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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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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덕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로, 오빠 장현과 함께 듀엣 현이와 덕이로 활동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며, 안양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1980년대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오빠 장현의 투병과 자신의 불면증, 우울증으로 인해 1990년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이후 추모 앨범이 발매되었으며, 그녀의 곡들은 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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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장덕
장덕
본명장덕
출생일1961년 4월 21일
출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사망일1990년 2월 4일 (향년 28세)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족아버지 장규상
어머니 이숙희
오빠 장현
학력테네시 주립 대학교 작곡학과 (중퇴)
장르대중음악
직업가수
싱어송라이터
작사가
작곡가
음반 프로듀서
배우
악기기타
피아노
첼로
드럼
활동 시기1975년 ~ 1990년
소속사코아기획
관련 활동드래곤 래츠
리 패밀리
현이와 덕이
웹사이트장덕 공식 홈페이지

2. 학력

3. 생애

3. 1. 어린 시절

장덕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아버지 장규상과 서양화가였던 어머니 이숙희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2]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엄마의 영향으로 오빠 장현바이올린을, 장덕은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장덕이 서울흥인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종교적, 성격적 불화로 부모가 이혼하면서 가족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장덕은 고모 집에, 장현은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장덕은 <누가 누가 잘하나> 등 동요 경연대회에 여러 번 나가 1등을 수상했고, 이때부터 오빠가 준 기타로 작곡을 시작하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2]

3. 2. 현이와 덕이 결성 및 활동 (1975-1979)

1975년 장덕은 오빠 장현과 함께 남매 듀엣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고, 드래곤 래츠라는 이름으로 통기타를 메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열린 미8군 주최의 파티 무대에서 데뷔한다.[3]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어 TBC TV 프로그램 '오라오라'에 출연, <꼬마인형>과 <일기장>을 부르며 최연소 남매 듀엣으로 이름을 알렸다.[3] 현이와 덕이는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등이 수록된 컴필레이션 음반 《친구야 친구》를 발표했다.[3]

1977년 장덕은 송창식의 권유로 진미령에게 <소녀와 가로등>을 작사, 작곡해 주었고, 이 곡은 제1회 서울가요제에서 입상하며 작곡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3] 1978년, 현이와 덕이 정규 1집이 발표되었다. 1979년 제2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3년 연속 서울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웠다.[3]

장덕은 영화 <내 마음 나도 몰라>(1977), <선생님 안녕>(1977), <우리들의 고교시대>(1978) 등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도 병행했다.[3]

3. 3. 미국 유학, 결혼과 이혼 (1980-1983)

1980년 5월 제3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를 작사/작곡하여 대회에 출전하지만, 입상은 하지 못한다. 이후 장덕은 어머니가 살고 있는 미국 테네시주의 내쉬빌로 유학을 가게 된다. 1980년 10월이었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같은 해 12월, 장덕은 내쉬빌 한인회 밴드 '리 패밀리'를 도와달라는 한인회 회장의 부탁을 받고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결국 승낙한다.

1981년 장덕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옮겨 음악의 기초 · 이론 · 감상 · 작곡 · 작곡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된다. 또한 내쉬빌 작곡가 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한인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 한국의 샘터에서 MC로도 활동하였고, 한인회 밴드인 리패밀리 멤버(리더)가 되어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장덕은 같은 리 패밀리의 멤버 이승언과 1981년 10월 17일, 내쉬빌에서 결혼한다.

미국에 머물던 이 시기 장덕은 미국 가수에게 <여인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을 주어서 취입시키기도 하였는데, 당시 장덕의 미국 내 창작활동은 미국 일간지 및 [테네시언]지에 크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3. 4. 솔로 활동 및 슬럼프 (1983-1985)

1983년 10월 이혼 후 한국으로 귀국한 장덕은 한남동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4] 11월, 서라벌레코드와 3년간 1000만원에 전속 계약을 맺고 정규 1집 《날 찾지 말아요》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날 찾지 말아요>를 비롯해 <안녕히 계세요>, <가을에 만난 소녀>, <철없는 안녕> 등이 수록되었다. 장덕은 방송 출연을 꺼렸지만, <날 찾지 말아요>는 1984년 5월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에서 집계한 '한 달 동안 방송을 가장 많이 탄 노래' 부문 3위까지 올랐다.[4] 이 시기 장덕은 국보자매에게 <백치미>, <사랑하고 있나봐요>를 작사/작곡해 주기도 했다.[4]

1984년 10월, 장덕은 이미례 감독, 김진아 · 남궁원 주연의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4] 11월에는 정규 2집을 발표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크지 않았다. 어린 시절과 달리 성인이 되어 복귀한 연예계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이 장덕을 힘들게 했다. 결국 장덕은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하게 보냈고, 방송 출연 섭외 전화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4] 1985년 4월,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오빠 장현이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4]

3. 5. 현이와 덕이 재결성, 솔로 복귀와 제2의 전성기 (1985-1987)

1985년 6월 장현과 장덕 남매는 7년 만에 현이와 덕이를 재결성하고 정규 2집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는 단숨에 가요 순위 10위권 안에 들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에서 장덕은 B면 3번 트랙 <그댄 없지만>과 정규 1집 수록곡을 재편곡한 B면 4번 트랙 <소녀와 가로등>, B면 5번 트랙 <순진한 아이>를 제외한 모든 곡을 오빠 장현과 함께 만들었다.

