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부 히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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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라부 히데키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1969년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에서 태어나 효고현 아마가사키에서 성장했다. 롯데 오리온즈에 입단하여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하며 다승왕, 최다 탈삼진, 최우수 방어율 등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7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여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하며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지만, 이후 몬트리올 엑스포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3년에는 한신 타이거스에서 센트럴 리그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2010년 은퇴 후 사업가로 변신했으나 2011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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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부 히데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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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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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이름 | 伊良部 秀輝 (이라부 히데키) |
로마자 표기 | Irabu Hideki |
출생일 | 1969년 5월 5일 |
출생지 | 미야코지마시(오키나와현) 히라라시 |
사망일 | 2011년 7월 27일 (향년 42세) |
사망 장소 |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팔로스버디스 |
신장 | 193cm |
체중 | 108kg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수비 위치 | 투수 |
선수 경력 | |
고등학교 | 진세이가쿠엔고등학교 |
프로 입단 | 1987년 |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드래프트 1위 |
NPB 데뷔 | 1988년 5월 7일 |
MLB 데뷔 | 1997년 7월 10일 |
NPB 마지막 출장 | 2004년 6월 11일 |
MLB 마지막 출장 | 2002년 7월 12일 |
소속 구단 | 롯데 오리온스/지바 롯데 마린스 (1988-1996) 뉴욕 양키스 (1997-1999) 몬트리올 엑스포스 (2000-2001) 텍사스 레인저스 (2002) 한신 타이거스 (2003-2004) (2009) 고치 파이팅독스 (2009) |
수상 경력 | |
하이라이트 | 월드 시리즈 우승 (1998, 1999) |
NPB 성적 | |
승-패 | 72승 69패 |
평균 자책점 | 3.55 |
탈삼진 | 1,282개 |
MLB 성적 | |
승-패 | 34승 35패 |
평균 자책점 | 5.15 |
탈삼진 | 405개 |
2. 프로 입단 전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시에서 태어나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자랐으며, 아마가사키 시립 와카쿠사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가가와현의 진세이가쿠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진세이가쿠엔 고등학교 시절, 1986년과 1987년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2년 연속으로 출전했다.[39][40] 1987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41]
이라부 히데키는 1988년 롯데 오리온스(1992년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초기부터 1군에서 활약하며 투수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1989년 세이부 라이온스의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상대로 156km/h의 강속구를 던지기도 했지만, 컨트롤 불안과 잦은 실투로 어려움을 겪으며 선발과 구원을 오가는 등 기용이 일정하지 않았다.
이라부는 1969년 5월 5일 오키나와현 히라라(현재의 미야코지마시)에서 태어났다.[1] 당시 오키나와는 미국 정부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 공군 기상학자였던 스티브 톰슨이었고, 어머니는 미야코 출신인 카즈에였다.[2][3] 카즈에는 이후 오사카부 출신의 음식점 경영자 이라부 이치로와 결혼했고, 이라부는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에서 히데키를 자신의 아들로 키웠다.[3][4]
1987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롯데 오리온즈(1992년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가 1위 지명으로 교섭권을 획득하여, 계약금 5000만엔, 연봉 500만엔(금액은 추정)으로 입단 합의했다.[41]
3. 선수 경력
1993년 니혼햄 파이터스 감독과의 일화로 '이라부 해파리'라는 별명을 얻었고, 같은 해 5월 3일 세이부의 기요하라를 상대로 158km/h의 강속구를 던졌다.[80] 이후 기요하라와의 대결은 '헤이세이의 명승부'로 불렸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투구 감각이 안정되며 선발 로테이션 투수로 고정되었다. 1994년 15승과 239개의 탈삼진으로 다승왕과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했고, 1995년 고미야마 사토루, 에릭 힐만과 함께 선발 투수진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팀을 2위로 이끌었다. 같은 해 최고 평균자책점과 2년 연속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고, 4경기 연속 두 자릿수 탈삼진 기록도 2년 연속 달성했다. 1996년 2년 연속 최고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지만, 경기 도중 강판 지시에 격노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1996년 시즌 종료 후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 복잡한 과정을 거쳐 1997년 5월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양키스에서 1999년까지 뛰면서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1998, 1999)을 경험했다. 이후 몬트리올 엑스포스(2000~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2002년)에서 뛰었다.
2003년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하여 13승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2004년까지 뛰었다.
