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트 시닛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알프레트 시닛케는 소련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한 작곡가이다. 그는 다원주의 음악 양식을 창시하여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결합했으며,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주제를 음악에 담아냈다. 그의 작품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으며, 특히 교향곡 1번은 소련 작곡가 동맹에 의해 사실상 금지되기도 했다. 1990년 독일 함부르크로 이주하여 활동하다 1998년 사망했으며, 1992년 다카마쓰노미야 전하 기념 세계 문화상 음악 부문을 수상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러시아의 영화 음악 작곡가 - 예두아르트 아르테미예프
예두아르트 아르테미예프는 소련 및 러시아의 작곡가로, 영화 음악과 전자 음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음악을 작곡하고 모스크바 올림픽 주제가를 만들었으며, 2022년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 러시아의 영화 음악 작곡가 - 게오르기 스비리도프
게오르기 스비리도프는 러시아 민요와 시에서 영감을 받아 러시아적인 정서가 짙게 드러나는 다양한 작품을 작곡한 러시아의 작곡가이다. - 독일계 소련인 - 겐리흐 네이가우스
겐리흐 네이가우스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로,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서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 에밀 길렐스 등 유명 피아니스트들을 양성하고 《피아노 연주 예술》 저술을 통해 피아노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시적인 연주와 예술가들과의 교류로 명성을 얻었다. - 독일계 소련인 - 로만 노이슈테터
독일 태생의 축구 선수 로만 노이슈테터는 중앙 수비수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동하며 독일과 러시아 국적을 모두 보유, 독일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러시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샬케 04, FC 디나모 모스크바, 페네르바흐체 SK 등에서 뛰었으며, 2016-17 시즌에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소속으로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소련의 영화 음악 작곡가 -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20세기 러시아의 저명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혁신적인 초기 작품과 망명 시절의 발레 음악, 그리고 소련 귀국 후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고전주의와 현대 기법의 조화로 20세기 음악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 소련의 영화 음악 작곡가 - 아람 하차투리안
아람 하차투리안은 조지아 태생의 아르메니아계 소련 작곡가로, 코카서스 민족 음악을 바탕으로 《가야네》 중 '칼의 춤'과 《스파르타쿠스》 등의 작품을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으며, 아르메니아 민족 음악의 특징과 러시아 고전 음악의 전통을 결합하여 소련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알프레트 시닛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알프레트 가리예비치 시닛케 |
출생 | 1934년 11월 24일 |
출생지 | 볼가 독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 엔겔스 |
사망 | 1998년 8월 3일 |
사망지 | 독일 함부르크 |
국적 | 소련, 러시아, 독일 |
직업 | 작곡가 |
장르 | 클래식 음악, 현대 음악 |
학력 | 모스크바 음악원 |
영향 | (정보 없음) |
웹사이트 | (정보 없음) |
작품 | |
주요 작품 | 작품 목록 |
2. 일대기
알프레트 시닛케는 1934년 소련 볼가 독일인 자치 공화국의 엥겔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1926년 소련으로 이주하여 언론인 및 번역가로 활동했다. 어머니는 러시아 태생의 볼가 독일인이었다.
194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음악 교육을 시작했으며, 이후 1948년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1961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작곡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62년부터 1972년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예브게니 골루베프는 그의 작곡 선생님 중 한 명이었다.[5] 이후 그는 주로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30년 동안 거의 70편의 영화 음악을 제작했다.[5]
1972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으로 피아노 5중주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를 작곡하는 동안 그는 가톨릭교에서 위안을 찾기 시작했고; 1983년 6월 18일 개종했다. 그는 그의 음악에 영향을 미친 숙명론과 신비주의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6]
그러나 시닛케와 그의 음악은 종종 소련 관료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시기 해빙기를 거치면서 신 빈 악파나 스트라빈스키 등의 영향을 받아, 무조성, 12음 기법, 특수 주법등 새로운 악보 표기법을 도입했다. 그의 교향곡 1번은 소련 작곡가 동맹에 의해 사실상 금지되었다. 1980년 작곡가 동맹 투표에서 기권한 후, 그는 소련 밖으로 여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1985년 시닛케는 뇌졸중[7]으로 쓰러져 혼수 상태에 빠졌다. 그는 여러 차례 임상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지만 회복하여 작곡을 계속했다.
1990년 소련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에 정착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계속 좋지 않았다. 그는 1998년 8월 3일 함부르크에서 63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 여러 차례 더 뇌졸중을 겪었다. 그는 국가적 예우를 받아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혔다.
