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코 후타라산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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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닛코 후타라산 신사는 767년 쇼도 쇼닌에 의해 창건된 신사로, 일본 3대 미교 중 하나인 신교를 포함하여 닛코 산내의 중요한 사찰 중 하나이다. 오쿠니누시, 타고리히메노 미코토,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를 모시며, 닛코 삼산에 해당하는 세 신을 후타라산 오오카미로 총칭한다. 1998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다음 해에는 닛코의 사찰과 신사로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신사는 본사, 중궁사, 오쿠미야, 별궁, 섭말사 등을 포함하며, 주요 행사로는 무사제, 개산제, 야요이 축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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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코 후타라산 신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 | |
종교 | 신토 |
신 | 오오쿠니누시 다고리히메 아지스키타카히코네 |
위치 | 도치기현 닛코시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역사 | |
창건자 | 쇼도 쇼닌 |
설립일 | 767년 |
건축 양식 | |
지정 유형 | 세계 유산 (문화) 국보 국가 사적 |
지정 기준 | i, iv, vi |
지정일 | 1999년 |
지정 번호 | 913 |
행사 | |
축제 | 4월 13일–17일 |
일본어 정보 | |
명칭 | 닛코 후타라산 신사 (日光二荒山神社) |
소재지 (본사) | 도치기현 닛코시 산나이 2307 |
소재지 (주구사) | 도치기현 닛코시 주구시 2484 |
소재지 (오쿠미야) | 도치기현 닛코시 주구시 후타라산 |
제신 | 후타라산 대신 (二荒山大神, 오오쿠니누시, 다고리히메, 아지스키타카히코네의 총칭) |
신체 | 닛코 산잔 (日光三山, 신체산) |
사격 | 시키나이샤 (式内社, 명신대사) 론샤 시모쓰케국 이치노미야 구 국폐중사 별표 신사 |
창건 (본사) | 신고케이운 원년 (767년) |
창건 (주구사) | 엔랴쿠 3년 (784년) |
창건 (오쿠미야) | 덴오 2년 (782년) |
본전 | 야쓰무네즈쿠리 (八棟造, 본사 본전) |
예제 | 4월 13일-17일 (야요이 마쓰리) |
2. 신사명
신사명 "후타라산(二荒山)"의 이름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 "관음보살"이 사는 곳으로 여겨지는 "보타락산(補陀洛山, 후다라쿠산)"이 와전된 것이라고 하며, 후에 홍법대사 구카이가 이 땅을 방문했을 때 "후타라"를 "니코"로 읽고 "日光(일광)" 글자를 붙여 이 땅의 이름으로 했다고 한다. 단, 구카이의 방문은 전승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 남체산·뇨호산 두 신의 이신이현설
- 폭풍우설
- 아이누어의 "곰취 = 후트라" 설
덧붙여, 남체산 산정 유적의 출토품으로부터,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후타라"와 "닛코"가 병용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3. 제신(祭神)
닛코 후타라산 신사에 모셔진 가미는 다음과 같다.
- '''오쿠니누시''' - 국토 건설, 농업, 의약, 보호 마법의 신
- '''타고리히메노 미코토''' - 무나카타 신사의 세 여신 중 하나
- '''아지스키타카히코네''' - 농업과 뇌성의 신
주요 제신은 다음 3신이다. 각각 닛코 삼산의 한 산에 해당한다. 3신은 '''후타라산 오오카미'''로 총칭된다.
신체산 | 제신 | 관계 | 본지불 | 표고 | 소재지 |
---|---|---|---|---|---|
남체산(후타라산) | 오나무치노 미코토 | 아버지 | 천수관음 | 2486m | |
뇨호산 | 타고리히메노 미코토 | 어머니 | 아미타여래 | 2464m | |
타로산 |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 | 아들 | 마두관음 | 2368m |
4. 역사
767년 화엄종 승려 쇼도 쇼닌(勝道上人)이 닛코 후타라산 신사를 창건한 이래, 이 신사는 난타이산(후타라산, 二荒山)을 중심으로 한 산악 신앙과 신불습합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헤이안 시대에는 엔기시키를 포함한 여러 국사(國史)에 신사가 등장하지만, 이것이 닛코 후타라산 신사인지 우쓰노미야 후타라산 신사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5] 이 논란은 시모쓰케 국 이치노미야 지정에도 영향을 미쳐, 두 신사 모두 이 칭호를 주장한다.[5]
가마쿠라 시대 초기, 남체산 산정 유적 출토품을 통해 당시 산악 신앙이 최성기였음을 알 수 있으며, 신사 제례도 이때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8]
센고쿠 시대에는 고호조 씨를 지원한 탓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영지를 몰수당하고 쇠퇴하기도 했다.
