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드 보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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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이드 보그스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활약한 미국의 야구 선수이다. 3루수였던 그는 5번의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으며, 8번의 실버 슬러거상과 2번의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2005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또한 독특한 미신과 닭고기 섭취 습관으로 유명하며, 은퇴 후에는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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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드 보그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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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3루수 |
타석 | 좌타 |
송구 | 우투 |
출생일 | 1958년 6월 15일 |
출생지 |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
데뷔 리그 | MLB |
데뷔일 | 1982년 4월 10일 |
데뷔 팀 | 보스턴 레드삭스 |
최종 리그 | MLB |
최종 출장일 | 1999년 8월 27일 |
최종 팀 | 탬파베이 데빌 레이스 |
통계 (MLB) | |
타율 | .328 |
안타 | 3,010 |
홈런 | 118 |
타점 | 1,014 |
선수 경력 | |
팀 | 보스턴 레드삭스 (1982–1992) 뉴욕 양키스 (1993–1997) 탬파베이 데빌 레이스 (1998–1999) |
수상 내역 | |
올스타 선정 | 12회 (1985–1996) |
월드 시리즈 우승 | 1996년 |
골드 글러브 수상 | 2회 (1994, 1995) |
실버 슬러거 수상 | 8회 (1983, 1986–1989, 1991, 1993, 1994) |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 5회 (1983, 1985–1988) |
영구 결번 | |
번호 | 보스턴 레드삭스 No. 26 탬파베이 레이스 No. 12 |
명예의 전당 | |
종류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
입성 년도 | 2005년 |
득표율 | 91.9% (첫 투표) |
기타 | |
코치 경력 | 탬파베이 데빌 레이스 (2001) |
명예의 전당 |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 탬파베이 레이스 명예의 전당 |
2. 어린 시절
웨이드 보그스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윈필드 케네디 보그스 주니어와 수 넬 그레이엄의 3명의 아들들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3] 연대 군사 육성을 받았다. 윈필드와 수는 조지아주에 있는 군사 기지에서 1946년에 만났다. 윈필드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해병대와 복무하였고 한국 전쟁에서 공군을 위하여 참전하였으며, 수 여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우편기를 조종했다.[4][5] 보그스 가족은 웨이드가 11세때 플로리다주 탬파에 정착하기 전에 푸에르토리코와 서배너를 포함하여 몇몇의 다른 장소들에서 살았다.[4][5] 그는 플랜트 고등학교에서 수학하여 야구를 하고, 시니어로서 올스테이트 미식축구 선수였다. 보그스는 부상을 피하는 데 포지션을 전향할 때 자신의 시니어 해까지 쿼터백으로 활약하여 자신의 야구 경력을 보호하였다. 왼발의 플레이스키커와 펀터로서의 성공은 그에게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로부터 장학금 제공을 얻게 하였다.[4] 그는 197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베테랑 스카우트 조지 딕비의 조언에 1976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의 7번째 라운드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의하여 선발되었다. 그는 7천 5백 달러를 위하여 클럽과 계약을 맺었다.[4]
3. 프로 경력
3. 1. 마이너 리그 시절
보그스는 칼 립켄 주니어와 로체스터 레드윙스를 상대로 1981년 포터킷 레드삭스의 일원으로서 프로 야구 역사상 최장기 경기에서 활약하였다.[6] 이 경기는 33이닝 동안 8시간 25분 동안 지속되었다. 1981년 4월 18일부터 4월 19일까지 로드아일랜드주 포터킷에서 32개의 이닝이 벌어졌으며, 1981년 6월 23일에 경기가 재개되어 종료되었다.[6] 포터킷에서 마이너 리그 마지막 해에 그는 .335의 타율, 167개의 안타, 41개의 2루타로 리그를 이끌었다.[7]
3. 2. 보스턴 레드삭스 (1982년 ~ 1992년)
웨이드 보그스는 왼손잡이 타자로, 1983년부터 5번의 타격왕 타이틀을 획득했다.[8] 1982년 데뷔 첫 해에는 .349의 높은 타율을 기록했으나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는 1984년(.325)을 제외하고 모두 .349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는 7년 연속 200안타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즈키 이치로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아메리칸 리그 기록이었다.[8] 또한 6시즌 동안 200안타, 100득점, 40개 이상의 2루타를 동시에 기록하기도 했다. 1988년 이후로는 타격왕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리그 상위권의 타율을 꾸준히 유지했다.[8]
1985년 보그스는 72개의 다수 안타 경기(한 경기에서 2개 이상의 안타)를 기록하여 구단 기록을 세웠다.[8] 1986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뉴욕 메츠에게 7차전 끝에 패했다. 보그스는 펜웨이 파크에서 .369의 타율로 역대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87년에는 24홈런, 89타점, .588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으나, 이후 다른 시즌에는 이와 같은 홈런 생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그스는 1976년 드래프트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7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마이너 리그 시절부터 높은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했다. 1981년에는 AAA급 포터킷에서 타율 .335, 출루율 .437을 기록했다.
