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노 고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호소노 고시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교토부 출신이다. 2000년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후 민주당, 민진당, 희망의 당을 거쳐 2021년 자유민주당에 입당했다. 간 나오토 내각에서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환경대신 등을 역임했으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대응을 담당했다. 헌법 개정, 외교 및 안전 보장, 젠더 관련 정책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으며, 불륜, 정치 자금 문제, 발언 논란 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호소노 고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2011년 촬영된 공식 사진
원어 이름細野 豪志 (ほその ごうし)
출생일1971년 8월 8일
출생지교토부 아야베시
소속 정당자유민주당 (2021년~)
기타 소속 정당민주당 (2000–2016)
민진당 (2016–2017)
희망의 당 (2017–2018)
무소속 (2018–2021)
배우자정보 없음
출신 학교교토 대학
웹사이트정보 없음
관직
환경대신총리: 노다 요시히코
임기 시작: 2011년 9월 2일
임기 종료: 2012년 10월 1일
전임: 에다 사츠키
후임: 나가하마 히로유키
중의원 의원선거구: 시즈오카 7구 (2000–2003)
시즈오카 5구 (2003–현재)
임기 시작: 2000년 6월 26일
전임: 기베 요시아키
후임: 정보 없음
학력
학위법학 학사 (교토 대학, 1995년)
경력
이전 직업미쓰비시 UFJ 리서치&컨설팅 연구원
중의원 의원 공설 제2비서
민진당 대표 대행대표: 렌호 (2016년 9월 ~ 2017년 4월)
민주당 정책 조사 회장대표: 노다 요시히코 (2012년 9월 ~ 2012년 12월)

대표: 오카다 가쓰야 (2015년 1월 ~ 2016년 3월)
민주당 간사장대표: 가이에다 반리 (2012년 12월 ~ 2013년 7월)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원자력 방재)노다 제2차 개조 내각 (2012년 9월 19일 ~ 2012년 10월 1일)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원자력 행정)노다 내각, 노다 제1차 개조 내각, 노다 제2차 개조 내각 (2011년 10월 3일 ~ 2012년 10월 1일)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원자력 손해 배상 지원 기구)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 노다 내각 (2011년 8월 10일 ~ 2011년 10월 3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수습 및 재발 방지 담당 대신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 노다 내각, 노다 제1차 개조 내각, 노다 제2차 개조 내각 (2011년 6월 27일 ~ 2012년 10월 1일)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소비자 및 식품 안전)(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 (2011년 6월 27일 ~ 2011년 9월 2일)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원자력 발전소 사고 전반에 대한 대응 및 홍보 담당)(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 (2011년 4월 16일 ~ 2011년 6월 27일)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사회 보장·세금 일체 개혁 및 국회 대책 담당)(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 (2011년 1월 18일 ~ 2011년 4월 16일)
중의원 의원(시즈오카현 제7구 →) 시즈오카현 제5구 (당선 9회) (2000년 6월 27일 ~ 현재)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희망의 당의 정치인 - 이즈미 겐타
    이즈미 겐타는 1974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태어나 2003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된 후 민주당 정권에서 내각부 부대신을 역임하고, 2021년 입헌민주당 대표가 되어 중도 자유주의, 진보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 희망의 당의 정치인 - 고이케 유리코
    고이케 유리코는 카이로 대학교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환경대신, 방위대신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도쿄도지사로 재임 중인 일본의 정치인으로, 도민제일회를 창당하고 희망의 당을 이끌기도 했으며 경제 자유주의와 우익 포퓰리즘 성향으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 일본의 환경대신 - 고이케 유리코
    고이케 유리코는 카이로 대학교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환경대신, 방위대신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도쿄도지사로 재임 중인 일본의 정치인으로, 도민제일회를 창당하고 희망의 당을 이끌기도 했으며 경제 자유주의와 우익 포퓰리즘 성향으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 일본의 환경대신 - 고이즈미 신지로
    고이즈미 신지로는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들이자 일본 정치인으로, 중의원 의원, 자유민주당 주요 직책, 환경대신을 역임하며 활동했고 신자유주의적 경제관과 환경·젠더 문제에 대한 입장을 보였으며,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다.
  • 민진당의 정치인 - 에다노 유키오
    에다노 유키오는 1993년 정계 입문 후 민주당에서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고 동일본대지진 당시 정부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립헌민주당을 창당하여 대표를 역임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 민진당의 정치인 - 아즈미 준
    아즈미 준은 1996년부터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NHK 기자 출신으로 일본신당, 민주당 등을 거쳐 현재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국회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2. 생애

