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다케아키
1. 개요
마쓰모토 다케아키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본흥업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아버지의 비서관을 거쳐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민주당 소속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후, 외무 부대신과 외무대신을 역임했다. 이후 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당에 입당, 총무대신을 두 차례 역임했다. 헌법 개정에 찬성하며, 친가에 이토 히로부미가 있는 등 정치 명문가의 일원이다. 정치 자금 파티 관련 의혹과 국회 본회의 중 졸음 논란 등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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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59년 4월 25일 |
|---|---|
| 출생지 | 일본 도쿄도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2017년–현재) |
| 다른 정당 | 무소속 (1998년 이전; 2015년–2017년) 민주당 (1998년–2015년) |
| 학력 | 도쿄 대학 |
| 직책 | 총무대신 |
|---|---|
| 총리 | 기시다 후미오 |
| 임기 시작 | 2023년 12월 14일 |
| 임기 종료 | 2024년 10월 1일 |
| 이전 | 스즈키 준지 |
| 이후 |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
| 총리 | 기시다 후미오 |
| 임기 시작 | 2022년 11월 21일 |
| 임기 종료 | 2023년 9월 13일 |
| 이전 | 데라다 미노루 |
| 이후 | 스즈키 준지 |
| 직책 | 외무대신 |
| 총리 | 간 나오토 |
| 임기 시작 | 2011년 3월 9일 |
| 임기 종료 | 2011년 9월 2일 |
| 이전 | 에다노 유키오 (대행) |
| 이후 | 겐바 고이치로 |
| 직책 | 중의원 의원 |
| 선거구 | 효고 11구 (2000–2005; 2009–현재) 긴키 PR (2005–2009) |
| 임기 시작 | 2000년 6월 26일 |
| 이전 | 도이다 도루 |
| 학력 | 도쿄 대학 법학부 제2류 졸업 |
|---|---|
| 이전 직업 | 일본흥업은행 종업원 마쓰모토 주로 방위청 장관 비서관 |
| 친족 (정치가) | 고조부: 이토 히로부미 (초대, 제5대, 제7대, 제10대 내각총리대신) 아버지: 마쓰모토 주로 (제48대 방위청 장관) |
| 웹사이트 | 마쓰모토 다케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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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총무대신 -
아소 다로
아소 다로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하고 1979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여러 요직을 거쳐 제9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며 현재 자유민주당 부총재 및 최고 고문이다. -
일본의 총무대신 -
고다마 겐타로
고다마 겐타로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만주군 총참모장으로 러일 전쟁 승리에 기여하고 대만 총독으로서 식민 통치를 펼치며 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관여하는 등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모두 남겼다. -
1959년 출생 -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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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출생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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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출신 -
이와야 사자나미
이와야 사자나미는 메이지 시대에 아동 문학을 보급하고 일본 최초의 아동 문학 총서 간행, 전승 설화 리텔링, '옛날이야기 하이쿠 그림' 창조 등을 통해 일본 근대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동 문학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이자 문예 평론가이다. -
도쿄도 출신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2. 생애
도쿄도 출신으로,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82년 일본흥업은행에 들어갔으며, 1989년 아버지 마쓰모토 주로가 제1차 가이후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이 되자, 일본흥업은행을 퇴직하고 비서관을 맡았다.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효고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2000년 민주당 소속으로 다시 효고 현에서 출마해 자유민주당 후보를 이기고 첫 당선되었다. 이후 2009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까지 총 4차례 당선되었다.
같은 해 중의원 의원 운영 위원장이 되었으며, 2010년 간 내각 제1차 개조내각에서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대신 아래 외무성 부대신으로 임명되었다. 2011년 간 내각 제2차 개조내각에서는 외무성 부대신에 재임했으며, 같은 해 3월 재일 한국인에게 정치 자금을 받은 문제로 사임한 마에하라 세이지의 후임 외무대신이 되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토 히로부미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5년 10월 26일, 안보 법제를 둘러싼 민주당의 국회 대응과 공산당과의 연대 자세(민공 공투)에 대해 "민주당은 철저한 야당 노선으로 변해버렸다", "자신이 그리는 정권, 생각하는 정권으로 가는 길과 민주당이 가는 길은 더 이상 겹치지 않는다"며 민주당 탈당을 표명했다. 11월 10일 민주당은 탈당계를 수리했다.
