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일 (법조인)
1. 개요
변재일은 1940년 일본 나고야에서 출생한 법조인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검사로 임용되었으며,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법무부 보호국장,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했다. 검찰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2020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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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고등학교 동문 -
배명국
배명국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11대, 12대,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행정학을 전공,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을 거쳐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으로 활동하며 보수 정당에서 건설위원장과 상공위원장, 그리고 한·호주 의원친선협회 회장, 한·브라질 의원친선협회 회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 및 국제 관계 발전에 기여했다. -
진해고등학교 동문 -
김종곤
김종곤은 대한민국 해군 참모총장, 외교관, 정치인을 역임한 인물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한국 전쟁에 참전, 구축함 함장으로 북한 정찰선 격침 등의 공을 세웠으며, 해군참모총장 재직 시 국산 함정 건조 계획을 추진했고, 주 중화민국 대사를 지냈으며,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
초계 변씨 -
변양균
변양균은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기업인, 대학교수로,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 등에서 주요 보직을 역임하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핵심 직책을 맡아 경제 정책 수립에 기여했으며, 공직 은퇴 후 기업 회장과 윤석열 정부의 경제고문으로 활동하며 저서도 출간했다. -
초계 변씨 -
변창흠
변창흠은 대한민국의 학자이자 공무원, 공공기관인으로, 세종대학교 교수, SH공사 및 LH 사장을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재직 시절 여러 논란으로 비판을 받았다. -
대한민국 해군 대위 -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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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 대위 -
박찬종
박찬종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변호사, 공인회계사로, 고시 3관왕 및 5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유신 정권 시절 소신 발언과 대선 출마, 정당 활동 등을 통해 활동해왔으나 지역감정 조장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 생애
변재일의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초계 변씨는 영남의 명문으로 대한민국 제5대 국무총리 변영태, 조선 세종 때 20년간 대제학 및 예조판서를 지낸 변계량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변재일의 조상은 조선 말 난을 피해 [https://goo.gl/maps/BJ76BuyQeLvZnq4s9 경상남도 거창군 진전면 양촌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초계 변씨 집성촌을 이루어 생활하였다. 영남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지내던 중, 변재일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본 제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변재일은 1940년 일본 나고야에서 출생하였다. 변재일 가족은 나고야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광복을 맞이하였다. (이후 변재일은 한국 전쟁 당시 거창군에서 있었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와, 후에 참전한 월남전에서도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변재일 가족은 광복 후 일본의 모든 재산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귀국하여, 초계 변씨 집성촌인 경상남도 양촌리에 다시 정착하였다. 전 재산을 일본에 남겨 놓았기에, 변재일은 동년배와 비교해서도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3년 양촌초등학교, 1956년 진해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수석 졸업했음에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돈이 없어 일주일간 가난을 탓하며 집에 누워만 있었다. 이때 한 은사가 대신 등록금을 내주어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이에 변재일은 평생 은사에게 감사하며 크게 보답하였다). 진해고등학교에서도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도 학업에 매진하여 1959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4학년 재학 중이던 1962년에 고등고시 사법과 15회(고시 15회)에 합격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도 가난은 계속 이어져, 고등고시 사법과 준비 중에는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 체육관에서 잠을 자며 도서관을 오가는 면학을 했었다. 196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검찰 동료인 송종의 법제처장은 양촌 시골에서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등고시에 재학 중 합격하고, 검찰 고위관리인 고검장까지 한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다. 소위 "흙수저"로 개천에서 용이 난 자수성가 및 인생역전을 이룬 것에 직장 동료가 인정을 해 준 것이다. 후에 자수성가한 후에도 어렸을 때의 가난과 배고픔을 항상 잊지 않고,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13/2015111300066.html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으며,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8267 유호덕(攸好德)]을 평생의 신조로 생활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로, 중학교 때부터 성당에서 다양한 봉사를 하였다. 취미는 바둑 아마추어 5단으로, 프로기사와 대국을 둘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46세에 처음 배운 골프는 평생 건강의 반려 운동이었으며, 마지막까지 싱글 핸디 골퍼로서 홀인원을 3번이나 하였다. 진주 강씨 강계숙(姜桂淑) 씨와 슬하에 2남이 있으며, 손주가 3명(손자 1명, 손녀 2명)이 있다. 2020년 9월 노환으로 선종하였다.
