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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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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시중은 언론인 출신으로, 동아일보 기자, 한국갤럽 회장을 역임했다. 1992년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총선에서 낙마한 후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참모 모임인 '6인회' 멤버로 활동했으며, 재임 기간 중 정치적 중립 위반, 현모양처 발언, 금품 수수 혐의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2012년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특별사면되었다. 딸은 최호정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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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최시중
이름최시중
원래 이름崔時仲
로마자 표기Choe Sijung
한자 표기崔時仲
출생일1937년 8월 4일
출생지경상북도 영일군
종교개신교
학력
학력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경력
경력동아일보 편집국(69-93)
민자당 비례대표(1992)
한국갤럽 회장(94-07)
대통령직인수위원장(2008)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2008~2012년)
새누리당 전임고문
공직
직책대통령실 공보관
임기2008년 2월 29일 ~ 2008년 3월 21일
대통령이명박
총리한승수
장관유우익 (대통령실장)
공직 2
직책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기2011년 3월 28일 ~ 2012년 2월 22일
정당
정당무소속
기타
웹사이트방송통신위원회

2. 생애

최시중은 동아일보 기자, 한국갤럽 조사연구소 회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64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 동아일보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활동했다. 1994년 6월 한국갤럽 조사연구소 회장이 되었다. 1992년 민주자유당 비례대표로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신한국당 당무위원을 거쳐 2007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2008년 1월에는 제17대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다.

2007년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및 6인회의 멤버였다.[33]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는 1965년 서울대학교 입학 동기이며, 이재오 전 최고위원, 박희태, 김덕룡 전 의원과 함께 핵심 참모 모임인 “6인회”의 멤버로 활동했다. 언론계에서는 현소환연합뉴스 사장과도 친분이 두터웠다.[18]

2008년 3월 26일 제1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고, 2011년 3월 28일부터 2012년 1월 27일까지 제2대 위원장을 연임하였다.[2] 대한민국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증여세 탈세, 아들의 병역 특혜, 프로그램 편성 선정 과정에서 특정 취향에 치우쳐 심사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 국회 문화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추궁을 받았다.[9]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반한나라당" 루머에 대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지지하여 미네르바 사건과 유사한 비판을 받았다.[2]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성향 신문사들의 방송사(종합편성채널)에 대한 "광고 집중"을 지지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받았다.[3]

대검찰청은 최시중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김학인에게 교육방송 사장직을 보장해준 혐의로 한국방송예술고등학교 이사장 김학인을 수사했다.[4] 또한 최시중의 측근인 정용욱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캐나다로 도피했다는 추가 의혹이 있다.[5]

2. 1. 언론인 활동 (1964년 ~ 1994년)

최시중은 1964년 4월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동아일보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활동했으며, 1994년 6월 한국갤럽 조사연구소 회장이 되었다.

연도직책
1964년 4월동양통신 기자
1965년 9월 ~ 1993년 2월동아일보 기자, 편집국 부국장
1994년 6월한국갤럽 조사연구소 회장


2. 1. 1. 동아일보 재직 시절

연도직책
1965년 9월동아일보사 편집국 방송뉴스부 기자
1969년 3월동아일보사 편집국 정치부 기자
1976년 10월동아일보사 편집국 국제부 기자
1979년 11월동아일보사 편집국 지방부 차장
1980년 12월동아일보사 안보통일문제조사연구소 상임연구위원
1985년 6월동아일보사 편집국 정치담당 편집위원
1988년 3월동아일보사 정치부 부장
1988년 10월동아일보사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1993년 2월동아일보사 편집국 부국장


2. 1. 2. 한국갤럽 회장

1994년 6월 한국갤럽 조사연구소 회장에 취임했다.

2. 2. 정치 활동 및 방송통신위원장 재임 (1992년 ~ 2012년)

최시중은 1992년 민주자유당 비례대표로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신한국당 당무위원을 거쳐 2007년 한나라당 (자유한국당의 전신)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2008년 1월에는 제17대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반한나라당" 루머에 대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지지하여 미네르바 사건과 유사한 비판을 받았다.[2]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성향 신문사들의 방송사(종합편성채널)에 대한 "광고 집중"을 지지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받았다.[3]

대검찰청은 최시중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김학인에게 교육방송 사장직을 보장해준 혐의로 한국방송예술고등학교 이사장 김학인을 수사했다.[4] 또한 최시중의 측근인 정용욱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캐나다로 도피했다는 추가 의혹이 있다.[5]

2. 2. 1. 6인회 활동

2007년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및 6인회의 멤버였다.[33]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는 1965년 서울대학교 입학 동기이며, 이재오 전 최고위원, 박희태, 김덕룡 전 의원과 함께 핵심 참모 모임인 “6인회”의 멤버로 활동했다. 언론계에서는 현소환연합뉴스 사장과도 친분이 두터웠다.[18]

2. 2. 2.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2008년 3월 26일 제1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고, 2011년 3월 28일부터 2012년 1월 27일까지 제2대 위원장을 연임하였다.[2]

대한민국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직업윤리와 도덕성, 중립성 문제를 지적하며 자진 사퇴를 권고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문화연대,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등 미디어 관련 단체들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에 반대했다.

