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 후미히로
1. 개요
조유 후미히로는 1962년 일본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서 인공지능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옴진리교에 입교하여 간부로 활동했으며,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 살해 사건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교단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1995년 국토 이용 계획법 위반 및 위증죄 등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출소 후 옴진리교를 알레프로, 다시 히카리노와로 개편하여 운영하며, 옴진리교 사건 관련 저술 및 방송 출연을 통해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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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관련자 -
아사하라 쇼코
아사하라 쇼코는 옴진리교의 창시자이자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주도하여 2004년 사형 선고를 받고 2018년 사형이 집행된 일본의 인물이다. -
일본의 종교 지도자 -
아사하라 쇼코
아사하라 쇼코는 옴진리교의 창시자이자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주도하여 2004년 사형 선고를 받고 2018년 사형이 집행된 일본의 인물이다. -
일본의 종교 지도자 -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일본의 교육자이자 철학자이며 창가학회의 초대 회장으로, 가치론을 주창하고 창가교육학회를 창립했으나 신사 참배 거부로 옥사하여 순교자로 존경받고 있다. -
구루메시 출신 -
마쓰모토 레이지
마쓰모토 레이지는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 등 SF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쇼가쿠칸 만화상 등을 수상하며 SF 애니메이션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2023년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
구루메시 출신 -
하토야마 야스코
브리지스톤 창업주 이시바시 쇼지로의 장녀이자 하토야마 가문의 일원인 하토야마 야스코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두 아들의 정치 활동을 지원했으며, 특히 민주당 창당 시 기부하며 "대모"라는 별칭을 얻었다.
2.1. 유년 시절
후쿠오카현미즈마군조지마정(현 구루메시)에서 규슈 대학 출신 후쿠오카 은행원 아버지와 후쿠오카 교육 대학 출신 교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를 지망했으나 은행원이 되었다. 마쓰다 세이코, 후지이 후미야 등이 같은 구루메시 출신 동갑내기이다. 4살까지 후쿠오카에서 살았고, 아버지의 도쿄 근무로 가족이 상경했다. 이후 아버지의 여성 문제로 부모가 별거,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정식 이혼은 조유가 출가했을 무렵). 아버지는 이혼 후에도 양육비를 지급했다. 아버지는 퇴직 후 라이터 분야에서 창업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성적이 좋았다. '우에유'라는 성은 후쿠오카현에 20명 정도 있다고 한다.
와세다 대학 고등 학원(와세다 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시절 영어회화 서클에서 활동, 영어 토론 대회에서 입상했다. 일본 토론 협회 이사도 역임했다. 1986년 석사 과정 2학년 때 요가 단체 '옴 신선회'(옴진리교 전신)에 입회했다.
2.2. 옴진리교 입교
1986년 와세다 대학 대학원 석사 과정 2학년 때, '월간 무'(학연)에 실린 아사하라 쇼코 소개 기사를 보고 옴진리교의 전신인 '옴 신선회'에 입회했다. 당시 초능력이나 건강, 신비로운 일에 관심이 많았지만, 요가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입회 후 참가한 단자와 세미나에서 혹독한 수행과 신비 체험을 경험하고, 쿤달리니 체험까지 하면서 아사하라를 요가의 올바른 지도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1987년 4월, 특수법인우주 개발 사업단(현: JAXA)에 입사했으나, 옴 신선회가 재미있어져 출가를 결심하고 한 달 만에 퇴직했다. 옴진리교는 같은 해 7월부터 출가 제도를 기본으로 하는 종교 단체로 바뀌었다.
3. 옴진리교 간부 시절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진리당으로 교단 간부들이 입후보할 때 기베 테츠야와 함께 끝까지 반대했다. 이 선거에서 우에스기 사토시가 도쿄 5구에 출마했으나 최하위로 낙선했다. 선거 참패 후, 아사하라 쇼코가 신자들 앞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표가 바꿔치기되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자,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하며 "전화 조사를 해보니 아사하라 쇼코에게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100명 중 아무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아사하라는 선거 결과 조사를 했지만, 그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1991년 11월, 땅속에 묻힌 밀폐된 3m 사방의 나무 상자 안에서 음식을 끊고 5일간 지내는 "언더그라운드 사마디"를 했다. 이는 깊은 명상으로 산소 섭취량을 줄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주장에 따른 것으로, 교단 간부 신자 중 처음으로 5일간의 수행을 완수했다.
