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니 6A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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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미니 6A호는 1965년 12월에 발사된 미국의 제미니 계획 유인 우주선이다. 원래는 아제나 표적기와 랑데부를 시도할 예정이었으나 아제나 발사 실패로 인해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 임무로 변경되었다. 제미니 6A호는 12월 15일에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궤도 진입에 성공했고, 94분 후 궤도 수정을 통해 제미니 7호와 랑데부에 성공했다. 랑데부 비행 중에는 선장 월리 시라가 하모니카로 징글 벨을 연주하는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제미니 6A호는 12월 16일 대서양에 착수하여 회수되었으며, 현재 오클라호마 역사 센터에 전시되어 있다. 이 임무는 우주 랑데부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했으며, 대한민국의 우주 개발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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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12월 - 제미니 7호
제미니 7호는 제미니 계획의 일환으로 발사되어 프랭크 보먼과 짐 러벨이 탑승, 장기 우주 체류와 제미니 6A호와의 랑데부를 통해 우주 환경 적응성 연구 및 우주 랑데부 기술을 입증하고, 다양한 실험으로 향후 아폴로 계획의 기반을 다졌다. - 월리 시라 - 징글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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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니 6A호 | |
---|---|
임무 개요 | |
임무 유형 | 우주 랑데부 |
운영 기관 | NASA |
COSPAR ID | 1965-104A |
SATCAT | 1839 |
임무 기간 | 1일 1시간 51분 24초 |
궤도 횟수 | 16 |
우주선 정보 | |
우주선 | 제미니 SC6 |
제작사 | 맥도넬 |
발사 정보 | |
발사일 | 1965년 12월 15일 13:37:26 UTC |
발사 로켓 | 타이탄 II GLV, s/n 62-12561 |
발사 장소 |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 기지 LC-19 발사대 |
착륙 정보 | |
착륙일 | 1965년 12월 16일 15:28:50 UTC |
착륙 지점 | 북대서양 23 |
궤도 정보 | |
궤도 기준 시점 | 1965년 12월 15일 |
궤도 기준 | 지구 중심 |
궤도 종류 | 저궤도 |
궤도 경사 | 28.9도 |
궤도 주기 | 89.95분 |
승무원 정보 | |
승무원 수 | 2 |
승무원 | 월터 M. 쉬라 주니어 토머스 P. 스태퍼드 |
![]() | |
임무 연대표 | |
이전 임무 | 제미니 7호 |
다음 임무 | 제미니 8호 |
프로그램 | 제미니 계획 |
휘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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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 |
목표 | 우주 랑데부 |
주요 사건 | |
역사적인 첫 랑데부 | 제미니 6A호와 제미니 7호 간의 최초 유인 우주 랑데부 성공 |
2. 승무원
제미니 6A호의 승무원은 다음과 같다. 선장은 월리 시라, 파일럿은 토머스 스태포드였다. 월리 시라는 두 번째 우주 비행이었고, 토머스 스태포드는 첫 번째 우주 비행이었다.
제미니 6A호의 질량은 3546 kg, 원지점은 161 km, 원점은 259.4 km, 경사각은 28.97°, 궤도 주기는 88.7 분이었다.
주 승무원을 대신할 수 있는 백업 승무원으로는 버질 그리섬(선장)과 존 영(파일럿)이 있었다. 이들은 제미니 3호의 주 승무원이기도 했다.
제미니 6A호 임무에는 다양한 지원 승무원이 참여하여 임무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여러 역할을 수행했다. 찰스 A. 배셋 2세[3], 앨런 L. 빈(케이프 캡콤), 유진 A. 서넌(휴스턴 캡콤), 엘리엇 M. 시 주니어(휴스턴 캡콤) 등이 있었다.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 기지 발사대 14에서 발사된 제미니 6A호의 케이프 캡콤은 앨런 빈이었다. 유진 서넌과 엘리엇 시는 휴스턴 캡콤 역할을 수행했다.