최시중은 자격 논란에 대한 2008년 3월 2일 기자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어떻게 당선시킬까 생각하면 목숨을 걸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방송통신위원회를 편향적으로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8]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 과정에서 제기된 부동산 투기, 증여세 탈세, 아들의 병역 특혜, 프로그램 편성 선정 과정에서 특정 취향에 치우쳐 심사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 국회 문화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추궁을 받았다.[9]

최시중은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며, 대검찰청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반한나라당" 관련 루머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것을 지지함으로써, 미네르바 사건과 유사한 비판을 받았다.[2] 그는 조중동 방송사에 대한 "광고 집중"을 지지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받았다.[3]

대검찰청은 최시중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김학인(金學仁)에게 교육방송 사장직을 보장해준 혐의로 한국방송예술고등학교 이사장 김학인을 수사했다.[4] 또한 최시중의 측근인 정용욱(鄭容旭)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캐나다로 도피했다는 추가 의혹도 있다.[5]

3. 학력

4. 경력

연도경력
1964년 4월동양통신 기자
1965년 9월동아일보사 편집국 방송뉴스부 기자
1969년 3월동아일보사 편집국 정치부 기자
1976년 10월동아일보사 편집국 국제부 기자
1979년 11월동아일보사 편집국 지방부 차장
1980년 12월동아일보사 안보통일문제조사연구소 상임연구위원
1985년 6월동아일보사 편집국 정치담당 편집위원
1988년 3월동아일보사 정치부 부장
1988년 10월동아일보사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1993년 2월동아일보사 편집국 부국장
1994년 6월한국갤럽 조사연구소 회장


4. 1. 정치 경력

1992년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총선에서 낙마하였다.[1]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 당무위원을 지냈다.[1] 2007년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및 6인회의 멤버였다.[1] 2008년 1월 제17대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다.[1] 2008년 3월 26일 초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2011년 3월 28일부터 2012년 1월 27일까지 제2대 위원장을 연임하였다.[1] 이후 새누리당 전임고문 겸 당무위원, 자유한국당 당무위원을 지냈다.[1]

4. 2. 언론 및 기타 경력

연도경력
1964년 4월동양통신 기자
1965년 9월동아일보사 편집국 방송뉴스부 기자
1969년 3월동아일보사 편집국 정치부 기자
1976년 10월동아일보사 편집국 국제부 기자
1979년 11월동아일보사 편집국 지방부 차장
1980년 12월동아일보사 안보통일문제조사연구소 상임연구위원
1985년 6월동아일보사 편집국 정치담당 편집위원
1988년 3월동아일보사 정치부 부장
1988년 10월동아일보사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1993년 2월동아일보사 편집국 부국장
1994년 6월한국갤럽 조사연구소 회장


4. 3.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과 서울대학교 동기이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 그룹인 “6인회”의 멤버였다. 월간 신동아는 2008년 4월 통권 583호 “Who's Who 이명박의 실력자”라는 별책 부록에서 최시중이 199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계 입문 시절부터 정치적 조언자였으며, 대통령 당선 후에는 “물이 넘치려 할 때 둑이 되어 막는 것이 제 사명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소개했다.[7]

대한민국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직업윤리와 도덕성, 중립성 문제를 지적하며 자진 사퇴를 권고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문화연대,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등 미디어 관련 단체들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에 반대했다.

