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춘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박의춘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으로, 2007년 5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외무상을 역임했다. 1973년 카메룬 주재 임시 대리대사로 외교 경력을 시작하여, 알제리, 시리아, 레바논 대사를 거쳤으며,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주 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외무상 재임 기간 동안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지역 포럼(ARF) 등에서 북한 대표로 활동했으며,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박의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2008년의 박의춘
로마자 표기Bak Uichun
한글박의춘
한자朴義春
출생일1932년 8월 15일
출생지함경남도
직책
직함외무상
임기 시작2007년
임기 종료2014년 4월 9일
이전강석주 (직무 대행)
이후리수용
정치 경력
소속 정당조선로동당
내각김영일 내각
최영림 내각
박봉주 내각
주석김정일
김정은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러시아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 - 주영하 (1908년)
    해방 직후 북한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주영하는 조선공산당 북조선지부, 함경남도 임시인민위원회, 원산시 인민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겸 정치위원을 역임하며 남북협상 참여, 초대 내각 교통상, 주소련 북조선 대사를 지냈으나 김일성 중심의 권력 구도 속에서 숙청당했다.
  • 러시아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 - 김영재 (1952년)
    김영재(1952년)는 강원도 출신으로 행정고시 합격 후 공직에 입문하여 상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주요 보직을 거쳐 한국가스공사 사장,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국가장의위원회 위원과 대외경제상으로 활동 후 변호사가 되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무상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무상 - 리선권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 - 김정남 (김정일의 아들)
    김정남은 김정일의 장남으로, 한때 후계자로 거론되었으나 위조 여권 사건 이후 후계 경쟁에서 멀어졌으며, 김정은의 권력 승계에 반대하다가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되었다.

2. 이력

193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유아기에 잠시 함경남도 함흥함주군에서 지낸 바 있다.

1973년 카메룬 주재 임시 대리대사를 시작으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알제리, 시리아, 레바논중동아프리카 국가에서 대사를 역임했다. 외무성 부상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도 활동했다.

1998년 4월부터 2006년 9월까지는 주러시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로 8년간 재임하며, 김정일 당시 총비서의 러시아 방문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 등 양국 간 정상 외교를 지원했다.

2007년 1월 전임자 백남순의 사망 후, 같은 해 5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외무상에 임명되었다. 외무상 재임 기간 동안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지역 포럼(ARF) 등 다자 외교 무대에 북한 대표로 참석하고, 이란, 쿠바, 러시아, 중국, 미얀마 등을 방문했다. 2007년 6월 20일 평양시 고려호텔에서 외무성 부상 김영일과 함께 주북 필리핀대사 및 외무상 일행과 회담하였다. 2010년 7월 23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참석하여 천안함 침몰 사건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를 약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방북한 지미 카터대통령과 회담하고 일본의 납치 문제 제기에 대해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2014년 4월 9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외무상직에서 해임되었다.

2.1. 외교관 경력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여 외교관이 된 후, 1973년 카메룬 주재 임시 대리대사로 부임하며 외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알제리, 시리아, 레바논 주재 대사를 역임했으며, 외무성 부상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도 활동했다. 1998년 4월부터 8년간 주러시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로 근무하며, 당시 김정일 총비서의 러시아 방문 및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 등 양국 간 정상 외교를 보좌했다. 2006년 4월러시아 대사직에서 해임되었고, 같은 해 9월 김영재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2007년 1월 전임자 백남순의 사망 이후, 같은 해 5월 18일 조선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내각 신임 외무상에 임명되었다. 외무상으로서 2007년 6월 20일에는 평양시 평양 고려호텔에서 외무성 부상 김영일과 함께 방북한 필리핀 대사 및 외무상 일행과 회담했으며,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ARF) 각료 회의 등 다자 외교 무대에서 북한 대표로 활동했다.

2008년에는 이란, 2009년에는 쿠바, 2010년에는 러시아, 중국, 미얀마를 차례로 공식 방문했다. 2010년 7월 23일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ARF)에 참석해서는 천안함 침몰 사건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1년 4월에는 방북한 미국지미 카터대통령과 회담했으며, 같은 해 7월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ARF)에서는 일본마쓰모토 다케아키 당시 외무대신이 제기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이미 해결된 문제"라며 기존의 북한 측 입장을 반복했다.

2014년 4월 9일 열린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외무상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2.2. 외무상 임명 및 활동

2007년 1월 전임 외무상 백남순의 사망 이후, 같은 해 5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박의춘이 신임 외무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외무상 임명 전 외무성 부상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으며, 1998년 4월부터 2006년 9월까지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했다. 러시아 대사 시절에는 김정일 총비서의 러시아 방문 및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 등 정상 외교를 보좌했다.

외무상 취임 직후인 2007년 6월 20일, 평양시 평양 고려호텔에서 외무성 부상 김영일과 함께 방북한 필리핀 대사 및 외무상 일행과 회담하였다. 이후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지역 포럼(ARF) 각료 회의 등 여러 국제 무대에서 북한 대표로 활동했다.

주요 외교 활동은 다음과 같다.
* 2008년: 이란 공식 방문.
* 2009년: 쿠바 공식 방문.
* 2010년: 러시아, 중국, 미얀마 공식 방문.
* 2010년 7월 23일: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 (ARF) 참석. 이 자리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 경제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 2011년 4월: 방북한 미국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회담.
* 2011년 7월: ARF에서 일본마쓰모토 다케아키 외무대신이 제기한 일본인 납치 문제 조기 해결 요구에 대해, "납치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반론했다.

2014년 4월 9일 열린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외무상직에서 해임되었다.

2.3. 외무상 해임

2014년 4월 9일에 열린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외무상에서 해임되었다.

2.4. 기타 경력

1973년 카메룬 주재 임시 대리대사로 부임하며 외교관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알제리, 시리아, 레바논중동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대사를 역임했으며, 외무성 부상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도 활동했다.

1998년 4월부터는 주 러시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로 임명되어 8년간 근무했다. 러시아 대사 재임 중에는 김정일 총비서의 러시아 방문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 등 양국 정상 외교를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006년 9월 주 러시아 대사직에서 물러났으며, 후임으로는 김영재가 임명되었다.

2007년 1월 전임 백남순 외무상의 사망 이후, 같은 해 5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신임 외무상으로 임명되었다. 외무상 취임 직후인 2007년 6월 20일에는 평양시 고려호텔에서 외무성 부상 김영일과 함께 방북한 필리핀 대사 및 외무상 일행과 회담했다.

외무상으로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지역 포럼(ARF) 각료 회의 등 여러 국제회의에 북한 대표로 참석했다. 2010년 7월 23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2008년 이란, 2009년 쿠바, 2010년 러시아, 중국, 미얀마를 차례로 공식 방문하며 외교 활동을 이어갔다.

2011년 4월에는 방북한 미국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회담했다. 같은 해 7월 열린 ARF에서는 일본마쓰모토 다케아키 외무대신이 일본인 납치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자, "납치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며 반박했다.

2014년 4월 9일 열린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외무상에서 해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