2005년 3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가 2009년 미국 독립 리그 팀인 롱비치 아마다에 입단하며 현역에 복귀했고, 같은 해 8월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의 고치 파이팅 독스에 입단했지만 9월에 팀을 떠났다. 2010년 1월 19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 생활을 완전히 마감했다.
3. 1.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
1987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롯데 오리온스(1992년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의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한 이라부 히데키는 입단 초기부터 1군에서 활약하며 무라타 조지, 마에다 유키나가 등과 함께 투수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41] 1989년에는 세이부 라이온스의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상대로 최고 시속 156km/h의 강속구를 던졌으나, 컨트롤 불안과 잦은 실투로 어려움을 겪었다.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기용이 일정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1993년, 니혼햄 파이터스의 오사와 게이지 감독이 언론을 통해 "마쿠하리의 해변에서 이라부 해파리에게 찔렸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이라부 해파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같은 해 5월 3일, 세이부의 기요하라를 상대로 158km/h의 강속구를 던지며[80] 이후 기요하라와의 대결은 '헤이세이의 명승부'로 불렸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투구 감각이 안정되고 선발 로테이션 투수로 고정되었다.
1994년, 15승과 239개의 탈삼진으로 다승왕과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했다.[43] 보비 밸런타인 감독 시절인 1995년에는 고미야마 사토루, 에릭 힐만과 함께 선발 투수진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팀을 2위로 이끌었다. 같은 해 최고 평균자책점과 2년 연속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고,[45] 4경기 연속 두 자릿수 탈삼진 기록도 2년 연속 달성했다.
1996년에는 2년 연속 최고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지만,[45] 경기 도중 강판 지시에 격노하며 글러브와 모자를 덕아웃에 내팽개치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3. 2. 메이저 리그 시절
1997년 5월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면서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한 이라부의 계약 문제와 관련하여, 포스팅 시스템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8] 이라부는 파드리스와의 계약을 거부하고 양키스에서만 뛰겠다고 선언했고, 양키스는 파드리스와의 복잡한 트레이드 협상을 통해 이라부를 영입, 4년 1,28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9][10][11][12][13]
이라부는 양키스에서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뛰면서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1998, 1999)을 경험했다.[14] 1998년에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1998년 5월과 1999년 7월에는 아메리칸 리그 이달의 투수로 선정되기도 했다.[16] 그러나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이라부의 체중과 경기 태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15]
1999년 시즌 후, 테드 릴리, 크리스티안 파커, 제이크 웨스트브룩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이적했다.[1][17] 2000년과 2001년, 엑스포스에서 1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승 7패, 평균자책점 6.69를 기록했다.[16] 잦은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2001년 9월 6일 엑스포스에서 방출되었다.[1]
2001년 12월 27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은 이라부는[18] 2002년 시즌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메이저 리그에 복귀했다. 시즌 초반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6월 이후 부진과 폐 혈전 발병으로 시즌을 마감했다.[19][20]
3. 2. 1. 뉴욕 양키스
1996년 시즌 종료 후 이라부는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1997년 5월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8][9][10][11][12][13]
1997년 7월 1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메이저 리그 데뷔전에서 최고 구속 158km/h의 속구와 포크볼을 주무기로 6⅔이닝 5피안타 2실점 9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14] 이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이라부는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로부터 '일본제 놀런 라이언'이라는 극찬을 받았다.[82]
1998년은 이라부의 메이저 리그 최고의 시즌이었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오른쪽 팔꿈치를 다쳐 100개의 투구수 제한을 받았지만, 선발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5월에는 4승 1패, 평균자책점 1.44, WHIP 1.05를 기록하며 월간 MVP를 수상했다. 전반기에는 1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6승 3패, 평균자책점 2.91, WHIP 1.23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비록 후반기에는 15경기(1경기 구원 등판)에서 7승 6패, 평균자책점 5.21, WHIP 1.35로 부진했지만, 팀은 월드 시리즈를 제패하여 이라부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16]
1999년 스프링 트레이닝 마지막 경기에서 1루 베이스 커버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로부터 "뚱뚱한 두꺼비"라는 비판을 받았다.[15] 그러나 7월에는 4승 무패, 평균자책점 2.64, WHIP 1.08의 성적으로 통산 두 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1루 베이스 커버를 성공했을 때는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15경기(1경기 구원 등판)에서 5승 4패, 평균자책점 5.60, WHIP 1.50으로 부진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에 등판했으나, 4⅔이닝 13피안타(1피홈런) 8실점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팀은 2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이라부는 두 번째 챔피언 링을 획득했다.
