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다이스케
1. 개요
미우라 다이스케는 1992년부터 2016년까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서 선수로 활동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부터는 플레잉 코치를 겸임했고, 2019년에는 1군 투수 코치, 2020년에는 2군 감독을 거쳐 2021년부터 1군 감독을 맡았다. 감독으로서 2024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선수 시절에는 최우수 평균 자책점, 최다 탈삼진, 최고 승률을 기록했으며, 통산 24시즌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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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미우라 다이스케 (三浦 大輔) |
|---|---|
| 출생일 | 1973년 12월 25일 |
| 출생지 | 나라현 가시하라시 |
| 포지션 | 투수 / 감독 / 코치 |
| 투타 | 우투우타 |
| 등번호 | 81 |
| 프로 입단 연도 | 1991년 |
|---|---|
| 드래프트 순위 | 6순위 |
| 첫 출장 | 1992년 10월 7일 |
| 최종 출장 | 2016년 9월 29일 (은퇴 경기) |
| 소속 팀 |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1992–2016) |
| 국가대표 | 일본 |
| 올림픽 | 2004년 |
| 소속 팀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
|---|---|
| 기간 | 2014–2016, 2019–현재 |
| 리그 | NPB |
|---|---|
| 승패 기록 | 172–184 |
| 평균 자책점 | 3.60 |
| 탈삼진 | 2481 |
| 수상 내역 | 마쓰타로 쇼리키 상 (2024년) |
|---|
-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선수 명단 -
마쓰자카 다이스케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헤이세이의 괴물'이라 불리며 고시엔에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NPB와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하며 WBC MVP를 두 차례 수상했고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
200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선수 명단 -
기무라 다쿠야 (야구인)
기무라 다쿠야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으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나, 2009년 은퇴 후 코치로 활동하다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 -
나라현 출신 야구 선수 -
마이클 나카무라
마이클 나카무라는 호주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메이저 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으며, 2006년 퍼시픽 리그 최다 세이브 투수를 기록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후 호주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동했다. -
나라현 출신 야구 선수 -
에나쓰 유타카
에나쓰 유타카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한 좌완 투수로, 한신 타이거스, 난카이 호크스 등 여러 팀에서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활약하며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 은퇴 후에는 다양한 활동을 했으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기도 했다. -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선수 -
송재박
송재박은 일본과 한국 프로 야구에서 선수와 코치로 활동하며, 일본에서는 세이부 라이온스와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스에서, 한국에서는 OB 베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 두산 베어스 코치로 활동하며 우수 코치상을 수상했다. -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선수 -
사이토 아키오
사이토 아키오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서 1977년부터 1993년까지 활약하며, 오른손 투수 최초로 100승 100세이브를 달성하고 신인왕을 수상한 후 은퇴, 야구 해설가와 투수 코치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1992년~2016년)
; 프로 입단 전
미우라 다이스케는 나라현 가시하라시 출신으로, 가시하라 시립 마스게키타 초등학교 시절 "마키타 리틀즈"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오사카시 다마쓰쿠리에서 자랐으며, 당시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우라를 오카다 아키노부가 높이 평가했다. 가시하라 시립 가시하라 중학교 시절에는 "키타와 시니어"에 소속되어 3루수 겸 투수로 활동했지만, 중학교 시절까지는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카다 상업고등학교에 진학 후 투수로 전향하여 빠른 공을 던지게 되었다. 고교 시절 훈련에 싫증을 느껴 한 달 정도 꾀병을 부린 적도 있었지만, 감독과 팀 동료들의 도움으로 복귀했다. 1991년 현 대회에서 에이스이자 4번 타자를 맡았지만, 봄・여름 모두 결승에서 텐리 고등학교에 패하며 고시엔 출전에는 실패했다.
1991년 11월 22일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로부터 6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등번호는 46번을 배정받았다.
;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1992년~2016년)
1991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에 지명되었다. 1992년 10월 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며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는 엔도 카즈히코의 은퇴 경기였으며,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로서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 미우라는 시노즈카 카즈노리를 삼진으로 잡는 등 6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잡아냈다.