옴진리교의 무기 개발에도 관여하여, 생물 무기인 풍선 폭탄 개발, 포스겐 폭탄 계획, 제7 사티안 사린 플랜트 계획, 카메이도 악취 사건에 관여했다. 그러나 사린 플랜트는 구상 단계만 알았고, 포스겐 및 탄저균 제조는 유독 물질 제조 기술이나 의도가 없었다고 하여 기소되지 않았다. 1993년 6~7월 카메이도 악취 사건에서는 탄저균 배양 총괄을 맡았으나, 직접 담당자인 엔도 세이이치는 무독성 탄저균을 유독성으로 변형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고, 아사하라는 이를 근거 없이 부정하며 제조를 명령했다. 엔도는 이를 아사하라의 정신적 훈련으로 생각하고 실행했다. 1993년 1월 회의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로 아사하라에게 질책받았지만, 노다 나리토시에 따르면, 다른 신자들과 달리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법정에서 아사하라에 대해 "아사하라 존자는 모든 의미에서 인도자이며, 구세주이며, 나의 모든 것", "땡큐 앤 굿바이"라고 말했다. 구류 중이던 1997년경부터 아사하라의 불규칙한 발언과 1999년 아마겟돈 예언 불발 등으로 인해 아사하라에 대한 의문이 커졌고, 이는 2007년 알레프(구 옴진리교) 탈퇴로 이어졌다. 우에스기 출소 이틀 전인 1999년 12월 27일, "무차별 대량 살인 행위를 행한 단체의 규제에 관한 법률(단체 규제법, 소위 '옴 신법')"이 시행되었다. 이는 우에스기 복귀로 인한 교단 과격화를 우려한 조치였다고 한다. 1999년 12월 29일, 히로시마 형무소에서 출소했다.
3.1. 초기 활동
조유 후미히로일본어는 옴진리교 간부였다. 1987년 '대사' 칭호를 받았으며, 남성 신자 중 두 번째로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한다. 같은 해 뉴욕 지부를 개설하고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1989년에는 오사카 지부장을 역임했다.
3.2.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 살해 사건
1989년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 살해 사건 직전, 아사하라 쇼코에게 반대 발언을 했으나, 사건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 사건의 전모를 알지 못한 채 교단의 대변인으로서 '은폐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언론과의 논쟁적인 태도로 인해 "아, 그렇게 말하면 조유"(ああ言えば上祐일본어, "당신이 한 가지를 말하면 그는 반대되는 말을 한다"는 뜻의 "ああ言えばこういう"에서 유래)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3.3. 러시아 지부 활동
1992년부터 러시아 지부에 파견되었다. 하야카와 기요히데는 러시아에서 우에스기가 "구루 같아서, 작은 아사하라 같았다"라고 말했다. 우에스기는 러시아 지부장을 맡았고, 1994년에는 모스크바 시가 인가하는 다른 종교 법인의 대표로도 활동했다. 1994년 이후에는 아사하라가 "일본에 있으면 몸에 재앙이 미친다"라고 하여 대부분 러시아 연방에서 지냈지만, 일시 귀국했을 때 교단의 약물 이니시에이션을 받고 아사하라에게 귀의를 깊게 했다.
전 간부 토미타 타카시는 러시아 지부 파견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에스기는 머리가 좋고 능력이 뛰어나 아사하라 측근에 있어도 좋을 텐데, 해외 지부 등 먼 곳으로 밀려나는 일이 많았다. (우에스기는) 아사하라의 예스맨이 되려 하지 않았고, 아사하라에게 忖度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아사하라에게 귀여움을 받는 한편, 꺼림칙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아사하라는 물리적으로 우에스기를 멀리 둔 채 말을 못하게 하고 자기 마음대로 했다. 그러다 아사하라나 측근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하면, 우에스기를 불러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처리하게 하는 일도 잦았다."
3.4.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직후, 아사하라의 지시로 일본에 돌아와 옴진리교 홍보 책임자를 맡았다. 아오야마 요시노부, 무라이 히데오 등과 함께 TV와 라디오에 출연, 옴진리교 비판에 적극 반론했다. 뛰어난 화술과 영어 실력으로, 모든 의혹은 창가학회나 미군, 자위대 등 국가 권력의 음모이며, 사린 피해자는 옴진리교라는 주장을 폈다.
기자 회견에서 경찰과 언론을 강하게 비난하며, 체포 혐의 목록을 찢어 던지거나, 무라이 히데오 피살 사건 직후 "아사하라를 죽일 겁니까!?"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언론 대응은 후타기 히로타카에게 "아, 하면 어, 하고"를 비튼 "아아, 말하면 우에스기"라고 조롱받았고, "우에스기 갤"이라는 여성 팬클럽이 생기기도 했다.