2. 1. 주 승무원
월리 시라 - 선장토머스 스태퍼드 - 파일럿
2. 1. 1. 월리 시라
- 발터 시라 - 선장, 두 번째 우주 비행
- 토머스 스태퍼드 - 파일럿
- '''질량:''' 3546 kg
- '''원지점:''' 161 km
- '''원점:''' 259.4 km
- '''경사각:''' 28.97°
- '''궤도 주기:''' 88.7 분
2. 1. 2. 토머스 스태포드
- 토머스 스태퍼드 - 파일럿, 첫 번째 우주 비행
2. 2. 백업 승무원
주 승무원을 대신할 수 있는 예비 승무원은 다음과 같다.- 버질 그리섬 - 선장
- 존 영 - 파일럿
- 찰스 A. 배셋 2세(휴스턴 캡콤)
- 앨런 L. 빈(케이프 캡콤)
- 유진 A. 서넌(휴스턴 캡콤)
- 엘리엇 M. 시 주니어(휴스턴 캡콤)
- 선장: 거스 그리섬
- 파일럿: 존 영
2. 2. 1. 거스 그리섬
버질 그리섬은 선장을 맡았다. 그는 제미니 3호의 주 승무원이기도 했다.2. 2. 2. 존 영
존 영 - 파일럿2. 3. 지원 승무원
제미니 6A호 임무에는 다양한 지원 승무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임무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여러 역할을 수행했다.2. 3. 1. 찰스 배셋
해당 섹션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정보를 제공해주시면 위키텍스트 형식으로 작성해 드리겠습니다.2. 3. 2. 앨런 빈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 기지 발사대 14에서 발사된 제미니 6A호의 케이프 캡콤은 앨런 빈이었다.2. 3. 3. 유진 서넌
유진 서넌은 제미니 6A호 임무 동안 휴스턴 캡콤(Communicaitons Capable) 역할을 수행했다.2. 3. 4. 엘리엇 시
엘리엇 시는 휴스턴의 캡콤이었다.3. 임무 목표
제미니 6호는 원래 아제나 표적기와의 궤도 랑데부를 목표로 1965년 10월에 발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65년 10월 25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 기지에서 아틀라스 로켓으로 발사된 아제나 표적기가 발사 6분 만에 폭발하면서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 사고로 인해 제미니 6호의 발사는 연기되었다.
이후 제미니 6호 임무는 제미니 6A호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 시험을 진행하는 것으로 목표가 수정되었다. 1965년 12월 4일, 장기 우주 체류 실험을 목적으로 제미니 7호가 먼저 발사되었다. NASA는 제미니 7호 발사 8일 후 대체 제미니 6A호 임무를 발사하기로 결정했다. 제미니 6A호는 제미니 7호를 표적으로 궤도상에서 두 우주선의 최초 랑데부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제미니 6A호의 발사는 1965년 12월 12일로 예정되었지만, 발사 당일 로켓 엔진 점화 직후 접속 플러그 문제로 엔진이 정지되며 중단되었다. 재발사는 1965년 12월 15일 13:37:26 UTC에 이루어졌으며, 성공적으로 발사된 제미니 6A호는 근지점 161 km, 원지점 259 km 궤도에 진입했다.
발사 94분 후 궤도 변경을 실시,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를 시도했다. 당시 제미니 7호는 제미니 6A호보다 높은 궤도에서 1,175 km 떨어져 있었으나, 제미니 6A호는 속도를 높여 제미니 7호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2시간 18분 후 483 km, 3시간 15분 후 434 km까지 접근하여 레이다로 제미니 7호와 교신, 근지점 270 km, 원지점 274 km 궤도에 진입했다. 이후 미세한 궤도 수정을 반복하며 발사 5시간 50분 후 두 우주선은 약 90 m 거리까지 접근, 랑데부 비행에 돌입했다. 90 m에서 30 cm까지 거리를 좁히며 약 270분(지구 3회 주회) 동안 랑데부 비행을 진행했다. 승무원 휴식 후에는 충돌 회피를 위해 두 우주선은 16 km 거리를 유지했다.
이 랑데부 비행 동안 선장 발터 시라는 우주로 가져간 소형 하모니카로 징글 벨을 연주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제미니 6A호는 다음날 제미니 7호보다 먼저 대기권에 재돌입, 1965년 12월 16일 15:28:50 UTC에 대서양 해상에 착수하여 미국 해군 항공모함 ''USS 와스프''에 의해 구조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제미니 6A호/7호 지원을 위해 10,125명의 인원, 125기의 항공기, 16척의 함정을 투입했다.
현재 제미니 6A호는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에 위치한 오클라호마 역사 센터에 전시되어 있다.
