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인
1. 개요
이경인은 조선 성종의 서자인 무산군의 4대손으로, 이괄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함흥 판관, 안산 현감 등을 역임했다. 병자호란 이후 벼슬을 버리고 광주 탄천변에 정자를 짓고 은거했으며, 그의 후손들은 심산정자에서 학문을 닦았다. 사후에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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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출신 -
차훈
차훈은 2015년 밴드 엔플라잉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하여 슬래시와 마크 트레몬티를 롤 모델 삼아 독자적인 기타 연주 스타일을 구축하고, 김재현과 유튜브 채널 'Two Idiots'를 운영하며, 2022년부터는 연기 활동과 솔로 싱글 발표를 병행하다 2023년 군악대에 입대한 대한민국의 기타리스트이자 배우, 유튜버이다. -
경기도 출신 -
윤태일 (1918년)
윤태일은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인이며, 박정희 정권에서 서울특별시장과 대한주택공사 총재,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
조선의 무신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무신 -
김응우
김응우는 김일성의 고조부로 평안도 대동 출신이며, 북한에서는 제너럴 셔먼호 격침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이 있고, 김일성 가문으로 이어진 전주 김씨이다. -
음서 -
박성빈 (조선)
박성빈은 1871년에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고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했으며, 아들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었다. -
음서 -
신기질
신기질은 남송의 장군이자 시인으로, 금나라에 저항하는 의병 활동 후 남송에 귀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나 북벌 정책으로 인해 주류 세력과 갈등하며 파직과 복직을 반복했고, 만년에는 은거하며 호방하고 비장미 넘치는 가사풍의 시를 썼으며 소식과 함께 "소신"으로 불린다.
2. 생애
이경인은 성종의 서자 무산군 종의 4대손으로, 11세에 부모를 잃고 태안군 팽수에게 양육되었다. 어려서 한강 정구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심희수, 허목 등과 교류하였다. 새고개(새능안)에 심산정자를 짓고 학문과 무예를 연마했다.
1610년(광해군 2) 음서로 관직에 올라,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녹원종공신이 되었다. 함흥판관, 안산현감, 경기도 이천도호부사 겸 광주병마진관 등을 역임했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근왕한 공로와 증조모의 친정 선조의 원종공신 이력 등이 인정되어 통정대부에 올랐다.
병자호란 이후, 이경인은 벼슬을 버리고 광주군 탄천변에 정자를 짓고 은거하며 한가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가 심산정자를 세운 곳은 정자(亭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정자리(亭子里)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미 정자나무가 있어 정자말, 정자골, 정자동으로 불리던 마을에 정착했다는 설, 정촌 능동(亭村陵洞)이라는 지명이 이미 있었다는 설 등도 있어, 그의 호 '정촌'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성종의 12번째 서자 무산군 종의 4대손으로, 증조부는 영안정 이학수(永安正 李鶴壽)이고, 할아버지는 화릉군 이수혜(花陵君 李秀蕙)이며, 아버지는 인원수 이강(仁原守 李橿)이고, 어머니는 평산 신씨로 한성부서윤 신효중(申孝仲)의 딸이다.
무산군의 다섯번째 아들인 태안군 이팽수(泰安君 李彭壽)가 후사가 단절되자 아버지인 인원수 이강이 그의 양손자로 출계하였다. 따라서 양주군 신혈면 중흥동에서 광주군 돌마면 정촌능동으로 와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11세에 부모를 잃고 태안군 팽수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려서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그는 새고개(새능안)에 심산정자(深山亭子)를 건립하고 학문에 열중하는 한편 활쏘기와 권술 등을 익혔다. 수학하는 동안 심희수, 미수 허목 등과 교류하였다.
2.2. 관직 생활과 이괄의 난
1610년 (광해군 2) 음서(蔭敍)로 내시교관이 되어 관직에 올랐다.
1624년 (인조 2)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참여하여 녹원종공신이 되고 함흥 판관, 안산 현감, 경기도 이천도호부사 겸 광주병마진관에 제수되었다. 이천 부사 겸 광주 병마진관 등을 역임하였는데, 병자호란 당시 근왕한 공로와 증조모 안산 김씨의 고조부 정경이 원종공신인 것 등이 감안되어 통정(通政)에 승진하였다. 그의 두 아들 선무랑 이석명(李錫命)과 사복정 이석형(李錫亨)은 심산정자에서 수학하던 중 8도선전교서가 내려지자, 수학하던 학사들을 거느리고 안성군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양곡을 군량으로 지원하였고 일부는 지하창고를 파서 잘 보관했다가 이후 8개 고을에 종자를 보급하여 기근을 구황(求荒)하여, 8개 고을에 이를 기념하는 거사비(去思碑)가 건립되었다.
2.3. 병자호란과 의병 지원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참여하여 원종공신에 녹훈되고, 함흥 판관, 안산 현감, 경기도 이천도호부사 겸 광주병마진관에 제수되었다. 이천 부사 겸 광주병마진관 등을 역임하였는데, 병자호란 당시 근왕한 공로와 증조모 안산 김씨의 고조부 정경이 원종공신인 점 등이 감안되어 통정대부에 승진하였다.