2016년 9월 26일, 스즈키 다카코와 함께 자유민주당 중의원 원내 회파에 참가했으며, 2017년 9월 27일 자유민주당에 입당했다. 2022년 11월 21일 총무대신에 취임했다.
2023년 12월 14일, 자민당 5개 파벌의 정치 자금 파티를 둘러싼 뒷돈 문제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세이와 정책 연구회(아베파) 각료 4명과 부대신 5명을 사실상 해임했다. 마쓰모토는 스즈키 준지 후임으로 총무대신에 취임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재등판이었으며, 민주당 시대부터 3번째 입각이었지만, 모두 내각 개조 전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전임 대신의 후임으로 입각했다.
2022년 11월 21일, 테라다 미노루 총무대신이 부적절한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 제출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사임했다. 같은 날, 마쓰모토가 후임으로 취임했지만, 다음 날인 22일, 마쓰모토의 자금 관리 단체 "마쓰모토 타케아키 후원회"가 2018년~2020년에 개최한 정치자금 파티 "마쓰모토 타케아키 지원의 모임"에서 회장 수용 인원을 대폭 초과하는 파티 티켓을 판매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된 3번의 파티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년월일 회장 수입 대가의 지불을 한 자의 수 2018년 9월 11일 히메지 캐슬 그란비리오 호텔 21.6 420명 2019년 9월 20일 호텔 닛코 히메지 21.6 459명 2020년 9월 18일 히메지 캐슬 그란비리오 호텔 19.88 448명
티켓 1장당 가격이 20000JPY인 경우, 어느 해든 약 1000명 분의 구매가 있었던 셈이지만, 회장이 된 두 호텔의 연회장 최대 수용 인원은 입석으로 각각 600명과 400명이며, 파티 티켓 판매 수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쓰모토 타케아키 후원회"는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부로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자금 규정법 위반 혐의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 보도되었다.
2022년 11월 25일, 총무성이 전년도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를 공표했다. "마쓰모토 타케아키 후원회"가 2021년 12월 27일에 개최한 "마쓰모토 타케아키 지원의 모임·세미나"에서도 회장 수용 인원을 대폭 초과하는 파티 티켓을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다.년월일 회장 수입 대가의 지불을 한 자의 수 2021년 12월 27일 호텔 닛코 히메지 17.72 349명
* 흡연자이며, 초당파 애연가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의원 연맹 '모쿠모쿠회'에 소속되어 있다.
* 민주당 내에서는 노다 그룹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점차 노다 요시히코와 거리를 두고 오자와 이치로와 거리를 좁혔다. 2009년 중의원의원운영위원장 취임 이후에는 총무대신 하라구치 가즈히로, 민주당 부간사장 호소노 고시와 함께 '아첨꾼 3인방'으로 조롱받았다.
2.1. 초기 생애 및 은행원 시절
도쿄도 출신으로, 무사시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대학 법학부 제2류 (공법 코스)를 졸업하였다. 1982년 일본흥업은행(日本興業銀行)에 들어갔다.
1989년 8월, 아버지 마쓰모토 주로가 제1차 가이후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에 취임하자 일본흥업은행을 퇴직하고 비서관을 맡았다.
2.2. 정계 입문
도쿄도 출신으로,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82년 일본흥업은행(日本興業銀行)에 들어갔으며, 1989년 아버지 마쓰모토 주로가 제1차 가이후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이 되자 일본흥업은행을 퇴직하고 비서관을 맡았다.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효고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0년 민주당 소속으로 다시 효고현에서 출마해 자유민주당 후보 도이다 토오루를 꺾고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2003년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도이다 토오루를 꺾고 재선되었으며,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까지 총 4차례 당선되었다.