1993년 9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기타큐슈 시민구장)에서 프로 첫 승리와 첫 완투승을 기록했다. 1994년 4월 22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당시 투수 코치였던 코타니 마사카츠로부터 "자신을 알라. 너는 어떤 투수인가. 힘을 줘도 150킬로는 안 나올 거잖아"라는 조언을 듣고 자신의 투구를 할 수 있게 되어 프로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 조언은 미우라의 프로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1995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9연승을 기록하는 등 10승 3패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다. 7월 29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나고야 돔)에서는 5회까지 무안타로 막았으나, 8회에 대타로 교체되며 무안타인 채로 강판되었다.
1998년에는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하고, 12승을 거두며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 3차전에서는 부진하며 초반에 강판되어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02년 오프 시즌에 오른쪽 팔꿈치 뼈 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 장기 계약을 맺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5년에는 12승을 거두며 최우수 평균자책점(2.52)과 최다 탈삼진(177개)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A클래스 진입에 기여했다. 2006년에는 야구 규칙 위원회의 2단 모션 부정 투구 판정으로 인해 폼 개조를 해야 했지만, 8승 12패, 9완투, 3완봉, 3무사사구 완투를 기록하며 자기 최다 이닝(216 2/3)을 소화했다. 5월 9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2007년 6월 20일부터 7월 27일까지 35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구단 기록을 경신했다.
2008년 시즌 오프에 FA 권리를 행사했다. 한신 타이거스가 영입에 나섰지만,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에는 리그 최다 실점과 피홈런을 기록했지만, 11승을 거두며 6완투를 기록했다.
2011년 7월 10일 주니치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승리 투수가 되면서 19년 연속 승리 구단 기록을 경신했다. 2012년 4월 1일 한신과의 경기(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승리 투수가 되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서의 구단 첫 승리를 거두었다. 7월 4일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005년 8월 23일 이래 2507일 만의 자이언츠전 승리와 동시에 통산 150승을 달성했다. 그해 9승, 리그 최다 6완투를 기록했다. 2013년 6월 12일 롯데와의 경기(QVC 마린)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구단 최고령 완봉 기록(39세 3개월)을 경신했다.
2014년부터 1군 투수 코치를 겸임했다. 7월 13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1군 공식전 22년 연속 승리(NPB 역대 3위 타이)를 달성했고, 8월에는 월간 MVP로 선정되었다. 2015년 5월 5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1군 시즌 첫 등판을 기록하며 1군 공식전 23년 연속 승리(NPB 최장 타이 기록, 우완 투수 신기록)를 수립했다. 5월 20일 같은 경기에서 1군 시즌 첫 안타를 치며 1군 공식전 23년 연속 안타(NPB 투수 신기록)를 달성했다. 2016년 7월 11일 주니치와의 경기(요코하마)에서 1군 공식전 24년 연속 안타(야수 포함 NPB 역대 4위 타이 기록)를 달성했고, 이 기록은 기네스 세계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2016년 9월 20일,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 이유는 "자신은 이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9월 29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 은퇴 경기를 가졌다. 6⅓이닝 12피안타 10실점(8탈삼진)을 기록했고, 경기 후 은퇴식을 가졌다. 미우라의 등번호 18번은 "요코하마 넘버"로 준영구 결번이 되었다. 미우라의 은퇴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에 소속되었던 모든 선수가 은퇴하게 되었다.
; 국가 대표 경력
미우라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투수로 활약하며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1. 프로 입단 전
미우라 다이스케는 나라현 가시하라시 출신으로, 가시하라 시립 마스게키타 초등학교 시절 "마키타 리틀즈"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오사카시 다마쓰쿠리에서 자랐으며, 당시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우라를 오카다 아키노부가 높이 평가했다. 가시하라 시립 가시하라 중학교 시절에는 "키타와 시니어"에 소속되어 3루수 겸 투수로 활동했지만, 중학교 시절까지는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카다 상업고등학교에 진학 후 투수로 전향하여 빠른 공을 던지게 되었다. 고교 시절 훈련에 싫증을 느껴 한 달 정도 꾀병을 부린 적도 있었지만, 감독과 팀 동료들의 도움으로 복귀했다. 1991년 현 대회에서 에이스이자 4번 타자를 맡았지만, 봄・여름 모두 결승에서 텐리 고등학교에 패하며 고시엔 출전에는 실패했다.
