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구약성경은 기독교에서 신약성경과 구분하여 사용하는 명칭으로, 유대교에서는 타나크 또는 히브리 성경으로 불린다. 기원전 120년대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기원후 900년경의 마소라 본문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사해사본 발견을 통해 본문의 정확성이 더해졌다. 구약성경은 토라(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지혜서), 예언서로 구성되며, 유대교와 개신교는 39권, 가톨릭은 46권, 동방 정교회는 49~50권으로 분류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예언하는 구원 역사로 해석한다. 성립 과정은 복잡하며, 페르시아 시대에 모세오경이 성립되었고,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보인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성경 둘러보기 상자 - 애가
애가는 예루살렘 파괴를 애도하고 백성 회복을 간청하는 구약성경의 한 책으로,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 네 장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하는 아크로스틱 형식이고, 익명의 저자가 바빌론 유배 시기에 집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성경 둘러보기 상자 - 불가타
불가타는 히에로니무스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원전을 참고하여 옛 라틴어 성경을 수정 및 번역하고, 이후 여러 학자들의 개정을 거쳐 트렌트 공의회에서 가톨릭 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인정받았으며, 서구 기독교와 여러 언어에 큰 영향을 미친 라틴어 성경이다. - 구약성경 - 나실인
나실인은 구약성경 시대에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약한 사람들을 뜻하며, 포도주를 멀리하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등의 규정을 지켰고, 삼손과 사무엘이 대표적인 예이며 현대의 영적인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 구약성경 - 레닌그라드 사본
레닌그라드 사본은 러시아 국립도서관 소장 히브리어 성경 사본으로, 티베리아식 모음과 마소라 주석을 포함하며, 1937년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기본 본문 채택 이후 국제적으로 알려졌고, 중세 유대 예술의 사례로 평가받으며, 현대 히브리어 성경 판본의 기초가 되었다. - 기독교 용어 - 선교사
선교사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에서 교리 전파나 지역 주민 지원을 위해 파견하는 사람으로, 기독교 선교사는 타문화권에 복음을 전파하고 토착 교회 설립을 추구하며, 역사적으로 서구에서 비서구 지역으로 확장되었으나 식민주의 연관, 문화적 존중 부족 등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 기독교 용어 - 세례명
세례명은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을 때 받는 새로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며,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 변화에서 유래하여 중세 이후 유럽에서 일반적인 이름 형태로 정착되었고, 수호성인의 이름에서 따와 이름 축일로 기념되기도 한다.
구약성경 | |
---|---|
성경 정보 | |
종교 | 유대교, 기독교 |
언어 | 히브리어, 아람어 |
장 | 929 |
절 | 23,145 |
관련 정보 | |
관련 유대교 텍스트 | 히브리어 성경 |
기독교 정보 | |
구분 | 기독교 성경의 첫 번째 구분 |
성경 | |
관련 문서 | 성경 신약성경 |
역사 및 전통 | |
관련 문서 | 구약성경의 역사 |
추가 정보 | |
관련 문서 | 성경 정경 |
2. 문헌사
구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번역 사본은 기원전 120년대의 사해사본이다. 사해사본 발견 이전 오랫동안 기원후 900년경의 마소라 본문이 알려졌으나, 이 사본의 본문 정확도는 연구자들이 신뢰하지 않았다. 1세기경의 사본을 발견하면서 마소라 사본과 비교한 후에 사본 정확도가 밝혀졌다.
'''구약성경'''(舊約聖經)은 기독교에서 신약성경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명칭으로, '옛 계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고린도후서 3장 14절 등의 "옛 계약"이라는 말을 바탕으로 2세기경부터 기독교인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했다.[47] 멜리토(190년)에게서 보이고, 클레멘스 알렉산드리아누스가 자주 사용했다. 그러나 기독교 측의 관점일 뿐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유대교 성서''', '''히브리 성경''', '''히브리어 성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해사본 발견 이전까지 구약성경을 최종 편집한 기원전 400년경과 기원후 900년과는 1,300년이라는 긴 시간적 차이가 나므로 본문 오류와 조작 가능성으로 사본의 정확도는 신뢰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사본은 구약이 완성된 이후 1,400년이나 지난 기원후 1008년의 바빌로니쿠스 서판(Codex Babylonicus Petropalitanus)뿐이어서, 그때까지 성경학자들은 바벨로니아의 점토판이나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유일한 자료로 활용했었다.
