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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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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론 산토는 1960년부터 1974년까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3루수로, 시카고 컵스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1960년 컵스에 입단하여 1973년까지 컵스에서 14시즌을 뛰었고, 1974년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어 은퇴했다. 3루수로서 300홈런을 최초로 달성했고, 5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1969년 발꿈치 부딪히기 세레모니로 유명해졌으며, 은퇴 후 컵스 전속 해설자로 활동했다. 그는 18세에 제1형 당뇨병을 진단받았으며, 2001년과 2002년에 다리를 절단하는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선 활동에 헌신하여 소아 당뇨병 연구 재단에 기여했다. 2010년 방광암으로 사망했으며, 2011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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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산토
기본 정보
1969년 시카고 컵스 소속의 론 산토
1969년 시카고 컵스 시절의 산토
포지션3루수
타석우타
송구우투
출생일1940년 2월 25일
출생지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사망일2010년 12월 3일
사망지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데뷔 리그MLB
데뷔일1960년 6월 26일
데뷔 팀시카고 컵스
최종 리그MLB
최종일1974년 9월 29일
최종 팀시카고 화이트삭스
통계
리그MLB
타율.277
안타2,254
홈런342
타점1,331
선수 경력
시카고 컵스 (1960–1973)
시카고 화이트삭스 (1974)
수상 경력
올스타9회 (1963–1966, 1968, 1969, 1971–1973)
골드 글러브5회 (1964–1968)
영구 결번시카고 컵스 No. 10
명예의 전당시카고 컵스 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
종류국립 야구 명예의 전당
입성 년도2012
득표율93.8%
선정 방식골든 에라 위원회

2. 어린 시절

산토는 시애틀 남동부에서 성장했으며, 프랭클린 고등학교를 다녔고, 베이브 루스 리그에서 새로 조직된 유소년 야구를 했다. 그는 퍼시픽 코스트 리그시애틀 레이니어스의 홈구장인 식스 스타디움 근처에서 자랐으며, 고등학교에서 세 가지 스포츠를 하면서 그곳에서 배트 보이, 그라운드키퍼, 클럽하우스 관리인으로 여름 아르바이트를 했다.[6] 14세에 그는 1954년 베이브 루스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시애틀 올스타 팀에 합류했다. 워싱턴 D.C.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에서 산토는 엄지손가락이 부러진 15세 선수를 대신하여 코치 데이브 타처에 의해 1루수로 투입되었다. 그 경기에서 산토는 좌중간 354피트 지점을 넘어 만루 홈런을 쳐서 워싱턴 올스타가 테네시를 이겼다.

3. 메이저 리그 시절

1961년 산토


론 산토는 1959년에 자유 계약 선수로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고, 1960년 6월 26일에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7][8] 컵스에서 14시즌을 뛰었고, 1973년 시즌 후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어 1974년에 은퇴했다.

컵스에서 명 3루수로 활약하며 1964년에는 타율 0.313, 30홈런, 114타점, 리그 최고인 13개의 3루타를 기록했다. 1966년에는 당시 구단 기록인 28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1973년에는 애리조나에서 스프링 트레이닝 중인 그를 보러 가던 어머니와 계부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다.

3루수로서 처음으로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고, 5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이 두 기록을 모두 가진 선수는 론 산토, 마이크 슈미트, 스콧 롤렌 3명뿐이다.

은퇴 후에는 컵스 전속 해설자로 활동했으며, 18세부터 당뇨병으로 고생하여 2001년2002년에 양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2003년 9월 28일, 산토의 등번호 ''''10''''번이 컵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론 산토 메이저 리그 통산 성적[7]
연도소속팀경기 수타수안타홈런타점타율
1960시카고 컵스9534787944.251
19611545781642383.284
19621626041371783.227
19631626301872599.297
196416159218530114.313
196516460817333101.285
19661555611753094.312
19671615861763198.300
19681625771422698.246
196916057516629123.289
197015455514826114.267
19711545551482188.267
19721334641401774.302
19731495361432077.267
1974시카고 화이트삭스11737583541.221
통산(15년)2243814322543421331.277


  • 각 연도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3. 1. 시카고 컵스 (1960–1973)

