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힘 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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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아힘 라프는 1822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작곡가이다. 그는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으며, 펠릭스 멘델스존의 인정을 받아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리스트의 조수로 일하며 오케스트레이션 능력을 인정받았고, 1857년 '봄의 송가'를 통해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라프는 11개의 교향곡, 실내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1877년 프랑크푸르트 호흐 음악원 원장으로 재직했다. 그의 작품은 낭만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19세기 말에는 널리 연주되었으나, 현재는 일부 작품만 연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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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힘 라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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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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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요제프 요아힘 라프 |
출생일 | 1822년 5월 27일 |
출생지 | 스위스 슈비츠주 라헨 |
사망일 | 1882년 6월 24일 |
사망지 |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 |
직업 | 작곡가 피아니스트 음악 교사 |
장르 | 낭만주의 음악 |
작품 | |
주요 작품 | 작품 목록 |
2. 생애
요아힘 라프는 스위스 라헨에서 태어난 작곡가이다.[2] 그의 아버지는 뷔르템베르크에서의 강제 징병을 피해 스위스로 이주한 교사였다. 라프는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하며 슈메리콘, 슈비츠, 라퍼스빌 등지에서 교사로 일했고,[1] 펠릭스 멘델스존의 추천으로 초기 피아노 작품을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서 출판하며 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 신보''에 실린 호평은 그가 취리히로 가서 전업 작곡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3]
1845년 바젤에서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그의 연주 여행을 따라 독일로 갔으며,[1] 슈투트가르트에서는 지휘자 한스 폰 뷜로와 친구가 되었다. 이후 1850년부터 1853년까지 바이마르에서 리스트의 조수로 활동하며 그의 작품 관현악 편곡 등을 도왔다.[1] 이 기간 동안 자신의 오페라 ''쾨니히 알프레드''를 바이마르에서 공연하기도 했다.[1]
1856년 리스트 곁을 떠나 비스바덴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작곡 활동에 전념했으며,[1] 1859년 결혼했다. 비스바덴 시기에 그는 '카바티나'와 같은 인기 작품과 빈 악우 협회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교향곡 제1번 '조국에 바침' 등을 발표하며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877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호흐 음악원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여[1] 음악 교육에도 힘썼다. 그는 클라라 슈만 등 저명한 음악가를 교수로 초빙하고 여성 작곡가를 위한 특별 반을 개설하는 등[1] 교육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제자로는 에드워드 맥도웰과 알렉산더 리터 등이 있다.
라프는 1882년 6월 24일 또는 25일 밤 프랑크푸르트에서 사망했으며,[3] 프랑크푸르트 중앙 묘지에 안장되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1822-1845)
라프는 스위스 라헨에서 태어났다.[2] 그의 아버지이자 교사였던 그는 1810년 뷔르템베르크에서 강제 징병을 피해 스위스로 이주했다. 당시 뷔르템베르크는 나폴레옹 휘하 러시아 원정에 참여해야 했던 독일 남서부의 한 주였다. 요아힘은 음악을 독학으로 배웠으며, 슈메리콘, 슈비츠, 라퍼스빌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음악 공부를 병행했다.[1] 그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작품 일부를 펠릭스 멘델스존에게 보냈고, 멘델스존은 이 작품들을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에 추천하여 1844년에 출판될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로베르트 슈만의 저널인 ''음악 신보''에 호평을 받았는데, 이는 라프가 취리히로 가서 전업 작곡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3]1845년 라프는 바젤로 걸어가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1]
2. 2. 리스트와의 만남과 바이마르 시기 (1845-1856)
1845년 라프는 바젤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의 연주 여행을 따라 독일로 갔다. 독일에서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지휘자 한스 폰 뷜로와 친구가 되었으나, 잠시 스위스로 돌아갔다. 1849년 그는 바이마르에서 리스트의 조수로 고용되어 다시 독일로 이주했다.[1] 라프는 1850년부터 1853년까지 리스트의 조수로 일하며[1] 그의 여러 작품 관현악 편곡을 도왔다. 특히 교향시 ''타소''의 관현악 편곡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1] 1851년에는 라프의 오페라 ''쾨니히 알프레드''가 바이마르에서 공연되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1] 1856년 리스트 곁을 떠나 비스바덴으로 이주하여 작곡에 전념하기 시작했다.[1]2. 3. 비스바덴 시기 (1856-1877)
1856년 라프는 바이마르에서 리스트의 조수 생활을 정리하고 비스바덴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작곡 활동에 전념했다.[1] 이듬해인 1857년에는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봄의 송가'(Ode au printemps|오드 오 프랭탕deu)를 완성했고, 친구 한스 폰 뷜로의 독주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두면서 작곡가로서 입지를 다졌다.1859년에는 비스바덴에서 결혼했으며, 같은 해 발표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6개의 소품 중 하나인 '카바티나'가 큰 인기를 얻었다.
