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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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음렬주의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조성 음악의 형식을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작곡 기법으로, 음높이, 리듬, 셈여림 등 음악의 여러 요소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하여 작품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창시한 12음 기법이 대표적이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올리비에 메시앙의 총렬주의로 발전했다. 음렬주의는 음악의 구조적 통일성을 추구하지만, 난해하다는 비판과 함께 우연성 음악 등 다른 음악 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요 작곡가로는 쇤베르크, 안톤 베베른, 알반 베르크, 피에르 불레즈,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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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렬주의 | |
|---|---|
| 정의 | |
| 주요 내용 | 12음 기법에서 음고뿐만 아니라 리듬, 음량, 아티큘레이션 등 음악의 모든 요소를 음렬화하여 작곡하는 기법 |
| 역사 | |
| 기원 | 12음 기법 |
| 발전 | 올리비에 메시앙의 《4개의 리듬 에튀드》 중 '음가와 강세의 양태' (Mode de valeurs et d'intensités, 1949) |
| 주요 작곡가 |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피에르 불레즈 루이지 노노 밀턴 배빗 |
| 특징 | |
| 음렬화 대상 | 음고 리듬 음량 아티큘레이션 |
| 연관 기법 | 총렬주의 점묘주의 (음악) 확률 음악 |
| 비판 | 지나치게 수학적이라는 비판 존재 |
2. 역사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조성에 기반한 기존 음악 형식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많은 작곡가들이 선법이나 재즈에서 비롯된 음계를 사용하거나 무조 음악을 시도했으며, 이러한 작곡 기법을 체계화하려는 노력도 이루어졌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12음렬 기법을 만들어냈고, 제2 빈 악파의 안톤 베베른 등이 이를 발전시켰다. 쇤베르크는 음높이에만 순열을 적용했지만, 베베른은 리듬까지 순열화했다.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면서 12음렬 기법 음악은 '타락한 음악'으로 분류되어 탄압받았다. 쇤베르크를 비롯한 유대인 작곡가들의 작품은 공연이 금지되었고, 쇤베르크는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올리비에 메시앙의 제자들은 베베른의 곡을 분석하여 음렬주의를 더욱 발전시켰다. 메시앙은 음높이, 리듬, 셈여림, 음빛깔 등 모든 음악적 요소를 순열적으로 구성하는 '총렬주의'를 제시했다.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피에르 불레즈 등 젊은 작곡가들은 음렬주의를 파시즘에 대한 저항으로 여겼으며, 이론가들은 음렬주의 음악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음렬주의는 우연성 음악 등 '과정에 의한 음악'의 발달에도 영향을 주었다.
2. 1. 20세기 초: 12음 기법의 탄생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조성에 기반한 기존 음악 형식을 탈피하는 음악을 모색하고 있었다. 많은 작곡가들이 선법이나 재즈에서 비롯된 음계를 사용하거나, 무조 음악을 쓰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작곡 기법을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1차 세계 대전 직후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12음렬 기법을 창시하여 이를 체계화하였다.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제2 빈 악파의 안톤 베베른 등이 이를 발전시켰다. 쇤베르크는 음높이에만 순열을 적용했지만, 베베른은 리듬까지 순열화하였다.
12음 기법 음렬주의는 1920년대에 처음 등장했지만, 그 기원은 이전 시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쇤베르크가 12음 기법의 기본 원리를 고안하고 시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한 개인의 업적만은 아니었다.
