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와 기치로
1. 개요
다자와 기치로는 1918년 아오모리현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오모리현 의원을 거쳐 1960년 중의원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국토청 장관, 농림수산상, 방위청 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1996년 총선에서 낙선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2001년 식도암으로 사망했으며, 사후 정3위가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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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18년 1월 1일 |
|---|---|
| 출생지 | 일본 제국 아오모리현 미나미쓰가루군 이나카다테촌 |
| 사망일 | 2001년 12월 12일 |
| 사망지 |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
| 학력 | 와세다 대학 |
| 기타 경력 | 동오의숙 이사장 |
| 친족 | 의붓아버지: 쓰시마 분지 |
| 방위청 장관 | 제46대 내각: 다케시타 내각, 다케시타 개조 내각 임기 시작: 1988년 8월 24일 임기 종료: 1989년 6월 3일 |
|---|---|
| 농림수산대신 | 제5대 내각: 스즈키 젠코 개조 내각 임기 시작: 1981년 11월 30일 임기 종료: 1982년 11월 27일 |
| 국토청 장관 | 제5대 내각: 후쿠다 다케오 내각 임기 시작: 1976년 12월 24일 임기 종료: 1977년 11월 28일 |
| 중의원 의원 | 선거구: 아오모리현 제2구 당선 횟수: 12회 임기 시작: 1960년 11월 21일 임기 종료: 1996년 9월 27일 |
| 아오모리현의회 의원 | 선거구: 미나미쓰가루군 선거구 당선 횟수: 4회 임기 시작: 1947년 4월 23일 임기 종료: 1960년 10월 31일 |
| 기타 직책 | 자유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제25대) 총재: 스즈키 젠코 임기 시작: 1980년 임기 종료: 1981년 |
| 훈장 정보 | 정3위 훈1등 욱일대수장 중의원 영년재직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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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가 -
쓰시마 유코
다자이 오사무의 딸인 쓰시마 유코는 불우한 가정 환경을 딛고 일어나 소외된 여성들의 삶을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과 수필로 일본 문단에 큰 영향을 미친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다. -
쓰시마가 -
다자이 오사무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과 방탕한 생활, 자살 시도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그의 경험은 사회 부적응자의 고독과 절망을 그린 대표작 『인간 실격』을 비롯한 작품에 반영되어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개인의 고뇌를 보여주었고, 애인과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하여 그의 삶과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
일본의 농림수산대신 -
하타 쓰토무
하타 쓰토무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농림수산대신, 대장대신 등을 거쳐 총리대신을 역임했으며, 자민당을 탈당 후 신생당을 창당, 정치 개혁에 힘썼으나 짧은 수상 임기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
일본의 농림수산대신 -
가노 미치히코
가노 미치히코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유민주당에서 활동하며 운수성 정무차관, 농림수산대신 등을 지냈고, 여러 정당을 거쳐 간 나오토 내각과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서 농림수산성 장관을 세 차례 역임했으며, 농림수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
일본의 방위청 장관 -
우노 소스케
우노 소스케는 자유민주당 소속의 일본 정치인으로, 외무대신 등 요직을 거쳐 제75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나 여성 스캔들로 인해 69일 만에 사임하며 최단명 내각 중 하나를 이끌었고, 시베리아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
일본의 방위청 장관 -
나카소네 야스히로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1918년 군마현 출생으로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제국 해군에서 복무했으며,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행정 개혁, 국철 민영화 등을 추진하다가 2019년 사망했다.
2. 생애
다자와 기치로는 1918년 1월 1일 아오모리현 미나미쓰가루군 이나카다테촌에서 태어났다. 1937년에 아오모리현립 히로사키 중학교 도오기주쿠를, 1943년에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47년 4월 아오모리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1960년까지 4선 의원을 지냈다. 1957년 12월에는 현의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1960년 총선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중앙 정치에 입문했다. 소속 파벌은 굉지회였다.
1966년 8월 제1차 사토 내각 (제2차 개조)에서 우정정무차관을 역임했으며, 1969년 1월에는 자민당 국회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1971년 7월에는 중의원 의원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어 3년간 재임했다. 1973년 5월에 자유민주당 부간사장으로 발탁되었다.
1976년 12월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국토청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다. 1979년 11월에는 자유민주당 국회대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거쳐 1980년 7월에 자민당 국대위원장에 취임했다. 1981년 11월 스즈키 젠코 내각 (개조)에서 농림수산상으로 입각했다. 1983년 6월에는 자민당 총무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88년 8월 다케시타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입각했다. 1992년에는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대신 재임 기간 동안 굉지회 회장 대행을 맡았다.
