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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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베를린의 주요 기차역으로, S반, U반, 지역 열차 노선이 연결되어 있다. 1882년 개통하여, 제2차 세계 대전, 베를린 장벽 건설 등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잇는 환승역이자 국경 통과 장소로 기능했다. 냉전 시기에는 '눈물의 궁전'으로 불리며 분단의 아픔을 상징했으며, 현재는 상업 시설과 문화 공간을 갖춘 복합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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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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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
위치 | 프리드리히슈트라세/게오르겐슈트라세 |
행정 구역 | 미테, 베를린 |
국가 | 독일 |
소유주 | 도이체 반 |
운영사 | DB 슈타치온 & 서비스 |
개업일 | 1882년 2월 7일 |
승객 수 | 220,000명 (2018년) |
웹사이트 | www.bahnhof.de |
노선 정보 | |
노선 | 슈타트반 남북 터널 U6 |
승강장 | 4개의 섬식 승강장 |
선로 수 | 8개 |
연결 정보 | |
연결 노선 | 147 N6 |
요금 구역 | : 베를린 A/5555 |
코드 정보 | |
역 코드 | {{Deutsche Bahn station codes|code=527|ds100=BFRI |
IBNR | 8011306 |
역 등급 | 2 |
서비스 정보 | |
인접역 (DB 레기오 노르도스트) | FEX 이전 역: 베를린, 다음 역: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 (제한적 운행, 이전 역 방면: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RE 7 이전 역: 베를린, 다음 역: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 RB 23-BB 이전 역: 베를린, 다음 역: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 (이전 역 방면: 골름, 다음 역 방면: BER 공항) |
인접역 (아벨리오 레일 미텔도이치란트) | HBX 이전 역: 베를린 중앙, 다음 역: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 (이전 역 방면: 탈레 또는 고슬라르) |
인접역 (오스트도이체 아이젠반) | RE 1 이전 역: 베를린, 다음 역: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 RE 2 이전 역: 베를린, 다음 역: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 RE 8N 이전 역: 베를린, 다음 역: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 |
인접역 (베를린 S반) | S1 이전 역: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다음 역: 브란덴부르거 토어 S2 이전 역: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다음 역: 브란덴부르거 토어 S25 이전 역: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다음 역: 브란덴부르거 토어 S26 이전 역: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다음 역: 브란덴부르거 토어 S3 이전 역: 베를린 하우프트반호프, 다음 역: 하케셔 마르크트 S5 이전 역: 베를린 하우프트반호프, 다음 역: 하케셔 마르크트 S7 이전 역: 베를린 하우프트반호프, 다음 역: 하케셔 마르크트 S9 이전 역: 베를린 하우프트반호프, 다음 역: 하케셔 마르크트 |
인접역 (베를린 지하철) | U6 이전 역: 오라니엔부르거 토어, 다음 역: 운터 덴 린덴 |
2. 역사
1882년 2월 7일, 베를린 시가지선 개통과 함께 현재의 S반이 운행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5월 15일부터는 장거리 열차 운행도 시작되었다. 1914년에는 역 확장 계획이 수립되었고, 1919년부터 1925년까지 역 지붕 공사가 완료되었다.[7][8]
1923년 1월 30일에는 하인리히 예넨과 알프레드 그레난데르가 설계한 현재의 U6 지하철역이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역(Bahnhof Friedrichstraße)'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다.[26][8] 이 역은 1924년 9월 15일에 '슈타트반(프리드리히슈트라세)(Stadtbahn (Friedrichstraße))'로 개명되었다가 1936년 2월 1일에 원래 이름으로 돌아갔고, 1976년 2월부터는 단순히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으로 불리게 되었다.[27] 노선명은 1928년부터 C선,[28] 1966년 3월 1일부터는 6호선,[29] 1984년 1월 9일부터는 U6으로 불렸다. 지하철 건설 과정에서 지상역 동쪽 기반이 손상되어 더 깊은 곳에 다시 지어야 했으며,[30][31] 북쪽으로는 슈프레강을 건너기 전 약 60m의 늪지를 통과해야 했기에 지하 29m 깊이에 기반을 다졌다.[30][31] 승강장은 지표면 아래 6.65m에 폭 7m, 길이 약 80m로 건설되었다.[32]
1936년에는 베를린 올림픽 개최에 맞춰 S반 남북 터널의 북쪽 구간이 개통되었고, 현재의 S1, S2, S25 노선이 사용하는 지하 승강장이 문을 열었다.[9] 같은 해 2월 1일에는 U반 역 북쪽 출입구와 남북 S반선 연결 통로가 개통되었으며, U반 승강장 벽면 타일이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교체되고 내부 조명식 역명판이 설치되었다.[27]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5월 2일, SS가 란트베어 운하 아래의 남북 S반 터널을 폭파하면서[33] 터널로 유입된 물이 지하철역까지 흘러들어와 U반 C선 구간까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고,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다.[11][33] 침수 피해 복구 후 1945년 6월 12일에 운행이 재개되었다.