1991년 11월 22일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로부터 6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등번호는 46번을 배정받았다.
2.2.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1992년~2016년)
1991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6순위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에 지명되었다. 1992년 10월 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며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는 엔도 카즈히코의 은퇴 경기였으며,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로서의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 미우라는 시노즈카 카즈노리를 삼진으로 잡는 등 6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잡아냈다.
1993년 9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기타큐슈 시민구장)에서 프로 첫 승리와 첫 완투승을 기록했다. 1994년 4월 22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당시 투수 코치였던 코타니 마사카츠로부터 "자신을 알라. 너는 어떤 투수인가. 힘을 줘도 150킬로는 안 나올 거잖아"라는 조언을 듣고 자신의 투구를 할 수 있게 되어 프로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이 조언은 미우라의 프로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1995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9연승을 기록하는 등 10승 3패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다. 7월 29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경기(나고야 돔)에서는 5회까지 무안타로 막았으나, 8회에 대타로 교체되며 무안타인 채로 강판되었다.
1998년에는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하고, 12승을 거두며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 3차전에서는 부진하며 초반에 강판되어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02년 오프 시즌에 오른쪽 팔꿈치 뼈 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 장기 계약을 맺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5년에는 12승을 거두며 최우수 평균자책점(2.52)과 최다 탈삼진(177개) 타이틀을 획득하며 팀의 A클래스 진입에 기여했다. 2006년에는 야구 규칙 위원회의 2단 모션 부정 투구 판정으로 인해 폼 개조를 해야 했지만, 8승 12패, 9완투, 3완봉, 3무사사구 완투를 기록하며 자기 최다 이닝(216 2/3)을 소화했다. 5월 9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2007년 6월 20일부터 7월 27일까지 35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구단 기록을 경신했다.
2008년 시즌 오프에 FA 권리를 행사했다. 한신 타이거스가 영입에 나섰지만,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에는 리그 최다 실점과 피홈런을 기록했지만, 11승을 거두며 6완투를 기록했다.
2011년 7월 10일 주니치와의 경기(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승리 투수가 되면서 19년 연속 승리 구단 기록을 경신했다. 2012년 4월 1일 한신과의 경기(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승리 투수가 되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서의 구단 첫 승리를 거두었다. 7월 4일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005년 8월 23일 이래 2507일 만의 자이언츠전 승리와 동시에 통산 150승을 달성했다. 그해 9승, 리그 최다 6완투를 기록했다. 2013년 6월 12일 롯데와의 경기(QVC 마린)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구단 최고령 완봉 기록(39세 3개월)을 경신했다.
2014년부터 1군 투수 코치를 겸임했다. 7월 13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1군 공식전 22년 연속 승리(NPB 역대 3위 타이)를 달성했고, 8월에는 월간 MVP로 선정되었다. 2015년 5월 5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1군 시즌 첫 등판을 기록하며 1군 공식전 23년 연속 승리(NPB 최장 타이 기록, 우완 투수 신기록)를 수립했다. 5월 20일 같은 경기에서 1군 시즌 첫 안타를 치며 1군 공식전 23년 연속 안타(NPB 투수 신기록)를 달성했다. 2016년 7월 11일 주니치와의 경기(요코하마)에서 1군 공식전 24년 연속 안타(야수 포함 NPB 역대 4위 타이 기록)를 달성했고, 이 기록은 기네스 세계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2016년 9월 20일,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 이유는 "자신은 이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9월 29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 은퇴 경기를 가졌다. 6⅓이닝 12피안타 10실점(8탈삼진)을 기록했고, 경기 후 은퇴식을 가졌다. 미우라의 등번호 18번은 "요코하마 넘버"로 준영구 결번이 되었다. 미우라의 은퇴로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에 소속되었던 모든 선수가 은퇴하게 되었다.
