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켄
1. 개요
오가타 켄은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의 배우로, 1958년 신코쿠게키 극단에 입단하여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1965년 NHK 대하드라마 《다이코키》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후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바람과 구름과 무지개와》 등 여러 대하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 《마계전생》, 《게게게의 키타로》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1991년 개인전을 열 정도로 서예에도 재능을 보였다. 만성 간염과 간암으로 투병하다가 2008년 사망했으며, 사후 욱일소수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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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緒形 明伸 (Ogata Akinobu 오가타 아키노부) |
|---|---|
| 출생 | 1937년 7월 20일 |
| 출생지 | 도쿄도신주쿠구 |
| 사망 | 2008년 10월 5일 (향년 71세) |
| 사망지 | 도치기현미부마치도쿄 의과대학 병원 |
| 국적 | 일본 |
| 직업 | 배우 |
| 활동 기간 | 1960년 – 2008년 |
| 배우자 | 다카쿠라 노리에 (1966년 - 2008년) |
| 자녀 | 오가타 간타(장남), 오가타 나오토(차남) |
| 손자 | 오가타 아쓰시, 오가타 류 |
| 소속사 | 둔우구락부 (최종 소속) |
|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 1979년 《귀축》 1984년 《나라야마 부시코》 1987년 《화택의 사람》 |
|---|---|
| 블루리본상 남우주연상 | 1978년 《귀축》 1983년 《나라야마 부시코》 1983년 《요키로》 1983년 《어영의 무리》 1983년 《오키나와의 소년》 |
| 영화 | 《핫코다산》 《귀축》 《복수는 나의 것》 《에에자나이카》 《마계전생》 《호쿠사이 만화》 《나라야마 부시코》 《요키로》 《어영의 무리》 《카이》 《우스게쇼》 《화택의 사람》 《여선 ZEGEN》 《쇼군 이에미쓰의 광기 격돌》 《사장》 《대유괴 RAINBOW KIDS》 《오로샤국 취몽담》 《거울을 닦는 남자》 《기나긴 산책》 |
|---|---|
| 해외 영화 | 《미시마: 어 라이프 인 포 챕터스》 |
| 드라마 | 《다이코기》 《필살仕掛人》 《필살필중일가업》 《바람과 구름과 무지개와》 《택시 삼바》 《고개의 군상》 《이름 없는 탐정》 시리즈 《파옥》 《사랑은 어때》 《휴대폰이 울리지 않아》 《나니와 금융도》 시리즈 《모리 모토나리》 《모자》 《바람의 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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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시 출신 -
가타오카 야스유키
가타오카 야스유키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세이부 라이온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4년 연속 도루왕과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현재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2024년부터 자이언츠 U15 주니어 유스 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
지바시 출신 -
아오야기 타카시
아오야기 타카시는 일본의 학자이자 성우로, 한시 문의 낭영을 전문으로 연구하며, 디즈니 미키 마우스의 일본어판 성우를 역임했다. -
도쿄도 출신 -
이와야 사자나미
이와야 사자나미는 메이지 시대에 아동 문학을 보급하고 일본 최초의 아동 문학 총서 간행, 전승 설화 리텔링, '옛날이야기 하이쿠 그림' 창조 등을 통해 일본 근대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동 문학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이자 문예 평론가이다. -
도쿄도 출신 -
미시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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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구부 출신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도쿄도 구부 출신 -
이와야 사자나미
이와야 사자나미는 메이지 시대에 아동 문학을 보급하고 일본 최초의 아동 문학 총서 간행, 전승 설화 리텔링, '옛날이야기 하이쿠 그림' 창조 등을 통해 일본 근대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동 문학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이자 문예 평론가이다.
2. 생애
오가타 켄은 1958년 신코쿠게키 극단에 들어가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1960년 영화 토오이 히토츠노 미치로 데뷔했다. 1965년 NHK 대하 드라마 다이코키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에서 벤케이를 연기하는 등 여러 주요 배역을 맡았다.
