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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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진 박은 미국에서 태어나 3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하여 줄리아드 예비 학교에 최연소 입학하며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1996년 국내 활동을 시작하여 클래식,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연주를 선보이며 유진박 신드롬을 일으켰고, 앨범 판매와 공연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소속사와의 갈등과 착취 논란, 정신 질환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최근에는 재기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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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루빈은 데프 잼 레코딩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컬럼비아 레코드의 공동 대표를 역임한 미국의 음악 프로듀서로, 힙합, 록, 메탈, 컨트리,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고 조니 캐시의 음악 인생 후반기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래미 어워드를 수차례 수상하고 창작에 관한 저서를 출간하는 등 음악 산업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 뉴욕주 출신 음악가 - 앨릭 존 서치
본 조비의 초기 베이시스트였던 앨릭 존 서치는 리치 샘보라와 함께 밴드 활동을 하다가 본 조비에 합류, 베스트 앨범 발매 후 탈퇴하여 다른 사업을 하였고, 이후 본 조비 공연에 참여하거나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 한국계 미국인 음악가 - 죠앤 (가수)
2001년 '제2의 보아'로 데뷔하여 'First Love' 등의 곡으로 활동했던 가수 죠앤(본명 이연지)은 소속사 분쟁과 슈퍼스타K4 출연 실패 후 미국에서 회사원으로 생활하던 중 2014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한국계 미국인 음악가 - 프니엘
프니엘은 보이 그룹 BTOB의 멤버이자 래퍼, 싱어송라이터, 사진 작가, 방송인이며, JYP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으로 BTOB의 리드 래퍼로 데뷔하여 그룹 활동, 솔로 활동, 방송 활동, 사진 전시회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유진 박은 의사였던 한국인 부모에게서 뉴욕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여덟 살에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했으며, 13세에 링컨 센터에서 공연했다.[1]
그는 줄리아드 콩쿠르, 아스펜 음악학교 콩쿠르, ISO 콩쿠르에서 수상했다.[1] 박이 협연한 오케스트라 중에는 10세 때 웨인 심포니 오케스트라,[2] 2004년 경희대학교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있다.
2004년, 그는 링컨 센터와 UCLA를 포함한 미국 10개 도시를 순회했다.[1] 1996년 줄리아드 졸업 후에는 소니 뮤직과 함께 'The Bridge'(1997)와 'Peace'(1998)라는 두 개의 앨범을 발매했다. 마이클 잭슨과 함께 한국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 & 프렌즈" 자선 콘서트 (1999년)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서 공연했다. 여명의 곡 "Sugar in the Marmalade"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가사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다.
2. 1. 어린 시절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유진 박은 3세에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했고, 8세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역사상 최연소로 줄리아드 예비 학교에 입학했다. 10세 때 웨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2] 13세에 링컨 센터에서 데뷔하면서 신동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았다.[1] 16세에는 본격적으로 전기 바이올린을 시작하였고,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 홀 공연, 슈퍼볼 전야 축제 공연, 아스팬 재즈 앙상블과 협연했다. 또한 뉴욕의 명소이자 유명 라이브 클럽인 《화Wha》, 《블루노트Blue Note》에서 윈튼 마설리스 등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과 수많은 협연을 했다.유진 박은 의사였던 한국인 부모에게서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줄리아드 콩쿠르, 아스펜 음악학교 콩쿠르, ISO 콩쿠르에서 수상했다.[1]
2. 2. 초기 활동
1996년 줄리어드 음악 대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뉴욕 최고 매니지먼트사였던 스카시 스켓과의 계약을 거절하고 열린음악회 초청을 받아 국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유진 박은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소개되면서 팬들에게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클래식, 국악, 재즈, 얼터너티브 록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당시로서는 격식을 깨는 전기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며 혜성같이 등장한 유진 박은 열정 넘치는 무대 매너와 활발하고 힘찬 연주로 '유진박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첫 번째 앨범 《The Bridge》는 백만 장이 팔려 플래티넘을 기록하였다. 폭발적인 연주로 호평을 받아 TV 드라마 출연과 광고도 찍었으며, 1999년 6월에는 자서전 《질주》를 발간하였다. 1998년에는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취임식 축하 공연과, 1999년 마이클 잭슨의 방한 평화 콘서트에서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로 크고 화려한 무대를 장식했다.[5] 그 후에도 대규모 행사와 콘서트에 주요 연주자로서 초대받으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유진 박은 의사였던 한국인 부모에게서 뉴욕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여덟 살에 줄리아드 예비 학교에 입학했으며, 13세에 링컨 센터에서 공연했다.[1] 1996년 줄리아드 졸업 후, 소니 뮤직과 함께 《The Bridge》(1997)와 《Peace》(1998)라는 두 개의 앨범을 발매했다.
