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다 가이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시마다 가이리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외야수이다. 2017년 드래프트에서 한신 타이거스에 4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규슈가쿠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부 대학을 거쳐 프로에 진출했으며, 대학 시절에는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와 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한신 타이거스에서는 2018년에 1군 데뷔하여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를 바탕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웨스턴 리그에서 도루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2022년에는 1군 캠프에 참가했으며, 6월부터 주전으로 출전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구마모토현 출신 - 타지리 요시히로
1994년 IWA 재팬에서 데뷔한 일본 프로레슬러 타지리 요시히로는 ECW, WWE 등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챔피언십을 획득했고, 독특한 스타일과 독무 기술로 유명하며 현재는 규슈 프로레슬링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 구마모토현 출신 - 야마시타 야스히로
야마시타 야스히로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유도 무제한급 금메달리스트이자 203연승의 기록, 세계 선수권에서의 압도적 성적, 전일본 유도 선수권 9연패를 달성한 일본 유도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며, 은퇴 후에는 국제 유도계와 올림픽 운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한신 타이거스 선수 - 니시 준야
니시 준야는 한신 타이거스 소속 우완 오버스로 투수이며, 2019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여 2021년 프로 데뷔 첫 등판에서 승리했고, 2022년에는 투타에서 활약했다. - 한신 타이거스 선수 - 다케야스 다이치
다케야스 다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한신 타이거스와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활동했으며, 2017년 1군 데뷔 후 첫 승을 거두고 2019년에는 완봉승을 기록했으며, 2024년부터는 구마모토 골든 락스의 코치로 활동한다. - 일본 프로 야구 외야수 - 다케우치 신이치
다케우치 신이치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내야수와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2018년 은퇴 후에는 야쿠르트 구단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일본 프로 야구 외야수 - 오타니 쇼헤이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투수와 타자 모두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MVP를 수상하고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도류 야구 선수이다.
시마다 가이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원어명 | (시마다 가이리) |
로마자 표기 | Kairi Shimada |
출생일 | 1996년 2월 6일 |
출생지 | 구마모토현 우토시 |
신장 | 176cm |
체중 | 71kg |
포지션 | 외야수 |
투구 | 우투 |
타석 | 좌타 |
선수 경력 | |
고등학교 | 규슈가쿠인고등학교 |
대학교 | 조부대학 |
프로 입단 | 한신 타이거스 (2018 ~ 현재) |
프로 정보 | |
드래프트 연도 | 2017년 |
드래프트 순위 | 4순위 |
데뷔 리그 | NPB |
첫 출장 | 2018년 4월 1일 |
소속팀 | 한신 타이거스 |
등번호 | 53 |
연봉 | 3200만 엔 (2025년) |
획득 타이틀 | 해당사항 없음 |
통계 (2023 시즌) | |
타율 | 0.230 |
홈런 | 1 |
타점 | 34 |
외부 링크 | |
NPB 프로필 | NPB 프로필 |
한신 타이거스 프로필 | 한신 타이거스 프로필 |
2. 프로 입단 전
시마다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후쿠오카에서 살았지만 부모님이 이혼하여 아버지의 친가가 있는 우토로 이사했고, 우토 시립 우토히가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우토 이스터즈"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육상 단거리 선수였던 아버지가 주루 코치를 맡았다.[5] 우토 시립 츠루기 중학교 시절에는, 같은 학교의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6]
큐슈학원 고등학교에 진학 후, 외야수로서 1학년 가을부터 레귤러 자리를 잡았고, 2학년 봄에는 제84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그러나, 같은 해 춘하 연패를 달성한 오사카 토인 고등학교와의 2회전에서, 후에 프로에서 팀 동료가 되는 1년 선배 후지나미 신타로 앞에서 2타수 무안타("8번・우익수"로 삼진, 중비, 투희타)로 막혔고, 9회에는 대타를 내보내 팀도 패배했다.[7] 결국, 고시엔에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때뿐이었고, 후에 "격이 너무 달라서, 손도 발도 안 닿는 상황으로…。이 클래스의 공을 칠 수 있게 되지 않으면 프로에서는 활약할 수 없다는 생각이 싹텄다"라고 말했다.[8] 1학년 선배로 오오츠카 나오히토와 미조와키 하야토가 있었다.