교토부 아야베시 출신으로, 시가현 오미하치만시에서 성장하였다. 교토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UFJ 종합 연구소(현 미쓰비시 UFJ 리서치 & 컨설팅)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0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시즈오카 7구에 출마하여 첫 당선되었으며,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시즈오카 5구에서 재선되었다. 마에하라 세이지가 민주당 대표가 되자 당역원실장을 맡았고, 오자와 이치로가 후임 대표가 되었을 때도 유임되었다. 2006년에는 TBS의 야마모토 모나와의 불륜 사진이 보도되어 당직에서 물러났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시즈오카현 제5구에 출마해 4선에 성공하였다. 2011년 간 나오토 내각에서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에 기용되었으며,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대응 및 홍보를 담당하게 되었다. 같은 해 6월에는 국무대신으로 임명되어 소비자 및 식품 안전, 절전 계발, 원자력 발전소 사고 수습 및 재발 방지를 담당했다.

2021년 11월 5일 자유민주당에 입당했다.

2.1. 초기 생애 및 학창 시절

1971년 8월 21일 교토부 아야베시에서 태어나, 시가현 오미하치만시에서 성장하였다. 오미 형제사 중학교, 시가현립 히코네히가시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교토대 재학 중에는 사토 코지의 세미나에 소속되었다. 1995년 대학 졸업 후, 미쓰와 종합연구소 (현·미쓰비시 UFJ 리서치&컨설팅)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1996년에 결혼하였다.

2.2. 정치 입문

2000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구 시즈오카 7구에서 출마하여 자유민주당의 키베 요시아키, 보수무소속의 쿠리하라 히로야스 등을 꺾고 첫 당선되었다. 2002년 선거구 구획 변경으로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시즈오카 5구에서 출마, 자유민주당의 사이토 토시지를 꺾고 재선되었다. 이후 시즈오카 5구에서 7선 연속 당선되었다.

2005년 마에하라 세이지 민주당 대표 아래에서 당 간사장에 취임했다. 가짜 이메일 문제로 마에하라가 사임한 후, 후임 오자와 이치로 아래에서도 당 간사장에 유임되었다. 2007년 9월, 정책 조사회 수석 부회장에 취임하여 당직에 복귀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4선에 성공했다.

2.3. 민주당 정권 시절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시즈오카현 제5구에 출마해 4선에 성공하였다. 민주당에 의한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으로의 정권 교체 후, 2009년 10월 민주당 조직위원장·기업단체대책위원장·부간사장에 기용되었다. 2010년 6월 민주당 기업단체대책위원장에 재임했다.

2011년 1월, 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에서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사회 보장·세금 일체 개혁 및 국회 대책 담당)으로 임명되었다.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에 따라, 4월 15일부터 담당 사항이 "원자력 발전소 사고 전반에 대한 대응 및 홍보 담당"으로 변경되었다.

6월 27일, 원전 사고의 수습 및 재발 방지 담당 대신, 절전 계몽 담당 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소비자 및 식품 안전)으로 임명되어 첫 입각했다. 8월 10일, 원자력 손해 배상 지원 기구법이 공포·시행되어,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원자력 손해 배상 지원 기구)을 겸임했다.
--
2011년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는 마에하라 세이지의 추천인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마에하라는 1차 투표에서 3위로 끝났다. 9월에 발족한 노다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원자력 손해 배상 지원 기구)에 재임명된 데 더해, 환경대신으로 임명되었다. 10월 3일,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원자력 행정)의 보직 사령을 받았다.