산토는 1959년에 자유 계약 선수로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고, 1960년 6월 26일에 데뷔했다.[7][8] 1961년에는 3루에서 41개의 병살타를 기록하며 컵스 기록을 세웠다. 1962년에는 332개의 보살로 처음 내셔널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산토는 1968년까지 매년 내셔널 리그(NL) 보살 1위를 유지하며 네드 윌리엄슨이 세운 메이저 리그 기록(6회)을 경신했다. 이후 브룩스 로빈슨아메리칸 리그에서 8번이나 1위를 차지했고, 마이크 슈미트는 산토의 NL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1963년 산토는 3루에서 374개의 보살을 기록하며 1904년 토미 리치가 기록한 현대 NL 기록(371개)을 깼다. 1966년에는 391개로 역대 리그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리그 2위인 켄 보이어보다 99개나 더 많은 기록이었다. 1967년에는 393개의 보살로 자신의 기록을 다시 경신했고,[9] 이 기록은 1974년 슈미트가 404개를 기록하기 전까지 NL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또한 1967년 NL 최우수 선수상 투표에서 4위를 기록했다.[10] 1962년부터 1967년까지 매년 NL 아웃 1위를 차지했으며, 1969년에도 다시 1위를 차지하여 파이 트레이너, 윌리 존스와 함께 리그 최다 기록(7회)을 세웠다.[11] 팀 월라치도 나중에 이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1969년 산토와 컵스는 내셔널 리그 동부에서 180일 동안 1위를 달렸지만, 마지막 25경기에서 8승 17패를 기록했다. 반면 뉴욕 "미라클" 메츠는 마지막 48경기에서 37승 11패를 기록하며 컵스를 추월했다.[12] 그 시즌 동안 컵스는 산토를 포함한 선발 내야수 전체를 올스타전에 보냈고, 산토와 컵스 유격수 돈 케싱어는 NL 팀의 선발로 나섰다.[13] 산토는 .289의 타율, 29개의 홈런, 개인 통산 최다인 123개의 타점을 기록했고, NL MVP 투표에서 5위를 기록했다.[7][14]

산토는 1964년 시즌 직전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컵스 2루수이자 팀 동료인 켄 헙스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3. 1. 1. 발꿈치 부딪히기 (Heel Click)

1969년 시즌 론 산토는 1969년 6월 22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 후 발꿈치를 부딪히는 행동으로 유명해졌다.[9][15] 9회말 1아웃 상황에서 폴 포포비치와 빌리 윌리엄스의 연속 안타로 주자 1, 3루가 되었고, 산토는 땅볼로 아웃되었지만 주자들은 진루했다. 어니 뱅크스의 안타로 컵스는 1점 차로 따라붙었고, 릭 블라트가 대주자로 나섰다. 짐 히크먼이 2점 끝내기 홈런을 쳐 7-6으로 승리했는데,[16] 히크먼이 홈 플레이트에 도착했을 때 산토는 너무 흥분하여 그를 껴안고 축하한 후 3루 라인을 따라 세 번 점프하며 발꿈치를 부딪혔다.[5][9]

다음 날, 감독 레오 듀로처는 산토에게 리글리 필드 홈 경기에서 이길 때마다 팀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발꿈치를 계속 부딪히라고 요청했고, 산토는 이를 따랐다. 그러나 이 행동은 상대팀을 자극했고, 9월에 컵스가 부진에 빠지자 산토는 발꿈치 부딪히기를 중단했다. 그의 마지막 "클릭"은 9월 2일에 컵스가 마지막 홈 경기에서 승리한 날이었다. 이후 비평가들은 이 행동을 오만함과 과신으로 비난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후반기 부진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산토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날, 컵스의 선발 라인업은 모두 경기 시작 시 "킥"을 하여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3. 1. 2. 트레이드 거부

197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결과, 단체 교섭 협약에 따라 10년 및 5년 규칙이 최초로 발동되었다. 이 규칙은 10년 이상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하고, 마지막 5년을 같은 팀에서 뛴 선수에게 어떤 트레이드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17] 시카고 컵스는 산토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보내는 대신, 두 명의 젊은 투수를 받는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컵스가 받기로 한 투수 중 앤디 하슬러는 평범한 구원 투수/선발 투수로 경력을 마쳤고, 브루스 하인베크너는 매우 유망한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1974년 시즌 시작 전에 사망했다.[18] 산토는 시카고에 머물고 싶은 마음으로 1973년 12월 8일에 이 거래를 거부했다.[17][19]

3. 2. 시카고 화이트삭스 (1974)