41세가 되던 해, 라프는 교향곡 제1번 '조국에 바침'(An das Vaterland|안 다스 파터란트deu)을 완성하여 빈 악우 협회가 주최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작곡가로서 다소 늦게 명성을 얻었지만, 비스바덴 시기(1856-1877) 동안 그는 총 11곡의 교향곡을 비롯해 실내악, 오페라 등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기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의 중요한 작품 대부분이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2. 4. 프랑크푸르트 시기 (1877-1882)
1877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호흐 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었다.[1] 그는 음악원의 초대 원장이자 교사로 활동하며 클라라 슈만과 같은 저명한 음악가들을 교수로 초빙했고, 당시 여성 작곡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도 여성 작곡가를 위한 특별 반을 개설하는 등[1] 진보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음악원의 수준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하지만 음악원 운영에 힘쓰면서 그의 작곡 활동은 이전보다 다소 둔화되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주목할 만한 작품 대부분은 1857년부터 20년 사이에 쓰였다. 그의 제자로는 에드워드 맥도웰과 알렉산더 리터, 라차로 우치엘리 등이 있다.[1]라프는 1882년 6월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밤, 프랑크푸르트에서 세상을 떠났다.[3] 그의 묘는 프랑크푸르트 중앙 묘지에 마련되었다.
3. 작품 세계
라프는 매우 다작을 한 작곡가로, 생애 말년에는 가장 유명한 독일 작곡가 중 한 명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날 대부분 잊혀졌다. 현재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카바티나(Op. 85 No. 3) 한 곡만이 앙코르 곡으로 가끔 연주될 뿐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다양한 음악적 영향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그의 11개의 교향곡은 고전주의의 교향곡 형식과 낭만주의의 표제 음악, 그리고 바로크 음악을 연상시키는 대위법적 관현악 작법을 결합한 특징을 지닌다. 교향곡 대부분은 묘사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는 연주 시간이 약 70분에 달하는 대규모 작품이다. 특히 교향곡 3번 "숲속에서"와 교향곡 5번 "레노레"는 당대에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4]
라프는 교향곡 외에도 협주곡, 오페라, 실내악, 피아노 독주곡 등 대부분의 다른 장르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1] 그의 실내악 작품에는 5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피아노 오중주, 2개의 피아노 사중주, 현악 육중주, 4개의 피아노 삼중주 등이 포함되며, 이 중 앞서 언급한 카바티나가 가장 유명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라프의 친구였던 한스 폰 뷜로의 제자였으며, 슈트라우스의 초기 작품에서 라프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가 있다. 예를 들어, 라프의 교향곡 7번 '알프스에서'(1877)는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1915)과 비교되기도 한다.[4] 또한 라프의 많은 음악은 장 시벨리우스의 초기 작품을 예고한다는 평가도 받는다.[4]
오랫동안 잊혔던 작곡가였으나, 최근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그의 작품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밤베르크 교향악단과 지휘자 한스 슈타들마이어에 의해 2000년대 초 교향곡 전곡 녹음이 이루어졌으며,[1] 마르코 폴로, 튜더, cpo, 섄도스 등 여러 음반사에서 그의 교향곡과 실내악 작품 CD를 꾸준히 발매하고 있다.