2003년 민주당 다음 내각에서 NC 방위청 장관에 취임했고, 2004년 NC 방위청 부장관을 맡았다. 민주당 내에서는 외교·안전보장 정책 전문가로 알려졌다.
2005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도이다 토오루에게 패했지만, 비례 긴키 블록에서 부활하여 3선에 성공했다. 같은 해 마에하라 세이지 민주당 대표 추천인으로 참여했으며, 마에하라 집행부에서 정책조사회장으로 발탁되었다. 마에하라 신임 대표에 의한 다음 내각에서는 NC 내각관방장관(규제 개혁 담당)에 취임했다. 2006년 호리에 메일 문제로 마에하라 대표가 사임한 후에도 정책조사회장에 유임되었고, 2007년 퇴임했다.
2009년 중의원 의원운영위원장이 되었으며, 2010년 간 나오토 제1차 개조내각에서는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대신 아래에서 외무성 부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아오야마회 간사장에 취임했다. 2011년 간 나오토 제2차 개조내각에서 외무성 부대신에 재임명되었다.
2.3. 외무대신 취임
2011년 간 내각 제2차 개조내각에서 외무성 부대신으로 재임했으며, 같은 해 3월 재일 한국인에게 정치 자금을 받은 문제로 사임한 마에하라 세이지의 후임 외무대신이 되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토 히로부미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 지진 복구를 위한 "복구 외교"를 제창하며 외교 정책을 전략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 내각에서는 자원 확보 및 인프라스트럭처 수출 중심의 "경제 외교"에 중점을 두었으나, 마쓰모토는 "복구 외교"를 추가하여 피해 지역에 대한 투자 활성화 및 관광객 유치 등 피해 지역 지원 방침을 표명했다.
2011년 4월 말부터 5월 초, 마쓰모토는 각국을 방문하여 지진 지원에 대한 감사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 상황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보정 예산안 심의 중 국회 예산위원회 기본 질의 및 결론 질의에 모든 각료가 출석하는 것이 관례여서 찬반 논란이 있었다.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아즈미 준은 국외 출장에 반대하며 보정 예산안 심의 우선을 주장했다. 반면, 자유민주당 총무회장 고이케 유리코는 대외적 발신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마쓰모토의 방침을 지지했고, 요미우리 신문도 사설에서 외교 중시를 위한 새로운 국회 관례 확립을 제안했다.
결국 여야 합의로 마쓰모토의 국외 출장이 결정되었고, 외무성 정무 삼역은 각국을 방문했다. 미국, 부탄, 스리랑카 등이 방문 대상에 포함되었으나,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인도 등 인접국은 제외되어 산케이 신문은 복구 외교에 전략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한 농산물 풍평 피해에 대해, 마쓰모토는 국외 오보 대응 의지를 밝혔다. 그는 외무성 청사 식당에서 후쿠시마현 농산물을 직접 먹으며 정확한 정보 전달을 강조했다. 브라질이 일본산 수입 농산물에 안전성 증명서 첨부를 요구하자, 마쓰모토는 브라질 외무부 장관 안토니오 파트리오타에게 직접 담판하여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대응을 요청했고, 파트리오타는 상황 변화에 따른 검토 및 철폐 가능성을 약속했다.
같은 해 9월, 노다 내각 발족으로 외무대신에서 퇴임했다.
2.4. 민주당 탈당과 자민당 입당
2015년 10월 26일, 마쓰모토는 안보 법제를 둘러싼 민주당의 국회 대응과 공산당과의 연대 자세(민공 공투)에 대해 "민주당은 철저한 야당 노선으로 변해버렸다", "나 자신이 그리는 정권, 생각하는 정권으로 가는 길과 민주당이 가는 길은 더 이상 겹치지 않는다"며 민주당 탈당을 표명했다. 11월 10일, 민주당은 마쓰모토가 제출한 탈당계를 수리했다.
2016년 9월 26일, 스즈키 다카코와 함께 자유민주당의 중의원 원내 회파에 참가했다. 2017년 9월 27일, 자유민주당에 입당했다.