1982년 4월 10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처음에는 대타로 주로 출전했지만, 6월 후반부터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349의 타율을 기록했고, 신인왕 투표에서는 칼 립켄 주니어에 이어 3위에 올랐다. 1983년에는 타율 .361, 210안타(리그 2위)를 기록하며 타격왕을 차지했고, 출루율(.444) 역시 리그 최고를 기록하며 첫 실버 슬러거상을 수상했다.
1985년에는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선발되었고, 이후 11년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 후반기에는 .395의 타율을 기록했고, 시즌 전체로는 .368의 타율과 240안타(리그 1위), 출루율 .450을 기록하며 2년 만에 타격왕을 탈환했다. MVP 투표에서는 4위에 올랐다.
1986년에는 타율 .357, 105볼넷(리그 1위), 출루율 .453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했고, 팀의 지구 우승에 기여했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타율 .233으로 부진했지만, 팀은 4승 3패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뉴욕 메츠와의 월드 시리즈에서는 3승 2패로 앞선 6차전에서 3안타를 기록했으나 빌 버크너의 실책으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고, 결국 7차전에서도 패하며 월드 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다.
1987년에는 타율 .363, 24홈런(개인 최고), 89타점, OPS 1.049를 기록하며 3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했다. 1988년에는 홈런이 5개로 감소했지만, 타율 .366, 45개의 2루타(리그 1위), 125볼넷(리그 1위), 128득점(리그 1위), 출루율 .476을 기록하며 4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다. 팀은 2년 만에 지구 우승을 달성했으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4연패로 탈락했다.
1989년에는 타율 .330, 51개의 2루타(개인 최고), 205안타(7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했지만, 타격왕은 커비 퍼켓에게 내주며 5년 연속 타격왕 달성에는 실패했다. 1990년에는 손목 부상 등으로 부진했지만, 타율 .302를 기록했다. 팀은 2년 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했고, 다시 만난 애슬레틱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서 데이브 스튜어트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는 등 타율 .438로 활약했지만, 팀은 또다시 4연패를 당했다.
1991년에는 타율 .332로 반등했다. 1992년에는 시즌 내내 부진하며 커리어 최저 타율(.259)로 시즌을 마쳤고,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
3. 3. 뉴욕 양키스 (1993년 ~ 1997년)
1992년 보그스는 자신의 경력과 시즌 말기에 .259 점으로 떨어져 그 절정으로 자신의 전체 경력을 보낸 레드삭스를 떠났다.[9] 그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레드삭스의 숙적인 뉴욕 양키스 두 팀으로부터 열렬한 구애를 받았다.[9] 다저스가 제안하지 않은 3년째 계약을 양키스가 추가하면서, 보그스는 양키스와 1,100만 달러 규모의 3년 계약을 체결했다.[9]
보그스는 양키스에서 4개의 연속적 올스타전 출연들을 수상하였고, 4개의 연속적 .300 점 + 시즌을 기록하였으며, 자신의 방어로 2회의 골드 글러브 상을 수상하였다.[9] 1994년에는 232일에 걸친 장기 파업의 영향으로 시즌이 중단되었지만, 타율 .342, 11홈런, 출루율 .433으로 전성기 못지않은 성적을 기록했고, 생애 첫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1995년에는 타율 .324, 출루율 .412를 기록하며, 팀의 와일드카드 획득에 기여했다.