원래 제미니 6호 임무는 46시간 47분 동안 총 29번의 궤도 비행을 완료하고 버뮤다 남쪽 서부 대서양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또한, 아제나 표적기와의 4번의 도킹을 포함할 계획이었다. 초기 임무 계획에는 회수선인 미국 항공모함 ''와스프''에서 해상에서 미국 우주선의 회수를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3. 1. 초기 목표 (취소)
제미니 6호는 당초 아제나 표적기와의 궤도 랑데부를 목표로 1965년 10월 발사될 예정이었다.[6] 그러나 1965년 10월 25일 15시 0분 4초 (UTC)에 케이프커내버럴 공군 기지 LC-14 발사대에서 아틀라스 로켓으로 발사된 아제나 표적기가 6분 후 폭발하면서 발사에 실패했다. 이 사고로 제미니 6호의 발사 준비는 중단되고, 랑데부 시험은 연기되었다.[7]1965년 10월 25일, 발터 시라와 토머스 스태포드는 제미니 6호에 탑승하여 발사를 준비했다. 15분 후, 무인 아틀라스-아제나 표적기가 발사되었다. 아틀라스 부스터의 연소 성공 후, 아제나 엔진이 점화되어 아틀라스에서 분리되었다. 그러나 비행 6분 지점에서 아제나 엔진이 점화된 직후 원격 측정이 중단되었다. 사거리 안전 통제는 대서양으로 떨어진 잔해를 추적한 결과, 차량이 폭발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50분 후, 제미니 발사는 공식적으로 취소되었다.[6][7]
아제나 | GATV-5002 |
---|---|
질량 | 3,261 kg, 7800 lbs. |
발사 기지 | LC-14 |
발사일 | 1965년 10월 25일 |
발사 시각 | 15:00:04 UTC |
폭발 | 15:06:20 UTC |
3. 2. 변경된 목표
제미니 6호는 당초 아제나 표적기와의 궤도 랑데부를 목표로 1965년 10월 발사 예정이었으나, 1965년 10월 25일 발사된 아제나 표적기가 폭발하며 실패했다. 이로 인해 제미니 6호의 발사는 연기되었다.이후 제미니 6호 임무는 제미니 6A호로 변경되어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 시험을 진행하게 되었다. 1965년 12월 4일, 장기 우주 체류 실험을 목적으로 제미니 7호가 먼저 발사되었다.
제미니 6A호의 발사는 1965년 12월 12일로 예정되었으나, 발사 당일 로켓 엔진 점화 1초 후 접속 플러그 문제로 엔진이 정지되며 중단되었다. 재발사는 1965년 12월 15일 13:37:26 UTC에 이루어졌으며, 성공적으로 발사된 제미니 6A호는 근지점 161 km, 원지점 259 km 궤도에 진입했다.
제미니 6A호는 발사 94분 후 궤도 변경을 실시,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를 시도했다. 당시 제미니 7호는 제미니 6A호보다 높은 궤도에서 1,175 km 떨어져 있었으나, 제미니 6A호는 속도를 높여 제미니 7호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2시간 18분 후 483 km, 3시간 15분 후 434 km까지 접근하여 레이다로 제미니 7호와 교신, 근지점 270 km, 원지점 274 km 궤도에 진입했다. 이후 미세한 궤도 수정을 반복하며 발사 5시간 50분 후 두 우주선은 약 90 m 거리까지 접근, 랑데부 비행에 돌입했다. 90 m에서 30 cm까지 거리를 좁히며 약 270분(지구 3회 주회) 동안 랑데부 비행을 진행했다. 승무원 휴식 후에는 충돌 회피를 위해 두 우주선은 16 km 거리를 유지했다.
발터 시라 선장은 이 때 우주로 가져간 소형 하모니카로 징글 벨을 연주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제미니 6A호는 다음날 제미니 7호보다 먼저 대기권에 재돌입, 1965년 12월 16일 15:28:50 UTC에 대서양 해상에 착수하여 미국 해군 항공모함 ''USS 와스프''에 의해 구조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제미니 6A호/7호 지원을 위해 10,125명의 인원, 125기의 항공기, 16척의 함정을 투입했다.
제미니 6A호는 현재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 오클라호마 역사 센터에 전시되어 있다.