산토는 시카고 컵스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이는 1973년 12월 11일에 공식화되었다. 컵스는 스티브 스위셔, 스티브 스톤, 켄 프레이링을 얻었고, 짐 크렘멜은 일주일 뒤인 12월 18일에 컵스로 보내졌다.[17][20] 화이트삭스에는 이미 3루수 빌 멜튼이 있었기 때문에 산토는 주로 지명 타자를 맡았지만, 이를 몹시 싫어했다. 그는 수비를 원했지만, 화이트삭스 감독 척 태너는 멜튼을 기용했고, 산토를 2루수로 기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74년 산토는 .221의 타율과 5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34세의 나이로 은퇴했다.[7]

4. 은퇴 후

은퇴 후 론 산토는 컵스 전속 해설자로 활동했다. 18세부터 당뇨병을 앓아 2001년2002년에는 각각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를 무릎 아래로 절단해야 했다.[49]

2003년 9월 28일, 산토의 등번호 ''10''번이 컵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그는 베테랑 위원회를 통한 야구 명예의 전당 입성이 계속해서 좌절되었으나, 2010년 12월 2일 방광암으로 사망한 후인 2011년 12월 5일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61]

4. 1. 방송 경력

론 산토는 "역대 최고의 컵스 팬"으로서 1990년에 컵스 중계진에 합류하여 WGN 라디오의 해설자가 되었다.[5][21] 그는 경기 해설자 팻 휴즈와 함께 일했으며, 이 라디오 중계는 ''팻 앤 론 쇼''로도 알려졌다. 해리 캐레이, 톰 브레넘, 스티브 스톤, 밥 브렌리, 시카고 베어스그린베이 패커스의 해설가인 웨인 라리비와도 함께 일했다. 그는 중계 경력 외에도 자신이 홍보한 시애틀 서튼의 건강한 식사의 광고를 찍었으며, 휴즈와 함께 월그린스와 쉐보레 광고에도 출연했다. 시카고에서 산토는 게임 중 신음 소리와 환호성을 포함하여 솔직한 중계 열정으로 유명했는데, 컵스에 좋은 플레이가 나왔을 때 흥분했지만, 컵스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그만큼 불만을 표출했다.

2009년 리글리 필드의 산토

4. 2. 당뇨병과의 투쟁

산토는 선수 생활 초기 제1형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숨겼다. 그는 이 사실이 알려지면 강제로 은퇴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49]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당뇨병을 조절하는 방법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산토는 자신의 혈당 수치를 기분에 따라 측정했다.[22] 혈당이 낮다고 느끼면 클럽하우스에서 초콜릿 바를 먹었다.[22]

1971년 8월 28일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론 산토의 날"에 그는 당뇨병과의 투쟁을 공개했다. 그는 18세에 이 병을 진단받았고, 생존 예상 기간은 25년이었다. 산토는 당뇨병으로 인해 2001년에는 오른쪽 다리가, 2002년에는 왼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절단되었다.

2004년에는 산토와 당뇨병과의 싸움을 다룬 다큐멘터리 ''This Old Cub''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산토의 아들 제프가 각본을 쓰고 공동 제작 및 감독을 맡았다.[49]

산토는 2008년 컵스의 신인 선수 샘 펄드와 유대감을 공유했는데, 샘 펄드 역시 제1형 당뇨병을 앓고 있다.[23]

4. 3. 자선 활동

산토는 제1형 당뇨병을 앓고 있었는데, 선수 생활 초기에는 이 사실을 숨겼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당뇨병 관리 방법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혈당 수치를 기분에 따라 측정했고, 낮다고 느끼면 클럽하우스에서 초콜릿 바를 먹었다.[49][22]

1971년 8월 28일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론 산토의 날"에 그는 당뇨병과의 투쟁을 공개했다. 18세에 이 병을 진단받았고, 당시 25년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산토는 당뇨병으로 인해 2001년에는 오른쪽 다리를, 2002년에는 왼쪽 다리를 무릎 아래로 절단해야 했다.[49]

2004년에는 산토의 아들 제프가 각본을 쓰고 공동 제작 및 감독을 맡은 다큐멘터리 ''This Old Cub''가 제작되어 산토와 당뇨병과의 싸움을 다뤘다.[49]

산토는 2008년 컵스의 신인 선수 샘 펄드와도 제1형 당뇨병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했다.[23]

산토 가문은 1979년부터 소아 당뇨병 연구 재단(JDRF)과 관계를 맺어왔다. 시카고에서 매년 열리는 "론 산토 당뇨병 치료 걷기 행사"를 통해 JDRF에 6500만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2002년, 산토는 소아 당뇨병 연구 재단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46] 그는 또한 빌 홀든이 애리조나에서 시카고까지 약 3379.61km를 걸으며 당뇨병 연구를 위해 250000USD를 모금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2016년 월드 시리즈 기간 동안, JDRF는 가족 구성원이 주최하는 원정 경기를 위한 시청 파티를 열었다.