1996년 보그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양키스가 18년 만에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는 그의 유일한 월드 시리즈 우승이 되었다.[10][11] 양키스가 6점 차 열세를 뒤집고 동점을 만든 시리즈 4차전에서 보그스는 10회에 대타로 나섰다. 그는 선수 생활 내내 보여준 뛰어난 선구안을 발휘해, 스티브 에이버리를 상대로 만루에서 볼넷을 얻어 선취점을 올렸고, 결국 8-6으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을 동점으로 만들었다.[10][11] 양키스가 6차전에서 시리즈를 우승한 후, 보그스는 말 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스스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NYPD 말의 등에 올라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필드를 돌며 기억에 남을 만한 축하를 했다.[12][13]
3. 4.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1998년 ~ 1999년)
보그스는 선수 경력의 마지막 두 시즌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와 계약했다.[14] 1998년 3월 31일, 데블 레이스 창단 첫 경기 6회에 팀 역사상 첫 홈런을 기록했다. 1999년 8월 7일 인디언스전에서 6회에 2점 홈런을 쳐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15] 홈런으로 3000안타를 달성한 것은 MLB 사상 최초였다.[14] 그는 데릭 지터(2011년 7월 9일)와 알렉스 로드리게스(2015년 6월 19일)에 이어 3,000번째 안타가 홈런이었던 세 명의 선수중 한명 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무릎 부상을 입어 8월 27일을 마지막으로 전력에서 이탈,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15] 통산 타율 0.328, 3,010안타를 기록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1999년 8월 27일이었으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3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트로피카나 필드의 파란색 좌석들 중 두 개의 노란색 좌석은 두 역사적인 공이 우익수 쪽에 떨어진 지점을 표시하며, 각 좌석에는 공이 떨어진 구역임을 나타내는 작은 금속판이 부착되어 있다. 데블 레이스라는 창단 팀과 선수 경력의 후반부에 계약했기 때문에 그는 데블 레이스 출신 선수 중 최고령 선수이다. 그는 또한 팀을 위하여 활약하는 데 탬파베이의 본고장 사람이었다.
4. 선수로서의 특징
웨이드 보그스는 타격에 있어서 뛰어난 기술을 가진 선수였다. 특히 토니 그윈과는 공통점이 많아 현역 시절부터 자주 비교되었다. 두 선수 모두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언론에서는 "웨이드 보그스는 아메리칸 리그의 토니 그윈", "토니 그윈은 내셔널 리그의 웨이드 보그스"라고 칭송했다. 또한, 둘은 하루 차이로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16][17]
보그스는 뛰어난 선구안을 가지고 있어 나쁜 공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MLB 기록인 4년 연속 200안타, 100사구를 기록했다. 2스트라이크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으며, 2스트라이크에서의 타율이 더 좋은 해도 많았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2스트라이크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라고 불렸으며, 전성기에는 끈질기게 볼넷을 얻어내 상대 투수에게 많은 공을 던지게 했다. 1988년에는 719타석에서 125볼넷을 기록하면서 삼진은 34개에 불과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에는 홈구장 펜웨이 파크의 좁은 좌익수 구역과 높은 좌익 펜스 "그린 몬스터"를 이용하여 좌측으로 밀어치기를 해 많은 2루타를 만들어냈다. "펜웨이 파크 이상으로 나에게 유리한 구장은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홈에서의 타율이 매우 높았다. 뉴욕 양키스 이적 후에는 2루타가 급격히 줄었다.