2. 2. 나치 시대: 탄압과 망명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면서 12음렬 기법 음악은 '인종법'에 의해 '타락한 음악(Entartete musik)'으로 분류되었다. 나치의 의도는 아르놀트 쇤베르크를 비롯한 몇몇 작곡가들이 유대인이었다는 점과 나치의 예술이 대부분 선전용이었다는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쇤베르크, 안톤 베베른, 알반 베르크의 음악은 공연이 금지되었고, 쇤베르크는 1933년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2. 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총렬주의와 발전
올리비에 메시앙의 제자들은 안톤 베베른의 곡을 분석하여 음렬주의를 발전시켰다. 메시앙은 음높이, 리듬, 셈여림, 음빛깔(터치의 종류나 악기의 음빛깔) 등 음악의 모든 요소를 순열적(세리엘, sérielle프랑스어)으로 구성하여, 각 음의 속성을 모든 면에서 고정시켜 음을 일종의 오브제로 취급하였다.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피에르 불레즈와 같은 젊은 작곡가들은 나치에 의해 억압받았던 음렬주의를 파시즘에 대한 저항으로 간주했다. 앨른 포트, 조지 펄 등의 이론가들은 음렬주의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제시했다. 음렬주의는 우연성 음악과 같은 '과정에 의한 음악'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리듬, 다이내믹 등 음악의 다른 요소들의 음렬화는 전후 파리에서 올리비에 메시앙과 그의 제자들(예: 카렐 고에이베르츠, 불레즈)의 연구에 의해 부분적으로 촉진되었다. 메시앙은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1944)에서 처음으로 반음계적 리듬 음계를 사용했지만, 『투랑갈릴라 교향곡』의 일곱 번째 악장 "투랑갈릴라 II" (1946-48)에서 처음으로 리듬 계열을 사용했다.

메시앙의 피아노곡 "4개의 리듬 연습곡"(Quatre Études de rythme, 1949-50) 중 제2곡 "음가와 강도의 모드"(1949)가 그 실마리가 되었다. 이 기법은 다름슈타트에서 불레즈, 슈톡하우젠 등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특히 슈톡하우젠은 다섯 번째 파라미터로서 "공간"을 창시했다. 이탈리아의 루이지 노노는 안톤 베베른이나 메시앙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인 전면적인 시리얼 기법을 직접 아르놀트 쇤베르크로부터 계승하여 고안하였으며, 정치적 사건과 음악을 강하게 결합시켜 메시앙의 어법과 다름슈타트의 어법에 날카롭게 대립했다.
2. 4. 이탈리아: 루이지 노노의 독자적 발전
이탈리아의 노노는 베베른이나 메시앙을 거치지 않고, 쇤베르크로부터 직접 독자적인 전면적인 시리얼 기법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노노는 정치적 사건과 음악을 강하게 결합시켰고, 메시앙의 어법과 다름슈타트의 어법에 날카롭게 대립했다.3. 기본 개념
음렬주의는 작곡법의 한 방법으로, "고도로 특화된 기법" 또는 "방식"으로 설명된다.[1] 이는 또한 "삶의 철학(''Weltanschauung''), 인간의 정신을 세상과 연결하고 어떤 대상에 대해 완전성을 창조하는 방식"으로도 여겨진다.
음렬주의는 그 자체로 작곡 체계나 스타일을 의미하지 않으며, 음고 음렬주의가 반드시 조성과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체로 무조 음악을 작곡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1]
음렬 작곡의 기초는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으로, 반음계의 12개 음을 음렬로 구성한다. 이 "기본" 음렬은 순열, 즉 요소의 재배열을 통해 기본 집합에서 파생된 음렬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음렬은 일련의 음정을 생성하거나, 작곡가가 특정 음정의 연속에서 음렬을 파생시킬 수 있다. 오름차순 형태의 모든 음정을 한 번씩 사용하는 음렬은 모든 음정 음렬이다. 기본 음렬은 파생된 음의 집합을 가질 수 있으며, 이를 사용하여 새로운 음렬을 생성하는데, 이를 ''파생 집합''이라고 한다.
12개 음을 모두 사용하는 조화 화성 진행이 있기 때문에, 매우 강력한 조적 함축을 가진 음높이 음렬을 만들 수 있으며, 12음 기법을 사용하여 조성 음악을 작곡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음렬은 음 중심을 암시할 수 있는 부분 집합을 포함하며, 작곡가는 이러한 부분 집합을 강조하거나 피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음렬의 구성 음 중 하나 이상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음악의 다른 요소를 음렬화하려면, 식별 가능한 요소를 정량화하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정의해야 한다(이는 수학 용어에서 따온 "매개변수화"라고 한다). 예를 들어, 지속 시간을 음렬화하는 경우, 일련의 지속 시간을 지정해야 하고, 음색이 음렬화되는 경우, 일련의 개별 음색을 식별해야 한다.