NHK는 1976년 바람과 구름과 무지개와에서 후지와라노 스미토모 역, 1978년 오곤노 히비에서 다시 히데요시 역, 1982년 츄신구라인 토게노 군조에서 오이시 쿠라노스케 역으로 출연시켰다. 다른 대하 드라마 출연작으로는 다이헤이키(1991, 아시카가 사다우지 역), 후린화산(2007)이 있다.
히사츠 시리즈 히사츠 시카케닌에서 후지에다 바이안 역을 연기했으며, 이후 영화 시리즈에서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1978년 영화 오니치쿠, 1979년 복수는 나의 것, 1983년 나라야마 부시코에 주연했다. 1981년 영화 마계전생에서는 미야모토 무사시 역을 맡았다.
서예가로도 활동하여 1991년에 개인전을 열었다. 아들인 칸타와 나오토 역시 배우이다.
2000년에는 자수포장을 수여받았다.
2008년 10월 5일, 드라마 《바람의 정원》 촬영을 마친 후 간암으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오가타 켄은 1937년 7월 20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태평양 전쟁 중 공습으로 우시고메의 집이 불에 타, 초등학교 2학년 때 지바현 지바시 노보리토초(현 주오구 노보리토)로 가족과 함께 피난을 갔다. 중학교까지 지바에서 보내고 그 후 도쿄로 돌아왔다.
1957년에 도쿄 도립 타케하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에 신코쿠게키 극단에 들어가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다츠미 류타로의 제자가 되기 위해 신국극에 입단하여 그의 수행원이 되었다. 1960년, 신국극의 시마다 쇼고에게 발탁되어, 『머나먼 하나의 길』에서 주인공 복서 역으로 발탁되어 영화 데뷔도 하였다.
1965년, NHK 요시다 나오야에 의해 대하드라마 『다이코키』의 주역으로 발탁되어 1년간 활동했다. 이어서 1966년 대하드라마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에 무사시보 벤케이 역으로 출연하여 2년 연속 대하드라마에 출연했다. 같은 해, 신국극 소속 여배우 타카쿠라 노리에와 결혼했다. 1968년, 신국극을 퇴단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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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배우 데뷔 및 활동
오가타 켄은 1958년 신코쿠게키 극단에 들어가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 영화 토오이 히토츠노 미치로 데뷔했다.
1965년, NHK 대하 드라마 다이코키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이듬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에서 벤케이를 연기했다. 1976년 바람과 구름과 무지개와에서 후지와라노 스미토모 역, 1978년 오곤노 히비에서 다시 히데요시 역, 1982년 츄신구라인 토게노 군조에서 오이시 쿠라노스케 역을 맡았다. 다른 대하 드라마 출연작으로는 다이헤이키(1991, 아시카가 사다우지, 타카우지의 아버지 역), 후린화산(2007)이 있다. 히사츠 시리즈 히사츠 시카케닌에서 후지에다 바이안 역을 연기했으며, 이후 영화 시리즈에서 두 번 더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1978년 영화 오니치쿠에 주연하여 남우상을 수상했고, 1979년 복수는 나의 것, 1983년 나라야마 부시코에 주연했다. 1981년 영화 마계전생에서는 미야모토 무사시 역을 맡아 야규 쥬베이(지바 신이치)와 격전을 벌였다.
마지막 주연 역할은 머나먼 길(2006)이었다.
2.3. 만년 및 사망
오가타 켄은 2008년 10월 5일, 드라마 《바람의 정원》 촬영을 마친 지 불과 며칠 만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71세였다. 2000년경부터 만성 간염을 앓았고, 간경변을 거쳐 2003년부터 2004년경에 간암에 이르렀다. 그는 적절한 내과적 수술, 투약 치료, 식이요법을 받으면서도 병을 숨기고 배우 활동을 계속했다. 2007년 말에는 요추압박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사망 전날인 10월 4일, 자택에서 몸 상태가 급변하여 토치기현 시모츠가군 미부정의 독쿄 의과대학 부속 병원으로 옮겨져 간 파열 긴급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다음 날 오후 11시 53분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오가타의 마지막은 가족과 오랜 친구였던 츠가와 마사히코가 지켜봤다. 츠가와는 오가타가 마지막 순간까지 밝은 모습을 보였으며, "가부키 배우처럼 허공을 노려보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전했다.