2.5. 총무대신 취임
2022년 11월 21일,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 내각에서 총무대신을 맡고 있던 테라다 미노루가 자신의 정치 단체의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 문제로 사실상 해임되자, 그 후임으로 기용되었다. 이로써 민주당 연립 정권과 제2차 아베 내각 이후의 자공 연립 정권 양쪽에서 대신 직을 역임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2023년 9월 13일,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 내각이 발족하여, 마쓰모토는 총무대신을 퇴임했다.
2023년 12월 14일, 자민당 5개 파벌의 정치 자금 파티를 둘러싼 뒷돈 문제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세이와 정책 연구회(아베파)의 각료 4명과 부대신 5명을 사실상 해임했다. 마쓰모토는 스즈키 준지의 후임으로 총무대신에 취임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재등판하게 되었다. 민주당 시대부터 3번째 입각이 되었지만, 모두 내각 개조 전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전 대신의 후임으로서 입각하게 되었다.
2022년 11월 21일, 테라다 미노루 총무대신이 부적절한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 제출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을 이유로 대신을 사임했다. 같은 날, 마쓰모토가 그 후임으로 취임했지만, 다음 날인 22일, 마쓰모토의 자금 관리 단체 "마쓰모토 타케아키 후원회"가 2018년~2020년에 개최한 정치자금 파티 "마쓰모토 타케아키 지원의 모임"에서 마쓰모토가 회장 수용 인원을 대폭 초과하는 파티 티켓을 판매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된 3번의 파티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년월일 회장 수입 대가의 지불을 한 자의 수 2018년 9월 11일 히메지 캐슬 그란비리오 호텔 21.6 420명 2019년 9월 20일 호텔 닛코 히메지 21.6 459명 2020년 9월 18일 히메지 캐슬 그란비리오 호텔 19.88 448명
티켓 1장당 가격이 20000JPY인 경우, 어느 해든 약 1000명 분의 구매가 있었던 셈이지만, 회장이 된 두 호텔의 연회장의 최대 수용 인원은 입석으로 각각 600명과 400명이며, 파티 티켓 판매 수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쓰모토 타케아키 후원회"는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부로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자금 규정법에 위반될 혐의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 보도되었다.
2022년 11월 25일, 총무성이 전년도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를 공표했다. "마쓰모토 타케아키 후원회"가 2021년 12월 27일에 개최한 "마쓰모토 타케아키 지원의 모임·세미나"에서도 회장 수용 인원을 대폭 초과하는 파티 티켓을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다.년월일 회장 수입 대가의 지불을 한 자의 수 2021년 12월 27일 호텔 닛코 히메지 17.72 349명
3. 정책 및 주장
* 헌법 개정에 대해 2021년 설문조사에서 "찬성"이라고 답변했다.
*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것에 대해 2021년 설문조사에서 "찬성"이라고 답변했다.
* 개정해야 할 항목으로 "자위대 유지를 명기한다", "집단적 자위권 유지를 명기한다", "환경권에 관한 조항을 신설한다", "프라이버시권에 관한 조항을 신설한다", "교육 충실을 위한 환경 정비를 한다는 취지를 명기한다", "긴급사태에 관한 조항을 신설한다"라고 주장했다.
* 헌법을 개정하고 긴급사태 조항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의 설문조사에서 "찬성"이라고 답변했다.
* 헌법 해석 변경에 따른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하고 있으며, 마에하라 세이지가 주최하는 방위 연구회에 참가했다.
*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적기지 공격도 망설여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2021년 설문 조사에서 "어느 쪽이냐 하면 찬성"이라고 답변했다.
*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2021년 설문 조사에서 "찬성"이라고 답변했다.
*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에 대해, 2021년 설문 조사에서 "찬성"이라고 답변했다.
