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인왕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인왕산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산으로, 고려 시대에는 명악으로 불렸고, 조선 시대에는 북악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높이는 342m이며, 경복궁, 청와대 등과 인접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치마바위에 '동아청년단결'이라는 글귀가 새겨지기도 했으며, 한국 전쟁 중에는 유격대 활동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인왕산 남쪽 기슭에는 인왕사가 위치해 있으며, 강감찬, 이항복 등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인왕산은 속담의 소재가 되기도 하며,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같은 문화재가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서울 서대문구의 지리 - 북한산
    북한산은 서울 북쪽에 위치하며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 백운대를 비롯한 봉우리와 계곡, 북한산성 등의 유적을 포함하며 수도권 시민들에게 녹지 공간을 제공한다.
  • 서울 서대문구의 지리 - 불광천
    불광천은 서울 은평구와 서대문구를 흐르는 하천으로 불광사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생태하천 복원 후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조성되었고 벚꽃축제 등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며 지하철 6호선과 인접해 있다.
  • 서울 종로구의 지리 - 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은 광화문 앞 사직로에서 시작하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끝나는 광장으로, 역사 회복, 육조거리 재현, 도시문화 공간 등의 역할을 하며, 주변에 주요 시설과 지하철역이 위치하고, 광장 사용과 관련한 논란과 대중문화 등장 등의 특징을 보인다.
  • 서울 종로구의 지리 - 청계천
    청계천은 조선시대부터 서울 도심을 흐르는 하천으로, 홍수 예방을 위한 치수 사업이 이루어졌으나 한국전쟁 후 환경 악화로 복개되었다가 2005년 복원되어 시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서울특별시의 산 - 남산 (서울)
    남산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높이 262m의 산으로,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지배의 상징적 공간이었으나, 광복 후 남산공원으로 조성되어 현재는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 서울특별시의 산 - 북악산
    북악산은 서울의 진산으로, 한양도성의 기점이자 청계천의 발원지이며 북악스카이웨이가 위치해 있고, 2009년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청와대 북쪽 구역 개방으로 인왕산, 북한산, 안산까지 등산이 가능하다.
인왕산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기본 정보
이름인왕산
한자 표기仁王山
로마자 표기Inwangsan
높이338 m
위치
국가대한민국
위치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대문구
지질학적 정보
산맥광주산맥
등반 정보
가장 쉬운 경로경복궁역
공원 정보
공원 이름인왕산 공원
공원 정보인왕산 공원 (서울시 공원 웹사이트)
기타
주요 암석기차바위
치마바위
이슬바위
모자바위
지렁이바위
인왕산 남측 전경
인왕산 남측 전경 (2023년)

2. 역사

고려 숙종 때 남경(서울)의 궁궐이 있었는데, 명악(明岳)이라 기록되어 있다.[4] 이후 조선 시대에 산신각이 있어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리다가, 서울을 둘러싼 산들 가운데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북악산으로 불리게 되었다.[4] 남쪽에 있는 산은 남산이라 불렸다.[4] 산의 높이는 342m이며, 남쪽으로는 완만하게 평평하고, 주변 산들보다 더 멋진 삼각형 모양으로 솟아 있다.[4]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 이성계는 이곳을 왕궁으로 정하고, 왕궁으로서의 위상을 높였다.[4] 조선이 건국되자 산정(山亭)에 산신을 모시는 사당이 만들어졌다.[4] 1394년(태조 4년)에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비롯하여 성곽과 경무대(景武臺)가 건설되었고,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 집무실인 청와대도 이 산 아래 위치해 있다.[4]

1939년 일제 조선총독부는 치마바위에 한자로 "東亞靑年團結"이라는 글귀를 새겼다.[5][6] 이는 일제 범아시아주의 청년 단체를 위한 것이었다.[5] 1945년 해방 후 이 글귀를 지우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부는 아직도 바위에 남아 있다.[6]

인왕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인왕사는 조선 초기 경복궁 동쪽을 수호하기 위해 창건된 사찰이다.[7] 인왕사에는 독특한 암석 지형인 선바위까지 이르는 다섯 불교 종파의 11개 사당이 있다. 선바위는 오랫동안 무속 의례와 제의에 사용되어 왔다. 인왕사의 사당 중 하나인 국사당은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의례에 사용되는 유명한 무속 사당이다.

