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다 미노루
1. 개요
야나기다 미노루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가고시마현 출신으로 도쿄 대학 졸업 후 고베 제강소에서 근무했다. 1990년 민사당 소속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며, 이후 신진당, 민주당, 국민민주당 등을 거치며 참의원 의원을 지냈다. 간 나오토 내각에서 법무대신 겸 납치 문제 담당 대신을 역임했다.
| 이름 | 야나기다 미노루 |
|---|---|
| 원어 이름 | 柳田 稔 |
| 로마자 표기 | Yanagida Minoru |
| 출생일 | 1954년 11월 6일 |
| 출생지 |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 |
| 소속 정당 | 국민민주당 |
| 기타 소속 정당 | 민사당 신진당 민주당 민진당 |
| 학력 | 도쿄 대학 공학부 선박공학과 졸업 |
| 학위 | 공학사 |
| 전직 | 고베 제강소 직원 |
| 웹사이트 | 참의원 의원 야나기다 미노루 (2022년 8월 7일 보관)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법무대신 | 제84대 |
|---|---|
| 내각 | 간 나오토 제1차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 | 2010년 9월 17일 |
| 임기 종료 | 2010년 11월 22일 |
| 라치 문제 담당 대신 | 라치 문제 담당 대신 |
| 참의원 의원 | 선거구: 히로시마현 선거구 당선 횟수: 4회 |
| 참의원 의원 임기 시작 | 1998년 7월 26일 |
| 참의원 의원 임기 종료 | 2022년 7월 25일 |
| 중의원 의원 | 선거구: 구 히로시마 3구 당선 횟수: 2회 |
| 중의원 의원 임기 시작 | 1990년 2월 19일 |
| 중의원 의원 임기 종료 | 1996년 9월 27일 |
| 참의원 후생노동위원장 | 임기: 2009년 ~ 2010년 |
| 참의원 재정금융위원장 | 임기: 2010년 |
| 민주당 참의원 간사장 | 임기: 20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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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민주당 (2018년 일본)의 정치인 -
이즈미 겐타
이즈미 겐타는 1974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태어나 2003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된 후 민주당 정권에서 내각부 부대신을 역임하고, 2021년 입헌민주당 대표가 되어 중도 자유주의, 진보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
국민민주당 (2018년 일본)의 정치인 -
다마키 유이치로
다마키 유이치로는 일본 국민민주당 대표이자 중의원 의원으로, 대장성 관료 출신으로 민주당 공천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여 현재까지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
가고시마시 출신 -
다나카 고타로
다나카 고타로는 일본의 법학자이자 판사로,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상법 연구와 정치 활동을 거쳐 최고재판소 장관과 국제사법재판소 판사를 역임했으며, 1974년에 사망했다. -
가고시마시 출신 -
가미카와 도루
가미카와 도루는 일본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국제 축구 심판으로, 선수 은퇴 후 심판으로 활동하며 FIFA 월드컵에서 주심을 맡았고, 심판 은퇴 후에는 일본 축구 협회 이사 및 심판 위원장을 역임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
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2. 생애
야나기다 미노루는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이다. 가고시마현립 쓰루마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도쿄 대학 교양학부 이과 I류에 입학하여 이와사키 학생 기숙사에 재적했지만 자퇴했다. 이후 스시집에서 5년간 수련을 쌓았다。1981년 도쿄 대학 공학부 선박공학과에 다시 입학하여 1983년 3월 졸업했다. 같은 해 4월, 고베 제강소에 입사하여 구레 공장에 배속되었다.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구 히로시마 3구에서 민사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처음 당선되었고, 1993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재선되었다. 자사사 연립 정권 발족 후 민사당은 해산했고, 야나기다를 포함한 같은 당 의원 대부분은 신진당 결성에 참가했다.
1996년 소선거구제 도입 후 첫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히로시마 7구에서 자민당의 미야자와 기이치에게 완패하여 낙선했다. 1998년 제1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히로시마현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참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3선 연임했다. 후에 민주당에 입당하여 제20회, 제22회에서는 같은 당 공천으로 재선되었다.