조부대학에 진학 후, 2학년 봄부터 중견수로서 레귤러 자리를 확보. 칸코신 학생 야구 리그전에서는, 3학년 봄에 수위 타자와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재학 중에는, 리그전에서 통산 51경기에 출장, 타율 .329, 1홈런, 33타점이라는 성적을 남긴 외에도, 외야수로서 베스트 나인에 2번 선정되었다. 같은 학년에 이시이 마사키가 있다. 게다가, 3학년 여름과 4학년 여름에는, 대학 일본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장. 4학년 여름에 일본 대표로 출전한 유니버시아드에서는, "1번・좌익수"로서 총 7경기 중 6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타율 .391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대학 4학년 가을에 프로 지망 신고를 제출, 같은 해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4순위로 지명되었다.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800만 엔(금액은 추정)이라는 조건으로 입단했다.[9] 등번호는 '''53'''이다.[9] 참고로, 한신에서 외야수가 등번호 53을 착용하는 사례는 아카호시 노리히로의 현역 은퇴 이후 8년 만이다.[10] 시마다의 대학 동급생인 이시이도, 동시에 열린 육성 드래프트 회의에서 1순위 지명을 거쳐 육성 선수로 한신에 입단했다.[11]
2. 1. 유소년 시절
시마다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후쿠오카에서 살다가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의 친가가 있는 우토로 이사했다. 우토 시립 우토히가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우토 이스터즈'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육상 단거리 선수였던 아버지가 주루 코치를 맡았다.[5] 우토 시립 츠루기 중학교 시절에는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6]큐슈가쿠인 고등학교 진학 후 외야수로서 1학년 가을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다. 2학년 봄에는 제84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했으나, 오사카 토인 고등학교와의 2회전에서 1년 선배 후지나미 신타로에게 2타수 무안타로 막히고 팀도 패배했다.[7] 고시엔 출전은 이때가 유일했으며, 시마다는 "격이 너무 달라서, 손도 발도 안 닿는 상황으로…。이 클래스의 공을 칠 수 있게 되지 않으면 프로에서는 활약할 수 없다는 생각이 싹텄다"라고 회고했다.[8]
조부대학 진학 후, 2학년 봄부터 중견수로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칸코신 학생 야구 리그전에서는 3학년 봄에 수위 타자와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리그전 통산 51경기에 출장해 타율 .329, 1홈런, 33타점을 기록했고, 외야수로서 베스트 나인에 2번 선정되었다. 3학년 여름과 4학년 여름에는 대학 일본 대표로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4학년 여름 유니버시아드에서는 1번 좌익수로 출전, 타율 .391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대학 4학년 가을에 프로 지망 신고를 제출,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4순위로 지명되어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800만 엔(금액은 추정)의 조건으로 입단했다.[9] 등번호는 '''53'''번으로, 아카호시 노리히로의 은퇴 이후 8년 만에 한신 외야수가 53번을 달게 되었다.[10]
2. 2. 고등학교 시절
시마다는 큐슈학원 고등학교에 진학 후, 외야수로서 1학년 가을부터 레귤러 자리를 잡았고, 2학년 봄에는 제84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7] 그러나, 같은 해 춘하 연패를 달성한 오사카 토인 고등학교와의 2회전에서, 후에 프로에서 팀 동료가 되는 1년 선배 후지나미 신타로 앞에서 2타수 무안타로 막혔고, 9회에는 대타를 내보내 팀도 패배했다. 고시엔에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때뿐이었고, 후에 "격이 너무 달라서, 손도 발도 안 닿는 상황으로….이 클래스의 공을 칠 수 있게 되지 않으면 프로에서는 활약할 수 없다는 생각이 싹텄다"라고 회상했다.[8] 1학년 선배로 오오츠카 나오히토와 미조와키 하야토가 있었다.2. 3. 대학교 시절
조부 대학에 진학 후, 2학년 봄부터 중견수로서 레귤러 자리를 확보했다. 칸코신 학생 야구 리그전에서는, 3학년 봄에 수위 타자와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재학 중에는 리그전에서 통산 51경기에 출장, 타율 .329, 1홈런, 33타점이라는 성적을 남겼고, 외야수로서 베스트 나인에 2번 선정되었다. 같은 학년에 이시이 마사키가 있었다. 3학년 여름과 4학년 여름에는 대학 일본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장했다. 4학년 여름에 일본 대표로 출전한 유니버시아드에서는 "1번·좌익수"로서 총 7경기 중 6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타율 .391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대학 4학년인 2017년 가을에 프로 지망 신고를 제출, 같은 해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4순위로 지명되었다.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800만 엔(금액은 추정)이라는 조건으로 입단했다. 등번호는 '''53'''이다.[9] 한신에서 외야수가 등번호 53을 착용하는 사례는 아카호시 노리히로의 현역 은퇴 이후 8년 만이다.[10] 시마다의 대학 동급생인 이시이도, 동시에 열린 육성 드래프트 회의에서 1순위 지명을 거쳐 육성 선수로 한신에 입단했다.[11]