2. 1. 고려 시대

강감찬 장군은 젊은 시절 이 지역 판관으로 부임하여 호랑이가 많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호랑이들의 대장을 알아보고 호통을 쳐서 호랑이들을 도망가게 했다.[4] 고려 숙종 때 남경(서울)의 궁궐이 있었는데, 명악(明岳)이라 기록되어 있다.[4]

2. 2. 조선 시대

조선 중기의 명신 필운 이항복이 살던 곳이다. 필운은 그의 호이다. 대략 숙종 치세 때의 박태성은 고양군에 묻힌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뵙고 북한산에서 호랑이의 도움을 40년간 받았으며, 사후에는 호랑이와 함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종 시절 대금의 명인이였던 정약대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으며,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를 한 알씩 넣어 나막신이 가득차면 돌아갔다고 한다.

1939년 일제 조선총독부는 치마바위에 "東亞靑年團結"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이는 일제 범아시아주의 청년 단체를 위한 것이었다. 1945년 해방 후 이 글귀를 지우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부는 아직도 바위에 남아 있다.

인왕산 남쪽 기슭에는 조선 초기 경복궁 동쪽을 수호하기 위해 창건된 인왕사가 있다. 인왕사에는 선바위까지 이르는 다섯 불교 종파의 11개 사당이 있으며, 선바위는 무속 의례와 제의에 사용되어 왔다. 국사당은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의례에 사용되는 유명한 무속 사당이다.

2. 3. 일제강점기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인왕산 부근에 살았었다. 이를 기념하여 윤동주 시인의 공원을 조성했으며 공원은 자하문고개 근처에 위치해있다. 바로 옆의 청운공원은 서울의 조망명소 중 한 곳이다.[14][15]

1939년 일제 조선총독부는 치마바위에 한자로 "'''동아청년단결'''(東亞靑年團結)"이라는 글귀를 새겼다.[5][6] 이는 일제 범아시아주의 청년 단체를 위한 것이었다.[5] 1945년 해방 후 이 글귀를 지우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부는 아직도 바위에 남아 있다.[6]

2. 4. 대한민국

한국 전쟁 당시 안병범 육군 대령(사후 육군 준장 추증)은 낙오병 등을 모아 유격대를 결성해 인왕산에서 활약하다가 국군의 참패 소식을 듣고 조국의 처지를 한탄하며 자결하였다. 서울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사후 경무관 추서)과 정종수 경장(사후 경사 추서)이 무장공비를 막다가 자하문 아래에서 전사하였고, 경복고등학교의 수위였던 정사영 씨가 살해되었다. 무장공비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 씨는 인왕산에서 생포됐다. 이후 인왕산은 25년 넘도록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3년 이후 부분 개방됐다.

김기덕 감독의 1967년 영화 《대괴수 용가리》에서는 인왕산 용가리가 나와 경복궁, 서울특별시 시청 등의 문화재들을 파괴하는데 해당 영화 극중의 캐릭터인 유광남 우주비행사(배역: 이순재 분)가 이(인왕산 용가리)를 물리친다.

고려 숙종 때 남경(서울)의 궁궐이 있었는데, 명악(明岳)이라 기록되어 있다.[4] 이후 조선 시대에 산신각이 있어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리다가, 서울을 둘러싼 산들 가운데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북악산으로 불리게 되었다.[4] 남쪽에 있는 산은 남산이라 불렸다.[4] 산의 높이는 342m이며, 남쪽으로는 완만하게 평평하고, 주변 산들보다 더 멋진 삼각형 모양으로 솟아 있다.[4]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 이성계는 이곳을 왕궁으로 정하고, 왕궁으로서의 위상을 높였다.[4] 조선이 건국되자 산정(山亭)에 산신을 모시는 사당이 만들어졌다.[4] 1394년(태조 4년)에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비롯하여 성곽과 경무대(景武臺)가 건설되었고,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 집무실인 청와대도 이 산 아래 위치해 있다.[4]

1939년 일제 조선총독부는 치마바위에 한자로 "東亞靑年團結"이라는 글귀를 새겼다.[5][6] 이는 일제 범아시아주의 청년 단체를 위한 것이었다.[5] 1945년 해방 후 이 글귀를 지우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부는 아직도 바위에 남아 있다.[6]

3. 전설 및 민속

고려 시대에 요나라의 침입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강감찬 장군이 젊었을 적에 이 지역 판관으로 부임하였는데, 인왕산북한산 일대에 호랑이가 많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강감찬은 노승으로 변신해 있던 호랑이들의 대장을 알아보고 호통을 쳤으며 호랑이들은 도망을 갔다고 한다.

숙종 치세 때 고양군(현재 고양시)에 묻힌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뵙고 일을 시작한 박태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고양군에 가려면 무악재를 넘어가야 했는데 어느날부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박태성을 태워줘 아버지의 산소까지 데려다주었고 집으로 돌아 올 때도 데려다주었다. 호랑이는 40년간 박태성을 도왔고 박태성이 죽었을때는 산소 옆에서 같이 죽었다. 이에 박태성의 후손들은 호랑이를 박태성의 산소 옆에 묻어주었고 제사까지 함께 지내주었으며 묘소는 북한산에 있다.

