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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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환단고기는 환국, 배달국, 고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의 역사를 다룬다고 주장하는 고대사 관련 문헌이다. 이 책은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의 네 가지 주요 문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환국과 배달국이 고조선 이전에 존재했다고 기술한다. 1911년에 계연수가 묶어 간행했다고 알려졌으나, 역사학계에서는 위서로 판단한다. 1979년과 1983년에 출간되었으며, 이후 여러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현대적 용어 사용, 모순된 내용, 저자 및 출간 경위의 불분명함 등으로 위서 논란이 있으며, 사학계에서는 위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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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단고기 |
|---|
2. 구성
《환단고기》는 다음 네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1]
- 『삼성기(三聖紀)』: 안함로(安含老)와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책으로, 상, 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환국과 배달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 『단군세기(檀君世紀)』: 고려 이암이 지은 책으로, 47대에 걸친 단군 임금들의 고조선 역사를 다룬다.
- 『북부여기(北夫餘紀)』: 범장이 지었으며, 북부여 6대 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상, 하편과 가섭원부여기로 구성되어 있다.
- 『태백일사(太白逸史)』: 이맥이 편찬했으며, 환국, 신시배달국, 삼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2. 1. 삼성기 (三聖紀)
안함로(安含老)와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책으로, 상, 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성(三聖)은 환인, 환웅(桓雄), 왕검(王儉)을 뜻한다.삼성기 상편은 안함(安含)이 짓고 계연수(桂延壽)가 소장했으며, 하편은 노원(老元)과 동중(董仲)이 짓고 백진사(白進士) 관묵(寛黙)이 소장했다. 삼성기는 3301년 동안 존속했던 환국과 환웅의 배달국(倍達國) 1565년 통치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1] 본서에 의하면 왕검의 실명은 유장(有帳)이라고 한다.
2. 2. 단군세기 (檀君世紀)
檀君世紀중국어는 고려 시대 이암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책으로, 고조선의 역사를 다룬다.檀君世紀중국어에는 47대에 걸친 단군 임금들의 재위 기간과 주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4대 단군 오사구는 기원전 2133년에 원공패전을 만들게 했고, 기원전 2119년에는 息達에게 명하여 진한, 변한 삼부의 병사를 이끌고 하왕 상을 정벌하게 했다.[4] 5대 단군 구을은 처음으로 십간십이지를 이용하여 역법을 만들었다.[4] 15대 단군 대음 재위 시기인 기원전 1661년에는 은나라 왕 소갑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하기도 했다.[4] 16대 단군 위나 재위 시기인 기원전 1583년에는 구환의 제후들이 영고탑에 모여 삼신상제께 제사를 지내고 환인, 환웅, 치우, 단군왕검을 배향했다.[4]
37대 단군 마물은 남쪽으로 행차하던 중 기수(淇水)에서 붕어했고, 태자 다물이 즉위했다. 마물에 대해서는 즉위와 사망에 관한 기록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이는 왕검조선에 내란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4] 46대 단군 보을 재위 시기인 기원전 296년에는 한개가 수유(須臾)의 병사를 이끌고 궁정을 침범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 했으나, 고열가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이를 격파했다.[4]
2. 2. 1. 단군세기 (檀君世紀)
檀君世紀중국어는 고려 시대 이암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책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수 | 이름 | 재위 기간 | 주요 사건 |
|---|---|---|---|
| 1 | 왕검 |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2240년 | |
| 2 | 부루 | 기원전 2240년 - 기원전 2182년 | |
| 3 | 가륵 | 기원전 2182년 - 기원전 2137년 | |
| 4 | 오사구 | 기원전 2137년 - 기원전 2099년 | |
| 5 | 구을 | 기원전 2099년 - 기원전 2083년 | |
| 6 | 달문 | 기원전 2083년 - 기원전 2047년 | |
| 7 | 한율 | 기원전 2047년 - 기원전 1993년 | |
| 8 | 우서한 | 기원전 1993년 - 기원전 1985년 | |
| 9 | 아술 | 기원전 1985년 - 기원전 1950년 | |
| 10 | 노을 | 기원전 1950년 - 기원전 1891년 | |
| 11 | 도해 | 기원전 1891년 - 기원전 1834년 | |
| 12 | 아한 | 기원전 1834년 - 기원전 1782년 | |
| 13 | 흘달 | 기원전 1782년 - 기원전 1721년 | |
| 14 | 고불 | 기원전 1721년 - 기원전 1661년 | |
| 15 | 대음 | 기원전 1661년 - 기원전 1610년 | |
| 16 | 위나 | 기원전 1610년 - 기원전 1552년 | |
| 17 | 여을 | 기원전 1552년 - 기원전 1484년 | |
| 18 | 동엄 | 기원전 1484년 - 기원전 1435년 | |
| 19 | 고모소 | 기원전 1435년 - 기원전 1380년 | |
| 20 | 고홀 | 기원전 1380년 - 기원전 1337년 | |
| 21 | 소태 | 기원전 1337년 - 기원전 1285년 | |
| 22 | 색불루 | 기원전 1285년 - 기원전 1237년 | |
| 23 | 아홀 | 기원전 1237년 - 기원전 1161년 | |
| 24 | 연나 | 기원전 1161년 - 기원전 1150년 | |
| 25 | 솔나 | 기원전 1150년 - 기원전 1062년 | |
| 26 | 추로 | 기원전 1062년 - 기원전 997년 | |
| 27 | 두밀 | 기원전 997년 - 기원전 971년 | |
| 28 | 해모 | 기원전 971년 - 기원전 943년 | |
| 29 | 마휴 | 기원전 943년 - 기원전 909년 | |
| 30 | 내휴 | 기원전 909년 - 기원전 874년 | |
| 31 | 등올 | 기원전 874년 - 기원전 849년 | |
| 32 | 추밀 | 기원전 849년 - 기원전 819년 | |
| 33 | 감물 | 기원전 819년 - 기원전 795년 | |
| 34 | 오루문 | 기원전 795년 - 기원전 772년 | |
| 35 | 사벌 | 기원전 772년 - 기원전 704년 | |
| 36 | 매륵 | 기원전 704년 - 기원전 646년 | |
| 37 | 마물 | 기원전 646년 - 기원전 590년 | |
| 38 | 다물 | 기원전 590년 - 기원전 545년 | |
| 39 | 두홀 | 기원전 545년 - 기원전 509년 | |
| 40 | 달음 | 기원전 509년 - 기원전 491년 | |
| 41 | 음차 | 기원전 491년 - 기원전 471년 | |
| 42 | 을우지 | 기원전 471년 - 기원전 461년 | |
| 43 | 물리 | 기원전 461년 - 기원전 425년 | |
| 44 | 구물 | 기원전 425년 - 기원전 396년 | |
| 45 | 여루 | 기원전 396년 - 기원전 341년 | |
| 46 | 보을 | 기원전 341년 - 기원전 295년 | |
