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승석
1. 개요
예승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41년 진사가 되고 1447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산현감으로 치적을 쌓았으며,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강원도 관찰사, 전라도 관찰사, 한성부 우윤 등을 역임했다. 세조에게 간언하다가 체직되기도 했으며, 《세조실록》과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저서로는 《수몽헌문집》이 있었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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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년 출생 -
프라 필리포 리피
프라 필리포 리피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로, 마사초의 영향을 받아 종교화를 현실적으로 묘사했으며, 프라토 대성당의 프레스코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남겼다. -
1406년 출생 -
이순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천문학자, 역법학자인 이순지는 세종의 신임을 받아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완성하여 조선의 독자적인 역법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으며, 다양한 관직을 역임하고 천문학 관련 저술을 남겼다. -
의흥 예씨 -
정애란
정애란은 1943년 연극 배우로 데뷔하여 영화 《진리의 밤》으로 영화계에 데뷔 후 신상옥 감독 사단 소속으로 인기를 얻고 TV 드라마 《전원일기》에 오랜 기간 출연하며 '전원일기 할머니'로 알려졌으며, KBS, SBS, MBC 연기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 활동을 인정받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의흥 예씨 -
예춘호
예춘호는 민주공화당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3선 개헌 반대와 항명 파동으로 제명, 이후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1476년 사망 -
레기오몬타누스
레기오몬타누스는 15세기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 빈 대학교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고 이탈리아에서 연구하며 《알마게스트》 요약, 《삼각형에 대하여》 저술, 뉘른베르크 과학 출판 인쇄소 설립, 천문 관측 및 역법 개혁 기여, 천문표 제작 등으로 탐험가들에게 활용되었다. -
1476년 사망 -
블라드 3세 체페슈
블라드 3세 체페슈는 15세기 왈라키아 공국의 보이보드로서 "드라큘라"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며 잔혹한 통치로 "체페슈"라고도 불리며 오스만 제국에 맞섰으나 체포되어 유폐 후 전사했고 그의 통치는 과장되어 흡혈귀 드라큘라 신화의 원형이 되었으며 왈라키아 역사와 국제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예승석은 1441년(세종 23년) 진사시에 급제하고, 1447년(세종 29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이산현감(尼山縣監)을 지냈다. 이치(吏治)에 능하여 이산현의 현감으로 선임되었는데, 부임 후 폐허가 된 곳을 복구하여 명성과 공적을 얻었다. 1458년(세조 4) 사간원 좌헌납, 사헌부 지평(行司憲持平)을 거쳐 평양 소윤(平壤少尹)에 제수되었다. 1463년 사헌 집의(司憲執義), 1464년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를 역임하였다. 1466년 변정원 판결사(辯定院判決事)를 거쳐 이조 참의(吏曹參議)가 되었다. 1468년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에 올라 인사, 국방, 교육, 조세 제도 개선을 건의하다가 세조의 노여움을 사서 물러났다. 1469년(예종 1년) 대호군(大護軍)으로 춘추관 수찬관(兼春秋館修撰官)을 겸임하였다. 1470년(성종 1년) 통정대부(通政大夫)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가 되었고, 병마 수군 절도사(兵馬水軍節度使)를 겸임하여 역승(驛丞) 우대책을 마련하였다. 1471년(성종 2)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로서 《세조실록》과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73년 공조참판으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 북경에 다녀왔다. 1474년 가선대부(嘉善大夫)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가 되었고, 1475년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에 이르렀다.
2.1. 관직 생활
1441년(세종 23년) 진사(進士)시에 급제하고, 1447년(세종 29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이산현감(尼山縣監)을 지냈다. 예승석은 이치(吏治)에 능하여, 조정에서 낙후된 이산현의 현감으로 선임하였는데, 부임 후 폐허가 된 곳을 복구하여 명성과 공적을 얻었다.
1458년(세조 4) 사간원 좌헌납, 사헌부 지평(行司憲持平)을 거쳐 평양 소윤(平壤少尹)에 제수되었다.
1463년 사헌 집의(司憲執義), 1464년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를 역임하였다.
1466년 변정원 판결사(辯定院判決事)를 거쳐 이조 참의(吏曹參議)가 되었다.
1468년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에 올라 인사, 국방, 교육, 조세 제도 개선을 건의하다가 세조의 노여움을 사서 물러났다.
1469년(예종 1년) 대호군(大護軍)으로 춘추관 수찬관(兼春秋館修撰官)을 겸임하였다.
1470년(성종 1년) 통정대부(通政大夫)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가 되었고, 병마 수군 절도사(兵馬水軍節度使)를 겸임하여 역승(驛丞) 우대책을 마련하였다.
1471년(성종 2)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로서 《세조실록》과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73년 공조참판으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 북경에 다녀왔다.
1474년 가선대부(嘉善大夫)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가 되었고, 1475년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에 이르렀다.
2.2. 세조와의 관계
1468년(세조 14년)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에 올라 인사, 국방, 교육, 조세 등 국가 운영 전반에 대한 개혁적인 정책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예승석의 건의는 세조의 정책 방향과 다른 의견이었기에 세조의 비위에 거슬려 체직되었다. 예승석은 세조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3. 예종, 성종 시대의 활동
1469년(예종 1년) 대호군으로 춘추관 수찬관을 겸임하였다.
1470년(성종 1년) 통정대부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고, 병마 수군 절도사를 겸임하여 역승(驛丞)의 우대책을 마련하였다.
1471년(성종 2년) 동지성균관사로서 《세조실록》과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3. 저서
《수몽헌문집》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