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신용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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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은신용조합은 재일 조선인을 위해 설립된 신용조합으로, 1952년 동화신용조합으로 시작하여 전국 각지에 설립되었다. 1990년대 후반 일본 버블 경제 붕괴로 경영난을 겪으며,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으나, 부실한 경영과 북한 송금, 조선총련 연계 등의 문제로 파산했다. 현재는 우리신용조합, 이오신용조합, 조은서신용조합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파산 과정에서 불법 송금, 가공 계좌 등의 법적 문제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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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했던 주한미군 사령부였으며, 기지 부지는 서울시에 단계적으로 반환될 예정이며 공원 조성 계획이 추진 중이다.
조은신용조합 | |
---|---|
개요 | |
명칭 | 조은신용조합 (朝銀信用組合) |
로마자 표기 | Jogin sinyong johap |
종류 | 신용조합 |
주요 사업 | 예금, 대출 등 금융업무 |
역사 | |
설립 배경 | 재일 조선인의 금융 지원을 위해 설립 |
1950년대 ~ 1990년대 | 다수의 조은신용조합 설립 대한민국과의 경제 교류 지원 |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 버블 경제 붕괴와 함께 경영 악화 부실 채권 문제 심화 공적 자금 투입 및 합병 추진 |
현재 | 일부 조합은 건전성을 회복하여 존속 일부 조합은 파산 또는 다른 금융기관에 합병 |
특징 | |
주요 고객 | 재일 조선인, 대한민국 관련 기업 등 |
역할 | 재일 조선인 사회의 금융 인프라 제공 대한민국과의 경제 교류 촉진 |
문제점 | 부실 경영 및 비리 문제 발생 정치적 논란 야기 |
현황 (2023년 기준) | |
조합 수 | 소수 조합만이 존속 |
자산 규모 |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 |
주요 과제 | 경영 건전성 확보 고객 신뢰 회복 대한민국과의 관계 재정립 |
기타 | |
관련 사건 | 조은신용조합 비리 사건 공적 자금 투입 논란 |
참고 자료 | 재일 조선인 금융 기관 관련 연구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제 관계 관련 자료 |
2. 설립 배경 및 역사
재일 조선인을 위해 설립된 조은동경신용조합의 전신인 도와(同和) 신용조합을 시작으로, 일본 전국 각지에 비슷한 신용조합이 설립되었다. 각 신용조합은 '조은 + (지명) + 신용조합'으로 불렸는데, 예를 들어 오사카부에 설립된 것은 "조은 오사카 신용조합"이었다. '조은'의 '은'은 은행의 약칭이 아니다(은행법 제6조 제2항). 재일 조선·한국인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지역 신용조합이었기 때문에 "민족계 신용조합"이라고도 불렸다. 이들 조합은 거품 붕괴 이후 경영 파탄이 잇따랐다. 한때 38개 조합이었던 조은은 16개 조합이 파탄나면서 전국 7개 조합으로 재편되었다.