4. 4. 사망

산토는 2010년 12월 3일 오전 12시 40분에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한 병원에서 방광암당뇨병 합병증으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4] (많은 언론 매체는 날짜를 "2일 밤" 또는 "밤새"라고 보도했다.) 12월 1일에 혼수상태에 빠졌다.[25][26][27]

2010년 산토의 사망 이후 리글리 필드 밖의 추모비


장례 미사는 12월 10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성명 대성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산토의 관은 전 동료 선수 어니 뱅크스, 퍼거슨 젠킨스, 랜디 헌들리, 글렌 베커트, 빌리 윌리엄스가 운반했다. 관은 그의 등번호가 영구 결번된 날 리글리 필드에 걸렸던 10번 깃발로 덮였다. 그의 오랜 방송 파트너 팻 휴즈, 컵스 구단주 톰 리케츠, MLB 커미셔너 버드 셀릭이 추도사를 했다.[29] 장례식 후 행렬은 WGN 라디오가 있는 트리뷴 타워 밖에서 잠시 멈춘 후 3루를 시작으로 리글리 필드를 돌기 위해 북쪽으로 향했다. 산토는 나중에 화장되었고 그의 유해는 프렌들리 컨파인스 경기장에 뿌려졌다.

2011년 8월 10일, 리글리 필드에서 산토의 모습을 본뜬 동상 제막을 통해 그를 기념하고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다. 동상은 오른쪽에 기대 공을 던지며 3루에서 수비를 하는 젊은 산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5. 명예의 전당 헌액

론 산토는 1959년에 자유 계약 선수로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고, 1960년 6월 26일에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7][8] 2003년 9월 28일, 산토의 등번호 10번은 컵스 구단에 의해 영구 결번되었으며, 이는 그의 팀 동료인 어니 뱅크스(14번)와 빌리 윌리엄스(26번)에 이어 세 번째였다.[57]

산토는 처음에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에 대한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지만, 야구 팬과 세이버메트리션들 사이에서 그의 위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증가했다.[52][49][50] 2011년 12월 5일, 명예의 전당 골든 시대 위원회는 16표 중 15표를 획득한 산토를 2012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선정했다.[52][49][53]

5. 1. BBWAA 투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선거에서 론 산토는 1980년에 처음으로 자격을 얻었으나, 미국 야구 기자 협회(BBWAA) 투표에서 4% 미만의 지지를 얻어 다음 해 투표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간과된 후보들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면서 1985년에 다시 투표에 포함되었고, 마지막 시즌 이후 20년 제한을 초과하더라도 남은 15년의 자격이 복원되었다.

1985년 선거에서 13%의 득표율을 기록한 후, 1998년 마지막 투표에서 43%의 득표율을 얻을 때까지 13년 중 10년 동안 득표수가 증가했다. 그는 당선자 돈 서튼과 2000년 헌액자 토니 페레즈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베테랑 위원회의 개정된 투표 절차에 따라 20년 이상 은퇴한 선수들을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게 되면서, 산토는 2003년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고, 2005년에는 공동 1위를 차지했으며, 2007년과 2009년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지만, 매년 필요한 득표수를 채우지 못했다.

5. 2. 베테랑 위원회

산토는 1999년 시카고 컵스 올 센추리 팀에 선정되었다.

산토의 컵스 재적 당시 등번호 ''10''. 2003년 영구 결번으로 지정.