공식 경기에서 홈런은 많지 않지만, 경기 전 타격 연습에서는 장타를 연발했으며, 경기에서는 굳이 홈런을 노리지 않았다고 한다. 1987년에는 24개의 홈런을 쳐 이전까지 최다였던 8개를 크게 늘렸다. 레드삭스 타격 코치는 "홈런을 노리면 연간 25~30개 정도 칠 수 있는 힘이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홈런이 적은 선수였지만, 타율과 승부 근성으로 인해 상대 투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6년 연속, 6회의 고의 사구 리그 1위를 기록했다. 이는 배리 본즈에 이은 기록이며, 1경기 3고의 사구의 아메리칸 리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 5년 연속 출루율 리그 1위를 기록했다.
보그스는 주로 3루수로 뛰었으며, 1루수로 67경기, 외야수로 1경기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투수로 2경기, 2.1이닝을 던진 적도 있다. 1997년 8월 19일에는 39세의 나이로 메이저 리그 마운드에 올라 너클볼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화제가 되었다.[55]
수비력은 평균 이상이었고, 수비 지표도 좋았지만, 명수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선수 생활 후반 뉴욕 양키스 시절에 골드 글러브를 2번 수상했다. 전성기에는 출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 주로 1번 타자를 맡았지만, 도루나 주루 플레이는 뛰어나지 않았다.
보그스는 그의 미신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매 경기 전에 닭고기를 먹었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저녁 7시 17분에 단거리를 달렸다.[29] 필드에서 자신의 위치로부터 경기가 열리는 홈의 더그아웃으로 길을 꺾었다.[30]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었어도 각각의 타석이 있기 전에 타구의 상자에서 히브리어 단어 "차이"를 끌어냈다.[31] 펜웨이 파크의 아나운서 셤 펠러가 그의 등번호를 공고하는 것을 잊을 때 그 날에 보그스가 한번 슬럼프에서 벗어났기 때분에 펠러가 그를 소개할 때 보그스는 펠러에게 자신의 등번호를 말하지 말라고 의문하였다.
5. 은퇴 이후
보그스는 《심슨 가족》 에피소드 "호머, 배트를 잡다"에 등장한 야구 선수 중 한 명으로, 미스터 번즈에 의해 발전소 소프트볼 팀의 용병으로 영입되었지만, 바니 검블과의 술집 싸움에서 기절했다.[45] 이 싸움은 파머스턴 자작과 피트 더 엘더 중 누가 영국의 최고 총리인가를 놓고 벌어졌다. 《치어스》 에피소드 "바 전쟁"에서는 본인으로 출연, 경쟁 술집에서 사과의 표시로 보내졌으나 가짜로 오해받아 공격당했다.[45] 《사인필드》의 "보호자"에서는 조지가 양키스에게 면 유니폼으로 전환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 보그스가 "정말 멋진 옷감이야! 드디어 숨을 쉴 수 있게 됐어."라고 말했다.[46]
보그스는 선수 시절 횡단 비행에서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셨다는 일화가 있으며, 때로는 64잔이라고 알려졌으나 본인은 부인했다.[47] 2011년 《사이킥》 에피소드 "데드 맨스 커브볼"에서는 대니 글로버의 캐릭터에게 실제로는 73잔이었다고 말했다. 2015년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 시즌 10 첫 방송 "갱이 보그스를 이기다"에 게스트로 출연, 등장인물들이 비행 중 70잔 이상의 맥주를 마시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보그스가 죽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48] 보그스는 배우 찰리 데이에게 비행 후 활동까지 포함해 총 107잔을 마셨다고 밝혔다.[47][49]
2017년 8월, 보그스는 뉴잉글랜드 스포츠 네트워크(NESN)에서 방송되는 탬파베이에서 열린 일부 레드삭스 경기의 컬러 해설자 대행을 맡아 스포츠 해설가 데이브 오브라이언과 함께 일했다.[50]
2018년, 웨이드 보그스는 《굿 미지컬 모닝》 에피소드에서 1990년에 만들어진 그의 웨이드 보그스 .352 바와 관련하여 언급되었다.[51] 그는 2021년 쇼에 카메오 출연했다.[52]
현역 은퇴 후 2000년, 마지막으로 소속되었던 데빌 레이스에서 그의 등번호 "'''12'''"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001년에는 타격 코치로 데빌 레이스에 소속되었으나, 1년만 역임했다.