선택된 집합 또는 집합, 그들의 순열 및 파생 집합은 작곡가의 기본 재료를 구성한다.
12음 음렬 기법을 사용한 작곡은 총체라고 하는 12개의 반음계 음표의 각 출현에 중점을 둔다. (음높이 외의 요소로 구성된 더 많거나 적은 수의 집합도 유사하게 처리될 수 있다.) 일부 음렬 작품에서는 총체의 어떤 요소도 다른 모든 구성원이 사용될 때까지 동일한 대위법적 가닥(일련의 진술)에서 재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각 구성원은 일련의 해당 위치에서만 나타나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음렬 작곡은 여러 개의 일련의 진술이 동시에 발생하여 시간 속에서 서로 얽혀 있으며, 일부 음의 반복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이 원칙은 "음렬"이라고 불리는 음악 작품의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참조적 추상화에 가깝다.
일련의 음렬은 부분 집합으로 나눌 수 있으며, 부분 집합에 속하지 않는 총체의 구성원은 ''보완''이라고 한다. 부분 집합이 집합의 절반을 포함하고 보완도 원래 부분 집합의 순열인 경우, 해당 부분 집합은 ''자기 보완적''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음렬의 6음절인 ''6화음''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 특정 순열에 대해 자기 보완적인 6화음을 ''소수 조합적''이라고 한다. 반전, 역행, 역행 반전과 같은 모든 정식 연산에 대해 자기 보완적인 6화음을 ''전체 조합적''이라고 한다.
3. 1. 정의
음렬주의는 작곡법의 한 방법이며, "고도로 특화된 기법" 또는 "방식"이다.[1] 또한 "삶의 철학(''Weltanschauung''), 인간의 정신을 세상과 연결하고 어떤 대상에 대해 완전성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음렬주의는 그 자체로 작곡 체계나 스타일이 아니며, 음고 음렬주의는 조성과 반드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흔하게는 무조 음악을 작곡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1]
"음렬 음악"이라는 용어는 여러 언어에서 다르게 사용되고, 특히 프랑스어에서 만들어진 직후 독일어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본질적인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1947년 르네 레이보비츠에 의해 프랑스어에 처음 도입되었고, 그 직후 험프리 설에 의해 독일어 Zwölftontechnikde (십이음 기법) 또는 Reihenmusikde (행렬 음악)의 대체 번역으로 영어에 도입되었다. 1955년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과 헤르베르트 아이메르트에 의해 독일어 serielle Musikde로 독립적으로 도입되었는데, 이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음렬 음악"으로도 번역되었다.
3. 2. 용어의 문제점
"음렬 음악"이라는 용어는 여러 언어에서 다르게 사용되고, 특히 프랑스어에서 만들어진 직후 독일어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본질적인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1947년 르네 레이보비츠에 의해 프랑스어에 처음 도입되었고,[1] 그 직후 험프리 설에 의해 독일어 Zwölftontechnikde (십이음 기법) 또는 Reihenmusikde (행렬 음악)의 대체 번역으로 영어에 도입되었다. 1955년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과 헤르베르트 아이메르트에 의해 독일어에 serielle Musikde로 독립적으로 도입되었는데, 이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음렬 음악"으로도 번역되었다.3. 3. 12음렬주의
음렬주의의 가장 구체적인 유형은, 일련의 정돈된 요소(일반적으로 음높이 또는 음고 클래스의 집합 또는 음렬)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특정한 방식으로 조작되어 작품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구조적 원리로 정의된다. '음렬적'이라는 용어는 종종 쇤베르크가 "서로만 관련된 12개의 음표로 작곡하는 방법"[1] 또는 12음 기법이라고 불렀던 모든 음악과 그의 방법에서 진화한 방법을 광범위하게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때로는 음높이 외에 적어도 하나의 요소가 행렬 또는 음렬로 취급되는 음악에만 적용되도록 더 구체적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방법은 종종 '포스트-베베른 음렬주의'라고 불린다. 구분을 위해 사용되는 다른 용어로는 전자를 위한 '12음 음렬주의'와 후자를 위한 '총체적 음렬주의'가 있다.[1]음렬은 작곡 전에 구성될 수도 있고, 즉흥적으로 발명된 주제 또는 동기적 아이디어에서 파생될 수도 있다. 기본 집합에는 각 음정을 한 번만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 사항과 같은 추가 제한이 있을 수 있다.
