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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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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법현은 4세기 중국의 승려로, 불교 경전의 완전한 번역을 위해 서역과 인도를 여행하고, 《불국기》를 저술했다. 3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구족계를 받았으며, 399년 혜경, 혜응 등과 함께 장안을 출발하여 서역 남도를 거쳐 인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불교 서적을 구하고 413년에 귀국하여 불경 번역에 힘썼다. 법현은 형주의 신사에서 86세로 입적했으며, 그의 여행기는 당시 중앙아시아와 인도에 관한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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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싱가포르 해양 박물관에 있는 법현 조각상
싱가포르 해양 박물관에 있는 법현 조각상
이름법현
이명공세히
속성승려, 역사학자, 여행기 작가, 실크로드의 불교 순례자
출생337년
출생지린펀 시의 샹링 현 무양
사망(85세)
종교불교
스승아버지 창히
저서『불국기』
법명법현(法顯)
중국어 (병음)Fǎxiǎn
한국어 (로마자 표기)Beophyeon
저서
주요 저서『불국기』

2. 생애

법현은 불교 경전을 구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거쳐 인도로 떠난 승려였다. 그는 당시 중국에 불교 문헌이 부족하고 오류가 많음을 안타까워했다.

399년, 법현은 혜경, 혜응, 혜위, 도정 등과 함께 장안을 출발하여 서역으로 향했다. 이들은 호탄 왕국을 거쳐 6년 만에 인도 굽타 제국에 도착했다. 법현은 그곳에서 범어를 배우고 왕사성 등 불교 유적지를 방문하며 불경을 수집했다. 이후 스리랑카를 거쳐 413년에 해로를 통해 청주(지금의 산둥성)로 귀국했다.

법현의 여행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험난했다. 특히 돈황에서 유사를 건널 때는 "사하에는 악령과 뜨거운 바람이 많아 모두 죽고 단 한 명도 그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다. 하늘에는 나는 새도 없고 땅에는 뛰는 짐승도 없다. 멀리 보아도 눈 닿는 데 없고 갈 곳도 알지 못한다. 다만 죽은 자의 해골이 이정표가 될 뿐이다."라고 기록할 정도였다.[6]

귀국 후, 법현은 건강(지금의 난징)에서 불타발타라를 만나 《대반열반경》, 《대반니원경》 등 불경 번역에 힘썼으며, 열반종 성립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마하승기율》 40권을 번역하였다.

2. 1. 출생과 출가

법현은 4세기 십육국 시대의 후조 왕조 아래 산시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공(龔)씨였다. 나중에 법현(法顯)이라는 법명을 사용했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법의 빛"을 의미한다. 그의 세 형은 모두 어릴 때 죽었다. 아버지는 같은 운명이 그에게도 닥칠까 두려워 세 살 때 그를 수행승으로 출가시켰다.[8]

3세 때부터 에 들어가 불도를 공부하였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뜻과 행동이 명민하고 의궤는 엄숙하였다"라고 평하였다.[4]

2. 2. 구법 여행

3세 때 에 들어가 불도를 공부하였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뜻과 행동이 명민하고 의궤는 엄숙하였다」[8]고 평했다.

당시 중국에는 불교 문헌이 한역된 것이 별로 없었으므로 경률에도 착오나 누락이 많았다. 법현은 융안 3년(399년)에 혜경, 혜응, 혜위, 도정 등의 승려와 함께 장안을 출발해 서역으로 떠났다. 도중에 호탄 왕국을 거쳐 6년 만에 인도굽타 제국에 도착했고, 범어를 배우고, 그곳에서 왕사성(王舍城) 등의 불전과 불적을 살펴본 뒤 《마하승기율》, 《잡아비담심론》, 스리랑카를 돌며 《오분율》, 《장아함경》 등의 불교 서적을 구하고 의희 9년(413년)에 남해 항로를 따라 청주(지금의 산둥성)로 귀국하였다. 귀국한 것은 법현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법현이 기록한 여행기는 《불국기》(佛國記)라는 제목으로, 당시 중앙아시아와 인도에 관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돈황에서 유사를 건너던 때의 모습에 대해 「사하(沙河)에는 악령과 뜨거운 바람이 많이 있어서 모두 죽고 단 한 명도 그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다. 하늘에는 새도 날지 않고 땅에는 뛰는 짐승도 없다. 멀리 보아도 눈 닿는 데 없고 갈 곳도 알지 못한다. 다만 죽은 자의 해골이 이정표가 될 뿐이다.」[6]라고 적었다.

12세기 목판 인쇄본, 법현의 여행기(불국기) 첫 페이지.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법현은 장안에서 율장(Vinaya)의 수집이 불완전한 것에 괴로워했다. 그래서 홍시 2년 또는 육십갑자의 기해년(36) [399년 말과 400년 초를 아우르는 중국 연도, 즉 서기 399년 말과 400년 초]에 그는 혜정, 도정, 혜영, 혜위와 함께 인도에서 더 많은 율장을 찾기로 동의했다."