2012년 9월, 민주당 대표 선거 출마를 요청받았지만, 고사했다. 9월 19일,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원자력 방재)의 보직 사령을 받았다. 9월 28일, 노다 제3차 개조 내각 발족에 따라, 환경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원자력 방재·원자력 행정)을 퇴임하고, 민주당 정책 조사 회장에 취임했다.

2.4. 민주당 하야 이후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가이에다 반리를 지지했고, 가이에다 아래에서 민주당 간사장에 기용되었다. 2012년 12월 28일, 민주당의 다음 내각에서 넥스트 부총리에 취임했다.
--

2.5. 민진당 탈당과 희망의 당 창당

2017년 4월 10일 발매된 월간지 『중앙공론』에서 일본국 헌법 개정 사안을 공표했다가 당내 비판을 받고 4월 13일 민진당 대표 대행을 사임했다. 2017년 8월 4일, 민진당을 탈당할 의향을 표명하고, 8월 8일 탈당계를 제출했다. 와카사 마사루 중의원 의원과 협력하여 신당 결성을 추진했다. 2017년 9월 25일, 신당 "희망의 당" 설립을 신고했다.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시즈오카현 제5구에서 희망의 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7선에 성공했다. 2017년 11월, 희망의 당 헌법 조사 회장에 취임했다.

2.6. 무소속 및 자민당 입당

2018년 4월, 국민민주당 결성에 참여하지 않고 무소속이 되었다. 2019년 1월 31일, 자유민주당의 파벌인 지수이회(니카이파)에 특별 회원으로 입회했다. 2019년 7월 2일, 나가시마 아키히사와 함께 자민당의 중의원 회파 "자유민주당·무소속의 회"에 입회했다. 2021년 10월의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8선에 성공했으며, 2021년 11월 5일 자유민주당에 입당했다.

3. 정책 및 주장

호소노 고시는 2015년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으나 결선 투표에서 오카다 가쓰야에게 패했다. 오카다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 정책조사회장으로 기용되었으나, 2016년 3월 27일 민주당과 유신당의 합당으로 민진당이 결성되면서 야마오 시오리에게 정책조사회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2016년 민진당 대표 선거에서는 렌호 대표 대행을 지지했으며, 선거 후 아즈미 준, 에다 겐지와 함께 대표 대행에 취임했다.

3.1. 헌법

호소노 고시는 헌법개정에 대해 2017년, 2021년 설문조사에서 찬성 입장을 밝혔다. 특히 9조 개헌과 관련하여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 설문조사에서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조사에서는 개정해야 할 항목으로 다음을 제시했다.

* 자위대 보유 명기
* 교육 충실을 위한 환경 정비 명기
* 지방 공공 단체의 권한 강화 명기
* 긴급 사태에 관한 조항 신설

또한, 헌법 개정을 통해 긴급 사태 조항을 신설하는 것에 대해서도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 설문조사에서 찬성했다.

호소노 고시는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하며, 마에하라 세이지가 주재하는 방위 연구회에 참가했다.

3.2. 외교 및 안전 보장

* 안전 보장 관련 법 성립에 대해 2017년 설문 조사에서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적 기지 공격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2021년 설문 조사에서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2017년 설문 조사에서 "어느 쪽인가 하면 찬성"이라고 응답했고, 2021년 설문 조사에서는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 문제에 대해 2021년 설문 조사에서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 징용공 소송 등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의 설문 조사에서 "정부의 현재 외교 방침이 좋다"라고 응답했다.
* 2003년, 후루카와 모토히사, 마쓰모토 다케아키, 오쓰카 고헤이, 마쓰이 고지, 아사오 게이이치로와 함께 "1000만 명 이민 수용 구상"을 제창했다.