에도 시대 초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 텐카이 (지겐 대사)가 닛코 도쇼구를 창건하면서 닛코 후타라산 신사도 재건되었다.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본전을 재건하는 등 신사를 지원했고, 조정과 여러 다이묘, 민중들도 신사를 숭배했다.[6]
1873년(메이지 6년) 국폐중사로 지정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신사 본청 벳표 신사가 되었다.
1998년 신사 부지가 일본의 기념물 닛코의 사찰과 신사의 국가 사적 지정에 포함되었고, 1999년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6]
4. 1. 창건
767년 화엄종 승려 쇼도 쇼닌(勝道上人)이 닛코 후타라산 신사를 창건하였다. 그는 시모쓰케 국 북부 산악 지역에서 수행처를 찾고 있었는데, 이 지역은 적어도 야요이 시대부터 난타이산(후타라산, 二荒山)이 신성한 산으로 숭배되던 곳이었다. 난타이산은 아래 평야에 물을 공급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4]이 산은 고대 산악 숭배의 중심지였으며, 불교 수험도와 융합되었다.[4] 특히, Nantai|난타이|남체일본어라는 이름은 "남자의 몸"을 의미한다.[4] 이 산은 논에 물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선사시대 조몬 유적에서 발견되는 남근 형태의 돌 기둥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4]

쇼도 상인(735년–817년)은 시모쓰케 국 출신 승려로, 오야 강 북쪽에 덴표진고 2년(766년)에 시운립사(현재의 욘폰류지(四本龍寺)의 전신)를 세웠다. 진고케이운 원년(767년)에는 후타라산(난타이 산)의 신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현재 닛코 후타라산 신사의 기원이며 현재 별궁이 된 혼구 신사에 해당한다. 엔랴쿠 원년(782년)에는 후타라산 등정에 성공하여 오쿠미야를 세우고 후타라 수험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닛코는 신불습합의 영장으로서 번성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쇼도 쇼닌이 닛코를 개척하기 훨씬 이전부터 타로산 신사 주변에서는 고대 제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견되어, 이곳이 오래전부터 성지로서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4. 2. 개요
쇼도 쇼닌이 767년에 닛코 후타라산 신사를 창건했다. 이 신사는 시모쓰케 국 북부 산악 지역에서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던 난타이 산(후타라 산) 숭배에서 비롯되었다.[4] 난타이 산은 아래 평야에 물을 공급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존재였으며, 야요이 시대부터 신성시되었다.[4]이 산은 고대 산악 숭배의 중심지였으며, 불교 수험도와 융합되었다.[4] '난타이(男体)'라는 이름은 '남자의 몸'을 의미하며, 산의 형태가 남근을 닮아 선사시대 조몬 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남근 형태의 돌 기둥과 유사하다.[4]
헤이안 시대에는 927년 엔기시키를 포함한 여러 국사(國史)에 신사가 등장하지만, 이것이 닛코 후타라산 신사인지, 우쓰노미야 후타라산 신사인지는 논란이 있다.[5] 두 신사 모두 시모쓰케 국 이치노미야를 자처한다.[5]
센고쿠 시대에 고호조 씨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영지를 빼앗겨 어려움을 겪었으나, 에도 시대 초 닛코 도쇼구 건설과 함께 도쿠가와 히데타다에 의해 재건되어 다이묘와 귀족들의 지원을 받았다.[6]
1871년 신사 체계에서 국폐중사로 지정되었고, 1998년 일본의 기념물 닛코의 사찰과 신사의 국가 사적 지정에 포함되었으며, 이듬해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6]
신사 구역은 게곤 폭포와 닛코 산의 8개 봉우리(난타이 산, 뇨호 산, 타로 산, 오쿠시라네 산, 마에시라네 산, 오마나고 산, 코마나코 산, 아카나기 산)를 포함하며, 면적은 3400ha로 이세 신궁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넓다.
4. 3. 연표
- 766년(덴표진고 2년) - 쇼도 쇼닌이 자운립사(후의 시혼류지)를 건립.[4]
- 767년(진고케이운 원년) - 쇼도 쇼닌이 이황신의 사당(현 별궁본궁신사)을 건립.[4]
- 782년(엔랴쿠 원년) - 쇼도 쇼닌이 오쿠미야를 건립.[4]
- 784년(엔랴쿠 3년) - 쇼도 쇼닌이 중궁사와 그 신궁사인 주젠지를 건립.[4]
- 808년(다이도 3년) - 다치바나노 도시토오가 본궁신사의 사전을 조영.
