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추 (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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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추는 211년 마초, 한수와 함께 조조에게 대항했으나 동관 전투에서 패배한 후 조조에게 항복했다. 조조는 양추의 작위를 회복시키고 안정군을 다스리게 했다. 위나라가 건국된 후 토구장군에 임명되고 임경후에 봉해졌으며, 조비의 선양을 지지하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한수의 부하로 등장하며, 조조에게 항복하여 서량태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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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추 (조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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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원어 이름 | 楊秋 |
직함 | 토구장군 (討寇將軍) |
임기 시작 | 기원후 220년대 (추정) |
통치자 | 조비 |
작위 | 임경후 (臨涇侯) |
직업 | 장군 |
2. 생애
양추는 후한 말기와 삼국 시대 위나라의 장수였다. 211년 마초, 한수가 조조에게 대항할 때 이에 호응하여 봉기했다.[3]
2. 1. 초기 활동 및 조조에게 귀순
211년 마초와 한수가 조조를 공격할 때 이에 호응하여 참전했다.[3] 동관 전투에서 서량군이 조조군에게 패배한 후, 마초와 한수는 서량으로 후퇴했으나 양추는 안정군(安定郡; 현재의 핑량시, 간쑤성 일대)으로 갔다.[1] 그 해 10월에 조조와 하후연 등이 안정을 공격하자 조조에게 항복했다.[5] 조조는 양추의 원래 작위를 회복시키고 다시 안정을 다스리도록 했다.[1]건안 연간 초부터 여러 차례 부하 공계를 조조에게 파견한 흔적이 있다.[4]
2. 2. 위나라에서의 관직 생활
211년 마초와 한수가 조조를 공격할 때 이에 호응하여 참전했다. 서량군이 조조군에게 패배한 후, 마초와 한수는 서량으로 후퇴했으나 양추는 안정군(安定; 현재의 핑량시, 간쑤성 일대)으로 갔다. 그 해 10월에 조조와 하후연 등이 안정을 공격하자 조조에게 항복했다. 조조는 양추의 원래 작위를 회복시키고 다시 안정을 다스리도록 했다.[1]건안 16년(211년) 10월, 동관 전투에서의 패배 후, 안정군에서 포위되었을 때 하후연・장합에게 항복하자, 이전과 같은 작위를 받음과 동시에 주민 위무를 맡았다.[5]
이후 반란 진압 등에서 공적을 세워 토구장군, 특진으로 승진하고 임경후에 봉해졌다.[6] 조비가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나라를 세운 후 토구장군(討寇將軍)에 임명되고 임경후(臨涇侯)에 봉해졌으며,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2] 조비가 위의 시대가 되자, 곽회가 조진의 장사로 정강호군을 겸임하면서 양추는 장합과 함께 그의 감독 하에 들어갔다.[7]
연강 원년(220년), 조비의 가신단이 조비에게 후한으로부터 선양을 받도록 권한 『위공경상존호주』에 양추는 관군장군・호치후로서 조홍, 조진, 조휴, 하후상 등 조비의 친족과 장합, 서황, 장료와 같은 공신들보다 상위인 8번째로 이름을 올렸다.[8]
3. 《삼국지연의》에서의 등장
양추는 삼국지연의에서 한수의 부하로 등장한다. 이감이 봄까지 조조와 휴전할 것을 제안하자, 양추는 사자로 가 조조에게 화친을 제의했다.[1] 이후 마초가 조조의 이간계에 넘어가 한수를 의심하자, 다른 장수들과 함께 조조에게 귀부하고 마초를 협공할 것을 제안한다.[1] 양추는 조조군의 진영에 가 한수의 뜻을 전했고, 조조는 기뻐하면서 양추를 서량태수로 임명했다.[1] 마초를 죽이려던 계획이 마초 본인에게 들통나자 다른 장수들과 함께 마초를 죽이려 했으나 마완과 양흥이 마초에게 죽자 황급히 달아났다.[1] 마침내 서량군이 패배한 후, 조조에 의해 열후(列侯)에 봉해졌다.[1]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한수의 "수하 팔부"의 무장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2] 마초와 한수가 사이가 틀어졌을 때 망설이는 한수에게 항복을 권하며, 항복할 때는 사자로서 조조에게 가서 열후로 임명된다.[2] 참고로, 『연의』에 등장하는 "수하 팔부" (다른 7명은 후선, 장횡, 정은, 성의, 이감, 마완, 양흥)는 『삼국지』에 이름이 등장하는 량주의 독립 군벌들이다.[2]
진순신의 『비본 삼국지』에서는 양추가 항복했을 때의 일화가 창작되었다.[3]
4. 기타 창작물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한수의 "수하 팔부"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마초와 한수가 사이가 틀어졌을 때 망설이는 한수에게 항복을 권하며, 항복할 때는 사자로서 조조에게 가서 열후로 임명된다. 참고로, 『연의』에 등장하는 "수하 팔부" (다른 7명은 후선, 장횡, 정은, 성의, 이감, 마완, 양흥)는 『삼국지』에 이름이 등장하는 량주의 독립 군벌들이다.[1]
진순신의 『비본 삼국지』에서는 양추가 항복했을 때의 일화가 창작되었다.[1]
참조
[1]
서적
Sanguozhi vol. 1
[2]
서적
Weilue annotation in Sanguozhi vol. 1
[3]
서적
三国志 巻36馬超伝
[4]
서적
三国志 巻3明帝紀注引魏略
[5]
서적
三国志 巻1武帝紀・巻9夏侯淵伝・巻17張郃伝
[6]
서적
三国志 巻1武帝紀注引魏略
[7]
서적
三国志 巻26郭淮伝
[8]
논문
「魏公卿上尊号奏」にみる漢魏革命の正統性
https://ywata.gakkai[...]
2004
[9]
문서
상존호비(上尊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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