NASA는 상황 검토 후, 12월에 14일간의 장기 임무로 예정된 제미니 7호 발사 8일 후 대체 제미니 6A호 임무를 발사하기로 결정했다. 제미니 6A호는 제미니 7호를 표적으로 궤도상에서 두 우주선의 최초 랑데부를 수행할 예정이었으며, 도킹은 계획되지 않았다. 승무원들은 스태포드가 6A호에서 7호로 우주 유영하여 제미니 7호 조종사 짐 러블과 자리를 바꾸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제미니 7호 사령관 프랭크 보먼은 러블이 장기 임무에서 불편한 우주복을 입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대했다.
4. 비행 과정
제미니 6A호의 발사 시도는 기술적인 문제로 여러 차례 연기되었다. 1965년 10월 25일 11시 41분에는 아틀라스-아제나 로켓의 궤도 진입 실패로 발사가 취소되었고, 이후 임무 계획이 수정되어 제미니 6A호로 지정되었다.[9] 12월 12일 9시 54분에는 전기 플러그 문제로 점화 직후 양쪽 엔진이 모두 정지되어 다시 한번 발사가 취소되었다.
1965년 12월 15일 19시 33분 (UTC)에 제미니 6A호는 드디어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타이탄 로켓의 배터리가 교체되고 연료 사전 밸브 문제가 해결된 후였다. 발사 및 상승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1단계 연소 정지는 T+160초, 2단계 연소 정지는 T+341초에 발생했다. 우주선 분리는 T+361초에 이루어졌고, 승무원은 161x259 km 궤도에 진입했다.[13]
제미니 6A호는 네 번째 궤도에서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를 계획했다. 발사 후 94분 후 첫 번째 점화가 이루어져 초당 5미터 속도가 증가했다. 이로 인해 제미니 6A호는 더 낮은 궤도로 제미니 7호를 따라잡기 시작했고, 1,175 킬로미터 뒤쳐져 있었다. 2시간 18분 후 다음 점화가 이루어졌으며, 제미니 6A호는 제미니 7호와 동일한 궤도 경사에 진입하기 위해 위상 조정을 했다. 이 시점에서 거리는 483 킬로미터로 좁혀졌다.[13]
3시간 15분 후, 제미니 6A호의 레이더가 434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제미니 7호와 처음으로 접촉했다. 세 번째 점화는 270x274 km 궤도에 진입하게 했다. 시라는 제미니 6A호의 컴퓨터가 랑데부를 담당하도록 설정하고 서서히 접근했다. 5시간 4분쯤 그는 밝은 별을 보았는데, 이는 시리우스가 아니라 제미니 7호였다.[13]
몇 번의 추가 점화 후 두 우주선은 불과 40미터 떨어졌다. 점화로 제미니 6A호의 추진제는 51킬로그램만 사용되었고, 여러 차례의 비행에 충분한 양이 남아 있었다. 이후 270분 동안 승무원들은 무선으로 대화를 나누며 30센티미터까지 접근하여 근접 비행을 했다. 시라는 우주에는 난기류가 없기 때문에 "기동 능력에 놀랐다. 제미니 7호를 돌며, 문자 그대로 원을 그리며 비행했고, 완벽한 자신감을 가지고 몇 인치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13]
승무원 수면 시간이 다가오자 제미니 6A호는 분리 연소를 실시하여 제미니 7호에서 30킬로미터 이상 천천히 멀어졌다. 이는 우주 비행사들이 잠을 자는 동안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14]
4. 1. 첫 번째 발사 시도
제미니 6A호 임무(제미니 우주선 6호의 두 번째 시도)의 첫 번째 발사 시도는 1965년 12월 12일 오전 9시 54분(동부 표준시)에 이루어졌다.[6] 점화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엔진이 점화되었지만, 약 1.5초 후에 갑자기 꺼졌다. 우주선에서 발사 시계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령관인 월리 시라는 즉시 무릎 사이의 D-링을 당겨 사출 좌석을 작동시켜야 했다.[10] 완전히 연료가 채워진 타이탄 II가 LC-19로 다시 떨어지는 재앙으로부터 우주비행사들을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라는 어떠한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고, 로켓이 이륙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발사 중단을 결정하지 않았다. 그의 빠른 판단은 임무를 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제미니 사출 좌석의 신뢰성이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출 좌석이 적어도 244 m를 발사해야 하는데, 이는 폭발하는 타이탄 II로부터 안전한 거리로 여겨졌고, 이 과정에서 우주비행사들은 높은 g-힘으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우주선 내부는 몇 시간 동안 순수 산소로 채워져 있었다. 1997년 NASA 구술 역사에서 톰 스태포드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11]
우주비행사들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사출은 우주선을 망가뜨리고 임무를 몇 달 동안 지연시켰을 것이다.