- 810년(고닌 원년) - 조정에서 "만간지"의 호를 하사.
- 820년(고닌 11년) - 구카이가 닛코를 방문하여 다키오 신사·와카코 신사를 건립.[5]
- 836년(쇼와 3년) - 이황신에게 정5위 하의 신계를 하사 (869년(조간 11년)에는 정2위까지 승서).[5]
- 848년(카쇼 원년) - 엔닌이 닛코를 방문하여 본당·야쿠시당을 건립.[5]
- 927년 (엔초 5년) 12월 26일 - 〈엔기시키 완성〉
- 967년 (고호 4년) 7월 9일 - 〈엔기시키 시행〉
- 1141년(에이지 원년) - 후지와라노 아츠미츠가 『주젠지사기』를 저작.
- 1315년(쇼와 4년) - 닌초가 주젠지의 대조영을 집행.
- 1616년(겐나 2년) - 〈도쿠가와 이에야스 훙거〉
- 1617년(겐나 3년) - 텐카이가 닛코 도쇼구를 건립하고 겐나의 조영을 집행.[6]
- 1636년(간에이 13년) - 텐카이가 간에이의 대조개체를 집행.
- 1645년(쇼호 2년) - 조정에서 궁호 칙허를 받아 닛코 도쇼구를 "닛코 도쇼궁"으로 개명.
- 1649년(게이안 2년) - 닛코 연산의 하나인 시라네산이 분화하여 사당 소실.
- 1651년(게이안 4년) - 〈도쿠가와 이에미츠 사망〉
- 1653년(쇼오 2년) - 다이유인묘 건립.
- 1868년(게이오 4년)
- 3월 - 〈신불분리령〉
- 보신 전쟁. 구 막부군이 농성했지만, 신정부군의 이타가키 다이스케의 설득으로 전장을 옮김.
- 메이지 원년 - 신체 동좌.
- 1871년(메이지 4년) 5월 14일 - 〈사격 제도 제정〉[6]
- 1872년(메이지 5년)
- 산내의 여인 우마 금제 해금.
- 닛코 도쇼구, 닛코산 린노지, 닛코 후타라산 신사로 분립.
- 1873년(메이지 6년) - 국폐중사에 열격.[6]
- 1945년 (쇼와 20년) 12월 15일 - 〈신도 지령〉
- 1998년(헤이세이 10년) - "닛코 산내"가 국가의 사적으로 지정.[9]
- 1999년(헤이세이 11년) - "닛코의 사찰과 신사"가 세계 유산(문화 유산)으로 등록.[6]
5. 경내(境内)
닛코 후타라산 신사는 간토 평야 북부, 토치기현 북서쪽에 있는 닛코 연산의 주봉인 닛코 삼산을 신체산으로 모시는 신사이다. 경내는 크게 본사, 중궁사, 오쿠미야 세 곳으로 나뉘며, 게곤 폭포, 이로하자카 등을 포함하여 3400ha에 달하는 넓은 경내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이세 신궁 다음으로 넓은 면적이다.[1]
닛코 삼산은 난타이 산(난타이산: 옛 이름은 "후타라산"), 뇨호산, 타로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타라산 신사에서는 각각 신을 배정하여 모시고 있다.
에도 시대까지 신령 약 70향이라는 광대한 사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닛코 연산 8봉(난타이 산, 뇨호 산, 타로 산, 오쿠시라네 산, 마에시라네 산, 오마나코 산, 코마나코 산, 아카나기 산)을 경내에 포함한다.[1]
닛코 연산 8봉은 다음과 같다.
신사명 | 진좌지 | 제신 |
---|---|---|
뇨호 산 신사 | 뇨호 산 산정 | 타기리히메노 미코토 |
타로 산 신사 | 타로 산 산정 |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 |
오마나코 산 신사 | 오마나코 산 산정 |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 |
코마나코 산 신사 | 코마나코 산 산정 | |
아카나기 산 신사 | 아카나기 산 산정 | 스쿠나비코노 미코토 |
마에시라네 산 신사 | 마에시라네 산 산정 | |
오쿠시라네 산 신사 | 오쿠시라네 산 산정 |
5. 1. 본사(本社)
닛코 후타라산 신사 본사는 닛코 도쇼구 서쪽, "닛코 산내"라고 불리는 닛코의 사찰 중 가장 안쪽에 있다.[10]원래 현재의 별궁·본궁 신사 자리에 있었으며, 이전 후에는 "신궁"이라고 불렸다. 1617년(겐나 3년) 도쇼구 조영 시에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고, 사찰 건물도 새로 지어졌다. 현재의 사찰 건물은 그때 조영된 것으로, 팔동조의 본전이나 입모야조의 배전을 포함한 11동이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10]
신사 경내에는 1292년(쇼오 5년) 명의 동등롱(국가 중요문화재)이 있는데, "바케토로"라고 불린다. 이 등롱은 불을 밝히면 괴상한 모습으로 변했다고 하며, 무사가 칼로 벤 상처가 무수히 남아 있다고 한다.[10]
5. 2. 중궁사(中宮祠)
'''중궁사'''(中宮祠)는 난타이 산 중턱의 주젠지 호 호반에 위치하고 있다. "중궁사"란 본사와 오쿠미야(奥宮) 사이의 "중간 사당"이라는 의미이다.