베를린 장벽 건설 이후인 1961년 8월 13일부터는 역의 지상 출입구가 모두 폐쇄되고 봉쇄되었으나, 서베를린 U반(U6)과 S반(남북 터널 노선)은 계속 운행되었다. 이 역은 동베를린 영토 내에 있으면서도 서베를린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환승역이자 국경 통과 지점이었으며, 사실상의 치외법권 지대처럼 기능했다.[27] 동베를린에 위치했지만 유령역이 아니었던 유일한 서베를린 노선 정거장이기도 했다. 동독 당국은 U반 승강장에서 인터숍을 운영했으며, 서베를린 세관은 이곳에서 면세 한도를 초과하여 물품을 구매한 승객을 단속하기도 했다.[27]
1990년 7월 2일 국경 통제가 폐지되면서 지상 출입구가 다시 개방되었다. 통일 이후 1992년 9월부터 1995년 6월까지 U반 승강장이 6량 열차 정차가 가능하도록 남쪽으로 연장되었고,[27] 벽면은 흰색으로 새로 칠해졌다. 기존 광고판 자리에는 프로젝터를 이용한 광고가 송출되고 있다.[34]
2. 1. 초기 역사 (1878년 ~ 1914년)
1885년 출판된 원래 건축 도면을 바탕으로 한 조각]]1878년, 첫 번째 역은 요하네스 폴머의 계획에 따라 프리드리히슈트라세와 슈프레강 사이에 베를린 슈타트반 건설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건축가는 동시에 인접한 하케셔 마르크트역 작업도 진행했다. 고가교와 마찬가지로, 역은 석조로 지어진 커다란 아치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역에는 각각 두 개의 선로가 있는 두 개의 승강장이 있었으며, 그 아래의 고가교 곡선을 덮기 위해 길이가 다른 강철 트러스 위에 놓인 크고 곡선형의 열차 차고로 덮여 있었다. 주요 입구는 북쪽에 있었고, 마차 승차 지점은 남쪽에 있었다.
이 역은 베를린 슈타트반의 개통식의 일환으로 1882년 2월 7일에 공식적으로 개통되었으며, 현재의 S반 운행이 시작되었다. 장거리 열차는 같은 해 5월 15일에 운행을 시작했다.[7] 1914년에는 역 확장 계획이 수립되었다.
2. 2. 확장 및 재건 (1914년 ~ 1945년)
제1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역을 통과하는 교통량이 꾸준히 증가함에 따라 1914년에 역 확장 계획이 수립되었다.[8] 1919년부터 1925년 사이에 확장 공사가 진행되어, S반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이 북쪽에 약간 높게 건설되었다. 기존 플랫폼은 폭이 약간 좁아져 S반 플랫폼 1개와 장거리 열차 플랫폼 2개로 구성되었다. 또한 강철 트러스 구조의 이중 아치형 열차 차고가 건설되었는데, 이는 큰 유리 전면이 특징이다. 건물 북쪽에는 표현주의 양식의 입구 홀 2개가 들어섰고, 북쪽 외벽 전체는 특유의 어두운 타일로 마감되었다. 반면 남쪽 파사드는 1999년 리모델링 전까지 회반죽으로만 마감되어 있었다.[8]
1923년 1월 30일에는 당시 C선(오늘날의 U6과 U7의 일부)의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지하철역(U-Bahnhof Friedrichstraße)이 하인리히 예넨과 알프레드 그레난데르의 설계로 완공되었다.[26][8] 이 지하철역 건설 과정에서 지상역 동쪽 기반이 손상되어 더 깊은 곳에 다시 지어야 했다.[30][31] 지하철역 승강장은 지표면 아래 6.65m에 건설되었으며, 폭은 7m, 길이는 약 80m였다.[32]
1930년대 초에는 S반의 북-남 터널이 역 아래를 통과하게 되면서 다시 공사가 시작되었다.[9] 1936년 2월 1일에는 U반 역 북쪽에 새로운 출입구가 개통되었고, 같은 날 남북 S반선과의 연결 통로도 마련되었다.[27] 이때 U반 승강장 외벽 타일은 기존의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교체되었고, 내부 조명이 들어오는 새로운 역명판이 설치되었다.[27] 그리고 1936년 하계 올림픽 개최 직전인 1936년 7월 27일, 지하 S반역이 개통되었다.[9] 이로써 U반 역과 S반 지하역을 잇는 긴 보행자 터널이 생겨났다.[9]
나치 독일 시대의 어두운 역사도 이 역에 남아있다. 1938년 수정의 밤 사건 이후, 같은 해 12월 1일부터 수천 명의 유대인 어린이들이 킨더트란스포르트(Kindertransport)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 등으로 대피하기 위해 이 역을 거쳐갔다.[35]