2.3. 국가대표 경력
미우라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투수로 활약하며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3. 지도자 경력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동했다. 2019년에는 1군 투수 코치로 복귀했다. 2020년에는 2군 감독으로 취임했다.
2020년 11월 17일,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의 후임으로 2021년 시즌부터 1군 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2021년 시즌에는 개막부터 6연패(2무승부 포함)를 당하며 신인 감독 최악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4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감독으로서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4월 22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는 구단 신인 감독으로서 야마시타 다이스케 이래 18년 만에 10연패를 기록했다. 결국 4월을 6승 21패 4무로 마감했다. 5월 이후 강력한 타선을 중심으로 분발했지만, 후반에 들어서면서 승리 패턴이 무너지며 10월 12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가능성이 사라졌다. 10월 26일, 6년 만에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2022년 시즌에는 코타니 마사카츠를 코칭 어드바이저, 사이토 타카시를 치프 투수 코치, 스즈키 나오노리를 타격 코치, 이시이 타쿠로를 야수 종합 코치로 영입했다. 아이카와 료지가 배터리 코치로 취임했다. 개막 초반에는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코로나19 감염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구원 투수진의 안정과 이세 히로무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점차 빚을 줄여나갔다. 야마자키 야스아키가 마무리 투수로 복귀하며 승리 패턴을 재건했다. 8월 5일에는 빚을 모두 갚았고, 8월 6일에는 감독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8월 10일에는 요코하마 스타디움 10연승을 기록하며 2위로 부상했고, 8월 21일까지 요코하마 스타디움 17연승을 기록하며 프로 야구 사상 3번째 홈 연승 기록을 세웠다. 8월 한 달간 18승 6패를 기록하며 구단 월간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시즌 최종 2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한신 타이거스에게 패퇴했다.
시즌에는 3위를 기록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꺾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승리하며 일본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4승 2패로 승리하며 구단 역사상 3번째이자 26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는 구단 출신 감독으로는 최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이며, 선수와 감독 모두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20번째 사례이자 투수 출신으로는 6번째 기록이다.
취임 기자 회견에서 공격 전술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강조했고, 선발 투수 기용법에 대해서도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1년 시즌 후에는 "너무 몰입해서 시야가 좁아졌다"며 반성했다. 이후 "새의 눈, 벌레의 눈, 물고기의 눈"이라는 외부 강사의 조언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작전을 구상하게 되었다. 투수 출신 감독이지만 공격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며, 도루, 희생타, 주루 플레이 등을 강조했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는 상대 투수와의 상성을 중시하며, 독자적인 타순 기용을 선보이기도 한다. 팀 분위기를 중요시하며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고,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 2024년도 시즌 종료 시점
* 순위의 굵은 글씨는 일본 시리즈 우승
3.1.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동했다. 2019년에는 1군 투수 코치로 복귀했으며, 등번호는 준 영구 결번인 ' 18 '을 계속 사용했다. 2020년에는 2군 감독으로 취임했다.
2020년 11월 17일,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의 후임으로 2021년 시즌부터 1군 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등번호는 현역 시절부터 달아온 "18"에서 "81"로 변경했다。
2021년 시즌에는 개막부터 6연패(2무승부 포함)를 당하며 신인 감독 최악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4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감독으로서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4월 22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는 구단 신인 감독으로서 야마시타 다이스케 이래 18년 만에 10연패를 기록했다. 결국 4월을 6승 21패 4무로 마감했다. 5월 이후 강력한 타선을 중심으로 분발했지만, 후반에 들어서면서 승리 패턴이 무너지며 10월 12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가능성이 사라졌다. 10월 26일, 6년 만에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2022년 시즌에는 코타니 마사카츠를 코칭 어드바이저, 사이토 타카시를 치프 투수 코치, 스즈키 나오노리를 타격 코치, 이시이 타쿠로를 야수 종합 코치로 영입했다. 아이카와 료지가 배터리 코치로 취임했다. 개막 초반에는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코로나19 감염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구원 투수진의 안정과 이세 히로무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점차 빚을 줄여나갔다. 야마자키 야스아키가 마무리 투수로 복귀하며 승리 패턴을 재건했다. 8월 5일에는 빚을 모두 갚았고, 8월 6일에는 감독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8월 10일에는 요코하마 스타디움 10연승을 기록하며 2위로 부상했고, 8월 21일까지 요코하마 스타디움 17연승을 기록하며 프로 야구 사상 3번째 홈 연승 기록을 세웠다. 8월 한 달간 18승 6패를 기록하며 구단 월간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시즌 최종 2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한신 타이거스에게 패퇴했다.