| 47 | 고열가 | 기원전 295년 - 기원전 238년 |
2. 3. 북부여기 (北夫餘紀)
복애거사 범장(伏崖居士 范樟)이 지었으며, 북부여 6대 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상, 하편과 가섭원부여기로 구성되어 있다.2. 4. 태백일사 (太白逸史)
태백일사(太白逸史)는 이맥이 편찬했으며, 해학 이기(李沂)의 장본(藏本)이다. 여기에는 환국, 신시배달국, 삼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의 역사가 담겨 있다.[1]태백일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1]
-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 「환국본기(桓國本紀)」
- 「신시본기(神市本紀)」
-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馬韓중국어세가(世家) 상·하, 番韓중국어세가(番韓世家) 상·하)
-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이 중 「대진국본기」에는 왜인(倭人) 관련 기사가 있어, 일본의 고사고전(古史古傳) 연구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1]
2. 4. 1. 삼신오제본기 (三神五帝本紀)
단군 시대의 신교(神敎)를 설명하고 있다. 삼일신고와 인류 최초의 경전인 천부경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2. 4. 2. 환국본기 (桓國本紀)
고구려 역사를 서술하면서 전해지지 않는 여러 서적의 인용문을 사용하였다.2. 4. 3. 신시본기 (神市本紀)
神市本紀중국어에서는 발해의 역사와 함께 역대 황제(왕)의 묘호와 시호, 연호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묘호 | 시호 | 연호 | 비고 |
|---|---|---|---|
| 세조(世祖) | 진국열황제(振國烈皇帝) | 중광(重光) | 대중상 |
| 태조(太祖) | 성무고황제(聖武高皇帝) | 천통(天統) | 고왕 |
| 광종(光宗) | 무황제(武皇帝) | 인안(仁安) | 무왕 |
| 세종(世宗) | 광성문황제(光聖文皇帝) | 대흥(大興) | 문왕 |
| 폐위되어 묘호와 시호 없음 | 기록 없음 | 대원의 | |
| 인종(仁宗) | 성황제(成皇帝) | 중흥(中興) | 성왕, 휘 화흥(華興) |
| 목종(穆宗) | 강황제(康皇帝) | 정력(正曆) | 강왕 |
| 의종(毅宗) | 정황제(定皇帝) | 영덕(永德) | 정왕 |
| 강종(康宗) | 희황제(僖皇帝) | 주작(朱雀) | 희왕 |
| 철종(哲宗) | 간황제(簡皇帝) | 태시(太始) | 간왕 |
| 성종(聖宗) | 선황제(宣皇帝) | 건흥(建興) | 선왕 |
| 장종(莊宗) | 화황제(和皇帝) | 함화(咸和) | 대이진 |
| 순종(順宗) | 안황제(安皇帝) | 대정(大定) | 대건황 |
| 명종(明宗) | 경황제(景皇帝) | 천복(天福) | 대현석 |
| 묘호 없음 | 애제(哀帝) | 청태(淸泰) | 대인선 |
대위해는 《환단고기》에서 황제로 기록하지 않았고 당시에 사용된 연호도 기록하지 않았다. 이는 《환단고기》가 처음 쓰여진 1911년 당시 대위해는 발해의 국왕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1940년에야 발해의 국왕으로 인정되었던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진국본기〉에서는 대진국이라는 명칭만 사용되며 발해로 국호를 바꾸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에 대해 《환단고기》를 주해한 임승국 교수는 발해라는 이름은 외부에서 부르는 이름이었지 발해인 스스로가 부른 국호는 대진국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2. 4. 4. 삼한관경본기 (三韓管境本紀)
삼한관경본기는 삼한 (마한, 번한)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나, 현재 전해지는 내용에는 고려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을 뿐 삼한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3. 《환단고기》에서 언급된 문헌
- 확인되는 문헌
| 문헌명 | 설명 |
|---|---|
| 사기 |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역사서이다. |
| 운급칠첨 | 도교 경전으로, 북송 시대에 장군방(張君房)이 편찬하였다. 〈헌원본기〉가 포함되어 있다. |
| 관자 |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 관중(管仲)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전국시대 학자들의 사상을 모아놓은 책이다. |
| 한서 |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저술한 역사서로,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
- 확인되지 않는 문헌
| 문헌명 | 설명 |
|---|---|
| 대변설(大辨設) | 《환단고기》에 언급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 문헌이다. |
| 삼성밀기(三聖密記) | 《환단고기》에 언급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 문헌이다. |
| 삼한비기(三韓秘記) | 《환단고기》에 언급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 문헌이다. |
| 조대기(朝代記) | 《환단고기》에 언급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 문헌이다. |
| 진역유기(震域遺記) | 《환단고기》에 언급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 문헌이다. |
| 표훈천사(表訓天祠) | 《환단고기》에 언급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는 문헌이다. |
- 《삼성기(三聖記)》: 환웅이 다스린 1565년 동안의 신시배달국과 그 전신이라 하는 3,301년간의 환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16]
- 《단군세기(檀君世紀)》: 47대의 단군이 2천여 년간 다스린 고조선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16]
- 《북부여기(北夫餘紀)》: 북부여에 6명의 왕이 있었으며 이것이 고구려의 전신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16]
- 《태백일사(太白逸史)》: 환국, 배달국, 삼한, 고구려, 발해, 고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16]
- 『삼성기(三聖記)』: 환인, 환웅(桓雄), 왕검(王儉)을 삼성을 말한다.[16]
- 상편(上編): 안함(安含) 찬, 계연수(桂延壽)의 장본(藏本)[16]
- 하편(下編): 노원(老元)과 동중(董仲) 찬, 백진사(白進士) 관묵(寛黙)의 장본(藏本). 본서에 의하면 단군 왕검의 실명은 유장(有帳)이라고 한다.[16]
- 『단군세기(檀君世紀)』: 고려의 홍행화(紅杏花)의 이촌 선생 문정공(文貞公)이 1283년에 찬했다고 하며, 백진사 관묵의 장본[16]
- 『북부여기(北夫餘紀)』: 범총(范橦) 찬, 이진사(李進士) 향목식(享木式) 가(家) 소장본[16]
-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16]
- 『태백일사(太白逸史)』: 이맥(李陌) 편, 해학(海鶴) 이기(李沂)의 장본[16]
-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환국본기(桓國本紀)」、「신시본기(神市本紀)」、「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마한세가(世家) 상·하, 번한세가(番韓世家) 상·하),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로 구성되어 있다.[16]
4. 주요 내용
《환단고기》는 고조선 이전에 환국과 배달국이 존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두 나라는 환인과 환웅이 통치하였으며, 각각 7대와 18대를 전하였다고 한다.
- 『삼성기(三聖記)』: 환인, 환웅(桓雄), 왕검(王儉)을 삼성이라 칭한다.