1986년 5월에는 장덕이 작곡한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발표되었다. 이 곡은 이은하가 밴드 활동 당시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후 쓴 가사에 장덕이 곡을 붙인 것이다. 이 곡은 리듬앤블루스 스타일로, 훗날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며 장덕의 대표곡 중 하나로 꼽힌다.

1986년 6월, 장덕은 솔로 3집 《님 떠난 후》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님 떠난 후>는 KBS 가요톱10에서 1987년 2월 18일부터 1987년 3월 18일까지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골든컵을 수상했고, 다른 여러 인기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이 앨범을 통해 장덕은 1986~87년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가장 성공한 여성 스타로 인정받았다.

3. 6. 활발한 솔로 활동과 오빠의 투병 (1987-1990)

1987년 7월 장덕은 정규 4집 《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발표, 수록곡 〈이별인 줄 알았어요〉가 《가요톱10》 등에서 순위권에 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9월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 3회 ABU(아시아 태평양 방송연합) 가요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 〈너를 기다릴거야〉를 불렀는데, 이 곡은 1989년 발매된 장덕의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에 재편곡되어 수록되었다. 이 시기 장덕의 오빠 장현도 솔로 데뷔 음반 《마지막 진실》을 발표했는데, 수록곡 대부분이 장덕 작사/작곡의 곡들로 채워져 있어 장덕이 오빠를 위해 만든 앨범으로도 여겨진다.

1988년 9월 장덕은 정규 5집 《얘얘》를 발표, 타이틀곡 《얘얘》는 무대 위 장덕의 귀엽고 깜찍한 율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9년 2월, 오빠 장현은 코아기획이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장덕의 매니지먼트를 시작했다. 장덕의 새 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해》 작업 막바지였던 1989년 6월 18일, 장현은 설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장현은 수술을 거부하고 자가요법을 택했으며, 앨범 작업 막바지에 장덕에게 암 발병 사실을 알렸다. 장덕은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고, 얼마 후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가 발표되었다. 동명 타이틀곡은 좋은 반응을 얻었고, 1990년 1월에는 KBS 신년 특집극 드라마구리반지》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앨범 활동 중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자, 장덕은 활동을 중단하고 오빠의 병간호에 전념했다.

3. 7. 사망 (1990년 2월 4일)

장덕은 오빠 장현의 설암 투병 간호와 가수 활동을 병행하며 심한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었다.[5] 1990년 1월 20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출연이 장덕의 마지막 방송 출연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2시 50분, 서울특별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자택에서 감기약, 기관지 확장제, 수면제를 함께 복용한 후 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의상 담당 문인옥에게 발견되어 서대문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약물 상호작용에 의한 쇼크로 사망했다(향년 28세).[5] 문인옥은 장덕이 평소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고 증언했다.[5]

경찰은 장덕이 오빠 장현의 병간호와 신곡 작업 등으로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 왔다는 주변 진술을 토대로, 과로와 감기 증세로 인한 약물 과다 복용이 부작용을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5] 그러나 수면제 과다 복용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5]

장덕의 사망 이후, 유작 앨범은 그녀의 운명을 예언했다는 소문과 함께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5] 오빠 장현은 동생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5] 봉천동 자택에서 열린 영결식은 가수 이태원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남궁옥분 등 50여 명의 동료 가수들이 오열하며 참석했다.[5]

같은 해 6월, 장덕·장현 남매의 매니저였던 김철한의 기획으로 전영록, 이선희, 변진섭 등 12명의 동료 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 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되었다.[6] 이 앨범에는 장덕의 기존 곡 리메이크와 미발표곡 <일어나> 등이 수록되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가요 순위 톱10에 올랐다.[6]

설암으로 투병 중이던 장현은 1990년 7월 병세가 악화되어 경기도 성남시 성남병원으로 옮겨졌으나, 8월 16일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에 의존하다가 향년 34세로 사망했다.[6]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인 죽음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장덕과 동갑인 양하영은 장덕 사후 장덕의 조카(장현의 아들) 장원을 만나기도 했다.[7]

4. 사후

1990년 6월, 이선희, 전영록 등 12명의 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 음반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되었다. 이 앨범에는 리메이크 곡과 미발표 곡이 수록되었으며, 밴드 연주자 26명, 회사 및 단체 20개, 27명이 도움을 주었다.