* 일본이 핵 보유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 2011년 3월,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결과, 각 사의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명기된 것이 밝혀졌다.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인 권철현은 외무 대신이었던 마쓰모토에게 항의했지만, 마쓰모토는 면회를 두 차례나 거부하며 대사를 상대하지 않았다. 세 번째 요청에 마침내 면회에 응했지만, 마쓰모토는 "항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단언하며, 한국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 태도는 한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한국 정부는 항의의 의미를 담아 독도에 해양 기지 건설을 발표했다. 마쓰모토가 권철현에게 항의하자, 권철현은 "일본이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으니, 우리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외무대신 재임 중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지진 복구의 관점에서 외교 정책을 전략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복구 외교"를 제창했다.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대해, 2021년 아사히 신문사 앙케이트에서 "어느 쪽이냐 하면 찬성"이라고 응답했고, 같은 해 NHK 앙케이트에서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 동성결혼을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에 대해, 2021년 아사히 신문사 앙케이트에서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응답했고, 같은 해 NHK 앙케이트에서는 응답하지 않았다.
* "LGBT 등 성소수자를 둘러싼 이해 증진 법안을 조기에 성립시켜야 하는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2021년 앙케이트에서 "어느 쪽이냐 하면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 할당제 도입에 대해, 2021년 앙케이트에서 응답하지 않았다.
* 모리토모 학원에 대한 국유지 매각을 둘러싼 공문서 위조 문제와 관련하여 2021년 5월 6일, 국가는 '아카기 파일'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파일의 존재를 감안한 재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보도 각사에 서면으로 제시했고,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총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도 재조사 실시를 부정했다. 국가의 대응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같은 해 마이니치 신문사의 설문조사에 응답하지 않았다.
*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2021년 설문 조사에서 "현상 유지를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대책으로, 소비세율의 일시적인 인하에 대해 2021년 설문 조사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 외무 대신 재임 중, "일본 외교의 발신 강화다"라고 주장하며 소셜 미디어 활용을 꾀하는 등, 정보 발신 강화에 힘썼다.
* 아사오 게이이치로, 오쓰카 코헤이, 호소노 고시, 후루카와 모토히사, 마쓰이 고지 등과 함께 "1000만 명 이민 수용 구상"을 공동 제안했다.
4. 논란
2022년 11월 22일, "아카하타 신문"은 마쓰모토의 자금 관리 단체 "마쓰모토 다케아키 후원회"가 개최한 정치 자금 파티의 수입을 둘러싸고, 정치 자금 규정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열린 참의원 본회의에서 일본 공산당의 가미 토모코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마쓰모토의 대신 임명 책임을 추궁했다. 더욱이 니혼 TV 계열의 정보 프로그램에서, 그 본회의에서 조는 마쓰모토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같은 방송국의 기자가 "본회의 중에 졸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묻자, 마쓰모토는 "저는 눈이 가늘어서요"라고 변명했다. 같은 날, 마쓰모토는 취임 기자 회견에서 파티 티켓 가격에 대해 "현 단계에서는 정확한 답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22년 11월 24일 참의원 총무위원회에서도 마쓰모토는 조는 것을 부인하며, "저 자신, 그다지 눈이 큰 편이 아니다", "생각할 때 눈을 가늘게 하는 버릇이 있다"고 말했다.
2023년 12월 14일, 자민당 5개 파벌의 정치 자금 파티를 둘러싼 뒷돈 문제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세이와 정책 연구회(아베파)의 각료 4명과 부대신 5명을 사실상 해임했다. 마쓰모토는 스즈키 준지의 후임으로 총무대신에 취임했다.
2004년 정치인의 연금 미납 문제가 문제화되었을 때, 한 달 분의 연금 미납이 판명되었다.
