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맹경
1. 개요
송맹경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1513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그는 대마도의 동향을 파악하고 보고하는 등 국방에 기여했으며, 회령부사, 의주목사 등을 거치며 지방관으로 활동했다. 1565년 사망했으며, 1553년 실록의 사관에게 탐욕스러운 지방관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면앙 송순 등과 교류했으며, 국방과 민생 안정에 힘쓴 인물로 평가받는다.
-
1565년 사망 -
문정왕후 (조선)
문정왕후는 조선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로서, 정치적 숙청과 불교 중흥 정책을 펼치며 조선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인종의 죽음 관련 의혹이 있으며, 그녀의 능은 태릉이다. -
1565년 사망 -
정난정
정난정은 조선 명종 시대 윤원형의 첩이자 정실 부인으로, 문정왕후의 측근으로 권력을 얻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사림의 탄핵을 받아 윤원형과 함께 유배되어 자결했다. -
순직자 -
함병춘
함병춘은 법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서 연세대학교 법학과 교수, 박정희 정부의 외교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및 주미 한국 대사, 전두환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며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했으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순직했다. -
순직자 -
김재익 (1938년)
김재익은 일제강점기 경성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와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한 경제학자이자 관료로, 한국 경제의 시장 중심 개혁에 기여했으나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으로 사망했다. -
조선의 무신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무신 -
김응우
김응우는 김일성의 고조부로 평안도 대동 출신이며, 북한에서는 제너럴 셔먼호 격침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이 있고, 김일성 가문으로 이어진 전주 김씨이다.
2. 생애
송맹경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1513년(중종 8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17년 부친상으로 잠시 관직을 떠났다가 1519년 복귀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내직(內職)에 머물렀으나, 이후 외직(外職)으로 나가 여러 지역의 목사, 부사등 수령을 맡았다. 1540년(중종 35년)에는 병조에서 장수(將師)감으로 천거되었고, 대마도의 동태를 파악하고 보고하는 등 국방에 힘썼다. 1541년(중종 36년) 절충장군으로 승진, 제포 첨절제사에 임명되었다. 1544년(인종 1년) 가선대부에 올랐다.
1546년(명종 2년) 노모 봉양을 위해 사직을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547년(명종 2년) 어머니가 직접 상언을 올려 아들의 체직을 요청했으나 의주의 중요성 때문에 거절되었다. 1553년(명종 8년)에는 실록의 사관에게 탐욕스러운 지방관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565년(명종 20년) 사망하였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송맹경은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부안현감을 지낸 송관(宋觀)이고, 할아버지는 증 사복시정과 증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송윤은이다. 아버지는 정주목사를 지내고 증 병조참판에 추증된 송수(宋壽)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로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이극돈의 딸이다.
1513년(중종 8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바로 선전관이 되었고, 1517년 부친상을 당하여 관직을 사직했다. 1519년 3년상을 마치고 복귀하여 도총부 총관, 황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2.2. 관직 생활
1528년(중종 23년) 형조정랑, 순천군수를 거쳐 1533년(중종 28년) 숙천부사, 한성부서윤, 장흥부사를 역임했다. 1538년(중종 33년) 길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사간원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1540년(중종 35년) 병조에서 장수에 적임자로 천거되었으며, 대마도의 동태를 파악하고 보고하는 등 국방에 힘썼다. 1541년(중종 36년) 절충장군으로 승진, 제포 첨절제사에 임명되었다. 1542년(중종 37년) 경상좌도수군절도사, 1543년(중종 38년) 첨지중추부사를 거쳤다.
1544년(인종 1년) 가선대부로 승진, 회령부사를 역임했다. 1546년(명종 2년) 노모 봉양을 위해 방어사직에서 사직을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547년(명종 2년) 의주목사가 되었으나, 우의정 정순붕의 반대로 노모 봉양을 위한 체직 요청이 거절되었다. 1549년(명종 4년) 동지중추부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거쳐 병조참판이 되었다. 1551년(명종 6년)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지방관으로 부임했다. 1553년(명종 8년) 실록의 사관에게 탐욕스럽고 거짓된 지방관 중 한 명으로 비판받았다.
