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웅 (1890년)
1. 개요
박문웅은 1890년 12월 7일 또는 1월 20일에 태어났으며, 도지사를 지낸 친일파 박중양의 아들이다. 그는 일본 유학 후 관료가 되어 대구부, 의주군, 김제군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송군수와 청도군수를 역임하며 일제에 협력했다. 1940년 창씨개명 후 영천군수, 상주군수를 거쳐 해방 후 미군정 경상북도 자문관을 지냈으나 사퇴하고 달성군수를 역임했다.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로 선정되었으며, 1959년 사망했다.
| 이름 | 박문웅 |
|---|---|
| 원어명 | 朴文雄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일 | 1890년 12월 7일 |
|---|---|
| 출생지 | 조선 경상도 경주 |
| 사망일 | 1959년 8월 14일 |
| 사망지 | 경상북도 대구시 침산동 별장 침산장에서 병사 |
| 종교 | 유교(성리학) |
| 학력 | 일본 도쿄 세이소쿠 학교 |
| 부모 | 박중양(부), 전주 이씨 이주열(모) |
| 친인척 | 박원양(백부), 박계양(숙부), 이열희(사위) |
| 배우자 | 남원 양씨 부인(재혼) |
| 자녀 | 박혜순(딸), 박복순(딸), 박부남(딸), 박승효(아들) |
| 형제 | 박무웅(동복 남동생), 박정자(이복 여동생) |
| 정당 | 무소속 |
|---|---|
| 직책 | 경상북도 상주군 군수 |
| 임기 | 1943년 3월 6일 ~ 1944년 8월 14일 |
| 국가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
|---|---|
| 군주 | 히로히토 |
| 섭정 | 도조 히데키(前), 히가시쿠니 나루히코(前) |
| 총리 | 미나미(일본 총리), 도조(일본 총리), 히가시쿠니(일본 부총리 겸 총리 권한대행), 고이소(일본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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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소쿠가쿠엔 고등학교 동문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
세이소쿠가쿠엔 고등학교 동문 -
윤보선
윤보선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한국민주당 창당, 서울특별시장 및 상공부 장관 역임, 제2공화국 대통령 역임, 그리고 민주화 운동 참여 등의 활동을 했다. -
일제강점기의 유학자 -
김남수 (교육인)
김남수는 부친에게 침술을 전수받아 남수침술원을 개설하고 대한침구사협회 등에서 활동하며 한국정통침구학회 회장, 정통침뜸교육원 원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침구사로, 국민훈장 동백장과 미국 대통령 자원봉사상 금상을 수상했다. -
일제강점기의 유학자 -
주공삼
주공삼은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시기를 거치며 월남을 시도하고 피난 생활을 하다가 1953년 뇌수막염으로 사망한 인물이며, 주요 자녀로 주요한, 주요섭, 주영섭 등이 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2. 생애
박문웅은 1890년 12월 7일 또는 1월 20일 도지사를 지낸 친일파 박중양과 그의 부인인 전주 이씨 이주열의 장남으로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출생년도는 1890년생 설과 1891년생 설이 있어 다소 불분명하다. 대구, 밀양, 전라도 나주 등지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896년 이후 경기도 양주에서 성장했다.
일본으로 유학, 일본 시가현(磁駕縣) 하코네 중학교(彦根中學校)를 졸업하고 세이소쿠 영어학교로 진학하여 1914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1914년 11월 판임문관 공개채용 시험에 합격한 뒤 1915년 대구부 판임관 견습(判任官見習)이 되었다. 1916년 대구부 판임관 견습으로 발령되었다. 1919년 평안북도 의주군 판임관 견습이 되고, 그해 5월 의주군 군서기(郡書記)에 임용되었다.
1921년 김제군 군속(郡屬)으로 발령되어 김제군청 군속, 1923년 김제군 김제읍 주사로 근무하였다. 1922년 5월 1일 경상북도 주왕산 고적 보존회의 창립에 참여하고 공동회장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전라북도 내무부 학무과 주사로 발령되었다. 1927년 경상북도 김천군속(屬)으로 배속되었고, 1928년 김천군 총무과 서무주임이 되었다. 1930년 군위군속으로 발령받았다. 1931년 11월 26일 군위군 총무과 서무주임이 되었다.
사무관을 거쳐 1934년 9월 14일 경상북도 군속이 되었다. 1934년 9월 16일 고등관 7등에 군수로 승진, 청송군(靑松郡守) 군수가 되었다. 청송군수로 재직 중 1935년 판임관 7등이 되고, 1937년 판임관 6등으로 승진하였다. 1938년 3월 17일 청도군 군수가 되었다. 그해 8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청도군지회 이사장을 맡았다. 이후 달성군수, 청송군수 등을 지내고 1939년 9월 30일 인사에서 고등관 4등(高等官四等)으로 승진하였다.
군수로 재직하면서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1937년 7월부터 1940년까지 군수품 공출, 강연회와 기원제를 통한 국방사상 보급, 국방헌금 모집 등 전시(戰時) 업무를 적극 수행하여 '지나사변공적조서'에 이름이 올랐다.
