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창
1. 개요
성세창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07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홍문관, 사간원, 이조 등을 거쳐 의정부 사인, 형조판서, 공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기묘사화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파직과 복직을 반복했으며, 좌의정까지 올랐으나 결국 귀양지에서 사망했다. 학문이 뛰어나 사림의 추앙을 받았으며, 선조 때 신원되어 시호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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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년 출생 -
아시카가 요시즈미
아시카가 요시즈미는 호리고에 구보의 아들로 태어나 덴류지 가겐인의 후계자였으나 메이오 정변으로 쇼군이 되었고, 실권은 호소카와 마사모토에게 있었으며, 폐위 후 쇼군 복위에 실패하고 사망했다. -
1481년 출생 -
회산군
회산군은 조선 성종의 서자이며, 숙의 홍씨의 아들로 봉사 안방언의 딸과 혼인했으나 자녀는 없었고, 중종 재위 기간에 김안로의 간언을 물리쳤으며, 후사가 없어 계산군 이수계가 대를 잇고 시호는 정간이다. -
1548년 사망 -
레 장종
레 장종은 막 왕조 찬탈 후 응우옌 김에 의해 옹립되어 후 레 왕조를 재건했으나, 실권은 응우옌 김과 찐끼엠에게 있어 꼭두각시 노릇을 하였다. -
1548년 사망 -
정순붕
정순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문과 급제 후 신진사류로 개혁을 시도했으나,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권력을 추구하며 변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성세창은 1507년(중종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전경, 홍문관정자, 집의, 설경, 박사를 거쳐 홍문관부수찬, 검토관, 사간원정언, 사과, 헌납을 역임했다. 이후 사간원헌납, 홍문관교리, 이조정랑을 거쳐 의정부사인이 되었다. 집의와 사간을 거쳐 사헌부집의를 하고 사간원사간으로 있다가 직제학에 올랐다.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오른 후 참찬관을 거쳤다.
기묘사화로 파직되었다가 재기용되어 공조참의를 지냈다. 강원도관찰사로 민정을 다스렸고, 형조참판을 거쳐 주문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첨지중추부사, 성균관대사성, 전라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예조참판과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이후 대사헌, 형조참판을 역임했으나, 홍언필, 윤인경, 정광필 등과 함께 권신 김안로를 논척하다 벼슬에서 쫓겨났다. 김안로가 실각한 후 재기용되어 공조판서, 우참찬, 우찬성, 형조판서를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어 이조판서가 되었다. 동지성균관사, 세자빈객, 우참찬, 사헌부대사헌, 동지사를 역임하고 의정부좌참찬과 의정부우참찬을 번갈아 지냈다.
종부시제조, 우참찬,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하며 홍언필, 윤인경, 유관 등과 대윤 일파에 속했다. 지의금부사를 거쳐 다시 이조판서가 되고, 지중추부사에 이어 의정부우참찬으로 임명되었다. 우참찬과 형조판서를 겸직하다 의정부우참찬, 형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대제학을 연이어 맡았다. 다시 호조판서와 대제학을 겸직하다 빈객이 되고 우찬성으로 승진했다.
좌찬성과 대제학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이 때 홍언필, 윤인경, 유관 등과 함께 윤원로를 탄핵하여 귀양 보냈다. 명종 즉위 후 좌의정이 되었으나, 을사사화 때 윤임의 일파로 몰려 귀양을 갔다가 귀양지에서 병사했다.
학문이 뛰어나 사림의 추앙을 받았으며, 선조 즉위 후 신원되었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존경을 모두 받은 정승 중 한 명으로,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2.1. 관직 생활
성세창은 1507년(중종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전경, 홍문관정자, 집의, 설경, 박사를 거쳐 홍문관부수찬, 검토관, 사간원정언, 사과, 헌납을 역임했다. 이후 사간원헌납, 홍문관교리, 이조정랑을 거쳐 의정부사인이 되었다. 집의와 사간을 거쳐 사헌부집의를 하고 사간원사간으로 있다가 직제학에 올랐다.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오른 후 참찬관을 거쳤다.
기묘사화로 파직되었다가 재기용되어 공조참의를 지냈다. 강원도관찰사로 민정을 다스렸고, 형조참판을 거쳐 주문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첨지중추부사, 성균관대사성, 전라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예조참판과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이후 대사헌, 형조참판을 역임했으나, 홍언필, 윤인경, 정광필 등과 함께 권신 김안로를 논척하다 벼슬에서 쫓겨났다. 김안로가 실각한 후 재기용되어 공조판서, 우참찬, 우찬성, 형조판서를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어 이조판서가 되었다. 동지성균관사, 세자빈객, 우참찬, 사헌부대사헌, 동지사를 역임하고 의정부좌참찬과 의정부우참찬을 번갈아 지냈다.
종부시제조, 우참찬,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하며 홍언필, 윤인경, 유관 등과 대윤 일파에 속했다. 지의금부사를 거쳐 다시 이조판서가 되고, 지중추부사에 이어 의정부우참찬으로 임명되었다. 우참찬과 형조판서를 겸직하다 의정부우참찬, 형조판서, 예조판서, 호조판서, 대제학을 연이어 맡았다. 다시 호조판서와 대제학을 겸직하다 빈객이 되고 우찬성으로 승진했다.
좌찬성과 대제학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이 때 홍언필, 윤인경, 유관 등과 함께 윤원로를 탄핵하여 귀양 보냈다. 명종 즉위 후 좌의정이 되었으나, 을사사화 때 윤임의 일파로 몰려 귀양을 갔다가 귀양지에서 병사했다.
학문이 뛰어나 사림의 추앙을 받았으며, 선조 즉위 후 신원되었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존경을 모두 받은 정승 중 한 명으로,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2.2. 정치적 입장과 활동
2.3. 사후 평가
성세창은 명종 때 좌의정을 지냈으며, 선조 즉위 후 신원되었다. 학문이 뛰어나 사림들의 추앙과 존경을 받았으며, 훈구파와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는 정승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김안로를 논척하다 벼슬에서 쫓겨났지만, 김안로가 실각한 후 재기용되어 우찬성,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명종 즉위 후 좌의정이 되었으나, 을사사화 때 윤임의 일파로 몰려 귀양을 갔다가 귀양지에서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