3. 프로 경력
2018년에는 동기 입단 신인 선수 중 바바 코스케, 쿠마가이 타카히로와 함께 오키나와현 기노자 촌에서 1군 춘계 캠프에 참가했다.[12] 타고난 준족에 더해 연습 경기에서 홈런을 쏘아 올리는 등 타격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며 단숨에 "주전 중견수 후보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았다. 같은 해 신인 선수 중 유일하게 캠프 기간 동안 1군에 동행했으며, 오픈전 초반에도 선발 출전을 이어갔다.[13] 이후 한때 2군으로 내려갔지만,[14] 대주자 요원으로 개막 1군에 합류했다.[15] 4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개막 경기 3차전(도쿄 돔)에서 9회 초 대주자로 1군 공식전에 첫 출장했다.[16] 하지만 그 이후 출전 기회가 없어 4월 8일자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2군 강등 후에는 웨스턴 리그 공식전에서 리그 2위인 26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8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팜 우승 결정 후 9월 23일에 1군으로 재승격했다.[17] 10월 1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8회 말 대타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공식전 타석에 들어섰고,[18] 다음날 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8번·중견수"로 프로 첫 선발 출전,[19] 3일 같은 경기에서 "2번·중견수"로 선발 출전하여 1회 초 첫 타석에서 우전 프로 첫 안타를, 연장 11회 초 6번째 타석에서 유격수 방면 내야 안타를 쳐서 프로 첫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20] 6일 DeNA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동점으로 맞이한 연장 11회 말 6번째 타석에서 1사 만루 상황에서 우전 적시타를 쳐서 첫 타점과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승리 인터뷰를 했다.[21]
그 후에도 1군 출전을 계속하여 최종적으로 12경기 출전하여 타율 .200, 0홈런, 1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50만 엔 증액된 연봉 85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금액은 추정). 오프에는 제2회 WBSC U-23 월드컵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22] 주로 "2번·중견수"로 9경기 모두 출전하여 타율 .344, 1홈런, 5도루, 12득점을 기록하는 등 팀을 이끌며 준우승에 기여했다.[23][24] 본인도 최다 득점상을 받았다.[25]
2019년에는 6월 6일에 1군에 첫 승격[26]했다. 1군에서 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0의 성적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1군 4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76을 기록했다.
2021년에는 1군에서 5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43을 기록했다. 또한, 웨스턴 리그에서는 규정 타석 미달임에도 21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27]
2022년에는 2년 만에 1군 춘계 캠프 멤버로 발탁되었다.[28] 오픈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개막 1군 합류에는 실패했다.[29][30] 그 후 복귀하여 4월 9일자 공시로 1군에 승격되었다.[31] 5월까지는 주로 대주자로 경기 후반에 기용되었지만, 6월 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1번·우익수"로 선발 기용된 이후 선발로 고정되었다.[32] 2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부터 "1번 나카노 타쿠무, 2번 시마다, 3번 치카모토 코지"의 타순이 정착되었다.[33] 다만, 좌투수에게 약했기 때문에,[34] 상대 좌완 에이스와 대결할 때에는 선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35] 8월 10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부터는 나카노, 치카모토 코지 두 선수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에 "1번·중견수"로 기용되었다.[36]
3. 1. 한신 타이거스 시절
