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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안우먼 천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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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쉬안우먼 천주당은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으로, 1605년 명나라 만력제 때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 의해 작은 예배당으로 시작되었다. 청나라 시대에 여러 차례 재건과 확장을 거쳐 1904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중국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역사적 장소로 자리 잡았다. 1979년 문화 대혁명 이후 중국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주요 행사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여러 언어로 미사가 진행되며, 베이징 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서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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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안우먼 천주당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천주교 무염시태 성당
원어 이름宣武门圣母无染原罪天主堂 (중국어 간체)
宣武門聖母無染原罪天主堂 (중국어 번체)
별칭남당 (南堂)
종교로마 가톨릭교회
소속 교구베이징 대교구
위치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쉬안우먼 첸먼시대가 141
좌표39.899034, 116.368902
상세 정보
기능성당
설립자미상
완공 연도1605년
웹사이트미상

2. 역사



명나라 만력제 치세 33년(16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예수회 소속 마테오 리치가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만력제는 그에게 현재 성당 부지에서 약간 서쪽에 있는 선무문 근처에 거처를 허락했다. 이 거처에는 중국식으로 지어진 작은 예배당이 딸려 있었는데, 교회를 구분하는 것은 입구 위에 십자가가 놓인 것뿐이었다. 당시에는 선무문 예배당(宣武门礼拜堂)으로 불렸다.

청나라 순치제 치세 7년(1650년) 독일인 예수회 소속 요한 아담 샬 폰 벨(중국명: 탕뤄왕(湯若望))의 지휘 아래 선무문 예배당 부지에 새로운 교회 건물 공사가 시작되었다. 2년 만에 공사가 완료되었고, 새 교회는 '하늘의 도를 존경하라'(钦宗天道)라는 글귀가 새겨진 의례용 문의 영예를 받았다. 순치제는 샬과 교회에 우호적이었으며, 최소 24번이나 방문하여 '황제의 명령으로 건립'(敕建)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돌 비석을 하사했다. 또한 "통미가경(通微佳境)"이라는 어제(御製)의 현판을 하사하여, 남당의 당시 정치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1690년, 베이징은 300년 만에 첫 번째 가톨릭 주교인 프란체스코회 소속 베르나르딘 델라 키에사를 맞이했고, 교회는 성당이 되었다. 1703년, 강희제 치세 24년에 성당이 확장 및 개축되었고, 10년 후, 베이징에서 잠지구 천주교당에 이어 두 번째 유럽 스타일의 건물이 완공되었다. 이 건물은 1720년 베이징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길이 86미터, 너비 45미터의 바로크 양식으로 된 새로운 십자형 구조가 건설되었다. 이 건물은 옹정제 치세 8년(1730년) 지진으로 다시 심하게 손상되었고, 옹정제는 수리를 위해 은 1,000을 기부했다. 수리된 성당은 더 크고 높은 창문을 갖추어 더 밝고 웅장한 내부를 갖게 되었다.

성당은 건륭제 치세 40년(1775년) 화재로 손상되었고, 건륭제는 복구 작업에 은 10,000냥을 기부했으며, '만유의 참된 근원'을 의미하는 '万有真原'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친필 편액을 하사했다.

1838년, 도광제 치세 14년에 가톨릭 교회의 권력과 영향력과의 끊임없는 갈등으로 인해 평화를 위해 청 정부는 중국에서 가톨릭 교회의 활동을 제한하는 법령을 내렸다. 이 법령에 따라 성당은 정부에 의해 몰수되었고, 제2차 아편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으며, 가톨릭 교회는 다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성당은 1860년 조셉 마샬 몰리 주교의 지휘 아래 다시 문을 열었다.

의화단 운동이 1900년에 발발했을 때, 베이징의 모든 교회는 파괴의 대상이 되었고, 1900년 6월 14일, 성당은 베이징의 다른 대부분의 교회와 함께 불태워졌다.

1904년, 현재 구조인 부지 내 네 번째 교회가 완공되었다. 새로운 건물에는 교황 비오 10세 (당시 재위 교황)의 문장과 함께 십자가와 문자 M이 상단에 배치되어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나타냈으며, 이는 모두 여전히 볼 수 있다.

1979년 12월 21일, 문화 대혁명 이후 중국 가톨릭 교회의 첫 번째 주요 행사로, 미카엘 푸 티에산 주교가 성당에서 서품되었다.

성당은 영어가 사용되는 미사가 거행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일 것이다.

2. 1. 명나라 시대

1605년,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명나라 만력제의 허가를 받아 선무문 근처에 작은 예배당을 건립했다. 이것이 선무문 천주당의 시초이며, 당시에는 선무문 예배당(宣武門禮拜堂)으로 불렸다. 초기 선무문 예배당은 중국 전통 건축 양식을 따랐으며, 십자가를 안치하여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나타내는 정도였다.

