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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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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자소는 조선 시대에 서적 간행을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유교적 정치를 추구했던 조선은 태종 때 주자소를 설치하여 금속 활자를 제작하고 서적을 출판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주자소는 세종 대에 활발히 활동하며 계미자, 갑인자 등을 제작했으나 세조 때 혁파되었다가 정조 때 다시 설치되었다. 이후 화재로 소실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대한제국 말까지 활자를 제작, 관리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주자소는 예문관 대제학과 승정원 승지가 제조를 겸임하고, 별좌와 서리, 장인들이 실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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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소
주자소
계미자자소간도
계미자자소간도
개요
종류관청
위치한성
설립 시기조선
설립 목적활자 주조 및 서적 간행
상세 정보
주요 기능활자 주조
서적 간행
활자 종류계미자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을해자
정리자
한구자
유서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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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태종주자소 설치
세종 시기활자 개량 및 서적 간행 확대
임진왜란 이후주자소 재건 및 활자 주조 재개
갑오개혁 이후폐지

2. 설립 배경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고, 유교적 정치를 위해 국가가 서적 출간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고려 시기 이미 금속 활자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던 조선은 태종 대에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주자소를 설치하게 되었다.[1]

2. 1. 조선 태종의 주자소 설치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고 유교적 정치를 위해 국가가 서적의 출간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고려 시기 이미 금속 활자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던 조선은 태종 대에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주자소를 설치하게 되었다.[1] 설립 초기에는 한양부의 훈도방(薰陶坊)에 있다가 1435년(세종 17년) 경복궁 안으로 이전하였다.[4] 훈도방은 남산 기슭에 있던 동네로 주자소가 있던 것이 오늘날 주자동으로 불리게 된 기원이 되었다.[5]

3. 역할

주자소는 활자를 만들고 관리하며 서적을 출간하는 주요 역할을 맡았다.[6] 순조 시기에는 《주자소응행절목》을 통해 주자소가 관리하는 활자의 종류, 수량, 출판된 책의 현황 등을 파악할 수 있다.[6] 또한 주자소는 왕실에 필요한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적을 출간하여 판매하기도 했다.[7]

3. 1. 활자 주조 및 관리

순조 시기에 만들어진 《주자소응행절목》(鑄字所應行節目, 주자소가 반드시 해야 할 업무 목록)에는 주자소가 관리하고 있는 활자의 종류, 수량, 출판한 책의 현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6] 주자소는 왕실에 필요한 책뿐만 아니라 여러 서적을 출간하여 판매도 하였다.[7]

3. 2. 서적 출판

주자소의 주요 역할은 활자를 만들고 관리하며 서적을 출간하는 것이었다. 순조 시기 만들어진 《주자소응행절목》(鑄字所應行節目, 주자소가 반드시 해야 할 업무 목록)에는 주자소가 관리하고 있는 활자의 종류, 수량, 출판한 책의 현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6] 주자소는 왕실에 필요한 책뿐만 아니라 여러 서적을 출간하여 판매도 하였다.[7]

4. 역사

태종 때 설립된 주자소는 세종 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활동하였다. 태종 3년 조선 최초의 구리 활자인 계미자를 제작하였고[8], 세종 16년인 1434년에는 갑인자가 만들어졌다.[9]

1460년(세조 6년) 세조는 주자소를 혁파하였다. 이 때문에 주자소는 《경국대전》에 등록되지 못하였다.[10] 이후 조선 전기 조정은 필요할 때마다 주자도감 등의 임시 직을 만들어 출판을 담당하게 하였다.

정조는 1794년(정조 18년) 창경궁의 옛 홍문관 자리에 감인소를 짓고 활자의 제작, 관리와 출판을 전담하게 하였다.[4] 1796년(정조 20년) 정조는 인쇄와 출판을 담당하는 관청의 이름을 태종 시기로 복원하도록 지시하였고 이로서 다시 주자소로 불리게 되었다.[11] 그러나 정조 이후 관리가 소홀해졌고 결국 1857년(철종 8년) 화재로 관청의 건물과 보관하고 있던 활자, 서적이 불타고 말았다.[6]

화재 이듬해인 1858년 균역청에 새로 주자소를 차리고[6] 한구자, 정리자, 임진자를 새로 만들어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 활자들은 대한제국 말까지 사용되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3]

4. 1. 태종 ~ 세종 대: 설립과 발전

태종 때 설립된 주자소는 세종 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활동하였다. 태종 3년 조선 최초의 구리 활자인 계미자를 제작하였고[8], 세종 16년인 1434년에는 갑인자가 만들어졌다.[9]

4. 2. 세조 대: 혁파와 임시 기구 운영

세조는 1460년(세조 6년) 주자소를 혁파하였다. 이 때문에 주자소는 《경국대전》에 등록되지 못하였다.[10] 이후 조선 전기 조정은 필요할 때마다 주자도감 등의 임시 직을 만들어 출판을 담당하게 하였다.