1967년, 간토 국세국의 사찰을 실력으로 거부하여 동화신용조합 사건을 일으켰고, 이후 국세청과의 5개 항목 합의 사항 체결로 이어졌다. 거품 붕괴 후 파탄이 잇따랐을 때는, 그 원인의 불명확성과 조선총련 중앙본부에 대한 강제 수사, 그리고 파탄 처리에 따른 1조 엔 이상의 공적 자금 도입 등으로 인해 '''조은 사건'''이라고도 불렸다.[1]
2. 1. 설립 배경
재일 조선인을 위해 설립된 조은동경신용조합의 전신인 '''동화신용조합'''을 시작으로, 일본 각지에 유사한 신용조합이 도도부현 단위로 설립되었다. 각 신용조합은 '조은 + (지명) + 신용조합'으로 불렸는데, 예를 들어 오사카부에 설립된 것은 "조은 오사카 신용조합"이었다. '조은'의 '은'은 은행의 약칭이 아니다(은행법 제6조 제2항). 재일 조선·한국인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지역 신용조합이었기 때문에 "민족계 신용조합"이라고도 불렸다.2. 2. 초기 역사 (1952년 ~ 1990년대)
재일 조선인을 위해 설립된 조은동경신용조합의 전신인 도와(同和) 신용조합을 최초로, 전국 각지에 비슷한 신용조합이 설립되었다.설립일 | 조합명 | 설립 당시 명칭 |
---|---|---|
1952년 6월 20일 | 조긴도쿄신용조합 | 도와신용조합 |
1953년 8월 10일 | 조긴후쿠오카신용조합 | |
1953년 10월 10일 | 조긴아이치신용조합 | 다이에이신용조합 |
1954년 10월 25일 | 조긴기후신용조합 | 다이세이신용조합 |
1960년 12월 15일 | 조긴치바신용조합 | |
1961년 10월 23일 | 조긴야마구치신용조합 | |
1961년 10월 26일 | 조긴히로시마신용조합 | |
1962년 7월 20일 | 조긴오카야마신용조합 | 오카야마추오신용조합 |
1963년 5월 2일 | 조긴나가노신용조합 | |
1963년 8월 2일 | 조긴후쿠이신용조합 | |
1964년 10월 | 조긴니이가타신용조합 | |
1966년 5월 22일 | 조긴미야자키신용조합 | |
1968년 12월 20일 | 조긴아오모리신용조합 | |
1977년 4월 | 조긴나가사키신용조합 |
조은신용조합은 경기 침체와 불투명한 경영으로 인해 파탄되었고, 한국 정부는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12] 북한으로의 송금 및 정치 자금 유용 또한 파탄의 원인으로 지적된다.[12] 일본 정부 내에서는 공적 자금 투입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불투명한 정치적 결정으로 구제가 이루어졌다.
3. 경영 파탄과 공적 자금 투입
파탄 과정에서 대량의 가명 계좌로 의심되는 예금자 불명 계좌가 발견되었으며, 이 예금은 정리 회수 기구에 인도되어 본인 계좌로 확인되지 않으면 인출할 수 없게 되었다. 2004년 8월 현재 이 예금은 53억엔에 달하며, 인출된 경우는 거의 없다.파산일 파산 대상 사업 양도 실시일 사업 양도처 예금자 보호 증여금 (억 엔) 자산 매입 (억 엔) 1997년 5월 14일 조은오사카신용조합 1998년 5월 조은긴키신용조합※1 2,624 476 1999년 5월 12일 조은나가노신용조합 2002년 12월 하나신용조합 103 15 1999년 5월 13일 조은지바신용조합 325 31 조은도쿄신용조합 2,109 210 조은니가타신용조합 51 6 조은시마네신용조합 2001년 11월 조은니시신용조합 14 2 1999년 5월 14일 조은히로시마신용조합 156 40 조은야마구치신용조합 577 100 조은후쿠오카신용조합 848 95 조은나가사키신용조합 9 1 조은아오모리신용조합 2001년 11월 조은호쿠토신용조합 18 7 조은미야기신용조합 48 7 조은후쿠이신용조합 2001년 11월 조은주부신용조합 38 12 조은아이치신용조합 885 205 2000년 12월 29일 조은긴키신용조합※1 2002년 8월 효고 해바라기 신용조합 등※2 2,571 622 2001년 8월 24일 조은간토신용조합 2002년 12월 하나신용조합 1,067 180
※1: 후에 2차 파산에 이른 금융기관.
※2: 효고 해바라기 신용조합, 교토지신용조합, 미레신용조합, 정리 회수 기구.