2018년에는 동기 입단 신인 선수 중 바바 코스케, 쿠마가이 타카히로와 함께 오키나와현 기노자 촌에서 1군 춘계 캠프에 참가했다.[12] 타고난 준족에 더해 연습 경기에서 홈런을 쏘아 올리는 등 타격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며 단숨에 "주전 중견수 후보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았다. 같은 해 신인 선수 중 유일하게 캠프 기간 동안 1군에 동행했으며, 오픈전 초반에도 선발 출전을 이어갔다.[13] 이후 한때 2군으로 내려갔지만,[14] 대주자 요원으로 개막 1군에 합류했다.[15] 4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개막 경기 3차전(도쿄 돔)에서 9회 초 대주자로 1군 공식전에 첫 출장했다.[16] 하지만 그 이후 출전 기회가 없어 4월 8일자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2군 강등 후에는 웨스턴 리그 공식전에서 리그 2위인 26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8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팜 우승 결정 후 9월 23일에 1군으로 재승격했다.[17] 10월 1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8회 말 대타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공식전 타석에 들어섰고,[18] 다음날 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8번·중견수"로 프로 첫 선발 출전,[19] 3일 같은 경기에서 "2번·중견수"로 선발 출전하여 1회 초 첫 타석에서 우전 프로 첫 안타를, 연장 11회 초 6번째 타석에서 유격수 방면 내야 안타를 쳐서 프로 첫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20] 6일 DeNA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동점으로 맞이한 연장 11회 말 6번째 타석에서 1사 만루 상황에서 우전 적시타를 쳐서 첫 타점과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승리 인터뷰를 했다.[21]
그 후에도 1군 출전을 계속하여 최종적으로 12경기 출전하여 타율 .200, 0홈런, 1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50만 엔 증액된 연봉 85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금액은 추정). 오프에는 제2회 WBSC U-23 월드컵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22] 주로 "2번·중견수"로 9경기 모두 출전하여 타율 .344, 1홈런, 5도루, 12득점을 기록하는 등 팀을 이끌며 준우승에 기여했다.[23][24] 본인도 최다 득점상을 받았다.[25]
2019년에는 6월 6일에 1군에 첫 승격[26]했다. 1군에서 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0의 성적을 기록했다.
2020년에는 1군 4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76을 기록했다.
2021년에는 1군에서 5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43을 기록했다. 또한, 웨스턴 리그에서는 규정 타석 미달임에도 21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27]
2022년에는 2년 만에 1군 춘계 캠프 멤버로 발탁되었다.[28] 오픈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개막 1군 합류에는 실패했다.[29][30] 그 후 복귀하여 4월 9일자 공시로 1군에 승격되었다.[31] 5월까지는 주로 대주자로 경기 후반에 기용되었지만, 6월 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1번·우익수"로 선발 기용된 이후 선발로 고정되었다.[32] 2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부터 "1번 나카노 타쿠무, 2번 시마다, 3번 치카모토 코지"의 타순이 정착되었다.[33] 다만, 좌투수에게 약했기 때문에,[34] 상대 좌완 에이스와 대결할 때에는 선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35] 8월 10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부터는 나카노, 치카모토 코지 두 선수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에 "1번·중견수"로 기용되었다.[36]
3. 1. 1. 2018년
2018년에는 동기 입단 신인 선수 중 바바 코스케, 쿠마가이 타카히로와 함께 오키나와현 기노자 촌에서 1군 춘계 캠프에 참가했다.[12] 타고난 준족에 더해 연습 경기에서 홈런을 쏘아 올리는 등 타격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며 단숨에 "주전 중견수 후보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았다. 같은 해 신인 선수 중 유일하게 캠프 기간 동안 1군에 동행했으며, 오픈전 초반에도 선발 출전을 이어갔다.[13] 이후 한때 2군으로 내려갔지만,[14] 대주자 요원으로 개막 1군에 합류했다.[15] 4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개막 경기 3차전(도쿄 돔)에서 9회 초 대주자로 1군 공식전에 첫 출장했다.[16] 하지만 그 이후 출전 기회가 없어 4월 8일자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2군 강등 후에는 웨스턴 리그 공식전에서 리그 2위인 26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8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팜 우승 결정 후 9월 23일에 1군으로 재승격했다.[17] 10월 1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고시엔)에서 8회 말 대타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공식전 타석에 들어섰고,[18] 다음날 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8번·중견수"로 프로 첫 선발 출전,[19] 3일 같은 경기에서 "2번·중견수"로 선발 출전하여 1회 초 첫 타석에서 우전 프로 첫 안타를, 연장 11회 초 6번째 타석에서 유격수 방면 내야 안타를 쳐서 프로 첫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20] 6일 DeNA전(고시엔)에서는 동점으로 맞이한 연장 11회 말 6번째 타석에서 1사 만루 상황에서 우전 적시타를 쳐서 첫 타점과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승리 인터뷰를 했다.[21]