그러나 1954년 베두인 목동이 우연히 기원전 125년경쯤에 작성한 사해 사본을 발견하여서 원본과 차이를 275년으로 좁혀 놓았다. 40,000여 개의 사본 조각들을 편집해서 500여 권의 책을 재구성하였다. 이중 1/3이 구약성경이었고, 에스더서 일부를 제외한 구약성경 전체가 발견되었다. 더군다나 사해 사본과 1,000여 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마소라 본문과 비교하면, 이 둘 내용은 서로 일치한다.
3. 명칭
유대교에서는 타나크라고 부르며, 중립적인 용어로는 '히브리 성경'이라고도 한다. 유대교에서는 기원후 90년경 얌니아 회의에서 히브리 성경의 목록을 확정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얌니아 회의 이후 유대교는 70인역 대신 히브리 성경을 바탕으로 한 아퀼라역을 사용했다.[73]
기독교에서는 382년 로마 공의회와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성경과 함께 구약성경의 목록을 확정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70인역을 주로 사용했으나, 이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간의 성서관 차이가 발생했다.
종교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는 유대교 구약 목록을 지지했으며, 칼뱅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6년)에서 기존 정경 목록을 재확인했다.[55] 개신교는 유대교 성경 목록을 따르는 39권의 구약성경을 확립하고, 외경을 구분했다.
3. 1. 유대교
유대교에서는 구약성경을 "타나크"라고 부른다.[73] 타나크는 토라(모세오경), 느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중립적인 용어로 '히브리 성경'이라고도 불린다. 전통적으로는 기원전 1500년~400년 사이에 유대 민족의 구전 전승이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보지만, 현대 성서학계에서는 실제 문헌 작성 연대를 이보다 늦게 추정한다. 토라는 주로 유대왕국 후반부터 바빌론 유수기에, 케투빔과 느비임은 바빌론 유수기부터 예루살렘 귀환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본다.[73]
현재의 히브리성경 내 24권의 모든 문서가 유대교의 경전으로 공식 인정받게 된 것은 기원후 70년 유대전쟁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된 이후 바리새파가 유대교를 재형성하던 시기인 기원후 90년경의 얌니아 회의에서 결정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얌니아 회의가 바리새파의 유대교 형성을 위한 회의였으며, 특정 문헌의 목록 추가 및 배제가 논의된 것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73]
구약성경 목록 확정의 공식적인 증거 자료들은 2세기 이후에 나온다. 요세푸스의 아피온 반박과 에스드라 2서에서 각각 22권과 24권의 정경이 언급되지만, 세부 목록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2세기에 작성된 '바바 바트라'에서 히브리성경 24권의 목록이 처음 전체적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사르디스(사데)의 주교 '멜리토'가 소개한 '그들의 성경' 22권 목록과는 차이가 있어(에스더는 배제되고 지혜서가 포함), 2세기경 히브리성경 목록이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었다는 주장에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다.[73]
성서학계의 연구는 여러 갈래의 전승들이 본문 비평을 통해 다양한 기록자에 의해 기록, 채색되었고, 지역 및 시대에 따라서 다른 갈래의 문서들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히브리어 전통을 보존했던 팔레스타인의 바리사이파 랍비들은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에 비해 신학적인 우월성을 가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세력이 지지하는 문서와 그 목록이 경전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얌니아 회의 이후 이들 세력의 지지를 받지 못한 문서들은 유대교 안에서 경전성에서 배제되었는데, 히브리 사상의 충실한 반영과 신뢰성 있는 히브리어 원문의 존재 유무가 가장 핵심적인 경전성 결정의 기준이었다. 이전까지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기독교 세력이 사용하던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을 얌니아 회의 이후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사용을 중지하였다. 70인역을 대신하여 유대교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히브리성경을 대본으로 하여 아퀼라역을 새롭게 번역하였다.[73]
유대교에서는 구약 성서가 유일한 정경이며, 현재에도 행동을 규율하는 문자 그대로의 법이다. 민족의 역사를 전하고, 이스라엘 땅을 민족의 고토로 하는 정신적인 기반을 주며, 행위와 역사의 양면에서 문화적인 일체성을 부여하는 책이기도 하다.