3. 1. 파탄 원인
조은신용조합의 파탄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다음 세 가지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12]
이러한 문제들에 더해, 금융 당국이 민족계 금융기관을 금기시하고, 2000년까지 신용조합 감독을 도도부현에 위임하여 조은과 같은 기관의 경영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도 파탄의 영향을 확대시킨 요인으로 꼽힌다.[15]
일각에서는 조선총련의 지시에 따른 부정 융자가 북한으로 부정 송금되어 핵 개발과 노동 미사일 조달 자금으로 유용되었고, 일부는 정치 헌금으로 일본 정치인에게 전달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12]
3. 2. 파탄 과정 및 공적 자금 투입
경기의 침체와 불명확한 경영에 대한 의존으로 조은신용조합은 파탄에 이르렀고, 이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다.[12] 파탄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북한으로의 송금 및 정치 자금 유용이 지적된다.[12] 일본 정부 내에서는 공적 자금 투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불투명한 정치적 결정에 따라 구제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 은행에 대한 공적 지원을 비판하던 대중 매체들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조은신용조합 파탄에는 예금의 북한 송금, 조선총련의 정치 공작 자금 유용, 거품 붕괴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12] 특히, 민족계 금융기관으로서 불투명한 융자 관행이 문제시되었는데, 2001년 12월에 파탄한 조은근기신용조합의 경우, 금융정리관재인은 파탄 원인을 "합병 전 일부 조합이 부동산 관련 융자를 과도하게 실행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13]
조선총련과의 관계도 파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1999년 5월 파탄한 조은도쿄신용조합에서는 자금 유용 의혹으로 조선총련 중앙본부에 대한 강제 수사가 이루어졌고, 2004년 3월까지 각 조은신용조합에서 25명 이상의 임직원이 체포되고 150명 이상이 조사를 받았다.[1] 조선총련은 조은신용조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왔으며, 이는 북한의 핵 개발 및 노동 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유용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12]
이러한 조은신용조합의 불투명한 경영에 대해 금융 당국의 금기시와 감독 소홀이 파탄 영향을 확대시켰다는 비판이 있다.[15] 파산한 조은신용조합에서는 사쿠라이 요시코, 고이케 유리코, 마에하라 세이지 등으로부터 조선총련과 북한과의 관계가 지적되었으며,[16][17][18] 금융청은 인수 신용조합에 조선총련 관계자를 배제하도록 지도했다.
노나카 히로무 등 일부 정치인들이 공적 자금 투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으며,[20][21] 사회민주당 의원들이 조선총련에 대한 강제 수사를 비판하는 등 정치권 개입 정황도 포착되었다.[22]
조은신용조합 예금은 예금보험으로 보호되었기 때문에, 예금자 보호를 위한 공적 자금 투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당시 금융청은 "조은신용조합도 예금보험법상의 금융기관이며, 예금자 보호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19] 결국 파산 처리를 위해 총 1조엔 4000억엔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으나, 공적 자금을 지원받은 조합이 다시 파산하는 2차 파산이 발생하면서 공적 자금 투입의 허술함이 문제시되었다.
파산 처리는 금융재생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금융 정리 관재인이 담당했으며, 각 신용조합별로 2~3명의 변호사, 공인회계사, 금융 실무가가 배정되었다.[26]
다음은 조은신용조합의 파산 처리 현황을 정리한 표이다.
파산일 | 금융기관 | 사업 양도 실시일 | 사업 양도 금융기관 | 예금자 보호 증여금 (억 엔) | 자산 매입 (억 엔) |
---|---|---|---|---|---|
1997년 5월 14일 | 조은오사카신용조합 | 1998년 5월 | 조은긴키신용조합※1 | 2,624 | 476 |
1999년 5월 12일 | 조은나가노신용조합 | 2002년 12월 | 하나신용조합 | 103 | 15 |
1999년 5월 13일 | 조은지바신용조합 | 325 | 31 | ||
조은도쿄신용조합 | 2,109 | 210 | |||
조은니가타신용조합 | 51 | 6 | |||
조은시마네신용조합 | 2001년 11월 | 조은니시신용조합 | 14 | 2 | |
1999년 5월 14일 | 조은히로시마신용조합 | 156 | 40 | ||
조은야마구치신용조합 | 577 | 100 | |||
조은후쿠오카신용조합 | 848 | 95 | |||
조은나가사키신용조합 | 9 | 1 | |||
조은아오모리신용조합 | 2001년 11월 | 조은호쿠토신용조합 | 18 | 7 | |
조은미야기신용조합 | 48 | 7 | |||
조은후쿠이신용조합 | 2001년 11월 | 조은주부신용조합 | 38 | 12 | |
1999년 5월 14일 | 조은아이치신용조합 | 885 | 205 | ||
2000년 12월 29일 | 조은긴키신용조합※1 | 2002년 8월 | 효고 해바라기 신용조합 등※2 | 2,571 | 622 |
2001년 8월 24일 | 조은간토신용조합 | 2002년 12월 | 하나신용조합 | 1,067 | 180 |
※1: 2차 파산에 이른 금융기관.