1939년 12월 17일 청도군의 유학자 모임인 청도유림회(淸道儒林會) 결성에 참여하고 지부장에 추대되었다. 12월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4년 12월 말 밀양군수를 거쳐 1945년 해방 후 관직에서 물러나 대구 침산 근처로 낙향하였다. 1945년 9월 2일 미군정청 경상북도 자문관에 임명되었으나 12월 26일 사퇴하였다. 미군정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계속 채용하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대구 침산 근처에서 아버지 박중양과 일본인 계모와 생활하였다. 1945년 9월 12일부터 1946년까지 달성군수를 역임하였다.
1959년 8월 14일에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의 침산장에서 사망하였다.
2.1. 생애 초반
박문웅은 1890년 12월 7일 또는 1월 20일 도지사를 지낸 친일파 박중양과 그의 부인인 전주 이씨 이주열의 장남으로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출생년도는 1890년생 설과 1891년생 설이 있어 다소 불분명하다. 대구, 밀양, 전라도 나주 등지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896년 이후 경기도 양주에서 성장했다.
일본으로 유학, 일본 시가현(磁駕縣) 하코네 중학교(彦根中學校)를 졸업하고 세이소쿠 영어학교로 진학하여 1914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1914년 11월 판임문관 공개채용 시험에 합격한 뒤 1915년 대구부 판임관 견습(判任官見習)이 되었다.
2.2. 관료 생활
1916년 대구부 판임관 견습으로 발령되었다. 1919년 평안북도 의주군 판임관 견습이 되고, 그해 5월 의주군 군서기(郡書記)에 임용되었다.
1921년 김제군 군속(郡屬)으로 발령되어 김제군청 군속, 1923년 김제군 김제읍 주사로 근무하였다. 1922년 5월 1일 경상북도 주왕산 고적 보존회의 창립에 참여하고 공동회장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전라북도 내무부 학무과 주사로 발령되었다. 1927년 경상북도 김천군속(屬)으로 배속되었고, 1928년 김천군 총무과 서무주임이 되었다. 1930년 군위군속으로 발령받았다. 이어 1931년 11월 26일 군위군 총무과 서무주임이 되었다.
그 뒤 사무관을 거쳐 1934년 9월 14일 경상북도 군속이 되었다. 1934년 9월 16일 고등관 7등에 군수로 승진, 청송군(靑松郡守) 군수가 되었다. 청송군수로 재직 중 1935년 판임관 7등이 되고, 1937년 판임관 6등으로 승진하였다. 1938년 3월 17일 청도군 군수가 되었다. 그해 8월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청도군지회 이사장을 맡았다. 이후 달성군수, 청송군수 등을 지내고 1939년 9월 30일 인사에서 고등관 4등(高等官四等)으로 승진하였다.
군수로 재직하면서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1937년 7월부터 1940년까지 군수품 공출, 강연회와 기원제를 통한 국방사상 보급, 국방헌금 모집 등 전시(戰時) 업무를 적극 수행하여 '지나사변공적조서'에 이름이 올랐다.
1939년 12월 17일 청도군의 유학자 모임인 청도유림회(淸道儒林會) 결성에 참여하고 지부장에 추대되었다. 12월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2.3. 생애 후반
1944년 12월 말 밀양군수를 거쳐 1945년 해방 후 관직에서 물러나 대구 침산 근처로 낙향하였다. 1945년 9월 2일 미군정청 경상북도 자문관에 임명되었으나 12월 26일 사퇴하였다. 미군정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계속 채용하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대구 침산 근처에서 아버지 박중양과 일본인 계모와 생활하였다.
1945년 9월 12일부터 1946년까지 달성군수를 역임하였다.
1959년 8월 14일에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의 침산장에서 사망하였다.
3. 사후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그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오봉산에 있었으나 2004년 후손들에 의해 화장되었다.
4.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박중양 (朴重陽, 1872년 5월 3일 ~ 1959년 4월 23일) | 일제강점기의 친일 관료,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됨 |
| 어머니 | 이주열 (李主悅, 1870년 3월 4일 ~ 1961년 5월 20일) | 본관은 전주 |
| 동생 | 박무웅 (朴武雄, 생몰년 미상) | |
| 서모 | 일본 여자 (1909년 ~ ?) | |
| 이복 여동생 | 박정자 (朴政子, 1936년 - ) | |
| 부인 (초취) | 이름 미상 | 사별 |
| 부인 (재취) | 양순이 (梁順伊, 1907년 8월 11일 ~ ?) | 본관은 남원 양씨, 양재형(梁在亨)의 딸 |
| 장인 | 양재형 (梁在亨) | |
| 딸 | 박혜순 | |
| 사위 | 노영달 (盧榮達, 본관은 상주) | |
| 딸 | 박복순 | |
| 사위 | 강태수 (姜太秀, 본관은 진주) | |
| 딸 | 박부남 (朴富南, 1930년 ~ 2018년 1월 11일) | |
| 사위 | 이열희 (李烈熙, 본관은 경주) | |
| 아들 | 박승효 (朴勝孝, 1933년 8월 1일 ~ ) | 다른 이름은 세정(世楨) |
| 며느리 | 양근함씨 (陽根咸氏, 1937년 11월 11일 ~ ) | 함승호(咸升鎬)의 딸 |
| 손자 | 박영목 (朴永睦, 1964년 ~ ) | |
| 손자 | 박정목 (朴正睦, 1967년 ~ ) |
이 외에, 친동생 1명, 친누이 2명, 이복 형제자매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