2003년 9월 28일, 산토의 등번호 10번은 컵스 구단에 의해 영구 결번되었으며, 이는 그의 팀 동료인 어니 뱅크스(14번)와 빌리 윌리엄스(26번)에 이어 세 번째로 영구 결번된 선수로 기록되었다.[57] 산토의 은퇴 후 데이브 킹먼, 레온 더럼 등 다른 유명한 컵스 선수들이 10번을 착용했으며, 가장 최근 착용자는 전년도 임시 감독이었던 브루스 킴이었다. 2004년 4월, 산토는 시애틀 프랭클린 고등학교 졸업생 자격으로 워싱턴 주 고등학교 육상 연맹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자로 선정되었다.[58] 산토가 사망한 지 약 한 달 후, 컵스 회장 톰 리케츠는 2011년 2011 시즌에 컵스가 산토를 기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시즌 말까지, 컵스는 유니폼 소매에 10번이 새겨진 패치를 부착했다.

야구 명예의 전당 베테랑 위원회의 개정된 투표 절차에 따라, 20년 이상 은퇴한 선수들을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게 되었고, 산토는 2003년, 2005년, 2007년, 2009년 투표에서 계속해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매년 필요한 득표수를 채우지 못했다. 2010년에 발표된 투표 구조 및 절차 변경 이후, 산토는 1947년부터 1972년까지의 시대를 대상으로 역사 개요 위원회가 선정한 10명의 후보자를 3년마다 심사하는 새로운 16명으로 구성된 골든 시대 위원회의 2011년 투표 대상이 되었다.[30]

산토는 선출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지만, 초기 투표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은 미국 야구 기자 협회(BBWAA) 투표자들이 3루수를 간과하는 오랜 경향, 산토의 전성기가 투수 중심의 1960년대였다는 점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한다.[31] 또한 투표자들이 산토의 높은 볼넷 수와 수비에 충분히 집중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이러한 플레이 측면은 세이버메트릭스에 의해 더 가치 있게 평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산토의 통산 조정 출루율+장타율(OPS+)은 2011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10명의 메이저 리그 3루수 중 중간 순위였다.[32]

산토의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에 반대하는 주장으로는 그의 통산 타격 기록이 원정 경기보다 홈 경기에서 상당히 더 좋았다는 점이 있다. 그는 342개의 홈런 중 216개를 홈에서 쳤고, 원정에서는 126개만 기록했다.[33] 그의 통산 홈 타율은 .296인 반면 원정 타율은 .257이었다.[33] 그러나 칼 야스트렘스키, 웨이드 보그스, 짐 라이스, 커비 퍼켓 등 BBWAA에 의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여러 선수들도 원정 경기보다 홈 경기에서 더 나은 타격을 보였다.[34][35][36][37] 홈런에서 홈 경기와 원정 경기 차이가 큰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는 멜 오트(홈 323개, 원정 188개), 프랭크 로빈슨(홈 321개, 원정 265개), 지미 폭스(홈 299개, 원정 235개), 행크 그린버그(홈 205개, 원정 126개) 등이 있다.[38][39][40][41]

산토는 3000안타 클럽과 500홈런 클럽과 같은 전통적인 명예의 전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그의 선수 생활이 끝날 무렵, 2,500안타를 기록한 3루수는 브룩스 로빈슨과 레브 크로스뿐이었고, 500홈런을 달성한 선수는 에디 매튜스뿐이었다.[42][43][44][45] 저명한 통계 전문가 빌 제임스는 산토를 역대 최고의 선수 100인 중 한 명(3루수 중 6위)으로 평가하며 그의 명예의 전당 헌액이 오래 지연되었다고 믿었다.

산토는 명예의 전당에서 탈락한 것에 실망했지만, 컵스에서 그의 등번호 10번이 영구 결번된 날, "이곳이 '나의' 명예의 전당입니다!"라고 말했다.[2][46] 라이언 샌드버그는 2005년 명예의 전당 수락 연설에서 산토의 선출을 지지하며, "론 산토는 베테랑 위원회로부터 한 표를 더 얻었습니다."라고 말했다.[47] 2007년 4월 19일, 일리노이주 하원은 야구 명예의 전당 베테랑 위원회에 론 산토를 헌액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HB 109)을 채택했다.[48]

산토는 처음에는 명예의 전당 헌액에 대한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지만, 야구 팬과 세이버메트리션들 사이에서 그의 위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증가하여 사망 2년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결과를 낳았다.[52][49][50]

2011년 12월 5일,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베테랑 위원회는 산토를 명예의 전당에 선출했다.[61]

5. 3. 골든 시대 위원회 (Golden Era Committee)