- 상편(上編): 안함(安含) 찬, 계연수(桂延壽)의 장본(藏本)
- 하편(下編): 노원(老元)과 동중(董仲) 찬, 백진사(白進士) 관묵(寛黙)의 장본(藏本). 단군 왕검의 실명은 유장(有帳)이라고 한다.
- 『단군세기(檀君世紀)』: 고려 홍행화(紅杏花)의 이촌 선생 문정공(文貞公)이 1283년에 찬했다고 하며, 백진사 관묵의 장본. 이 기록으로 단군기원 원년을 결정했다는 설이 있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 『북부여기(北夫餘紀)』: 범총(范橦) 찬, 이진사(李進士) 향목식(享木式) 가(家) 소장본
-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
- 『태백일사(太白逸史)』: 이맥(李陌) 편, 해학(海鶴) 이기(李沂)의 장본.
-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환국본기(桓國本紀)」,「신시본기(神市本紀)」,「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마한세가(世家) 상·하, 번한세가(番韓世家) 상·하),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로 구성되어 있다. 「대진국본기」에는 왜인(倭人) 관련 기사가 있어, 일본의 고사고전(古史古傳) 연구자들이 연구하기도 한다.
환국과 배달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를 참고하라.
4. 1. 환국 (桓國)
《환단고기》는 고조선 이전에 환국과 배달국이 존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두 나라는 환인과 환웅이 통치하였으며, 각각 7대와 18대를 전하였다고 한다.4. 1. 1. 건국
환인은 사백력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하여 신이 되었다고 한다. 환인과 함께 하늘로부터 어린 남녀 800명이 천해의 동쪽 땅인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와 환국을 건국하였다고 한다. 사백력을 시베리아로, 천해는 바이칼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23]4. 1. 2. 12연방
《환단고기》에는 환국을 구성하는 12개 나라가 나오지 않는다.4. 1. 3. 역대 환인
《환단고기》에서는 고조선 이전에 환국이 존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환국을 다스린 역대 7명의 환인은 다음과 같다.| 대수 | 이름 |
|---|---|
| 1 | 안파견 |
| 2 | 혁서 |
| 3 | 고시리 |
| 4 | 주우양 |
| 5 | 석제임 |
| 6 | 구을리 |
| 7 | 지위리 |
4. 2. 신시배달국 (神市倍達國)
《삼성기》의 〈신시역대기〉와 《태백일사》〈신시본기〉에서는 신시배달국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단군이 세운 고조선 이전의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한민족의 고대 국가라고 한다. 환웅이 다스린 국가로 18대 1565년의 역년이며,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치우 또한 배달국의 한 임금(14대 자오지 환웅)으로 기록되어 있다.[1]4. 2. 1. 역대 환웅
| 대수 | 이름 | 재위 기간(년) | 재위 시작(년) | 수명(세) |
|---|---|---|---|---|
| 1 | 거발한 환웅 | 94 | 기원전 3898년 | 120 |
| 2 | 거불리 환웅 | 86 | 기원전 3804년 | 102 |
| 3 | 우야고 환웅 | 99 | 기원전 3718년 | 135 |
| 4 | 모사라 환웅 | 107 | 기원전 3619년 | 129 |
| 5 | 태우의 환웅 | 93 | 기원전 3512년 | 115 |
| 6 | 다의발 환웅 | 98 | 기원전 3419년 | 110 |
| 7 | 거련 환웅 | 81 | 기원전 3321년 | 140 |
| 8 | 안부련 환웅 | 73 | 기원전 3240년 | 94 |
| 9 | 양운 환웅 | 93 | 기원전 3167년 | 139 |
| 10 | 갈고 환웅 (독로한 환웅) | 100 | 기원전 3071년 | 125 |
| 11 | 거야발 환웅 | 92 | 기원전 2971년 | 149 |
| 12 | 주무신 환웅 | 105 | 기원전 2897년 | 123 |
| 13 | 사와라 환웅 | 67 | 기원전 2774년 | 100 |
| 14 | 자오지 환웅 (치우천왕) | 109 | 기원전 2707년 | 151 |
| 15 | 치액특 환웅 | 89 | 기원전 2598년 | 118 |
| 16 | 축다리 환웅 | 56 | 기원전 2509년 | 99 |
| 17 | 혁다세 환웅 | 72 | 기원전 2453년 | 97 |
| 18 | 거불단 환웅 (단웅) | 48 | 기원전 2381년 | 82 |
4. 2. 2. 태호 복희
제5대 환웅인 태우의 환웅의 열두 아들 중 막내가 태호 복희이며, 그의 후손이 현재의 산시성(山西省)에 살았다고 한다.[1] 팔괘는 태호 복희가 처음 만들었다고 환단고기에서 밝히고 있다.[1]4. 3. 단군조선 (檀君朝鮮)
《환단고기》〈단군세기〉는 단군의 치세와 역년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단군조선은 기원전 2333년 왕검이 건국한 이후 기원전 238년 고열가까지 47대, 2096년간 지속되었다고 한다.[24]역대 단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 역대 단군 ==== 섹션을 참조하라.