2. 1. 유년 시절과 교육
알프레트 시닛케는 러시아 SFSR의 볼가 독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엥겔스에서 태어났다.[2] 그의 아버지 Harry Maximilian Schnittke/Шнитке, Гарри Викторовичru (1914–1975)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1927년 소련으로 이주하여 언론인 및 러시아어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로 활동했다.[2] 어머니 마리아 이오시포브나 슈니트케(혼전 성씨: 포겔, 1910–1972)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볼가 독일인이었다.[2] 시닛케의 부계 조모인 테아 아브라모브나 카츠 (1889–1970)는 독일 문학 문헌학자, 번역가, 편집자였다.[2]
그는 1946년 아버지가 주재하던 빈에서 음악 교육을 시작했다.[2] 알렉산더 이바시킨은 그가 빈에서 "삶의 일부, 역사와 문화의 일부, 여전히 살아있는 과거의 일부인 음악에 사랑에 빠졌다"고 기록했다.[3] 시닛케는 "나는 그곳의 모든 순간을 역사적 연쇄의 연결 고리로 느꼈다. 모든 것은 다차원적이었다. 과거는 항상 존재하는 유령의 세계를 나타냈고, 나는 어떤 연결도 없는 야만인이 아니라 삶의 과제를 의식적으로 짊어진 사람이었다"라고 회고했다.[4] 이바시킨은 시닛케의 빈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그의 미래 전문적인 활동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경험과 규율을 주었다. 그가 취향, 방식, 스타일에 대한 참고점으로 염두에 둔 것은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가 아닌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였다. 이 참고점은 본질적으로 고전적이었지만, 너무 노골적이지는 않았다."라고 덧붙였다.[3] 1948년, 가족은 모스크바로 이주했다.[2]
2. 2. 소련 시기 활동과 탄압
1961년, 시닛케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작곡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62년부터 1972년까지 그곳에서 가르쳤다. 예브게니 골루베프는 그의 작곡 선생님 중 한 명이었다.[5] 이후 그는 주로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30년 동안 거의 70편의 영화 음악을 제작했다.[5]1972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가톨릭교에서 위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음악에 영향을 미친 숙명론과 신비주의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6] 시닛케와 그의 음악은 소련 관료들에게 종종 의심을 받았다. 그의 교향곡 1번은 작곡가 동맹에 의해 사실상 금지되었다. 1980년 작곡가 동맹 투표에서 기권한 후, 그는 소련 밖으로 여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2. 3. 망명과 국제적 명성
1980년대 기돈 크레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등 망명 음악가들의 노력으로 시닛케의 음악은 서방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시닛케와 그의 음악은 소련 관료들에게 의심을 받았으며, 그의 교향곡 1번은 작곡가 동맹에 의해 사실상 금지되었다.[5] 1980년 작곡가 동맹 투표에서 기권한 후, 그는 소련 밖으로 여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은 시닛케의 음악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90년 소련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에 정착한 후, 더욱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3. 음악적 특징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초기 음악과 달리, 알프레트 시닛케는 루이지 노노의 소련 방문 이후 음렬주의 기법을 사용한 《피아노와 실내 관현악을 위한 음악》(1964) 등을 작곡했다. 그러나 시닛케는 곧 "음렬적 자기 부정의 사춘기 의례"에 불만을 느끼고,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스타일을 결합하는 "다원주의"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 그는 "내 삶의 목표는 진지한 음악과 가벼운 음악을 통일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다가 목이 부러질지라도 말이다."라고 언급하며,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밝혔다.
다원주의 기법을 사용한 첫 번째 콘서트 작품은 두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인 《Quasi una sonata》(1967–1968)였다. 그는 1968년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유리 하모니카》의 악보에 처음 등장하는 소나타의 많은 부분에서 이 기법을 실험했다. 그는 알렉산드르 아스콜도프의 《코미사르》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여 유럽, 러시아 민족 및 유대인 음악 패턴을 결합하고 병치했다. 그는 서사적인 교향곡 1번 (1969–1972)과 합주 협주곡 1번 (1977)과 같은 작품에서 다원주의 기법을 계속 발전시켰다.