그의 두 아들 선무랑 이석명(李錫命)과 사복정 이석형(李錫亨)은 심산정자에서 수학하던 중 8도선전교서가 내려지자, 함께 공부하던 학사들을 거느리고 안성군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들은 양곡을 군량으로 지원하고, 일부는 지하 창고에 보관했다가 이후 8개 고을에 종자를 보급하여 기근 구황에 기여하였다. 8개 고을에는 이를 기념하는 거사비(去思碑)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이경인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내놓고 광주군 탄천변에 정자를 짓고, 한운야학(閑雲野鶴, 한가로운 생활로 유유자적하는 경지)으로 소일하였다.
2.4. 은퇴와 후학 양성
병자호란의 치욕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내놓고 광주군 탄천변에 내려와 정자를 짓고, 한운야학(閑雲野鶴, 한가로운 생활로 유유자적하는 경지)으로 소일하였다. 그 후 그가 심산정자를 세운 곳이 정자가 있는 마을이란 뜻의 정자리(亭子里)가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미 정자나무가 있어서 정자말, 정자골, 정자동이라 부르던 마을에 그가 정착했다는 설, 이미 정촌 능동(亭村陵洞)이라는 이름이 존재하였다는 설로, 그의 호 정촌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3. 사후
그의 심산정자(深山亭子)에서는 이후 3대에 걸쳐 수학하며 100여 명의 문하생을 길러냈다 한다.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정자리(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산 33-1), 불곡산 줄기 정촌 신능내(亭村新陵內, 새고개) 부락 간좌(艮坐)에 매장되었다. 뒷날 인근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산 11-1번지 장작골 산 능골에 있던 태안군 묘역이 1991년 성남시 도시개발로 인해 1991년 11월 23일 근처로 이장되어 와, 그의 묘소는 태안군 묘역과 함께 경기도 기념물 제118호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으로 지정되었다.
후대에 그의 묘소 인근에 8호선 미금역이 들어섰고, 묘소 바로 옆 동북방에는 한국가스공사, 한국토지공사가 들어섰다. 한국토지공사 정문 좌측, 운동장 좌측 오른쪽 300m 지점 등산로변에 그의 묘소가 있다.
4.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아버지 | 인원수 이강 (仁原守 李橿) | 1551년 12월 4일 ~ 1585년 또는 1645년 5월 13일 |
| 어머니 | 평산 신씨 (平山申氏) | 1554년 12월 19일 ~ ?년 5월 15일, 한성부 서윤 신효중(申孝仲)의 딸 |
| 동생 | 이경의(李敬義) | 덕원정 이추(德原正 李樞)의 양자로 출계 |
| 누이 | 전주 이씨 (全州李氏) | |
| 매부 | 신익수(申翼壽) | 평산 신씨, 문과 참의 |
| 누이 | 전주 이씨 (全州李氏) | |
| 매부 | 류역(柳湙) | 흥양 류씨, 문과 승지 |
| 외조카 | 류지원(柳之遠) | |
| 외조카사위 | 황덕흥(黃德興) | 사헌부 감찰 |
| 첫번째 부인 | 동래 정씨 (東萊鄭氏) | 1573년 6월 21일 ~ ?년 9월 10일, 의정부우의정 정언신(鄭彦信)의 딸, 슬하 1녀 |
| 딸 | 전주 이씨 (全州李氏) | |
| 사위 | 윤건지(尹建之) | 해평 윤씨, 현감, 판서 윤휘(尹暉)의 아들 |
| 외손자 | 윤제(尹堤) | |
| 외손자 | 윤원(尹垣) | |
| 외손자 | 윤담(尹墰) | |
| 두번째 부인 | 남양 홍씨 (南陽洪氏) | 1566년 6월 21일 ~ ?년 6월 16일, 판관 홍요좌(洪堯佐)의 딸, 슬하 2남 |
| 아들 | 이석명(李錫命) | 1611년 12월 26일 ~ 1673년 5월 7일 |
| 며느리 | 풍천 임씨 (豊川任氏) | 1615년 ~ 1666년 1월 10일, 승지 임효달(任孝達)의 딸 |
| 손자 | 이시흥(李始興) | |
| 손자 | 이정흥(李鼎興) | |
| 손자 | 이윤흥(李胤興) | |
| 손자 | 이익흥(李益興) | |
| 손녀 | 전주 이씨 (全州李氏) | |
| 손녀사위 | 조융(趙火+戎) | |
| 손녀 | 전주 이씨 (全州李氏) | |
| 손녀사위 | 양성(梁晟) | |
| 손녀 | 전주 이씨 (全州李氏) | |
| 손녀사위 | 박림(朴琳) | |
| 아들 | 이석형 | 숙부 항산군 이정(恒山君 李楨)의 제사를 봉사 |
| 딸 | 전주 이씨 (全州李氏) | |
| 사위 | 이회(李檜) | 연안 이씨, 문과 부사, 판서 이창정(李昌庭)의 아들 |
| 외손자 | 이우징(李虞徵) | |
| 외손자 | 이하징(李夏徵) | 문과 |
| 외손자 | 이명징(李明徵) | 현감 |
| 외손자 | 이도징(李道徵) | 무과 부사 |
| 외손자 | 이대징(李大徵) | |
| 딸 | 전주 이씨 (全州李氏) | |
| 사위 | 홍진한(洪振翰) | 남양인 |
| 첩 | 이름 미상 | |
| 서녀 | 전주 이씨 (全州李氏) | 전흡(田潝)의 처 혹은 첩 |
| 서외손자 | 전덕보(田德普) | |
| 서외손자 | 전덕윤(田德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