장례식은 10월 7일에 신주쿠구의 다이닛폰 시시코카이 본당에서 거행되었다. 법명은 텐쇼인 후헨닛켄 거사이다.
그의 마지막 출연작은 드라마 《바람의 가든》 (후지 텔레비전 계열)이며, 사망 5일 전인 9월 30일에는 작품의 제작 발표에도 참석했다. 마지막 출연 CM은 엡손 "카라리오" 시리즈였으나, 사망으로 인해 방영이 중단되었다. 극장 영화 유작은 2008년 7월 개봉한 《게게게의 키타로 천년 저주가》이다.
사후 10월 31일, 일본 정부는 오랜 연극계 공헌을 높이 평가하여 오가타에게 욱일 소수장을 수여하기로 각의 결정했다.
3. 인물 및 평가
오가타 켄은 신국극 출신으로, 다쓰미 류타로에게서는 호쾌한 연기를, 시마다 쇼고에게서는 섬세한 연기를 배워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갖게 되었다. 그는 "나는 연기를 함으로써 살아간다"는 신념을 가졌으며, '역할 만들기'라는 말을 싫어하고 대본 속 대사가 자신의 말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 등 역할에 몰입하는 연기 방식을 추구했다. 30대까지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40대 이후 영화 주연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고지식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며, 쓰가와 마사히코에게 젊은 여성과의 미팅에 초대받았을 때 심각하게 고민하다 거절한 일화가 있다. 오쿠다 에이지는 오가타 켄에 대해 "스크린에서도 사생활에서도 멋을 부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매우 자연스러웠지만 엄청난 설득력이 있었다"라고 평했다.
경마에도 조예가 깊어, 2000년 JRA의 CM 캐릭터로 취임했을 때 후쿠나가 요이치와 술친구였다고 회고했다. 작가 이케나미 쇼타로에게 매년 목욕통을 선물하기도 했다. 도라에몽의 열렬한 팬으로, 관련 잡지 인터뷰에 응하거나, 게임센터에서 UFO 캐쳐로 도라에몽 인형을 뽑은 후 도라에몽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3.1. 연기 스타일
오가타 켄은 신국극 출신으로, 다쓰미 류타로와 시마다 쇼고 두 스승에게서 연기를 배웠다. 다쓰미 류타로는 호쾌한 연기를, 시마다 쇼고는 섬세한 연기를 가르쳐 오가타 켄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갖게 되었다. 그는 "나는 연기를 함으로써 살아간다"는 신념을 가졌으며, '역할 만들기'라는 말을 싫어하고 대본 속 대사가 자신의 말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역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자신에게 빙의될 때까지 파고드는 연기 방식을 추구했다.
오가타 켄은 '일상의 모든 것이 연기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며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영화 『어군(魚影)의 무리』에서 어부 역을 맡았을 때는 촬영 한 달 전부터 아오모리현오마정에 살면서 현지 어부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업을 익혔다. 촬영 때는 의상 팀에서 준비한 옷 대신 실제 어부가 입던 낡은 빨간 스웨터를 빌려 입을 정도로 역할에 몰입했다.
신국극을 떠난 후에도 오가타 켄은 두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다. 신국극 마지막 공연에서는 다쓰미 류타로의 대표작인 『왕장』의 사카타 산키치 역을 연기하며 "다쓰미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시마다 쇼고 3주기 추모 공연에서는 시마다 쇼고가 연기했던 1인극 『백야 시라노』를 이어받아 공연하기도 했다.
30대까지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40대 이후 영화 주연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가츠 신타로는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을 만류했지만, 오가타 켄은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출연했다.