1980년대에 시닛케의 음악은 기돈 크레머, 마르크 루보츠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등의 노력으로 해외에서 더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두 번째, 세 번째 현악 사중주와 현악 3중주(1985), 《파우스트 칸타타》(1983), 발레 《페르 귄트》(1985–1987), 교향곡 3, 4, 5번, 피아노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979), 비올라 협주곡(1985), 첫 번째 첼로 협주곡(1985–1986) 등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1980년대는 시닛케와 그의 음악이 기독교 주제로 전환된 시기였으며, 그의 깊이 있는 영적인 무반주 합창 작품, 혼성 합창을 위한 협주곡(1984–1985)과 참회 시편(1988)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으며, 네 번째 교향곡과 파우스트 칸타타를 포함한 다양한 다른 작품에서도 암시되었다.[8]
1980년대 후반부터 건강이 악화되면서 시닛케는 이전 다원주의의 외향적인 부분을 많이 포기하고 더욱 내성적이고 암울한 스타일로 물러났다. 네 번째 사중주(1989)와 여섯 번째 (1992), 일곱 번째 (1993) 및 여덟 번째 (1994) 교향곡은 이의 좋은 예이다. 제라드 맥버니와 같은 일부 시닛케 학자들은 궁극적으로 시닛케의 후기 작품이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부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3. 1. 다원주의 (Polystylism)
알프레트 시닛케는 '다원주의'라는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창조했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병치하고 결합하는 기법으로, 그는 "진지한 음악과 가벼운 음악을 통일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다원주의 기법이 처음 사용된 콘서트 작품은 두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인 《Quasi una sonata》(1967–1968)였다. 그는 이 기법을 영화 작업에서도 실험했는데,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유리 하모니카》(1968)의 악보가 대표적이다.시닛케는 알렉산드르 아스콜도프의 《코미사르》를 위한 음악에서 유럽, 러시아 민족 및 유대인 음악 패턴을 결합하고 병치하는 방식으로 다원주의를 활용했다. 이후 교향곡 1번(1969–1972)과 합주 협주곡 1번(1977) 등의 작품에서 이 기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1980년대 후반부터 건강이 악화되면서 시닛케는 이전의 외향적인 다원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내성적이고 암울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3. 2. 영성과 종교성
알프레트 시닛케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그의 작품에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8] 특히 러시아 정교회의 신비주의 전통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는 혼성 합창을 위한 협주곡(1984–1985)과 참회 시편(1988) 등 무반주 합창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8] 그의 음악은 종종 삶과 죽음, 구원, 영혼의 문제 등 심오한 주제를 다루며, 깊은 영적 울림을 준다. 1980년대는 시닛케와 그의 음악이 기독교 주제로 전환된 시기였으며, 그의 네 번째 교향곡과 《파우스트 칸타타》를 포함한 다양한 다른 작품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암시되었다.[8]4. 주요 작품
슈니트케의 작품 목록
=== 교향곡 ===
알프레트 시닛케는 교향곡 0번(1956-57), 교향곡 1번(1969-74), 교향곡 2번 "성 플로리안"(1979), 교향곡 3번(1981), 교향곡 4번(1983), 교향곡 5번(합주 협주곡 4번)(1988), 교향곡 6번(1992), 교향곡 7번(1993), 교향곡 8번(1994), 그리고 알렉산드르 라스카토프가 재구성한 교향곡 9번(1996-97)까지 총 10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 관현악곡 ===
알프레트 시닛케의 관현악곡으로는 피아니시모 (Pianissimo영어, 1968)가 있다. 이 곡은 매우 여리게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1979년에서 1980년 사이에 작곡된 파사칼리아, 1980년에 작곡된 고골 모음곡이 있다. 1984년에서 1985년 사이에 제식(祭式)이 작곡되었다. 1985년에는 한여름 밤의 꿈이 작곡되었다. 1994년에는 교향적 전주곡, 리버풀을 위해 가 작곡되었다. 시닛케는 여러 합주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합주 협주곡 1번은 1977년에 작곡되었다. 합주 협주곡 3번은 1985년에 작곡되었다.
=== 협주곡 ===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957)
- 바이올린 협주곡 2번 (1966)
- 바이올린 협주곡 3번 (1978)
- 바이올린 협주곡 4번 (1984)
- 첼로 협주곡 1번 (1986)
- 첼로 협주곡 2번 (1990)
- 비올라 협주곡 (1985)
- 비올라와 현악을 위한 모놀로그 (1989)
- 오보에, 하프와 현악을 위한 협주곡 (1971)
=== 바이올린 ===
- 알프레트 시닛케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4곡 작곡했다.