3. 2. 기독교
기독교에서는 히브리 성경을 '구약'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신약과 대비되는 개념이다.[47] 이는 382년에 로마 공의회에서 새롭게 정한 경전들을 '신약(New Testament)'이라고 부르기로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역사에 등장하였고, 따라서 '신약성경'으로 분류된 문헌 안에서 언급된 "성경"이라는 모든 표현은 곧 '구약성경'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에는 그리스어 문화권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세력과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따라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사용했던 70인역이 그대로 기독교의 경전이 되면서 외경 논란의 화근이 되었다. 내부적으로 높은 권위를 인정되던 주요 문헌들이 70인역을 주로 인용하였기에 기독교의 호교론적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예수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와 같이 그리스도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히브리어 용어 메시아의 의미에 대한 유대교적 이해에 기반을 두는데, 이는 그리스어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히브리 성경에서 이 용어는 즉위식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묘사하며, 그는 "야훼/יהוהhe"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된다.
예수 시대에 이르러, 일부 유대인들은 다윗( "다윗의 자손")의 혈통을 이은 육체적 인물이 예루살렘에 실제 유대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이들은 마지막 때 심판자로 나타날, 분명히 초월적인 인물인 인자를 강조했다. 어떤 이들은 이 두 입장을 종합한 견해를 제시했는데, 이 세상의 메시아 왕국은 일정 기간 지속되다가 초월적인 시대 또는 장차 올 세계가 뒤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이들은 메시아가 이미 나타났지만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어떤 이들은 메시아가 선구자, 아마도 엘리야(선지자 말라기가 약속했듯이)에 의해 알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약에 근거한 메시아에 대한 어떤 견해도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고난받고 죽을 메시아를 예측하지 못했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 전통으로부터 의미의 심오한 변화를 수반했다.
"구약"이라는 이름은 기독교가 자신을 성취로 이해하는 예레미야의 새로운 언약(이는 "계약"과 유사하고 종종 혼동됨)에 대한 예언을 반영하며,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존재하는 기존 계약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강조점은 유대교의 하나님과 유대 민족 사이의 인종적 또는 부족적 서약으로서의 계약에 대한 이해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앙인 사이의 계약으로 이동했다.
구약성서는 미래에 유다를 재건할 메시아 왕을 약속하는 것으로, 기독교인들은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을 약속하는 구원 역사로 해석한다. 구약성서의 대명사이기도 한 “율법”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의 계율은 아니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구약성서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사명이며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여겨진다.
구약성서는 “율법과 예언자와 여러 책들”, “율법과 예언자와 시편”(누가복음 24:44), “율법”(마태복음 5:17-18, 요한복음 10:34) 등으로 불렸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합쳐 “율법과 예언자 및 복음과 사도”, “율법과 복음”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있으며, 아우구스티누스가 인용한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의 “신약성서는 구약성서 속에 숨겨져 있으며, 구약성서는 신약성서 속에 나타나 있다.”라는 말은 유명하다.
시편으로 기도하는 전통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것은 정교회가 성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 시편은 노래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시편가가 있으며, 개혁파 교회에는 제네바 시편가가 있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므로 구약은 불필요하다는 견해에 대해, 일본 기독교 개혁파 교회의 창립자인 오카다 미노루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앙신학교의 채프먼 교수는 “구약성서에는 이교의 우상숭배에 관해 적혀 있지만, 전쟁 전 교파는 그 구약성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신사 참배와 같은 우상숭배에 약했다”고 지적한다. 채프먼 교수는 일본에서 구약성서의 중요성을 일찍 주장했다.