3. 1. 강감찬과 호랑이

고려 시대에 요나라의 침입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강감찬 장군이 젊었을 적에 이 지역 판관으로 부임하였는데, 인왕산북한산 일대에 호랑이가 많아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강감찬은 노승으로 변신해 있던 호랑이들의 대장을 알아보고 호통을 쳤으며 호랑이들은 도망을 갔다고 한다.

3. 2. 박태성과 호랑이

숙종 치세 때 고양군에 묻힌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뵙고 일을 시작한 박태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고양군에 가려면 무악재를 넘어가야 했는데 어느날부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박태성을 태워줘 아버지의 산소까지 데려다주었고 집으로 돌아 올 때도 데려다주었다. 호랑이는 40년간 박태성을 도왔고 박태성이 죽었을때는 산소 옆에서 같이 죽었다. 이에 박태성의 후손들은 호랑이를 박태성의 산소 옆에 묻어주었고 제사까지 함께 지내주었으며 묘소는 북한산에 있다.

3. 3. 정약대와 대금

대한제국 고종 시절 대금의 명인이었던 정약대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다.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를 한 알씩 넣어 나막신에 모래가 가득 차면 돌아갔다고 한다.

4. 속담


  • 인왕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13]
  • * 어떤 한 사람이 잘되어 세력이 커지면 그 덕을 입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많게 된다는 말. 인왕산이 '수양산'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13]
  •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있나.[13]
  • * 그 방면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말.[13]
  • 인왕산 중허리 같다.[13]
  • * 배가 부른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13]
  • 인왕산 차돌을 먹고 살기로 사돈의 밥을 먹으랴.[13]
  • * 아무리 어렵고 고생스러워도 처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싶지는 아니함을 이르는 말.[13]
  • 인왕산의 춘호리/春虎里중국어 같은데[10]
  • * 배가 부른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10]

5. 주변 시설 및 문화재

인왕산 주변에는 다양한 시설과 문화재가 위치해 있다. 서울 사직단, 종로도서관,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배화여자대학교, 경복고등학교, 배화여자고등학교, 필운대, 경복궁, 황학정, 종로보건소, 안산, 서대문형무소 등이 있다.[7]

인왕산 남쪽 기슭에는 조선 초기 경복궁 동쪽을 수호하기 위해 창건된 인왕사가 있다. 인왕사에는 독특한 암석 지형인 선바위까지 이르는 다섯 불교 종파의 11개 사당이 있으며, 선바위는 오랫동안 무속 의례와 제의에 사용되어 왔다. 인왕사의 사당 중 하나인 국사당은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의례에 사용되는 유명한 무속 사당이다.[7] 선바위는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대한민국 국보 제216호로, 리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1호이다.

6. 갤러리



인왕산 등산로

참조

[1] 논문 https://encykorea.ak[...] Academy of Korean Studies 2024-07-26
[2] 웹사이트 http://parks.seoul.g[...] The official site of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2008-05-05
[3] 서적 The Rough Guide to Seoul (Travel Guide eBook) https://books.google[...] Apa Publications (UK) Limited 2018-11-01
[4] 웹사이트 https://terms.naver.[...] 2018-05-26
[5] 웹사이트 http://jmagazine.joi[...] 2024-07-28
[6] 뉴스 https://mediahub.seo[...] 2024-07-28
[7] 논문 https://encykorea.ak[...] Academy of Korean Studies 2024-07-26
[8] 웹사이트 公園紹介、ソウルの公園 http://parks.seoul.g[...] 서울특별시 2012-06-19
[9] 백과사전 仁王山
[10] 서적 에센스 한일사전 민중서림 1983
[11] 웹사이트 서울의 공원 http://parks.seoul.g[...]
[12] 백과사전 인왕산
[13] 웹사이트 다음 국어사전 http://krdic.daum.ne[...]
[14] 기타 진무 천황 즉위기원 1939-00-00
[15] 신문기사 인왕산 허리의 높이 39메돌(m), 넓이 40메돌 되는 큰 바위에다 사방이 아홉 자 되는 "동아청년단결"의 여섯 자를 새기기로 한 것이며, (중략) 이 기념문자로 신동아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데 몸과 마음을 바치는 상징이 되게 하며 이 글씨를 생각함으로써 동아의 오족(族)을 대표한 청년들은 더욱 단결을 굳게 할 것을 맹세하기로 한 것이다. 매일신보 1939-09-1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