1943년 초에는 폴란드 사보타주 및 우회 부대 "자그라-린"에 의해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14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10]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역 자체는 베를린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1945년 4월 23일(U반)과 25일(S반)에 전력 부족으로 운행이 중단되었다.[11] 1945년 5월 2일 아침, 나치 독일의 SS는 란트베어 운하 아래를 지나는 S반 남북 터널을 폭파했다.[33][11] 이 폭파로 터널에 물이 차올랐고,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의 지하 S반역과 U반역까지 연결 통로를 통해 침수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11][33] 이로 인해 1945년 말까지 지하철 운행은 중단된 상태였다.


2. 3. 냉전 시대 (1945년 ~ 1990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패망한 후,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베를린 공방전 막바지에 전력 부족으로 1945년 4월 23일 U반, 4월 25일 S반 운행이 중단되었다. 1945년 5월 2일, 독일 국방군이 항복하던 날 아침, SS는 란트베어 운하 아래를 지나는 남북 S반 터널을 폭파했다.[33][11] 이 폭파로 터널에 물이 차올랐고, S반 지하역과 U반 역을 연결하는 통로를 통해 물이 흘러들어 U반 C선(현재의 U6) 승강장까지 침수되었다.1945년부터 역 재건 작업이 시작되었다. 먼저 지상 S반 운행이 재개되었다. 6월 4일에는 BVG가 침수된 U반 터널의 물을 빼기 시작했고, 7월 12일에는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을 중심으로 남북 양방향 단선 셔틀 운행 방식으로 U반 운행이 재개되었다. 12월 5일부터는 정상적인 복선 운행이 가능해졌다.[12] 라이히스반은 이후 남북 S반 터널의 배수 작업을 진행하여 1946년 6월 2일에 지하 S반 운행을 재개했다. 그러나 터널 보수 공사를 위해 1946년 12월 1일부터 1947년 10월 16일까지 다시 운행이 중단되었다가 이후 완전히 복구되었다.
냉전이 심화되면서 동서 베를린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분단된 도시의 시민들이 서로 만나는 중요한 장소였다. 그러나 동독 정부는 1946년부터 국경 경찰을 창설하여 주민들의 서독 및 서베를린으로의 이동, 소위 Republikflucht(공화국 탈출)를 막으려 했다. 1952년 독일 내부 국경선이 설치되었지만, 베를린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여전히 동독 주민들이 서방으로 탈출하는 주요 경로로 이용되었다. 특히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많은 탈출 시도의 출발점이 되었다. 1961년까지 약 350만 명의 동독인이 서방으로 이주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약 20%에 달했다.[13]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면서 동서 베를린을 잇는 모든 대중교통 연결이 끊겼다. 동베를린 미테 지역에 위치한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서베를린 구역에 둘러싸인 형태가 되었다. 장벽 건설 이후, 역의 지상 출입구는 모두 폐쇄되었고,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U반(U6)과 S반(남북 터널 노선) 지하 승강장만 서베를린 시민들의 환승 및 국경 통과 목적으로 계속 운영되었다. 이 지하 시설들은 동베를린 영토 안에 있었지만 사실상 서베를린의 치외법권 지역처럼 기능했으며,[27] 동베를린에 위치하면서도 유령역이 아니었던 유일한 서베를린 지하철 및 S반 역이었다.