2005년에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5년 12월, 레드삭스는 보그스의 등번호 "'''26'''"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브룩스 로빈슨에 이어 12년 연속으로 3루수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마이크 슈미트, 조지 브렛도 12회 출전했지만, 슈미트는 마지막 해에 1루수로 출전했고, 두 선수 모두 연속 출전은 아니었다.
6. 논란 및 사건
보그스는 일상적인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완벽주의자이자 미신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매 경기 전에 닭고기를 먹고,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하며, 정확히 150개의 땅볼을 연습으로 받고, 반드시 오후 5시 17분에 타격 연습에 들어가고, 오후 7시 17분에 질주를 했다. 이 때문에 "치킨 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또한, 수비 위치와 벤치를 오갈 때는 반드시 같은 루트를 통과했으며, 매 타석 전에 반드시 "Chai"(히브리어로 "생명"의 의미)라는 단어를 땅에 적었다.[56]
여색을 밝히는 것으로 야구계에서는 유명했으며[56], 현역 시절에는 성생활 관련 스캔들이 자주 있었다. 1985년에는 한 여성과 애인 관계가 되어 슬럼프에 빠지자 "팬티를 입지 않고 구장에 와라"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여성으로부터 1988년에는 감정적인 고통을 이유로 약 15억 엔의 손해 배상 소송을 당했다. 또한, 1989년에는 남성 잡지에 "그는 다른 여자에게서 성병을 옮거나 다른 여성을 임신시켰다"라고 폭로되어 불륜 소동으로 발전했다. 뉴욕 양키스 시절에도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마고 아담스 불륜 사건'''
웨이드 보그스는 1989년 캘리포니아의 주택 담보 대출 중개인 마고 아담스와 4년간의 불륜으로 야구와 관련 없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32] 1988년에 관계가 끝난 후, 아담스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1,2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고, 계약 위반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33] 그녀는 보그스가 원정 경기에 동행하는 동안 잃어버린 수입과 제공한 서비스에 대해 구두로 보상하기로 동의했다고 주장했다.[33] 아담스가 펜트하우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보그스와의 은밀한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보그스의 평판은 더욱 나빠졌다.[34] 불륜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보그스는 부정적인 언론 보도에 맞서기 위해 공세를 펼치며 아담스의 주장을 대부분 부인했다. 보그스는 ABC 프로그램 ''20/20''에 출연하여 바바라 월터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35] 1989년 2월, 항소 법원은 아담스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판결하며 초기 소송의 1,150만 달러를 기각했다.[36] 남은 50만 달러 청구는 그해 말 밝혀지지 않은 금액으로 합의되었다.[37]
'''명예의 전당 모자 논란'''
보그스는 은퇴 전, 야구 명예의 전당 명판에 사용할 모자 로고를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모자로 선택하는 대가로 데블 레이스가 금전적 보상을 제공했다는 신문 보도에 시달렸지만, 그는 그러한 조건이 자신의 계약의 일부였다는 것을 부인했다.[38] 이러한 보도(및 구단들이 등번호 영구 결번, 금전, 또는 조직 내 직책을 대가로 모자 지정을 제안했다는 다른 소문)에 비추어, 명예의 전당은 2001년에 선수들의 모자 로고 선택에 대한 희망을 존중하는 관행을 변경하기로 결정하고, 선수가 어떤 모자를 착용할지 결정하는 전당의 권한을 강화했다. 보그스는 명판에 보스턴 모자를 쓰고 있다.