쇼도(勝道) 상인이 덴오 2년(782년) 난타이 산 등정 후, 엔랴쿠 3년(784년)에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주젠지도 후타라산 신사의 진구지로 함께 창건되었다. 과거에는 "남체중궁", "남체권현", "주젠지권현"이라고도 불렸다.[11] 동찰의 사본에 따르면, 에이초 원년(1096년), 큐주 2년(1155년), 에이랴쿠 2년(1161년)에 사찰 조영이 확인되었다.[11] 현재의 사찰은 겐로쿠 12년(1699년)에 조영되었다.
예로부터 난타이 산 등산로 입구로 여겨졌으며, 현재도 본전 옆에 등배구(登拝口, 등산로 입구)가 있다. 등배문은 개산 기간(5월 5일-10월 25일)에만 열린다. 7월 31일-8월 8일 등배제 기간에는 중궁사 본전에서 오쿠미야로 신상이 옮겨진다.[11]
경내에는 본전을 비롯한 7동이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난타이 산 등배구 근처에는 수령이 약 1,000년에서 1,100년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주목 두 그루(A주, B주)가 있는데,[12] 1969년 10월 11일 "중궁사의 주목"으로 토치기현 지정 천연기념물이 되었다.[13] 보물관에서는 후타라산 신사가 소유한 도검 등 다양한 보물을 전시하고 있다.
5. 3. 오쿠미야(奥宮)
난타이 산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쇼도 쇼닌에 의해 덴오 2년(782년)에 창건되었다.[14]오쿠미야 근처의 다로산 신사 부근에서는 나라 시대부터 근세에 이르는 제사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일대는 "난타이 산 정상 유적"이라고 불린다. 출토품 다수는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구시 보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5. 4. 섭말사(摂末社)
닛코 후타라산 신사에는 여러 섭말사가 있다.: 고카이가 타키오 신사에 이어 수행했던 곳이다.[15] 원래는 "자코지" 또는 "자코 곤겐"으로 불렸으며, 무로마치 시대에는 칠당 가람이 늘어서고 못 염불 도량으로 번성했다. 메이지 시대에 "와카코 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경내에는 자코 폭포가 있다.
: 와카코 신사 요배소. 큰 반좌가 모셔져 있으며, 바위 위에 있는 웅덩이의 물이 마르지 않아 이 이름이 붙었다.
- 키타노 신사(北野神社)
- 소재지: 도치기현 닛코시 야마우치 (타키오도(이나리강을 따라가는 길), 본사와 타키오 신사의 중간)
- 제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 제례일: 8월 25일
: 간분 원년(1661년)에 쓰쿠시 안라쿠지의 오토리이 노부스케가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권청했다. 우메바치의 문장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도 있다.
: 통칭 수신사. 1979년 (쇼와 54년) 요코가와 노부오 현 지사가 후지와라정 타카토쿠의 키누가와 강변에 니우카와카미 신사에서 권청, 1998년 (헤이세이 10년) 도로 확폭을 위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 타키오 이나리 신사(滝尾稲荷神社)
- 소재지: 도치기현 닛코시 야마우치 (타키오 신사의 본전 뒤)
- 제신: 우카노미타마노카미 (이나리 다이묘진)
- 제례일: 3월 25일 (예제), 5월 25일 (강사 대제)
: 고닌 11년(820년)에 고카이가 타키오 신사와 함께 열었다.[15]
- 친구 신사(미토모 신사)
- 제신: 소명언명
- 제삿날: 5월 15일
: 중요 문화재.
- 다이코쿠덴
- 제신: 초청 다이코쿠(오나무치노 미코토)
: 중요 문화재. 엔쿄 2년(1745년) 진좌. 내부에는 큰 칼 "타로마루"가 전시되어 있다.