3.3. 젠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찬성한다. 동성혼을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에 대해 "어느 쪽이냐 하면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2015년에는 성적 소수자 차별을 없애기 위한 초당파 의원 연맹 "LGBT에 관한 과제를 생각하는 의원 연맹" 발기인 및 고문을 맡았다. LGBT 등 성적 소수자를 둘러싼 이해 증진 법안의 조기 성립에 찬성하며, 2023년 산케이 신문 인터뷰에서도 이 법안이 "고통받는 젊은이들을 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추진을 요구했다. 쿼터제 도입에 찬성한다.

3.4. 동일본 대지진 및 원자력 발전소 사고 대응

2011년 3월 15일, 간 나오토 내각총리대신의 지시로 도쿄 전력 본점에 상주했다. 같은 해 6월 원자력 발전 사고 담당 대신으로 취임하여 원자력 발전 사고에 대응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 후, 발신되는 정보를 일원화하기 위해, 기존의 정부·도쿄 전력·원자력 보안원이 각자 진행하던 회견을 2011년 4월 25일부터 일원화하여 정보의 투명성, 정확성 향상을 꾀했다.

2011년 7월 회견에서 "오염수가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차수벽은 매우 중요한 프로세스이며, 가능한 한 빠른 단계에서 착공할 수 있는지 검토를 시작했다"고 발언했다. 이후, 폐로, 오염수 문제에 대처하는 폐로 기구 창설 등을 포함한 사안을 제안하는 등, 야당이 된 후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2011년 3월 22일부터 미일 회의를 주최했으며, 같은 해 6월,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국제적인 협력을 요청하고, 사고 개요를 설명할 목적으로 정부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에 파견되었다. 미국에서는 존 홀드런 대통령 보좌관 (과학기술 담당), 원자력 규제 위원회 위원장인 그레고리 야츠코, 국무부 차관 토마스 나이스 등과 면담을 갖고, 사고 조사 보고를 한 후, 추가적인 협력 관계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방미 후, 영국과 프랑스도 방문하여 사고 개요와 조사 보고에 대한 설명을 했다.

후쿠시마현 내에 확산된 방사능량을 저감시키기 위해, 환경성을 중심으로 내각부,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로 구성된 후쿠시마 제염 추진팀을 발족시켰다.

2013년 1월 6일, 대한민국으로부터의 사용후 핵연료 수용을 검토하고 있던 것이 도쿄 신문에 보도되었다. 2012년 5월 25일, 호소노가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원자력 방재·원자력 행정·원자력 손해 배상 지원 기구)이었던 시기에, 호소노의 주재 하에, 엔도 테츠야 전 IAEA 이사회 의장, 아키야마 노부마사 히토츠바시 대학 교수 등을 중심으로 사적 검토 회의 "핵 확산 연구회"가 열렸다. 이 검토회에서 "롯카쇼 재처리 공장을 이용한 타국의 사용후 연료 처리·반환 가능성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핵연료 주기 전체의 추가적인 '국제화'를 추진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는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2011년 9월 4일에 열린 회견에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오염 물질 처리에 대해 언급하며, "후쿠시마의 고통을 일본 전체가 함께 나누는 것이 국가로서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후쿠시마를 최종 처분장으로 하지 않겠다는 것은 방침으로 최대한 관철하고 싶다"고 말했다.