2010년 7월, 민주당 참의원 간사장에 취임했다. 2011년 참의원 동일본 대지진 부흥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2012년 참의원 예산위원장에 취임했으며, 같은 해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중앙 대표 선거 관리 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 6월 11일 사민당의 야마우치 노리노부가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나고시 헤노코 이설에 대해 "헤노코 신기지 건설은 살인을 하는 전쟁 목적으로 한 비행장 건설이다. (미국의) 해병대가 사용하는 기지는 살인을 위한 것이다."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6월 20일 같은 위원회에서 "그런 목소리도 오키나와에 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2016년 7월 10일 제24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히로시마현 선거구에 민진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2위로 4선에 성공했다. 2018년 민진당과 희망의 당 합당으로 결성된 국민민주당에 참여했고, 같은 날 양원 의원 총회장에 취임했다. 2020년 9월 8일, 다마키 유이치로가 결성하는 신 "국민민주당" 및 합류 신당인 "입헌민주당" 어느 쪽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표명했다.
2.1. 초기 생애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이다. 가고시마현립 쓰루마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도쿄 대학 교양학부 이과 I류에 입학하여 이와사키 학생 기숙사에 재적했지만 자퇴했다. 이후 스시집에서 5년간 수련을 쌓았다。1981년 도쿄 대학 공학부 선박공학과에 다시 입학하여 1983년 3월 졸업했다. 같은 해 4월, 고베 제강소에 입사하여 구레 공장에 배속되었다.
2.2. 정치 경력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구 히로시마 3구에서 민사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처음 당선되었고, 1993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재선되었다. 민사당은 자사사 연립 정권 발족 후 해산했고, 야나기다를 포함한 같은 당 의원 대부분은 신진당 결성에 참가했다.
1996년 소선거구제 도입 후 첫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히로시마 7구에서 자민당의 미야자와 기이치에게 완패하여 낙선했다. 1998년 제1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히로시마현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참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 3선 연임했다. 후에 민주당에 입당하여 제20회, 제22회에서는 같은 당 공천으로 재선되었다.
2010년 7월, 민주당 참의원 간사장에 취임했다. 2011년 참의원 동일본 대지진 부흥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2012년 참의원 예산위원장에 취임했으며, 같은 해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중앙 대표 선거 관리 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 6월 11일 사민당의 야마우치 노리노부가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나고시 헤노코 이설에 대해 "헤노코 신기지 건설은 살인을 하는 전쟁 목적으로 한 비행장 건설이다. (미국의) 해병대가 사용하는 기지는 살인을 위한 것이다."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6월 20일 같은 위원회에서 "그런 목소리도 오키나와에 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2016년 7월 10일 제24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히로시마현 선거구에 민진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2위로 4선에 성공했다. 2018년 민진당과 희망의 당 합당으로 결성된 국민민주당에 참여했고, 같은 날 양원 의원 총회장에 취임했다. 2020년 9월 8일, 다마키 유이치로가 결성하는 신 "국민민주당" 및 합류 신당인 "입헌민주당" 어느 쪽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표명했다.
2.2.1. 민사당 ~ 신진당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구 히로시마 3구에서 민사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처음 당선되었다. 1993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재선되었다. 같은 해 8월, 민사당이 처음으로 여당에 참여한 호소카와 내각이 탄생했지만, 8개월 만에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퇴진했고, 뒤이은 하타 내각도 2개월 만에 총사직했다. 민사당은 자사사 연립 정권 발족 후에 해산했고, 야나기다를 포함한 같은 당 의원 대부분은 신진당 결성에 참가했다. 1996년 소선거구제 도입 후 첫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히로시마 7구에서 자민당의 미야자와 기이치에게 완패하여 낙선했다.