- * 1번(1957년 작곡, 1963년 개정)
- * 2번(1966년 작곡)
- * 3번(1978년 작곡)
- * 4번(1984년 작곡)
=== 피아노 ===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시 (1953)
- 알프레트 시닛케의 피아노 협주곡 (1960)
- 피아노와 실내 관현악을 위한 음악 (1964)
- 피아노와 현을 위한 협주곡 (1979)
-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1988)
=== 첼로 ===
- 첼로 협주곡 1번 (1985/86)
- 첼로 협주곡 2번 (1990)
=== 비올라 ===
- 알프레트 시닛케는 비올라를 위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 * 비올라 협주곡 (1985)
- * 비올라와 현을 위한 독백 (1989)
- * 비올라와 작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997)
=== 그 밖 ===
- 알프레트 시닛케는 1994년에 피아노 3중주와 현악합주를 위한 삼중 협주곡을 작곡했다.
=== 합주 협주곡 ===
- 1번(1977-2대의 바이올린, 조작된 피아노, 하프시코드/1988-플루트, 오보에, 하프시코드, 조작된 피아노)
- 2번(바이올린, 첼로, 세 개의 관현악단; 1981~82)
- 3번(두 대의 바이올린, 하프시코드, 첼레스타, 피아노, 14대의 현악기; 1985)
- 5번(바이올린, 무대 뒤 피아노; 1990~91)
- 6번(피아노, 바이올린, 현악합주; 1993)
=== 실내악 ===
==== 이중주 ====
- 바이올린 소나타 1번(1963)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콰시 우나’(1968)
- 고전풍의 모음곡(바이올린과 피아노/하프시코드)(1972)
- 성가 Ⅱ(첼로와 더블베이스)(1974)
- 첼로 소나타 1번(1978)
- 조용한 음악(바이올린, 첼로)(1979)
- 소리와 메아리(트롬본, 오르간)(1983)
- 향수(鄕愁)의 음악(첼로, 피아노)(1992)
- 첼로 소나타 2번(1994)
- 바이올린 소나타 3번(1994)
==== 삼중주, 사중주, 오중주 ====
현악 사중주 1번 (1966)
성가Ⅰ (첼로, 하프, 팀파니) (1974)
피아노 오중주 (1972-76)
현악 사중주 2번 (1981)
현악 사중주 3번 (1983)
현악 삼중주 (1985)
현악 사중주 4번 (1989)
현악 사중주를 위한 변주곡 (1997)
==== 대규모 실내악 ====
- 대화(첼로, 7대의 악기)(1965)
- 세레나데(바이올린, 클라리넷, 더블베이스, 피아노, 타악기)(1968)
- 성가Ⅲ(첼로, 바순, 하프시코드, 종/팀파니)(1974)
- 성가Ⅳ(첼로, 바순, 더블베이스, 하프시코드, 하프, 팀파니, 종)(1974~79)
==== 독주 악기 ====
- 푸가(바이올린; 1953)는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다.
- 즉흥 연주(첼로; 1993)는 무반주 첼로를 위한 곡이다.
==== 피아노 ====
알프레트 시닛케는 6개의 전주곡(1953-54), 변주곡(1954-55)을 비롯하여 피아노 소나타 1번(1987-88), 피아노 소나타 2번(1990), 피아노 소나타 3번(1992) 등을 작곡했다.
=== 오페라 ===
빅토르 예로페예프의 대본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바보와의 생활》이 1992년에 초연되었다.[19] 1991년부터 1994년까지는 오페라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를 작곡하였고, 1993년에는 《제수알도》를 작곡하였다.
=== 발레 ===
=== 합창 ===
알프레트 시닛케는 오라토리오 "나가사키" (1958), 자연의 소리 (1972), 레퀴엠 (1975), 민네장크 (1981)를 작곡하였다. 1983년에는 파우스트 칸타타 "냉정하게, 눈을 떠라"를 작곡하였고, 3개의 성스러운 노래 (1984), 합창 협주곡 (1985), 회심의 시편 (1988)등을 작곡하였다.
