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윤득실은 1768년 경기도 수원부에서 태어난 인물로, 조선 선조 때 형제 정승 윤두수, 윤근수의 후손이다. 수원 행궁 부지 편입으로 인해 충청남도 천안으로 이주했으며, 정조 시대에 치러진 시험에서 여러 차례 등급을 받고 상을 받았다. 관직에 올라 통덕랑을 지냈으나 술로 인해 사망했으며, 사후 손자 윤웅렬의 출세로 증직되었다. 묘는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로 이장되었으며, 가족 관계로는 윤취지의 고손자이며, 윤웅렬, 윤치호, 윤보선 등이 그의 후손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805년 사망 - 윌리엄 페일리
윌리엄 페일리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자연신학자이자 도덕철학자, 신학자로, '시계공 유추'를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으며, 그의 저술들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논의되고 지적 설계 이론의 기초가 되었으나, 과학적 진화론에 대한 반박으로 악용되는 등 논쟁적인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 1805년 사망 - 클로드 샤프
클로드 샤프는 움직이는 팔을 이용한 광학 전신 시스템인 샤프 전신을 개발하여 프랑스 혁명 이후 정국 안정과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프랑스 우위에 기여한 프랑스 발명가이다. - 1768년 출생 - 루이 라자르 오슈
루이 라자르 오슈는 프랑스 혁명 시기의 군인으로, 혁명 전쟁에서 활약하며 여러 전투에 참여했고, 반혁명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석방 후 군 사령관이 되었으나 29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 1768년 출생 - 마리아네 부르농빌
- 해평 윤씨 - 윤치영
윤치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며 이승만, 박정희 정부에서 요직을 역임하고 제헌 국회의원, 초대 내무부 장관, 주프랑스 공사, 서울특별시장, 국회의장 등을 지냈으나, 친일 의혹과 독재 정권 옹호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 해평 윤씨 - 윤보선
윤보선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한국민주당 창당, 서울특별시장 및 상공부 장관 역임, 제2공화국 대통령 역임, 그리고 민주화 운동 참여 등의 활동을 했다.
윤득실 | |
---|---|
기본 정보 | |
![]() | |
한자 | 尹得實 |
본관 | 해평 윤씨 |
출생일 | 1768년 |
사망일 | 1805년 (향년 37세) |
가족 | |
부 | 윤발 |
모 | 전주 이씨 |
형제 | 첫째 형 윤득눌 둘째 형 윤득술 셋째 형 윤득길 남동생 윤득칠 |
배우자 | 남양 홍씨 |
자녀 | 장남 윤교동 차남 윤우동 삼남 윤취동 장녀 해평 윤씨 |
친척 | 조부 윤세겸 조모 해주 정씨,김해 김씨 손자 윤영렬 증손자 윤치소 현손자 윤보선 |
관력 | |
직업 | 조선의 문신 및 관료 |
2. 생애
윤득실은 1768년 경기도 수원부 수원읍(현. 수원시)에서 윤발과 현감 이장(李樟)의 딸 전주 이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전주 이씨는 현감을 지낸 이장의 셋째 딸이었으나, 서녀였다. 어머니는 효령대군의 12대손이며, 임진왜란 때의 장군 이경록의 5대손이다.
바로 윗 형 윤득길(尹得吉)은 아들이 없던 삼촌 윤침(尹沈)의 양자로 갔다. 윤득실의 집안은 조선 선조 때의 형제 정승 윤두수, 윤근수 형제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윤발은 서자였고, 관직이 없었다.
수원부에 살던 그의 집이 수원 행궁터로 편입되면서 충청남도 천안군으로 이주했다. 1790년 6월 7일 수원부 행궁에 집터가 편입된 사대부들을 상대로 한 시험에서 고시(古詩) 부문 삼하 등급을 받아 선자(扇子) 2개를 하사받았다. 그해 12월 11일 정조가 주관한 수원부 제술 시험에 응시하여 미 7두를 하사받았다. 1791년 4월 3일 정조가 수원 읍내 유생들을 대상으로 주관한 응제시(應製詩)에서 갱 등급을 얻어 소어염 반급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26일 수원 읍내 유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부(賦) 부문 차중 등급으로 미 2두를 받았다.