1996년 10월 총선에서 낙선했고, 다음 해 4월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같은 달 29일 훈1등 욱일대수장을 수훈했다. 2001년 12월 12일 식도암으로 히로사키 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83세. 사후에 정3위에 추서됐다.
2.1. 출생과 성장
다자와 기치로는 1918년 1월 1일 아오모리현 미나미쓰가루군 이나카다테촌에서 태어났다. 1937년 아오모리현립 히로사키 중학교 도오기주쿠를 졸업하고, 1943년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2.2. 정치 입문
다자와 기치로는 1918년 1월 1일 아오모리현 미나미쓰가루군 이나카다테촌에서 태어났다. 1937년에 아오모리현립 히로사키 중학교 도오기주쿠를, 1943년에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47년 4월 아오모리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1960년까지 4선 의원을 지냈다. 1957년 12월에는 현의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1960년 총선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중앙 정치에 입문했다. 소속 파벌은 굉지회였다.
1966년 8월 제1차 사토 내각 (제2차 개조)에서 우정정무차관을 역임했으며, 1969년 1월에는 자민당 국회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1971년 7월에는 중의원 의원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어 3년간 재임했다. 1973년 5월에 자유민주당 부간사장으로 발탁되었다.
1976년 12월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국토청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다. 1979년 11월에는 자유민주당 국회대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거쳐 1980년 7월에 자민당 국대위원장에 취임했다. 1981년 11월 스즈키 젠코 내각 (개조)에서 농림수산상으로 입각했다. 1983년 6월에는 자민당 총무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88년 8월 다케시타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입각했다. 1992년에는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대신 재임 기간 동안 굉지회 회장 대행을 맡았다.
1996년 10월 총선에서 낙선했고, 다음 해 4월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같은 달 29일 훈1등 욱일대수장을 수훈했다. 2001년 12월 12일 식도암으로 히로사키 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83세. 사후에 정3위에 추서됐다.
2.3. 중의원 의원 활동
다자와 기치로는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1960년 총선에 처음 당선되어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할 때까지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1966년 8월 제1차 사토 내각 (제2차 개조)에서 우정정무차관을 역임했고, 1969년 1월에는 자민당 국회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1971년 7월 중의원 의원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어 3년간 재임했다.
1973년 5월 자유민주당 부간사장을 거쳐, 1976년 12월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국토청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다. 1979년 11월에는 자유민주당 국회대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역임했고, 1980년 7월 자민당 국대위원장에 취임했다. 1981년 11월 스즈키 젠코 내각 (개조)이 출범하자 농림수산상으로 입각했으며, 1983년 6월에는 자민당 총무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88년 8월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입각하여, 가와라 쓰토무의 뒤를 이었다. 1992년에는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대신 재임 기간 동안 굉지회 회장 대행을 맡기도 했다.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한 후, 1997년 4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같은 달 29일 훈1등 욱일대수장을 수훈했다.
2.4. 각료 역임
다자와 기치로는 자유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여러 내각에서 각료를 역임했다.
1976년 12월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국토청 장관으로 처음 입각했다. 1977년 11월 28일까지 재임했다.
스즈키 젠코 내각 (개조)이 출범한 1981년 11월 30일, 다자와는 농림수산상으로 입각했다. 내각총리대신은 스즈키 젠코였다. 1982년 11월 26일까지 재임했다.
1988년 8월에는 다케시타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입각했다. 가와라 쓰토무의 뒤를 이었다. 1989년 6월 3일 야마자키 타쿠가 그 자리에 임명될 때까지 재임했다.
2.5. 정계 은퇴와 죽음
다자와 기치로는 1996년 10월 총선에서 낙선했고 다음 해 4월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같은 달 29일에 훈1등 욱일대수장을 수훈했다.
2001년 12월 12일에 식도암으로 히로사키 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83세. 사후에 정3위에 추서됐다. 다자와의 아내는 일본의 중요한 농업 및 어업 지역 중 하나인 아오모리현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했다.