※2: 효고 해바라기 신용조합, 교토지신용조합, 미래신용조합, 정리회수기구.
파탄 과정에서 대량의 가명 계좌로 의심되는 예금자 불명 계좌가 발견되었으며, 이 예금은 정리 회수 기구에 인도되어 본인 계좌로 확인되지 않으면 인출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예금은 2004년 8월 현재 53억엔에 달하며, 인출된 경우는 거의 없다.
3. 3. 관련 논란 및 비판
경기의 침체와 불명확한 경영 의존으로 인해 조은신용조합은 파탄에 이르렀고,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다.[12] 또 다른 원인으로는 북한으로의 송금 및 정치 자금 유용이 지적된다.[12] 일본 정부 내에서는 공적 자금 투입이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불투명한 정치적 결정으로 구제금융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 은행에 대한 공적 지원을 비판하던 대중 매체들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조은신용조합 파탄의 주요 원인으로는 다음 세 가지가 꼽힌다.
- 민족계 금융기관으로서의 불투명한 융자 관행[13]
- 조선총련과의 관계 및 자금 유용 의혹[1]
- 버블 붕괴[12]
특히, 조선총련은 조은신용조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북한으로 부정 송금하여 핵 개발 및 노동 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14][12] 시게무라 토모카즈 다쿠쇼쿠 대학 교수는 조은신용조합이 조선총련의 자금 조달 기관으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했다.[14]
금융 당국이 민족계 금융기관을 금기시하고, 신용조합 감독을 도도부현에 위임하여 경영 감시에 소홀했던 점도 파탄의 영향을 확대시킨 요인으로 지적된다.[15]
사쿠라이 요시코, 고이케 유리코[16][17], 마에하라 세이지[18] 등은 조은신용조합이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직속 "학습조"를 통해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청은 조선총련 관계자를 경영진에서 배제하도록 지도했지만, 2002년에는 공적 자금이 북한으로 송금될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19]
노나카 히로무 등 친북 성향 정치인들이 공적 자금 투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20][21]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조선총련에 대한 강제 수사를 "부당한 정치 탄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22]
결국 파산 처리를 위해 총 1조원 4000억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으나, 이를 지원받은 조합이 추가로 파산하는 '2차 파산'이 발생하기도 하여 공적 자금 투입의 허술함이 문제시되었다.
파산 처리 과정에서 가공 계좌 의혹이 있는 예금주 불명 계좌가 다수 발견되었고, 이들은 정리 회수 기구로 인계되어 엄격한 본인 확인 후 지급되었다. 미지급된 가공 명의 예금 34억원에 대한 지급 소송에서 정리 회수 기구는 패소했다.
정리 회수 기구는 파산한 16개 조은신용조합으로부터 6280억원의 채무를 양도받았으며, 2007년 조선총련에 대한 변제 명령이 확정되어 채권 회수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2016년 3월 현재 파산 처리에 관한 공표 자료이다.
파산일 | 파산 대상 | 사업 양도 실시일 | 사업 양도처 | 예금자 보호 증여금 (억 엔) | 자산 매입 (억 엔) |
---|---|---|---|---|---|
1997년 5월 14일 | 조은오사카신용조합 | 1998년 5월 | 조은긴키신용조합※1 | 2,624 | 476 |
1999년 5월 12일 | 조은나가노신용조합 | 2002년 12월 | 하나신용조합 | 103 | 15 |
1999년 5월 13일 | 조은지바신용조합 | 325 | 31 | ||
조은도쿄신용조합 | 2,109 | 210 | |||
조은니가타신용조합 | 51 | 6 | |||
조은시마네신용조합 | 2001년 11월 | 조은니시신용조합 | 14 | 2 | |
1999년 5월 14일 | 조은히로시마신용조합 | 156 | 40 | ||
조은야마구치신용조합 | 577 | 100 | |||
조은후쿠오카신용조합 | 848 | 95 | |||
조은나가사키신용조합 | 9 | 1 | |||
조은아오모리신용조합 | 2001년 11월 | 조은호쿠토신용조합 | 18 | 7 | |
조은미야기신용조합 | 48 | 7 | |||
조은후쿠이신용조합 | 2001년 11월 | 조은주부신용조합 | 38 | 12 | |
조은아이치신용조합 | 885 | 205 | |||
2000년 12월 29일 | 조은긴키신용조합※1 | 2002년 8월 | 효고 해바라기 신용조합 등※2 | 2,571 | 622 |
2001년 8월 24일 | 조은간토신용조합 | 2002년 12월 | 하나신용조합 | 1,067 | 180 |
※1: 후에 2차 파산에 이른 금융기관.