4. 3. 정조 대: 복설과 재정비

세조에 의해 혁파되었던 주자소는 정조대에 다시 설치되어 재정비되었다. 각종 도서의 제작과 출판을 장려하였던 정조는 1794년(정조 18년) 창경궁의 옛 홍문관 자리에 감인소를 짓고 활자의 제작, 관리와 출판을 전담하게 하였다.[4] 1796년(정조 20년) 정조는 인쇄와 출판을 담당하는 관청의 이름을 태종 시기로 복원하도록 지시하였고 이로서 다시 주자소로 불리게 되었다.[11]

그러나 정조 이후 관리가 소홀해졌고 결국 1857년(철종 8년) 화재로 관청의 건물과 보관하고 있던 활자, 서적이 불타고 말았다.[6] 화재 이듬해인 1858년 균역청에 새로 주자소를 차리고[6] 한구자, 정리자, 임진자를 새로 만들어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 활자들은 대한제국 말까지 사용되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3]

4. 4. 철종 대 이후: 쇠퇴와 소실

1857년(철종 8년) 화재로 관청 건물과 보관하고 있던 활자, 서적이 불타버렸다.[6]

화재 이듬해인 1858년 균역청에 새로 주자소를 설치하고[6] 한구자, 정리자, 임진자를 새로 만들어 사용하게 하였다. 이 활자들은 대한제국 말까지 사용되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3]

5. 조직 및 운영

주자소는 예문관대제학승정원의 승지가 제조를 겸임하고, 그 아래에 업무를 담당하는 별좌를 두어 운영하였다. 별좌는 원래 7명이었으나 나중에 5명으로 줄었다. 교서관 서리들이 실무를 겸임하였고, 세종 시기에는 승려도 참여하는 등 장인들이 활자 제작과 인쇄를 맡았으며, 다른 관청 소속 장인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다.[10]

5. 1. 지휘 체계

주자소는 예문관대제학승정원의 승지가 제조로서 겸임하였다. 제조 아래에는 업무를 관장하는 문신인 별좌가 있었다. 별좌의 정원은 7명이었으나 나중에 5명으로 축소되었다. 실무를 맡은 서리는 교서관의 서리들이 겸임하였다. 실제 활자를 만들고 인쇄를 진행하는 것은 장인들의 몫이었는데, 세종 시기엔 승려도 활자 제작에 참여하였다. 서적 출판에 관심이 많았던 세종 시기엔 다른 관청에 소속된 장인들보다 대우가 좋았다고 한다.[10]

5. 2. 실무 담당

주자소에는 전임 관리를 두지 않고 예문관대제학승정원의 승지가 제조를 겸임하였다. 제조 아래에는 업무를 담당하는 문신인 별좌가 있었다. 별좌는 원래 7명이었으나 나중에 5명으로 줄었다. 실무는 교서관의 서리들이 겸임하였다. 실제 활자를 만들고 인쇄하는 일은 장인들이 맡았는데, 세종 시기에는 승려도 활자 제작에 참여하였다. 서적 출판에 관심이 많았던 세종 시기에는 다른 관청 소속 장인들보다 대우가 좋았다고 한다.[10]

6. 주자소 활자

주자소에서 만들거나 관리했던 대표적인 금속 활자들은 다음과 같다.


  • 계미자
  • 갑인자
  • 임진자[12]
  • 정유자[13]

6. 1. 계미자 (1403년)

계미자는 조선 최초의 금속 활자이다.

6. 2. 갑인자 (1434년)

세종 시기 주자소에서 갑인자를 만들었다.

6. 3. 임진자 (1772년)

영조 시기 갑인자를 바탕으로 만든 금속활자이다.[12]

6. 4. 정유자 (1777년)

정유자는 정조 시기에 갑인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금속활자이다.[13]

참조

[1] 웹사이트 세계 최고의 인쇄기술 혁신을 이뤄낸 주자소(鑄字所) https://www.sciencea[...] 2012-05-02
[2] 조선왕조실록 주자소를 설치하고, 이직·민무질·박석명·이응을 제조로 삼다 https://sillok.histo[...] 1403-02-13
[3] 웹사이트 주자소 http://encykorea.aks[...]
[4] 웹사이트 주자소 https://www.kla.kr/k[...]
[5] 웹사이트 주자동 http://www.junggu.se[...]
[6] 웹사이트 주자소(鑄字所) http://dh.aks.ac.kr/[...]
[7] 조선왕조실록 서적을 인쇄하여 팔도록 주자소에 명하다 https://sillok.histo[...] 1407-02-07
[8] 웹사이트 계미자 https://smart.scienc[...]
[9] 웹사이트 갑인자 http://encykorea.aks[...]
[10] 간행물 조선조 인쇄·출판 주관한 주자소 https://koreascience[...] 출판저널 2002-02-05
[11] 조선왕조실록 각종 경적 인쇄처의 명칭을 국초와 같이 주자소로 부를 것을 명하다 https://sillok.histo[...] 1796-12-15
[12] 웹사이트 임진자(壬辰字) http://dh.aks.ac.kr/[...]
[13] 웹사이트 정유자(丁酉字) http://d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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