- 히에 신사
- 제신: 오야마쿠이노 미코토
: 중요 문화재. 카쇼 원년(848년) 진좌.
- 타키오 신사 요배소
: 별궁·타키오 신사의 요배소. 수령 약 700년의 신목 아래에 석비가 모셔져 있다.
- 와카코 신사 요배소
: 섭사·와카코 신사의 요배소. 반좌(磐座)가 모셔져 있다.
- 닛코 연산 요배소
: 남체산 오쿠미야, 뇨호산 신사, 타로산 신사, 오마나코야마 신사, 코마나코야마 신사, 아카나기야마 신사, 마에시라네야마 신사, 오쿠시라네야마 신사 등 닛코 연산 8봉의 요배소. 반좌가 모셔져 있다.
- 수신비(水神碑)
- 제신: 수파능매신(미즈하노메노카미)
- 제사일: 9월 5일 오전 10시 (수신제)
: 1921년 (다이쇼 10년) 9월 28일 건립.
- 이나리 신사(稲荷社)
- 제신: 창도혼신(우카노미타마노카미)
- 제사일: 3월 28일 오후 2시
: 분큐 3년 (1863년) 건립.
- 신궁 요배소(神宮遥拝所)
: 이세 신궁 요배소.
- 가구라전·대국전(神楽殿・大国殿)
- 제신: 대흑천(오오쿠니노미코토).
- 주궁사 칠복신(中宮祠七福神)
- 제신: 혜미수신, 대흑님, 비사문천, 변재천, 복록수, 수노신, 포대존.
- 산령궁(山霊宮)
- 제신: 영봉 남체산을 중심으로 닛코 연산 8봉에 깊은 신앙을 바친 공휴덕자(공적이 뛰어나고 덕행이 있던 사람들)의 어령.
- 산왕사(山王社)
- 제신: 오오야마쿠이노미코토.
- 행운 신사(幸運神社)
- 남체산 오궁 요배소(男体山奥宮遥拝所)
- 시즈노미야(志津宮)
- 소재지: 토치기현 닛코시(日光市) 시즈(志津)
- 제신: 오오아나무치노 미코토·타기리히메노 미코토·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
- 제사일: 8월 1일-8월 17일
- 타키오 신사(滝尾神社)
- 제신: 타기리히메노 미코토
: 통칭 남체산 타키오 신사(男体山滝尾神社).
- 타로산 신사(太郎山神社)
- 제신: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
: 통칭 남체산 타로산 신사(男体山太郎山神社).
닛코 후타라산 신사는 오쿠미야를 포함하여 닛코 연산 8봉을 신역(神域)으로 삼고 있다.[1]
8봉에 해당하는 신사와 제신은 다음과 같다.
신사명 | 진좌지 | 제신 |
---|---|---|
뇨호 산 신사 | 뇨호 산 산정 | 타기리히메노 미코토 |
타로 산 신사 | 타로 산 산정 |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 |
오마나코 산 신사 | 오마나코 산 산정 |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 |
코마나코 산 신사 | 코마나코 산 산정 | |
아카나기 산 신사 | 아카나기 산 산정 | 스쿠나비코노 미코토 |
마에시라네 산 신사 | 마에시라네 산 산정 | |
오쿠시라네 산 신사 | 오쿠시라네 산 산정 |
5. 4. 1. 별궁(別宮)
별궁 2사는 본사와 함께 "닛코 삼사"로 불리며, 과거에는 "닛코 삼사 권현"으로 통칭되었다[8]。; 본궁 신사(혼구진자)
진호케이운 원년(767년), 쇼도 상인에 의해 개산된 닛코산 발상지이며, 소재지는 본사의 구 소재지라고 전해진다. 산을 숭배했던 흔적으로 본전 뒷면에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본궁에 대해, 현재의 본사를 신궁이라고도 한다.
근처에는 구 별당사로 덴표징고 2년(766년)에 세워진 "시혼류지"가 있으며, 이곳은 린노지의 구 소재지로 여겨진다.
; 타키오 신사(타키오노진자)
- 소재지: 도치기현 닛코시 산내. "닛코 산내" 타키오 길 북쪽 깊숙한 곳, 시라이토 폭포 부근.
- 제신: 타기츠히메노 미코토 - 뇨호산 제신.
- 제사일: 4월 13일 ~ 17일 (야요이 축제).