종교개혁자, 청교도 등은 구약성서에서 설교했지만, 고등비평,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구약성서에서 설교하는 것이 적어졌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여 일본의 구약성서 단행본 성서는 신일본성서간행회의 “성서 신개역 2017” Kindle판과 일본성서협회의 신공동역 Kindle판 밖에 없으며, 종이 매체의 구약성서 단독 출판은 중단되었다. 예전에는 구약성서 단행본인 세키네 마사오 역이나 구약성서 단행본 신개역 제3판이 출판되었다. 정교회는 구약성서 단독 판매를 권장하지 않는다.
=== 초기 기독교의 구약 목록 ===
문헌상으로 증명되는 최초의 정리된 기독교 구약 목록은 2세기 후엽의 인물인 사르디스(사데)의 감독인 멜리토의 편지로서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수록된 것이다. 좁은 성경 목록이라고 부르는 유대교 구약성경 목록에 가깝지만, 에스더가 빠져있고 2경전에 해당하는 솔로몬의 지혜서가 들어가 있다는 차이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후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나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서신 등에서도 이러한 독특한 기독교의 좁은 성경 목록의 경향성은 계속 이어졌다. 대체로 동방교회는 이러한 '좁은 성경 목록'의 입장을 보인 교부들이 많은 편이었다.
문헌상으로는 멜리토의 것처럼 정리된 목록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나, 다수의 초대교회 교부들은 일부 구약의 외경이나 위경들도 성경으로서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이른바 '넓은 성경 목록'의 입장에 선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입장들은 교회 내적으로 정리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 보편 교회의 구약 정경과 외경 ===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게 공인된 이후, 예루살렘의 키릴로스는 90년 유대교의 얌니아 회의 결과에 따르는 히브리어 경전 본문과 그 목록의 우월성을 주장하였으며, 특히 기원전 2세기 전후에 작성된 문헌들을 헬라 문화를 수용한 이후의 문헌으로 보고 이 문헌들을 '외경'(아포크리파)으로 분류하여 정경에서 배제하였다. 이는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나 아타나시우스등의 동방교회 교부들과, 동방교회로 유학한 루피누스나 히에로니무스같은 서방교회의 일부 저명한 신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교회 지역의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라틴어 권역의 호교론자들은 70인 역을 따르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옹호하며 유대교의 이 '외경'들을 정경으로서 여겼다. 397년 북아프리카의 서부 도시였던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유대교에게는 인정되지 않은 그리스어 번역본 전체의 경전성을 인정하며, 이 외경을 '구약성경'의 일부로 인정하였다.
=== 교회 대분열 이후 서방교회 구약 ===
11세기에 헬라어 지역인 동방교회와 라틴어 지역인 서방교회로 나뉘는 교회 대분열이 발생했다. 대분열 이후, 동방교회는 추가적 보편 공의회의 개최 없이 기존 7차 보편 공의회의 교리와 신학 결정들을 수정 없이 따르며 교회의 변화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서방교회 지역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교회의 전통이 요구된다'는 입장 아래 라테란 공의회를 시작으로 사회와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교회의 변화와, 그를 뒷받침할 신학적 재구성을 위해 라틴어로 진행하는 서방교회 만의 보편 공의회들을 추가적으로 열었다. 그리고 이 공의회들에서는 추가적인 신학이론과 교리 형성을 위해 외경을 이용하고 근거로서 사용하였다. 그러면서 외경에서 유래되는 가르침들의 경우 '교리' 레벨로 올리지 않고 '내적 전통'의 레벨로 남겨두었던 동방교회와의 차이점이 점차 나타나게 되었다.
=== 서방교회 종교개혁 이후 구약 ===
종교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각 문헌들 사이에 권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구약정경 구성에 대해서는 유대교 구약 목록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칼뱅 또한 루터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가톨릭은 1545년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기존 정경 목록에 대한 도전을 일축하고, '외경'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던 일부 문헌들에 대하여 다른 성경 문서들과 동등한 수준의 경전성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하였다. 종교개혁 세력은 이에 반발하였고, 가톨릭은 종교개혁자 세력들에게 파문을 선언, 결국 종교개혁자 세력은 현재의 개신교로 등장하게 되었다. 개신교에서는 유대교 성경 목록을 따라 외경의 정경성을 부인하고 히브리성경 24권을 재분류한 39권의 독자적인 구약정경의 목록을 확립하고 외경을 구분하였다.
