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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 (트로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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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루투스 (트로이아)는 브리튼 섬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트로이아 전쟁 이후 이탈리아를 거쳐 브리튼 섬에 정착하여 왕국을 세운 것으로 묘사된다. 몬머스의 제프리의 《브리타니아 열왕사》에 따르면, 브루투스는 아이네아스의 후손으로, 예언에 따라 부모를 잃고 그리스를 거쳐 브리튼 섬에 도착하여 브리타니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첫 왕이 되었다. 브루투스 전설은 중세 시대 영국 역사와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런던의 기원과 관련된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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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 (트로이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트로이의 브루투스
트로이의 브루투스
직위브리튼의 왕
재위기원전 12세기 (24년 재위)
배우자판드라수스의 딸 이노겐
자녀로크리누스
캄베르
알바나크투스
아버지아스카니우스? 실비우스?
어머니실비우스의 아내
이름
왕위 계승
전임최초
후임로크리누스 (로에그리아)
캄베르 (캄브리아)
알바나크투스 (알바니아)

2. 역사적 배경

브루투스 전설은 여러 문헌에서 다양하게 전해진다.

9세기 문헌 《브리튼인의 역사》는 브리튼 섬의 이름이 로마 집정관 브루투스에게서 왔다고 설명하며, 브루투스는 히스파니아를 정복한 인물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브루투스는 아이네아스의 손자 또는 증손자로 묘사된다.[24]

《브리튼인의 역사》에 따르면, 아이네아스는 트로이아 전쟁 이후 이탈리아에 정착했고, 그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는 알바 롱가를 건설했다. 아스카니우스의 아들, 또는 아이네아스의 또 다른 아들 실비우스가 브루투스의 아버지라고 한다. 마법사의 예언과 화살 오발 사고로 인해 브루투스는 이탈리아에서 추방되어 티레니아해 섬들과 갈리아를 방랑하다 투르를 건설하고, 결국 브리튼 섬에 도착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25]

몬머스의 제프리가 쓴 《브리타니아 열왕사》는 브루투스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다루지만, 큰 줄거리는 《브리튼인의 역사》와 비슷하다. 여기서는 브루투스가 아스카니우스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아스카니우스의 아들 실비우스라고 명확히 밝힌다.[28] 브루투스는 그리스에서 노예로 살던 트로이아인들을 이끌고 탈출하여, 그리스 왕 판드라수스의 딸 이노겐과 결혼한다. 이후 디아나 여신의 계시를 받고 서쪽으로 항해하여 브리튼 섬에 도착한다.

브리튼 섬에서 브루투스는 거인족을 물리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섬 이름을 브리타니아로 짓고, 템스강 가에 "새로운 트로이아"라는 뜻의 도시를 건설하는데, 이 도시가 훗날 런던이 된다. 브루투스는 24년간 통치 후 사망하여, 세 아들 로크리누스, 알바나크투스, 캄베르에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각각 나누어 다스리게 했다.

브루투스와 이노겐 ( 태피스트리, 현재 사라고사 구세주 대성당 소재)


브루투스의 그리스 탈출 (왼쪽), 다이아나의 사원 (위), 항해 (중앙), 고파르와의 전투 (오른쪽) (전체 태피스트리)


그 외에도 《브뤼 이야기》, 《레이어먼의 브루트》 등의 작품들이 제프리의 《브리타니아 열왕사》를 번역하고 각색하여 브루투스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2. 1. 브리튼인의 역사

저자 미상의 9세기 문헌 《브리튼인의 역사》는 브리튼 섬의 이름이 로마 집정관 브루투스에게서 왔다고 설명한다. 이 브루투스는 히스파니아를 정복했다고도 한다. 《브리튼인의 역사》 속 브루투스는 아이네아스의 손자 또는 증손자라고 한다.[24]

《브리튼인의 역사》는 티투스 리비우스, 베르길리우스 등 로마 문헌을 따라 아이네아스가 트로이아 전쟁 이후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한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는 알바 롱가를 세우고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브루투스이다. 다른 판본에서는 브루투스의 아버지가 아이네아스의 차남 실비우스이거나, 아스카니우스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한 마법사가 태어날 아이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용감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자, 아스카니우스는 분노하여 마법사를 죽였다. 브루투스의 어머니는 브루투스를 낳다가 죽었다.