1995년 10월 6일, 구마모토현 아소군 나미노촌(현 아소시 나미노 지구) 토지 취득 관련 국토 이용 계획법 위반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위증과 유인 사문서 위조·행사죄로 기소, 징역 3년 실형판결을 받고 히로시마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4. 알레프 (1999–2006)
1999년 12월 29일, 조유 후미히로는 석방 후 옴진리교의 '사실상' 수장이 되었다. 옴진리교는 알레프로 이름을 바꾸었다. 알레프는 도쿄 지하철 가스 테러 등 여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으며, 특별 보상 기금을 설립했다. 또한, 이전의 논란이 되던 교리들은 제거되었다.
조유는 대부분 옴 종교 시설에서 거주하며 가끔 외부로 나갔다. 경찰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공개 활동을 자제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사회와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조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 관계자와 언론은 알레프를 여전히 위협으로 간주했다.
4.1. 알레프 설립 및 대표 취임
1999년 12월 29일, 조유 후미히로는 출소 후 옴진리교의 사실상 수장이 되었다. 그의 지도 아래 옴진리교는 알레프로 이름을 변경했다.
2000년, 알레프를 설립하고, 도쿄 지하철 가스 테러 등 전직 고위 간부와 관련된 여러 사건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며, 특별 보상 기금을 설립했다. 이전까지 비판받던 일부 논란이 되는 교리는 제거되었다.
2002년, 알레프의 대표로 취임하였다.
4.2. 아사하라 가족과의 갈등 및 내부 분열
아사하라 쇼코의 가족(부인 마쓰모토 도모코, 3녀 마쓰모토 레이카 등)과의 갈등으로 '조유파'와 '반(反)조유파'로 분열되어, 내부 대립이 격화되었다.
5. 히카리노와 (2007–현재)
일본 언론은 공안조사청의 말을 인용하여, 2005년 말에 옴진리교 지도부가 두 개의 반대 세력으로 분열되었다고 보도했다. 공안조사청은 1999년부터 알레프를 감시해 왔다. 근본주의 세력은 1995년 이전의 이상에 가깝게 조직을 유지하려 한 반면, 조유와 그의 개혁 지지자들은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고 사회 재통합을 목표로 하는 더 온건한 노선을 옹호했다.
2006년 늦여름, 반대 세력은 분열되었고, 조유와 그의 지지자들은 도쿄의 별도 건물에 거주하며 히카리노와(빛의 고리)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많은 전직 옴진리교 지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유에 따르면, 많은 회원들이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반대 그룹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2007년 5월 10일, 히카리노와는 공안조사청 요원들의 급습을 받았다.
조유는 무지개를 좋아하며, 알레프 대표 취임 때 번개와 무지개가 나타나 축복해 주었다고 한다. 히카리노와 설립 후에는 무지개를 "종교적으로도 신성한 의미를 갖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작품으로 우주전함 야마토, 바빌 2세, 울트라맨 시리즈, 기동전사 건담을 꼽았다. 요정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식물은 요정이 관리한다고 말한다.
5.1. 히카리노와 설립
2007년, 조유 후미히로는 알레프를 탈퇴하고 새로운 단체인 '히카리노와(빛의 고리)'를 설립하여 대표로 취임했다. 히카리노와는 아사하라 쇼코의 교리를 완전히 배제한다고 주장했다.
히카리노와는 불교 사상, 심리학, 요가 체조, 호흡법, 성지 순례 등을 활동에 포함시켰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와 YouTube 채널을 통해 활동 상황을 공개하고 있다. 조유는 "종교가 아닌 종교 철학으로서 이성으로 종교를 해석하고 활용한다", "심리학, 물리학도 배우며, 동서양의 사상 철학의 융합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며, 맹신과 강제를 배제한 사상, 철학, 종교에 대한 자세를 강조했다.
5.2. 공안조사청의 감시
공안조사청은 히카리노와를 옴진리교의 후계 단체로 간주하고, 아사하라 쇼코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020년, 전 공안 조사관은 히카리노와가 아사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으며 위험성이 없다고 언급했다. 2022년 미국 국무성은 옴진리교 자체에 테러 위험이 없다고 보고, '외국 테러 조직(FTO)' 지정을 해제했다.