1단계 엔진이 점화되었다가 꺼진 후, 연료(UDMH)가 PSV 배수 밸브에서 새어 나왔다. 연료는 엔진 시동으로 인해 점화되었고, 그 결과 발생한 화재는 패드 승무원이 엔진실을 점검하면서 발견되었다. 물이 분사되었고, 배수관에 캡이 설치되었다. 발사 중단 약 60분 후, 로켓과 우주선은 안전하게 되었고 서비스 타워가 위로 올라갔다. 타이탄 II에서 추진제를 제거한 후, 로켓을 점검했고, 그들은 빠르게 한 가지 원인을 찾아냈다. 그것은 로켓 기저부에서 조기에 빠져나온 엄빌리컬 플러그였다. 이 플러그는 우주선에 이륙 신호를 보냈다. 테스트 결과 일부 플러그가 다른 플러그보다 쉽게 빠져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제대로 고정될 다른 플러그로 교체했다.
그러나 전기 플러그는 로켓의 유일한 문제가 아니었다. 원격 측정 검사 결과 타이탄이 플러그가 빠지기 전에 실제로 추력이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엔진 1호는 영향을 받지 않았고, 차단 시 거의 100% 추력에 도달했지만, 엔진 2호는 비행 성능 수준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기술자들은 밤새도록 1단계를 샅샅이 뒤졌지만, 추력 감소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한 기술자가 문제를 확인했는데, 그것은 몇 달 전에 마틴 마리에타 공장에서 로켓을 조립할 때 부주의하게 안에 남겨두었던 가스 발생기 내부의 플라스틱 먼지 덮개로, 산화제의 흐름을 막고 있었다. 덮개를 제거하고 타이탄 II는 다시 발사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부주의한 전기 연결 해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발사 중단 감지 시스템은 엔진 2호 챔버 압력 손실로 인해 T+2.2초에 타이탄에 차단 명령을 보냈을 것이다. 발사대에서 분리 및 이륙은 T+3.2초에 이루어지므로, 이 시나리오에서도 패드 백오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주비행사들은 안전했을 것이다.[12]
4. 2. 두 번째 발사 시도 및 랑데부
1965년 12월 15일 19시 33분 (UTC)에 제미니 6A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타이탄 로켓의 배터리가 교체되었고, 연료 사전 밸브 문제가 해결되었다. 발사 및 상승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1단계 연소 정지는 T+160초, 2단계 연소 정지는 T+341초에 발생했다. 우주선 분리는 T+361초에 이루어졌고, 승무원은 100x161 마일 (161x259 km) 궤도에 진입했다.[13]제미니 6A호는 네 번째 궤도에서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를 계획했다. 발사 후 94분 후 첫 번째 점화가 이루어져 초당 5미터 속도가 증가했다. 이로 인해 제미니 6A호는 더 낮은 궤도로 제미니 7호를 따라잡기 시작했고, 1,175 킬로미터 뒤쳐져 있었다. 2시간 18분 후 다음 점화가 이루어졌으며, 제미니 6A호는 제미니 7호와 동일한 궤도 경사에 진입하기 위해 위상 조정을 했다. 이 시점에서 거리는 483 킬로미터로 좁혀졌다.[13]
3시간 15분 후, 제미니 6A호의 레이더가 434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제미니 7호와 처음으로 접촉했다. 세 번째 점화는 168x170 마일 (270x274 km) 궤도에 진입하게 했다. 시라(Schirra)는 제미니 6A호의 컴퓨터가 랑데부를 담당하도록 설정하고 서서히 접근했다. 5시간 4분쯤 그는 밝은 별을 보았는데, 이는 시리우스가 아니라 제미니 7호였다.[13]
몇 번의 추가 점화 후 두 우주선은 불과 40미터 떨어졌다. 점화로 제미니 6A호의 추진제는 51킬로그램만 사용되었고, 여러 차례의 비행에 충분한 양이 남아 있었다. 이후 270분 동안 승무원들은 무선으로 대화를 나누며 30센티미터까지 접근하여 근접 비행을 했다. 시라는 우주에는 난기류가 없기 때문에 "기동 능력에 놀랐다. 제미니 7호를 돌며, 문자 그대로 원을 그리며 비행했고, 완벽한 자신감을 가지고 몇 인치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13]
승무원 수면 시간이 다가오자 제미니 6A호는 분리 연소를 실시하여 제미니 7호에서 30킬로미터 이상 천천히 멀어졌다. 이는 우주 비행사들이 잠을 자는 동안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14]
5.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