6. 1. 마고 아담스 불륜 사건
웨이드 보그스는 1989년 캘리포니아의 주택 담보 대출 중개인 마고 아담스와 4년간의 불륜으로 야구와 관련 없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32] 1988년에 관계가 끝난 후, 아담스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1,2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고, 계약 위반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33] 그녀는 보그스가 원정 경기에 동행하는 동안 잃어버린 수입과 제공한 서비스에 대해 구두로 보상하기로 동의했다고 주장했다.[33] 아담스가 ''펜트하우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보그스와의 은밀한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보그스의 평판은 더욱 나빠졌다.[34] 불륜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보그스는 부정적인 언론 보도에 맞서기 위해 공세를 펼치며 아담스의 주장을 대부분 부인했다. 보그스는 ABC 프로그램 ''20/20''에 출연하여 바바라 월터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35] 1989년 2월, 항소 법원은 아담스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판결하며 초기 소송의 1,150만 달러를 기각했다.[36] 남은 50만 달러 청구는 그해 말 밝혀지지 않은 금액으로 합의되었다.[37]6. 2. 명예의 전당 모자 논란
보그스는 은퇴 전, 야구 명예의 전당 명판에 사용할 모자 로고를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모자로 선택하는 대가로 데블 레이스가 금전적 보상을 제공했다는 신문 보도에 시달렸지만, 그는 그러한 조건이 자신의 계약의 일부였다는 것을 부인했다.[38] 이러한 보도(및 구단들이 등번호 영구 결번, 금전, 또는 조직 내 직책을 대가로 모자 지정을 제안했다는 다른 소문)에 비추어, 명예의 전당은 2001년에 선수들의 모자 로고 선택에 대한 희망을 존중하는 관행을 변경하기로 결정하고, 선수가 어떤 모자를 착용할지 결정하는 전당의 권한을 강화했다. 보그스는 명판에 보스턴 모자를 쓰고 있다.7. 기타
보그스의 어머니는 1986년 6월, 그가 레드삭스에서 활동하던 중 탬파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4] 어머니가 사망한 직후 보그스와 그의 아버지는 플로리다주 호손 바로 남쪽 미국 301번 국도에 있는 어업 캠프를 구입하여 '양키 랜딩-핀웨이 피쉬 캠프'라고 이름 붙였다. 그의 아버지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곳을 운영했다.[39] 웨이드와 그의 아내 데비 사이에는 두 자녀, 브렛과 미건이 있다.[40]
웨이드 보그스는 야구 미신으로 유명하며, 매 경기 전 치킨을 먹고 특정 시간에만 연습하는 습관으로 인해 ''맨즈 피트니스''에 의해 "가장 미신적인 운동선수 1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41] 그의 치킨 섭취 습관은 그에게 "치킨 맨"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42] 일상적인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완벽주의자이자 미신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매 경기 전에 닭고기를 먹고,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하며, 정확히 150개의 땅볼을 연습으로 받고, 반드시 오후 5시 17분에 타격 연습에 들어가고, 오후 7시 17분에 질주를 했다. 또한, 수비 위치와 벤치를 오갈 때는 반드시 같은 루트를 통과했으며, 매 타석 전에 반드시 "Chai"(히브리어로 "생명"의 의미)라는 단어를 땅에 적었다.[56]