론 산토는 에 처음으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선거 자격을 얻었지만, 미국 야구 기자 협회(BBWAA)의 투표에서 4% 미만의 지지를 받아 다음 해부터 투표에서 제외되었다. 그는 간과된 후보들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 제기에 따라 에 투표에 다시 포함되었고, 투표에서 마지막 해에 43%의 득표율을 얻을 때까지 득표수가 증가했다. 그는 당선자 돈 서튼과 2000년 헌액자 토니 페레즈에 이어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산토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다음 기회는 1947년부터 1972년까지의 시대를 대상으로 역사 개요 위원회가 선정한 10명의 후보자를 3년마다 심사하는 새로운 16명으로 구성된 골든 시대 위원회의 2011년 투표였다.[30]

산토는 선출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지만, 초기 투표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은 BBWAA 투표자들이 3루수를 간과하는 경향,[31] 투수 중심의 196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점,[31] 높은 볼넷 수와 수비에 대한 인식 부족[32]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한다. 그의 통산 조정 OPS(OPS+)는 2011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10명의 메이저 리그 3루수 중 중간 순위였다.[32]

산토의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에 대한 반대 의견은 그의 통산 타격 기록이 홈 경기에서 더 좋았다는 것이다.[33] 그러나 칼 야스트렘스키, 웨이드 보그스, 짐 라이스, 커비 퍼켓 등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도 홈 경기에서 더 나은 타격을 보였다.[34][35][36][37] 홈런에서도 홈 경기와 원정 경기 사이에 차이를 보인 헌액자로는 멜 오트, 프랭크 로빈슨, 지미 폭스, 행크 그린버그 등이 있다.[38][39][40][41]

산토는 3000안타 클럽과 500홈런 클럽과 같은 전통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그의 선수 생활이 끝날 무렵 2,500안타를 기록한 3루수는 브룩스 로빈슨과 레브 크로스뿐이었고, 500홈런을 달성한 선수는 에디 매튜스뿐이었다.[42][43][44][45] 빌 제임스는 그의 명예의 전당 헌액이 오래 지연되었다고 평가했다.

산토는 명예의 전당에서 탈락한 것에 실망했지만, 컵스에서 그의 등번호 10번이 영구 결번된 날 "이곳이 '나의' 명예의 전당입니다!"라고 말했다.[2][46] 라이언 샌드버그는 2005년 명예의 전당 수락 연설에서 산토의 선출을 지지했다.[47] 2007년 일리노이주 하원은 야구 명예의 전당 베테랑 위원회에 론 산토를 헌액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48]

산토는 처음에는 명예의 전당 헌액에 대한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지만, 야구 팬과 세이버메트리션들 사이에서 그의 위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증가하여 사망 2년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결과를 낳았다.[52][49][50]

5. 3. 1. 명예의 전당 선출

론 산토는 1959년에 자유 계약 선수로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고, 1960년 6월 26일에 데뷔했다.[7][8] 2011년 12월 5일, 명예의 전당 골든 시대 위원회는 행크 애런, 팻 길릭, 알 칼라인, 랄프 키너, 토미 라소다, 후안 마리찰, 브룩스 로빈슨, 빌리 윌리엄스, 폴 비스톤, 빌 드윗, 롤랜드 헤몬드, 진 마이클, 알 로젠, 딕 케이겔, 잭 오코넬, 데이브 반 다이크로 구성되어,[51] 산토가 2012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자격이 있는지 투표를 진행했다. 산토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윌리엄스는 산토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해 선수 시절 당뇨병과의 투쟁과 은퇴 후 치료법을 찾기 위한 자선 사업을 강조하며 지지했다. 산토는 16표 중 15표를 얻어 골든 시대 후보 10명 중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52][49][53] 산토의 미망인 비키는 헌액식에서 기념패를 받았고, 컵스에 대한 그의 사랑과 당뇨병 환자에 대한 헌신을 언급했다.[54]

2003년 9월 28일, 산토의 등번호 10번은 컵스 구단에 의해 영구 결번되었으며, 이는 어니 뱅크스(14번)와 빌리 윌리엄스(26번)에 이어 세 번째였다.[57]

6. MLB 기록

산토의 메이저 리그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다.[1]

연도경기타석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도루볼넷삼진타율출루율장타율OPS실책수비율
152,2439,3978,1431,1382,254365673421,331351,1081,343.277.362.464.826317.954