관직은 통덕랑에 이르렀으나, 술을 좋아하여 술병으로 사망하였다. 훗날 손자 윤영렬은 자신의 자손들에게 술을 조심할 것을 강조했다 한다.
사후 손자 윤웅렬의 출세로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증 가선대부 의정부공찬, 증 내부협판으로 추증되었다. 셋째 아들 윤취동이 굶주린 불교 승려를 잘 대접했고, 승려가 알려준 이순신 묘 근처에 그를 매장했는데, 명당자리의 발복으로 후손들이 출세했다는 전설이 있다. 묘소는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로 이장되었다.
2. 1. 가계 배경
1768년 경기도 수원부 수원읍(현. 수원시)에서 윤발과 현감 이장(李樟)의 딸 전주 이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전주 이씨는 현감을 지내고 증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된 이장의 셋째 딸이었으나, 서녀였다. 효령대군파 파성군파 족보에는 서녀로 나타난다. 어머니 전주 이씨는 효령대군의 12대손이며, 파성군 철동의 8대손, 임진왜란 때의 장군 이경록의 5대손이다.셋째 아들이자 바로 윗 형 윤득길(尹得吉)은 아들이 없던 삼촌 윤침(尹沈)의 양자로 갔다. 그는 조선 선조 때의 형제 정승 윤두수, 윤근수 형제의 후손이었고, 도재 윤흔의 5대손이었다. 고조부 윤취지는 음서 제도로 출세하여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할아버지 윤세겸은 음서제도로 출사하여 지방관을 역임하고 종2품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그러나 윤득실의 아버지 윤발은 서자였고, 관직이 없었다. 후에 그의 집이 행궁에 편입되면서 아버지 윤발은 잠깐 낭청직을 지냈다. 그러나 1794년 자리가 없어 다시 관직에 임용되지 못했다. 아버지 윤발에게 후일 호조참의가 추증된 것은 아들 윤취동의 신원 상소 때문이었고, 다시 비서원승이 증직된 것은 손자 윤웅렬의 출세로 내려진 증직이었다.
2. 2. 초기 생애
1768년 경기도 수원부 수원읍에서 윤발과 현감 이장(李樟)의 딸 전주 이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전주이씨는 현감을 지내고 증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된 이장의 셋째 딸이었으나, 서녀였다. 효령대군파 파성군파 족보에는 서녀로 나타난다. 어머니 전주이씨는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효령대군의 12대손이며, 파성군 철동의 8대손, 임진왜란 때의 장군 이경록의 5대손이다.셋째 아들이자 바로 윗 형 윤득길(尹得吉)은 아들이 없던 삼촌 윤침(尹沈)의 양자로 갔다. 그는 조선 선조 때의 형제 정승 윤두수, 윤근수 형제의 후손이었고, 도재 윤흔의 5대손이었다. 고조부 윤취지는 음서 제도로 출세하여 관직이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할아버지 윤세겸은 음서제도로 출사하여 지방관을 역임하고 종2품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그러나 윤득실의 아버지 윤발은 서자였고, 관직이 없었다. 후에 그의 집이 행궁에 편입되면서 아버지 윤발은 잠깐 낭청직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1794년 자리가 없어 다시 관직에 임용되지 못했다. 아버지 윤발에게 후일 호조참의가 추증된 것은 그의 아들 윤취동의 신원 상소 때문이었고, 다시 비서원승이 증직된 것은 손자 윤웅렬의 출세로 내려진 증직이었다.