1560년(명종 15년) 행의흥위대호군이 되었다. 1561년(명종 16년) 회양부사로 부임했다. 1563년(명종 18년) 임기 만료로 체직되었다. 1564년(명종 19년) 동지중추부사, 첨지중추부사, 훈련원 도정, 겸 부총관, 내금위장, 겸 오위장 등을 역임했다. 1565년(명종 20년) 임소에서 사망하였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할아버지 | 송윤은 | |
| 아버지 | 송수 | 1470년 ~ 1517년 |
| 어머니 | 광주 이씨 | 의정부좌의정 이극돈의 딸 |
| 동생 | 송숙경(宋叔璟) | |
| 양조카 | 송희성(宋希聖) | |
| 동생 | 송말경(宋末璟) | |
| 동생 | 송범경(宋範璟) | |
| 동생 | 송승경(宋承璟) | |
| 부인 | 안동 권씨 | 집의 권세형의 딸 |
| 아들 | 송성(宋誠) | |
| 며느리 | 한산 이씨 | 관찰사 이언호의 딸 |
| 아들 | 송눌(宋訥) | 미혼으로 요절 |
| 부인 | 서산 류씨 | 봉사 류형원의 딸, 효령대군의 3남 보성군의 서외손녀 |
| 사위 | 우계 이씨 이용 | 부 참판 광식(光軾) |
| 사위 | 칠원 윤씨 윤탁연 | 1538년 5월 15일 ~ 1594년 5월 28일, 부 현감 윤이(尹伊) |
| 외손자 | 윤경원(尹慶元) | |
| 외손자 | 윤길원(尹吉元) | |
| 사위 | 이삼성(李三省) | 전주인, 부 부계(溥繼) |
| 외손자 | 이원서(李元瑞) | 가선 |
| 양자 | 송희민(宋希敏) | 1556년 6월 7일 ~ 1617년 8월 2일, 6촌 송호(宋湖)의 아들 |
| 양며느리 | 전주 이씨 | 1534년 9월 7일 ~ ?년 1월 27일, 참봉 이중의(李重義)의 딸 |
| 양손자 | 송일(宋逸) | ? ~ 1695년 12월 24일 |
| 양손부 | 합천 백씨 | 판관 백정홍(白廷弘)의 딸 |
| 양손녀사위 | 윤상은(尹相銀) | 파평 윤씨 |
| 양손녀사위 | 이일민(李逸民) | 전주 이씨 |
| 양손녀사위 | 신욱(申煜) | 평산 신씨 |
| 첩 | 이름 미상 | |
| 서자 | 송송(宋山+松) | |
| 외손녀사위 | 김희려(金希呂) | 자 계남(系男) |
| 서자 | 송의생(宋義生) | |
| 서손자 | 송상립(宋尙立) | 무과 부호군 |
| 서녀사위 | 허문(許雨+文) | 참봉, 양천인 |
| 외손자 | 허완(許日+宛) | 첨정 |
| 외손자 | 허도(許悼) | 봉사 |
| 외손자 | 허재(許日+栽) | 첨정 |
| 외손녀사위 | 오영남(吳英男) | 주부 |
| 사위 | 이무생(李茂生) | 전주인 |
| 외손자 | 이징필(李澄泌) | |
| 외손녀사위 | 유몽남(柳夢男) | |
| 외조부 | 이극돈 | 1435년 ∼ 1503년 2월 27일 |
| 장인 | 권세형 | |
| 장인 | 이언호 | 1477년 ~ 1519년 |
4. 평가
면앙 송순과 시문을 주고받았는데, 송순이 그에게 보낸 시 2수가 송순의 저서 면앙집에 실려 있다. 그밖에 소세양 등과도 교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