산토는 6번(1961, 1964, 1966–68, 1971)이나 더블 플레이 리그 1위를 차지하여, 하이니 그로가 보유한 메이저 리그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2] 마이크 슈미트도 나중에 이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그는 1961년부터 1968년까지 매 시즌 내셔널 리그에서 총 기회 1위를 차지했다.[2] 그는 1964년 4월 19일부터 1964년 5월 31일까지, 그리고 1966년까지 모든 컵스 경기에 3루수로 출전하여 364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리그 기록을 세웠다.[2][9] 그의 1965년 164경기 3루수 출전은 메이저 리그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는 세 차례 NL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산토는 1972년에 에디 매튜스의 NL 3루수 통산 369 더블 플레이 기록을 깼고, 1973년에는 매튜스의 리그 기록인 4,284 어시스트와 6,606 총 기회 기록을 깼다. 슈미트는 1986년에 산토의 더블 플레이 기록을, 1987년에 어시스트 기록을, 1988년에 총 기회 기록을 넘어섰다. 컵스에서 14시즌 동안 산토는 337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NL 우타자 최다 홈런 8위였다. 컵스에서의 통산 1,071개의 볼넷은 우타자 팀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는 300홈런을 치고 골드 글러브 5개를 수상한 최초의 3루수였으며, 이 기록은 이후 슈미트와 스캇 롤렌만이 달성했다.

산토는 1966년에 컵스의 현대식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인 27경기(1929년 핵 윌슨 기록)를 깨기 위해 노력하던 중, 메츠의 잭 피셔가 던진 투구에 맞아 거의 2주 동안 결장하면서 보호용 귀덮개가 달린 타격 헬멧을 착용한 최초의 메이저 리그 선수였다. 빈볼은 그의 광대뼈를 골절시켰고 그의 연속 출장 기록을 끝냈다. 그가 복귀했을 때(그리고 28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웠을 때[9]) 그는 부상을 보호하기 위해 타격 헬멧에 즉석에서 귀덮개를 착용했다. 이후 귀덮개는 타격 헬멧의 표준 장비가 되었다.

7. 수상 및 영예

수상 및 영예횟수날짜
내셔널 리그 올스타91963–1966, 1968–1969, 1971–1973
내셔널 리그 골드 글러브 (3루수)51964–1968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31963년 6월, 1964년 7월, 1969년 6월
루 게릭 기념상11973

[1]

산토는 364경기 연속 3루수 출장이라는 내셔널 리그 기록을 세웠다.[2][9] 1965년 164경기 3루수 출전은 메이저 리그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는 세 차례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63년 6월(.384, 6홈런, 22타점), 1964년 7월(.395, 7홈런, 27타점), 그리고 1969년 6월(.400, 6홈런, 34타점)이었다.

1999년, 그는 시카고 컵스 올 센추리 팀에 선정되었다.

2003년 9월 28일, 산토의 등번호 10번은 시카고 컵스에 의해 영구 결번되었으며, 이는 그의 팀 동료인 어니 뱅크스(14번)와 빌리 윌리엄스(26번)에 이어 세 번째로 영구 결번된 선수였다.[57] 2004년 4월, 산토는 시애틀 프랭클린 고등학교 졸업생 자격으로 워싱턴 주 고등학교 육상 연맹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자로 선정되었다.[58]

2010년 사망 직후, 블리처 리포트는 야구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해설자 50명의 순위를 발표했고, 산토는 16위에 올랐다. 그의 항목에서 샘 웨스트모어랜드는 산토에 대해 "그는 실수를 많이 했지만, 그것이 그를 더욱 사랑스럽고 사랑받게 만들었다. 그는 아이콘으로 통했고,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라고 썼다.[59]

8. 개인 생활

산토는 1960년 고등학교 시절 연인 주디 스콧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으나 1982년에 이혼했다.[55] 이듬해 비키와 재혼하여 사망할 때까지 함께 살았으며, 부부는 일리노이주 배넉번에 거주했다.[56]

18세부터 당뇨병을 앓아온 산토는 2001년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를, 2002년에는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59]

2003년 9월 28일, 산토의 등번호 10번은 어니 뱅크스(14번), 빌리 윌리엄스(26번)에 이어 시카고 컵스의 세 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57]