지상 슈타트반 승강장은 플랫폼별로 기능이 분리되었다.[14]
- 플랫폼 A: 서독으로 가는 인터존 열차와 국제 열차(코펜하겐, 스톡홀름, 취리히, 빈, 파리-모스크바 등)가 정차했다. 인터존 열차는 이 역이 시종착역이었고, 국제 열차의 경우 동독 주민은 다음 역인 베를린 동역에서만 탑승할 수 있었다.
- 플랫폼 B: 서베를린 내부를 운행하는 S반 열차(반제, 슈타켄 방면)의 종착역으로 사용되었다. 승객들은 동독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하의 서베를린 노선이나 플랫폼 A의 국제 열차로 환승할 수 있었다.
- 플랫폼 C: 동베를린 및 동독 각지로 향하는 S반 열차(에르크너, 쾨니히스 부스터하우젠 등)의 종착역으로 사용되었다.
플랫폼 B와 C 사이에는 금속과 유리로 된 높은 장벽이 설치되어 역을 동베를린 구역과 서베를린/환승 구역으로 완전히 분리했다. 두 구역 모두 동독 국경경비대와 슈타지 요원들의 삼엄한 감시하에 있었다. 역 내부는 복잡한 통로, 검문소, 감시 카메라, 무장 경비 등으로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15] 서베를린 S반과 동베를린 S반 간의 선로는 분리되었고, 차량 교환은 엄격한 통제하에 플랫폼 A의 장거리 선로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탈선기가 설치되어 열차를 이용한 탈출 시도를 막았다.


지상에는 서베를린 및 서방 방문객, 환승객, 출국 허가를 받은 동독 주민들을 위한 국경 통과 시설이 마련되었다. 여권 검사, 세관 검사, 대기실, 심문실 등이 있었으며, 통과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15] 늘어나는 국경 통과객을 수용하기 위해 역 북쪽 광장에 별도의 건물이 세워졌는데, 이곳에서 서쪽으로 출국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가족이나 친구와 헤어져야 하는 슬픈 작별 장면이 자주 연출되어 이 건물은 Tränenpalast(눈물의 궁전)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9][14][15]


역 남쪽에는 동독 국영 철도 직원을 위한 "서비스 입구(Diensteingang)"가 있었는데, 이는 비밀 통로로도 이용되었다. 동독 정보국 요원이나 서독 적군파와 같은 서독의 극좌 테러 조직원들이 동독으로 들어오거나 서독으로 잠입하는 경로로 사용되었다.[16] 1976년 6월 2일 운동 조직원 인게 비에트, 모니카 베르베리히, 가브리엘 롤니크, 율리아네 플람베크 등이 서베를린 감옥 탈출 후 이 경로를 이용했으며, 1978년에는 틸 마이어가 동독으로 탈출했다.[17][18] 반대로 1979년에는 동독의 이중간첩 베르너 슈틸러가 이 통로를 통해 서방으로 망명했다.[16][19]
한편,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다른 의미로도 중요했다. 역의 서베를린 구역(지하 및 지상 플랫폼 B)에는 인터숍이 운영되어, 동독 국경을 통과하지 않고도 서방 통화(주로 서독 마르크)로 면세품(주류, 담배, 화장품, 장난감 등)을 구매할 수 있었다.[15] 이는 특히 서베를린보다 저렴한 주류와 담배를 사려는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서베를린 세관 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서 돌아오는 열차의 승객들을 상대로 불시 검문을 실시하여 세금을 징수하기도 했다.[27][15]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역 지붕 일부를 유리로 교체하고 조명을 개선하는 등 소규모 개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1990년 독일의 재통일 직전 국경 통제가 폐지되면서 역의 분단 구조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2. 3. 1. 분단 시기 대한민국과의 관계
2. 4. 통일 이후 (1990년 ~ 현재)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직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의 이동량이 급증하면서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을 이용하는 S반 및 장거리 열차 교통량도 크게 늘어났다.[9][20] 즉각적인 이동 편의를 위해 동서 베를린을 분리했던 역 내부의 벽과 장벽들이 먼저 철거되었다. 1990년 7월 1일 동서독 화폐 통합 이후, 독일 연방공화국 기본법 제23조에 따라 동독이 서독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인 1990년 7월 2일, 국경 통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지상으로 나가는 출입구가 다시 개방되었다. 같은 해 7월까지 C 승강장의 끊어졌던 선로가 다시 연결되어, 약 29년 만에 알렉산더플라츠역에서 동물원역까지 시가지 철도 고가 노선이 중단 없이 운행을 재개했다. 하지만 동독 시절 동안 유지 보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특히 지하 부분은 시설이 상당히 낡은 상태였다.