시즌에는 3위를 기록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꺾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승리하며 일본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4승 2패로 승리하며 구단 역사상 3번째이자 26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는 구단 출신 감독으로는 최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이며, 선수와 감독 모두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20번째 사례이자 투수 출신으로는 6번째 기록이다.
취임 기자 회견에서 공격 전술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강조했고, 선발 투수 기용법에 대해서도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1년 시즌 후에는 "너무 몰입해서 시야가 좁아졌다"며 반성했다. 이후 "새의 눈, 벌레의 눈, 물고기의 눈"이라는 외부 강사의 조언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작전을 구상하게 되었다. 투수 출신 감독이지만 공격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며, 도루, 희생타, 주루 플레이 등을 강조했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는 상대 투수와의 상성을 중시하며, 독자적인 타순 기용을 선보이기도 한다. 팀 분위기를 중요시하며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고,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 2024년도 시즌 종료 시점
* 순위의 굵은 글씨는 일본 시리즈 우승
4. 상세 정보
4.1. 수상·타이틀 경력
미우라 다이스케는 선수 시절 최우수 평균 자책점(2005년), 최다 탈삼진(2005년), 최고 승률(1997년)을 기록했다. 월간 MVP는 투수 부문에서 4회(2000년 8월, 2005년 8월, 2007년 7월, 2014년 8월) 수상했다. 우수 JCB·MEP상(2005년), 골든 스피릿상(2007년), 스피드업상(2009년, 2014년), ‘조지아혼’상(2014년도 제8회)을 수상했다.
올스타전에서는 우수 선수상을 2회(2002년 1차전, 2006년 1차전), 베스트 피처상 1회(2009년 1차전), SANYO상 1회(2006년 1차전)를 수상했다. 센트럴 리그 연맹 특별 수상(공로상: 2016년), 쇼리키 마쓰타로상(2024년)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베스트 프라우드 파더상 in ‘프로 야구 부문’(2013년), 애슬리트 베스트 드레서 어워드(2014년), 가나가와 이미지업 대상(2016년), 요코하마 문화상(2017년)을 수상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4.2. 개인 기록
미우라 다이스케의 프로 야구 첫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첫 등판: 1992년 10월 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26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7회초 3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 2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상동, 8회초에 시노즈카 가즈노리로부터
* 첫 선발: 1993년 8월 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17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5이닝 2실점
* 첫 승리·첫 완투 승리: 1993년 9월 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21차전(기타큐슈 시민 구장), 9이닝 1실점
* 첫 완봉 승리: 1994년 4월 22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 첫 홈런: 1999년 10월 2일, 주니치 드래건스 26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가와카미 겐신으로부터 (생애 유일한 홈런)
주요 기록 달성 경력은 다음과 같다.