4. 3. 1. 역대 단군
《환단고기》〈단군세기〉에 따르면, 단군은 총 47대이며 각 단군의 재위 기간과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대수 | 이름 | 재위 기간 | 주요 사건 |
|---|---|---|---|
| 1 | 왕검 |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2240년 (93년) | |
| 2 | 부루 | 기원전 2240년 ~ 기원전 2182년 (58년) | |
| 3 | 가륵 | 기원전 2182년 ~ 기원전 2137년 (45년) | |
| 4 | 오사구 | 기원전 2137년 ~ 기원전 2099년 (38년) | 기원전 2133년 원공패전 제작, 기원전 2119년 하왕 상 정벌 |
| 5 | 구을 | 기원전 2099년 ~ 기원전 2083년 (16년) | 십간십이지를 이용한 역법 제작 |
| 6 | 달문 | 기원전 2083년 ~ 기원전 2047년 (36년) | |
| 7 | 한율 | 기원전 2047년 ~ 기원전 1993년 (54년) | |
| 8 | 우서한 | 기원전 1993년 ~ 기원전 1985년 (8년) | |
| 9 | 아술 | 기원전 1985년 ~ 기원전 1950년 (35년) | |
| 10 | 노을 | 기원전 1950년 ~ 기원전 1891년 (59년) | |
| 11 | 도해 | 기원전 1891년 ~ 기원전 1834년 (57년) | |
| 12 | 아한 | 기원전 1834년 ~ 기원전 1782년 (52년) | |
| 13 | 흘달 | 기원전 1782년 ~ 기원전 1721년 (61년) | |
| 14 | 고불 | 기원전 1721년 ~ 기원전 1661년 (60년) | |
| 15 | 대음 | 기원전 1661년 ~ 기원전 1610년 (51년) | 기원전 1661년 은나라 소갑과 화친 |
| 16 | 위나 | 기원전 1610년 ~ 기원전 1552년 (58년) | 기원전 1583년 영고탑에서 삼신상제, 환인, 환웅, 치우, 단군왕검 배향 |
| 17 | 여을 | 기원전 1552년 ~ 기원전 1484년 (68년) | |
| 18 | 동엄 | 기원전 1484년 ~ 기원전 1435년 (49년) | |
| 19 | 구모소 | 기원전 1435년 ~ 기원전 1380년 (55년) | |
| 20 | 고홀 | 기원전 1380년 ~ 기원전 1337년 (43년) | |
| 21 | 소태 | 기원전 1337년 ~ 기원전 1285년 (52년) | |
| 22 | 색불루 | 기원전 1285년 ~ 기원전 1237년 (48년) | |
| 23 | 아홀 | 기원전 1237년 ~ 기원전 1161년 (76년) | |
| 24 | 연나 | 기원전 1161년 ~ 기원전 1150년 (11년) | |
| 25 | 솔나 | 기원전 1150년 ~ 기원전 1062년 (88년) | |
| 26 | 추로 | 기원전 1062년 ~ 기원전 997년 (65년) | |
| 27 | 두밀 | 기원전 997년 ~ 기원전 971년 (26년) | |
| 28 | 해모 | 기원전 971년 ~ 기원전 943년 (28년) | |
| 29 | 마휴 | 기원전 943년 ~ 기원전 909년 (34년) | |
| 30 | 나휴 | 기원전 909년 ~ 기원전 874년 (35년) | |
| 31 | 등올 | 기원전 874년 ~ 기원전 849년 (25년) | |
| 32 | 추밀 | 기원전 849년 ~ 기원전 819년 (30년) | |
| 33 | 감물 | 기원전 819년 ~ 기원전 795년 (24년) | |
| 34 | 오루문 | 기원전 795년 ~ 기원전 772년 (23년) | |
| 35 | 사벌 | 기원전 772년 ~ 기원전 704년 (68년) | |
| 36 | 매륵 | 기원전 704년 ~ 기원전 646년 (58년) | |
| 37 | 마물 | 기원전 646년 ~ 기원전 590년 (56년) | 기수(淇水)에서 붕어 |
| 38 | 다물 | 기원전 590년 ~ 기원전 545년 (45년) | |
| 39 | 두홀 | 기원전 545년 ~ 기원전 509년 (36년) | |
| 40 | 달음 | 기원전 509년 ~ 기원전 491년 (18년) | |
| 41 | 음차 | 기원전 491년 ~ 기원전 471년 (20년) | |
| 42 | 을우지 | 기원전 471년 ~ 기원전 461년 (10년) | |
| 43 | 물리 | 기원전 461년 ~ 기원전 425년 (36년) | |
| 44 | 구물 | 기원전 425년 ~ 기원전 396년 (29년) | |
| 45 | 여루 | 기원전 396년 ~ 기원전 341년 (55년) | |
| 46 | 보을 | 기원전 341년 ~ 기원전 295년 (46년) | 기원전 296년 한개의 반란 진압 |
| 47 | 고열가 | 기원전 295년 ~ 기원전 238년 (58년) |
4. 4. 북부여 (北夫餘)
해모수(解慕漱)는 고리국 사람으로, 23세에 군대를 일으켜 8년째에 단군이 되었다. 고조선의 고열가 황제는 장수들이 더 이상 명령을 따르지 않게 되자 권력을 버리고 제국을 다섯 명의 중앙 귀족, 오가에게 넘겼다. 해모수는 백악산을 습격하여 차지하고 천왕랑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기원전 195년, 단군 해모수는 죽고 태자 모수리가 왕위를 이어받았다.[1]모수리(慕漱離, 기원전 195년경 ~ 기원전 170년)는 북부여의 두 번째 단군이자 고진의 형이다. 기원전 170년, 모수리 단군은 죽고 태자 고해사가 왕위를 계승하였다.[1]
고해사(高奚斯, 기원전 170년 ~ 기원전 121년)는 북부여의 세 번째 단군으로, 고우루와 동부여의 창건자 해부루의 아버지이다. 기원전 121년, 고해사 단군이 죽자 태자 고우루가 북부여의 네 번째 단군이 되었다.[1]
고우루(高於婁, 기원전 121년 ~ 기원전 86년)는 북부여의 네 번째 단군이자 동부여 창건자 해부루의 형이다. 고우루는 군대를 보내 위만 조선(기원전 195년경 ~ 기원전 108년)의 경계를 방비하였다. 한무제(재위 기원전 141년 ~ 기원전 87년)의 공격으로 위만 조선이 멸망하자, 북부여는 4군을 설치하려는 한나라의 병력을 공격하였다. 기원전 86년, 고우루는 상속자 없이 죽었다.[1]
고두막(高豆莫, 기원전 108년 ~ 기원전 60년)은 동명의 창건자이자 북부여의 5번째 단군으로, 고열가 단군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기원전 108년, 고두막은 졸본에서 동명을 창건하고 스스로 동명이라 칭하였다. 동명왕은 군대를 모아 한나라 군대를 공격, 19회의 전투 끝에 몰아냈다. 기원전 87년, 북부여 단군 고우루는 동명왕에게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을 전해 듣고 근심하다 병들어 사망하였다. 고우루 사후, 그의 동생 해부루가 왕위에 올라 기원전 86년 가섭원으로 옮겨 동부여를 세웠다. 동명왕은 고무서를 북부여의 태자로 삼았다.[1]
고무서(高無胥, 기원전 60년 ~ 기원전 58년)는 북부여의 6번째 단군이다. 기원전 59년, 고두막 사후 왕좌에 올랐다. 기원전 58년, 해모수의 직계 후손 고주몽이 졸본부여로 오자, 고무서는 고주몽이 비범한 인물임을 알아보고 딸과 결혼시켰다. 고주몽은 고무서의 뒤를 이어 북부여의 7번째 단군이 되었다.[1]
4. 4. 1. 역대 단군
| 대수 | 이름 | 재위 기간 |
|---|---|---|
| 1 | 해모수 | 기원전 195년 ~ ? |
| 2 | 모수리 | 기원전 195년경 ~ 기원전 170년 |
| 3 | 고해사 | 기원전 170년 ~ 기원전 121년 |
| 4 | 고우루 | 기원전 121년 ~ 기원전 86년 |
| 5 | 고두막 | 기원전 108년 ~ 기원전 60년 |
| 6 | 고무서 | 기원전 60년 ~ 기원전 58년 |
4. 4. 2. 해부루와 동부여
해부루는 북부여의 4번째 단군 고우루의 동생이었다. 기원전 86년 고우루가 죽자 고열가의 후손 고두막이 왕위를 차지하고 해부루를 동쪽으로 밀어냈다. 해부루는 동해 근처의 가섭원으로 이동하여 동부여를 건국하였다.[1]4. 5. 삼한 (三韓)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의 마한, 번한 역사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4. 6. 발해 (渤海)
요약이 주어졌으나, 참조할 원본 소스에 내용이 없으므로, 아무 내용도 출력할 수 없습니다.5. 출간 경위 및 경과
1911년 계연수가 전해지는 사서를 묶어 《환단고기》라는 책명으로 간행하였다고 하나, 30부 간행 사실 및 판본은 확인되지 않는다.[17]
이유립은 1920년 이전에 계연수(~ 1920년)로부터 《환단고기》의 원본을 건네받았고, 1975년에 보관해 오던 원본이 모든 관련 자료와 함께 유실되었다가 기억을 되살려 복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17]
1979년 11월, 필사·영인한 한문본(100부 한정)이 광오이해사라는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고, 이유립은 박창암을 통하여 일본의 변호사 출신 재야학자 가지마 노보루(鹿島曻)에게 직접 원본을 전달하였다.[18][19]
1982년 일본어 번역본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다. 가지마 노보루는 이 책에 붙여진 상세한 해제를 통해 고대 한반도에 ‘우가야 왕조’가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1983년 이유립은 배달의숙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환단고기》를 다시 영인·출간하였다. 이때 이유립은 1979년에 출간된 《환단고기》를 "조병윤이 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로 출판한 것"이라고 주장[20] 하며 자신이 일부 오자를 교정하여 새롭게 출판하였다고 말하였다.[21] 그러나 이때 출판된 배달의숙본 《환단고기》는 출간 연도를 1979년으로 쓰고 있다.