이후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소녀와 가로등> 등 장덕의 곡들은 여러 후배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꾸준히 사랑받았다. 1994년 신수경의 2집 앨범에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리메이크되어 수록되었고, 1995년에는 혼성그룹 투투가, 2004년에는 JK 김동욱이 이 곡을 리메이크했다. 진미령의 <소녀와 가로등>은 2004년 테이가, 2014년 홍진영이 리메이크했고, 2015년에는 어쿠스틱 콜라보가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OST로 리메이크했다.

2010년대 이후 장덕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되었다. 2011년 MBC LIFE TV 《히스토리 후》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장덕을 다루었고, 2013년 KBS2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는 '별이 된 천재소녀 故 장덕 편'이 방송되었다. 2014년 MBN아궁이》에서는 현이와 덕이의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조명했다.

2020년 12월에는 남이섬에 장덕 기념비가 건립되었고, 2021년 4월 17일에는 남이섬에서 장덕 공연, 전시, 노래비 건립 기념식 등 추모행사가 개최되었다. 2022년 4월 25일에는 비즈엔터에서 장덕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증명하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5. 음반 목록

5. 1. 현이와 덕이 음반

각 음반의 수록곡은 대부분 장덕 또는 장덕/장현에 의해 작사/작곡되었다. 캐럴 음반 《디스코 크리스마스》는 예외이며 컴필레이션 음반 《친구야 친구》, 그리고 참여 음반 《푸른교실 · 선생님 안녕 (OST)》은 장덕 또는 장현이 참여한 곡에 한한다. 자세한 정보는 각 음반 문서를 참고할 것.

5. 1. 1. 컴필레이션 음반

친구야 친구 (1976)

5. 1. 2. 캐럴 음반

5. 1. 3. 정규 음반

5. 1. 4. 참여 음반


  • 푸른교실 · 선생님 안녕 (OST) (1978)

5. 2. 솔로 음반

각 음반의 수록곡은 대부분 장덕에 의해 작사/작곡되었다.


자세한 정보는 각 음반 문서를 참고할 것(참여 음반은 장덕이 참여한 곡에 한한다.).

5. 2. 1. 컴필레이션 음반

5. 2. 2. 정규 음반

5. 2. 3. 참여 음반


  • '77 서울가요제 (1977)
  • '78 서울국제가요제 (1978)
  • 고향생각 (하영) (1978)
  • '79 서울국제가요제 (1979)
  • 꽃띠여자 (김트리오) (1980)
  • 나는 떠나가네 (최병걸) (1981)
  • 수렁에서 건진 내딸 (1984, 영화)
  • 백치미 (국보자매) (1984)
  • 하나에서 또 하나 (이용식) (1985)
  • 무등산 (방미) (1985)
  • 애인 (이경) (1986)
  • 외출 (김형용) (1986)
  •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이은하 86) (이은하) (1986)
  • 이 시간이 지나면 (지예) (1986)
  • 만날 수 없는 사랑 (장현) (1986)
  • 이 음악을 들어요 / 슬픈외면 (김영선) (1987)
  • 기다리지 말아요 (mbc 신인가요제 / 예민영) (1988)
  • 마지막 입맞춤 (김범룡) (1988)
  • 무명초 (김지애) (1989)
  • 경험 (안다미)(1989)
  • 고향생각 (훈이) (1989)
  • 크리스마스 이브 (박혜성) (1989)
  • 왜 (마스코트) (1990)
  • The Mermaid (연석원) (1990)
  • 사랑은 사랑대로 이별은 이별대로 (임병수) (1990)
  • 꽃처럼 나비처럼(하춘하) (1990)
  • 그래서 그런거야 (성희) (1990)
  • 미련(안다미) (1991)
  • 비 그리고 사랑 (강용욱) (1991)
  • 우리 사랑 영원히 (김성필) (1991)

5. 3. 추모 헌정음반

각 음반의 수록곡은 대부분 장덕에 의해 작사/작곡되었다. 자세한 정보는 각 음반 문서를 참고할 것.

5. 3. 1. 컴필레이션 음반

5. 3. 2. 싱글 음반

6. 출연 작품

6. 1. 영화

6. 2. TV 드라마

참조

[1] 뉴스 요절가수 장덕·장현 남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http://entertain.nav[...] 연합뉴스 2015-05-28
[2] 웹인용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 http://www.etoday.co[...] 2013-04-14
[3] 문서 는 장덕 작곡의 첫 발표곡으로 영어가사는 미8군 관계자이자 드래곤 래츠를 초청한 엘 클리나드가 붙인 것이다(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 또한 엘 클리나드가 붙였다.).
[4] 방송 아궁이 65회 - 파란만장 가족사 http://www.mbn.co.kr[...] MBN 2014-07-11
[5] 뉴스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1990-02-04
[6] 웹인용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 http://www.etoday.co[...] 2013-04-14
[7] 뉴스 ‘마이웨이’ 양하영 최초 다큐, 단짝친구 故장덕 향한 그리움 고백 [종합] https://entertain.na[...] TV리포트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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