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해당소상팔경시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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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해당 소상팔경시첩은 1442년 안평대군이 주도하여 제작된 시첩으로, 남송 영종의 소상팔경시를 모방하고, 고려 시대 이인로와 진화의 시, 그리고 당시 명인들의 친필 시를 함께 엮어 두루마리로 만들었다가 첩 형태로 장정되었다. 이 시첩은 조선 초기 명인들의 글씨와 시를 감상할 수 있으며, 안평대군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집현전 학사들의 시문은 서예사 및 한시 문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몽유도원도와 함께 당대 문인들의 유묵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며, 사육신 등 명사들의 진적이 포함되어 희소가치가 높다. 현재 보물 제140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보 지정이 예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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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해당소상팔경시첩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작품 정보 | |
| 이름 | 비해당소상팔경시첩 |
| 원어 | 匪懈堂瀟湘八景詩帖 |
| 유형 | 보물 |
| 지정 번호 | 1405 |
| 지정일 | 2004년 5월 7일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자 | 국유 |
|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
|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5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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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작 배경 및 과정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은 1442년(세종 24년)에 안평대군(이용, 1418~1453, 호는 비해당(匪懈堂))이 주도하여 제작한 시첩이다.[2] 이 시첩은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주제로 당대 문인 21명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시첩은 본래 1442년(세종 24년) 안평대군(이용, 1418~1453)이 주도하여 만들었다. 처음에는 남송 영종의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와 이를 바탕으로 그린 「팔경도(八景圖)」, 그리고 고려 시대 문인 이인로와 진화의 팔경시, 세종 당시 김종서,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안지, 강석덕, 최항, 남수문, 신석조 등 문인 19명의 시와 이영서의 서문을 모아 두루마리 형태로 꾸며졌다.
조선 초기, 특히 세종대에 활약한 집현전 학사들의 업적은 역사 기록에 자세히 남아있고 당시 편찬된 서적도 대부분 전하지만, 그들의 친필 진적(眞蹟)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단종에서 세조로 왕위가 넘어가는 과정에서 안평대군을 비롯해 황보인, 김종서 등이 정치적 격변 속에 희생되었고, 이후 단종 복위 운동으로 사육신을 포함한 많은 명사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집현전마저 폐지되면서 당시 사림들이 남긴 글씨는 거의 사라졌다.[1]
보물 제1405호로 지정되어 있다. (2004년 5월 7일 지정)[2] 2018년 8월 23일 문화재청에 의해 국보 지정이 예고되었다.[2]
첩의 앞부분에 수록된 이영서(李永瑞, ?~1450)의 서문에 따르면, 제작 계기는 1442년 안평대군이 남송 영종(재위 1195~1224)의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얻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안평대군은 먼저 영종의 시를 옮겨 적고(모탑), 화공에게 팔경도(八景圖)를 그리게 하였다. 그 다음으로 고려 시대 문인인 진화(陳澕)와 이인로(李仁老)의 팔경시를 옮겨 적고(이서), 당시 시를 잘 짓는 문인들에게 오언·육언·칠언시를 짓게 하여 시첩을 완성하였다.[2]
이 시첩 제작에 참여한 조선 시대 문인은 김종서,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안지(安止), 강석덕(姜碩德), 최항, 남수문(南秀文), 신석조(辛碩祖) 등 19명이며, 이들의 글은 대부분 직접 쓴 친필(진필)로 판단된다. 고려 문인 2명을 포함하여 총 21명의 글이 실려 있다.
본래 시첩의 구성은 송 영종의 팔경시와 팔경도, 고려 및 조선 문인들의 시, 이영서의 서문이 포함된 두루마리(권축장, 卷軸裝)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는 송 영종의 팔경시와 팔경도는 전하지 않으며, 45면의 첩(첩장, 帖裝) 형태로 개장되어 있다. 서문의 위치 또한 원래 만우(卍雨)의 시 다음에 있었으나, 후에 옹정춘의 제서(題書) 다음으로 옮겨졌다.[2]
3. 구성 및 내용
그러나 현재는 처음의 모습과 달리 남송 영종의 팔경시와 팔경도는 전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부분은 총 45면으로 첩장(帖裝) 형태로 개장되었다. 서문 또한 원래 만우(卍雨)의 시 다음에 있었으나, 최근에 옹정춘의 제서(題書) 다음으로 옮겨 다시 꾸며졌다.
