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직 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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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직 손씨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손응은 본래 순(荀)씨였으나 고려 현종의 이름과 같아 손씨로 사성되었으며, 손세향을 1세조로 하고 손간을 중시조로 한다. 고려 시대에는 손홍량이 판삼사사에 이르렀으며, 조선 시대에는 손조서가 집현전 학사로 활동했다. 일직 손씨는 상서공파, 좌승지공파, 판서공파로 크게 나뉘며, 주요 인물로는 손홍량, 손조서, 손린, 손정의 등이 있다. 1985년 22,215명, 2000년 24,187명, 2015년 안동 손씨와 합쳐 27,132명으로 조사되었으며, 조선 시대에 문과 6명, 무과 6명, 생원·진사시 급제자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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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직 손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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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유형 | 씨족 |
국가 | 한국 |
지역 | 안동 |
창시자 | 손응 |
관련 인물 | 손정의 |
웹사이트 | 일직손씨 대종회 |
한자 표기 | |
한국어 | 일직 손씨 |
한자 | 一直 孫氏 |
다른 이름 | 안동 손씨 |
본관 | |
관향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
인물 | |
주요 인물 | 손홍량 손조서 손처눌 손린 손우남 손욱성 손명대 손진민 손숙 손석원 손정의 손태곤 손태인 손기식 손병석 손상윤 손정의 |
통계 | |
2015년 인구 | 27,132명 |
2. 역사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손홍량 유허비에 의하면, 시조 '''손응'''(孫凝)의 원래 이름은 '''순응'''(荀凝)으로 '''순'''(荀)씨였는데, 고려 8대 현종의 이름과 음이 같아 손(孫)씨로 사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응 이후의 계대(繼代)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상의직장동정(尙衣直長同正)을 지낸 손세향(孫世鄕)을 1세조로 하고 있으며, 장군을 지낸 손간(孫幹)을 중시조로 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자리잡아 살면서 본관을 일직(一直)으로 삼게 되었다.
손홍량은 현재의 일직면 송리리에서 태어나 충렬왕부터 충정왕까지 6명의 왕을 섬기며 판삼사사에 이르렀고, 정평(靖平)이란 시호를 받았다. 손홍량은 밀직사를 지낸 손득수(孫得壽)와 전공판서를 지낸 손득령(孫得齡) 두 아들이 있고, 흥해 배씨(興海裵氏)의 안동 입향조 배전(裵詮)이 사위이다.
손영유(孫永裕)는 손홍량의 자손으로 조선 시대에 한성판윤을 지냈고, 그의 아들 손관(孫寬)은 진성현감을 지냈다. 손관의 맏아들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는 일직면 송리리에서 태어나 밀양 용평리에서 자랐으며, 143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 병조정랑을 거쳐 집현전 학사로 한림원에 있었다.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손조서는 도학과 문장이 뛰어났으며, 밀양의 서산서원(西山書院)과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2. 1. 시조 및 본관
고려 현종 때 순응(荀凝)이라는 인물이었으나, 임금의 이름과 음이 같아 손(孫)씨 성을 하사받고 이름도 손응(孫凝)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응 이후의 계대(繼代)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상의직장동정(尙衣直長同正)을 지낸 손세향(孫世鄕)을 1세조로 하고 있으며, 장군을 지낸 손간(孫幹)을 중시조로 하여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에 자리잡아 살면서 본관을 일직(一直)으로 삼게 되었다.[1]일직(一直)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일대의 지명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일직현(一直縣)이 직녕현(直寧縣)으로 개칭되어 고창군(古昌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는데, 고려에서 다시 일직현(一直縣)으로 바꾸었다.[1]
2. 2. 고려 시대
손홍량(孫洪亮)은 1287년(충렬왕 13년) 현재의 일직면 송리리에서 태어나 충렬왕부터 충정왕까지 6명의 왕을 섬기며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고, 복주부원군(福州府院君)에 봉해졌다.[1] 40여 년간 벼슬을 하며 고려 말기 국정에 이바지하다가 1351년(충정왕 3) 65세로 은퇴하여 고향에서 여생을 보냈다.[1]홍건적의 난 때 공민왕이 복주(福州)로 피난 오자 평복 차림으로 맞이하여 난국 수습책을 건의하였다.[1] 왕은 그의 충성심에 감탄하여 "충정이 하나같이 곧은 사람이 늙을수록 나라 위한 마음이 더하도다(子誠一直人 老而益篤)"라는 시를 내리고 정평공(靖平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1] 1364년 난이 평정된 후 축하를 위해 개경에 갔을 때 왕은 영정(影幀)과 구절산호용장(九節珊瑚龍杖: 용을 아로새긴 아홉 마디의 산호 지팡이)을 내리며 "경의 두 아들도 나를 섬기도록 하라"고 당부했다.[1]
손홍량의 맏아들 손득수(孫得壽)는 정순대부(正順大夫)로 밀직사 좌대언(密直司左代言) 등을 지냈고,[1] 둘째 아들 손득령(孫得齡)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전공 판서(典工判書) 겸 진현관 대제학(進賢館大提學)을 지냈다.[1] 흥해 배씨(興海裵氏)의 안동 입향조 배전(裵詮)은 손홍량의 사위이다.[1]
2. 3. 조선 시대
손홍량의 후손들은 조선 시대에도 벼슬을 이어갔다. 손영유(孫永裕)는 한성판윤을 지냈고, 그의 아들 손관(孫寬)은 진성현감을 지냈다.[1] 손관의 맏아들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는 일직면 송리리에서 태어나 밀양 용평리에서 자랐다.[1] 1435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 병조정랑을 거쳐 집현전 학사로 한림원에 있었다.[1] 외직으로 나가 봉산군수에 있다가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던 학사들이 순절하자 벼슬을 던지고 향리에 은거하였다.[1] 손조서는 도학이 깊고 문장과 학문이 뛰어났으며 밀양의 서산서원(西山書院)과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1]3. 분파
일직 손씨는 크게 상서공파(尙書公派), 좌승지공파(左承旨派), 판서공파(判書公派)로 나뉜다.
