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긍하
1. 개요
조긍하는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테너 성악가, 피아니스트, 사진작가, 영화감독, 영화 평론가, 음악 평론가, 소설가, 영화 제작자이다. 도쿄 데이고쿠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1940년 성악가로 데뷔하여 활동하다 사진, 영화 분야로 전향했다. 1952년 영화 《베일 부인》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여 《황진이》, 《곰》 등 여러 작품을 연출했으며, 1968년 소설 《세월이 흘러가면》을 발표하며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1978년 이후 영화계에서 은퇴했으며, 그의 아들 조동진과 조동익, 딸 조동희도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조긍하 |
|---|---|
| 원어명 | 趙肯夏 |
| 본명 | 조중하 (趙重夏) |
| 출생일 | 1919년 08월 16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부 |
| 사망일 | 1982년 01월 28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형제자매 | 5남 3녀 중 여섯째(5남) |
| 부모 | 부: 조병관(1883년생~1956년졸, 1901년 혼인.) 모: 홍애덕(1892년생~1973년졸, 풍산 홍씨, 1901년 혼인.) |
| 친척 | 장필순(넷째 며느리) 홍가영(배다른 이모) 조태영(친할아버지) 홍획(외할아버지) 어윤업(이복 이모부) 어춘선(외척 이종형) 어약선(외척 이종형)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테너 성악가 피아노 연주자 사진 작가 영화감독 영화평론가 음악평론가 투자가 영화 제작자 영화기획가 뮤지컬 감독 영화 편집감독 영화각색가 영화각본가 소설가 |
| 활동 기간 | 1940년 ~ 1978년 |
| 학력 | 일본 도쿄 데이고쿠 음악학교 성악학과 학사(1943년 3월) |
| 배우자 | 양예원(재혼) |
| 자녀 | 5남 3녀 장남 조동완(1945년생) 차남 조동진(음악가) 4남 조동익(음악가) 3녀 조동희(음악가) |
| 웹사이트 | 조긍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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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피아노 연주자 -
홍난파
홍난파는 <봉선화>, <고향의 봄> 등 다수의 가곡과 동요를 작곡하고 한국 최초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었으며, 수양동우회 사건 연루와 친일 행적으로 인해 논란이 된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소설가, 언론인이다. -
일제강점기의 피아노 연주자 -
이봉룡
이봉룡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활동하며 '낙화유수' 등의 히트곡을 작곡한 한국의 작곡가로, 군국가요 작곡에 참여한 친일 논란이 있으며 한국 전쟁 중 부인 실종 후 미국으로 이민하여 작곡 활동을 이어갔다. -
일제강점기의 성악가 -
현제명
현제명은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의 음악가로, 서양음악계에 영향을 끼치고 대한민국 음악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있으며, 대표작으로 〈고향생각〉, 오페라 〈춘향전〉 등이 있다. -
일제강점기의 성악가 -
윤심덕
윤심덕은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이자 배우로, 극작가 김우진과의 비극적인 동반 자살과 함께 발매된 '사의 찬미'로 유명하며, 그녀의 삶은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대한민국의 사진가 -
박노해
박노해는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한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으며, 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 후 사노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석방 후 '나눔문화'를 설립하여 반전 평화 운동과 사진 활동, 다양한 장르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사진작가, 사회운동가이다. -
대한민국의 사진가 -
한대수 (가수)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난 가수이자 사진작가 한대수는 1969년 '세시봉'에서 데뷔하여 한국 포크록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으며, 독특한 음악 스타일과 사회 비판적 메시지로 주목받은 후 미국 활동과 귀국 후에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조긍하는 경상북도 대구 출신으로 본관은 풍양이며 본명은 조중하(趙重夏)이다. 1938년 경북 대구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1939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1943년 도쿄 데이고쿠 음악학교 성악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40년 늦가을 테너 성악가로 데뷔하여 테너 성악가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 은퇴하고 사진 촬영과 영화 분야로 전향하였다.