※2: 효고 해바라기 신용조합, 교토지신용조합, 미레신용조합, 정리 회수 기구.
4. 조은신용조합의 재편과 현재
재일본조선신용조합협회는 파탄과 통합을 거쳐 2002년 3월에 해산되었다.[1]
조은신용조합에 뿌리를 둔 현존하는 신용조합으로는 우리신용조합, 이오신용조합, 조은서신용조합이 있다. 파산한 조은의 구제 금융으로 미래신용조합, 하나신용조합, 교자신용조합, 효고해바라기신용조합이 새로 설립되었으며, 이들 조합은 일본인 임원을 받아들였다.
4. 1. 재편 과정
조은신용조합은 경기 침체와 불투명한 경영으로 인해 파탄에 이르렀고, 이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다. 파탄의 원인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의 송금 및 정치 자금 사용 등이 지적되었다. 일본 정부의 공적 자금 투입 결정은 불투명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일본 은행에 대한 공적 지원을 비판하던 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 통합된 조합이 다시 파탄을 일으키는 일도 발생했다. 파탄 과정에서 대량의 가명 계좌로 의심되는 예금자 불명 계좌가 발견되었고, 이 예금은 정리 회수 기구로 인도되어 본인 계좌로 확인되지 않으면 인출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2004년 8월 기준으로 이 예금은 53억엔에 달했으며, 인출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조은신용조합의 재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날짜 | 내용 |
---|---|
1997년 5월 14일 | 조긴오사카신용조합 파탄 |
1997년 11월 27일 | 조긴효고신용조합을 존속조합으로, 조긴도쿄신용조합, 조긴시가신용조합, 조긴나라신용조합, 조긴와카야마신용조합이 대등합병하여 조긴킨키신용조합 발족 |
1998년 5월 11일 | 조긴오사카신용조합의 사업을 조긴킨키신용조합에 양도 |
1999년 5월 12일 | 조긴나가노신용조합 파탄 |
1999년 5월 13일 | 조긴치바신용조합, 조긴도쿄신용조합, 조긴니이가타신용조합 파탄 |
1999년 5월 14일 | 조긴아오모리신용조합, 조긴미야자키신용조합, 조긴히로시마신용조합, 조긴야마구치신용조합, 조긴후쿠오카신용조합, 조긴나가사키신용조합, 조긴후쿠이신용조합, 조긴아이치신용조합 파탄 |
1999년 10월 12일 | 조긴오카야마신용조합을 존속 조합으로 하고, 조긴카가와신용조합, 조긴에히메신용조합, 조긴사가신용조합 및 조긴오이타신용조합과 합병하여 조긴니시신용조합 발족 |
2000년 12월 29일 | 조긴킨키신용조합 파탄 (2차 파탄) |
2001년 8월 24일 | 조긴칸토오신용조합 파탄 |
2001년 9월 13일 | 조긴홋카이도신용조합, 조긴이와테신용조합, 조긴아키타신용조합, 조긴후쿠시마신용조합이 합병하여 조긴호쿠토신용조합 발족 |
2001년 9월 27일 | 조긴기후신용조합을 존속조합으로, 조긴토야마신용조합, 조긴이시카와신용조합, 조긴시즈오카신용조합, 조긴미에신용조합이 합병하여, 조긴츄우부신용조합 발족 |
2001년 11월 26일 | 조긴아오모리신용조합, 조긴미야자키신용조합의 사업을 조긴호쿠토신용조합에 양도 완료 |
2001년 11월 26일 | 조긴후쿠이신용조합, 조긴아이치신용조합의 사업을 조긴추부신용조합에 양도 완료 |
2001년 11월 26일 | 조긴시마네신용조합, 조긴히로시마신용조합, 조긴야마구치신용조합, 조긴후쿠오카신용조합, 조긴나가사키신용조합의 사업을 조긴니시신용조합에 양도 완료 |
2002년 8월 12일 | 조긴킨키신용조합의 사업을 미래신용조합, 케이지신용조합, 효고히마와리신용조합 및 정리회수기구에 양도 완료 |
2002년 12월 29일 | 조긴치바신용조합, 조긴도쿄신용조합, 조긴니이가타신용조합, 조긴나가노신용조합, 조긴칸토오신용조합의 사업을 하나신용조합 및 정리회수기구에 양도 완료 |
2004년 2월 9일 | 조긴호쿠토신용조합, 우리신용조합으로 명칭 변경 |
2004년 2월 23일 | 조긴추부신용조합, 이오신용조합으로 명칭 변경 |
조은신용조합의 재편으로 나라현과 에히메현에서는 본점을 둔 신용조합이 소멸되었다. 교토부도 한 번 소멸했지만, 조긴킨키신용조합의 파산에 따라 쿄지신용조합이 설립되면서 부활했다.