3. 정치 활동 및 주요 경력
다자와 기치로는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1947년 4월 아오모리현 의회 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1951년 4월과 1955년 4월에 재선되었다. 1957년 12월에는 아오모리현 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1960년 중의원 의원 선거에 "쓰가루의 케네디"를 자칭하며 입후보하여 첫 당선되었고, 이후 12회 연속 당선되었다. (당선 동기로는 우노 소스케, 가이후 도시키, 가메오카 다카오, 가리야 타다오, 호소다 기치조, 오자와 다쓰오, 사사키 요시타케, 타니가키 센이치, 구보타 엔지, 이토 소이치로, 타가와 세이이치, 후지이 가쓰시 등).
1966년 8월 2일 우정 정무 차관에 임명되었고, 1967년 2월 17일 유임되었다. 1969년 1월 자유민주당 국회 대책 부위원장을 맡았고, 1971년 7월 14일 중의원 의원 운영 위원장에 임명, 1972년 7월과 1974년 12월에 재임명되었다. 1973년 1월 자유민주당 부간사장, 1974년 7월 자유민주당 정무 조사회 도시 공원 녹지 대책 특별 위원장을 역임했다. 1979년 11월 자유민주당 수석 국회 대책 부위원장, 1980년 7월 자민당 국회 대책 위원장을 맡았다. 1983년 1월 자유민주당 정무 조사회 토지 문제 위원장, 1983년 6월 자유민주당 총무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자유민주당 내에서는 굉지회(이케다 하야토 → 마에오 시게사부로 → 오히라 마사요시 → 스즈키 젠코 → 미야자와 기이치 파벌)에 속했으며, 1992년 사이토 구니키치가 사망함에 따라, 그 후임으로 미야자와 파벌 (굉지회) 회장 대행을 맡았다.
1976년 12월 24일부터 1977년 11월 28일까지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국토청 장관을 역임했고, 1981년 11월 30일 스즈키 젠코 내각 개편에서 가메오카 다케오의 뒤를 이어 농림수산대신으로 임명되어 1982년 11월 26일까지 재임했다. 1978년 2월에는 일본·유고슬라비아 친선 의원 연맹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8월 24일,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 국무대신 겸 방위청 장관(현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어 사임한 가와라 쓰토무의 뒤를 이었다. 1988년 12월 말 개편에서도 자리를 유지했으며, 1989년 6월 3일 야마자키 타쿠가 임명될 때까지 재임했다.
1996년 중의원 선거에서 다케우치 레이이치와 함께 비례 도호쿠 블록으로 출마했으나 당선 불가능한 하위 순위에 게재되어 낙선, 이를 계기로 정계를 은퇴했다.
정계 은퇴 후 히로사키 학원 대학 총장으로 임명되어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3.1. 초기 정치 경력 (현의회 의원)
다자와 기치로는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1947년 4월 아오모리현 의회 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1951년 4월과 1955년 4월에 재선되었다. 1957년 12월에는 아오모리현 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1960년 중의원 의원 선거에 처음 당선되어 1996년 선거에서 낙선할 때까지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그는 1976년 12월 24일부터 1977년 11월 28일까지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국토청 장관을 역임했고, 1981년 11월 30일 스즈키 젠코 내각 개편에서 가메오카 다케오의 뒤를 이어 농림수산대신으로 임명되어 1982년 11월 26일까지 재임했다. 1988년 8월 24일,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 국무대신 겸 방위청 장관(현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어 사임한 가와라 쓰토무의 뒤를 이었다. 1988년 12월 말 개편에서도 자리를 유지했으며, 1989년 6월 3일 야마자키 타쿠가 임명될 때까지 재임했다.
1966년 8월 2일 우정 정무 차관에 임명되었고, 1967년 2월 17일 유임되었다. 1969년 1월 자유민주당 국회 대책 부위원장을 맡았고, 1971년 7월 14일 중의원 의원 운영 위원장에 임명, 1972년 7월과 1974년 12월에 재임명되었다. 1973년 1월 자유민주당 부간사장, 1974년 7월 자유민주당 정무 조사회 도시 공원 녹지 대책 특별 위원장을 역임했다. 1979년 11월 자유민주당 수석 국회 대책 부위원장, 1980년 7월 자민당 국회 대책 위원장을 맡았다. 1983년 1월 자유민주당 정무 조사회 토지 문제 위원장, 1983년 6월 자유민주당 총무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1992년 굉지회(미야자와 파) 회장 대행을 맡았으며, 1997년 4월 정계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히로사키 학원 대학 총장으로 임명되어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1997년 4월 29일 훈1등 욱일대수장을 수여받았고, 2001년 12월 12일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3.2. 중의원 의원 활동 (1960년 ~ 1996년)
다자와 기치로는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1960년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1996년 선거에서 낙선할 때까지 활동했다. 1966년 8월 2일 부터는 우정 정무 차관을, 1971년 7월 14일에는 중의원 의원 운영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76년 12월 24일부터 1977년 11월 28일까지 후쿠다 다케오 내각의 국토청 장관을 역임했다. 1978년 2월에는 일본·유고슬라비아 친선 의원 연맹 회장을 역임하였다.