2010년 12월 2일, 산토는 방광암으로 애리조나주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60] 2011년 12월 5일,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베테랑 위원회는 산토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6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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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Santo, Ron https://baseballhall[...] 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and Museum
[3] 웹사이트 Rawlings Gold Glove Award https://www.rawlings[...]
[4] 웹사이트 National League Gold Glove Award winners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5] 웹사이트 Ron Santo https://baseballbiog[...]
[6] 서적 The Cooperstown Casebook: Who's in the Baseball Hall of Fame, Who Should Be In, and Who Should Pack Their Plaques https://www.si.com/m[...] 2017-07-30
[7] 웹사이트 Ron Santo Statistics and History https://www.baseball[...] 2010-12-03
[8] 웹사이트 Ron Santo Trades and Transactions at Baseball Almanac http://www.baseball-[...] Baseball-almanac.com 2011-11-13
[9] 웹사이트 Ron Santo at The Baseball Page http://www.thebaseba[...] Thebaseballpage.com 2011-11-13
[10] 웹사이트 1967 National League Most Valuable Player Award voting results at Baseball Almanac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11] 웹사이트 Ron Santo at the Baseball Hall of Fame https://web.archive.[...] 2007-06-30
[12] 서적 ''Ron Santo: A Hall of Fame Plaque In His Future?'' by Bill Dray, Baseball Digest, July 1992, Vol. 51, No. 7, ISSN 0005-609X https://books.google[...]
[13] 웹사이트 1969 All-Star game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14] 웹사이트 1969 Most Valuable Player Award voting results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15] 웹사이트 Ron Santo https://baseballbiog[...] baseballbiography.com 1960-06-26
[16] 웹사이트 June 22, 1969 Expos-Cubs box score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1969-06-22
[17] 뉴스 Santo Stays in Chicago, Cubs Trade Him to White Sox https://www.nytimes.[...] 1973-12-11
[18] 웹사이트 Bruce Heinbechner Winter & Minor Leagues Statistics & History https://www.baseball[...]
[19] 뉴스 Angels Fail to Woo Santo Again https://www.nytimes.[...] 1973-12-08
[20] 뉴스 White Sox Finish Trade for Santo https://www.nytimes.[...] 1973-12-19
[21] 웹사이트 Chicago Cubs Broadcasters https://web.archive.[...] Chicago.cubs.mlb.com
[22] 비디오 This Old Cub https://www.imdb.com[...] Sony Pictures Home Entertainment 2004
[23] 웹사이트 Diabetes won't hold back Cubs' outfield prospect http://www.dailyhera[...]
[24] 웹사이트 Ron Santo's last gift to his family http://www.dailyhera[...] 2010-12-24
[25] 웹사이트 Beloved Cubs icon Santo dies at age 70 https://web.archive.[...] 2010-12-04
[26] 웹사이트 Chicago Tribune http://www.chicagotr[...] 2010-12-03
[27] 웹사이트 Remembering Ron Santo (1940–2010) https://web.archive.[...] Iknowjack.radio.com 2010-12-03
[28] 웹사이트 From The North Side To The South Side, Chicago Loses A Sports Legend http://us99country.r[...] Us99country.radio.com 2010-12-03
[29] 웹사이트 Luminaries on hand to honor Santo http://mlb.mlb.com/n[...] 2010-12-10
[30] 웹사이트 Rules For election For Managers, Umpires, Executives, And Players For Golden Era Candidates To The 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https://web.archive.[...]
[31] 웹사이트 Santo's Hall credentials hard to overlook https://www.espn.com[...]
[32] 웹사이트 Career Leaders & Records for Adjusted OPS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33] 웹사이트 Ron Santo Home-Away splits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34] 웹사이트 Carl Yastrzemski Home-Away splits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35] 웹사이트 Wade Boggs Home-Away splits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36] 웹사이트 Jim Rice Home-Away splits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37] 웹사이트 Kirby Puckett Home-Away splits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38] 웹사이트 Mel Ott home run log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39] 웹사이트 Frank Robinson home run log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40] 웹사이트 Jimmie Foxx home run log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41] 웹사이트 Hank Greenberg home run log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42] 웹사이트 Hall Debates: Ron Santo at ESPN.com https://static.espn.[...] 2002-07-24
[43] 웹사이트 Brooks Robinson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44] 웹사이트 Lave Cross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45] 웹사이트 Eddie Mathews at Baseball Reference https://www.baseball[...] Baseball-Reference.com 20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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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잡지 Somewhere A Cub Is Smiling http://sportsillustr[...] 201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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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뉴스 Bannockburn home of Ron Santo home sells for $710,000 http://articles.chic[...]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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