* 통산 1000투구 이닝: 2000년 9월 1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24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1회초 2아웃에 히가시데 아키히로를 우익 뜬공으로 달성 (역대 284번째)
* 통산 1000탈삼진: 2002년 6월 6일, 야쿠르트 스왈로스 8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2회초에 사카모토 야타로로부터 (역대 109번째)
* 통산 1500투구 이닝: 2004년 6월 19일, 주니치 드래건스 13차전(나고야 돔), 2회말 1아웃에 알렉스 오초아를 삼진으로 잡아 달성 (역대 152번째)
* 통산 100승: 2006년 5월 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선발로 8이닝 2실점 (역대 119번째)
* 통산 1500탈삼진: 2006년 6월 18일, 세이부 라이온스 6차전(인보이스 세이부 돔), 6회말에 와다 가즈히로로부터 (역대 47번째)
* 통산 2000투구 이닝: 2007년 3월 3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6회초 1아웃에 고사카 마코토를 투수 앞 땅볼로 달성 (역대 36번째)
* 통산 2500투구 이닝: 2009년 9월 21일, 한신 타이거스 22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2회초 2아웃에 안도 유야를 포수 파울 플라이로 달성 (역대 44번째)
* 통산 2000탈삼진: 2009년 10월 3일, 주니치 드래건스 24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4회초에 도노우에 다케히로로부터 (역대 19번째)
* 통산 150패: 2012년 6월 17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4차전(후쿠오카 돔), 8이닝 1실점 완투패 (역대 27번째)
* 통산 150승: 2012년 7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7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 7이닝 3실점 (역대 47번째)
* 통산 3000투구 이닝: 2013년 7월 24일, 주니치 드래건스 13차전(나고야 돔), 5회말 2아웃에 다니시게 모토노부를 1루수 파울 플라이로 달성 (역대 27번째)
* 통산 500경기 등판: 2013년 10월 5일 주니치 드래건스 24차전(나고야 돔)에서 선발 등판, 9이닝 3실점으로 승패 없음(무자책점) (역대 91번째)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연속 시즌 승리: 23년 (1993년 - 2015년) (NPB 타이 기록)
* 연속 시즌 안타: 24년 (1993년 - 2016년) (NPB 역대 4위)
* 연속 시즌 폭투: 16년 (1997년 - 2015년) (NPB 타이 기록)
* 연속 시즌 두 자릿수 선발: 21년 (1995년 - 2015년) (NPB 역대 1위)
* 개막 3연승: 2015년 (NPB 최고령 기록)
*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데뷔부터 은퇴까지 25년 동안 동일 구단에 재적
* 올스타전 출장: 6회
미우라는 현역 시절 개막전에 7번 등판했지만 모두 패전 투수가 되었고, 이는 일본 프로 야구 최다 기록이다. 반면 개막 2, 3번째 경기에서는 6전 전승을 기록했다. 감독 취임 후 3년 연속 개막전 패배를 포함하여 개막전 10연패를 기록했으나, 2024년 개막전에서 승리하며 현역 시절을 포함한 첫 개막전 승리를 기록했다.
개막전 등판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경기 일정 | 대전팀 | 구장 | 상대 투수 | 경기 결과 | 등판 성적 | 비고 |
|---|---|---|---|---|---|---|
| 1999년 4월 2일 | 야쿠르트 | 요코하마 스타디움 | 이시이 가즈히사 | 야 10-5 요코 | 6.1이닝 4자책 | 7회 강판, 그 해 6연패 후 6월 20일 첫 승 |
| 2002년 3월 30일 | 히로시마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사사오카 신지 | 요코 1-2 히로 | 7.2이닝 2자책 | 6회까지 무실점, 7, 8회 2실점으로 패전 |
| 2004년 4월 2일 | 야쿠르트 |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제이슨 베벌린 | 요코 1-3 야 | 7.0이닝 3자책 | 베벌린에게 홈런 허용, 7회 3실점으로 패전 |
| 2005년 4월 1일 | 주니치 | 나고야 돔 | 가와카미 겐신 | 요코 0-4x 주 | 8.0이닝 4자책 | 9회말 알렉스 오초아에게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패전 |
| 2006년 3월 31일 | 요미우리 | 도쿄 돔 | 우에하라 고지 | 요코 2-12 요 | 4.0이닝 6자책 | 1회 4실점, 3회 2실점으로 패전, 우에하라 고지 완투승 |
| 2007년 3월 30일 | 요미우리 | 요코하마 스타디움 | 우치우미 테츠야 | 요 3-2 요코 | 6.0이닝 3자책 | 다카하시 요시노부에게 개막전 첫 타자 초구 홈런 허용, 4회 솔로 홈런 2개 허용으로 패전 |
| 2009년 4월 3일 | 주니치 | 나고야 돔 | 아사오 다쿠야 | 요코 1-4 주 | 7.0이닝 4자책 | 와다 가즈히로에게 2홈런 허용, 개막전 7연패 (NPB 워스트 기록) |
| 통산: 7경기 | 0승 7패, 46.0이닝 26자책, 방어율 5.09 | |||||
4.3. 기타
* 연속 시즌 승리: 23년(1993년~2015년) (NPB 타이 기록)
* 연속 시즌 안타: 24년(1993년~2016년) (NPB 역대 4위) 투수로서는 역대 1위이다. 25년 이상은 다니시게 모토노부의 27년, 노무라 가쓰야, 야마사키 다케시의 25년이다.