그는 줄리아드 콩쿠르, 아스펜 음악학교 콩쿠르, ISO 콩쿠르에서 수상했다.[1]
박이 협연한 오케스트라 중에는 웨인 심포니 오케스트라 (10세),[2] 2004년 경희대학교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리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있다.
2004년에는 링컨 센터와 UCLA를 포함한 미국 10개 도시를 순회했다.[1]
박은 마이클 잭슨과 함께 한국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 & 프렌즈" 자선 콘서트 (1999년)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서 공연했다.
박은 여명의 곡 "Sugar in the Marmalade"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가사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다.
2. 3. 최근 활동
2010년 4월 《미라클 오브 스프링(봄의 기적)》 콘서트를 시작으로 국내 귀국과 함께 재기 무대를 가졌다.[1] 2011년 5월에는 새로운 소속사 《스마프 프로덕션》과 전속 계약을 맺고 약 1년 간 함께 음악 작업을 하면서 미니 앨범 《Nostalgia》를 발매했다. 2014년 유진 박의 가능성을 보고 한국에 데뷔시켰던 매니저 김상철 씨와 재회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되찾았다. 2017년에는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고, 2018년 아람극장(1800여 석 규모)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였다.3. 논란 및 사건
2000년대 들어 유진 박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2009년과 2013년에 소속사와의 갈등 및 착취 논란으로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
2009년 7월, 네티즌들은 유진 박이 지방 소규모 행사, 유흥업소 등을 전전하며 소속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유진 박이 출연한 행사 내역과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영상을 증거로 제시했다. 특히, 2009년 6월 말 소속사 여가수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김 모씨가 유진 박의 전 매니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1]
이에 언론은 유진 박 측과 접촉했고, 유진 박의 현재 매니저는 유진 박이 최소 10개월 이상 여관에 갇힌 채 연주할 때만 나올 수 있었고, 각종 행사 출연료를 빼앗겼으며, 계약이 끝난 후에도 전 소속사 대표 김 모씨가 바이올린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며 연주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유진 박은 인터뷰에서 이러한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1]
2008년 12월, 유진 박의 현재 매니저와 어머니는 유진 박과 연락이 닿지 않자 군포경찰서에 신고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유진 박이 감금 사실을 부인하여 경찰은 전 소속사 대표를 무혐의 처리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유진 박은 허름한 여관에서 전 소속사 로드 매니저와 장기 투숙하며 자장면과 볶음밥으로 끼니를 때운 적이 많았고, 폭력을 싫어하는데도 사람들이 얼굴에서 피가 날 정도로 때렸으며, 바이올린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하여 큰 상처를 받았다고 밝혔다.[1]
2013년 4월, 한 누리꾼이 부산 소재 곱창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남루한 행색의 유진 박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소속사 착취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네티즌들은 서명 운동을 시작했고, 당시 소속사가 없던 유진 박의 스케줄을 관리하던 우 모씨는 언론에 해명해야 했다.[1]
네티즌들은 유진 박이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아 왔는데도 무리하게 지방 소규모 행사를 위주로 활동하게 하는 현재 매니저에게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포털 사이트 다음의 유진 박 공식 팬카페 ‘유진박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연합’ 회원들을 중심으로 진실 규명을 위한 서명 운동을 벌이고, 각 방송사에 취재를 요청하거나 국민인권위원회 국민 신문고에 사건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2009년 8월 12일, SBS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 《뉴스추적》 ‘유진 박의 진실’ 편이 방송되어 유진 박 사건은 전국민의 관심사로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유진 박 전 소속사 대표의 폭행·감금 혐의는 유진 박의 출국으로 조사가 중단되었다. 2011년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는 소속사 연예인에게 성상납을 강요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모 연예기획사 대표 김모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3. 1. 