬테레이 아이스 콤플렉스 아이스 링크이다.
미국과의 근접성의 영향으로 미식축구도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누에보레온 자치대학교의 아우텐티코스 티그레스 UANL과 몬테레이 공과대학교의 보레고스 살바헤스 몬테레이는 이 스포츠의 선구자이다. 아우텐티코스는 ONEFA에서 활동하며, 가스파르 마스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보레고스는 CONADEIP에서 활동하며, 보레고스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10. 미디어
누에보레온 주에서 발행되는 신문 및 뉴스 웹사이트로는 ''ABC Noticias'', ''El Gráfico de Nuevo León'', ''El Norte'', ''El Porvenir'', ''La Última Palabra'', ''밀레니오'', ''Publimetro edición Monterrey'', ''Reporte Índigo'', ''Distrito Regio'', ''Solo Ofertas'', ''El Horizonte'', ''Regio.com'', ''Red Crucero'', ''Noticias Nuevo León'' 등이 있다.[88][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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