이후 브루투스는 화살 오발 사고로 아버지를 죽이고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했다. 티레니아해의 여러 섬을 떠돌다 갈리아 땅에서 투르를 세웠다. 그 뒤 바다를 건너 섬에 도착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서 브리튼 섬이라 하고, 자기 후손들로 섬을 채웠다. 브루투스의 치세는 구약성경의 엘리 시대와 동시기로, 이때 레반트에서는 블레셋인들이 언약궤를 약탈해갔다.[25]

브루투스의 아버지를 실비우스라고 하는 판본에서는 그 조상이 노아의 아들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26] 또 다른 판본에서는 브루투스를 전설적인 로마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증손자라고 하며, 누마의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노아의 아들 야벳이 나온다고 한다.[27] 이러한 기독교적 전통은 트로이아 왕가를 그리스의 신들의 후예라고 하는 고전 트로이아 계보와는 모순된다.

2. 2. 브리타니아 열왕사

몬머스의 제프리가 쓴 《브리타니아 열왕사》는 브루투스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큰 줄거리는 《브리튼인의 역사》와 비슷하다.[28] 여기서는 브루투스가 아스카니우스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이며, 아버지는 아스카니우스의 아들 실비우스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마법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브루투스가 부모를 모두 죽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브리튼인의 역사》에서처럼 브루투스는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죽이고, 나중에 아버지를 사고로 죽여 예언을 실현시키고 이탈리아에서 추방된다.

그 후 그리스로 간 브루투스는 노예 신세로 살고 있는 트로이아인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지도자가 된다. 여러 전투 끝에 그리스 왕 판드라수스의 숙영지를 야습하여 승리하고, 판드라수스를 인질로 잡아 트로이아인들을 해방시키도록 강요한다. 이후 판드라수스의 딸 이노겐을 아내로 얻고 함대를 꾸려 항해를 떠난다.

트로이인들은 무인도에 상륙하여 버려진 디아나 신전을 발견한다. 브루투스는 의식을 치른 뒤 여신상 앞에서 잠들고, 꿈에서 서쪽 대양에 거인 몇 명만 사는 섬에 정착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이후 북아프리카에서 세이렌을 만나는 등 모험을 한 뒤, 티레니아해 해안에서 코리네우스가 이끄는 또 다른 트로이아 난민들을 만난다. 이들과 합류해 갈리아를 지나던 중 코리네우스가 아키텐 왕 고파리우스 픽투스의 숲에서 무단으로 사냥을 해 전쟁이 벌어진다. 브루투스의 조카 투로누스가 죽었는데, 투로누스가 묻힌 자리가 오늘날 프랑스 투르라고 한다. 트로이아 난민들은 대부분의 싸움에서 이겼으나 갈리아인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을 알고 배를 타고 당시 알비온이라 불리던 브리튼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토토네시움 리투스(토트네스의 해안)"에 상륙했고, 알비온의 후예인 거인족과 싸워 이겼다.

브루투스는 알비온 섬을 자기 이름을 따 브리타니아라고 다시 짓고 첫 왕이 되었다. 코리네우스도 자기 이름을 따 오늘날의 콘월을 세우고 그 지배자가 되었다. 콘월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콘월인이 영국인으로 편입된 것은 근세에 이르러서라는 점에서 이 전승은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이후 축제 기간에 거인족이 공격해 왔지만, 브리튼인들은 가장 큰 거인 고그마고그를 제외한 모든 거인들을 죽였다. 고그마고그는 코리네우스와 씨름을 붙이기 위해 살려두었고, 코리네우스가 고그마고그를 절벽에서 던져 죽였다.