1985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첫 한글 번역본[22]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이듬해 6월에는 4개 출판사에서 출간, 베스트셀러권에 올랐다.[13]
6. 평가 및 논란
《환단고기》는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학계와 재야사학계 간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책이다. 대한민국과 일본 사학계는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로 보는 것이 지배적인 반면, 일부 재야사학계에서는 진서(眞書)로 간주한다.
위서론대한민국 사학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어 《환단고기》를 위서로 판단한다.
- 출간 경위 불분명: 1911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나, 1979년에야 등장한 이유가 불분명하고, 원본이 제시되지 않는다.
- 시대착오적 용어 및 개념: 청나라 시대의 지명이나 가경 이후의 단어 "장춘", "남녀평등", "부권" 등 근대 이후에 등장한 용어가 사용되었다.
- 기존 역사와의 불일치 및 내용 모순: 기존 역사 기록과 맞지 않고, 내용 간에 모순이 발견된다.
- 비현실적인 내용: 환국의 영토가 남북극을 모두 포함한다는 등의 내용이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 표절 의혹: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기존 역사서 및 위서를 베껴 쓴 흔적이 발견된다.[31]
일본 학계 역시 시대와 맞지 않는 용어 등장, 인용 문헌의 불명확성 등을 이유로 《환단고기》를 위서로 간주하며, 일본의 고사고전(古史古伝일본어)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진서론일부 재야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가 진서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근대 용어 등이 일부 추가되었더라도 내용 전부가 위작된 것은 아니며,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면 더 완벽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라고 주장한다.[27]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는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오성취루' 천문현상 기록을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하여, 기원전 1734년에 기록과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28][29]
진서론과 위서론 비교
| 진서론 | 위서론(반론) |
|---|---|
| 발해 3대 문왕의 연호 대흥(大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정효공주 묘지문에서 확인되었다. | 해당 연호는 《신당서》와 《발해고》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
|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세운 대제(大齊)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에 처음 기록되었다. | 《신당서》에 이정기 및 그의 후손에 대한 열전이 존재한다. |
| 장수왕의 연호 건흥(建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1915년 출토된 고구려 불상에서 확인되었다. |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증거가 되지 못한다. |
| 연개소문의 조부와 증조부의 이름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1923년 출토된 천남생 묘지명에서 확인되었다. |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증거가 되지 못한다. |
| 상나라 무정(武丁)의 귀방(鬼方) 공격 기록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갑골문을 통해 확인되었다. | 해당 기록은 《주역》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
| 《환단고기》에는 단군이 북경 일대를 다스린 단군조선의 천자(天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북성 중산묘에서 발굴된 청동기에 ‘천자건방중산후’라는 명문이 있다. 중국 최초의 천자 칭호 사용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 때이다. | 진시황이 최초로 사용한 것은 황제 칭호이며, 천자 칭호는 주나라 이전부터 사용되었다. |
조작설 및 기타 논란《환단고기》는 이유립에 의해 조작된 창작물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44] 또한, 《환단고기》가 민족주의 역사책이라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범투란주의 혹은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권과 유사한 확장적 민족주의의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45][46]
한편,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환단고기》를 이용하여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를 비난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환단고기》가 오히려 동북공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모순을 보여준다.[48]
6. 1. 사학계의 의견
대한민국과 일본 사학계는 《환단고기》를 위서로 보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환단고기》는 1911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나, 1979년에야 등장한 이유가 불분명하고, 원본이 제시되지 않으며, 후대에 등장한 용어나 학설이 반영되어 있고, 기존 역사와 어긋나며, 내용이 모순된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15]대부분의 한국 고대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장에 동의하며, 저술 시기에 대해서만 1920년대 초반, 1949년, 1979년 등으로 이견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환단고기》에 기록된 광대한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의 역사가 근거 없고 과장된 것으로 판단하여 사료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15] 또한, 《환단고기》 내용에 친일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25]
일본 학계는 시대와 맞지 않는 용어의 등장, 인용 문헌의 불명확성 등을 이유로 《환단고기》를 위서로 간주하며, 일본의 고사고전(古史古伝일본어)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6. 1. 1.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고대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15] 범례에는 1911년에 완성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1979년이 되어서야 등장한 이유가 불명확하고, 원본이 제시되지 않으며, 후대에 등장한 용어나 학설이 반영되어 있고, 기존의 역사와도 어긋나며, 내용이 모순된다는 이유로 후대의 위작으로 여기는 것이다.단기고사와 함께 후대의 위작이라는 주장에 대부분의 한국 고대사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으며 단지 저술 시기에 대해서 1920년대 초반, 1949년, 1979년 부근이라는 등의 이견이 있을 뿐이다. 광대한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의 기록 등은 근거가 없고 과장된 역사로 판단하며, 사료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보고 있다.[15] 또한 《환단고기》의 내용에서 친일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지적되기도 한다.[25]
대부분의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일본 역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책이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본다.
- 이 문헌은 현대적 어구와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 평등(男女平權, '남녀 평등 권리')과 가부장제(父權, '아버지의 권리')에 대한 언급이 있다.
- 《환단고기》가 처음 출판된 방식이 불분명하다.
- * 《삼성기》의 두 저자라고 주장하는 안함로와 원동중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기록이 없다. 안함, 로원, 동중이라는 세 사람이 두 명의 인물로 오인된 것으로 보인다.