2.2.2. 민주당
1998년 제1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 히로시마현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참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이후 3선 연임했다. 후에 민주당에 입당하여 제20회, 제22회에서는 같은 당 공천으로 재선되었다. 2009년 9월, 참의원 후생노동위원장에 취임하여 2010년 3월 25일에는 아동 수당 법안의 표결을 실시했다. 2010년 7월, 민주당 참의원 간사장에 취임。
2.2.3. 법무대신 및 납치 문제 담당 대신
2010년 9월 17일 발족한 간 나오토 제1차 개조 내각에서 법무대신 겸 납치 문제 담당 대신으로 처음 입각했다. 취임 직후 기자 회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질문에, 민사당 시절부터 당 차원에서 납치 문제에 임해 왔으며 앞으로도 특정 실종자 문제 조사회나 대한민국 관계자로부터 정보를 얻어 납치 피해자 귀국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납치 문제와 관련하여 납치 의원 연맹에 참가하는 등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기에, 납치 피해자 가족회에서는 야나기다와 면식이 없고 납치 문제에 대한 견식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 센고쿠 요시토내각관방장관은 "그는 지금까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만한 인맥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실적 부족이라는 우려를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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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법무대신 퇴임 후
2011년 참의원 동일본 대지진 부흥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위원장 선거는 12년 만에 실시되었다。2012년 참의원 예산위원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중앙 대표 선거 관리 위원장을 맡았다。2012년 민주당 간사장 대리에 취임했다。
2013년 6월 11일 사민당의 야마우치 노리노부가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나고시 헤노코 이설에 대해 "헤노코 신기지 건설은 살인을 하는 전쟁 목적으로 한 비행장 건설이다. (미국의) 해병대가 사용하는 기지는 살인을 위한 것이다."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6월 20일 같은 위원회에서 "그런 목소리도 오키나와에 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자민당의 사토 마사히사방위 정무관이 야마우치에게 발언 철회를 요구한 것을 문제 삼아 "의원이 위원회에서 발언하는 것은 헌법으로 인정된다."라고 말하며 야마우치를 옹호했다。
2015년 1월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는 전 간사장 호소노 고시의 추천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 7월 10일 제24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히로시마현 선거구에 민진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2위로 4선에 성공했다.
2.2.5. 국민민주당
2018년 민진당과 희망의 당 합당으로 결성된 국민민주당에 참여했다. 같은 날, 양원 의원 총회장에 취임했다. 2020년 9월 8일, 다마키 유이치로가 결성하는 신 "국민민주당" 및 합류 신당인 "입헌민주당" 어느 쪽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표명했다.
3. 정책 및 활동
의원 연금 폐지 법안 표결에서 "여당 안에 반대하면 연금 수급을 선택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기권했다.
2007년 4월 12일 아소 타로 외무대신이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 약 1분 늦게 도착한 것에 격노하여 위원장으로서 개회를 거부했다.
2007년 6월 20일 이라크 특별 조치법 개정안을 심의 시간 11시간 30분으로 강행 표결한 타우라 나오 위원장을 "충분한 심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며, 해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2010년 8월 3일 당 참의원 간사장에 취임하면서, 민주당의 매니페스토에 명시된 참의원 정수 40석 삭감 방침에 대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언급한 뒤 "우선 민주당으로서의 생각을 정리해나가야 한다"며, 조속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전력총련의 지지를 받으며, 주고쿠 지방의 국회의원 및 지방 의원 등으로 구성된 "미래의 환경・에너지 정책을 생각하는 회" 회장을 맡고 있다.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에 대한 선택형 설문 조사에서 "어느 쪽이냐 하면 찬성"이라고 답했다.
2010년 10월, 법무대신으로서 오사카 지방 검찰청 특수부 증거 위조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오쓰보 히로미치, 사가 모토아키, 마에다 쓰네히코 각 검사를 징계 면직했다.
4. 선거 이력
| 선거명 | 당락 | 선거구 | 정당명 | 득표수 | 득표율 | 득표순 | 후보자 수 | 연령 |
|---|---|---|---|---|---|---|---|---|
|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당선 | 구 히로시마 3구 | 민사당 | 79,718표 | 15.21% | 4 / 5 | 7명 | 35세 |
|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당선 | 구 히로시마 3구 | 민사당 | 73,433표 | 14.80% | 3 / 5 | 8명 | 38세 |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낙선 | 히로시마 7구 | 신진당 | 69,603표 | 34.66% | 2 / 1 | 4명 | 41세 |
| 제18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당선 | 히로시마현 | 무소속 | 287,923표 | 22.57% | 2 / 2 | 7명 | 43세 |
| 제20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당선 | 히로시마현 | 민주당 | 509,875표 | 42.62% | 1 / 2 | 4명 | 49세 |
|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당선 | 히로시마현 | 민주당 | 295,276표 | 24.53% | 2 / 2 | 5명 | 55세 |
| 제24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 당선 | 히로시마현 | 민진당 | 264,358표 | 23.15% | 2 / 2 | 7명 | 61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