야구 선수로서 보그스는 1992년 프로레슬링 단체 월드 레슬링 페더레이션(WWF)에 출연했다. 그는 레슬러 미스터 퍼펙트(커트 헤니그)와 함께 야구를 하는 비네트에 출연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냈으며, 15년 후인 2007년, 보그스는 고인이 된 퍼펙트를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DVD ''미스터 퍼펙트의 삶과 시대''에서 보그스는 헤니그가 사냥 여행 중 부서진 철조망 울타리를 넘다가 다리를 심하게 베었을 때 자신을 도와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43] 그는 또한 1999년 12월 13일 WWF Raw Is War 에피소드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드웨인 "더 락" 존슨과 짧은 세그먼트에 참여했다.[44]
보그스는 《심슨 가족》 에피소드 "호머, 배트를 잡다"에 등장한 야구 선수 중 한 명으로, 미스터 번즈에 의해 발전소 소프트볼 팀의 용병으로 영입되었지만, 나중에는 바니 검블과의 술집 싸움에서 기절했다. (묘사된 싸움은 파머스턴 자작과 피트 더 엘더 중 누가 영국 최고의 총리인가를 놓고 벌어졌다.)[45] 보그스는 《치어스》 에피소드 "바 전쟁"에서 본인으로 출연하여, 경쟁 술집에서 사과의 표시로 술집에 보내졌다. 그는 그를 가짜라고 생각하는 단골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치어스》 작가 켄 레빈은 2009년에 보그스가 커스티 앨리의 팬티를 스프링 트레이닝에 가져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 그의 정부 마고 아담스의 팬티를 가져왔다고 밝혔다.)[45] 《사인필드》의 "보호자"에서 조지는 양키스에게 면 유니폼으로 전환하도록 설득하며, 벅 쇼월터 감독에게 폭격기가 "다른 팀보다 5도 더 시원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웨이드 보그스는 "정말 멋진 옷감이야! 드디어 숨을 쉴 수 있게 됐어."라고 말했다.[46]
보그스는 선수 생활 동안 횡단 비행에서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셨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며, 때로는 정확히 64잔이라고 알려져 있다 (보그스는 이 숫자를 부인했다).[47] 2011년, 그는 《사이킥》 에피소드 "데드 맨스 커브볼"에 출연하여, 대니 글로버의 캐릭터에게 실제 숫자는 73잔이라고 말했다. 2015년에는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 시즌 10 첫 방송 "갱이 보그스를 이기다"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등장인물들이 비행 중에 70잔 이상의 맥주를 마시려고 시도한다. 디는 보그스를 보스 호그와 혼동하고, 찰리는 보그스가 죽었다고 믿는다.[48] (이 오류는 야구 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농담이 되었다.) 보그스는 배우 찰리 데이에게 비행 후의 활동까지 포함하면 그날 총 107잔을 마셨다고 말했다고 한다.[47][49]
2017년 8월, 보그스는 뉴잉글랜드 스포츠 네트워크(NESN)에서 방송되는 탬파베이에서 열린 일부 레드삭스 경기의 컬러 해설자 대행을 맡아 스포츠 해설가 데이브 오브라이언과 함께 일했다.[50]
2018년, 웨이드 보그스는 호스트 레트와 링크가 출연하는 《굿 미지컬 모닝》 에피소드에서 1990년에 만들어진 그의 웨이드 보그스 .352 바와 관련하여 언급되었다.[51] 그는 나중에 2021년 쇼에 카메오 출연했다.[52]
2024년 9월 7일, 보그스는 전립선암과 투병 중임을 밝혔다.[53]
여색을 밝히는 것으로 야구계에서는 유명했으며[56], 현역 시절에는 성생활 관련 스캔들이 자주 있었다. 1985년에는 한 여성과 애인 관계가 되어 슬럼프에 빠지자 "팬티를 입지 않고 구장에 와라"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여성으로부터 1988년에는 감정적인 고통을 이유로 약 15억 엔의 손해 배상 소송을 당했다. 또한, 1989년에는 남성 잡지에 "그는 다른 여자에게서 성병을 옮거나 다른 여성을 임신시켰다"라고 폭로되어 불륜 소동으로 발전했다. 양키스 시절에도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다.
너무나 규칙적이어서, 어떤 원정 경기에서 상대 팀이 구장의 시계(디지털)에 "17시 16분"을 2분 동안 표시한 후 "17시 18분"을 표시하여 보그스를 혼란시키는 장난을 하기도 했다.