다음 날, 재진입 전에[14], 제미니 6A호 승무원들은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여기는 제미니 6호입니다. 북에서 남으로 가는 물체를 발견했는데, 극궤도로 도는 인공위성 같습니다. 아주 낮은 고도로 북에서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상승률이 매우 높습니다. 곧 재진입할 것 같습니다... 아주 낮아요. 곧 재진입할 것 같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저 물체를 잡아보겠습니다.[15]
이때, 8음계 호너 "리틀 레이디" 하모니카와 작은 종 몇 개로 "징글벨" 연주가 들려왔다.[16][17]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이것이 우주에서 연주된 최초의 악기라고 주장하며, 해당 악기를 전시하고 있다.[18]
5. 1. 징글벨 연주
다음 날, 재진입 전에[14], 제미니 6A호 승무원들은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여기는 제미니 6호입니다. 북에서 남으로 가는 물체를 발견했는데, 극궤도로 도는 인공위성 같습니다. 아주 낮은 고도로 북에서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상승률이 매우 높습니다. 곧 재진입할 것 같습니다... 아주 낮아요. 곧 재진입할 것 같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저 물체를 잡아보겠습니다."[15]
1965년 12월 16일, 제미니 6호, 제미니 7호, 휴스턴 관제소 간의 교신에서 8음계 호너 "리틀 레이디" 하모니카와 작은 종 몇 개로 "징글벨" 연주가 들려왔다.[16][17]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이것이 우주에서 연주된 최초의 악기라고 주장하며, 해당 악기를 전시하고 있다.[18]
6. 재진입 및 회수
제미니 6A호는 역추진 로켓을 점화하여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북동쪽 대서양의 계획된 지점으로부터 18km 이내에 착륙했다. ITT가 개발한 이동식 위성 지구국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 최초의 회수였으며, 회수 항공모함 USS ''와스프''의 갑판에서 이루어졌다.
제미니 7호와 6A호 임무는 10,125명의 인원, 125대의 항공기, 그리고 16척의 선박 등 미국 국방부의 지원을 받았다.
6. 1. 대기권 재진입
제미니 6A호는 역추진 로켓을 점화하여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북동쪽 대서양의 계획된 지점으로부터 18km 이내에 착륙했다. 이는 ITT가 개발한 이동식 위성 지구국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 최초의 회수였으며, 회수 항공모함 USS ''Wasp''의 갑판에서 이루어졌다.
제미니 7호와 6A호 임무는 10,125명의 인원, 125대의 항공기, 그리고 16척의 선박 등 미국 국방부의 지원을 받았다.
6. 2. 회수
제미니 6A호는 역추진 로켓을 점화하여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북동쪽 대서양의 계획된 지점으로부터 18km 이내에 착륙했다. 이는 ITT가 개발한 이동식 위성 지구국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 최초의 회수였으며, 회수 항공모함 USS ''와스프''의 갑판에서 이루어졌다.
제미니 7호와 6A호 임무는 미국 국방부의 지원을 받았는데, 10,125명의 인원, 125대의 항공기, 그리고 16척의 선박이 동원되었다.
7. 임무 휘장
월터 시라는 저서 《우리가 한 일은 달에 가는 것이었다》에서 제미니 6호 패치에 대해 설명했다. 패치는 임무 번호를 반영하여 육각형 모양이며, 우주선의 궤적은 숫자 "6"을 그리고 있다. "제미니"를 나타내는 "쌍둥이 별" 카스토르와 폴룩스 위에 제미니 6호 우주선이 겹쳐져 있다. 시라는 패치를 적경의 여섯 번째 시간에 위치하도록 설계했는데, 이는 랑데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리온자리 영역이었다. 실제로 랑데뷰는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원래 패치에는 비행이 GTA-6(제미니-타이탄-아제나)으로 표기되어 있었고, 제미니 우주선이 아제나를 쫓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그러나 임무가 두 대의 제미니 우주선을 묘사하도록 변경되면서 수정되었다.
