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나오유키
1. 개요
시미즈 나오유키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로서 지바 롯데 마린스,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서 활약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지바 롯데에서 93승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으로도 참가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 및 지도자로 활동하며, 뉴질랜드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 류큐 블루오션즈 감독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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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시미즈 나오유키 (清水 直行) |
|---|---|
| 출생일 | 1975년 11월 24일 () |
| 출생지 | 교토부 교토시 시모교구 |
| 신장 | 180cm |
| 체중 | 85kg |
| 포지션 | 투수 / 코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우타 |
| 고등학교 | 호토쿠 학원 고등학교 |
|---|---|
| 대학교 | 일본대학 |
| 실업팀 | 도시바 후추 / 도시바 |
| 프로 | 지바 롯데 마린스 (2000–2009)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10–2012) |
| 드래프트 | 1999년 드래프트 2위 (역지명) |
| 첫 출장 | 2000년 4월 1일 |
| 최종 출장 | 2011년 8월 20일 |
| 뉴질랜드 대표 | 2014–2017 |
|---|---|
| 지바 롯데 마린스 | 2018–2019 |
| 류큐 블루 오션스 | 2020–2021 |
| 대표팀 | 일본 |
|---|---|
| 올림픽 |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
| WBC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 승-패 | 105-100 |
|---|---|
| 평균 자책점 | 4.16 |
| 탈삼진 | 1,154 |
| 세이브 | 0 |
| 홀드 | 0 |
| 올림픽 | 2004 아테네 동메달 |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 샌디에이고 금메달 |
| 별명 | 703 |
|---|---|
| 유튜브 채널 | channel_name: 시미즈 나오유키 703 채널 channel_url: UCuCqtwU7e5z_I1R8H0DfXIw years_active: 2019년 10월 28일 - genre: 야구 subscribers: 8950명 views: 628,845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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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선수 명단 -
마쓰자카 다이스케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헤이세이의 괴물'이라 불리며 고시엔에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NPB와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하며 WBC MVP를 두 차례 수상했고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선수 명단 -
기무라 다쿠야 (야구인)
기무라 다쿠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으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나, 2009년 은퇴 후 코치로 활동하다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 -
1975년 출생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75년 출생 -
코코 리
코코 리는 홍콩 태생의 미국 가수로, 만도팝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아시아의 머라이어 캐리'로 불렸고, 1993년 데뷔 후 아시아에서 베스트셀러 앨범을 발매하고 영화 《와호장룡》 주제가를 불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연했으며, 《뮬란》 만다린어 더빙판에서 뮬란 역을 맡았고, 2016년 《나는 가수다》 시즌 4에서 우승했으나 2023년 우울증으로 사망 후 《싱! 차이나》 출연 당시 부당 대우 의혹이 제기되었다. -
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 -
사사키 로키
사사키 로키는 2001년 이와테현 출신의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고교 시절 최고 구속 163km/h를 기록하고, 2019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하여, 2022년 일본 프로야구 최연소 완봉승 기록을 세웠으며,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으로 우승에 기여했고, 202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도전을 승인받았다. -
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 -
이승엽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현 두산 베어스 감독인 이승엽은 KBO 리그 최초 50홈런 및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며 '국민 타자'로 활약했고, 일본 프로야구 선수 생활 후 KBO 리그로 복귀하여 은퇴, 이후 방송 해설 및 사회 활동을 거쳐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2. 프로 입단 전
니혼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 도시바 후추에 입단했다. 1998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 및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에 출전했지만 등판 기회는 없었다. 1999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 2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투구를 보였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도시바 후추 야구부는 활동을 중단했고, 시미즈는 마지막 패전 투수가 되었다.
1999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를 역지명하여 2순위로 입단했다. 등번호는 이라부 히데키가 떠난 후 3시즌 동안 비어 있던 18번을 받았다. 시미즈는 "그에 걸맞은 투수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호토쿠 가쿠엔에서는 3학년 여름 현 대회 4회전에서 패배했다. 니혼 대학에 진학하여 1학년 봄부터 리그전에 등판, 도토 대학 야구 리그 선발로 미국 원정도 경험했다. 2학년 가을에는 승강전 첫 경기에 등판했지만 팀은 패배했고, 3학년 봄부터 2부 리그로 떨어졌다. 오른쪽 어깨 부상까지 겹치면서 등판 기회는 적었다. 1부 리그 통산 4경기 0승 1패, 방어율 8.10을 기록했다.
