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형왕)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유고는 초한전쟁 시기 한나라의 장군으로, 한 고조를 도와 서초를 공격하는 데 기여했다. 한신이 반역 혐의로 제거된 후 형나라의 왕으로 봉해졌으나, 회남왕 영포의 반란을 진압하려다 패하여 사망했다. 형나라는 멸망하고 오나라로 개칭되었다.

유고 (형왕)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원전 196년 사망 - 한신 (회음후)
    한신은 전한 초기의 군인이자 전략가로, 초한쟁란 시기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헌했으나, 유방의 경계로 회음후로 강등된 후 모반 혐의로 여후에게 처형당했으며, 그의 삶은 토사구팽, 다다익선 등 고사성어와 관련되어 후대에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 기원전 196년 사망 - 팽월
    팽월은 창읍 출신의 어부로, 진나라에 대항하여 유방을 돕고 양나라 왕에 봉해졌으나 반란 혐의로 처형당하고 젓갈이 되었으며 사후 무신으로 숭배되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한 고조항우와의 싸움에 종군한 유고는 한왕 4년(기원전 203년) 2만 군사를 받아 서초 영토에서 군자를 불태우고 땅을 황폐화하여 서초군이 먹을 식량을 없애는 임무를 맡았다. 서초군이 싸우러 오면, 지키면서 팽월과 서로 돕는 형세를 만들었다.

기원전 202년, 해하 전투에서 주은을 꼬드겨 서초에 모반하게 하고 영포와 합류하여 한나라 본대와 함께 항우를 공격했다. 노관과 함께 임강왕 공위를 공격하여 그를 죽이고, 그 영토를 남군으로 개편했다.

기원전 201년, 유방한신의 영토를 분할하여 유고를 형왕으로 봉했다. 형나라는 회수 동쪽 52성을 다스렸으며, 서울은 오(吳)였다.

기원전 196년, 회남왕 영포의 반란 때 교전하다가 패사했다. 형나라는 회남나라에 병탄되었다.

2.1. 초한전쟁 시기 활약

한왕 원년(기원전 206년), 한 고조가 삼진을 평정할 때 장군으로 참전하여 새나라를 평정하고, 서초 패왕 항우와의 전쟁에 종군했다.

한왕 4년(기원전 203년), 한왕이 성고를 잃고 장이·한신의 군대를 얻어 수무에서 수비 태세를 갖추면서, 2만 군사를 받아 서초의 영토로 들어가 군자를 불태우고 땅을 황폐화해 서초군이 먹을 식량을 없애도록 명령받았다. 서초군이 싸우러 오면, 지키면서 싸움에 응하지 않고 서초에서 유격전을 벌이고 있는 팽월과 서로 돕는 형세를 만들었다.

한왕 5년(기원전 202년), 경내가 어지러워져 싸울 기력을 잃은 서초 패왕이 한왕과 화친을 맺고 돌아가자, 한왕은 약속을 깨고 서초를 무찌르고자 추격해 고릉에 이르렀다. 이때 명령을 받아 화이허를 건너 서초령 수춘에 이르러, 서초의 대사마 주은을 꼬드겨 서초에 모반하게 했다. 주은의 보좌를 받아 구강군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영포와 합류해, 마침내 해하 전투에서 한나라 본대와 합류해 항우를 공격했다. 한왕의 명령으로 구강의 군사를 거느리고 태위 노관과 함께 항우가 세운 열여덟 제후 중 마지막까지 한왕에게 투항하지 않은 임강왕 공위를 공격했다. 공위가 죽은 후 구 임강국의 판도를 남군으로 개편했다.

2.2. 형나라 왕 책봉과 최후

기원전 201년, 한신이 모반 혐의로 실각한 후, 유방은 그 영토를 남북으로 분할하여 남부를 형나라, 북부를 초나라로 정했다. 그리고 유고를 형왕에, 유방의 이복 동생인 유교초왕으로 봉했다. 형나라는 회수 동쪽의 52성을 다스렸으며, 서울은 오(吳)에 두었다.

기원전 196년 가을, 회남영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군세를 이끌고 교전하다가 패사했다. 형나라는 회남나라에 병탄됐다. 유고에게는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영포 토벌에 참전한 종질 유비오왕에 봉해져 유고의 뒤를 잇는 형식이 되었다.

3. 기타

기원전 196년, 회남영포가 반란을 일으켜 형나라로 쳐들어오자, 유고는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달아나다 영포의 군사에게 살해당했다. 형나라는 회남나라에 병합되었다. 영포의 난이 진압된 후 형나라는 폐지되고 군이 설치되었다가, 이듬해 국명을 오나라로 고치고 다시 왕국을 두어 유비를 왕으로 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