3.2. 사회적 활동
고지식하고 성실한 성격이었다. 절친한 친구인 쓰가와 마사히코에게 젊은 여성과의 미팅에 초대받았을 때, 참가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망설인 끝에 "마사히코, 나는 역시 도저히 갈 수 없어"라고 심각한 목소리로 거절했다고 한다. 쓰가와는 "네가 그 일로 고민한 것은 큰 진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가타를 동경했던 배우 오쿠다 에이지는 "오가타 씨가 스크린에서도 사생활에서도 멋을 부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매우 자연스러웠지만 엄청난 설득력이 있었고, 그 모습이 멋있게 보였다"라고 평했다.
경마에도 조예가 깊어, 2000년에 JRA의 CM 캐릭터로 취임했을 때 인터뷰에서 후쿠나가 요이치와 술친구였다고 회고했다.
매년 작가 이케나미 쇼타로에게 목욕통을 선물했다. 이케나미는 저서에서 "오가타 켄이 목욕통을 선물해 주는데, 매년, 내게. 그것도 생각하는 거네(웃음)…(중략)…목욕통은 연중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1년 정도 지나면 띠가 떨어지거나, 썩거나, 변해버리는 법이다. 그래서 오가타도 목욕통이 좋다고 생각하는 거겠지"라고 말했다.
도라에몽의 열렬한 팬으로, 도라에몽 팬을 위한 전문지 『보쿠, 도라에몽』 12호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영화 『어둠 속의 댄서』를 보러 갔을 때 상영까지 시간이 있어서 거리를 돌아다니다 게임센터에 있던 UFO 캐쳐에 도라에몽 인형이 있었고, 귀여워서 시험 삼아 해보니 의외로 쉽게 뽑혀 도라에몽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비타는 알지만, 그 외의 캐릭터나 도라에몽이 예전에는 노란색이었다는 등의 스토리나 설정은 몰랐다. 2006년 3월 1일 방송된 『트리비아의 샘 〜훌륭한 쓸데없는 지식〜』에서 관련 내용을 배우고, 같은 프로그램에서 도라미를 "(도라에몽의) 엄마?"라고 생각하거나,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고, 받은 도라미 인형을 바닥에 내던졌다.
극단원 시절, 아사오카 유키지와 사귀었다. 아사오카가 아버지 이토 신스이에게 소개하려고 만난 날은 비가 왔고, 돈이 없는 오가타의 신발은 발가락 부분의 밑창이 떨어져 나가 양말이 젖은 채로 신스이를 만났다. 오가타는 자신의 길을 열심히 하라고 격려받았고, 아사오카와의 교제는 끝났다고 한다.
3.3. 서예
오가타 켄일본어은 환갑을 맞이할 무렵부터 무대에 서는 일이 많아지면서, 메이저 영화에 출연하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배우 오쿠다 에이지는 "오가타 씨는 배우로서 원숙미를 더해가는데 주연 영화가 없는 것은 너무나 아깝다"라고 생각했다.
이후, 우연히 2002년 광고 촬영에서 오가타일본어와 오쿠다는 함께 작업하게 되었고, 오가타의 표정을 보면서 "이 사람으로 영화를 찍지 않으면 안 돼!"라는 강한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영화 『긴 산책』이었다. 시사회 후, 오쿠다는 오가타가 자리에 없는 것을 보고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나갔다고 생각하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몇 분 후 오가타가 나타나 "부끄러워서 세수를 하고 왔다"라고 말했고, 오가타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 오쿠다는 "그건 기뻤다"라고 말했다.
오쿠다에 따르면, 이 작품 이후 오가타 주연의 『필살 사가닌』의 후지에다 바이안의 후속편을 그린 시대극을 찍을 예정이었다. 스탭, 캐스트, 촬영일까지 정해졌지만, 촬영 전에 오가타로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검술은 무리다"라는 말을 듣고 결국 취소되었다고 한다.