4. 1. 교향곡
알프레트 시닛케는 교향곡 0번(1956-57)을 시작으로, 교향곡 1번(1969-74), 교향곡 2번 "성 플로리안"(1979), 교향곡 3번(1981), 교향곡 4번(1983), 교향곡 5번(합주 협주곡 4번)(1988), 교향곡 6번(1992), 교향곡 7번(1993), 교향곡 8번(1994), 그리고 알렉산드르 라스카토프가 재구성한 교향곡 9번(1996-97)까지 총 10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4. 2. 관현악곡
알프레트 시닛케의 관현악곡으로는 피아니시모 (Pianissimo영어, 1968)가 있다. 이 곡은 매우 여리게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1979년에서 1980년 사이에 작곡된 파사칼리아, 1980년에 작곡된 고골 모음곡이 있다. 1984년에서 1985년 사이에 제식(祭式)이 작곡되었다. 1985년에는 한여름 밤의 꿈이 작곡되었다. 1994년에는 교향적 전주곡, 리버풀을 위해 가 작곡되었다. 시닛케는 여러 합주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합주 협주곡 1번은 1977년에 작곡되었다. 합주 협주곡 3번은 1985년에 작곡되었다.4. 3. 협주곡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957)
- 바이올린 협주곡 2번 (1966)
- 바이올린 협주곡 3번 (1978)
- 바이올린 협주곡 4번 (1984)
- 첼로 협주곡 1번 (1986)
- 첼로 협주곡 2번 (1990)
- 비올라 협주곡 (1985)
- 비올라와 현악을 위한 모놀로그 (1989)
- 오보에, 하프와 현악을 위한 협주곡 (1971)
4. 3. 1. 바이올린
- 시닛케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4곡 작곡했다.
- 1번(1957년 작곡, 1963년 개정)
- 2번(1966년 작곡)
- 3번(1978년 작곡)
- 4번(1984년 작곡)
4. 3. 2. 피아노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시 (1953)
- 시닛케의 피아노 협주곡 (1960)
- 피아노와 실내 관현악을 위한 음악 (1964)
- 피아노와 현을 위한 협주곡 (1979)
-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1988)
4. 3. 3. 첼로
- 첼로 협주곡 1번 (1985/86)
- 첼로 협주곡 2번 (1990)
4. 3. 4. 비올라
- 시닛케는 비올라를 위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 비올라 협주곡 (1985)
- 비올라와 현을 위한 독백 (1989)
- 비올라와 작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997)
4. 3. 5. 그 밖
- 시닛케는 1994년에 피아노 3중주와 현악합주를 위한 삼중 협주곡을 작곡했다.
4. 3. 6. 합주 협주곡
- 1번(1977-2대의 바이올린, 조작된 피아노, 하프시코드/1988-플루트, 오보에, 하프시코드, 조작된 피아노)
- 2번(바이올린, 첼로, 세 개의 관현악단; 1981~82)
- 3번(두 대의 바이올린, 하프시코드, 첼레스타, 피아노, 14대의 현악기; 1985)
- 5번(바이올린, 무대 뒤 피아노; 1990~91)
- 6번(피아노, 바이올린, 현악합주; 1993)
4. 4. 실내악
- 바이올린 소나타 1번(1963)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콰시 우나’(1968)
- 고전풍의 모음곡(바이올린과 피아노/하프시코드)(1972)
- 성가 Ⅱ(첼로와 더블베이스)(1974)
- 첼로 소나타 1번(1978)
- 조용한 음악(바이올린, 첼로)(1979)
- 소리와 메아리(트롬본, 오르간)(1983)
- 향수(鄕愁)의 음악(첼로, 피아노)(1992)
- 첼로 소나타 2번(1994)
- 바이올린 소나타 3번(1994)
=== 삼중주, 사중주, 오중주 ===
현악 사중주 1번 (1966)
성가Ⅰ (첼로, 하프, 팀파니) (1974)
피아노 오중주 (1972-76)
현악 사중주 2번 (1981)
현악 사중주 3번 (1983)
현악 삼중주 (1985)
현악 사중주 4번 (1989)
현악 사중주를 위한 변주곡 (1997)
=== 대규모 실내악 ===
- 대화(첼로, 7대의 악기)(1965)
- 세레나데(바이올린, 클라리넷, 더블베이스, 피아노, 타악기)(1968)
- 성가Ⅲ(첼로, 바순, 하프시코드, 종/팀파니)(1974)
- 성가Ⅳ(첼로, 바순, 더블베이스, 하프시코드, 하프, 팀파니, 종)(1974~79)
4. 4. 1. 이중주
- 바이올린 소나타 1번(1963)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콰시 우나’(1968)
- 고전풍의 모음곡(바이올린과 피아노/하프시코드)(1972)
- 성가 Ⅱ(첼로와 더블베이스)(1974)
- 첼로 소나타 1번(1978)
- 조용한 음악(바이올린, 첼로)(1979)
- 소리와 메아리(트롬본, 오르간)(1983)
- 향수(鄕愁)의 음악(첼로, 피아노)(1992)
- 첼로 소나타 2번(1994)
- 바이올린 소나타 3번(1994)
4. 4. 2. 삼중주, 사중주, 오중주
현악 사중주 1번 (1966)성가Ⅰ (첼로, 하프, 팀파니) (1974)
피아노 오중주 (1972-76)
현악 사중주 2번 (1981)
현악 사중주 3번 (1983)
현악 삼중주 (1985)
현악 사중주 4번 (1989)
현악 사중주를 위한 변주곡 (1997)
4. 4. 3. 대규모 실내악
- 대화(첼로, 7대의 악기)(1965)
- 세레나데(바이올린, 클라리넷, 더블베이스, 피아노, 타악기)(1968)
- 성가Ⅲ(첼로, 바순, 하프시코드, 종/팀파니)(1974)
- 성가Ⅳ(첼로, 바순, 더블베이스, 하프시코드, 하프, 팀파니, 종)(1974~79)
4. 5. 독주 악기
- 푸가(바이올린; 1953)는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다.