수원부에 살던 그의 집이 수원 행궁터로 편입되면서 그는 충청남도 천안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1790년(정조 14년) 6월 7일 수원부 행궁에 집터가 편입된 사대부들을 상대로 유생과 무사들을 시험할 때 그는 고시(古詩) 부문에서 삼상, 삼중, 삼하로 등급을 나눌 때 삼하 등급이었고 즉석에서 선자(扇子) 2개를 하사받았다. 그해 12월 11일 정조가 다시 수원부 제술을 주관할 때 응시, 이때 참여한 무사와 유생들을 시상할 때 그는 미 7두를 하사받았다.
1791년(정조 15년) 4월 3일 정조가 수원 읍내 유생들을 대상으로 응제시(應製詩)를 주관할 때, 삼하, 초삼하, 차상, 차하, 갱, 위 등급으로 나눌 때 그는 갱 등급을 얻어 소어염 반급을 상물로 받았다. 5월 26일 다시 수원 읍내 유생들을 시험할 때 부(賦)에서는 삼상, 삼중, 삼하, 차상, 차중, 차하, 외등으로 나눌 때 그의 성적은 차중이어서 미 2두를 상물로 받았다.
2. 3. 관직 생활 및 사망
관직에 올라 최종 품계는 통덕랑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술을 좋아하여 술병으로 사망하였다. 훗날 그의 손자 윤영렬은 자신의 자손들에게 술을 조심할 것을 강조했다 한다.2. 4. 사후
손자 윤웅렬의 출세로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증 가선대부 의정부공찬, 다시 증 내부협판으로 추증되었다. 굶주린 불교 승려를 잘 대접한 그의 셋째 아들 윤취동은 승려가 알려준 이순신 묘 근처에 그를 매장했다가 뒤에 명당자리의 발복으로 출세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묘소는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로 이장되었고, 그의 내외 묘소와 장남 윤교동 내외의 묘소, 윤취동의 첫 부인 고령 신씨 묘소가 순서대로 안장되었다.3.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비고 |
---|---|---|
고조부 | 윤취지 | |
증조부 | 윤채 | |
조부 | 윤세겸 | |
조모 | 김해 김씨 | |
이복 백부 | 윤옥 | |
이복 중부 | 윤학 | |
아버지 | 윤발 | 1726년 ~ 1798년 9월 25일 |
어머니 | 전주 이씨 | 1730년 ~ 1796년, 현감 이장의 서녀 |
숙부 | 윤침 | |
숙모 | 언양 김씨 | |
형님 | 윤득눌 | |
조카 | 윤해동 | |
형님 | 윤득술 | |
조카 | 윤경동 | |
형님 | 윤득길 | 윤침에게 양자로 감 |
부인 | 남양 홍씨 | 1765년 ~ 1816년 5월 7일, 홍득권의 딸 |
장남 | 윤교동 | |
자부 | 나주 임씨 | |
손자 | 윤팽렬 | |
차남 | 윤우동 | |
자부 | 우봉 이씨 | |
손자 | 윤봉렬 | |
증손 | 윤치중 | |
증손 | 윤치석 | |
삼남 | 윤취동 | |
자부 | 고령 신씨, 안동 김씨 | |
손자 | 윤웅렬 | |
증손 | 윤치호 | 계몽사상가, 사회운동가, 교육자 |
증손 | 윤치왕 | |
증손 | 윤치창 | |
손자 | 윤영렬 | |
증손 | 윤치오 | 윤일선 서울대 총장의 부친 |
증손 | 윤치소 | 윤보선 前 대통령의 부친 |
현손 | 윤보선 | 대한민국 제 4대 대통령 |
내손 | 윤상구, 윤동구, 윤완구, 윤완희 | |
증손 | 윤치성 | |
증손 | 윤치병 | |
증손 | 윤치명 | |
증손 | 윤치영 | 前 국회부의장, 윤인구 KBS 아나운서의 조부 |
외할아버지 | 이장 | 1680년 ~ 1752년 7월 20일 |
4. 기타
장남 윤교동은 친척의 아들을 양자로 들였으나 일찍 죽고, 윤우동의 후손과 윤취동의 후손이 전한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