3.5. 기타

* 아베노믹스에 대해 2017년 설문조사에서 "어느 쪽이라고 하면 평가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 아베 내각의 모리토모 학원 문제·가케 학원 문제 대응에 대해, 2017년 설문조사에서 "평가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매각 관련 공문서 위조 문제에 대한 국가의 대응에 대해, 2021년 마이니치 신문 설문조사에서 답변하지 않았다.
* "치안 유지를 위해 프라이버시나 개인의 권리가 제약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에 대해, 2017년 설문조사에서 "어느 쪽이라고 하면 반대"라고 답변했다.
*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 선거권 부여에 대해, 2009년 설문조사에서 "어느 쪽이라고 하면 반대"라고 답변했으며, 이후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2017년 설문조사에서 "어느 쪽이라고 하면 반대"라고 답변했다.
* 야스쿠니 신사에 위령하러 간다고 발언한 적이 있으며, A급 전범 분사 후 무종교 국립 추도 시설을 새로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를 위령 시설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에 입각한 이후에는 외교적 배려를 중시하여 8월 15일에는 참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2009년 12월 20일, TV 아사히 프로그램에서 천황 특례 회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하모다 신고 궁내청 장관에 대해 "안에서 이런저런 말 하는 것은 좋지만, 밖으로 내는 것은 어떤가"라고 비판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에 대해서도 "내각과 궁내청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2010년 9월 29일, 센카쿠 열도 중국 어선 충돌 사건으로 악화된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해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 요인과 비밀리에 회담했다.
* 가스미가세키 매장금에 대해 자신의 시산을 발표했다.
* 2012년 6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소비세 증세를 포함한 사회 보장·세 일체 개혁 관련 법안 제출에 반발하는 오자와 이치로 등과의 의견 대립이 있었다.
* 2008년 2월 21일, 도로 특정 재원 관련 보고서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 2009년 2월 3일, 국가 공무원의 낙하산 및 왕래 관련 정령의 모순을 지적했다.

4. 논란 및 비판

호소노 고시는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했다.

* 불륜 스캔들: 2006년 9월, 야마모토 모나와의 불륜이 보도되어 당직에서 물러났다.
* 정치 자금 문제: 2018년 2017년 중의원 선거 기간 중 증권 회사로부터 50을 받았으나, 선거 운동 비용 수지 보고서에 이를 누락해 논란이 되었다. 호소노는 개인 차입금을 보고하는 자산 보고서에서 이를 정정했지만, "약간의 인식 차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 일본 학술 회의 관련 유언비어 유포: 2020년 10월, 일본 학술 회의 회원 임명 문제와 관련하여 유언비어를 유포했다가 후에 철회했다.
* 자민당의 전쟁 포기 관련 발언: 2012년 11월 25일, 자민당이 전쟁을 추구한다는 발언을 하여 아베 신조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 선거 제도 개혁 관련 발언: 2013년 3월 7일, 선거 제도 개혁과 관련하여 아베 신조 총리에게 "도망가지 마십시오"라고 발언하여 논쟁을 벌였다.
* 아베노믹스 비판: 아베노믹스에 대해 "아이들의 미래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서 주가가 오르고 있다면,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닛교소(日教組)로부터의 선거 지원 요청: 2013년 2월 10일, 일본교직원조합(닛교소)에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지원을 요청했다.
* 여당의 심의 거부 관련 발언: 2013년 5월 7일, 여당의 심의 거부에 대해 트위터에 글을 올렸으나, 과거 민주당 여당 시절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 민진당에서 희망의 당으로의 합류 관련 발언: 2017년 민진당의 희망의 당 합류 결정 후, 민주당 정권 시절 총리를 지낸 인사들의 합류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여 노다 요시히코 등의 반발을 샀다. 이후 호소노는 자신의 발언이 고이케 유리코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 구 통일교와의 관계: 2013년 구 통일교 계열의 세계일보 전 사장으로부터 기부를 받았고, 2015년에는 『세계일보』에 인터뷰가 게재되었다.

4.1. 불륜 스캔들

2006년 9월, 야마모토 모나와의 불륜이 사진 주간지 《프라이데이》 (フライデー)에 보도되어 민주당 조사 회장 대리 직에서 물러났다. 야마모토 모나는 컨디션 불량을 이유로 10월 2일부터 TBS의 《지쿠시 데쓰야 NEWS23》 캐스터 출연을 쉬었고, 10월 23일부로 하차했다.

4.2. 정치 자금 문제

2018년 6월 28일, 호소노 고시가 2017년 중의원 선거 기간 중 증권 회사로부터 50을 받았으나, 선거 운동 비용 수지 보고서에 "차입금 없음"으로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호소노는 이후 개인 차입금을 보고하는 자산 보고서에서 이를 정정했다. 증권 회사에는 10월 13일경까지 호소노 사무실에서 "정치 활동 지원 목적"으로 대출을 요청했고, 19일에 자금이 제공되었다. 호소노는 기자 회견에서 "희망의 당 창설에 관여한 사람으로서, 선거 후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정치 자금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어 개인적으로 빌렸다"고 설명했다. 또한 "선거 자금이라는 생각은 없었고", "선거 후에 빌렸다는 생각이었으며, 약간의 인식 차이가 있었다"고 밝혔다.