- 즉흥 연주(첼로; 1993)는 무반주 첼로를 위한 곡이다.
4. 6. 피아노
알프레트 시닛케는 6개의 전주곡(1953-54), 변주곡(1954-55)을 비롯하여 피아노 소나타 1번(1987-88), 피아노 소나타 2번(1990), 피아노 소나타 3번(1992) 등을 작곡했다.4. 7. 오페라
빅토르 예로페예프의 대본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바보와의 생활》이 1992년에 초연되었다.[19] 1991년부터 1994년까지는 오페라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를 작곡하였고, 1993년에는 《제수알도》를 작곡하였다.4. 8. 발레
4. 9. 합창
알프레트 시닛케는 오라토리오 "나가사키" (1958), 자연의 소리 (1972), 레퀴엠 (1975), 민네장크 (1981)를 작곡하였다. 1983년에는 파우스트 칸타타 "냉정하게, 눈을 떠라"를 작곡하였고, 3개의 성스러운 노래 (1984), 합창 협주곡 (1985), 회심의 시편 (1988)등을 작곡하였다.5. 수상
6. 평가 및 영향
참조
[1]
웹사이트
Alfred Schnittke
https://www.boosey.c[...]
2022-00-00
[2]
웹사이트
Interviews with Alfred Schnittke.
http://yanko.lib.ru/[...]
[3]
harvnb
1996
[4]
harvnb
1996
[5]
웹사이트
Alfred Schnittke Biography
http://www.boosey.co[...]
Boosey & Hawkes, Inc.
2008-08-11
[6]
웹사이트
В. Ю. Гаврилова «Пространство Альфреда Шнитке (к 80-летию со дня рождения)»
http://festival.1sep[...]
[7]
웹사이트
Viola Concerto (1985)
https://americansymp[...]
American Symphony Orchestra
2003-03-00
[8]
서적
Alfred Schnittke's Concerto for Choir: Musical analysis and historical perspectives
PhD diss., The Florida State University
2002-00-00
[9]
웹사이트
CD Spotlight. Outcast Composers. Giuseppe Pennisi listens to the Matangi Quartet
https://www.classica[...]
2024-06-22
[10]
뉴스
Alfred Schnittke, Eclectic Composer, Dies at 63
https://www.nytimes.[...]
1998-08-04
[11]
뉴스
A guide to the music of Alfred Schnittke
https://www.theguard[...]
2013-04-29
[12]
문서
Alexander Ivashkin, booklet notes to BIS-CD-1727 (2009).
[13]
문서
러시아어, 독일어, 유대인, 독일인 관련 설명
[14]
웹사이트
Alfred Schnittke - the composer's life and work
https://www.universa[...]
www.universaledition.com
2019-04-28
[15]
웹사이트
Alfred Schnittke: Symphony No. 9
https://www.ecmrecor[...]
www.ecmrecords.com
2019-04-28
[16]
웹사이트
Prokofiev: Cello Concertos
https://www.chandos.[...]
www.chandos.net
2019-04-28
[17]
웹사이트
Alfred Schnittke: Symphony No. 9
https://www.sikorski[...]
www.sikorski.de
2019-04-28
[18]
웹사이트
알프레드·슈니트케 - 고마쓰노미야덴카기념세계문화상
https://www.praemium[...]
2021-07-13
[19]
문서
これは直訳であり、もっともらしい訳は「バカと暮らして」。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