통일 이후 역 시설 개선 작업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1991년 8월부터 1992년 2월까지는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의 지하 구간을 포함한 남북 S반 터널이 개보수를 위해 폐쇄되었다. 이 공사를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발생했던 홍수 피해가 1991년 12월에 완전히 복구되었다. 지하철(U6) 승강장은 1992년 9월부터 1995년 6월까지 6량 편성 열차가 정차할 수 있도록 남쪽으로 연장되었고,[27] 승강장 벽면도 보수되어 흰색으로 칠해졌다. 2010년에는 역 전체가 흰색으로 통일되었다. 기존에 광고판이 있던 자리에는 프로젝터를 이용한 광고가 송출되고 있다.[34]

1995년 10월부터 1999년 9월까지는 시가지 철도 고가교의 지상층과 고가층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 공사가 진행되었다. 총 2억 2천만 독일 마르크의 비용을 들여 도이치반이 시행한 이 공사를 통해 건물의 외관은 원래 모습처럼 테라코타 클링커 벽돌로 마감되었으며,[21] 이전과 달리 남쪽 파사드까지 타일로 덮였다. U반 U6 노선으로 가는 추가 터널이 역 아래에 건설되었고, 층간 이동 편의를 위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5200m2 규모의 지상층은 50개의 상점이 입점한 쇼핑 구역으로 탈바꿈했다. 재개장 이후 지역 열차는 A 승강장과 B 승강장에 정차하고 있다.
2002년에는 남북 S반 터널이 다시 개조되면서, 동독 시절의 흔적인 녹색 타일이 제거되었다.
2008년 11월 30일, 역 남쪽의 도로테아슐레겔 광장(Dorothea-Schlegel-Platz)에는 나치 독일 시절 어린이 수송 작전(Kindertransport)을 통해 1938년과 1939년 이 역을 거쳐 런던으로 보내진 10,000명의 유대인 어린이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인 생명으로 가는 열차 – 죽음으로 가는 열차가 세워졌다.[35][22] 제막식에는 이 작전으로 목숨을 구한 조각가 프랑크 마이슬러(Frank Meisler)를 비롯하여 독일, 영국, 이스라엘, 오스트리아, 스위스, 미국 등지에서 온 50여 명의 생존자들이 참석했다. 프랑크 마이슬러는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역에도 어린이들의 도착을 기념하는 비슷한 기념물을 제작한 바 있다.[22]
3. 역 구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베를린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지상과 지하 구조로 이루어진 복합 환승역이다. 지상층은 베를린 슈타트반 고가교 위에 건설되어 S반 동서 노선과 지역 열차가 운행하며, 지하층에는 U반 U6 노선과 S반의 남북 S반선이 교차한다.
최초의 지상 역사는 1878년 요하네스 폴머의 설계로 건설되었으며, 이후 교통량 증가에 따라 여러 차례 확장 및 개축되었다.[7] 지상 역사의 자세한 구조와 변천 과정은 지상층 섹션에서 다룬다.
지하 U반 역은 1923년 1월 30일에 개통되었으며,[26] 하인리히 예넨과 알프레드 그레난데르가 설계했다. U반 역 건설 당시 지상 구조물과의 간섭 및 슈프레강 아래 늪지대 통과 문제로 인해 비교적 깊은 곳에 건설되었다.[30][31] 지하 S반 남북 터널 역은 1936년에 개통되었으며,[9] U반 역과는 지하 보행자 터널로 연결된다. 지하 역사의 자세한 구조와 역사는 지하층 섹션 및 그 하위 섹션에서 설명한다.