6. 옴진리교 사건 관련 활동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이후 주요 신도들이 체포되자 일본으로 소환되어 옴진리교의 대변인으로 복귀했다. 그는 기자 회견에서 종종 기자들과 논쟁을 벌였으며, 특히 사린 공격 이후에는 일본인들로부터 "Aa ieba Joyu"(당신이 한 가지를 말하면 그는 반대되는 말을 한다)라는 말장난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는 지나치게 반대하며 논쟁적인 사람을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1999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석방된 후, 조유는 지하철 공격에 대한 옴진리교의 책임을 부인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당시 옴진리교를 옹호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2018년 아사하라 쇼코의 사형 집행에 대해 찬성하는 언행을 보였다. 우에스기 요시유키는 '주간 현대'에서 심신 상실 상태이므로 사형을 반대하는 일부의 목소리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을 경우 알레프 신자의 아사하라에 대한 신앙이 깊어지는 특수한 사정이 있음을 지적하며, 아사하라의 사형이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확실히 (사형 집행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사하라를 사형 집행하지 않으면 국민 감정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아사하라는 '처형되지 않은 구세주'로서, 알레프는 더 많은 신자를 늘릴 것입니다."
우에스기는 또한 "알레프는 이대로 가면 '자신들의 신앙이 기적을 일으켰다'는 맹신의 절정에 이를 위험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연히 아사하라의 사형을 확실하게 용기를 가지고 집행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알레프의 은밀한 고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법무대신·법무성이 세세한 것에 얽매여 사형을 망설인다면, 그것은 알레프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형 집행 당일(2018년 7월 6일) 우에스기는 도쿄 고등재판소 내의 사법 기자 클럽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자신이 아사하라로부터 이반하고, 비판하고, 배신자였으므로, 집행에 안도했다는 취지를 언급하며, 집행에 대한 찬성을 다시 한번 표명했다。 더 나아가 아사하라의 유골이 아사하라에 대한 숭배에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다에 산골"하는 것에도 찬성하고 있다。
7. 저서 및 출연
조유 후미히로는 텔레비전, 인터넷 방송, 강연, 대담 등에 출연하여 옴진리교 사건 등 옴진리교의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서로는 《각성 신세기》, 《옴 사건 17년째의 고백》, 《끝나지 않는 옴》, 《위험한 종교를 구별하는 방법》, 《지하철 사린 사건 20년 피해자인 내가 묻겠습니다》 등이 있다.
7.1. 저서
* 覚醒新世紀일본어 토잔 출판(2002년) ISBN 483440076X
* 上祐史浩が語る ―苦悩からの解放일본어 토잔 출판(2002년) ISBN 4834400727
* 上祐史浩が語る〈2〉心の解放と神秘の世界일본어 토잔 출판(2003년) ISBN 4834400786
* オウム事件 17年目の告白일본어 후소샤(2012년) ISBN 978-4594067496
* 終わらないオウム일본어 로사이샤, 우에사토 후미히로, 스즈키 구니오, 서유행 공저, 다하라 소이치로 감수(2013년) ISBN 978-4846309497
* 危ない宗教の見分け方일본어 포플러사, 우에사토 후미히로, 다하라 소이치로 공저(2013년) ISBN 978-4591136768
* 地下鉄サリン事件 二十年目の私からあなたに聞きたいこと일본어 dZERO, 우에사토 후미히로, 사카하라 아츠시 공저(2015년) ISBN 978-4-8443-7676-7
7.2. 출연
上祐 史浩일본어는 옴진리교 사건 등, 옴진리교의 일련의 사건에 대해, 텔레비전, 인터넷 방송, 강연, 대담 등에 다수 출연했다.
* 이케가미 아키라의 선거 라이브 (TV 도쿄)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 NHK 스페셜 「미해결 사건 File.02 옴진리교」(2012년 5월 26일(토)・27일(일) 방송)에 출연했다.
* 다하라 소이치로와의 대담에서, 上祐 史浩일본어는 옴진리교가 테러를 일으킨 것에 대해, "옴진리교는 원래 불교나 요가의 수행 단체였지만, 아사하라 쇼코가 1987년경부터, 테러에 의한 세계 변혁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옴진리교의 테러에 가담한 신자에 대해, "아사하라 쇼코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믿고, 그것이 테러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실행해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다하라 소이치로는, 上祐 史浩일본어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옴진리교의 테러는, 아사하라 쇼코의 망상에 의한 것이며, 신자들은 마인드 컨트롤되어 있었기 때문에, 테러를 일으켰다고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거리록ch ~당신의 인생,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