* 연속 시즌 폭투: 16년(1997년~2015년) (NPB 타이 기록)
* 연속 시즌 두 자릿수 선발: 21년(1995년~2015년) (NPB 역대 1위)
* 개막 3전 3승: 2015년 (NPB 최고령 기록)
* 프랜차이즈 선수: 데뷔부터 은퇴까지 25년간 동일 구단(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서 재적
* 올스타전 출장: 6회 (2002년, 2004년, 2006년, 2009년, 2012년, 2013년)
* 개막전 투수 7회 등판, 7전 전패 (NPB 기록)
| 경기 일정 | 대전 팀 | 구장 | 상대 투수 | 경기 결과 | 등판 성적 | 비고 |
|---|---|---|---|---|---|---|
| 1999년 4월 2일 | 야쿠르트 | 요코하마 스타디움 | 이시이 가즈히사 | 야 10-5 요코 | 6.1이닝 타자 27 피안타 6 자책 4 방어율 5.68 | 1-1 동점에서 맞이한 7회에 강판. 이 해에는 개막부터 6연패를 경험했고, 6월 20일 야쿠르트 14차전에서 비로소 첫 승을 거두었다. |
| 2002년 3월 30일 | 히로시마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사사오카 신지 | 요코 1-2 히로 | 7.2이닝 타자 32 피안타 7 자책 2 방어율 2.35 | 6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7, 8회 2실점이 결정타가 되어 패전. 등판한 모든 개막 경기 중에서 가장 자책점과 방어율이 좋은 경기였다. |
| 2004년 4월 2일 | 야쿠르트 |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제이슨 베벌린 | 요코 1-3 야 | 7.0이닝 타자 26 피안타 5 자책 3 방어율 3.86 | 상대 투수 제이슨 베벌린에게 홈런을 허용하면서 7회 3실점으로 분투했지만, 아군 타선이 5안타 1득점에 묶여 지원을 받지 못하고 패배. |
| 2005년 4월 1일 | 주니치 | 나고야 돔 | 가와카미 겐신 | 요코 0-4x 주 | 8.0이닝 타자 33 피안타 4 자책 4 방어율 4.50 | 8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9회 말에 알렉스 오초아에게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고 패전. 자신의 개막 경기 중에서 가장 피안타가 적었고, 가장 긴 이닝을 던진 경기였다. |
| 2006년 3월 31일 | 요미우리 | 도쿄 돔 | 우에하라 고지 | 요코 2-12 요 | 4.0이닝 타자 20 피안타 5 자책 6 방어율 13.50 | 경기 초반에 요미우리 타선에게 잡혀 1회에 4실점, 3회에 2실점을 하여 패전. 자신 최단 개막전 강판을 당했고, 상대 우에하라에게도 완투 승리를 허용했다. |
| 2007년 3월 30일 | 요미우리 | 요코하마 스타디움 | 우치우미 테츠야 | 요 3-2 요코 | 6.0이닝 타자 28 피안타 8 자책 3 방어율 4.50 | 다카하시 요시노부에게 개막전 첫 타자 초구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때 타선이 역전했지만, 4회에 솔로 홈런을 2개 허용하여 2실점. 그 후, 타선의 지원이 끊겨 패전. |
| 2009년 4월 3일 | 주니치 | 나고야 돔 | 아사오 다쿠야 | 요코 1-4 주 | 7.0이닝 타자 26 피안타 5 자책 4 방어율 5.14 | 2년 만에 개막 투수로 선발되었지만 와다 가즈히로에게 2홈런을 허용하는 등 7회 4실점. 이로써 개막전 7연패를 기록하여 히가시오 오사무를 넘어 프로 야구 워스트 기록이 되었고, 이후 2016년 현역 은퇴까지 개막 투수를 맡지 못했다. |
| 통산: 7경기||colspan="2" style="text-align:center;"|7경기: 0승 7패 46.0이닝 타자 192 피안타 40 자책 26 방어율 5.09|| | ||||||
* DeNA 감독 취임 후 2021년부터 3년 연속 개막전 패배. 현역 시절 포함하여 개막전 10연패.