2. 2. 청나라 시대

청나라 순치제 7년(1650년), 독일인 예수회 선교사 요한 아담 샬 폰 벨(중국명: 탕뤄왕(湯若望))은 선무문 예배당 자리에 새로운 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2년 만에 완공된 성당은 "창문과 기구는 그 나라의 제도로 장식되었고, 내부에 정자와 연못, 누각과 대(臺)가 세워져 서양식이었으며, 그 솜씨는 매우 정교했다. 성당 앞에는 대리석 패루가 있었고, 황제가 하사한 '흠종천도(欽宗天道)'의 금색 글자 4개가 새겨져 있었다." 순치제는 샬과 성당에 우호적이었으며, 여러 차례 방문하고 '황제의 명령으로 건립'(敕建)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돌 비석을 하사했다. 또한 "통미가경(通微佳境)"이라는 어제(御製)의 현판을 하사하여, 남당의 당시 정치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1690년, 베이징에 첫 가톨릭 주교가 부임하면서 성당으로 승격되었다. 1703년(강희(康熙) 42년), 강희제 치세에 성당을 확장, 개축하여 잠지구 천주교당에 이어 베이징에서 두 번째 유럽식 건물이 되었다.

1720년(강희 59년)과 1730년 (옹정 8년), 두 차례 지진으로 성당이 파괴되었으나, 옹정제의 지원으로 재건되었다. 재건된 성당은 바로크 양식을 채택하여 십자형 구조를 갖추었으며, 길이 80m, 너비 45m 에 달했다. 옹정제는 수리를 위해 은 1,000을 기부했고, 수리된 성당은 더 크고 높은 창문을 갖추어 더 밝고 웅장한 내부를 갖게 되었다.

1775년 (건륭 40년), 건륭제 치세에 화재로 성당이 소실되었으나, 건륭제는 복구 작업에 은 1만 냥을 하사하고, '만유의 참된 근원'을 의미하는 '만유진원(萬有真原)'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친필 편액을 하사했다.

1838년 (도광 18년), 도광제 치세에 가톨릭 활동이 제한되면서 성당이 정부에 몰수되었다가, 제2차 아편 전쟁 이후 반환되어 1860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1900년 의화단 운동으로 성당이 불탔으나, 1904년 현재의 성당 건물이 완공되었다.

2. 3. 현대

1979년 12월 21일, 문화 대혁명 이후 중국 가톨릭 교회의 첫 번째 주요 행사로, 천주교 애국회 주교 푸톄산이 쉬안우먼 천주당에서 주교 서품을 받았다. 이를 통해 중국 본토에서 정부 공인 가톨릭 교회의 종교 활동이 재개되었고, 남당은 다시 천주교 베이징 교구의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현재 가톨릭 베이징 교구 행정 관리소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3. 건축

쉬안우먼 천주당의 주요 건축물은 벽돌 구조로, 남쪽을 향하고 있다. 정면은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세 개의 웅장하고 당당한 전조(磚雕) 장식과 아치형 문이 늘어서 있다. 정면은 호화롭고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건축물 뒷면은 벽돌을 맞춰 꼼꼼하게 마감하여 정교한 전조 장식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교회 건축의 실내 공간은 둥근 천장을 사용하여 설계되었으며, 양쪽에는 오색 장미 창이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장엄하고 차분하다. 1996년, 쉬안우먼 천주교당은 중국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에 이름을 올렸다.

4. 미사

쉬안우먼 천주당에서는 여러 언어로 미사가 거행된다.[2] 평일 미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6시에 라틴어로, 오전 6시 30분과 7시 15분에 중국어(만다린)로 진행된다.[2] 토요일에는 오후 6시 30분에 중국어로 "청소년 미사"가 진행된다.[2] 일요일에는 오전 6시에 라틴어로, 오전 7시, 8시 30분, 오후 4시, 오후 6시에 중국어로 미사가 있다.[2] 오전 10시 30분에는 영어로 미사가 있으며 프랑스어로 독서가 진행되고, 오후 12시 30분에는 이탈리아어로 미사가 있으며 스페인어로 독서가 진행된다.[2]

2019년 4월 현재 성당은 개축 공사 중이며, 영어 미사는 북당에서 오후 2시에 진행된다. 이탈리아어/스페인어 미사는 남당의 부속 건물에서 오전 10시에 진행된다. 중국어 미사는 오전 8시 30분에 진행된다.

5. 한국과의 관계

참조

[1] 웹사이트 China's Thriving Catholics: A Report From Beijing's South Cathedral http://www.ignatiusi[...] 2008-08-20
[2] 웹사이트 Catholic Mass Times in Beijing http://www.olcbeijin[...] 2017-02-21
[3] 웹사이트 China's Thriving Catholics: A Report From Beijing's South Cathedral http://www.ignatiusi[...] 20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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