고닌 11년(820년)에 구카이가 개창했다[15]。본궁 신사와 마찬가지로 산을 숭배했던 흔적으로 본전 뒷면에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참도에는 구연지장, 요코이시가 있으며, 경내에는 말사로 타키오 이나리 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안쪽 신사로 뇨호산 산정에 뇨호산 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5. 4. 2. 본사 주변
간토 평야 북부, 토치기현 북서쪽에 있는 닛코 연산의 주봉인 닛코 삼산을 신체산으로 모시는 신사이다. 경내는 본사, 중궁사, 오쿠미야 3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본사는 닛코시 산내에 있으며, 닛코의 사찰과 신사 가장 안쪽에 있다.; 와카코 신사(若子神社)
:* 소재지: 도치기현 닛코시 야마우치. 자코 폭포 부근.
:* 제신: 시타테루히메노미코토.
:* 제례일: 10월 30일.
고카이가 타키오 신사에 이어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15] 원래는 "자코지" 또는 "자코 곤겐"으로 불렸으며, 무로마치 시대에는 칠당 가람이 늘어서고 못 염불 도량으로 번성했다. 메이지 시대에 "와카코 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경내에는 자코 폭포가 있다.
; 이케이시(池石, 생석)
::* 소재지: 도치기현 닛코시 야마우치. 본사에서 와카코 신사·자코 폭포로 향하는 길 중간.
:: 와카코 신사 요배소. 본사와 와카코 신사의 중간에 있는 요배소(앞에 세운 곳)로, 큰 반좌가 모셔져 있다. 바위 위에 있는 웅덩이의 물이 마르지 않아 이 이름이 붙었다.
; 키타노 신사(北野神社)
:* 소재지: 도치기현 닛코시 야마우치. 타키오도(이나리강을 따라가는 길)에 있으며, 본사와 타키오 신사의 중간.
:* 제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 제례일: 8월 25일.
: 간분 원년(1661년)에 쓰쿠시 안라쿠지의 오토리이 노부스케가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권청했다. 우메바치의 문장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도 있다.
; 타키오 타카토쿠스이 신사(滝尾高徳水神社)
:* 소재지: 도치기현 닛코시 야마우치. 타키오도에 있으며, 타키오 신사의 입구, 시라이토 폭포 옆.
:* 제신: 미즈하노메노오오카미.
:* 제례일: 10월 10일.
: 통칭 수신사. 1979년 (쇼와 54년) 요코가와 노부오 현 지사가 후지와라정 타카토쿠의 키누가와 강변에 니우카와카미 신사에서 권청, 1998년 (헤이세이 10년) 도로 확폭을 위해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 타키오 이나리 신사(滝尾稲荷神社)
:* 소재지: 도치기현 닛코시 야마우치. 타키오 신사의 본전 뒤.
:* 제신: 우카노미타마노카미 (이나리 다이묘진).
:* 제례일: 3월 25일 (예제), 5월 25일 (강사 대제).
: 고닌 11년(820년)에 고카이가 타키오 신사와 함께 열었다.[15]
5. 4. 3. 본사 경내(신원오사(神苑五社))
; 친구 신사(미토모 신사): 말사이며 중요 문화재이다.
:* 제신: 소명언명
:* 제삿날: 5월 15일
; 다이코쿠덴
: 경내 신사이며 중요 문화재이다. 엔쿄 2년(1745년)에 진좌되었다. 내부에는 큰 칼 "타로마루"가 전시되어 있다.
:* 제신: 초청 다이코쿠(오나무치노 미코토)
; 히에 신사
: 말사이며 중요 문화재이다. 카쇼 원년(848년)에 진좌되었다.
:* 제신: 오야마쿠이노 미코토
; 타키오 신사 요배소
: 별궁·타키오 신사의 요배소이다. 신원 오사(神苑五社)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수령 약 700년의 신목 아래에 석비가 모셔져 있다.
; 와카코 신사 요배소
: 섭사·와카코 신사의 요배소이다. 반좌(磐座)가 모셔져 있다.
; 닛코 연산 요배소
: 남체산 오쿠미야, 뇨호산 신사, 타로산 신사, 오마나코야마 신사, 코마나코야마 신사, 아카나기야마 신사, 마에시라네야마 신사, 오쿠시라네야마 신사 등 닛코 연산 8봉의 요배소이다. 반좌가 모셔져 있다.
5. 4. 4. 중궁사 경내
주젠지 호 기슭에 있으며, 남체산 표 등산로 입구에 해당한다.- 수신비(水神碑)
- 제신: 수파능매신(미즈하노메노카미)
- 제사일: 9월 5일 오전 10시 (수신제)
- 1921년(다이쇼 10년) 9월 28일, 주궁사 도선 조합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주궁사 경내·해안 도리이에 안치되어 있다.