3. 4. 12음렬주의를 벗어난 시도
12음 기법에서 파생된 분석 규칙은 두 번째 유형의 음렬주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시리즈가 음정 시퀀스라는 생각, 그리고 규칙이 일관적이라는 생각"이다.[1] 예를 들어, 슈톡하우젠의 초기 음렬 작품은 "미리 정해진 일련의 음고가 반복적으로 재구성되는 단위 섹션으로 진행"된다.앙리 푸쇠르는 12음 기법을 벗어나, ''Symphonies pour quinze Solistes''와 ''Quintette'' (''아톤 베베른을 추모하며'', 1955)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12음렬은 금지, 규제, 패턴화 권한으로서의 필수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12개 음고 사이의 66개의 모든 음정 관계가 사실상 존재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지속적이고 빈번한 존재를 통해 작동이 중단된다. 옥타브와 같은 금지된 음정, 조기 음표 반복과 같은 금지된 연속 관계는 조밀한 구조에서 모호하게 나타나지만 종종 발생한다. 숫자 12는 더 이상 지배적이고 정의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며, 12음 기법 시리즈는 형태의 구체적인 모델이 소진됨에 따라 그 중요성을 잃는다.
1960년대 푸쇠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리 정의된 일관된 변환 집합을 기존의 음악에 적용했다. 한 예로 대규모 관현악 작품 ''Couleurs croisées''(1967)가 있는데, 이 곡은 시위 노래 "We Shall Overcome"에 이러한 변환을 수행하여 때로는 반음계적이고 불협화음적이며 때로는 온음계적이고 협화음적인 일련의 다양한 상황을 만든다.
거의 동시에, 슈톡하우젠은 전 세계의 민속 음악과 전통 음악의 녹음된 예에서 다양한 음악 소스를 통합하기 위해 그의 전자 음악 작품 Telemusik(1966)과 Hymnen(1966–67)에서 국가를 음렬 방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4. 비판과 수용
그 후 나타난 가장 전형적인 비판으로 "너무 복잡해서 모두 똑같이 들린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당시의 음렬 시스템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며, 음렬 음악 자체에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재분석은 1990년대에 1950년대의 음악을 리처드 투프 등이 분석한 결과 밝혀진 것이다. 의외로 당시 음렬 음악의 작곡가들은 "귀"로 결정했으며, 한 번 결정된 시스템에 끝까지 맹종하거나, 음역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등 초보적인 실수도 많았다.
악곡 분석, 연주, 또는 감상이 매우 난해하다는 비판으로, 어떤 의미에서 이 기법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쇤베르크의 제자인 미국의 존 케이지가 이러한 사상을 모두 파괴해 버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이나 디터 슈네벨처럼 케이지 음악을 절충·변형하여 음렬 작곡법에 도입하거나, 그 사상의 외관만을 남긴 포스트 음렬 음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5. 주요 작곡가
- 아르놀트 쇤베르크[1]: 음렬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 안톤 베베른[1]
- 알반 베르크[1]
- 올리비에 메시앙[1]: 그의 피아노곡 "4개의 리듬 연습곡"(Quatre Études de rythme, 1949-50)의 제2곡 "음가와 강도의 모드"(1949)는 음렬주의 발전의 실마리가 되었다.
- 피에르 불레즈[1]: 메시앙의 기법을 다름슈타트에서 계승하였다.
-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1]: 메시앙의 기법을 다름슈타트에서 계승하였고, 다섯 번째 파라미터로서 "공간"을 창시했다.
- 루이지 노노[1]: 베베른이나 메시앙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인 전면적인 시리얼 기법을 쇤베르크로부터 직접 계승하여 고안했으며, 정치적 사건과 음악을 강하게 결합시켰다. 메시앙의 어법과 다름슈타트의 어법에 날카롭게 대립했다.