안타를 너무 많이 치는 보그스에 대해, 1985년 경 미네소타 트윈스는 2루 주자의 유무에 관계없이 2루 베이스에 2루수 또는 유격수가 들어가고, 투구와 동시에 이동하는 시프트를 사용한 적이 있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투구와 동시에 움직여 공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작전이었다. 곧 심판에 의해 금지되었지만, 본인은 이 시프트에 대해 "재밌다"고 언급했다.
1981년 4월 18일, 매코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로체스터 레드윙스 대 포터킷 레드삭스의 경기는 서스펜디드 경기를 포함하여 연장 33회, 끝내기 승부로 마무리된 미국 프로 야구 역사상 최장 경기이다. 마이너 리그 시절의 보그스는 이 경기에 포터킷의 6번 타자・3루수로 풀 출장하여 12타수 4안타를 기록했다. 덧붙여 로체스터의 3번 타자・유격수로 칼 립켄 주니어도 이 경기에 풀 출장했다.
8. 수상 및 기록
웨이드 보그스는 1982년에 내셔널 리그에서 데뷔한 토니 그윈과 비슷한 경력을 가졌다.[16][17] 보그스와 그윈은 당대 최고의 컨택트 히터였으며, 여러 차례 타격 타이틀을 획득했다. 보그스는 5번, 그윈은 8번의 타격 타이틀을 획득했고, 각각 4회 연속 타격 타이틀을 차지하며 타이 콥, 로저스 혼스비, 로드 커류와 함께 이 기록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들이 되었다. 그윈과 보그스는 4시즌 연속 .350 이상을 기록한 유이한 선수들이며, 루 브록과 로드 커류와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3,000안타 이상, 160홈런 미만을 기록하고 은퇴한 선수들이다.[16][17] 수위 타자 5회 (1983년, 1985년 - 1988년), 실버 슬러거상(3루수 부문) 8회 (1983년, 1986년 - 1989년, 1991년, 1993년, 1994년), 골드 글러브상(3루수 부문) 2회 (1994년, 1995년)를 수상하였다. MLB 올스타전에는 12회 (1985년 - 1996년)에 선출되었다.
1986년 6월 8일 기준으로 이전 162경기(두 시즌에 걸쳤지만, 한 시즌과 동일) 동안 보그스는 635타수 254안타, 타율 .400을 기록했다.[24] 1987년에는 개인 통산 최다인 24홈런을 기록했다. 18년 동안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하며 3번의 5안타 경기와 59번의 4안타 경기를 기록했고, 1987년 6월 29일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는 14-3으로 승리하며 개인 최다 7타점을 기록했다.[25]
토미 존은 보그스가 항상 다음 투구를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하며, "순수한 타격 실력으로 보그스는 내가 본 최고의 선수다."라고 말했다.[18]
보그스는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2.1이닝을 던지기도 했다. 그의 주 구종은 너클볼이었고, 1997년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패스트볼과 함께 16번의 너클볼을 던졌다.[19] 이 경기에서 삼진도 기록했다.[20] 1999년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1.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2015년 12월 21일, 보스턴 레드삭스는 보그스의 등번호 26번을 영구 결번한다고 발표했고,[21] 기념식은 2016년 5월 26일에 열렸다.[22]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2000년 4월 7일 그의 등번호 12번을 영구 결번했다.[26] 이는 레이스에서 유일하게 영구 결번된 번호이다. 보그스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양키스의 "올드 타이머스 데이"에 가끔 출연한다.[23]
보그스는 미신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매 경기 전 닭고기를 먹었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7시 17분에 단거리를 달렸다.[29] 필드에서 더그아웃까지 같은 경로로 이동했고, 타석에 들어서기 전 히브리어 단어 "차이"를 그렸다.[30] 펜웨이 파크 아나운서 셤 펠러가 그의 등번호를 부르는 것을 잊은 날 슬럼프에서 벗어난 이후, 펠러에게 등번호를 부르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31]
Baseball-Reference.com은 보그스의 콧수염을 야구 역사상 세 번째로 훌륭한 콧수염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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