최시중은 자격 논란에 대한 2008년 3월 2일 기자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어떻게 당선시킬까 생각하면 목숨을 걸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방송통신위원회를 편향적으로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8]

최시중은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 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 국회 문화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추궁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으로 부동산 투기, 증여세 탈세, 아들의 병역 특혜 등이 있다. 프로그램 편성 선정 과정에서 특정 취향에 치우쳐 심사했다는 의혹도 있다.[9]

5. 논란 및 사건사고

최시중은 방송통신위원장 재임 시절 및 퇴임 이후 여러 논란과 사건에 연루되었다.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금품 수수 사건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퇴임 이후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2012년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 형을 구형받았으나, 이후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6억이 선고되었다. 항소심에서도 같은 형량이 선고되었으나, 2013년 1월 천신일 회장과 함께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22] 수감 중 법원 허락 없이 삼성병원 VIP 병실에 머물러 논란이 되기도 했다.[22]
  • 기타 의혹: 대검찰청은 최시중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김학인에게 한국교육방송공사 사장직을 보장해준 혐의로 한국방송예술고등학교 이사장 김학인을 수사했다.[4] 최시중의 측근인 정용욱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캐나다로 도피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5]

5. 1. 방송통신위원장 자격 논란

최시중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의원과 서울대학교 동기이며,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참모 그룹인 "6인회의"의 멤버였다. 월간 신동아는 2008년 4월 통권 583호 'Who's Who영어 이명박 파워맨'이라는 별책부록에서 최시중이 1992년 이명박의 정계 입문 시절부터 정치적 조언자이며,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물이 넘치려고 할 때 제방(堤防)이 돼주는 것이 내 임무”,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했다.[26]

2003년 10월 7일 '밝고 힘찬 나라 운동본부'가 서울클럽에서 주최한 《노무현 정부 어디로 가고 있나》 제하의 강연에서 한국갤럽 연구소 최시중 회장은 다음과 같이 출범 7개월된 노무현 정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25]

> 여론조사 기관에서 볼 때 지지율 40%선은 위기선인데, 갤럽 방식으로 현재 노 정권의 지지율은 30%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선은 국민이 통치자를 걱정하는 수준이다. (중략) 이 정도로 상황이 어려울 땐 아르헨티나필리핀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자고 얘기하지만 나는 캄보디아를 거론하고 싶다.

대한민국 국회의 인사 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하였으나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최시중을 임명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직업 윤리와 도덕성, 중립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자진 사퇴를 권고하였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문화연대,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등의 언론 유관 단체들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을 반대했다.

최시중은 자격논란 시비에 대한 2008년 3월 2일 기자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생을 걸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방송통신위원회를 편파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27]

2011년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최시중은 부동산 투기, 증여세 탈루, 아들 병역특혜 등 각종 의혹들에 대해 국회 문방위 위원들의 추궁을 받았다. 종편 선정 과정에서 특혜와 편파 심사 의혹도 일었다.[28]

5. 2.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

최시중한국어2003년 10월 7일 '밝고 힘찬 나라 운동본부'가 서울클럽에서 주최한 《노무현 정부 어디로 가고 있나》 제하의 강연에서 "여론조사 기관에서 볼 때 지지율 40%선은 위기선인데, 갤럽 방식으로 현재 노 정권의 지지율은 30%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선은 국민이 통치자를 걱정하는 수준이다."라고 하며 출범 7개월된 노무현 정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25]

2008년 5월 13일, 방송통신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회설치법 6조2항에서 방송통신위원장의 "의무"로 규정된 국회 보고를 거부한 후 동 법 6조2항에서 "필요한 경우"로만 참석을 제한한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하여 "쇠고기 관련 정부의 홍보 기능 강화" 발언을 하였다. 이를 두고 국회,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방송통신위원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한국방송공사(KBS)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는 언행이 방송통신위원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논란이 다시 일어났다.[29] 최시중한국어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며, 대검찰청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반한나라당" 관련 루머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것을 지지함으로써, 미네르바 사건과 유사한 비판을 받았다.[2] 그는 조중동 방송사에 대한 "광고 집중"을 지지한 것에 대해 비판받았다.[3]

5. 3. 현모양처 발언

賢母良妻중국어는 어진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를 의미한다.

2010년 3월 18일 제주도 서귀포 KAL 호텔에서 열린 '2010 여기자 포럼'에 방문해 "나는 여성들이 직업을 갖기보다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이를 두고 진보신당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서도, 사회의 어른으로서도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고, 네티즌들은 "시대가 어떤 시댄데 조선시대 소리를 하고 있는가"라며 비판하였으며,[30] 민주당은 "남녀평등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저출산 책임을 일하는 여성들에게 모두 떠넘기는 편협한 시선이 참으로 기막히다"라고 비판하였다.[31]

5. 4. 1997년 대선 여론조사 결과 유출 의혹

한국방송공사(KBS)는 최시중이 1997년 12월 15일 보즈워스 주한 미국 대사에게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내용을 유출한 정황을 보도했고, 이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이루어진 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5. 5. 금품 수수 사건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퇴임 이후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한 금품 수수 사건에 연루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수감 중 법원의 허락 없이 삼성병원 VIP 병실에 머물러 논란이 되었다.[22]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 형을 구형받았으나, 1달 뒤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6억이 선고되었다. 같은 해 11월 15일 결심공판에서는 1심과 같은 징역 3년 6개월에 벌금 8억이 구형되었고, 11월 29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6억이 선고되었다.