이후 브루투스는 템스강 강둑에 "새로운 트로이아"라는 뜻의 "트로이아 노바"라는 도시를 세웠다. 이 이름은 세월이 흐르면서 트리노반툼이 되었고, 오늘날의 런던이라고 한다 (실제 트리노반툼의 어원은 철기 시대 브리튼의 부족들 중 하나인 트리노반테스족이다). 브루투스는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법률을 만들고 24년간 재위했다. 죽은 뒤 트리노반툼에 묻혔고, 세 아들 로크리누스, 알바나크투스, 캄베르가 각기 로에그리아(오늘날의 잉글랜드), 알바(오늘날의 스코틀랜드), 캄브리아(오늘날의 웨일스)로 브리타니아를 3등분해 다스렸다.

2. 3. 기타 문헌

와스(Wace)의 노르만어 작품 《브뤼 이야기》, 레이어먼(Layamon)의 중세 영어 작품 《레이어먼의 브루트》 등은 제프리 오브 몬머스의 《브리타니아 열왕사》를 번역하고 각색한 초기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브루투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brut"이라는 단어는 영국의 역사를 기록한 연대기를 의미하게 되었다.[14]

《브루트 어 브레닌데드》(Brut y Brenhinedd, "왕들의 연대기")는 중세 웨일스어로 각색된 여러 작품 중 하나이다. 7세기부터 독립 상실까지 웨일스 통치자들의 주요 연대기인 《브루트 어 티위소기온》(Brut y Tywysogion, "왕자들의 연대기")은 전설적인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순수한 역사적 작품이지만, 제목은 제프리의 작품의 영향을 반영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속편"으로 볼 수 있다.

베벌리의 앨프리드, 니콜라스 트리벳, 지랄두스 캄브렌시스와 같은 영국의 초기 연대기 작가들은 브루투스로 영국의 역사를 시작했다. 브루투스가 영국에 정착했다는 건국 신화는 근세 동안에도 진실한 역사로 여겨졌으며, 예를 들어 《홀린셰드의 연대기》(1577)는 브루투스 신화를 사실로 간주한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힐데브란드 제이콥은 버질의 허구적인 로마 건국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전통을 따라 브루투스에 관한 서사시 《브루투스 더 트로잔, 파운더 오브 더 브리티시 엠파이어》(Brutus the Trojan, Founder of the British Empire)를 썼다.

제프리의 《브리타니아 열왕사》는 브루투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데번의 토트네스에 상륙했다고 말한다. 토트네스의 포어 스트리트에 있는 "브루투스 석상"은 이 상상의 사건을 기념한다.[15]

2021년, 토트네스 지역 라디오 방송국 사운드아트 라디오는 작가 윌 켐프(Will Kemp)에게 브루투스 신화의 라디오 드라마 각색을 의뢰했다.[17]

3. 브루투스의 생애

브리튼인의 역사에 따르면, 브루투스는 트로이아 전쟁 이후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한 아이네아스의 손자 또는 증손자이며, 알바 롱가를 세운 아스카니우스의 아들이거나, 다른 판본에서는 아스카니우스의 아들 또는 아이네아스의 차남 실비우스라고도 한다.[24]

한 마법사가 브루투스가 태어나면 이탈리아에서 가장 용감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이에 분노한 아스카니우스는 마법사를 죽였다. 브루투스의 어머니는 브루투스를 낳다가 죽었다.[25] 이후 브루투스는 화살 오발 사고로 아버지를 죽이고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했다. 티레니아해의 여러 섬을 거쳐 갈리아 땅에서 투르를 세웠고, 이후 브리튼 섬에 도착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서 브리튼 섬이라 명명하고 후손들을 번창케 했다.[25] 브루투스의 치세는 구약성경의 엘리 시대와 동시기로, 이때 레반트에서는 블레셋인들이 언약궤를 약탈해갔다.[25]

브루투스의 가계는 판본에 따라 노아의 아들 [26] 또는 야벳[27]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한다.