- * 이기는 1909년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1911년에 《환단고기》 편찬을 감독할 수 없었다.[8]
- * 《천부경》은 1916년 대종교에 의해 처음 발견되고 알려졌기 때문에, 《천부경》의 내용은 1911년 이전에 《태백일사》에 포함될 수 없었다.
- * 《환단고기》를 편찬했다고 하는 계연수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신뢰할 만한 역사적 기록이 없다.
- * 1911년 《환단고기》 초판본 (또는 1979년 이전에 출판된 어떤 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유립은 1911년 판본이 한국 전쟁 중에 불에 타거나 홍수로 유실되었다고 주장하며 "기억을 통해 《환단고기》를 복원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비판은 이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비현실적인 묘사들을 겨냥했다.[9] 예를 들어:
- 현대적 척도로 계산하면, 환국의 영토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이른다고 한다.
- 배달국의 통치자들은 평균 120~150년을 살았다고 한다.[10]
- 환국은 석기 시대에 복잡한 관료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 《환단고기》의 일부 기록은 서로 모순된다.
본서는 1979년에 대한민국에서 출판되었다. 일부 재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위서인 본서를 역사 국정 교과서에 게재해 달라는 요구 운동이 있었으나, 역사 국정 교과서 게재는 보류되었다[12]。
6. 1. 2. 일본
주류 학계는 시대와 맞지 않는 용어의 등장, 인용 문헌이 불명확하다는 등의 이유로 《환단고기》를 고대 역사를 주장하기 위한 위서로 간주한다. 또한 고사고전(古史古伝일본어)등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15]대부분의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일본 역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책이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본다.
- 이 문헌은 현대적 어구와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 평등(男女平權, '남녀 평등 권리')과 가부장제(父權, '아버지의 권리')에 대한 언급이 있다.
- 《환단고기》가 처음 출판된 방식이 불분명하다.
- 《삼성기》의 두 저자라고 주장하는 안함로와 원동중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기록이 없다. 안함, 로원, 동중이라는 세 사람이 두 명의 인물로 오인된 것으로 보인다.
- 이기는 1909년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1911년에 《환단고기》 편찬을 감독할 수 없었다.[8]
- 《천부경》은 1916년 대종교에 의해 처음 발견되고 알려졌기 때문에, 《천부경》의 내용은 1911년 이전에 《태백일사》에 포함될 수 없었다.
- 《환단고기》를 편찬했다고 하는 계연수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신뢰할 만한 역사적 기록이 없다.
- 1911년 《환단고기》 초판본 (또는 1979년 이전에 출판된 어떤 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유립은 1911년 판본이 한국 전쟁 중에 불에 타거나 홍수로 유실되었다고 주장하며 "기억을 통해 《환단고기》를 복원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비판은 이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비현실적인 묘사들을 겨냥했다.[9] 예를 들어:
- 현대적 척도로 계산하면, 환국의 영토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이른다고 한다.
- 배달국의 통치자들은 평균 120~150년을 살았다고 한다.[10]
- 환국은 석기 시대에 복잡한 관료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 《환단고기》의 일부 기록은 서로 모순된다.
한일 병합 다음 해에 편찬된 이 책의 "단군세기"나 "태백일사"에는 중국 청나라 시대의 지명이나 가경 이후의 단어 "장춘"이나 "태백일사"의 인용서 "조대기"에 남녀평등, 부권 등의 용어가 있다. 또한 편찬에 필요한 인용 문헌 등이 명확하지 않고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고대 이래 전해 내려온 진실을 기록했다고 주장하여 위서로 여겨진다. 이 점에서 일본의 고사고전과 유사하다.
사실, 이 책은 일본의 고사고전 연구가 가시마 노보루에 의해 1982년에 고사고전과 같은 취급으로 일본어 번역서가 출판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유명해졌다.
6. 2. 진위 논란
《환단고기》는 진위 여부를 두고 진서라는 주장과 위서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위서론《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15]
- 실존 인물 및 공개 날짜 모순: 책을 엮었다고 알려진 계연수가 실존 인물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책이 공개된 날짜에 대한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 비현실적인 내용: 환국의 영토가 남북극을 모두 포함한다는 등의 비현실적인 내용이 있는데, 이는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 비정상적인 수명: 환인의 평균 수명이 472년 또는 9026년이라는 등,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수명이 기록되어 있다.
- 영토 점령의 모순: 끊임없이 영토를 넓혀가지만, 오히려 영토가 줄어드는 이상한 기록이 있다.
- 다른 책 표절: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이미 존재하는 여러 역사책 및 위서를 베껴 쓴 흔적이 많이 발견된다.[31] 신채호가 주장한 연개소문 사망 연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연도이다.
- 부적절한 용어 사용: 시베리아(사백력), 파미르고원(파나류산), 수메르(수밀이) 등 근대 이후에 등장한 용어나, 실제 사용 시기가 맞지 않는 용어(고려, 몽고, 흑수, 영고탑, 산동 등)가 사용되었다. 특히 '남녀평권', '부권', '상춘', '세계만방', '산업', '문화' 등은 근대 이후에 등장한 단어들이다.
- 저술 연대 문제: 1911년에 출간되었다는 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1979년에 출간되기 전까지 《환단고기》나 그 원본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다.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직접 쓰고 고친 흔적도 발견된다.
- 기존 역사 기록과 불일치: 기존의 역사 기록과 맞지 않는 내용이 많다.
- 내용상의 모순: 1909년에 사망한 이기가 1911년에 완성된 《환단고기》를 감수했다는 설명 등 내용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15] 신채호가 잘못 해석한 "전삼한, 후삼한설"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32]
- 유물 부재: 수메르(수밀이)와 티베트(지백특)까지 진출한 거대한 제국이었다는 고조선의 유적(거주지나 무덤)이 전혀 없다.
- 당시 시대 상황과 불일치: 환국과 배달국이 존재했다는 시기는 신석기 시대로 국가가 존재할 수 없었으며, 군현제는 당시의 통치 체제로서 불가능하다.