2022년 11월 21일, 테라다 미노루 총무대신이 부적절한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 제출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을 이유로 대신을 사임했다. 같은 날, 마쓰모토가 그 후임으로 취임했지만, 다음 날인 22일, 마쓰모토의 자금 관리 단체 "마쓰모토 타케아키 후원회"가 2018년~2020년에 개최한 정치자금 파티 "마쓰모토 타케아키 지원의 모임"에서 마쓰모토가 회장 수용 인원을 대폭 초과하는 파티 티켓을 판매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된 3번의 파티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년월일 회장 수입 대가의 지불을 한 자의 수 2018년 9월 11일 히메지 캐슬 그란비리오 호텔 21.6 420명 2019년 9월 20일 호텔 닛코 히메지 21.6 459명 2020년 9월 18일 히메지 캐슬 그란비리오 호텔 19.88 448명
티켓 1장 가격이 20인 경우, 어느 해든 약 1000명 분의 구매가 있었던 셈이지만, 회장이 된 두 호텔의 연회장의 최대 수용 인원은 입석으로 각각 600명과 400명이며, 파티 티켓 판매 수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쓰모토 타케아키 후원회"는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부로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자금 규정법에 위반될 혐의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 보도되었다.
2022년 11월 25일, 총무성이 전년도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를 공표했다. "마쓰모토 타케아키 후원회"가 2021년 12월 27일에 개최한 "마쓰모토 타케아키 지원의 모임·세미나"에서도 회장 수용 인원을 대폭 초과하는 파티 티켓을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다.년월일 회장 수입 대가의 지불을 한 자의 수 2021년 12월 27일 호텔 닛코 히메지 17.72 349명
5. 가계
* 아버지: 마쓰모토 주로 - 전 중의원 의원·방위청 장관
* 어머니: 후지이 에쓰코(藤井 悅子) - 후지이 게이노스케의 넷째 딸
* 사촌형: 후지사키 이치로
* 외외외고조부: 이토 히로부미 - 초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 외외증조부: 니시 겐시로 - 루마니아 공사
* 외조부: 후지이 게이노스케
6. 소속 정당 및 단체
2000년 민주당에 입당하여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2015년 안보 법제를 둘러싼 민주당의 국회 대응과 공산당과의 연대 자세(민공 공투)에 대해 "자신이 그리는 정권, 생각하는 정권으로 가는 길과 민주당이 가는 길은 더 이상 겹치지 않는다"며 비판하며 탈당계를 제출했고, 11월 10일 민주당은 이를 수리했다.
2016년 9월 26일, 스즈키 다카코와 함께 자유민주당의 중의원 원내 회파에 참가했으며, 2017년 9월 27일 자유민주당에 입당했다. 같은 해 11월 9일, 지공회(아소파)에 입회했다.
그 외 소속된 의원 연맹 및 단체는 다음과 같다.
* 자민당 담배 의원 연맹
* 모쿠모쿠회
* 보이스카우트 진흥 국회의원 연맹 (부회장)
* 해사 진흥 연맹 (부회장)
7. 선거 이력
| 당락 | 선거명 | 연령 | 득표수 | 정당명 | 득표율 (%) | 정수 | 득표순 | 후보자 | 선거구 |
|---|---|---|---|---|---|---|---|---|---|
| 낙선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37 | 27,371 | 무소속 | 13.84 | 1 | 4 | 5 | 효고현 제11구 |
| 당선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41 | 101,566 | 민주당 | 47.38 | 1 | 1 | 4 | 효고현 제11구 |
| 당선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44 | 112,898 | 민주당 | 52.62 | 1 | 1 | 3 | 효고현 제11구 |
| 비례대표 당선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46 | 110,966 | 민주당 | 46.47 | 1 | 2 | 3 | 효고현 제11구 |
| 당선 |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50 | 146,058 | 민주당 | 61.30 | 1 | 1 | 3 | 효고현 제11구 |
| 당선 |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53 | 80,760 | 민주당 | 39.58 | 1 | 1 | 4 | 효고현 제11구 |
| 당선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55 | 90,182 | 민주당 | 49.61 | 1 | 1 | 3 | 효고현 제11구 |
| 당선 |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58 | 109,381 | 자유민주당 | 65.29 | 1 | 1 | 3 | 효고현 제11구 |
| 당선 |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62 | 92,761 | 자유민주당 | 49.03 | 1 | 1 | 3 | 효고현 제11구 |
| 당선 |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65 | 89,943 | 자유민주당 | 48.53 | 1 | 1 | 4 | 효고현 제11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