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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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원왕후는 조선 숙종의 세 번째 왕비로, 경은부원군 김주신과 가림부부인 조씨의 딸이다. 1702년 15세의 나이로 숙종의 왕비가 되었으며, 경종 즉위 후 왕대비, 영조 즉위 후 대왕대비가 되었다. 소론의 가문 출신이었으나 노론으로 당색을 바꾸었다. 숙빈 최씨의 아들인 연잉군(영조)을 지지하여 왕세제 책봉에 기여하고, 영조를 보호하며 그의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조와 정성왕후의 지극한 공경을 받았으며, 1757년 70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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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왕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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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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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호 | 혜순자경헌렬광선현익강성정덕수창영복융화휘정정운정의장목인원왕후(惠順慈敬獻烈光宣顯翼康聖貞德壽昌永福隆化徽靖正運定懿章穆仁元王后) |
존호 | 혜순왕대비, 혜순대왕대비 |
시호 | 인원(仁元) |
전호 | 효소전(孝昭殿) |
출생일 | 1687년 10월 24일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순화방 사저 양정재(養正齋) |
사망일 | 1757년 5월 2일 |
사망지 | 조선 한성부 창덕궁 영모당 |
능묘 | 명릉(明陵) |
재위 정보 | |
왕비 | 1702년 ~ 1720년 |
왕대비 | 1720년 ~ 1724년 |
대왕대비 | 1724년 ~ 1757년 |
가족 관계 | |
배우자 | 숙종 |
자녀 | 없음 (영조를 양자로 들임) |
아버지 | 김주신 |
어머니 | 임천 조씨 |
가문 | 경주 김씨 |
2. 생애
1687년 11월 3일(음력 9월 29일)에 태어났다. 인현왕후의 승하 이후 1702년(숙종 28) 10월 3일에 15세의 나이로 숙종의 세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4]
경종이 즉위한 이후에는 왕대비가 되었고, 영조 즉위 이후에는 대왕대비가 되었다. 소론의 딸이었지만 남편 숙종의 사후 노론으로 당색을 바꿨다.[4]
초기에는 천연두, 홍역, 치통, 종기 등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숙빈 최씨, 영빈 김씨와 가깝게 지냈으며 숙빈 최씨 소생인 연잉군을 지지해 왕세제 책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연잉군이 역모의 주범으로 용의선상에 오르자 몸소 보호하였다.[5]
경종 원년(1721년)에는 영조를 왕세제로 등극시키고, 양자로 입적했다.[5] 인원왕후는 영조가 임금으로 즉위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인물로 활약하였으며, 그의 방패막이 되어준다.
인원왕후(仁元王后)는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과 가림부부인 조씨(嘉林府夫人趙氏)의 딸로 태어났다. 1701년, 두 번째 왕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승하하고 희빈 장씨(禧嬪張氏)가 처형되면서 숙종에 의해 후궁에서 정실로의 승격이 금지되자, 새로운 왕비로 간택되었다. 당시 조정은 서인(西人)에서 노론(老論), 소론(少論)으로 나뉘어 격렬한 대립을 벌였는데, 그녀의 집안은 소론에 속해 있었으나, 생존을 위해 노론으로 전향하였다.[4]
숙종과의 사이에 자식을 얻지는 못했으나, 후궁인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아들 연잉군(延礽君)(후의 영조)을 자신의 아들처럼 길렀고, 1720년 숙종이 승하한 후 소론(少論)으로부터 위협받던 그를 보호하였다. 1721년, 후계가 없던 경종(숙종의 장남, 영조의 이복형)[5]은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였고, 인원왕후는 왕세제의 후견인이 되었다.