- 한스 아브라함센[1]
- 길버트 에이미[1]
- 루이 앤드리센[1]
- 데니스 아피보어[1]
- 한스 에리히 아포스텔[1]
- 케이스 반 바렌[1]
- 밀턴 배비트[1]
- 타데우시 바르트[1]
- 오스발다스 발라카우스카스[1]
- 돈 뱅스[1]
- 장 바라케[1]
- 위르크 바우어[1]
- 군나르 베르크[1]
- 아서 버거[1]
- 에릭 베리만[1]
- 루치아노 베리오[1]
- 칼-비르거 블롬달[1]
- 콘라트 뵈머[1]
- 롭 뒤 부아[1]
- 앙드레 부쿠레슐리예프[1]
- 마틴 보얀[1]
- 올레 벅[1]
- 자크 칼론[1]
- 니콜로 카스티글리오니[1]
- 알도 클레멘티[1]
- 살바도르 콘트레라스[1]
- 애런 코플런드[1]
- 루이지 달라피콜라[1]
- 프랑코 도나토니[1]
- 한스 아이슬러[1]
- 마누엘 엔리케스[1]
- 카를하인츠 에슬[1]
- 프랑코 에반젤리스티[1]
- 브라이언 페르니호[1]
- 야코보 피셔[1]
- 어빙 파인[1]
- 볼프강 포르트너[1]
- 로베르토 게르하르트[1]
- 프란스 헤이선[1]
- 미하엘 힐렌[1]
- 알베르토 히나스테라[1]
- 루시앙 괴텔스[1]
- 카렐 호에바르츠[1]
- 제리 골드스미스[1]
- 헨리크 구레츠키[1]
- 글렌 굴드[1]
- 펠레 구드문센-홀름그렌[1]
- 세자르 게라-페이셰[1]
- 루 해리슨[1]
- 조나단 하비[1]
- 요제프 마티아스 하우어[1]
- 파보 헤이니넨[1]
- 헤르만 하이[1]
- 한스 베르너 헨체[1]
- 요르크 횔러[1]
- 하인츠 할리거[1]
- 빌 홉킨스[1]
- 클라우스 후버[1]
- 카렐 후사[1]
- 한스 젤리네크[1]
- 벤 존스턴[1]
- 니콜라이 카레트니코프[1]
- 루돌프 켈터본[1]
- 고트프리트 미하엘 쾨니히[1]
- 요제프 코플러[1]
- 에른스트 크레네크[1]
- 마이어 쿠퍼만[1]
- 르네 레이보비츠[1]
- 잉바르 리드홀름[1]
-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1]
- 엘리자베스 루티엔스[1]
- 존 맥과이어[1]
- 브루노 마데르나[1]
- 우르줄라 맘로크[1]
- 필리프 마누리[1]
- 도널드 마르티노[1]
- 폴 메파노[1]
- 자크-루이 모노[1]
- 로버트 모리스[1]
- 페르 뇌르고르[1]
-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1]
- 고프레도 페트라시[1]
- 미셸 필리포[1]
- 월터 피스톤[1]
- 앙리 푸쇠르[1]
- 에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1]
- 로저 레이놀즈[1]
- 테리 라일리[1]
- 조지 로크버그[1]
- 레너드 로젠먼[1]
- 클라우디오 산토로[1]
- 피터 스캇[1]
- 레온 시들로프스키[1]
- 디터 슈네벨[1]
- 험프리 설[1]
- 루스 크로퍼드 시거[1]
- 머서시 세이버[1]
- 로저 세션스[1]
- 니코스 스칼코타스[1]
- 로저 스멜리[1]
- 앤 사우샘[1]
- 레오폴트 스피너[1]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
- 로버트 서더버그[1]
- 리처드 스위프트[1]
- 루이스 탤마[1]
- 카밀로 토니[1]
- 질 트렘블레이[1]
- 파르테인 발렌[1]
- 블라디미르 보겔[1]
- 휴고 바이스갈[1]
- 피터 웨스터가드[1]
- 슈테판 볼페[1]
- 찰스 우어리넨[1]
- 라 몬테 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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