- 발해 왕 계보 오류: 《환단고기》는 발해의 왕 계보를 14대로 기록하고 있지만, 김육불에 의해 발해의 14대 왕인 대위해가 발견되면서 발해의 군주는 모두 15명임이 확인되었다.[33]
- 천문 기록 반론: 오성취합 기록은 후대에 계산된 기록을 사용한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34]
《환단고기》는 출간 경위 자체가 모순이 많으며, 이유립에 의해 조작된 창작물이라는 주장도 있다.[44]
- 계연수의 행적 모순: 계연수는 단군교에서 전하는 행적과 《환단고기》에서 전하는 행적이 완전히 다르다.[39]
- 대시전 건립 연도 오류: 《환단고기》는 1949년에 강화도의 대시전에서 정서되었다고 하나, 대시전은 1969년에 건립되었다.[40][41]
- 이유립의 수정 흔적: 이유립이 1970년대 초반부터 《환단고기》의 일부를 공개했는데, 1979년 및 1983년 판본과 내용이 다른 부분이 많다.[42]
- 표절 의혹: 《환단고기》의 내용 상당 부분은 《단기고사》 및 《규원사화》와 문장 구조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43]
《환단고기》가 민족주의 역사책이라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범투란주의 혹은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권과 유사한 확장적 민족주의의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45][46]
진서론《환단고기》가 진서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근대 용어 등이 일부 추가되었더라도 내용 전부가 위작된 것은 아니며,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면 더 완벽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라는 의견이다.[27]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는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오성취루' 천문현상 기록을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하여, 기원전 1734년에 기록과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오성취루' 천문기록은 당시 국가라는 틀 안에서 측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후대에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술했을 경우 정답이 될 확률은 0.007%로 가필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므로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신빙성도 함께 증명되었다는 의견이다.[28][29] 전 한국천문연구원장 박석재도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30]
진서론과 위서론 비교진서론과 위서론(반론)은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다.
| 진서론 | 위서론(반론) |
|---|---|
| 발해 3대 문왕의 연호 대흥(大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정효공주 묘지문에서 확인되었다. | 해당 연호는 《신당서》와 《발해고》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
|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세운 대제(大齊)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에 처음 기록되었다. | 《신당서》에 이정기 및 그의 후손에 대한 열전이 존재한다. |
| 장수왕의 연호 건흥(建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1915년 출토된 고구려 불상에서 확인되었다. |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증거가 되지 못한다. |
| 연개소문의 조부와 증조부의 이름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1923년 출토된 천남생 묘지명에서 확인되었다. |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증거가 되지 못한다. |
| 상나라 무정(武丁)의 귀방(鬼方) 공격 기록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갑골문을 통해 확인되었다. | 해당 기록은 《주역》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
| 《환단고기》에는 단군이 북경 일대를 다스린 단군조선의 천자(天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북성 중산묘에서 발굴된 청동기에 ‘천자건방중산후’라는 명문이 있다. 중국 최초의 천자 칭호 사용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 때이다. | 진시황이 최초로 사용한 것은 황제 칭호이며, 천자 칭호는 주나라 이전부터 사용되었다. |
이러한 견해는 역사 연구에 활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36]과, 직접적인 인용은 피하면서 대체적인 흐름만은 참조할 수 있다는 주장[37]이 있다. 다만 후자에서 천문학을 동원해 역사해석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박[38]도 있다.
6. 2. 1. 진서론
《환단고기》가 진서라는 주장과 위서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고준환의 《신명나는 한국사》의 진서론과 문영의 《만들어진 한국사》의 반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6]| 진서론 | 위서론(반론) |
|---|---|
| 발해 3대 문왕의 연호 대흥(大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정효공주 묘지문에서 확인되었다. | 해당 연호는 《신당서》에 이미 기록되어 있으며, 《발해고》에도 실려 있어 《환단고기》가 최초가 아니다. |
|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세운 대제(大齊)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에 있다. | 《신당서》에 이정기 및 후손에 대한 열전이 존재한다. |
| 장수왕의 연호 건흥(建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1915년 출토된 고구려 불상에서 확인되었다. |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1915년 발굴 내용은 진서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
| 연개소문의 조부와 증조부 이름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1923년 출토된 천남생 묘지명에서 확인되었다. |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1923년 발굴 내용은 진서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
| 상나라 무정(武丁)의 귀방(鬼方) 공격 기록이 《환단고기》에 있는데, 갑골문으로 확인되었다. | 무정의 귀방 공격 기록은 《주역》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
| 《환단고기》에는 단군이 북경 일대를 다스린 단군조선의 천자(天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북성 중산묘에서 발굴된 청동기에 ‘천자건방중산후’라는 명문이 있다. 중국이 최초로 천자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 때이다. | 진시황이 최초로 사용한 것은 황제라는 호칭이며, 천자라는 호칭은 주나라 이전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
근대 용어 등으로 후대에 일부 가필되었더라도 내용 전부가 위작된 것은 아니며, 조작했다면 보다 완벽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라는 의견이다.[27]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는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오성취루' 천문현상 기록을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한 결과, 기원전 1734년에 기록과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다. '오성취루' 천문기록은 당시 국가라는 틀 안에서 측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후대에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술했을 경우 정답이 될 확률은 0.007%로 가필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므로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신빙성도 함께 증명되었다는 의견이다.[28][29] 전 한국천문연구원장 박석재도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30]
일부 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부분적으로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고대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다고 믿으며, 더 학문적인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 기원전 1733년에 다섯 개의 별이 일직선으로 정렬되었다고 주장하는 천문 기록(오성취루|五星聚婁중국어)은 박창범 교수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그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했다.[2] 그는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가정 하에 기원전 1734년에 다섯 개의 별이 일직선으로 정렬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법학 교수 고준환은 『환단고기』가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3][4][5]
- 『환단고기』에 묘사된 고조선의 영토는 비파형 동검 문화의 분포 지역과 일치한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 지역은 윤 모씨 등[6]과 이병도에 의해 주장된다.[7]
6. 2. 2. 위서론
대한민국 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가 일제강점기 이후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라고 보는 것이 주류적 견해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실존 인물 및 공개 날짜 모순: 계연수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불확실하며, 책의 공개 날짜에 대한 약속과 실제 공개 날짜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15]
- 비현실적인 내용: 환국의 영토가 남북극을 모두 포함한다는 등의 비현실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의 측정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불가능하다.[15]
- 비정상적인 수명: 환인(桓因)의 평균 수명이 472년 또는 9026년이라는 등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수명이 기록되어 있다.[15]
- 영토 점령의 모순: 끊임없이 영토를 점령하지만, 오히려 영토가 줄어드는 모순된 기록이 존재한다.[15]
- 기존 역사서 및 위서 표절: 《규원사화》, 《단기고사》 등 현전하는 여러 역사서 및 위서를 베껴 쓴 흔적이 발견된다.[31] 신채호가 주장한 연개소문 사망 연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연도이다.
- 부적절한 용어 사용: 시베리아(사백력), 파미르고원(파나류산), 수메르(수밀이) 등 근대 이후에 등장한 용어나, 실제 사용 시기가 다른 용어(고려, 몽고, 흑수, 영고탑, 산동 등)가 사용되었다.[15] 특히 '남녀평권', '부권', '상춘', '세계만방', '산업', '문화' 등은 근대 이후에 등장한 용어들이다.
- 저술 연대 문제: 1911년 출간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1979년 출간 이전에는 《환단고기》 또는 그 저본이 존재했다는 근거가 없다.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창작하고 수정했던 흔적도 발견된다.[15]
- 기존 사서와 불일치: 기존의 역사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많다.