일본 미야지마의 다이쇼인 사찰에 있는 법현


빌의 판에서 법현의 인도 통과 경로


아쇼카 궁터에 있는 법현

2. 3. 귀국과 번역

법현은 귀국 후 건강(지금의 난징)에서 불타발타라를 만나 그가 가져온 《대반열반경》, 《대반니원경》 등 많은 불교 서적을 번역하고, 열반종 성립의 기초를 닦았다.[8] 《마하승기율》 40권을 번역하였다. 법현은 형주의 신사(辛寺)에서 향년 86세로 입적하였다. 입적한 뒤, 《오분율》도 불타십이 번역하였다.

2. 4. 사망

영초 3년(422년), 형주강릉의 신사에서 사망했다. 향년 86세였다.[8]

3. 영향

법현의 주요 저작은 그의 여행 기록으로, 영어로는 "Foguoji" 또는 "Foguo Ji" 《佛國記》|불국기중국어와 여러 번역본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A Record of the Buddhist Kingdoms", "Record of the Buddhistic Kingdoms",[1] "Buddhist Country Records"[2] 등이 포함된다. 이 책은 "법현의 여행기" 《法顯行傳》|법현행전중국어, "법현 전기" 《法顯傳》|법현전중국어, "뛰어난 승려 법현의 회고록" 《高僧法顯傳》|고승법현전중국어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1]

법현의 회고록은 그가 방문했던 장소, 특히 인도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독자적인 기록이다. 그가 중국으로 가져온 산스크리트어 문헌의 번역은 문헌, 개인, 불교 전통의 연대를 추정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언급된 많은 역사적 이름, 원고, 사건 및 아이디어에 대한 종착점la을 제공한다.[3][4]

법현은 호탄과 같은 중앙아시아 도시들이 불교 국가이며, 성직자들이 인도 언어로 된 인도 원고를 읽었다고 언급했다. 지역 사회는 승려들을 존경했으며, 그는 탁실라 (현재 파키스탄)에서 번성하는 불교 공동체를 언급했는데, 이곳은 일반적으로 비불교 공동체였다. 그는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부처를 기리는 왕의 지원을 받는 정교한 의식과 공공 예배 의식을 묘사했다. 그는 마드야데샤의 파탈리푸트라, 마투라, 칸나우지와 같은 도시에 대해 썼으며, 마드야데샤의 주민들이 중국인과 같은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다고 썼다. 그는 파탈리푸트라를 번영하는 도시라고 선언했다.[5] 그는 동쪽 해안에 있는 항구인 탐라립티에서 약 409년에 인도를 떠났으나, 그의 여정에 동행한 중국인 동료 순례자 중 일부는 인도에 머물기로 결정했다.[6]

;인도에 대한 인상

; 자바를 통한 귀환 여정 중의 해상 고난

레뮈자의 저서 번역[7]은 유럽 학계에서 논란을 일으켰지만, 법현이 중국 중세어 글자로 기록한 많은 산스크리트어 단어를 처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다.[8]


  • 건강에서 불타발타라를 만나, 법현이 가져온 『대반열반경』 등이 번역되어 열반종 성립의 기초가 되었다.
  • 가져온 경전 중 번역된 것으로는 『마하승기율』 40권, 『오분율』 (법현 사후, 불타십이 번역)이 있다.

참조

[1] 서적 The Princeton Dictionary of Buddhism https://books.googl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 서적 A Record of Buddhistic Kingdoms; being an account by the Chinese monk Fa-Hien of his travels in India and Ceylon, A.D. 399-414, in search of the Buddhist books of discipline https://archive.org/[...] The Clarendon Press, Oxford
[2] 서적 Record of the Buddhistic Kingdoms https://archive.org/[...] Trubner & Co., London
[2] 서적 Record of Buddhistic Kingdoms https://ebooks.adela[...]
[2] 서적 Record of Buddhistic Kingdoms 佛國記 http://ntireader.org[...] NTI Buddhist Text Reader 2015-07-27
[3] 서적 Foě Kouě Ki, ou Relations des royaumes bouddhiques : voyage dans la Tartarie, dans l'Afghanistan et dans l'Inde, exécuté, à la fin du IVe siècle,'' par Chy Fa Hian, traduit du chinois et commenté par Abel Rémusat. Ouvrage Posthume. Revu, complété et augmenté d'éclaircissements nouveaux par MM. Klaproth et Landresse https://archive.org/[...] Imprimerie Royale
[3] 웹사이트 http://gallica.bnf.f[...]
[4] 문서 『高僧傳』 https://21dzk.l.u-to[...]
[4] 문서 『法苑珠林』 https://21dzk.l.u-to[...]
[5] 서적 読む事典シルクロードの世界 NHK出版 2019-02
[6] 문서 『高僧法顯傳』 https://21dzk.l.u-to[...]
[7] 서적 シルクロード 時事通信社
[8] 문서 志行明敏、儀軌整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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