스즈키 젠코가 이끌던 내각에서는 1981년 11월 30일 개편에서 가메오카 다케오의 뒤를 이어 농림수산대신으로 임명되어 1982년 11월 26일까지 재임했다. 1980년 7월에는 자민당 국회 대책 위원장을, 1983년 1월에는 자유민주당 정무 조사회 토지 문제 위원장을, 1983년 6월에는 자유민주당 총무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8월 24일,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서 국무대신 겸 방위청 장관(현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어 사임한 가와라 쓰토무의 뒤를 이었다. 1988년 12월 말 개편에서도 자리를 유지했으며, 1989년 6월 3일 야마자키 타쿠가 임명될 때까지 재임했다. 1992년에는 굉지회(미야자와 파) 회장 대행을 역임하였다.
1996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였고, 1997년 4월 정계 은퇴를 표명하였다.
3.3. 각료 경력
다자와 기치로는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1960년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1996년 선거에서 낙선할 때까지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76년 12월 24일부터 1977년 11월 28일까지 국토청 장관을 역임했으며, 1981년 11월 30일에는 스즈키 젠코 내각에서 가메오카 다케오의 뒤를 이어 농림수산대신으로 임명되어 1982년 11월 26일까지 재임했다.
1988년 8월 24일,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 국무대신 겸 방위청 장관(현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어 사임한 가와라 쓰토무의 뒤를 이었다. 1988년 12월 개편에서도 자리를 유지했으며, 1989년 6월 3일 야마자키 타쿠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재임했다.
이 외에도 1966년 8월 2일에는 우정 정무 차관을 역임했고, 1971년 7월 14일에는 중의원 의원 운영 위원장을 역임했다.
4. 기타 활동
5. 사후
다자와의 아내는 일본의 중요한 농업 및 어업 지역 중 하나인 아오모리현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했다. 다자와는 2001년 12월 12일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의 한 병원에서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6. 역대 선거 기록
다자와 기치로는 1947년 아오모리현의회 의원 선거에 당선된 이후 1956년까지 4번 연속으로 아오모리현의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1960년 총선거에서는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아오모리현 제2구에서 출마하여 1위를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이후 1993년 총선거까지 해당 선거구에서 총 12번 당선되었다. 1996년 총선거에서는 도호쿠 비례대표 선거구에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선거명 | 당선 횟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비고 | 선거 제도 |
|---|---|---|---|---|---|---|---|---|---|
| 현의회 의원 선거 | 1회 | 아오모리현의회 의원 | 미나미쓰가루군 선거구 | 당선_아오모리 | 중선거구제 | ||||
| 현의회 의원 선거 | 2회 | 아오모리현의회 의원 | 미나미쓰가루군 선거구 | 당선_아오모리 | 중선거구제 | ||||
| 현의회 의원 선거 | 3회 | 아오모리현의회 의원 | 미나미쓰가루군 선거구 | 당선_아오모리 | 중선거구제 | ||||
| 현의회 의원 선거 | 4회 | 아오모리현의회 의원 | 미나미쓰가루군 선거구 | 당선_아오모리 | 중선거구제 | ||||
| 총선거 | 29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53,909표 | 21.9% | 1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0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46,547표 | 19.3% | 3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1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67,773표 | 27% | 1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2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60,487표 | 24% | 1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3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75,426표 | 28.5% | 1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4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97,670표 | 39.3% | 1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5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79,299표 | 28.5% | 1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6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69,767표 | 23.3% | 2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7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86,217표 | 30.1% | 1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8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75,888표 | 24.5% | 2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39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67,972표 | 22.3% | 3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40회 | 중의원 의원 | 아오모리현 제2구 | 자유민주당 | 67,962표 | 24.1% | 3위 | 당선 | 중선거구제 |
| 총선거 | 41회 | 중의원 의원 | 도호쿠 비례대표 선거구 | 자유민주당 | 낙선 | 중선거구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