1999년 시즌 종료 후, 이라부는 테드 릴리, 크리스티안 파커, 제이크 웨스트브룩과의 맞트레이드로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이적했다.[15]
3. 2. 2. 몬트리올 엑스포스
2000년 시즌 개막 후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 4월 26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 이후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1] 7월 27일 뉴욕 메츠전에서 복귀했지만, 경기 후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8월 15일에 다시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감했다.[1]
2001년 스프링 트레이닝 중 오른쪽 무릎과 팔꿈치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른 채 시즌 개막을 맞았다.[1] 5월 31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 복귀했으나, 6월 17일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여 인대 부분 파열 진단을 받았다.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했지만, 8월 26일 팀 동료와 식사 중 과음으로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에 실려갔다.[1] 이로 인해 8월 29일 구단으로부터 7일간 근신 처분을 받았고, 9월 6일 방출되었다.[1] 이후 푸에르토리코 윈터 리그에 참가하여 5승 3패, 평균자책점 2.34를 기록했다.[1]
3. 2. 3. 텍사스 레인저스
2002년에는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대 선수로 참가하여 중간 계투로 메이저 리그에 합류하였다. 4월 6일의 LA 에인절스전에서는 박찬호의 부진으로 선발 등판했고, 13일의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는 스즈키 이치로와 맞대결을 펼쳤다. 17일의 LA 에인절스전에서는 3점을 리드하고 있는 9회에 등판하여 1993년 이후 9년 만에 메이저 리그 첫 세이브를 기록했고, 그 후 마무리 투수로서 5월 중순까지 1승 10세이브, 평균자책점 0.64, WHIP 0.92의 호투를 계속하였다.[18] 그러나 6월부터는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평균자책점이 8.44로 저조한 성적을 남겼고, 7월 15일에 폐혈전이 발견되어 시즌을 마쳤다.[19][20]
3. 3. 한신 타이거스 시절
2002년 오프 시즌, 이라부는 일본 야구계 복귀 의사를 밝혔고, 한신 타이거스가 입단 교섭을 진행하여 한신에 입단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이라부를 중간 계투로 기용하려 했으나, 이라부 본인의 희망으로 선발 투수를 맡게 되었다. 2003년, 이라부는 13승을 기록하며 한신의 18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21][22] 그러나 후반기에 구위가 떨어져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 못했고, 일본 시리즈 2차전과 6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기동력에 농락당하며 모두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04년에는 개막 직후부터 전년도 일본 시리즈에서 드러난 세트 포지션에서의 약점(도루 견제 미숙)으로 인해 3경기 등판에 그쳤고, 평균자책점 13.11을 기록하는 부진으로 시즌 후 방출 통보를 받았다.[23][24]
3. 4. 은퇴와 현역 복귀
2004년 시즌 후 방출 통보를 받은 이라부 히데키는 이듬해인 2005년 3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83]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가 영주권을 취득하고 사업가로 변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동 전문점 'SUPER UDON'을 개업했지만,[84] 경영난으로 2008년경 폐업했다.
이후 현역 복귀를 목표로 훈련을 시작, 2009년 4월 27일 미국 독립 리그 팀인 골든 베이스볼 리그의 롱비치 아마다에 입단하며(월급 1500USD) 현역에 복귀했다.[85] 첫 등판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해 8월에는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의 고치 파이팅 독스에 입단했지만(월급 16 ~ 18만 엔), 같은 해 9월 오른쪽 손목 부상으로 팀을 떠났다. 고치 파이팅 독스에서의 성적은 2경기(12이닝) 등판, 승패 없이 6탈삼진, 11사사구, 평균자책점 5.25를 기록했다.
2010년 1월 19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 생활을 완전히 마감했다.