- 내용상의 모순: 1909년에 사망한 이기가 1911년에 완성된 《환단고기》를 감수했다는 설명 등 내용상의 모순이 있다.[15] 신채호가 잘못 해석한 "전삼한, 후삼한설"이 반영되어 있다.[32]
- 유물 부재: 수메르(수밀이)와 티베트(지백특)까지 진출한 거대한 제국이었다는 고조선의 유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 당시 시대상: 환국과 배달국이 존재했다는 시기는 신석기 시대로 국가가 존재할 수 없었으며, 군현제는 당시의 통치 체제로서 불가능하다.
- 발해 왕계보 오류: 《환단고기》는 발해의 왕계보를 14대로 기록하고 있지만, 김육불에 의해 발해의 14대 왕인 대위해가 발견되면서 발해의 군주는 모두 15명임이 확인되었다.[33]
- 천문 기록 반론: 오성취합 기록은 후대에 계산된 기록을 사용한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34]
《환단고기》는 출간 경위 자체에 모순이 많으며, 이유립에 의해 조작된 창작물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44]
- 계연수의 행적 모순: 계연수는 단군교에서 전하는 행적과 《환단고기》에서 전하는 행적이 완전히 모순된다.[39]
- 대시전 건립 연도 오류: 《환단고기》는 1949년에 강화도의 대시전에서 정서되었다고 하나, 대시전은 1969년에 건립되었다.[40][41]
- 이유립의 수정 흔적: 이유립이 1970년대 초반부터 《환단고기》의 일부를 공개했는데, 1979년 및 1983년 판본과 내용이 다른 부분이 많다.[42]
- 표절 의혹: 《환단고기》의 내용 상당 부분은 《단기고사》 및 《규원사화》와 문장 구조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43]
《환단고기》가 민족주의 역사책이라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범투란주의 혹은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권과 유사한 확장적 민족주의의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45][46]
진서론과 위서론(반론)은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다.
| 진서론 | 위서론(반론) |
|---|---|
| 발해 3대 문왕의 연호 대흥(大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정효공주 묘지문에서 확인되었다. | 해당 연호는 《신당서》와 《발해고》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
|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세운 대제(大齊)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에 처음 기록되었다. | 《신당서》에 이정기 및 그의 후손에 대한 열전이 존재한다. |
| 장수왕의 연호 건흥(建興)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1915년 출토된 고구려 불상에서 확인되었다. |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증거가 되지 못한다. |
| 연개소문의 조부와 증조부의 이름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1923년 출토된 천남생 묘지명에서 확인되었다. | 《환단고기》의 실제 공개 연대는 1970년대이므로 증거가 되지 못한다. |
| 상나라 무정(武丁)의 귀방(鬼方) 공격 기록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고, 갑골문을 통해 확인되었다. | 해당 기록은 《주역》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
| 《환단고기》에는 단군이 북경 일대를 다스린 단군조선의 천자(天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북성 중산묘에서 발굴된 청동기에 ‘천자건방중산후’라는 명문이 있다. 중국 최초의 천자 칭호 사용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 때이다. | 진시황이 최초로 사용한 것은 황제 칭호이며, 천자 칭호는 주나라 이전부터 사용되었다. |
6. 3. 조작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일본 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보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현대적 어구와 개념 포함: 성 평등(男女平權, '남녀 평등 권리'), 가부장제(父權, '아버지의 권리') 등이 언급된다.
- 불분명한 출판 경위:
- 《삼성기》의 저자 안함로와 원동중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기록이 없다. 안함, 로원, 동중이라는 세 사람이 두 명의 인물로 오인된 것으로 보인다.
- 이기는 1909년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1911년에 《환단고기》 편찬을 감독할 수 없었다.[8]
- 《천부경》은 1916년 대종교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1911년 이전에 《태백일사》에 포함될 수 없었다.
- 계연수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신뢰할 만한 역사적 기록이 없다.
- 1911년 《환단고기》 초판본 (또는 1979년 이전에 출판된 어떤 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유립은 1911년 판본이 한국 전쟁 중에 소실되었다고 주장하며 "기억을 통해 《환단고기》를 복원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비판들은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비현실적인 묘사들을 지적한다.[9]
- 환국의 영토가 현대적 척도로 북극에서 남극까지 이른다.
- 배달국의 통치자들은 평균 120~150년을 살았다고 한다.[10]
- 환국은 석기 시대에 복잡한 관료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 《환단고기》의 일부 기록은 서로 모순된다.
한일 병합 다음 해에 편찬된 이 책의 "단군세기"나 "태백일사"에는 중국 청나라 시대의 지명이나 가경 이후의 단어 "장춘"이나 "태백일사"의 인용서 "조대기"에 남녀평등, 부권 등의 용어가 있다. 또한 편찬에 필요한 인용 문헌 등이 명확하지 않고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고대 이래 전해 내려온 진실을 기록했다고 주장하여 위서로 여겨진다. 이 점에서 일본의 고사고전과 유사하다.
이 책은 일본의 고사고전 연구가 가시마 노보루에 의해 1982년, 고사고전과 같은 취급으로 일본어 번역서가 출판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유명해졌다. 본서는 1979년에 대한민국에서 출판되었다. 일부 재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위서인 본서를 역사 국정 교과서에 게재해 달라는 요구 운동이 있었으나, 역사 국정 교과서 게재는 보류되었다.[12]
6. 4. 민족주의 성격에 대한 의문
한일 병합 이듬해에 편찬된 이 책의 "단군세기"나 "태백일사"에는 중국 청나라 시대의 지명이나 가경 이후의 단어 "장춘"이 등장한다. "태백일사"의 인용서 "조대기"에는 남녀평등, 부권 등의 용어가 나타난다. 또한 편찬에 필요한 인용 문헌 등이 명확하지 않고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고대 이래 전해 내려온 진실을 기록했다고 주장하여 위서로 여겨진다.[1] 이 점에서 일본의 고사고전과 유사하다.[1]사실, 이 책은 1982년 일본의 고사고전 연구가 가시마 노보루에 의해 고사고전과 같은 취급으로 일본어 번역서가 출판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유명해졌다.[1]
6. 5. 동북공정과의 관계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환단고기》를 이용하여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동북공정을 주도한 학자 가운데 하나인 유자민은 대한민국의 역사학계가 고조선에 대해 비학술적인 주장을 한다고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환단고기》를 들었다.[47] 그러나 실제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위서로 판단하여 역사적 자료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자민은 《환단고기》에 입각한 비주류의 견해만을 인용하였다. 이러한 왜곡을 통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신뢰성을 낮추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47]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일부에서는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는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환단고기》가 오히려 동북공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모순이 지적되기도 한다.[48]7.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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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桓(굳셀 환)과 檀(단단할 단)에 관한 문자학적 고찰
http://www.hanja.co.[...]
大鐘언어연구소
[51]
뉴스
“역사 피해의식 벗고 IT시대 유목민 정신 재발견해야”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2009-01-25
[52]
뉴스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극에 경고문구를
http://sports.khan.c[...]
스포츠칸
2007-10-12
[53]
뉴스
환빠, 환까 들어보셨습니까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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