3. 1. 교향곡
라프는 다작 작곡가였으며, 특히 11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그의 교향곡은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과 낭만주의 음악의 표제 음악, 그리고 바로크 음악을 연상시키는 대위법적 관현악 작법을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생애 말년에 그는 가장 유명한 독일 작곡가 중 한 명이었으나, 그의 작품은 오늘날 대부분 잊혀졌다.[1]번호 | 조성 | 작품 번호(Op.) / WoO | 표제 | 작곡 연도 | 비고 |
---|---|---|---|---|---|
- | E장조 | WoO 18 | 대 교향곡 (Sinfonia Grande) | 1854년 이전 | 분실됨. 스케르초와 피날레는 관현악 모음곡 1번(Op. 101)에 사용됨. |
1 | D장조 | Op. 96 | 조국에 부쳐 (An das Vaterland) | 1859년–1861년 | 연주 시간 약 70분의 대규모 작품. |
2 | C장조 | Op. 140 | 1866년 | 작센코부르크고타 공 에르네스트 2세에게 헌정. 1867년 바이마르에서 초연. | |
3 | F장조 | Op. 153 | 숲 속에서 (Im Walde) | 1869년 | 당대 큰 성공을 거둠. |
4 | G단조 | Op. 167 | 1871년 | 1악장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동기, 4악장에서 교향곡 9번 4악장 인용. | |
5 | E장조 | Op. 177 | 레노레 (Lenore) | 1870년–1872년 | 뷔르거의 발라드 기반. 당대 유명했던 작품. |
6 | D단조 | Op. 189 | 1873년 | 초연 시 삶-투쟁-싸움-수난-죽음-재생 표제가 있었으나 출판 시 삭제됨. | |
7 | B♭장조 | Op. 201 | 알프스에서 (In den Alpen) | 1875년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과 비교됨. |
8 | A장조 | Op. 205 | 봄의 소리 (Frühlingsklänge) | 1876년 | 사계절 연작 1 |
9 | E단조 | Op. 208 | 여름에 (Im Sommer) | 1878년 | 사계절 연작 2 |
10 | F단조 | Op. 213 | 가을에 (Zur Herbstzeit) | 1879년 | 사계절 연작 3 |
11 | A단조 | Op. 214 | 겨울 (Der Winter) | 1876년 | 사계절 연작 4, 미완성. 막스 에르트만스도르퍼가 완성. |
교향곡 대부분은 표제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교향곡 3번 "숲속에서"는 당시 청중에게 큰 환영을 받았고 영국과 미국으로 빠르게 전파되어 19세기 말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주된 관현악 작품 중 하나였다. 비록 라프와 함께 잊혔지만,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비창"을 비롯한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1931년에 이 교향곡을 몇 차례 지휘하기도 했다.[4]
교향곡 5번 "레노레" 역시 당대에 유명했으며, 고트프리트 아우구스트 뷔르거의 동명 발라드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발라드는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 앙리 뒤파르크, 프란츠 리스트 등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레노레"의 세계 최초 녹음은 라프 음악의 옹호자였던 버나드 허먼이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1970년에 이루어졌다.[4] 허먼은 이 곡을 "낭만주의 프로그램 학교의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로 평가하며 "헥토르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 및 차이콥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고 말했다.[4]
라프의 교향곡 7번 '알프스에서'(1877)는 그의 친구 한스 폰 뷜로의 제자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1915)과 비교되기도 하며, 슈트라우스 초기 작품에 라프의 영향이 나타난다고 여겨진다.[4] 또한 라프의 많은 음악은 장 시벨리우스의 초기 작품을 예고한다는 평가도 있다.[4] 그의 마지막 네 교향곡(8번~11번)은 사계절을 주제로 한 연작이다.
1873년에 작곡된 신포니에타(Sinfonietta, Op. 188)는 관악 앙상블을 위한 소교향곡으로, 구노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에게 영향을 주어 관악 앙상블 음악 분야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오랫동안 잊혔던 라프의 교향곡은 최근 재평가 움직임이 일면서 밤베르크 교향악단과 지휘자 한스 슈타들마이어에 의해 2000년대 초 전곡 녹음이 이루어졌다.[1] 또한 마르코 폴로, 튜더, cpo, 섄도스 등의 음반사에서도 교향곡 전집 및 다른 작품들의 CD를 발매하고 있다.