베를린 장벽 시대에는 동서 베를린을 연결하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했다. 서베를린 교통망에 속하면서도 동베를린 영토에 위치하여, 양측 시민들의 환승 및 국경 통과 지점으로 기능했다.[27]
3. 1. 지상층 (S반 및 지역 열차)
1885년 출판된 원래 건축 도면을 바탕으로 한 조각]]역의 지상층은 베를린 슈타트반 고가교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최초의 역사는 1878년 요하네스 폴머의 설계에 따라 프리드리히슈트라세와 슈프레강 사이 베를린 슈타트반 건설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폴머는 인접한 베를린 하케셔 마르크트역 설계도 동시에 진행했다. 고가교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석조 아치 위에 세워졌으며, 각각 두 개의 선로를 갖춘 두 개의 승강장이 있었다. 이 승강장들은 길이가 다른 강철 트러스 위에 놓인 크고 곡선 형태의 열차 차고로 덮여 있었다. 주된 입구는 북쪽에, 마차 승차 지점은 남쪽에 위치했다. 역은 베를린 슈타트반 개통식의 일부로 1882년 2월 7일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으며, 장거리 열차 운행은 같은 해 5월 15일에 시작되었다.[7]
제1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역을 통과하는 교통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1914년에 역 확장 계획이 세워졌다. 이 계획에 따라 북쪽에는 S반을 위한 새롭고 약간 더 높은 승강장이 건설되었고, 기존 승강장은 폭이 약간 줄어들어 S반용 승강장 1개와 장거리 열차용 승강장 2개로 구성되었다. 강철 트러스 구조의 이중 아치형 열차 차고는 1919년부터 1925년 사이에 건설되었으며, 큰 유리 전면이 특징이다. 역 북쪽에는 표현주의 양식의 입구 홀 2개가 세워졌고, 북쪽 파사드 전체는 특징적인 어두운 타일로 마감되었다. 남쪽 파사드는 1999년 마지막 리모델링 전까지 회반죽으로만 마감되어 있었으나, 리모델링 과정에서 타일로 덮였다.[8]
현재 지상 역사는 두 개의 열차 차고 홀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 있는 더 작은 차고는 S반이 사용하고, 남쪽에 있는 더 큰 차고는 지역 열차가 사용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베를린 폭격 당시 역은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1945년 4월 정전으로 인해 지상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다. 전쟁 후 1945년에 재건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지상 시설이 먼저 복구되었다.
3. 2. 지하층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의 지하층은 U반 U6 노선과 S반의 남북 S반선이 지나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U반 역은 1923년에 먼저 개통되었으며[26], 이후 1930년대 초 S반의 남북 터널 공사와 함께 두 역을 연결하는 보행자 터널이 건설되었고, 지하 S반 역은 1936년에 문을 열었다.[9]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5월, 나치 독일의 SS가 인근 란트베어 운하 아래의 S반 터널을 폭파하면서 지하역 전체가 침수되는 큰 피해를 겪었다.[33][11]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지하층은 동서 베를린을 잇는 독특한 공간이 되었다. 서베를린 U반 노선이 동베를린 영토를 통과하는 경로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유령역이 되는 대신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간의 환승 및 국경 통과 지점으로 계속 기능했다. 지하의 연결 통로는 당시 분단된 도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다.[27]
3. 2. 1. S반 (플랫폼 D)
1930년대 초, S반의 북-남 터널 공사가 시작되면서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서도 다시 공사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역 북쪽 끝 아래로 긴 보행자 터널이 뚫려 같은 이름의 U반 지하철역과 연결되었다.[9] 지하 S반 역은 1936년 하계 올림픽 직전인 1936년 7월 27일에 개통되었다.[9]
"수정의 밤" 사건 이후, 1938년 12월 1일부터 수천 명의 유대인 어린이들이 난민 어린이 운동의 일환으로 독일을 떠나기 위해 이 역에서 출발하거나 통과했다. 1943년 초에는 폴란드의 사보타주 및 우회 부대인 "자그라-린"에 의해 역이 폭격당하여 14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10]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4월 25일, S반 운행은 정전으로 중단되었다. 1945년 5월 2일 아침, 베를린 주둔군이 소련 붉은 군대에 항복한 날, SS는 란트베어 운하 아래의 북-남 터널을 폭파했다.[33] 이 폭발로 터널에 물이 차올랐고, U반과의 연결 터널을 통해 프리드리히슈트라세의 지하 S반 역을 포함한 베를린 지하철 시스템의 상당 부분이 침수되었다.[11]
1945년에 재건 작업이 시작되었다. 독일국영철도(당시 S반 운영사)는 북-남 터널의 물을 빼냈고, 1946년 6월 2일에 지하 S반 운행을 재개했다.[12] 이후 1946년 12월 1일부터 1947년 10월 16일까지 광범위한 개조 공사를 위해 다시 폐쇄되었으며, 공사 완료 후 북-남 터널은 완전히 다시 운영되었다.[12]
베를린 장벽 건설 이후,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간의 환승역으로 기능하면서 U반 역과의 연결 통로만 개방된 상태로 운영되었다.[27] 1990년 7월 2일 통일 과정에서 국경 통제가 폐지되면서 정상화되었다.