4. 은퇴 후
현역 은퇴 후 이라부 히데키는 미국으로 건너가 영주권을 취득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다.[83] 고교 시절 친구와 함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동 전문점 'SUPER UDON'을 개업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경영난으로 2008년경 폐업했다.[84]
5. 사건 및 논란
2008년 8월, 오사카시 기타구에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신용 카드가 승인되지 않자 바텐더에게 욕설을 하고 폭력을 휘둘러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으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86] 2010년 5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에서 음주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87]
뉴욕 양키스 시절, 이라부는 사생활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에는 음주 운전으로 출장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6. 사망
2011년 7월 27일, 로스앤젤레스 근교 자택에서 이라부 히데키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향년 43세).[88] 현지 경찰은 사인을 자살로 추정했다.[88]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자살 원인으로는 우동 전문점 경영난, 부인과의 별거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88]
이라부는 은퇴 후 일본에서 지도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일본 야구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지도자와 야구 평론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야구인으로서의 장래에 불안감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라부는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2][4] 부검 결과, 사망 당시 술에 취해 있었으며 체내에서 알코올과 아티반이 검출되었다.[31][32] 아내가 두 딸을 데리고 떠나 우울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31][32]
7월 24일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으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시소는 이라부의 혈중에서 다량의 알코올이 검출되었다고 밝혔다.[63] 자살 이유로는 사업 실패, 사망 1개월 전부터 아내와 별거 상태가 지속된 점 등이 지적되었다.[65]
이라부는 일본에서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그를 받아들이는 구단이 없었다. 해설자나 평론가의 길도 막혀 야구인으로서의 미래에 불안을 느꼈다는 지적도 있었다.[66]
친구와 관계자들은 이라부의 자택 앞에 헌화대와 헌향대를 설치했다. '한신 타이거스 유지 일동'의 헌화[67]와 한신 팬으로 보이는 한신 타이거스 모자가 놓였다.[68] 7월 29일, 뉴욕 양키스는 경기 전에 묵념했다. 이라부의 메이저 첫 등판, 첫 선발, 첫 승 경기에서 포수를 맡았던 조 지라디 양키스 감독은 "함께 있으면 즐거운 좋은 팀 동료였고, 여러 번 호투를 해줬다. 옛 친구를 잃는 것은 슬프다. 그에게도 아이가 있고, 슬픈 일이다"라고 말했다. 팀 동료였던 데릭 지터도 "언어의 장벽은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를 이해하는 즐거운 인물이었다. 비보를 들었을 때는 말을 잃었다"라고 말했다.[69] 7월 30일, 한신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 전에 묵념하고 유니폼에 근조 리본을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다.[70] 같은 날, 이라부의 옛 소속팀인 롯데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 전에 묵념했고, 구장 대형 비전에 이라부의 옛 모습을 비추었다.
이라부의 장례식은 8월 3일 친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유골은 이라부 본인의 희망에 따라 로스앤젤레스 리틀 도쿄에 있는 동본원사 로스앤젤레스 별원에 납골할 예정이었으나, 이라부의 아내와 어머니의 의향에 따라 49일을 기다리지 않고 지바시 내의 사찰에서 무연고 무량수에 납골되었다.[71]
7. 선수로서의 특징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투수 중 한 명으로, 마크 크룬이 159km/h를 기록하기 전까지 야마구치 카즈오, 이가라시 료타와 함께 일본 프로 야구 최고 속도 타이 기록(158km/h)을 보유하고 있었다.[72] 1993년 5월 3일 세이부의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상대로 158km/h의 강속구를 던졌고,[80] 1997년에는 MLB에서 99마일(약 159.3km/h)을 기록했다.[72]
강속구 외에도 포크볼을 주무기로 사용했으며, 카토리 요시타카는 이라부의 포크볼이 노모 히데오의 것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했다.[73] 카토리는 포크볼로 140km대 후반이 나오는 것은 위압감이 있었으며, 타석에서 돌아오는 선수들은 "그 속도로 떨어지면 전혀 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쿠로키 토모히로는 2021년 12월 31일 공개된 『후루타의 방정식』에서 일본 야구계 역사상 체감 속도 1위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로 이라부의 이름을 언급했으며, 특히 투구의 출처를 알기 어렵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75]
강속구를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투구 스타일로 알려졌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컨트롤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변화했다. 최고 속도 기록 이후 던진 157km/h의 강속구를 기요하라에게 2루타를 맞은 것이 투구술을 연마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루타 아츠야는 "한신 시대의 이라부는, 투구술을 구사하는 연투파였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롯데 시절 선배였던 우시지마 카즈히코도 "투구 폼의 팔을 올리는 높이부터 다리를 내리는 위치, 그것에 따른 공의 궤도까지 밀리미터 단위로 세밀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라부라는 투수"라고 말했다.