- 이나리 신사(稲荷社)
- 제신: 창도혼신(우카노미타마노카미)
- 제사일: 3월 28일 오후 2시
- 통칭 '주궁사 이나리 신사'로 불리며, 주궁사 경내 입구에 안치되어 있다. 1863년(분큐 3년) 건립되었다.
- 신궁 요배소(神宮遥拝所)
- 이세 신궁 요배소로, 이나리 신사에 안치되어 있다.
- 가구라전·대국전(神楽殿・大国殿)
- 제신: 대흑천(오오쿠니노미코토)
- 주궁사 경내에 안치되어 있다.
- 주궁사 칠복신(中宮祠七福神)
- 제신: 혜미수신, 대흑님, 비사문천, 변재천, 복록수, 수노신, 포대존
- 주궁사 경내에 7체의 신상이 안치되어 있다.
- 산령궁(山霊宮)
- 제신: 영봉 남체산을 중심으로 닛코 연산 8봉에 깊은 신앙을 바친 공휴덕자(공적이 뛰어나고 덕행이 있던 사람들)의 어령
- 주궁사 경내 안쪽에 안치되어 있다.
- 산왕사(山王社)
- 제신: 오오야마쿠이노미코토
- 남체산 등배문을 지나자마자 안치되어 있다.
- 행운 신사(幸運神社)
- 등배문을 지나 조금 올라간 곳, "행운의 숲"에 안치되어 있다.
- 남체산 오궁 요배소(男体山奥宮遥拝所)
- 남체산 1합목에 안치되어 있다. 주궁사에서 등배문을 지나 도보로 왕복 10분 정도 소요되며, 이곳까지는 등배 접수가 필요하지 않다.
5. 4. 5. 오쿠미야 주변
간토 평야 북부, 토치기현 북서쪽에 솟아있는 닛코 연산의 주봉인 닛코 삼산을 신체산으로 모시는 신사이다. 닛코 후타라산 신사의 경내는 본사, 중궁사, 오쿠미야 3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쿠미야는 남체산 산정에 있다. 후타라산 신사는 남체산(난타이산: 옛 이름은 "후타라산"), 뇨호산, 타로산으로 이루어진 닛코 삼산에 각각 신을 배정하여 모시고 있다.- 산왕사(山王社)
- 제신: 오오야마쿠이노미코토
: 남체산 등배문을 지나자마자 안치.
- 행운 신사(幸運神社)
: 등배문을 지나 조금 올라간 곳, "행운의 숲"에 안치.
- 남체산 오궁 요배소(男体山奥宮遥拝所)
: 남체산 1합목에 안치. 중궁사에서 등배문을 지나 도보로 왕복 10분 정도 소요. 여기까지는 등배 접수가 필요하지 않음.
5. 4. 6. 닛코 연산 팔봉(日光連山八峰)
신사 구역에는 게곤 폭포 뿐만 아니라 닛코 산의 8개 봉우리(난타이 산, 뇨호 산, 타로 산, 오쿠시라네 산, 마에시라네 산, 오마나코 산, 코마나코 산, 아카나기 산)가 포함되어 있다.[1] 그 면적은 3400ha로 이세 신궁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넓다.[1]난타이 산 오쿠미야를 포함하여 닛코 연산 8봉이라고 불린다.[1]
8봉은 다음과 같다.
신사명 | 진좌지 | 제신 |
---|---|---|
뇨호 산 신사 | 뇨호 산 산정 | 타기리히메노 미코토 |
타로 산 신사 | 타로 산 산정 |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 |
오마나코 산 신사 | 오마나코 산 산정 |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미코토 |
코마나코 산 신사 | 코마나코 산 산정 | |
아카나기 산 신사 | 아카나기 산 산정 | 스쿠나비코노 미코토 |
마에시라네 산 신사 | 마에시라네 산 산정 | |
오쿠시라네 산 신사 | 오쿠시라네 산 산정 |
6. 신교(神橋)
神橋|신교|shinkyō일본어는 다이야강에 걸쳐 있으며, 후타라산 신사의 일부이다. "일본 3대 기교"[16] 중 하나로 꼽히며, 참도인 닛코 산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옛날에는 "야마스게노자바시(山菅の蛇橋)" 또는 "야마스게바시(山菅橋)", "자바시(蛇橋)"라고도 불렸다.