2.1. 법조인 경력
1964년 검사로 임용되자마자, 국가의 부름에 응하여 1965년 월남전에 참전하였다. 해병대 청룡부대의 군법무관으로 격전지인 DMZ 근처 다낭에 배치되었다. 이때 베트콩이 설치한 지뢰가 바로 앞에 터져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
1986년 검사에 임용된 지 22년 만에 검찰의 꽃인 검사장에 올라, 제주지검장, 법무부 보호국장, 마산지검장(현 창원지검), 수원지검장, 대검 공안부장을 역임하였고, 1993년에 고검장으로 승진하여 부산고검장을 역임하였다. 대검 공안부장은 검찰 내 최고 요직인 이른바 빅4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중수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중 하나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안통은 아니었으나 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는 합리적인 스타일과 결코 무리수를 두지 않는 것이 최대의 장점으로 꼽혔다.
1993년 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제4대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 고향인 경남에 [https://yoosi0211.tistory.com/entry/%EA%B8%88%EC%9D%98%ED%99%98%ED%96%A5-%EB%9C%BB%EA%B3%BC-%EC%9C%A0%EB%9E%98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다. 부산고검장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들에게 자리를 터주기 위하여 1993년 대한민국사회의 격변기에 용퇴하였다. 주위 검사 및 상사로부터 기억력이 비상하고 일처리가 칼같이 깔끔하여, "컴퓨터"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1993년 개인 변호사 개업 후,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사적 공판 시 금진호 의원의 변호를 하였다. 이후 2018년까지 여의도합동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였다.
변재일의 법조인 주요 경력
| 연도 | 내용 |
|---|---|
| 1964년 ~ 1967년 | 해군법무관 (월남전 참전, 대위 제대) |
| 1968년 ~ 1969년 |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 1969년 ~ 1978년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 1978년 ~ 1980년 |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
| 1980년 ~ 1982년 | 대전지방검찰청 부장검사 |
| 1982년 ~ 1983년 |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 |
| 1983년 ~ 1985년 | 부산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 1985년 ~ 1986년 | 서울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 1986년 ~ 1987년 |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
| 1987년 ~ 1989년 | 법무부 보호국장(검사장) |
| 1989년 ~ 1990년 | 마산지방검찰청 (현 창원지검) 검사장 |
| 1990년 ~ 1992년 |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 |
| 1992년 ~ 1993년 | 대검찰청 공안부장(검사장) |
| 1993년 ~ 1993년 |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고검장) |
| 1993년 ~ 2018년 | 변호사 변재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여의도합동법률사무소 |
3. 경력
* 1964년 ~ 1967년 해군 군법무관 (월남전 참전, 대위 제대)
* 1968년 ~ 1969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1969년 ~ 1978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78년 ~ 1980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 1980년 ~ 1982년 대전지방검찰청 부장검사
* 1982년 ~ 1983년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
* 1983년 ~ 1985년 부산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1985년 ~ 1986년 서울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1986년 ~ 1987년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 1987년 ~ 1989년 법무부 보호국장(검사장)
* 1989년 ~ 1990년 마산지방검찰청 (현 창원지검) 검사장
* 1990년 ~ 1992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
* 1992년 ~ 1993년 대검찰청 공안부장(검사장)
* 1993년 ~ 1993년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고검장)
* 1993년 ~ 2018년 변호사 변재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여의도합동법률사무소
4. 기타
攸好德중국어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1964년 검사 임용 후 월남전에 참전, 해병대 청룡부대 군법무관으로 복무 중 베트콩이 설치한 지뢰가 바로 앞에서 터져 죽을 고비를 넘겼다. 검사 재직 시절 뛰어난 기억력과 깔끔한 일 처리로 '컴퓨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공판에서 금진호 의원의 변호를 맡았다. 2018년까지 여의도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천주교 신자로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세례명을 받았으며, 중학교 때부터 성당에서 봉사했다.
취미는 바둑 (아마추어 5단)과 골프 (싱글 핸디, 홀인원 3회)였다.
진주 강씨 강계숙(姜桂淑)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과 3명의 손주(손자 1명, 손녀 2명)를 두었다. 2020년 9월 노환으로 별세했다.
23대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변추석의 숙부이다. 빙부는 메이지대학 법학을 전공한 강재권(姜在権) 전 대검찰청 사무국장이다. 서울대 법대 59학번 동기로 나정욱 변호사, 법제처장을 지낸 황길수 변호사, 세종 공동대표였던 최승민 변호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