4.3. 일본 학술 회의 관련 유언비어 유포

2020년 10월 일본 학술 회의 회원 임명 문제가 화제가 되었을 때, 히라이 후미오의 "학술 회의에서 6년 일하면, 일본 학사원에서 죽을 때까지 연금 2500"이라는 발언을 인용하여 SNS로 발신했다. 그러나 학술 회의와 학사원은 별개의 조직이며, 학사원으로 승격되는 제도는 없다는 점에서 유언비어였다. 호소노 고시는 후에 발언을 철회했다.

4.4. 자민당의 전쟁 포기 관련 발언

2012년 11월 25일, NHK 일요 토론 생방송에서 "자민당 안에는, 보통 국가가 되어 전쟁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꽤나, 생각하는 쪽이 그쪽에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같은 방송에서 자민당의 세코 히로시게는 "우리 당에 전쟁을 하고 싶다든지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전쟁 포기를 명확히 내걸고 있다"고 반박했고,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도 거리 연설에서 "한도를 넘은 말을 하고 있다", "(자민당 내에서) 누가 '전쟁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지.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만두세요'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自民党の戦争放棄について일본어는 제거한다.

4.5. 선거 제도 개혁 관련 발언

2013년 3월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민당이 제출한 0증 5감 법안(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소선거구제에서 "한 표의 격차"를 시정하기 위해 선거구 의원 정수를 조정하는 안으로, 의석수를 총 5석 삭감하고 정수 증가는 하지 않는 법안)에 대해 "도망가지 마십시오. 0증 5감은 정수 삭감이라는 이름에 값어치 없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 '도망가지 마세요'라는 말투는 매우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 않은 것은 당시 다수를 가지고 있던 민주당 아닙니까"라고 반박했다. 호소노는 "3월 중순까지, 총재로서 책임을 지고 당의 (정수 삭감) 안을 정리해서 가져오세요."라고 요구했고, 아베는 "여당 안이 만들어져서 여러분이 받아들이면, 그것이 성립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호소노는 "겸손한 표현으로 말씀드리지만, 약간 거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시바 시게루간사장이 말한) 3월 중순이라는 약속을, 총재로서도 확실히 지켜주실 수 있겠네요"라고 재차 추궁했고, 아베가 "이것은 제가 약속한 것이 아니니까요"라고 답하자 " '간사장이 했으니 총재는 모른다'니 통용될 리 없잖아요"라고 비판했다.

4.6. 아베노믹스 비판

거리 연설에서 아베 신조경제 정책 "아베노믹스"에 대해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본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서 주가가 오르고 있다면,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 민주당은 미래의 아이들의 지갑에 손을 대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비판했다.

4.7. 닛교소(日教組)로부터의 선거 지원 요청

2013년 2월 10일, 일본교직원조합(닛교소) 신년 교환회에 고시이시 아즈마와 함께 참석하여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온 정책은 틀리지 않았다. 힘을 합쳐 선거전을 치르고 싶다"고 말하며, 같은 해 7월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의 지원을 요청했다.

4.8. 여당의 심의 거부 관련 발언

2013년 5월 7일, 자민당공명당참의원 예산위원회 심의를 거부하자, 호소노는 트위터에 "여당이 심의를 거부하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라고 게시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여당이었던 2011년 3월 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2012년 10월 11일 결산행정감시위원회 등에서도 여당의 심의 거부 사례가 있었다.