7. 1. 패치 디자인
육각형 모양의 제미니 6A호 패치는 임무 번호 '6'을 반영하며, 우주선의 궤적 또한 숫자 "6"을 그리고 있다. 패치에는 "제미니"를 나타내는 "쌍둥이 별" 카스토르와 폴룩스가 겹쳐져 있다.월터 시라는 패치를 적경의 여섯 번째 시간에 위치하도록 설계했는데, 이는 랑데뷰가 발생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리온자리 영역이었다. 실제 랑데뷰도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원래 패치에는 비행이 GTA-6(제미니-타이탄-아제나)으로 표기되었고, 제미니 우주선이 아제나를 쫓는 모습이 묘사되었으나, 임무가 두 대의 제미니 우주선을 묘사하도록 변경되면서 수정되었다.
7. 2. 초기 디자인 변경
월터 시라는 자신의 저서 《우리가 한 일은 달에 가는 것이었다》에서 패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Blockquote|제미니 6호 패치는 임무 번호를 반영하여 육각형 모양이며, 우주선의 궤적 또한 숫자 "6"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미니 6호 우주선은 "제미니"를 나타내는 "쌍둥이 별" 카스토르와 폴룩스 위에 겹쳐져 있습니다.
저는 패치를 적경의 여섯 번째 시간에 위치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곳은 랑데뷰가 발생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천체 영역(오리온자리)이었습니다. 결국 그곳에서 실제로 랑데뷰가 이루어졌습니다.}}
원래 패치에는 비행을 GTA-6(제미니-타이탄-아제나)으로 표기하고, 제미니 우주선이 아제나를 쫓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는 임무가 두 대의 제미니 우주선을 묘사하도록 변경되면서 수정되었다.
8. 우주선 위치
제미니 6A호는 현재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의 오클라호마 역사 센터(Oklahoma History Center)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19] [[File:Stafford_Air_&_Space_Museum,_Weatherford,_OK,_US_(106).jpg|right|thumb|스태포드 항공우주 박물관(Stafford Air & Space Museum)에 전시된 제미니 6A호
이 우주선은 오클라호마 주(Oklahoma) 웨더포드에 위치한 스태포드 항공우주 박물관(Stafford Air & Space Museum)에 전시되어 있으며, 이전에는 오클라호마 시티의 오클라호마 역사 센터(Oklahoma History Center)에 전시되었다.[19] 이 우주선은 이전에 시내 다른 곳에 있는 옴니플렉스 과학 박물관(Omniplex Science Museum)에 전시되기도 했다. 이 우주선은 스미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에서 장기 대여한 것이다.
오클라호마로 옮겨지기 전에는 미주리 주(Missouri)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과학 센터(St. Louis Science Center)에 전시되었다.
8. 1. 스태포드 항공우주 박물관
이 우주선은 현재 오클라호마주(Oklahoma) 웨더포드에 위치한 스태포드 항공우주 박물관(Stafford Air & Space Museum)에 전시되어 있으며, 이전에는 오클라호마 시티의 오클라호마 역사 센터(Oklahoma History Center)에 전시되었다.[19] 이 우주선은 이전에 시내 다른 곳에 있는 옴니플렉스 과학 박물관(Omniplex Science Museum)에 전시되기도 했다. 이 우주선은 스미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에서 장기 대여한 것이다.오클라호마로 옮겨지기 전에는 미주리주(Missouri)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세인트루이스 과학 센터(St. Louis Science Center)에 전시되었다.
9. 임무의 의의와 평가
제미니 6A호 임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당초 아제나 표적기와의 랑데부를 목표로 1965년 10월 발사될 예정이었으나, 아제나 표적기 발사 실패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이후 제미니 6A호는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 시험을 수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으며, 이는 우주 랑데부 기술의 가능성을 입증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65년 12월 15일 발사된 제미니 6A호는 발사 94분 후 궤도 변경을 시작, 제미니 7호와 랑데부에 성공했다. 두 우주선은 90m에서 30cm까지 접근하여 약 270분 동안 랑데부 비행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발터 시라는 우주에서 하모니카로 징글 벨을 연주하는 깜짝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제미니 6A호는 1965년 12월 16일 대서양 해상에 착수하며 임무를 마쳤으며, 현재 오클라호마시티의 오클라호마 역사 센터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제미니 6A호의 랑데부 성공은 대한민국의 우주 개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주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젊은 세대의 우주 과학에 대한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발터 시라의 하모니카 연주는 우주 개발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감성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준다. 대한민국 역시 우주 개발을 통해 독자적인 우주 기술 확보는 물론, 인간과 우주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9. 1. 우주 랑데부 기술의 입증
제미니 6호는 원래 아제나 표적기와의 궤도 랑데부를 목표로 1965년 10월 발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65년 10월 25일 15:00:04 UTC에 케이프커내버럴 공군 기지 LC-14 발사대에서 아틀라스 로켓으로 발사된 아제나 표적기가 6분 후 폭발하면서 발사가 실패했다. 이에 따라 제미니 6호의 발사 준비는 연기되었다.이후 제미니 6호 임무는 제미니 6A호로 변경되어 제미니 7호와의 랑데부 시험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 계획은 제미니 7호가 궤도를 도는 동안 제미니 6A호를 발사하여 랑데부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장기 우주 체류 실험을 목적으로 1965년 12월 4일 제미니 7호가 먼저 발사되었다.