4.4. 출신 학교
야마토타카다 시립 타카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4.5. 선수 경력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에서 1992년부터 2016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5. 투구 스타일
미우라 다이스케는 오버스로 투수로, 평균 구속 약 139km/h, 최고 148km/h의 스트레이트와 컷 볼, 슬라이더, 포크, 슬로 커브, 슈트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했다. 다츠나미 가즈요시는 "컷 계열의 작은 슬라이더를 익힌 뒤부터 까다로운 투수가 되었다는 인상입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90km/h 이하의 슬로 커브는 완급 조절에 사용되는 그만의 무기였다. 큰 변화구는 없었지만, 미묘하게 변화하는 공의 컨트롤이 뛰어나 후루타 아츠야는 "이 정도로 구종을 읽기 어려운 투수는 없었다"라고 평가했다.
발군의 제구력을 바탕으로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공략했다. 통산 사구율은 2.42로, 프로 8년차 이후에는 사구율 3.0을 넘은 적이 없으며, 2.0 이하를 6번 기록했다. 2010년 6월 12일 '스포르토!'의 컨트롤 부문에서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풍부한 스태미너를 바탕으로 완투 능력도 뛰어나 통산 16회의 무사사구 완투를 기록했다. 2005년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프로 통산 25년간 3276이닝 700수비 기회에서 실책 수는 불과 9개(수비율.987)로, 견실한 필딩도 강점이었다.
2단 모션의 선구자로 알려졌으나, 2006년 이후 보크 규정 강화로 투구 모션을 변경해야 했다. 투수 코치 코타니 마사카츠는 미우라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임기응변을 꼽으며, 그의 연구와 수정 능력에 감탄했다고 한다.
통산 172승 184패 중 한신을 상대로 46승 32패를 기록하여 한신 킬러로도 알려졌다. 한신 팬이었던 미우라는 한신의 응원가와 고시엔의 제트 풍선을 마운드 위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동기 부여가 되었다고 한다.
타격에서는 1993년부터 2016년까지 24시즌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투수 역대 1위, 야수 포함 역대 4위 타이 기록이다.
6. 인물·에피소드
미우라 다이스케는 트레이드마크인 리젠트 헤어스타일로 인해 하마의 반장(요코하마의 두목)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 별명은 프로 입단 초기 언론에서 붙인 것으로, 처음에는 촌스럽다고 생각하여 거부했지만, 팬들이 "하마의 반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사사키 가즈히로가 "하마의 대마신"으로 불린 것도 영향을 주었다.
젊은 시절부터 성격은 온화했으며, 만화 비밥 하이스쿨, 야자와 에이키치,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으로 리젠트 헤어스타일을 동경했다. 프로 입단 후 야자와 에이키치의 자서전 『성공』을 읽고 포마드를 사서 머리를 고정했다. 구단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벌금을 내면서 리젠트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다.
프로레슬링 관계자들과 친분이 깊다. 1998년 1월 4일 도쿄돔에서 열린 신일본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초노 마사히로의 세컨드로 나섰고, 2002년에는 마계 클럽 총재 호시노 칸타로에게서 "마계 18호"로 명명되었다. 2005년 하시모토 신야가 급서한 직후 경기에서 그의 입장 테마곡 "폭승선언"을 사용하고 완봉승을 거두며 눈물을 흘렸다. 2009년 10월 12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린 초노의 25주년 기념 대회에 참석했다.
일본중앙경마회(JRA)에 등록된 마주이기도 하다. 2011년 현역 프로 야구 선수 최초로 경주마 '리젠트 블루스'를 소유했고, 도쿄마주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