1724년, 경종이 승하하고 왕세제가 제21대 왕 영조로 즉위하자, 후견인으로서 그를 지켜본 인원왕후는 말년에 영조와 그의 왕비인 정성왕후(貞聖王后)로부터 예를 다 받았다. 1757년 4월 3일 정성왕후(貞聖王后)가 64세로 승하하고, 한 달 후인 같은 해 5월 13일 정성왕후(貞聖王后)를 따라 인원왕후는 70세로 승하하였다.[6]
2. 1. 초기 생애
인원왕후는 1687년 11월 3일(음력 9월 29일) 소론 출신 김주신과 임천 조씨의 딸로 태어났다. 증조할머니 김씨 부인을 통해 정종과 숙의 평창이씨의 9대손이다.[4] 초기에는 천연두, 홍역, 치통, 종기 등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1701년 인현왕후가 승하하고 희빈 장씨가 처형되면서, 숙종에 의해 후궁에서 정실로의 승격이 금지되자 새로운 왕비로 간택되었다.[4] 1702년 15세의 나이로 숙종의 세 번째 왕비가 되었다. 당시 조정은 서인에서 노론, 소론으로 나뉘어 대립했는데, 인원왕후의 집안은 소론이었으나 생존을 위해 노론으로 전향하였다.[4]
2. 2. 왕비 시절
1702년(숙종 28) 10월 3일, 인현왕후 승하 후 15세의 나이로 숙종의 세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4] 왕비 간택 당시 조정은 서인(西人)에서 노론(老論), 소론(少論)으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했는데, 인원왕후의 집안은 소론에 속해 있었으나 생존을 위해 노론으로 전향하였다.[4]숙빈 최씨, 영빈 김씨와 가깝게 지냈으며, 숙빈 최씨 소생인 연잉군을 양자로 삼아[2] 친아들처럼 여겼다.[2] 1711년 왕비가 천연두에 걸렸을때, 숙빈 최씨는 궁녀들을 궁궐 밖으로 보내 백성들 사이에서 치료법을 찾도록 명령했고, 결국 왕비는 목숨을 건졌다. 인원왕후는 연잉군을 지지하여 왕세제 책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연잉군이 역모의 주범으로 용의선상에 오르자 몸소 보호하였다.[5]
경종 원년(1721년)에는 영조를 왕세제로 등극시키고, 양자로 입적했다. 인원왕후는 영조가 임금으로 즉위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인물로 활약하였으며, 그의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초기에는 천연두, 홍역, 치통, 종기 등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2]
2. 3. 왕대비 및 대왕대비 시절
경종이 즉위한 이후 왕대비가 되었고, 영조 즉위 이후에는 대왕대비가 되었다.[4] 소론의 딸이었지만 남편 숙종의 사후 노론으로 당색을 바꿨다.[4] 초기에는 천연두, 홍역, 치통, 종기 등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경종 원년(1721년)에는 영조를 왕세제로 등극시키고, 양자로 입적했다.[5] 인원왕후는 영조가 임금으로 즉위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인물로 활약하였으며, 그의 방패막이 되어준다. 숙종의 서거(1720년) 후, 혜순왕대비(惠順王大妃)로 추숭되었다. 그녀의 가문은 소론이었으나, 숙종 사후 양자(養子)가 궁궐 내에서 겪는 정치적 혼란 때문에 노론으로 정파를 바꾸었다.[4]
경종은 건강이 좋지 않아 후계자를 세울 수 없었고, 사실상 다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노론과 소론은 권력을 놓고 다투었다. 소론은 집권 세력으로 경종을 지지했고, 노론은 그의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지지했다. 노론과 그의 계모인 혜순왕대비는 경종에게 연잉군을 후계자로 책봉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계자(繼子)인 경종의 죽음과 양자인 영조의 즉위(1724년) 후, 혜순대왕대비(惠順大王大妃)로 추숭되었다. 궁궐 생활 동안 혜순대왕대비는 『션균유사』(璇閨遺事), 『션비유사』(仙妃遺事), 『뉵아육장』(六兒育藏) 등 세 권의 책을 저술했다고 전해진다.