3. 2. 2. U반 (U6)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지하철역은 하인리히 예넨과 알프레드 그레난데르가 설계했으며[26], 1923년 1월 30일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역'(Bahnhof Friedrichstraße)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다. 이후 1924년 9월 15일 '슈타트반(프리드리히슈트라세)'(Stadtbahn (Friedrichstraße))로 잠시 개명되었다가 1936년 2월 1일에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1976년 2월부터는 단순히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으로 불리게 되었다.[27] 노선명은 1928년부터 C선으로 불렸고,[28] 1966년 3월 1일부터는 6호선,[29] 1984년 1월 9일부터는 U6으로 불리고 있다.도시 철도 건설 과정에서 지상역 동쪽 기반이 손상되어 더 깊은 곳에 다시 지어졌다. U반 역은 지상 S반 및 열차선과 남쪽에서 수직으로 교차한다. 역 북쪽으로는 슈프레강을 건너기 전 약 60m 길이의 늪지대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지하 29m 깊이에 기반을 다졌다.[30][31] 승강장은 지표면 아래 6.65m에 위치하며 폭은 7m, 건설 당시 길이는 약 80m였다.[32] 기존 도로 중앙 교통섬으로 연결되던 출구를 대체하기 위해 북쪽 출입구가 1936년 2월 1일에 새로 개통되었으며, 같은 날 베를린 남북 S반선과의 환승 통로도 연결되었다. 이때 승강장 외벽 타일은 기존의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교체되었고, 내부 조명이 들어오는 오팔 유리로 제작된 새로운 역명판이 설치되었다.[27]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에는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다. 특히 1945년 5월 2일, 나치 독일의 SS 부대가 란트베어 운하 아래의 남북 S반 터널을 폭파시키는 사건이 있었고,[33] 이로 인해 터널로 유입된 물이 U반 역까지 흘러들어와 C선 구간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침수 피해 복구 후 1945년 6월 12일에 운행이 재개되었다.
베를린 장벽 건설 이후, U6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분단된 베를린에서 독특한 역할을 수행했다. 서베를린 U반 노선이 동베를린 영토를 통과했지만, 이 역은 유령역이 되지 않고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간의 환승 지점으로 기능했다. 1961년 8월 13일 이후 지상으로 향하는 모든 출입구는 폐쇄되고 봉쇄되었으며, 오직 베를린 남북 S반선과 연결되는 환승 통로만 개방되었다. 이 통로는 동독 국경 통과 지점으로 사용되었으며, 서베를린 시민들은 이 통로를 통해 동베를린으로 입경할 수 있었다. 이 통로 구역은 사실상의 치외법권 지대처럼 운영되었다.[27] 당시 동독 정부는 외화벌이를 위해 이 역 승강장에서 면세점인 인터숍을 운영하기도 했다. 서독에서는 동독 입국 없이 이 역의 인터숍만 이용하는 것을 면세 혜택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베를린 세관원이 열차에 탑승하여 구매 물품에 대한 검사와 관세 징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90년 7월 2일 독일의 재통일 과정에서 국경 통제가 폐지되면서 폐쇄되었던 지상 출입구가 다시 개방되었다. 이후 1992년 9월부터 1995년 6월까지 6량 편성 열차가 정차할 수 있도록 승강장을 남쪽으로 연장하는 공사가 진행되었다.[27] 이때 승강장 외벽도 보수되어 흰색으로 칠해졌으며, 2010년부터는 역 전체가 흰색 톤으로 단장되었다. 기존의 광고판 자리에는 프로젝터를 이용한 광고가 송출되고 있다.[34]
4. 인접 역
노선 | 종별 | 이전 역 | 다음 역 | 전방면 | 후방면 |
---|---|---|---|---|---|
HBX | 하르츠베를린엑스프레스 | 중앙역 | 알렉산더플라츠 | 탈레 중앙역/고슬라어 방면 | 동역 방면 |
RE·RB | RE 1 | 중앙역 | 알렉산더플라츠 | 마그데부르크 중앙역 방면 | 프랑크푸르트 (오데르) 중앙역 방면 |
RE·RB | RE 2 | 중앙역 | 알렉산더플라츠 | 나우엔 방면 | 콧부스 중앙역 방면 |
RE·RB | RE 7 | 중앙역 | 알렉산더플라츠 | 데사우 중앙역 방면 | 젠프텐베르크 방면 |
RE·RB | RE 8N | 중앙역 | 알렉산더플라츠 | 비스마르 방면 | BER 공항 방면 |
RE·RB | RB 23 | 중앙역 | 알렉산더플라츠 | 포츠담 골름역 방면 | BER 공항 방면 |
베를린 S반 지하 승강장 | S1 |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 브란덴부르거 토어 | 오라니엔부르크 방면 | 반제 방면 |