2.1.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시즌 동안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한 후, 자유 계약으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 계약했다. 마린스에서의 통산 성적은 93승 85패, 통산 평균자책점 4.02, 완투 38경기, 완봉 9회를 기록했다.
시미즈는 지바 롯데에서 뛰는 동안 팀의 핵심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와 규정 투구 이닝을 달성하며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고, 2005년에는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일본 대표팀으로 선발되어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2.1.1. 2000년 ~ 2001년
2000년 4월 1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첫 등판을 기록했다. 5월 4일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 전에서는 첫 선발 등판과 동시에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시즌 전체적으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27경기에 등판하여 3승에 그쳤다.
2001년에는 선발 투수로서는 결과를 내지 못하고, 주로 중간 계투로 기용되었다. 31경기에 등판하여 6승을 기록했다.
2.1.2. 2002년
구로키 도모히로, 오노 신고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네이선 민치가 개막 초 부진에 빠지면서, 팀도 개막부터 11연패로 위기적인 상황 속에서, 선발 투수로 전향하여 프로 야구 최다 타이 기록인 개막 12연패를 막았다. 이후,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 팀 2위인 14승을 거두었고, 프로 입문 후 처음으로 규정 투구 이닝에 도달했다.
2.1.3. 2003년
처음으로 올스타 게임에 출전하여, 제2전 지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선발로 나섰지만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 해 15승(자기 최고)과 퍼시픽 리그 유일의 200이닝 등판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도 리그 3위인 3.13이었다.
2.1.4.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그리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승리 투수가 되었다.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개막전 (세이부 돔)에서 처음으로 개막 투수를 맡아 7이닝 1/3을 3실점으로 막으며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승리했다. 4월 30일에는 지바 마린에서 세이부를 상대로 4안타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그 해 일본 시리즈 우승팀인 세이부에게 정규 시즌, 플레이오프, 일본 시리즈를 통틀어 유일한 무득점 경기였다.
2.1.5. 2005년
개막전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 등판했지만 패전 투수가 되면서 라쿠텐 구단 창설 첫 경기에서의 승리를 헌납했다. 그 해의 평균자책점은 지바 롯데의 선발 로테이션 투수 중에 가장 나쁜 성적을 기록했는데 플레이오프와 일본 시리즈에서는 훌륭한 피칭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시즌에서는 팀이 4점 이상 타선의 지원을 받은 경기는 10승 0패,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한 4점 미만이었던 경기가 0승 11패라는 극단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리그 우승 시 맥주 뿌리기 행사에서 시미즈는 "지금까지 폐를 끼쳐서..."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있었다 (이후에는 "거짓 울음이에요!"라고 밝게 행동했다).
2.1.6.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1차 리그 중국전에서 세이브를 거두었으나, 2차 리그 미국전에서 데릭 리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했다.
시즌에서는 9월 2일 오릭스 전(교세라 돔 오사카) 3회에 카림 가르시아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 투구 이닝 1000회를 달성했다. 10월 1일 시즌 최종전인 라쿠텐 전에서 1실점 완투 승리하며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10승 8패)를 달성했다. 이는 두 자릿수 승리와 한 자릿수 패배를 동시에 기록한 첫 시즌이었다.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운 투수 중 톰 데이비 (오릭스)와 함께 리그 최소 피홈런 9개를 기록하며 안정감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으로 점차 에이스로서 인식이 굳어졌다.
오프에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TBS 라디오의 프로 야구 선수 오프 기간 퍼스널리티 프로그램 『익사이트 스타디움』 목요일을 담당했다.
2.1.7. 2007년
통산 3번째 개막전 투수를 맡았지만 4실점을 기록하면서 6회 도중에 강판되었다. 그 후에도 불안정한 투구가 계속되면서 1년간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지만 6승에 그쳤고, 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리는 멈추었다. 특히 그 해에 우승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전적에서 0승 4패로 상성이 좋지 않았다.