4. 2. 현존하는 조합
- 우리신용조합
- 이어신용조합
- 조은서신용조합
4. 3. 구제 금융으로 설립된 조합
파산한 조은의 구제 금융으로 새로 설립된 조합은 다음과 같으며, 일본인 임원을 받아들였다.- 미래신용조합
- 하나신용조합
- 교자신용조합
- 효고해바라기신용조합
이들 신용조합은 예금 보험 기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일본인 회계 감사인을 선임했다. 당초 감사법인 아이·피·오가 감사를 실시했다. 2010년 현재, 협동조합에 의한 금융 사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27]에서 규정된 규모가 큰 신용조합(특정 신용조합, 협동조합에 의한 금융 사업에 관한 법률[28] 제5조의8 제1항에 의해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한다)인 이오신용조합은 도카이 세무사 회 하마마츠 동지부 소속의 오사와 마사미, 타케자와 타카쿠니 및 최동섭 공인 회계사가[29], 하나신용조합은 감사법인 아이리스가[30], 효고해바라기신용조합, 미래신용조합, 교자신용조합은 계속해서 감사법인 아이·피·오가[31][32][33] 각각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4. 4. 법적 문제
경기의 침체와 불명확한 경영으로 인해 조은신용조합은 파탄에 이르렀고,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의 송금 및 정치 자금 사용도 파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 정부의 공적 자금 투입 결정은 불명료하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일본 은행에 대한 공적 지원을 비판하던 대중 매체들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공적 자금 투입 후 통합된 조합은 다시 파탄을 일으키기도 했다.파산 과정에서 대량의 가공 계좌 의혹이 있는 예금주 불명 계좌가 발견되었고, 이들은 정리 회수 기구로 인계되어 엄격한 본인 확인 후 지급되었다. 미지급된 가공 명의 예금 34억 엔 지급 소송에서 정리 회수 기구는 전면 패소했다. 예금 보험 기구는 시효 만료와 예금자의 탈세 행위를 주장했으나 인정되지 않았고, 2006년 9월 판결이 확정되었다.
정리 회수 기구는 파산한 16개 조은 신용조합의 628억 엔 채무를 양도받았으며, 2007년 조선총련에 대한 변제 명령이 확정되어 채권 회수를 진행하고 있다. → 조선총련 본부 빌딩 매각 문제
구 경영진에 대한 형사 소송 및 정리 회수 기구에 의한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이다.[27][28][29][30][31][32][33]
5. ATM 서비스
조은신용조합 및 그 후신 조합에서는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를 설치한 점포가 제한적이다.[1]
모든 조합은 신쿠미 오토쿠넷토 참가 신용조합의 ATM이나 세븐 은행 ATM과의 제휴에 참여하고 있어, 평일 낮 시간대에는 현금 인출 수수료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1] 입금넷이나 유초 은행 ATM 제휴에도 참여하고 있어 입금도 가능하므로, ATM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보완할 수 있다.[1] 일부 조합에서는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타행 ATM 출금 수수료를 현금으로 돌려주기도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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