소속사와의 갈등 및 착취 논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진 박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2009년 7월 말, 네티즌들은 유진 박이 지방의 소규모 행사, 유흥업소, 무료 행사장을 전전하며 소속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들은 유진 박이 출연한 행사 내역과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영상을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2009년 6월 말 소속사 여가수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김 모씨가 유진 박의 전 매니저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1]네티즌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언론이 유진 박 측과 접촉했다. 유진 박의 현재 매니저는 유진 박이 최소 10개월 이상 여관에 갇힌 채 연주할 때만 나올 수 있었고, 각종 행사 출연료를 빼앗겼으며, 계약이 끝난 후에도 전 소속사 대표 김 모씨가 바이올린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며 연주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유진 박은 인터뷰에서 이러한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1]
2008년 12월, 유진 박의 현재 매니저와 어머니는 유진 박과 열흘 정도 연락이 닿지 않자 군포경찰서에 신고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유진 박이 감금 사실을 부인하여 경찰은 전 소속사 대표를 무혐의로 처리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유진 박은 허름한 여관에 전 소속사 로드 매니저와 장기 투숙하며 자장면과 볶음밥으로 끼니를 때운 적이 많았고, 폭력을 싫어하는데도 사람들이 얼굴에서 피가 날 정도로 때렸으며, 바이올린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하여 큰 상처를 받았다고 밝혔다.[1]
2013년 4월, 한 누리꾼이 부산 소재 곱창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남루한 행색의 유진 박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소속사 착취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네티즌들은 서명 운동을 시작했고, 당시 소속사가 없던 유진 박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우 모씨는 언론에 해명해야 했다.[1]
3. 2. 네티즌 구명 운동
한편 네티즌들은 유진 박이 그동안 심한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아 왔는데도 충분한 휴식과 요양 없이 무리하게 지방 소규모 행사를 위주로 소모성을 띠는 활동하게 하는 현재 매니저를 대상으로도 의혹을 꾸준히 제기한다. 특히 이 사건이 알려진 직후 개설된 포털 사이트 다음의 유진 박 공식 팬카페 ‘유진박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연합’ 회원들을 중심으로 각종 커뮤니티를 이용해 진실을 규명하자는 취지로 서명 운동을 벌이고 각 방송사에 취재를 요청하였으며, 국민인권위원회 국민 신문고에 사건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이 사람들은 전 소속사에서 있었던 폭행·감금 가해자들을 뚜렷하게 처벌해야 하고 현재 유진 박 매니지먼트를 맡는 회사와 관계도 정리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현재의 영세한 시스템 안에서 소모성을 띤 연주를 많이 하기보다는 장기에 걸친 전망이 있는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 사람들은 인권 단체와 변호사를 이용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유진 박이 공연하는 장소를 방문하여 '우리가 당신을 돕겠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적힌 영문 피켓을 들기도 하였다. 특히 2009년 8월 12일에 SBS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뉴스추적》 ‘유진 박의 진실’ 편이 방송되어 많은 이들을 슬프게 하고 충격스럽게 하였으며, 유진 박 사건은 전국민의 관심사로 다시 한 번 더 떠올라 구명 운동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유진 박의 전소속사 대표의 폭행·감금혐의는 유진 박의 출국으로 조사가 중단되었다. 소속 연예인 유진박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하고 행사비 갈취한 것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 이후, 2011년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는 소속사 연예인에게 성상납을 강요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모 연예기획사 대표 김모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4. 수상 경력
5. 음반 목록
유진 박의 음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1997년: The Bridge
- 1998년: Peace
- 2000년: Live
- 2006년: Gust
- 2011년: 미니 앨범 Nostalgia
5. 1. 정규 음반
5. 2. 참여 음반
6. 음악 활동
유진 박은 뉴욕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여덟 살에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했고, 13세에 링컨 센터에서 공연했다.[1] 1996년 KBS 열린음악회의 초청을 받아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클래식, 국악, 재즈, 얼터너티브 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전기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며 큰 사랑을 받았다.