개신교의 외경에 대한 견해는 교단들의 신학사상에 따라 의견을 달리한다. 공교회주의를 따르는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회, 구세군, 일부 성결교회 등은 외경에 대해 '교리를 도출하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지만 신앙에는 유익한 문서'로 보는 편이다. 성공회는 구약 외경을 준정경으로 인정하여 봉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를 따르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침례교회, 조합교회 등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결정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신학적 영향을 많이 받은 개신교 교단들은 외경에 대하여 아무 가치도 인정하지 않으며, 교회 내 독서도 금지한다.
대한민국 개신교 성경편찬처인 '대한성서공회'의 성경번역본 구약성경에서 외경은 참조문헌 정도이다. 예배 시 사용하는 한글 성경번역본인 '개역개정 성경전서', '새번역 성경전서'에는 외경이 없으며, 교육용으로 사용하는'공동번역 성서'에만 부록으로 외경이 실려있다.
3. 2. 1. 초기 기독교의 구약 목록
문헌상으로 증명되는 최초의 정리된 기독교 구약 목록은 2세기 후엽의 인물인 사르디스(사데)의 감독인 멜리토의 편지로서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수록된 것이다. 좁은 성경 목록이라고 부르는 유대교 구약성경 목록에 가깝지만, 에스더가 빠져있고 2경전에 해당하는 솔로몬의 지혜서가 들어가 있다는 차이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후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나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서신 등에서도 이러한 독특한 기독교의 좁은 성경 목록의 경향성은 계속 이어졌다. 대체로 동방교회는 이러한 '좁은 성경 목록'의 입장을 보인 교부들이 많은 편이었다.
문헌상으로는 멜리토의 것처럼 정리된 목록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나, 다수의 초대교회 교부들은 일부 구약의 외경이나 위경들도 성경으로서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이른바 '넓은 성경 목록'의 입장에 선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입장들은 교회 내적으로 정리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3. 2. 2. 보편 교회의 구약 정경과 외경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게 공인된 이후, 예루살렘의 키릴로스는 90년 유대교의 얌니아 회의 결과에 따르는 히브리어 경전 본문과 그 목록의 우월성을 주장하였으며, 특히 기원전 2세기 전후에 작성된 문헌들을 헬라 문화를 수용한 이후의 문헌으로 보고 이 문헌들을 '외경'(아포크리파)으로 분류하여 정경에서 배제하였다. 이는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나 아타나시우스등의 동방교회 교부들과, 동방교회로 유학한 루피누스나 히에로니무스같은 서방교회의 일부 저명한 신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교회 지역의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라틴어 권역의 호교론자들은 70인 역을 따르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옹호하며 유대교의 이 '외경'들을 정경으로서 여겼다. 397년 북아프리카의 서부 도시였던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유대교에게는 인정되지 않은 그리스어 번역본 전체의 경전성을 인정하며, 이 외경을 '구약성경'의 일부로 인정하였다.
3. 2. 3. 교회 대분열 이후 서방교회 구약
11세기에 헬라어 지역인 동방교회와 라틴어 지역인 서방교회로 나뉘는 교회 대분열이 발생했다. 대분열 이후, 동방교회는 추가적 보편 공의회의 개최 없이 기존 7차 보편 공의회의 교리와 신학 결정들을 수정 없이 따르며 교회의 변화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서방교회 지역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교회의 전통이 요구된다'는 입장 아래 라테란 공의회를 시작으로 사회와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교회의 변화와, 그를 뒷받침할 신학적 재구성을 위해 라틴어로 진행하는 서방교회 만의 보편 공의회들을 추가적으로 열었다. 그리고 이 공의회들에서는 추가적인 신학이론과 교리 형성을 위해 외경을 이용하고 근거로서 사용하였다. 그러면서 외경에서 유래되는 가르침들의 경우 '교리' 레벨로 올리지 않고 '내적 전통'의 레벨로 남겨두었던 동방교회와의 차이점이 점차 나타나게 되었다.