1965년 12월 12일로 예정된 제미니 6A호 발사 당일, 로켓 엔진 점화 직후 접속 플러그가 빗나가 컴퓨터가 이상을 감지, 엔진이 정지되면서 발사가 중단되었다. 승무원은 비상 탈출을 할 수도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해 그대로 좌석에 머물렀다. 72시간의 원인 규명 및 대책 수립 후, 재발사는 1965년 12월 15일 13:37:26 UTC에 케이프커내버럴 공군 기지 LC-19 발사대에서 이루어졌다. 성공적으로 발사된 제미니 6A호는 근지점 161 km, 원지점 259 km 궤도에 진입했다.
제미니 6A호는 발사 94분 후 궤도 변경을 실시, 4주기 안에 제미니 7호와 랑데부할 계획이었다. 당시 제미니 7호는 제미니 6A호보다 높은 궤도에서 돌고 있었으며, 두 우주선은 1,175 km 떨어져 있었다. 제미니 6A호는 초속 5 km로 가속하여 제미니 7호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2시간 18분 후 궤도 수정 시 483 km까지 접근했고, 3시간 15분 후에는 434 km까지 접근, 레이다로 제미니 7호와 최초 교신하며 근지점 270 km, 원지점 274 km 궤도에 진입했다. 이후 미세한 궤도 수정을 반복, 발사 5시간 50분 후 두 우주선은 약 90 m 거리에서 랑데부 비행을 시작했다. 이후 90 m에서 30 cm까지 거리를 좁히며 약 270분(지구 3회 공전) 동안 비행했다. 승무원 휴식 시간으로 랑데부는 종료되었고, 충돌을 피하기 위해 두 우주선은 16 km 거리를 유지했다.
발터 시라 선장은 우주로 가져간 소형 하모니카로 징글 벨을 연주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제미니 6A호는 다음날 제미니 7호보다 먼저 대기권에 재진입, 1965년 12월 16일 15:28:50 UTC에 대서양 해상에 착수했다. 이후 미국 해군 항공모함 ''USS 와스프''에 의해 구조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제미니 6A호/7호 지원을 위해 인원 10,125명, 항공기 125대, 함정 16척을 투입했다.
제미니 6A호는 현재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 오클라호마 역사 센터에 전시되어 있다.
9. 2. 대한민국의 우주 개발에 주는 시사점
제미니 6A호의 랑데부 성공은 대한민국 우주 개발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우선, 우주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제미니 계획은 미국의 아폴로 계획을 위한 필수적인 단계였으며, 랑데부 기술은 달 착륙을 가능하게 한 핵심 기술이다. 대한민국 역시 독자적인 우주 기술 확보를 통해 누리호 개발에 성공했지만, 더욱 심도있는 우주 탐사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투자가 필수적이다.
또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미니 계획은 미국과 여러 국가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역시 국제우주정거장(ISS) 참여, NASA와의 협력 등을 통해 우주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앞으로도 국제적인 협력을 확대하고, 대한민국의 우주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대한민국의 우주 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정부는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젊은 세대의 우주 과학에 대한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 제미니 6A호의 랑데부 성공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다. 대한민국 역시 젊은 세대들이 우주 과학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양한 우주 관련 행사를 개최하여 관심을 높여야 한다.
발터 시라가 제미니 6A호에서 하모니카로 징글 벨을 연주한 일화는 우주에서도 인간적인 감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우주 개발 역시 기술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인간과 우주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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