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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산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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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박산은 평양에 위치한 산으로, 단군릉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기록에 따르면, 대박산은 태백산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단군과 관련된 유적지로 인식되었다. 1993년 북한은 대박산 단군릉에서 단군과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했다고 발표하고, 이를 근거로 단군릉을 재건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학계에서는 북한의 발표를 김일성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으로 보고,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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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산 (평양)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리 정보
위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산 정보
이름대박산
다른 이름大朴山

2. 문헌 기록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에서부터 일제 강점기 신채호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에 대박산 또는 단군릉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성종 때 남효온의 시,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 정조 때 승지의 보고, 고종 때 중추원 의관의 상소,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 기사, 신채호의 저술 등에 대박산단군릉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1][2][3][4][5]

2. 1. 조선 시대의 기록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에는 이 대박산이 태백산이라고 되어 있다. 성종 20년(1489년)에 36세의 나이로 관서지방을 여행하며 평양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추강 남효온(1454~1492)의 〈단군묘 알현〉이라는 시에는 단군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1]

1757년(영조 33) ~ 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만든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에는 평양시 강동군에 대하여 “동쪽과 북쪽은 뒤로 산을 등지고 있고, 서쪽과 남쪽은 앞으로 강을 바라보고 있다. 학문과 배움을 숭상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힘쓰며 농업과 잠업에 부지런하다. 이곳 대박산 기슭에는 단군의 무덤이라는 단군릉이 있다”라고 실려 있다.

1786년(정조 10) 8월 9일에 정조는 승지 서형수(徐瀅修)에게서 단군묘에 대한 보고를 받고 단군묘의 알뜰한 관리를 명했다고 한다.[2]

고종 36년(1899년) 중추원 의관 백호섭(白虎燮)이 상소하기를, 평양은 단군, 기자, 동명왕의 세 성인이 도읍하신 땅이며, 단군은 태고 시대에 처음으로 나라를 열었고, 단군 무덤이 강동군(江東郡)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5리 떨어진 태백산(太白山) 아래에 있다고 하였다. 이는 해당 고을의 읍지(邑誌)와 《관서문헌록(關西文獻錄)》에 자세히 기재되어 있고, 허목(許穆)이 쓴 《단군세가(檀君世家)》에도 언급되어 있다고 하였다.[3]

2. 2. 일제 강점기의 기록

1934년 1월 12일 동아일보에 특파원 이은상(李殷相)의 이름으로 대박산에 있는 단군릉에 관한 특집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는 "조선 민족의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성조(聖祖) 단군의 끼치신 능이 평남 강동읍(江東邑)에 자리를 잡으신것은 역사가 증명하는배요 또 세상이 널리 아는배다. 그러나 기나긴 세월에 헐리고 문허저서 하마 그자취조차 잃게쯤 된것이 오늘의 현상이다."라는 내용이 있었다.[4]

"날마다 그것을 눈물로 바라보던 능하의 주민들이 마침내 단군릉 수축 기성회를 조직하고 성금모집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본보에 누차 보도된바 잇거니와 이제 단군릉 참배와 아울러 당지의 현재 실지사정을 보고 듣건댄 이러하다.", "단군릉은 평남 강동읍 대박산(大朴山) 아래 자리를 잡으섯는데 그로 말미암아 지금껏 그 릉하의 마슬 이름을 단군전(檀君殿)이라 하고 또 그 등 넘어 마슬을 제천ㅅ골(祭天洞)이라 부른다."라는 내용과 함께 자세한 기사와 단군 무덤 사진 2장이 실려 있었다.[4]

신채호단군릉을 이해하는데 근대역사학적 해석을 도입했는데, 단지 단군묘의 존재만을 인식했던 박은식과는 달리 정복 군주로서의 측면을 부각시켜 단군이 원정 도중 강동에서 사망한 까닭에 단군릉을 강동에 조성했다고 서술했다.[5]

3. 단군릉 발굴

199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박산에 있는 단군릉에서 단군과 그 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사람 뼈 조각을 발견했다고 발표하고, 이를 근거로 대박산에 단군릉을 크게 세웠다.

3. 1. 발굴 경위

199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박산에 있는 단군릉에서 단군과 그 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사람 뼈 조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굴을 근거로 대박산에 단군릉을 크게 세웠다.

3. 2. 발굴 결과

199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박산에 있는 단군릉에서 단군과 그 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사람 뼈 조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굴을 근거로 대박산에 단군릉을 크게 세웠다.

4. 논란

조선시대에는 단군묘에 대해 믿을 만하다는 취신론(取信論)과 믿을 수 없다는 불신론이 존재했는데, 취신론자들은 여러 단군묘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17세기 중엽 학자 허목단군이 역사적 존재임을 확신하고 이를 토대로 '단군세가'를 저술했으며,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는 단군묘를 장수왕 이후의 고구려 왕릉으로 추측했다. 한말 국사 교과서인 '대동역사', '동국사략', '신정동국역사' 등에서는 단군릉을 역사적 사실로 서술하기도 했다.[5]

4. 1. 대한민국 학계의 입장

대한민국 학계에서는 1993년 북한의 발표에 대해 김일성이 정권을 홍보할 목적으로 단군릉을 발굴, 복원한 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는 견해가 대다수이며, 계속 논란이 진행 중이어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5]

4. 2. 북한의 입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3년 대박산에 있는 단군릉에서 단군과 그 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사람 뼈 조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굴을 근거로 대박산에 단군릉을 크게 세웠다.[5]

4. 3. 정치적, 사회적 영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3년 대박산에 있는 단군릉에서 단군과 그 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사람 뼈 조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굴을 근거로 대박산에 단군릉을 크게 세웠다.[4]

5. 비판적 시각

(주어진 원본 소스가 비어 있으므로, 비판적 시각 섹션에는 작성할 내용이 없습니다.)

5. 1. 역사 왜곡 가능성

조선시대에는 단군묘에 대해 믿을 만하다는 취신론(取信論)과 믿을 수 없다는 불신론이 존재했는데, 취신론자들은 여러 개의 단군묘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17세기 중엽 학자 허목단군이 역사적 존재임을 확신하고 이를 토대로 '단군세가'를 저술했으며,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는 단군묘를 장수왕 이후의 고구려 왕릉으로 추측했다.

한말 국사 교과서인 '대동역사', '동국사략', '신정동국역사' 등에서는 단군릉을 역사적 사실로 서술하기도 했다.[5]

대한민국 학계에서는 1993년 북한의 발표에 대해 김일성이 정권을 홍보할 목적으로 단군릉을 발굴, 복원한 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는 견해가 대다수이다. 대한민국 학계는 현재까지 진행 중인 이 논란을 이유로 북한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참조

[1] 뉴스 국토를 읽다, 이종범의 사림열전(남효온 방랑, 기억을 향한 투쟁)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2013-06-21
[2] 뉴스 신나게 단군을 이야기하자 http://news.donga.co[...] 연합뉴스(네이버) 2013-06-27
[3] 웹사이트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4] 뉴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newslibrary.n[...] 네이버 1934-01-12
[5] 뉴스 단군 무덤 있다 VS 없다..조선의 인식 https://news.naver.c[...] 연합뉴스(네이버) 201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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