3. 2. 4. 서방교회 종교개혁 이후 구약
종교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각 문헌들 사이에 권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구약정경 구성에 대해서는 유대교 구약 목록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칼뱅 또한 루터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가톨릭은 1545년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기존 정경 목록에 대한 도전을 일축하고, '외경'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던 일부 문헌들에 대하여 다른 성경 문서들과 동등한 수준의 경전성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하였다. 종교개혁 세력은 이에 반발하였고, 가톨릭은 종교개혁자 세력들에게 파문을 선언, 결국 종교개혁자 세력은 현재의 개신교로 등장하게 되었다. 개신교에서는 유대교 성경 목록을 따라 외경의 정경성을 부인하고 히브리성경 24권을 재분류한 39권의 독자적인 구약정경의 목록을 확립하고 외경을 구분하였다.
개신교의 외경에 대한 견해는 교단들의 신학사상에 따라 의견을 달리한다. 공교회주의를 따르는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회, 구세군, 일부 성결교회 등은 외경에 대해 '교리를 도출하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지만 신앙에는 유익한 문서'로 보는 편이다. 성공회는 구약 외경을 준정경으로 인정하여 봉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를 따르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침례교회, 조합교회 등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결정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신학적 영향을 많이 받은 개신교 교단들은 외경에 대하여 아무 가치도 인정하지 않으며, 교회 내 독서도 금지한다.
대한민국 개신교 성경편찬처인 '대한성서공회'의 성경번역본 구약성경에서 외경은 참조문헌 정도이다. 예배 시 사용하는 한글 성경번역본인 '개역개정 성경전서', '새번역 성경전서'에는 외경이 없으며, 교육용으로 사용하는'공동번역 성서'에만 부록으로 외경이 실려있다.
3. 3. 구약 전승의 특성과 구전전승
구약 전승은 크게 세 가지 특성으로 구분된다.
신명기 전승(Deuteronomy, D)은 모세의 설교 형식으로, 만연체의 장황한 문장과 특유의 어휘 및 표현을 사용하며, 하나님과의 계약을 신실하게 지킬 것을 호소한다. 이는 오경의 다른 책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징적인 문체이다.
제사장 문서(Priestly Documents, P)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문학 양식, 특이한 어휘와 문구, 고유의 신학적 입장을 통해 다른 전승과 구별된다.
고대 서사시(Old Epic Tradition)는 신명기와 제사장 문서를 제외한 오경의 나머지 부분에 해당하며, 생생한 이야기 전달 기법과 인간에 대한 관심을 특징으로 한다.
구전전승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역사가는 자신과 공동체에 의미 있고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기에,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공적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출애굽 사건은 이집트 노예 집단의 정치적 해방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 역사를 정치적 차원을 넘어선 신성한 의미로 보는 신앙적 의미가 있다. 출애굽은 단순한 해방 사건이 아니라, 혼돈 속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구원과 창조 사건으로 해석된다.
3. 4. 사해 문서의 발견
1946년에 발견된 사해 문서에서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 헬라어로만 전해진 문서들 중에서 히브리어 문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던 토빗기 등의 히브리어 판본을 발견하면서 히브리어 원문을 확인했다.[74] 이 발견으로 에세네파에서 히브리어 원문을 보존했다고 하지만 에세네파에서 외경(제2경전)을 정경으로 수용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70년 예루살렘 파괴가 일어나기 전 작성한 사해사본에서 나온 에세네파의 정경 목록은 성전 파괴 이후인 90년에 바리새파가 얌니아 회의에서 확정한 히브리성경 분류법 및 목록과는 차이가 있다.[74] 에스테르(에스더)는 정경에 없으며, 개신교에서 위경인 에녹서와 희년서, 외경인 예레미야의 편지가 정경 목록에 포함된다.[74] 그러나 이 것은 에쎄네파가 직접 정경 목록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성경 학자들이 몇가지 보편적 기준을 세워서 추론해 낸 것이다.
4. 구성
(히브리어 성경)
(24권)
굵게 표시된 책은 케투빔의 일부임.
구약성경
(39권)
구약성경
(46권)
구약성경
(50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