3. 1. 그리스에서의 여정

몬머스의 제프리의 《브리타니아 열왕사》에 따르면, 브루투스는 이탈리아에서 추방된 후 그리스로 가서 그곳에서 노예로 살고 있던 트로이아인들을 만난다.[28] 브루투스는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그리스 왕 판드라수스의 숙영지를 야습하여 승리하고 판드라수스를 인질로 잡아 트로이아인들을 해방시키도록 강요했다.[11][23]

브루투스는 판드라수스의 딸 이노겐(Innogen)과 결혼하고, 함대를 꾸려 항해를 시작했다. 트로이아인들은 무인도에 상륙하여 버려진 디아나 신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브루투스는 서쪽 대양에 있는 섬에 정착하라는 계시를 받는다.[11][23]

3. 2. 브리튼 섬 정착

브루투스는 디아나 여신의 신탁에 따라 서쪽의 섬, 즉 브리튼 섬으로 향했다. 항해 도중 티레니아해 해안에서 코리네우스가 이끄는 또 다른 트로이아 난민들을 만나 합류했다.[11][28][23] 이들은 함께 갈리아를 거쳐 브리튼 섬, 당시 알비온이라 불리던 곳에 도착했다.[11][28]

브리튼 섬에 도착한 브루투스와 그의 일행은 "토토네시움 리투스(토트네스의 해안)"라는 곳에 상륙했고,[28] 알비온의 거인 후손들과 싸워 이겼다.[11][28]

3. 3. 브리튼 왕국 건설

브루투스는 알비온 섬을 자기 이름을 따서 브리타니아라고 다시 짓고 그 첫 왕이 되었다. 코리네우스도 자기 이름을 따 오늘날의 콘월을 세우고 그 지배자가 되었다.[12] 콘월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콘월인이 영국인으로 편입된 것은 근세에 이르러서라는 점에서 이 전승은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이후 축제 기간에 거인족이 그들을 공격해 왔지만 브리튼인들은 오히려 가장 큰 거인 고그마고그를 제외한 모든 거인들을 죽여버렸다. 고그마고그는 코리네우스와 씨름을 붙이기 위해 살려두었고, 코리네우스가 고그마고그를 절벽에서 던져 죽였다.[23]

이후 브루투스는 템스강 강둑에 도시를 세우고 "새로운 트로이아"라는 뜻의 "트로이아 노바"라고 이름 지었다. 이 이름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형되어 트리노반툼이 되었고, 오늘날의 런던이라고 한다(실제 트리노반툼의 어원은 철기 시대 브리튼의 부족들 중 하나인 트리노반테스족이다).[13] 현재 길드홀이 있는 곳에 궁전을, 현재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있는 곳에 디아나 신전을 짓는다. 런던 스톤은 디아나 신전 제단의 일부였다고 전해진다. 브루투스는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법률을 만들고 24년간 다스렸다. 죽은 뒤 트리노반툼에 묻혔고, 세 아들 로크리누스, 알바나크투스, 캄베르가 각기 로에그리아, 알바, 캄브리아로 브리타니아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이는 각각 오늘날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에 해당한다.

4. 가계도

wiki

아이네아스
아스카니우스
실비우스
코리네우스브루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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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엔돌로에나로크리누스알바나크투스캄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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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단colspan="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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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프리키우스말린colspan="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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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우쿠스colspan="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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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 비리데스쿠툼19남30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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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colspan="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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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 후드 후디브라스colspan="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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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두드colspan="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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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르colspan="5" |
고노릴라레간코르델리아colspan="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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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누스|쿠네다기우스colspan="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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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3" |리발로colspan="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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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3" |구르구스티우스불명colspan="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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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span="3" |시실리우스 1세야고colspan="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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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마르쿠스colspan="3" |
colspan="3" |
고르보두크유돈colspan="3" |
colspan="3" |
페르렉스colspan="2" |포르렉스 1세colspan="3" |