2.1.8. 2008년
스프링 캠프 직전인 1월 17일에 부인이 심부전으로 사망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지만, 개막 이후부터 거의 1년 동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는 등 13승을 올렸다. 8월 4일의 세이부전에서는 1이닝 0/3, 피안타 7개, 8실점으로 강판되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 사슴 같아. 나는 한심해"라는 명언을 남겼다. 9월 15일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9회초 동점인 상황에 2002년 6월 이후 구원 등판하면서 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해 그 후 팀이 끝내기 승리를 거두어 7년 만에 구원승을 따냈다.
시즌 종료 후, 같은 해 FA권을 취득한 시미즈에 대해 한신 타이거스가 획득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잔류하는 형태로 다음 해 계약 갱신을 하여 2년 총액 520에 합의했다. 1년 차 240, 2년 차 280의 연봉 변동성이었다.
2.1.9. 2009년
2009년, 개막 이후부터 부진하여 6승에 그쳤다. 11월 9일에는 나스노 다쿠미, 사이토 도시오와의 맞트레이드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에 이적했다. 2년째의 연봉 280은 요코하마가 지급하게 되었다. 등번호는 입단 이후부터 착용하고 있던 18번을 에이스인 미우라 다이스케가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시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트레이드로 이적한 가토 다케하루가 착용했던 17번을 달게 되었다. 10월 3일 보비 발렌타인 감독의 배려로 니혼햄 전에서 중간 계투로 1이닝만 던져 8년 연속 규정 투구 이닝에 도달했고, "이 기록은 계속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 경기에서 오노 신고도 중간 계투로 5이닝을 던져 규정 투구 이닝에 딱 도달했고, 발렌타인은 이 기용 방법에 대해 "큰 노력을 기울여 온 두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작은 보답"이라고 말했다.
2.2. 요코하마·DeNA 시절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10시즌(2000~2009년) 동안 통산 93승 85패, 평균자책점 4.02, 완투 38경기, 완봉 9회를 기록한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되어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계약했다.
2010년에는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10승을 기록했지만, 리그 최다 피홈런(26개)과 높은 평균 자책점(5.40)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2011년에는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10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2012년에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2.2.1. 2010년
6월 20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했고, 팀의 에이스인 미우라의 부진으로 요코하마 투수진의 중심으로 활약하여 시즌 10승을 기록, 2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부진으로 11패를 당하면서 평균 자책점도 5.40을 기록하는 등 작년보다 크게 나빠졌다. 게다가 리그 최다인 26개의 피홈런을 기록하며 암울한 시즌을 보내야만 했다.
2.2.2. 2011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선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4월에는 1경기에만 등판한 이후에 등록이 말소되는 등 전반기를 헛되게 보냈다. 7월에는 1군에 복귀했지만 8월 24일에 다시 오른쪽 무릎 부상이 재발하면서 등록이 말소돼 시즌 중에 복귀하지 못했고 결국 7경기에만 등판하면서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2001년 이후 10년 만에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2010년 마쓰나카 노부히코(소프트뱅크)에 이어 당시 프로 야구 사상 최대 감봉액수인 200이 감소된 50으로 갱신했다.
2.2.3. 2012년
고질적인 무릎 부상의 영향으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9월 18일에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아 팀을 떠났다. 시즌 종료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주무기는 최고 구속 150km를 넘는 스트레이트, 140km 미만으로 구부러지는 고속 슬라이더, 스플릿핑거드 패스트볼 등의 3종이다. 특히 스플릿은 지바 마린 스타디움의 구장 특유의 바닷바람에 의해 마구라고 할 수 있는 낙차를 보이기도 한다. 또 별로 던지지는 않지만 체인지업과 커브 등 갖고 있는 구종은 많다. 소위 본격파이지만 탈삼진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맞혀서 잡는 투구도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으로 정리된 투구 스타일이다.
스트레이트를 축으로 한 본격파 투수이다. 최고 속도 151km의 스트레이트의 뻗음과 예리함은 리그 굴지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고속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도 높은 수준이었다. 한편, 공이 높게 뜨는 경향이 있어 장타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8년에는 슈트의 비율을 늘린 것으로 부활을 이루었다.