4.9. 민진당에서 희망의 당으로의 합류 관련 발언

2017년 9월 28일, 민진당의 희망의 당 합류 결정 후, 호소노 고시는 "BS후지 LIVE 프라임뉴스" 등에서 "민진당 안에서 삼권의 장을 경험하신 분에 대해서는, 우선 사양해주십시오"라고 발언했다. 이는 민주당 정권 시절 총리를 지낸 칸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등의 희망의 당 합류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노다 요시히코는 다음날 "먼저 탈당해 간 사람의 다리 사이를 기어갈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반발하며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당선 후 노다는 호소노 고시가 자신에게 사과하며 해당 발언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명했음을 밝혔다.

이후 호소노 고시는 "노다 씨가 간사장일 때 공산당과의 공투를 진행했다", "매우 위화감이 들어서, 같은 당에서 하는 것은 어려웠다"라며 자신의 발언 배경을 설명했다.

4.10. 구 통일교와의 관계

2013년 자신의 정치 단체 "이즈 정책 연구회" 앞으로 구 통일교 계열의 세계일보 전 사장으로부터 30000JPY의 기부를 받았다. 2015년에는 『세계일보』에 인터뷰가 게재되었다.

5. 기타

마에하라 세이지는 교토 대학 법학부 선배이다. 호소노파라고 불리는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 와카야마 대학 교수인 아키야마 엔료는 소꿉친구이며, 우주 분야 전문가와 친분이 있어 치바 공업대학 교수인 마쓰이 다카노리나 교토 대학 전 총장인 마쓰모토 히로시와 친하다.

편집 공학 연구소 소장인 마쓰오카 세이고와 자주 대담을 하고 있으며, 민주당 신세대 5강의 "토발 경제"라는 말은 마쓰오카의 말을 차용한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영향을 받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연출가 스즈키 타다시와는 스즈키가 주최하는 토가 회의에 참가하는 등, 당선 직후부터 현재까지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과거에는 보수양당제를 주장하며, 공산당과의 공투에는 반대 입장을 취하는 등 마에하라 세이지, 나가시마 아키히사 등과 함께 민주당 보수파로 위치 지어졌다. 정치 이념으로 "현실적인 외교 안전 보장"과 "약한 사람의 입장에 서는 리버럴한 내정"을 내걸고 있다. 민주당·민진당 내에서는 보수계 의원으로 여겨졌다.

쓰지모토 기요미로부터 "당신에게서 멋짐을 빼면 뭐가 남는 거야"라는 말을 가끔 듣고 있다. 2013년에 차녀가 극저체중아로 태어났지만, 불과 9일 만에 사망했다.

6. 선거 이력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선거명당락선거구정당명득표수득표율 (%)후보자수득표순위연령
제42회 중의원 선거당선구 시즈오카현 제7구민주당73,04430.346128
제43회 중의원 선거당선시즈오카현 제5구민주당137,20149.393132
제44회 중의원 선거당선시즈오카현 제5구민주당148,00248.793134
제45회 중의원 선거당선시즈오카현 제5구민주당184,32859.043138
제46회 중의원 선거당선시즈오카현 제5구민주당156,88758.984141
제47회 중의원 선거당선시즈오카현 제5구민주당143,01258.563143
제48회 중의원 선거당선시즈오카현 제5구희망의 당137,52354.853146
제49회 중의원 선거당선시즈오카현 제5구무소속127,58051.814150
제50회 중의원 선거당선시즈오카현 제5구자유민주당141,02163.173153

7. 저서

* 《낙하산 후보 국회를 목표로 한 질풍노도의 전 기록》 (2003년 4월, 5월 서방) ISBN 4772703888
* 이와나미 북클릿 No.596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2003년 5월, 이와나미 서점, 구루시 테츠야・니시야마 타이키・호소노 고시・다지마 야스히코 공저) ISBN 4000092960
* 《증언 호소노 고시 "원전 위기 500일"의 진실에 토리고에 슌타로가 다가선다》 (2012년 8월, 고단샤) ISBN 978-4062177610
* 《미래를 향한 책임》 (2013년 6월, 카도카와one테마21) ISBN 978-4041104903
*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자기 조사 보고 심층 증언&부흥 제언:2011+10》 (2021년 2월, 도쿠마 서점, 호소노 고시 저, 카이누마 히로시 편) ISBN 978-4198652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