5. 유산 및 영향

브루투스 전설은 중세 시대 영국의 건국 신화로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영국의 역사와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브루투스의 이름은 영국의 역사 연대기를 의미하는 "brut"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14] 몬머스의 제프리의 《브리타니아 열왕사》를 초기 번역 및 각색한 와스(Wace)의 노르만어 《브뤼의 로망》, 레이어먼(Layamon)의 중세 영어 《레이어먼의 브루트》등은 브루투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brut"은 영국의 역사를 기록한 연대기를 의미하게 되었다. 여러 중세 웨일스어 각색본 중 하나는 《브루트 어 브레닌데드》("왕들의 연대기")라고 불렸다. 전설적인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순수한 역사적 작품인 《브루트 어 티위소기온》("왕자들의 연대기")역시 제목은 제프리의 작품의 영향을 반영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속편"으로 볼 수 있다.

베벌리의 앨프리드, 니콜라스 트리벳, 지랄두스 캄브렌시스와 같은 영국의 초기 연대기 작가들은 브루투스로 영국의 역사를 시작했다. 브루투스가 영국에 정착했다는 건국 신화는 근세 동안에도 진실한 역사로 여겨졌으며, 《홀린셰드의 연대기》(1577)는 브루투스 신화를 사실로 간주한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힐데브란드 제이콥은 버질의 로마 건국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전통을 따라 브루투스에 관한 서사시 《브루투스 더 트로잔, 파운더 오브 더 브리티시 엠파이어》(Brutus the Trojan, Founder of the British Empire)를 썼다.[16]

제프리의 《브리타니아 열왕사》는 브루투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데번의 토트네스에 상륙했다고 말한다. 토트네스의 포어 스트리트에 있는 "브루투스 석상"은 이 상상의 사건을 기념한다.[15]

토트네스의 브루투스 석상

참조

[1] 백과사전 Brutus https://www.maryjone[...] 2020-08-11
[2] 논문 "The Supposedly 'Frankish' Table of Nations: An Edition and Study"
[3] 간행물 "Filling the Gap: Brutus in the Historia Brittonum, Anglo-Saxon Chronicle MS F, and Geoffrey of Monmouth" Rodopi, Amsterdam/New York
[4] 서적 Wales and the Britons, 350-1064 Oxford
[5] 논문 "The Frankish Table of Nations in Insular historiography"
[6] 서적 Josephus and Modern Scholarship (1937–1980)
[7] 문서 Historia Brittonum 7, 10–11
[8] 문서 Morris 1980, p. 19
[9] 문서 Historia Brittonum 18
[10] 문서 Historia Brittonum 17–18
[11] 문서 Geoffrey of Monmouth, Historia Regum Britanniae 1.3–18, 2.1
[12] 문서 Cornwall is given a distinct identity predating England, Scotland or Wales. Cornishmen continued to regard themselves as descendants of Corineus until well into the early modern period.
[13] 문서 The name Trinovantum, supposedly derived from Troia Nova, is derived from the Trinovantes, a people of Iron Age Britain.
[14] OED "A chronicle of British history from the mythical Brutus downward."
[15] 논문 "New Troy to Lake Village - the Legend of Prehistoric London"
[16] ODNB Jacob, Hildebrand http://www.oxforddnb[...] 2013-01-23
[17] 뉴스 Brutus of Troy ! First King of Britain unleashed in Totnes https://www.theprsd.[...] 2021-03-29
[18] 서적 ブリトン人の歴史 論創社
[19] 문서 Historia Britonum 7, 10-11
[20] 문서 Morris 1980, p. 19
[21] 문서 Historia Britonum 18
[22] 문서 Historia Britonum 17-18
[23] 문서 Geoffrey of Monmouth, Historia Regum Britanniae 1.3-18, 2.1
[24] 간행물 "Filling the Gap: Brutus in the Historia Brittonum, Anglo-Saxon Chronicle MS F, and Geoffrey of Monmouth" Rodopi, Amsterdam/New York
[25] 문서 Historia Britonum 7, 10-11
[26] 문서 Morris 1980, p. 19
[27] 문서 Historia Britonum 18
[28] 문서 Geoffrey of Monmouth, Historia Regum Britanniae 1.3–1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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