줄리아드 졸업 후 소니 뮤직과 함께 두 개의 앨범을 발매했으며,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축하 공연과 1999년 마이클 잭슨 방한 평화 콘서트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에서 공연했다. 줄리아드 콩쿠르, 아스펜 음악학교 콩쿠르, ISO 콩쿠르에서 수상했고,[1] 웨인 심포니 오케스트라,[2]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했다. 2004년에는 링컨 센터와 UCLA를 포함한 미국 10개 도시를 순회했다.[1]
여명의 곡 "Sugar in the Marmalade"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6. 1. 미국
유진 박은 의사였던 한국인 부모에게서 뉴욕에서 태어났다. 3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8세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역사상 최연소로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했다.[1] 10세 때 웨인 심포니 오케스트라(Wayne Symphony Orchestra)와 협연했고,[2] 13세에 링컨 센터에서 데뷔하면서 신동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았다.[1] 16세에 본격적으로 전기바이올린을 시작하였고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 홀 공연, 슈퍼볼 전야 축제 공연, 아스팬 재즈앙상블 협연을 했다. 뉴욕의 명소이자 유명 라이브 클럽 《화Wha》, 《블루노트Blue Note》에서 윈튼 마설리스 등 세계 최고의 재즈뮤지션과 수많은 협연을 했다.그는 줄리아드 콩쿠르, 아스펜 음악학교 콩쿠르, ISO 콩쿠르에서 수상했다.[1]
박이 협연한 오케스트라 중에는 웨인 심포니 오케스트라 (10세),[2]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있다.
2004년, 그는 링컨 센터와 UCLA를 포함한 미국 10개 도시를 순회했다.[1]
6. 2. 대한민국
1996년 줄리어드 음악 대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뉴욕 최고 매니지먼트사였던 스카시 스켓과의 계약을 거절하고 KBS 열린음악회의 초청을 받아 국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5] 클래식, 국악, 재즈, 얼터너티브 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전기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며 혜성같이 등장한 유진 박은, 열정적인 무대 매너와 힘찬 연주로 '유진 박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첫 앨범 《The Bridge》는 백만 장 이상 판매되어 플래티넘을 기록하였고,[7] TV 드라마 출연과 광고 촬영, 1999년 6월 자서전 《질주》 발간으로 이어졌다.[11]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축하 공연과 1999년 마이클 잭슨 방한 평화 콘서트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에서 화려한 무대를 장식하며 전성기를 누렸다.[5]
7. 방송 출연
참조
[1]
간행물
KGA Times
http://kgatimes.or.k[...]
[2]
웹사이트
Interview
http://www.1stopkore[...]
[3]
기타
인간극장 Hey,Eugene 5부 1분 50초 참조
[4]
기타
인간극장 Hey,Eugene 5부 2분 10초 참조
[5]
기타
1999년 6월 서울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세계전쟁희생자 및 전 세계 불우이웃돕기 자선공연 '마이클과 친구들'
[6]
기타
유진 박의 바이올린 도입부 연주로 시작하는 이곡은 IMF 1999년 당시 국내 최고 실력과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뮤지션이 62명이 모여 부른 곡이다.
[7]
기타
앨범 《The Bridge》는 클래식, 재즈, 테크노, 얼터너티브 록, 국악까지 포괄한다.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표현하고 싶어 제작
[8]
기타
COOCOO의 모임은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유니텔을 보롯한 통신상에 있는 팬클럽이다.
[9]
기타
"문화사랑회"는 문화 애호가들이 모여 문화 사업을 후원하는 모임이다.
[10]
기타
「유진 박장학회」는 6개월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고교생 20명을 선정해 장학금 50만 원씩을 지원하고 해당 학교에는 시가 150만 원에 상당한 전기 바이올린을 1대씩 기증한다. 설립 당일 장학금 수혜 학생과 학부모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하는 공연했다.
[11]
서적
유진박의 자서전 질주
http://book.naver.co[...]
[12]
공연
‘천재음악가-클래식에서 재즈로, 그리고 다시 클래식으로’
[13]
기타
소니레코드 사장단 초청으로 해외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유진박을 타이현지 취재했다.
[14]
기타
전쟁영화 음악 'The Longest Day'와 '콰이강의 다리'를 연주했다.
[15]
인터뷰
폭행 및 감금 심경 최초 인터뷰
[16]
뉴스
뉴스추적 다시보기, '유진박의 진실'
http://media.daum.ne[...]
[17]
방송
돌아온 천재 유진박,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166회
http://vod.sbs.co.kr[...]
[18]
방송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시각장애소녀편에 특별출연
[19]
방송
'유진박의 맛있는 콘서트' 총 5회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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