2012년 4월 30일, 알선수재 혐의로 검찰에 체포되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영향이 우려되었다.[13][14][15][16][17] 재판 결과,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6억의 유죄가 확정되었으나, 2013년 1월 천신일 회장과 함께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22]

6.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장녀최호정서울특별시의회 의원, 국민의힘 원내대표[19][20]


참조

[1] 뉴스 Chief of telecom regulator resigns http://www.koreahera[...] 2012-01-27
[2] 뉴스 http://news.khan.co.[...] 2011-11-09
[3] 뉴스 [단독] 최시중, 대기업 임원들 만나 ‘종편에 광고’ 압박 http://www.hani.co.k[...] 2011-12-09
[4] 뉴스 http://www.hani.co.k[...] 2012-01-03
[5] 뉴스 http://www.hani.co.k[...] 2012-01-03
[6] 뉴스 지금은 정권 말기적 상황 http://news.naver.co[...] 동아일보 2003-10-08
[7] 간행물 新東亜4月号 李明博の実力者 http://www.donga.com[...] 신동아
[8] 뉴스 マネートゥデー:中立懸念はない http://www.moneytoda[...] 머니투데이
[9] 뉴스 崔時仲放送通信委員会委員長候補の人事聴聞会...贈与税脱税疑惑なども追及 http://news.naver.co[...] 세계일보 2011-03
[10] 뉴스 崔時仲"大統領支持率低下は、鄭然珠のため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11] 뉴스 여성들 직업 갖기보단 현모양처 돼야" 최시중 발언 논란 http://media.daum.ne[...] 한국일보 2010-03-19
[12] 뉴스 최시중 방통위원장도 여성비하 발언 '구설 http://news.nate.com[...] 한국일보 2010-03-20
[13] 뉴스 崔時仲前委員長  あっせん収賄容疑で逮捕 http://world.kbs.co.[...] KBS WORLD 2012-05-01
[14] 뉴스 韓国大統領の最側近逮捕 あっせん収賄容疑 http://www.tokyo-np.[...] 東京新聞 2012-05-01
[15] 뉴스 大統領最側近を逮捕 韓国、政権に大打撃も https://web.archive.[...] MSN産経ニュース 2012-04-30
[16] 뉴스 李大統領最側近、収賄容疑で逮捕…選挙に使用か https://web.archive.[...] 読売新聞 201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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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서적 李明博時代のパワーエリート 毎日経済新聞社 2008-04-15
[19] 웹사이트 최시중 딸 최호정,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 https://mobile.newsi[...] 2022-06-14
[20] 웹사이트 서울시의 한국TBS向け予算支援、2024年から中断へ https://www.chosunon[...] 2022-11-16
[21] 뉴스 최시중 前위원장, 선처 호소했으나 항소심도 실형 https://news.v.daum.[...]
[22] 뉴스 李 대통령 측근 최시중·천신일 석방 http://news.tv.chosu[...] TV조선 2013-01-31
[23] 뉴스 KBS "최시중 후보자 군복무 중 탈영 기록 있어" http://www.chosun.co[...] 뉴시스 2008-03-16
[24] 뉴스 이준구 “최시중 멀어 탈영? 걸어도 될 거릴...” http://www.newsface.[...] 뉴스페이스21 2011-03-07
[25] 뉴스인용 지금은 정권 말기적 상황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03-10-08
[26] 간행물 신동아 4월호 이명박 파워맨 http://www.donga.com[...] 신동아
[27] 뉴스 머니투데이: 독립성 우려 말라 http://www.moneytoda[...] 머니투데이
[28] 뉴스 최시중 방통위원장 후보 인사청문회… 증여세 탈루 의혹 등도 추궁 https://news.naver.c[...] 세계일보 2011-03
[29] 뉴스 한겨레신문: 최시중 "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정연주 때문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30] 뉴스인용 "여성들 직업 갖기보단 현모양처 돼야" 최시중 발언 논란 http://media.daum.ne[...] 한국일보 2010-03-19
[31] 뉴스인용 최시중 방통위원장도 여성비하 발언 '구설 http://news.nate.com[...] 한국일보 2010-03-20
[32] 웹사이트 서울특별시 의회 최호정 의원 http://www.smc.seoul[...]
[33] 서적 이명박 시대 파워엘리트 매일경제신문사 200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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