5. 상세 정보
호토쿠가쿠엔 고등학교와 니혼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팀 도시바 후추와 도시바를 거쳐 1999년 드래프트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에 2순위로 입단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10시즌 동안 통산 93승 85패, 평균자책점 4.02를 기록했다. 2002년 팀의 개막 12연패를 끊는 승리를 거두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14승을 기록하며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2003년에는 15승을 올리고 퍼시픽 리그에서 유일하게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리그 평균자책점 3위를 기록했다.
2004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 개막 투수로 등판하여 승리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일본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1차 리그 중국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 해 1000 투구 이닝을 달성했고, 최종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2008년 13승을 거두며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고, 시즌 후 한신 타이거스 이적설이 있었으나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잔류하며 2년 총액 520에 계약했다.
2010년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 이적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지바 롯데 마린스의 1군 투수 코치를, 2016년에는 2군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
2016년 7월 29일부터 8월 7일까지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개최된 제3회 WBSC U-15 야구 월드컵에서 뉴질랜드 대표팀의 코치를 맡았다. 같은 해 10월에 지바 롯데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 2월에는 제4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예선 4조에 뉴질랜드 대표팀의 투수 코치 겸 선수로 참가했다.
5.1. 출신 학교
* 호토쿠가쿠엔 고등학교
* 니혼 대학
호토쿠 가쿠엔 3학년 여름 현 대회 4회전에서 패배했다. 니혼 대학에 진학, 1학년 봄부터 리그전에 등판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 선발로 미국 원정도 경험했다. 2학년 가을에는 승강전 첫 경기에 등판했지만 팀은 패배, 3학년 봄부터 2부 리그로 소속되었고 오른쪽 어깨 부상까지 겹쳐 등판 기회는 적었다. 1부 리그 통산 4경기 0승 1패, 방어율 8.10.
5.2. 선수 경력
시미즈 나오유키는 호토쿠 가쿠엔 고등학교와 니혼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 야구팀 도시바 후추와 도시바에서 활동했다. 1999년 드래프트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에 2순위로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10시즌 동안 활약하며 통산 93승 85패, 평균자책점 4.02, 38번의 완투와 9번의 완봉승을 기록했다. 2002년에는 팀의 개막 12연패를 끊는 중요한 승리를 거두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14승을 기록하며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2003년에는 개인 최고 성적인 15승을 올렸고, 퍼시픽 리그에서 유일하게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리그 평균자책점 3위를 기록했다.
2004년에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 개막 투수로 등판하여 승리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5년에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개막전에서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리그 우승 후 맥주 축하 행사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06년에는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일본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1차 리그 중국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중에는 1000 투구 이닝을 달성했고, 최종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2008년에는 13승을 거두며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고, 시즌 후 한신 타이거스 이적설이 있었으나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잔류하며 2년 총액 520에 계약했다. 2009년에는 부진으로 6승에 그쳤지만, 감독의 배려로 8년 연속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2010년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주요 기록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 첫 등판: 2000년 4월 1일, 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전
* 첫 승리: 2000년 5월 4일, 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스 전
* 첫 완봉승: 2002년 5월 13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전
* 1000 투구 이닝: 2006년 9월 2일, 대 오릭스 버팔로스 전
* 1000 탈삼진: 2009년 7월 21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전
*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2002년 - 2006년
* 개막전 선발 투수: 4회 (2004년, 2005년, 2007년, 2009년)
* 올스타전 출장: 3회 (2003년, 2005년, 2008년)
국제 대회 기록:
5.3. 지도자 경력
시미즈 나오유키는 2014년 10월 1일에 지바 롯데 마린스의 1군 투수 코치로 취임하여 2015년 시즌까지 역임했다. 2016년에는 지바 롯데 마린스의 2군 투수 코치를 맡았다.
2016년 7월 29일부터 8월 7일까지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개최된 제3회 WBSC U-15 야구 월드컵에서 뉴질랜드 대표팀의 코치를 맡았다. 같은 해 10월에 지바 롯데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2017년 2월에는 제4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예선 4조에 뉴질랜드 대표팀의 투수 코치 겸 선수로 참가했다.
5.4. 국가 대표 경력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팀에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일본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