시첩에 글을 남긴 작가는 총 21명으로, 고려 시대 2명(이인로, 진화)과 조선 시대 19명이다. 특히 조선 시대 문인 19명의 시문은 각자 직접 쓴 진필(眞筆)로 추정된다.[2] 이들 중에는 계유정난과 단종 복위 운동 등으로 희생된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등)을 비롯한 명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이들의 진적(眞蹟)이 거의 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희소가치가 크다.
4. 가치 및 의의
이러한 상황에서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은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 제발문과 함께,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최항 등 당대 최고 문인 학사 19명의 친필 유묵(遺墨)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다. 특히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희생된 사육신 등 명사들의 진적이 포함되어 있어 그 희소가치는 더욱 크다.[1][2]
또한 이 시첩은 중국 남송대 영종의 '소상팔경시'를 받아들이면서도, 고려시대 문인(이인로, 진화)과 당대 조선 문인들의 시를 함께 엮어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킨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를 통해 당시 왕실(안평대군)과 사대부 계층이 문화를 어떻게 향유했는지 엿볼 수 있으며, 15세기 서예사 연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1][2]
이러한 예술적, 문학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8월 23일 문화재청은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을 보물 제1405호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하였다.[2]
5. 지정 현황
5. 1. 국보 지정 사유
2018년 8월 23일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제11조 제4항에 따라 비해당 소상팔경시첩이 국가지정문화재(국보) 지정가치가 있다고 평가하여 다음과 같이 예고하였다.[2]
| 항목 | 내용 |
|---|---|
| 현 지정번호 | 보물 제1405호 (2004년 5월 7일 지정) |
| 지정명칭 | 비해당 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 |
| 소유자(관리자) | 국유(국립중앙박물관) |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
| 수 량 | 1첩 |
| 규 격 | 42cm×33.2cm |
| 재 질 | 냉금전지(冷金箋紙) |
| 판 종 | 필사본 |
| 형 식 | 절첩장 |
| 조성연대 | 1442년(세종 24) |
국보 지정 사유는 다음과 같다.[2]
‘비해당 소상팔경시첩’은 1442년(세종 24)에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 이용(李瑢, 1418~1453)이 주도하여 ‘소상팔경’을 주제로 당대 문인 21명의 글을 모아놓은 시첩이다. 첩의 앞부분에 수록된 이영서(李永瑞, ?∼1450)의 서문에 따르면, 이 시첩은 1442년 안평대군이 남송 영종(寧宗, 재위 1195∼1224)의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얻은 것을 계기로 제작되었다. 안평대군은 영종의 시를 옮겨 적고 화공에게 「팔경도(八景圖)」를 그리게 한 다음, 고려 시대 진화(陳澕)와 이인로(李仁老)의 시를 붙이고, 당시 시에 능한 문인들에게 오언·육언·칠언시를 짓게 하여 완성하였다. 현재 원본에 포함되었던 영종의 ‘팔경시’와 ‘팔경도’는 전하지 않는다.
각 시는 대부분 작자의 친필 글씨로, 이들의 유묵(遺墨)을 통해 당시 문인들의 필체와 문학 수준을 동시에 엿볼 수 있어 예술적, 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이 시첩에 글을 남긴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을 비롯한 많은 명사들이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희생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진적(眞蹟)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서 희소가치가 더욱 크다.
‘비해당 소상팔경시첩’은 중국 문물을 수용하여 독자적인 우리 문화로 승화시킨 점, 조선 왕실과 사대부 계층의 문화 향유 양상을 보여주는 점, 15세기 서예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주목받아 온 작품이다. 특히, 전하는 것이 매우 드문 집현전 학사들을 포함한 조선 전기 명가들의 친필 유작을 모은 유일한 자료이자 전래 경위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높다. 이는 서예사 및 한시문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며, 당시 인물들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되어 국보로 지정될 가치가 충분하다.[1][2]
참조
[1]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문화재청장
2004-05-07
[2]
간행물
문화재청공고제2018-276호(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 지정 및 명칭 변경 예고)
http://gwanbo.mois.g[...]
문화재청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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