4. 출연 작품
緒形 拳일본어는 1960년 《머나먼 하나의 길》로 데뷔한 이후, 다양한 연극 무대에 출연하였다. 주요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 머나먼 하나의 길 (1960년) ※ 데뷔작
* 요코보리가와 (1966년)
* 꽃의 요시와라 백인 베기 (1966년)
* 겐로쿠 충신장 (1966년)
* 메이지 백년 (1967년)
* 화려한 야경 (1970년)
* 봄의 언덕길 (1972년)
* 나리히라 금고털이 (1972년)
* 나니와 칸자시 사랑의 승부사 (1972년)
* 케톤즈빌 사건의 9인 (1972년)
* 따오기의 묘 (1973년)
* 호쿠사이 만화 (1973년)
* 온뇨로 성쇠기 (1974년, 유키좌)
* 왕장 (1975년)
* 음란재 에이센 (1975년)
* 여우 고양이 고양이 이야기 (1975년)
* 필살 사냥꾼 (1975년)
* 우키요에 암쥐 소조 (1975년)
* 슬픈 사랑 도둑 (1976년)
* 사이고 지폐 (1976년)
* 일본인 만세 (1977년)
* 자토이치 이야기 (1978년)
* 츠루하치 츠루지로 (1978년)
* 인과 소승 로쿠노스케 (1978년)
* 축제의 피리 (1979년)
* 극부 쿠니사다 츄우지 (1979년)
* 공백의 그림자 (1979년)
* 세키노 야탓페 (1979년)
* 물의 흐름 (1979년)
* 신 자토이치 이야기 실 굴레 (1979년)
* 신 자토이치 이야기 시의 귀에 자장가 (1979년)
* 인생극장 키라 츠네 편 (1979년)
* 싸움 후지 신바의 형제 (1979년)
* 눈꺼풀의 어머니 (1980년)
* 켄레이몬인 헤이케 이야기에서 (1985년)
* 한 자루 칼 씨름판 (1987년)
* 극부 쿠니사다 츄우지 아카기 텐진야마에서 토조 창고 체포까지 (1987년)
* 시나노 잇샤 (1993, 2001년)
* 대보살 고개 (1994년)
* 리처드 3세 (1995년, 긴자 세존 극장/쇼치쿠)
* 스카이라이트 (1997년, 파르코)
* 고도를 기다리며 (2000, 2002, 2003년, Bunkamura)
* 풍광전 '02 (2002년)
* 아이 속이기 (2002, 2005년, 톰 프로젝트)
* 60세의 러브레터 (2002년) - 낭독극
* 백야 (2006, 2007년, Bunkamura)
4.1. 영화
4.2. 드라마
緒形 拳일본어는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했다.
| 연도 | 제목 | 배역 | 방송사 | 비고 |
|---|---|---|---|---|
| 1965 | 태합기 | 도요토미 히데요시 | NHK | 주연, 대하 드라마 |
| 1966 |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 무사시보 벤케이 | NHK | 대하 드라마 |
| 1972 | 신・헤이케 이야기 | 아베 아사도리 | NHK | 대하 드라마 |
| 1976 | 바람과 구름과 무지개와 | 후지와라노 스미토모 | NHK | 대하 드라마 |
| 1978 | 황금의 날들 | 도요토미 히데요시 | NHK | 대하 드라마 |
| 1979 | 아수라의 고토쿠 | NHK | ||
| 1982 | 도게노 군조 | 오이시 요시오 | NHK | 주연, 대하 드라마 |
| 1991 | 태평기 | 아시카가 사다우지 | NHK | 대하 드라마 |
| 1997 | 모리 모토나리 | 아마고 쓰네히사 | NHK | 대하 드라마 |
| 2001 | 쇼토쿠 태자 | 소가노 우마코 | NHK | |
| 2003 | 블랙잭에게 안부를 | TBS | ||
| 2004 | 인간의 증명 | 후지 TV | ||
| 2005 | 루리의 섬 | NTV | ||
| 2006 | 세일러복과 기관총 | TBS | ||
| 2007 | 풍림화산 | 우사미 사다미쓰 | NHK | 대하 드라마 |
| 2008 | 바람의 가든 | 후지 TV | ||
| 1996 | 나니와 금융도 | 후지 TV | ||
| 1996 | ||||
| 1998 | ||||
| 1999 | ||||
| 2000 | ||||
| 2005 | ||||
5. 수상 내역
* 자수포장 (2000년)
* 욱일장, 4등급, 금선광선장 (2008년)
* 갤럭시상(1973년) 《필살 사키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