1724년, 경종이 승하하고 왕세제가 제21대 왕 영조로 즉위하자, 후견인으로서 그를 지켜본 인원왕후는 말년에 영조와 그의 왕비인 정성왕후로부터 예를 다 받았다. 1757년 4월 3일 정성왕후가 64세로 승하하고, 한 달 후인 같은 해 5월 13일 정성왕후를 따라 인원왕후는 70세로 승하하였다.[6]
2. 4. 말년
영조의 효도와 며느리인 정성왕후의 지극한 정성을 받았으며, 정성왕후가 64세로 승하하고 약 한달 후인 1757년 5월 13일 (음력 3월 26일) 창덕궁 영모당에서 69세로 승하했다.[7] 무덤은 서오릉의 하나인 명릉(明陵)이며 숙종, 인현왕후와 함께 묻혀있다. 《션균유사》, 《션비유사》, 《뉵아육장》 등의 한글 저서를 남겼다.[6]사도세자는 영빈 이씨 소생이었는데, 인원왕후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여 정신 질환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사도세자는 친할머니인 인원왕후와 친어머니인 정성왕후와 가까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행동은 1762년, 인원왕후 사후 5년 만에 그를 쌀독 속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3. 성격
매사에 엄격하고 강한 결단력으로 조선 후기 궁중의 법도를 바로잡았으며, 그 예로 곡좌(모로 좌우로 꺾어 앉는 예법)의 예법을 몸소 실천하였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4. 가족 관계
친조부는 김일진(金一振, 1633 ~ 1665)이며, 친조모는 풍양 조씨(1633 ~ 1685)이다. 아버지는 경은부원군 김주신(1661 ~ 1721)이며, 외조부는 조경창(趙景昌, 1634 ~ 1694), 외조모는 한산 이씨이다. 어머니는 가림부부인 임천 조씨(1660 ~ 1731)이며, 서모는 미상이다. 남편은 숙종(1661 ~ 1720)이다.
언니는 전의인 목사 이징해(牧使 李徵海)의 아들 금산군수 이덕린(錦山郡守 李德鄰)과 혼인하였다. 여동생은 증 정부인 경주 김씨이며, 제부는 파평인 호조정랑 증 이조참판 윤부(戶曹正郞 贈 吏曹參判 尹扶)의 아들 의금부도사 윤면교(義禁府都事 尹勉敎, 1691∼1766)이다.
남동생은 호조참의 증 좌찬성 김후연(戶曹參議 贈 左贊成 金後衍, 1694~1735)과 돈령사복시주부 김구연(敦寧司僕寺主簿 金九衍, 1699∼1743)이 있다. 김후연의 처는 부사 윤항(尹沆)의 딸 해평 윤씨이고, 김구연의 처는 현령 박필구(縣令 朴弼耉)의 딸 반남 박씨이다.
서모에게서 난 형제로는 현감 김가연(縣監 金可衍, 1703~?)과 지사 김내연(知事 金乃衍, 1708~?)이 있으며, 김가연의 처는창녕 성씨이고, 김내연의 처는 청주 경씨이다. 서매는 능성인 구홍좌(具弘佐)와 혼인하였다.
5. 사후
5. 1. 추존
인원왕후는 사후 '인원(仁元)'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혜순자경헌렬광선현익강성정덕수창영복융화휘정정운정의장목(惠順慈敬獻烈光宣顯翼康聖貞德壽昌永福隆化徽精正運定懿章穆)이라는 존호가 추가되었다.5. 2. 평가
6. 인원왕후가 등장하는 작품
-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혜경궁 홍씨》 (1988~1989) ... 강부자
- MBC 드라마 《대왕의 길》 (1998) ... 김용림
- MBC 드라마 《동이》 (2010) ... 오연서[3]
- SBS 드라마 《해치》 (2019) ... 남기애
- 2015년 영화 《사도》 ... 김해숙
6. 1. 드라마
- MBC 《조선왕조 오백년: 혜경궁 홍씨》 (1988~1989) ... 강부자
- MBC 《대왕의 길》 (1998) ... 김용림
- MBC 《동이》 (2010) ... 오연서
- SBS 《해치》 (2019) ... 남기애
6. 2. 영화
2015년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 김해숙이 인원왕후를 연기하였다.참조
[1]
문서
Queen's birth and death dates
1687-09-29
[2]
서적
The Confucian Kingship in Korea: Yŏngjo and the Politics of Sagacity
[3]
웹사이트
Han Hyo-joo says she "hold fast" to her role in ''Dong Yi''
http://www.asiae.co.[...]
2010-05-07
[4]
서적
『王妃たちの朝鮮王朝』
[5]
서적
『王妃たちの朝鮮王朝』
[6]
서적
『王妃たちの朝鮮王朝』
[7]
웹사이트
경종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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