3. 2. 협주곡
라프는 교향곡 외에도 협주곡 장르에서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1] 그의 협주곡 및 협주곡 형태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피아노 협주곡 및 관련 작품'''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트슈튀크 "Ode au Printemps|봄의 송가fra" G장조, Op. 76 (1857년)
- 피아노 협주곡 c단조, Op. 185 (1873년)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E♭장조, Op. 200 (1875년)
'''바이올린 협주곡 및 관련 작품'''
-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트슈튀크 "La Fée d'amour|사랑의 요정fra" Op. 67 (1854년)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b단조, Op. 161 (1870년-1871년)
-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Op. 180 (1873년)
- 바이올린 협주곡 2번 a단조, Op. 206 (1877년)
'''첼로 협주곡'''
- 첼로 협주곡 1번 d단조, Op. 193 (1874년)
- 첼로 협주곡 2번 G장조, WoO. 45 (1876년)
3. 3. 실내악
라프는 교향곡 외에도 협주곡, 오페라, 실내악, 피아노 독주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1] 특히 실내악 분야에서도 활발한 작곡 활동을 펼쳤다.그의 실내악 작품에는 5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1개, 피아노 오중주 1개(a단조), 2개의 피아노 사중주, 현악 육중주 1개, 4개의 피아노 삼중주, 8개의 현악 사중주, 그리고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 등이 포함된다. 이들 중 다수는 현재 상업적으로 녹음되어 있으며, 라프 음악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과 함께 실내악 작품들의 CD 발매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라프의 실내악 작품 중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6개의 소품'(Op. 85) 중 세 번째 곡인 카바티나 (Cavatina) D장조이다. 이 곡은 그의 다른 작품들이 상당 부분 잊힌 것과 달리, 오늘날에도 앙코르 곡으로 종종 연주되고 있다.
주요 실내악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장르 | 작품 번호 | 조성 및 제목 | 비고 |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 e단조 |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 A장조 | ||
바이올린 소나타 3번 | D장조 | ||
바이올린 소나타 4번 | g단조 '반음계적' |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6개의 소품 | Op. 85 | 1859년 작곡 | |
↳ 카바티나 | Op. 85-3 | D장조 | 가장 유명한 실내악곡 |
첼로 소나타 | 1개 작품 | ||
현악 사중주 1번 | Op. 77 | d단조 | |
현악 사중주 2번 | Op. 90 | A장조 | |
현악 사중주 3번 | Op. 136 | e단조 | |
현악 사중주 4번 | Op. 137 | a단조 | |
현악 사중주 5번 | Op. 138 | G장조 | |
현악 사중주 6번 | Op. 192-1 | c단조 | "옛 양식 모음곡" |
현악 사중주 7번 | Op. 192-2 | D장조 |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
현악 사중주 8번 | Op. 192-3 | C장조 | "카논 형식에 의한 모음곡" |
피아노 삼중주 1번 | c단조 | ||
피아노 삼중주 2번 | G장조 | ||
피아노 삼중주 3번 | a단조 | ||
피아노 삼중주 4번 | D장조 | ||
피아노 사중주 | 2개 작품 | ||
피아노 오중주 | a단조 | ||
현악 육중주 | 1개 작품 | ||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 | 2곡 |
3. 4. 오페라
참조
[1]
간행물
Raff, (Joseph) Joachim
https://doi-org.lonl[...]
Grove Music Online
2001
[2]
서적
Joseph Joachim Raff (1822–1882)
Wiesbaden
1982
[3]
논문
Joachim Raff: obituary
http://www.raff.org/[...]
1882-07-01
[4]
문서
Liner notes on Bernard Herrmann recording of Symphony No. 5 Lenore
[5]
웹사이트
Recorded on Schweizer Fonogramm SF0016 (2024), reviewed at MusicWeb International
https://musicwebi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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