6. 1. 구조
神橋|신교|shinkyō일본어는 다이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후타라산 신사에 속해 있다. 이 아름다운 주홍색 옻칠 구조물은 일본 3대 미교 중 하나로 닛코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다리는 1999년 12월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신교는 길이가 28m, 폭이 7.4m이며, 다이야 강 위 10.6m 높이에 위치해 있다.전설에 따르면, 승려 쇼도(Shōdō)와 그의 추종자들이 국가 번영을 위해 766년에 난타이 산에 올라갔다. 그들은 빠르게 흐르는 다이야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쇼도는 기도했고, 진자-다이오라는 키가 3m에 달하는 신이 오른팔에 두 마리의 뱀을 감고 나타났다. 진자-다이오는 푸른색과 붉은색 뱀을 풀어주었고, 뱀들은 사초로 덮인 무지개와 같은 다리로 변신하여 쇼도와 그의 추종자들이 강을 건너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다리는 때때로 야마스게노-자바시(Yamasugeno-jabashi)라고 불리며, 이는 "사초의 뱀 다리"를 의미한다.
신교는 여러 번 재건되었지만, 황실 사신의 전용으로만 사용되었던 1636년부터 동일한 디자인 패턴을 따랐다. 1973년부터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젖의 나무"라고 불리는 큰 나무를 양쪽 둑의 흙과 암반 속에 묻어 양쪽 둑에서 비스듬히 위로 뻗어 나오게 한다. 그리고 이 양쪽 끝에 교각을 설치하여 다리로 만들었다. 이 공법은 현존하는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목조 다리 8개 중 유일하다.
에도 시대 이전에는 야마나시현 오쓰키시의 사루하시처럼 교각이 없는 내다지 다리 구조였다고 여겨지지만, 이후에는 비슷한 구조이면서도 "젖의 나무"는 석조 교각으로 지탱되고 있다. 내다지 다리와 거더교를 조합한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기법이며, 성곽 건축 등에 따른 토목 기술의 발달이 배경에 있다[17]。
6. 2. 역사
나라 시대 말, 쇼도 쇼닌의 닛코 개산 때 심사대왕이 두 마리의 큰 뱀으로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삿갓풀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다리의 이칭은 이 전승에서 유래한다. 이 전승으로 보아 이 무렵에 창건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자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18]무로마치 시대의 여행기 『회국잡기』나 『동로의 츠토』에 기재되어 있어, 당시에는 인지된 다리였으며, 구조는 굴다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18]
도쇼구 조영과 동시에 재건되었으며, 그 이전의 굴다리 구조에서 현재의 석조 교각을 갖는 구조가 되었다(당시는 생나무 구조). 이후 일반인의 통행은 금지되었고, 재건 시 하류 쪽에 설치되었던 가교를 일반 다리 "닛코 다리"로 했다.[18]
이후 10년~20년 주기로 수복 등이 이루어졌으며, 1792년(간세이 4년) 이후에는 도장이 칠해지게 되었다.[18]
1902년(메이지 35년) 아시오 태풍에 의한 홍수로 유실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다리는 1904년(메이지 37년)에 재건되었다. 1944년(쇼와 19년)에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18]
전설에 따르면, 766년에 승려 쇼도와 그의 추종자들이 국가 번영을 위해 난타이산에 올라갔다. 그들은 빠르게 흐르는 다이야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쇼도는 기도했고, 진자-다이오라는 키가 3미터에 달하는 신이 오른팔에 두 마리의 뱀을 감고 나타났다. 진자-다이오는 푸른색과 붉은색 뱀을 풀어주었고, 뱀들은 사초로 덮인 무지개와 같은 다리로 변신하여 쇼도와 그의 추종자들이 강을 건너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다리는 때때로 야마스게노-자바시(Yamasugeno-jabashi)라고 불리며, 이는 "사초의 뱀 다리"를 의미한다.[18]
신교|神橋|shinkyō일본어는 다이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후타라산 신사에 속해 있다. 이 아름다운 주홍색 옻칠 구조물은 일본 3대 미교 중 하나로 닛코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다리는 1999년 12월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신교는 길이가 28m, 폭이 7.4m이며, 다이야 강 위 10.6m 높이에 위치해 있다.[18]
신교는 여러 번 재건되었지만, 황실 사신의 전용으로만 사용되었던 1636년부터 동일한 디자인 패턴을 따랐다. 1973년부터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었다.[18]
신교의 입구에 "대풍경 신교"라는 도자기 풍경이 장식되어, 2017년 7월 28일에 제막되었다. 길이, 직경 모두 34cm, 무게 5.5kg이다.[18]
7. 주요 행사
8. 문화재
(목조 가면은 1996년 8월 20일, 칼 명... 2점은 2003년 2월 14일, 태도 무명... 장식은 2007년 8월 28일, 대태도... 2010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