베를린 S반 지하 승강장 | S2 |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 브란덴부르거 토어 | 베르나우 바이 베를린 방면 | 블랑켄펠데 방면 |
베를린 S반 지하 승강장 | S25 |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 브란덴부르거 토어 | 헤니히스도르프 방면 | 텔토 슈타트 방면 |
베를린 S반 지하 승강장 | S26 |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 브란덴부르거 토어 | 블랑켄부르크 방면 | 텔토 슈타트 방면 |
베를린 S반 지상 승강장 | S3 | 중앙역 | 하케셔 마르크트 | 슈판다우 방면 | 에르크너 방면 |
베를린 S반 지상 승강장 | S5 | 중앙역 | 하케셔 마르크트 | 베스트크로이츠 방면 | 슈트라우스베르크 노르트 방면 |
베를린 S반 지상 승강장 | S7 | 중앙역 | 하케셔 마르크트 | 포츠담 방면 | 아렌스펠데 방면 |
베를린 S반 지상 승강장 | S9 | 중앙역 | 하케셔 마르크트 | 슈판다우 방면 | BER 공항 방면 |
베를린 지하철 | U6 | 오라니엔부르거 토어 | 운터 덴 린덴 | 알트테겔 방면 | 알트마리엔도르프 방면 |
5. 주변 시설
2008년 11월 30일 역 남쪽의 도로테아슐레겔플라츠(Dorothea-Schlegel-Platz)에는 1938년과 1939년에 이 역을 통해 런던으로 보내진 유대인 아동 10,000명을 기리는 기념건축물이 세워졌다.[35] 이 작전으로 구출된 생존자 중 한 명인 조각가 프랑크 마이슬러(Frank Meisler)가 이 기념물을 만들었으며, 제막식에는 독일, 영국, 이스라엘, 오스트리아, 스위스, 미국 등지에 거주하는 생존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역 근처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시설들이 있다.
- 훔볼트 대학교 베를린
- 베를린 국립 오페라
6. 문화 속의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여러 영화, 소설, 게임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영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작품에 등장한다.
- 영화 ''본 슈프리머시''에서 주인공 제이슨 본은 역 앞 다리에서 아래에 있는 보트로 뛰어내려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 영화 ''집 열쇠''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머무는 호텔 객실 창문 너머로 역의 플랫폼이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 영화 ''리타의 전설''에는 적군파 테러리스트들이 동베를린으로 탈출하기 위해 역을 이용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동독 스파이였던 베르너 슈틸러는 자신의 회고록 ''벽 너머''에서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했던 경험을 상세히 묘사했다.
소설에서도 역은 중요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소설 ''노리스는 기차를 바꾼다''에서는 등장인물 윌리엄 브래드쇼가 역의 1등석 레스토랑에서 아서 노리스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 마이클 캘리파의 소설 ''노 맨스 랜드''에서는 서베를린에 거주하는 미국인 망명자 리차드가 동독인 여자친구와 밤을 보낸 후 역에서 구금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게임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베를린 공방전 당시, 붉은 군대 병사들이 탈출하기 위해 이용하는 장소로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이 등장한다.
과거 동서 분단 시절 서베를린으로 떠나는 이들의 눈물의 작별 장소였던 검문소 건물, 일명 '눈물의 궁전(Tränenpalast)'은 통일 이후 2006년까지 낭독회, 콘서트, 카바레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클럽이자 공연 무대로 활용되었다.[24] 2011년 9월부터는 본에 위치한 역사관(Haus der Geschichte)의 분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동서 베를린 간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경험에 초점을 맞춰 분단 시절 독일 국경을 넘나들었던 역사에 관한 상설 전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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