파명 | 분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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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공파(尙書公派) | 안동 송천파(安東松川派), 안협파(安峽派), 척곡파(尺谷派), 춘양파(春梁派) |
좌승지공파(左承旨派) | 경광파(鏡光派), 경산파(慶山派), 구계파(龜溪派), 김해파(金海派), 대구파(大邱派), 동래파(東萊派), 밀양파(密陽派), 세촌파(細村派), 송동파(松洞派), 신흥파(新興派), 예천파(禮泉派), 일직파(一直派), 청도파(淸道派) |
판서공파(判書公派) | 경주파(慶州派), 묵계파(默溪派), 봉화파(奉化派), 안동 송천파(安東松川派), 영주파(榮州派), 영천파(永川派), 의주파(義州派), 조양파(朝陽派), 책구리파(冊求里派), 풍기파(豊基派) |
4. 주요 인물
- 손홍량: 고려 말 문신으로, 1349년(충정왕 1) 추성수의동덕찬화공신에 봉해지고 도첨의찬성사를 거쳐 판삼사사가 되었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의 난 때 왕을 맞아 치하를 받았으며, 시호는 정평이다.[1]
- 손조서: 조선 초기 학자로, 1432년(세종 14) 사마시에 합격하고 1435년(세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운동 실패 후 은거하였다.[2]
- 손처눌: 조선 중기 성리학자.[3]
- 손린: 조선 중기 문신으로, 1623년 인조반정 후 예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 병조좌랑, 단성현감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4]
- 손명대: 조선 후기 무신으로, 1728년 이인좌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경상좌도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다.[5]
- 손상룡: 금위영 선전관, 무산부사, 장단부사, 김해부사 등을 역임하였다.[6]
- 손진민: 1750년(영조 26) 충청도수군절도사, 1752년(영조 28) 경상좌도병마절도사, 1754년(영조 30) 남도병마절도사, 1757년(영조 33) 북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1759년(영조 35)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임명되었다.[7]
- 손숙: 제6대 환경부 장관, 예술의전당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 손기식: 제19대 사법연수원장을 역임하였다.
- 손석원: 前 삼성토탈 사장을 역임하였다.
- 손기호: 대한법률구조공단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 손정의: 소프트뱅크 대표이사 사장이며, 재일 한국인 3세이다.
- 손병석: 제4대 국토교통부 제1차관,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 손기창: 경창산업 명예회장, 수당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5. 현대 사회
현대 사회에서 일직 손씨는 2015년 기준으로 27,132명으로 조사되었다.[1] 경상남도 밀양시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5. 1. 인구
2015년에는 안동 손씨 16,922명과 일직 손씨 10,210명을 합쳐 총 27,132명이다.[1]
5. 2. 집성촌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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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신흥리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6]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인동리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호명리 |
6. 과거 급제자
일직 손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6명[7], 무과 급제자 6명, 생원·진사시 급제자를 다수 배출하였다.
과 종류 |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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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 손단(孫湍), 손달원(孫達遠), 손린(孫遴), 손조서(孫肇瑞), 손처신(孫處愼), 손처인(孫處仁) |
무과 | 손명대(孫命大), 손문서(孫文恕), 손수대(孫秀大), 손진민(孫鎭民), 손초상(孫楚尙), 손태영(孫泰永) |
생원시 | 손세기(孫世紀), 손숭로(孫崇魯), 손우남(孫宇男), 손유남(孫有男), 손처신(孫處愼), 손효조(孫孝祖) |
진사시 | 손문갑(孫文甲), 손세탁(孫世鐸), 손유경(孫有慶), 손유남(孫有男), 손진충(孫盡忠), 손처약(孫處約), 손침(孫忱), 손항(孫沆), 손호(孫顥) |
음관 | 손경헌(孫璟憲), 손관원(孫觀遠), 손규헌(孫珪憲), 손성헌(孫成憲), 손수원(孫綏遠), 손양석(孫亮錫), 손양숙(孫亮肅), 손양한(孫亮漢), 손장헌(孫章憲), 손태헌(孫泰憲), 손해원(孫海遠) |
의과 | 손세균(孫世鈞) |
참조
[1]
논문
A Comparison of the Korean and Japanese Approaches to Foreign Family Names
http://www.sciea.org[...]
2014
[2]
간행물
韓国人の起源に関する中高生の意識と『国史』教科書との関係
http://www2.lib.yama[...]
2012
[3]
웹사이트
KOSIS
https://kosis.kr/sta[...]
2022-11-21
[4]
논문
韓国人の起源に関する中高生の意識と『国史』教科書との関係
https://yamagata.rep[...]
山形大学歴史・地理・人類学研究会
2012-03
[5]
서적
週刊ポスト2011/02/18日号「〈短期集中連載〉あんぽん 孫正義伝(6)」
http://www.zassi.net[...]
小学館
[6]
웹사이트
손씨(孫氏) 본관(本貫) 일직(一直)입니다.
http://www.findroot.[...]
2022-07-27
[7]
문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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