그 후에도 1군 출전을 계속하여 최종적으로 12경기 출전하여 타율 .200, 0홈런, 1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50만 엔 증액된 연봉 850만 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금액은 추정). 오프에는 제2회 WBSC U-23 월드컵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22] 주로 "2번·중견수"로 9경기 모두 출전하여 타율 .344, 1홈런, 5도루, 12득점을 기록하는 등 팀을 이끌며 준우승에 기여했다.[23][24] 본인도 최다 득점상을 받았다.[25]
3. 1. 2. 2019년
2019년에는 6월 6일에 1군에 첫 승격[26]했다. 1군에서 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0의 성적을 기록했다.3. 1. 3. 2020년
2020년에는 1군 4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76을 기록했다.3. 1. 4. 2021년
2021년에는 1군에서 5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43을 기록했다. 또한, 웨스턴 리그에서는 규정 타석 미달임에도 21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27].3. 1. 5. 2022년
2022년에는 2년 만에 1군 춘계 캠프 멤버로 발탁되었다[28]. 오픈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개막 1군 합류에는 실패했다[29][30]. 그 후 복귀하여 4월 9일자 공시로 1군에 승격되었다[31]. 5월까지는 주로 대주자로 경기 후반에 기용되었지만, 6월 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1번·우익수"로 선발 기용된 이후 선발로 고정되었다[32]. 2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부터 "1번 나카노 타쿠무, 2번 시마다, 3번 치카모토 코지"의 타순이 정착되었다[33]. 다만, 좌투수에게 약했기 때문에[34], 상대 좌완 에이스와 대결할 때에는 선발에서 제외되기도 했다[35]. 8월 10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부터는 나카노, 치카모토 코지 두 선수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에 "1번·중견수"로 기용되었다[36].3. 1. 6. 2023년
(2023년 시마다 가이리에 대한 내용은 현재 제공된 자료에 없으므로, 해당 섹션은 비어 있습니다.)4. 선수로서의 특징
시마다 가이리는 리드오프 맨이라고 불린다.[37] 50m 달리기는 5.75초, 홈에서 1루까지 도달 시간은 3.78초를 기록할 정도로 발이 빠르며, 110m를 던질 수 있는 강한 어깨를 가지고 있다.[38]
도루에 관해서는 대학 시절 "스타트를 끊으면 아웃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보였다.[39] 한신 OB 아카호시 노리히로는 "대학 2학년 무렵까지는 빠른 발을 도루에 활용하지 못했지만, 3, 4학년이 되면서 도루에 성공하는 선수가 되었다"고 평가했다.[39] 그러나 프로에 들어와서는 슬라이딩 면에서 기술 부족을 드러내, 베이스 부근에서 기세를 죽이지 않는 강한 슬라이딩을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40][41]
타격에서는 스윙이 날카롭고, 뛰어난 배트 컨트롤을 갖추고 있으며[42], 타구를 넓게 쳐낸다.[43] 배트를 투수에 맞춰서 사용하는 것도 의도하고 있다.[44]
5. 개인적인 면
시마다 가이리라는 이름에는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45] 어릴 적에는 호크스 팬이었으며, 아버지와 함께 경기 관람 때 마쓰나카 노부히코의 홈런을 직접 본 후 그를 응원했다.[46]
중학교 시절에는 육상 경기 대회에도 출전, 현 대회 남자 100m 달리기에서 11초 01로 우승했다.[47] 주니어 올림픽 남자 100m 부문에도 출전, 기류 요시히데와 같은 조 준결승에서 4위를 기록(11초 41)하여 11초 60(8위)을 기록한 기류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48] 2017년 9월 9일 기류가 일본인 최초로 남자 100m 9초대(9초 98)를 기록했을 때, 시마다는 "기류에게 이긴 남자"로 주목받았다.[49]
니시카와 하루키를 이상적인 선수로 꼽으며, "방망이를 확실히 휘두를 수 있고, 발도 빠르고, 도루도 할 수 있으며, 수비도 어디든 소화할 수 있는, 매력이 많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신 입단 후에는 구단 OB인 아카호시를 목표로 하는 선수로 언급했다.[50]
『천재 바카본』의 우나기이누와 분위기가 비슷하여 팀 내 애칭은 "우나기"이다.[51] 2022년 사토 테루아키가 시마다의 빠른 발이 득점에 기여했을 때 "고마워 우나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52], 장어의 날인 7월 23일에 구단에서 해당 문구를 활용한 상품 출시를 발표했다.[53][54]
2022년 11월 27일, 일반 여성과 결혼했음을 발표했다.[55]
6. 상세 정보
6. 1. 연도별 타격 성적
도
속
기
석
수
점
타
루
타
루
타
런
타
점
루
루
자
생
번
생
플
넷
4
구
진
살
타
율
루
율
타
율
P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