1944년 테너 성악가와 피아니스트를 모두 그만두고 사진 작가로 데뷔하였다. 1952년 《베일부인》으로 영화감독 데뷔를 하였으며, 《황진이》(1956년), 《곰》, 《육체의 길》(1959년), 《인간만세》, 《과부》(1960년) 등의 영화를 감독하고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1960년대 말에는 《상해임시정부》, 《인천상륙작전》과 같이 애국지사들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들을 제작했다. 1978년 이후 사실상 은퇴하였다.
1982년 1월 28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경상북도 대구 출신으로 본관은 풍양이며 본명은 조중하(趙重夏)이다. 1938년 3월, 일제강점기 경북 대구에서 중등교육을 모두 마치고, 1939년 일본(도쿄)으로 건너가 1943년 3월, 일본 도쿄 데이고쿠 음악학교 성악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1940년 늦가을 테너 성악가로 데뷔하여 테너 성악가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사진 촬영과 영화 분야로 전향하였다.
2.2. 음악 활동 및 사진작가 데뷔
1940년 늦가을, 테너 성악가로 데뷔하였고, 이후 테너 성악가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사진 촬영과 영화 분야로 전향하였다. 1944년에는 테너 성악가와 피아니스트를 모두 그만두고 사진 작가로 데뷔하였다.
2.3. 영화감독 데뷔 및 활동
조긍하는 사진작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감독 수련 없이 바로 영화감독이 되었다. 1952년 《베일부인》을 시작으로, 《황진이》(1956년), 《곰》, 《육체의 길》(1959년), 《인간만세》, 《과부》(1960년) 등의 영화를 감독하고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1960년대 말에는 《상해임시정부》, 《인천상륙작전》과 같이 애국지사들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들을 제작했다. 1978년 이후 사실상 은퇴하였다.
영화감독 데뷔 및 활동 이력은 다음과 같다.
2.4. 애국지사 영화 제작 및 은퇴
1960년대 말, 그는 《상해임시정부》,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지사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들을 제작했다.
1978년부터 사실상 은퇴했으며, 1982년 1월 28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 작품 활동
조긍하는 영화 감독으로 1952년 《베일부인》을 시작으로, 1957년 《황진이》, 1959년 《곰》, 《육체의 길》, 《인간만세》, 1960년 《과부》, 1969년 《상해 임시정부》 등을 감독했다.
3.1. 영화
조긍하는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952년 《베일부인》을 시작으로, 1957년 《황진이》, 1959년 《곰》, 《육체의 길》, 《인간만세》, 1960년 《과부》, 1969년 《상해 임시정부》 등의 작품을 감독했다.
3.1.1. 감독
* 1952년 《베일부인》
* 1957년 《황진이》
* 1959년 《곰》
* 1959년 《육체의 길》
* 1959년 《인간만세》
* 1960년 《과부》
* 1969년 《상해 임시정부》 - 신성일, 김지미
4. 학력
* 경북고등학교 졸업 (1938년)
* 도쿄 데이고쿠 음악학교 성악과 테너 전공 학사 (1943년)
5. 경력
| | 활동 | |
|---|---|
| 1940년 | 테너 성악가 첫 데뷔. |
| 1942년 | 피아니스트 데뷔. |
| 1944년 | 테너 성악가 겸 피아니스트를 모두 단념하고 사진 작가 데뷔. |
| 1952년 | 외가친척 어약선 감독 등과 의기상투하여, 영화 《베일 부인(베일의 비밀)》으로 영화감독 데뷔. |
| 1954년 | 영화평론가 등단. |
| 1955년 | 음악평론가 등단. |
| 1956년 | 영화 《황진이》를 감독, 이 영화로 함께 영화 각본가 데뷔. |
| 1959년 | 영화 《곰》을 감독, 이 영화로 영화 편집감독 데뷔. |
| 1960년 | 영화 《과부》를 감독, 이 영화로 영화 각색가 데뷔. |
| 1961년 | 영화 《쟌 발쟌(Jean Valjean)》을 감독 및 각색, 이 영화로 영화 기획가 데뷔. |
| 1962년 | 영화 《인간만세》를 감독, 이 영화로 영화제작자 데뷔. |
| 1968년 | 자작 소설 《세월이 흘러가면》으로 소설가 데뷔. |
| 1969년 | 자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세월이 흘러가면》을 감독. |
| 1978년 | 이후부터 사실상 영화 분야에서 모두 은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