8. 수상 및 타이틀 경력
이라부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1994년 최다승과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했고, 1995년에는 최우수 방어율과 2년 연속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다.[80] 1996년에도 2년 연속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을 획득했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1998년과 1999년에 이달의 투수상을 수상했다.[82] 2003년에는 한신 타이거스 소속으로 13승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8. 1. 타이틀
- 최다승: 1회 (1994년)
- 최우수 방어율: 2회 (1995년, 1996년) ※2년 연속은 이나오 카즈히사, 야마모토 요시노부에 이은 퍼시픽 리그 역대 3위 기록
- 최다 탈삼진: 2회 (1994년, 1995년)
8. 2. 수상
연도 | 부문 | 수상 내용 |
---|---|---|
1994년 | 베스트 나인 | 투수 부문 |
1994년 | 월간 MVP | 9월 |
1994년 | IBM 플레이어 오브 더 이어 상 | 투수 부문 |
1995년 | 베스트 나인 | 투수 부문 |
1995년 | 월간 MVP | 7월, 9월 |
1996년 | 월간 MVP | 8월 |
1998년 | 이달의 투수상 | 5월 |
1999년 | 이달의 투수상 | 7월 |
2003년 | 월간 MVP | 5월 |
2003년 | 올스타 게임 우수 선수상 | 제2전 |
9. 개인 기록
이라부 히데키는 입단 초기 몇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1993년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상대로 158 km/h의 강속구를 던지며 투구 감각이 안정되어 선발 로테이션 투수로 고정되었다.[80] 1994년 다승왕과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했고, 1995년 최고 평균자책점과 2년 연속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1996년에도 2년 연속 최고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7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메이저 리그 첫 승을 거두었고, 1998년과 1999년 5월과 7월에는 월간 MVP를 수상했다.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1승 10세이브, 평균자책점 0.64를 기록했지만, 7월 폐 혈전으로 시즌을 마감했다.[52] 이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한신 타이거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9. 1. 첫 기록(NPB)
- 첫 등판·첫 선발: 1988년 5월 7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5차전(가와사키 구장)
- 첫 탈삼진: 상동
- 첫 승리: 1988년 8월 14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13차전(가와사키 구장)
- 첫 세이브: 1988년 10월 20일, 대 난카이 호크스 26차전(가와사키 구장)
- 첫 완투 승리: 1990년 8월 10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15차전(후지이데라 구장)
- 첫 완봉 승리: 1994년 4월 22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3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9. 2. 기록 달성 경력(NPB)
- 통산 1000투구 이닝: 1996년 5월 17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7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역대 267번째[80]
- 통산 1000탈삼진: 1996년 5월 17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7차전(지바 마린 스타디움), 6회초에 버나드 브리토로부터 ※역대 96번째[80]
9. 3. 기타(NPB)
올스타전 출장 : 4회 (1994년 ~ 1996년, 2003년)[80][81]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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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動読み物この男がいたからダルビッシュ、田中はメジャー入りできた 伊良部秀輝 哀しき最速エースの肖像 後編 父との対面と、突然の別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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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良部秀輝の“遺言”「父親がアメリカ人とは知ら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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尽誠学園(香川)伊良部秀輝投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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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めくりプロ野球 【5月3日】1993年(平5) 伊良部秀輝 日本新の158キロ!「清原さんだ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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ゴリ押しした引退試合?【大島康徳の負くっか魂!!第84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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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良部氏 ツバ吐き事件の真相は「自分に腹が立った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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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人選手特集 THE CHALENGE 試練の時を乗り越え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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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の伊良部だからって「うぬぼれるな」 当時のスナックママが洗いざらい本紙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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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良部戦力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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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しんでいる投手助けたい…」伊良部秀輝の盟友が語る、剛腕の“本当の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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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良部秀輝: 野球を愛しすぎた男の真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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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良部秀輝はわがままでも傲慢でもなかった。ただ野球を愛しすぎた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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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ヤンキースの伊良部さん死亡 ロス近郊の自宅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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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NYヤンキース投手の伊良部さん、米自宅で死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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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タイガース有志一同」が献花 LAの伊良部さん友人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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嫁と実家の確執の末に伊良部秀輝氏の遺骨が「無縁仏」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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実力者たちが語る『この一球』過去の名投手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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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良部秀輝の“遺言”【中編】「縦の変化球で勝ち続けたのは野茂さん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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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番凄い真っ直ぐを投げた投手は?最優秀ストレート賞【フルタの方程式A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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かつての盟友・前田幸長氏が明かすロッテ福浦の2000安打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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晋吾ショック 「見た目とは全然違って本当に優しい先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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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er Yankee Suspected of Drunk Driving in S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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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속구 투수’ 이라부 히데키 美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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